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왕국의 분열 이후, 아타루스 왕조인 필레타이로스가 기원전 281년에 건국했다는 페르가몬(Pergamon) 왕국. 페르가몬 왕국의 유적이 남아있는 터키 베르가마(Bergama,버가모)를 찾아가 본다. 

페르가몬 왕국은 문화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그중에서도 도서관 수준은 세계 최대급이었다. 페르가몬에 질투심을 느낀 이집트는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는데  곤란해진 페르가몬은 양피지를 발명해내었다.
'페르가몬의 종이'란 뜻의 양피지(parchmen)는 책 한권에 드는 양의 가죽이 양 15 마리분이어서 제작 비용이 상당했으나 파피루스보다 튼튼하고 양면에 문자를 적을 수 있었던 덕분에 책은 '두루마리'에서 '책자'로 변했고 도서관의 책 보존은 더욱 편리하게 되었다.양피지 발명으로 인해 페르가몬 도서관은 장서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당시 약 20 만권의 장서를 보유하였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이어 세계 제 2의 도서관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페르가몬 왕국은 문화와 상업,의학의 중심지였고,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처럼 계속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이 후 비잔틴, 아랍, 터키를 거쳐 오면서 왕국의 특색은 엷어지고 점점 몰락해가서 현재 남아 있는 페르가몬의 유적은 산상 도시 아크로폴리스(Akropolis)와 고대 의료시설인 아스클레피온(Asklepion)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버가모(베르가마)에서는 아크로폴리스와 아스클레피온 유적을 뒤로 한채 강을 걸쳐 세워져 있는 아주 당당한 건축물을 둘러 보았는데 바로 '크즐 아블루(Kizil Avlu)'이다.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인 2,3 세기에 건립된 이 건축물은 원래 고대 이집트 여신 사라피스를 모시는 거대한 신전이었지만 후일 비잔틴 시대부터는 로마 국교인 기독교 교회로 용도가 바뀌어 사용되었다. 

 

 

요한 계시록에 따르면 버가모는 소아시아에 있는 7대 교회중 한 곳이었다.



버가모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과 제우스 신전이 세워져 있던 도시였기에 초대 교회 당시 신전에서 올리는 제사로 인해  도시 전역이 항상 연기로 자욱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버가모 교인들의 신앙 생활은 단지 입으로만 읊조리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삶이었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었기 때문에 터키어로 '크블 아블루(붉은 관)또는 '레드 바실리카(붉은 성당)'라고도 한다. 현재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붉은 외벽만 남아있을 뿐인 이 거대한 건물은 60*26 m 의 면적과 19 m 의 높이를 자랑한다.

 

 

본래 빨간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대리석을 덧붙여 감추어지게 되었는데 이 곳의 대리석은 오랜 시일을 거쳐 떨어져 나가고 최근에는 마루를 덮고 있던 대리석 마감재만이 온전하게 붙어있다.  

 

 

 떨어져 나간 부분들은 일부 새 벽돌로 복원이 되고 있었는데

 

 

무너지지 않은 일부 문들은 정말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어 크즐 아블루의 전성기를 짐작케 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너편 마을과 성채가 정말 액자 속의 그림 같다. 

 

 

이 건물 분수대 아래로는 셀리누스 강에서 물을 운반하는 지하 터널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거대한 크즐 아블루의 주변에는 당시 건물의 부서진 조각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터키는 지진이 많은 곳이라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유적이 크즐 아블루 주변에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다. 

 

 

이곳에는 유대인 회당도 있었던지라 대리석 기둥에 쓰인 히브리어도 발견할 수 있다.

 

 

깨어진 돌판들과 부서진 채로 맞춰진 조각들이 그 시대의 자취들을 무언으로 알려주었다. 

