'미켈란젤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4 세계 최대 성베드로 성당과 카타콤 25
  2. 2009.04.14 피렌체는 아직도 르네상스 시대? 23



베드로 성당을 둘러보기 앞서서 먼저 들린 곳은 카타콤이다.

카타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에 숨어든 지하무덤이다.

그리스어 '카타콤베'에서 왔으며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나폴리,몰타,아프리카,소아시아 등 여러 지방에서 카타콤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이 분포되어있다고 한다. 





카타콤의 내부는 거의 미로와도 같은데 이 곳의 카타콤의 길이만도 거의 500km 의 길이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로마 병사들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이곳에 길을 여러 갈래로 내고

그 길에 또 각각 여러 갈래의 길을 내어
길 곳곳에 표시해둔 날짜를 통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한

그들의 힘들었던 생활이
물고기 모양의 상징물과 여러가지 문양들로 새겨져 고스란히 벽에 남아있다.



카타콤의 입구는 다른 관광지와 다르게 앞이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까지 와서 카타콤을 돌아 보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가 보다.

카타콤의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

로마의 박해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숨어든 이곳에는 그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냥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볼 뿐이었다. 

 

카타콤을 돌아보고 발길을 성 베드로 성당으로 돌렸다.

성 베드로 성당은 이탈리아어로는 San Pietro Basilica 라고 하는데 보통 바티칸 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당의 기원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에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성당 건립에 쓰일 엄청난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발행하였는데

마틴 루터가 면죄부 발행에 반대하여 그 폐단을 지적하며 95개조 항의 문을 내붙이고 공개토론을 제의한 것이

종교 개혁의 실마리가 되었다.

  

사진은 광장의 반대편에서 찍은 것인데 성당과 더불어 광장도 엄청나게 크다.

광장은 1656~1967년 사이에 걸쳐 베르니니의 설계로 지어졌다고 한다.

광장 가운데의 첨탑은 높이 25.5m의 이집트 오벨리스크이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인데 성당 광장에 왜 세워놓았을까......

이방신의 기념비조차도 성당 앞에 전리품으로 놓아두고 싶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옆의 건물은 교황이 집무하는 바티칸 시국이다.

오른 쪽에서 두번 째 창이 교황의 방이라고 하는데 가끔 창을 열고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한단다.

 

성당을 관람하기 위해 성당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긴 줄은 줄어들 줄 모르고

성당 문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밀리고 밀고 더 이상 한발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되었는데 입구에서 검색이 강화되어 그렇단다.

우선 여자들은 민소매 옷차림 입장이 거절되어 등을 훤히 드러낸 옷을 입은 서양여자들이 가차없이 쫒겨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백팩에서 가디건을 하나 꺼내어 위에다 걸쳤는데 내 차례가 되자 뒤에 맨 백팩을 벗어 보라는 것이다.

경비원들은 내 가방을 뺏어서 이리저리 뒤지더니 다시 성의없이 돌려주었다.

내가 테러범이라도 된 것같이 보이나.... 싶어 언짢은 마음으로 성당 문을 들어섰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 오른 편에 '피에타'가 있었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23세 때 완성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정신병자가 휘두른 망치에 손상을 입은 후에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다.  



성당 문 앞의 천정 장식이다.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된 성당의 돔은
이후

영국의 세인트폴 성당 돔, 파리의 앵발리드,워싱턴의 국회 의사당 돔 등
많은 건축물의 본보기가 된다.
 



성베드로 성당은 가로 150m, 세로 218m, 높이 50m의
세계에서 최고 큰 성당으로 동시에 5만명이 미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부속 예배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지붕 천정과 등이 아름다워 찍어보았다.
 



성당의 왼쪽에는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문을 지키고 서있는 호위병들의 복장이 마치 피에로와 같이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그들의 임무는 바티칸 시국을 경호하는 것일까.....아님 관광객을 위한 포토 모델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희한한 복장은 보는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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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 도착한 것은 오후 쯤이었다.

먼저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서 피렌체 시내를 조망하기로 했다.
 



미켈란젤로 언덕이라는 이름은 언덕 한가운데 서있는 다비드 상 때문인 듯 하다.

다비드 상의 모조품이 다소 큰 크기로 언덕 중앙에 버티고 서있었고 언덕 위에서는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바로 앞을 흐르는 아르노 강과 그 위의 다리들, 붉은 지붕의 아름다운 집들,
베키오 궁전과 두오모가 그 위에 솟아 두드러져 보인다.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가 눈 앞에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탈리아의 오후는 덥고 나른하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피렌체의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골목은 사람들의 인적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모두 시에스타 중이라 한때의 오수를 즐기고 있는 듯 하다. 

