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어느 집을 가나 한결같이 그 집의 중심이 되는 벽에 걸려 있는 한 사진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의 사진인데 터키인들은 그를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관공서와 학교에는 물론 식당이나 동네의 조그만 구멍 가게에도 그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화폐 개혁 전의 터키 리라와 화폐 개혁 이후의 예니 터키 리라,두 화폐의 가치는 같다.)   

모든 터키 지폐의 앞면에는 그의 초상화가 자리잡고 있으며 대도시의 큰 거리는 어김없이 아타튀르크 거리이다.
                                             

아타튀르크가 사망한지 70년이 되었지만 아타튀르크에 대한 터키 국민의 신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그가 사망한 11월 10일에는 온 국민이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터키 국민들이 아타튀르크에 대해 이런 절대적인 신망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첫째, 그는 다 쓰러져 가는 오스만 제국에서 터키 공화국을 세운 국부(國父)였기 때문이다. 
모든 이슬람 국가의 맹주였던 오스만 제국은 20세기 초반에 와서는 서구 강대국의 침략 위협을 받게 된다.
거기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에 서다가 패전하게 되니 패전국에 대한 연합국의 영토 분할 점령으로 인해
자칫하면 현 앙카라 고원 지대의 영토만 남을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때 무스타파 케말이 등장하여 열강에 의한 영토 점령에 반대하고 민족적 저항 운동을 계속해 나가는데 
1921년 아나톨리아로 공격해 온 그리스 군대를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군대가 대패시키니 다른 나라 군대 또한 스스로 철수하게 된다.
이후 1923년 로잔평화조약에 따라 공식 국가 승인을 받아 1923년 정식으로  터키 공화국이 선포된다.

무스타파 케말은 직업 군인이었으나 노련한 정치가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젼과 용기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터키 독립 전쟁을 지휘하였고 1923년 앙카라에 새로이 의회를 조직하고 공화국을 선포하였으며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둘째, 초대 대통령으로써의 무스타파 케말은 재임 기간동안 종래의 '이슬람 전통'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한 서구식 근대화 작업을 하여 러시아와의 전쟁, 발칸 전쟁, 1차 세계 대전 등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터키인들의 긍지와 사기를 올려서 단합시키는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일차적으로 행정 체계와 사법 체계, 교욱 제도가 바꾸었으며 헌법이 개정되었다. 
터키는 '정교 분리'의 세속 국가가 되었고 대대로 내려오던 '칼리프 제도'는 폐지되었다. 
메카의 정복과 함께 오스만 제국이 이어 받았던 칼리프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모든 '이슬람 국가의 맹주'로써의 위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이 얼마나 놀라운 결단인가...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구분한다는 것은 이슬람 사회에서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슬람 범정, 이슬람 공직 제도, 이슬람 학교, 이슬람 종교 제단이 다 폐지되어서
오늘날 터키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자유의 나라>가 되었다. 


 


대대로 내려 오던 이슬람력 대신 국제 표준시와 국제 표준 달력이 채택되었으며

기존의 금요일에서 일요일로 주간 공휴일이 변경되었고 성(姓) 사용법을 통과시켰다.
일부다처제는 금지되었고 여성에게도 투표권과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공공 기관이나 학교에서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을 폐지하였다.



그 중 최고의 개혁은 문자 개혁이다.

말은 있되 글이 없어 아라비아 글자를 사용하던 터키 사람들에게 1928년 무스타파 케말은 라틴 문자를 기초로 하여
터키어 발음에 맞는 문자를 만들어 공포하였으니 터키인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의 문자를 갖게 되었다.
우리 세종대왕처럼 새로운 글자를 창조해 낸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서 자기나라에 맞는 문자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선 
세종대왕의 업적에 버금가는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이 없이 지내던 터키인들에게 성(姓) 사용법이 의회를 통과하자
터키 국민들은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 즉 '터키의 아버지'라는 새로운 성을 선사하였다. 
이 사실이 보여주듯 그에 대한 터키인들의 사랑과 존경은 신에 버금 갈 정도이다.