 

 

크즐 아블루의 문을 나서니 담 옆에는 무화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크즐 아블루 입구에는 술탄의 우아한 세탁소처럼 상점마다 굉장히 공교하게 짠 카펫들이 걸려있어 보기만해도 눈이 즐겁다. 버가모(베르가마) 에서는 염소 가죽과 신선한 백색 치즈, 과일과 튤립, 꿀, 요쿠르트, 피스타치오등의 특산품이 많이 생산되지만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산품은 역시 버가모(베르가마) 카펫이다. 버가모(베르가마) 카펫은 아직도 손으로 짠 구식 방식으로 만들어지므로 최상급의 카페트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카펫을 구입하려고 돌아볼 때에는 너무나 말끔한 색상의 카펫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고. 



카펫 상점마다 다양한 사이즈와 길이의 카펫과 킬림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킬림은 비단으로 짜거나 수를 놓거나 날실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평평하게 짠 여러가지 유형의 융단이나 자루를 말하며 카펫은 이러한 직물에 매듭으로 단단함과 부피감을 더한 직조 공예품을 말한다. 카펫과 킬림은 때로는 아주 길게 짜서 소비자가 원하는 길이로 잘라서 팔기도 한다.  

 

길 가에 카펫을 깔아 놓은 모습은 마치 우리 나라 추수기에 벼를 말리는 풍경을 연상케 하고 담장에 늘어놓은 다양한 색상의 카펫도 이채롭다.

 

 

 노상에서 카펫을 팔고 있던 부자의 포트레이트를 찍어보았다. 부자의 얼굴과 포즈가 똑 같은게 너무 재미있다. 

 



"원달라~~원달라~~~"를 외치며 엽서를 팔고 있던 아저씨는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You're so good~" "You're so beautiful~"을 남발하며 칭찬해 주더니 엽서를 안 사고 그냥 돌아서서 오니 따라와서 엽서를  공짜로 선물해 주었다. 차를 타고 출발하는데도 차창을 보고 계속 손을 흔들어줘 가슴이 찡했다. 

 

페르가몬의 산상 도시 유적 아크로폴리스(Akropolis)의 대극장은 해발 333 m 언덕의 급경사면을 이용해 만들어진 부채 모양의 야외 극장으로써 엄청난 높이와 규모를 자랑한다. 80 m나 되는 까마득한 관객석은 층계가 3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무려 일만명을 수용할 수 있고 아래쪽의 귀빈석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을 만큼 화려한 극장이다. 여기에서는 배우가 맨 아래의 무대 중앙에 서서 보통의 목소리로 말하여도 가장 맨꼭대기의 관객의 귀에 편안하게 들리는데 이러한 구조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건축에 대한 견해에도 좋은 교훈을 준다. 이 언덕의 맨 위에서 보면 너무 높아서 발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급경사면이지만 전망이 뛰어나서 버가모(베르가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푸른 하늘에 순백색의 기둥이 아름다운 이 건물은 페르가몬의 상징인 트리야누스 신전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신전인데 기둥이 늘어선 회랑이 신전의 세 방면을 에워싸고 있다. 트리야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이 시작되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완성되었다.
현재 아름다운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 열주가 복원되어있다. 

육체보다 정신을 중요시했던 고대 종합의료센터 아스클레피온(Asklep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에서 유래한 아스클레피온에서는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이 건설된 기원전 4세기에 이 곳에서 의료가 실시되었다. 외부 공기로부터 영향을 차단하는 회랑,성스러운 물,극장,도서관,진료소,신전 등을 겸비한 당시 최대의 의료 진료소이자 역사상 최초의 완벽한 건강 온천이었다.
유명한 카라카라 황제도 이 곳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온에서도 '성스러운 길'은 당시에는 기둥이 아치 형태로 서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50 m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극장으로 이어지는 이오니아식 열주가 계속되는 북쪽의 콜로네이드(회랑)은 당시에는 지붕이 덮여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멋드러진 열주만 서 있다. 쭉쭉 뻗은 열주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버가모에서는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야했다. 고대 페르가몬 왕국의 아크로폴리스나 아스클레피온같은 유적을 두고 그냥 떠나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서머나로 가야할 시간이 임박하여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엽서 파는 아저씨와 카펫 장수 아저씨의 차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뒤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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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의 현재의 지명은 터키의 알라세히르(Alasehir)이다. 고대 빌라델비아는 루디아 지방의 중앙 고원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던 고대 도시로 교통의 중심지이며 서쪽으로는 버가모와 사데를 잇고 동쪽으로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를 잇는 도시였다.