한 식당에 들어서니 식당 안에만 사람들이 많다.

본 고장의 스파게티와 마늘빵을 먹은 후 다시 시내 관광에 나섰다.

 

시내의 도로는 모두 돌로 포장되어있다.

차들도 모두 돌로 포장한 도로 위를 달린다.

거리는  사방 10cm 정도의 짙은 회색의 돌로 덮여있는데

이 돌들은 모두 1m 이상의 깊이로 박혀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이 되어도 파손이 잘 되지 않고

르네상스 시대의 도로 포장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도로의 돌이 파손되면 그 부분만 다시 파내어 새돌로 교체한다고 한다.

일년이 멀다고 도로 포장을 새로 하고 연말만 되면 보도 블럭을 교체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가 되었다.
 

도로는 매우 좁아 승용차는 두 대가 비키기가 힘이 들고 버스는 벽에 대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런데도 도로를 넓히지 않고 불편한 그대로 살면서 그들의 문화 유산을 잘 지켜가고 있었다.

오늘날 이탈리아가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문화 유산을 물려준 조상의 덕도 있겠지만

그 문화 유산을 잘 지키고 있는 후손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이다.

영어로는 플로렌스라고도 하는데 로마 북서쪽 233Km, 아르노강의 양안, 구릉과 선상지상에 있다. 
 
피렌체는 공화국, 토스카나 공작령의 수도, 이탈리아의 수도 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왔는데 BC 1 세기경 로마의 군사 식민지에서 비롯된 곳으로

14-16세기에는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이곳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던 천재들을 통해 피렌체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및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다.
 



피렌체를 유명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두오모 성당이다.

두오모는 '꽃의 성모 교회'라고 불리우는데 두오모는 반원형의 둥근 천장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돔(Dorm)의 어원이 됐다.

1296년에 시작되어 170여년만에 완성된 두오모는 성당외벽을 흰색, 분홍색, 녹색의 대리석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하였다.

이 성당의 규모는 엄청 나서 3만여명이 들어 갈 수 있다고 하고  주위를 한바퀴 돌아 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모될 정도였다.



두오모 남쪽에 있는 84m 높이의 종탑은 지오토의 종탑이라고 하는데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명소라고 한다.

흰색, 분홍색, 초콜릿색의 대리석으로 장식한 탑이다.

 

두오모 앞에는 싼 죠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이 유명한데

1401년 피렌체가 페스트로부터 자유로와진 것을 기념해서 만든 문이다.

로렌쪼 기베르띠라는 작가가 28년동안 만든 작품으로 성서의 창세기 이야기를 담은 10개의 부조로 되어 있다.

성당 앞의 문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두오모 뒷편의 오페라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피렌체 공국 시대부터 시청으로 쓰이고 있는 베키오 궁전은

성곽 건물과 94m에 이르는 종탑이 고딕양식을 따르고 있어 과거 16세기 정부청사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

 

청사 앞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David〉의 복제품이 있는데 원래 이 곳에 있던 진짜는 지금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베키오 궁전 바로 옆의 동상은 목을 베어서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베키오 궁전 앞 광장은 시뇨리아 광장이라고 하는데 광장 분수 안의 동상의 주인공은 헤라클레스이다.
 



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꼬지모 메디치의 청동 기마상도 서 있었다.
 



두오모 근처의 산타 크로체 교회도 너무나 아름답다.



두오모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는 단테의 생가가 있다.

현재 이곳이 단테의 생가였다는 증거는 벽에 붙어있는 단테의 토르소가 전부이다.

현재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원제목이 '희극(La Commedia)' 인 '신곡' 은 지옥편과 연옥편, 천국편의 3부곡으로 되어 있는데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게 된다.

매우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방법으로 인생 의 여러 우여곡절을 암시적으로 제시하면서

착오와 고뇌를 통하여 영혼의 정화를 성취시키는 인간 행로를 말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 신곡 때문에 문맹을 면했다 할만큼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책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단테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의 집도 있다고 한다.
 

피렌체의 시내는 그리 넓지 않아서 걸어서 다니면서 골목의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면 더 좋다.

또 두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하면 더욱 멋진 피렌체의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피렌체는 가죽 공업이 발달한 곳이라 가죽 제품 가게에서

이탈리아의 수공예 가죽 제품을 하나 사서 소장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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