혁명보다도 더 단호한 개혁 정치를 단행한 아타튀르크.....
오랜 세월동안 이슬람에 젖어있던 국민들에게는 감당키 어려운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국민들은 아타튀르크에 대한 존경심으로 잘 참고 견디며 따라주었고
그의 사후
오늘날까지 터키 국민들은 그에게 변함없는 존경을 보여주고 있다. 

바람 앞의 등불 같던 터키를 구하고 오로지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친 지도자.
'터키의 아버지(아타튀르크)'라는 그 이름과 같이 온 국민이 아버지와 같이 존경하고 본받는 지도자.
우리에겐 이런 훌륭한 지도자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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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네압볼리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가기 위해서는
에디르네에 위치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경을 통과할 때 프리 패스이다.
EU에 가입되어 있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끼리는
남의 나라도 옆 동네 가듯 아무런 제재 없이 차로 넘나들 수 있는데
터키는 아직 EU에 가입을 하지 못한지라 
그리스에서 터키로 넘어가려면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경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 지대에는
도로를 제외하고는 여기저기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와 그리스의 관계는 우리와 일본의 관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제의 36년간의 통치를 받았던 것처럼
그리스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후 400년간 오스만 터키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독립후에도 발칸 전쟁 등 터키와 숱한 전쟁을 벌이다가 1921년 로잔 협정에 의해
터키 내에 살던 120만명의 그리스인과
그리스에 살던 45만명의 터키인을 서로 추방하였으니
현재도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만큼 서로 앙숙인 관계이며
특히 400년간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 사람들은 터키 사람들을 아주 아주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리스 국경에서 여권 검사를 하고 면세점을 들려보니
면세점에는 오직 술과 담배 뿐이고 화장실 외에는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 터키 국경 지대의 편의 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을 통과하려면 그리 넓지 않은 강 하나를 건너야 한다.
특이한 것은 다리 난간의 색깔인데 강 한가운데가 서로의 영토 경계선이라서
그리스 영토 부분을 지날 때에는 강의 난간이 그리스를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강의 중간 부분을 지나 터키 영토인 다리 부분에 오면 난간의 색깔이 터키를 상징하는 붉은 색으로 바뀌게 된다.


강폭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순식간에 그리스에서 터키로 넘어오게 되기 때문에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다리 색깔이 가운데서부터 달라지는지 볼 사이도 없이 넘어와 버리게 된다.


 드디어 국경을 넘어 터키의 영토로 진입한지라 버스 뒤편 창을 통하여 사진을 찍었다.
저멀리 파란 난간의 다리와 이쪽 붉은 난간의 다리 사이에 펄럭이는 두 나라의 국기가 눈에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리스로 들어가기 위해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많은 차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다리를 지나 터키 쪽 국경 검문소로 진입하니 '튀르키에'라는 터키의 국명이 선명하게 보인다.
검문소를 지나가면서 보니 보초병들이 지키고 서 있길래 차 안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더니
보초를 서는 군인이 '터키 남자 특유의 눈웃음'을 치며 차가 안 보일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든다.
보초병이 여자를 보고 눈웃음이라니....!


 터키 영토로 진입하니 그리스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지루함 때문에
차에서 내려 담배를 태우거나 삼삼오오 짝지어 얘기를 나누는 터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터키 국민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게 성격이 무지 급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을 잘 참지 못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길거리 노점상들은 너무나 친근하고 정겹게 보인다.
터키는 넓고 비옥한 토지로 인해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과일들은 값이 싸고 당도도 높으며 무지 신선하다.
 


 국경 도시 에디르네를 지나면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오게 된다. 


이스탄불 길가의 가로수는 올리브 나무가 많고 사람들의 모습은 아주 여유로워 보인다. 


인구 1,200만명이 밀집해서 살아가고 있는 이스탄불의 모습은 아주 활기차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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