버가모왕 아탈루스 2세(BC 159~138),곧 필라델푸스(Philadelphus)는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빌라델비아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합성어로써 '형제애'를 뜻한다고 한다. 빌라델비아는 헬레니즘 문화를 동방의 오지까지 전파하는 역할을 한 곳인데 BC 19년에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던 것을 티베리우스 황제가 재건하여 소아시아의 중요한 성읍이 되었다.

 

성경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책망을 받지 않고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사도 시대의 빌라델비아는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인해 성도들은 매우 불안했으며 이 불안은 도리어 이들의 신앙을 더욱 뜨겁게 해 주었다.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교회였으나 안으로는 내실이 있는 교회였는데 그들은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잘 견디어 나갔기 때문에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되었고 이 교회는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본이 되었다. 

 

파묵칼레(히에라볼리)의 북서쪽으로 자리잡은 빌라델비아에 남아있는 성 요한 교회의 유적을 찾아가 보았다.
 

 

전성기 때에 큰 규모였으리라 짐작되는 성 요한 교회는 터키에 자주 발생하는 지진으로 인해 거의 다 무너지고 아래는 돌로, 윗부분은 벽돌로 되어있는 두 개의 육중한 돌기둥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뿐이어서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성 요한 교회는 기둥 두개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교회 유적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담장 바로 옆의 조그마한 주택은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색을 칠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옆 집의 벽은 샛노란 색으로 칠했는데 역시 터키 사람들의 남다른 색채 감각은 알아주어야 한다. 

 

 

성 요한 교회의 바로 맞은 편에는 조그마한 자미(이슬람 사원)가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술이 아름다울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일 것도 같지 않은  이 조그마한 자미의 나즈막한 담장을 타 넘으려던 꼬마애가 카메라에 잡혔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타 넘고 가려던 이 꼬마는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얼음'이 되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던지.... 

 

 

마침 '여름 코란 학교(?)'를 마치고 하교하던 중이었을까? 고만고만한 애들이 팔에 커다란 코란을 안고 자미의 담 위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메르하바'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는 한국사람이 신기한지 얘들이 도리어 우리를 보러 몰려 들었다.

아슬람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긴 하지만 터키의 어린 여자애들은 히잡을 잘 쓰지 않는데 자미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중이었는지 모든 여자애들이 다 히잡을 두르고 있었고 모두다 너무 이뻐보였다. 사진을 찍어주니 미소를 띄며 얌전히 포즈를 취해주었는데 저쪽 편 더 어린 여자아이들은 우리들도 찍어주지....하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도 이리 오라고 불렀더니  담장 위에 다소곳이 걸터 앉아서 아주 얌전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모두 9~10살 내외로 보였는데 모두 양 볼이 터질 듯이 통통한 것이 너무나 귀여웠다. 

 

 

좀 더 어린 아이들은 우리 나라 같으면 1~2학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데도 히잡을 써서 그런지 성숙해 보이고 미모도 돋보였다. 가운데 담장을 뛰어넘던 아이도 같이 앉아서 포즈를 취했는데 제일 앞의 여자 아이는 살짝 나온 똥배가 무지 귀여웠다.  

 

 

코란 학교의 왕언니들인가...? 5~6학년 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들은 어린 동생들에 비해 매우 의젓하고 벌써 여인네의 티가 난다.
크면 모두 다 한 인물 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이쁜 모습들이다. 집에서 싸 온 간식일까? 아니면 자미에서 나눠주는 간식일까?
간식을 먹다가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서 제법 세련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아이가 손에 든 것은 터키의 전통 요쿠르트인 '아이란'이고 갱지같은 포장지에 싸인 빵은 터키의 국민적인 빵 '시미트'이다. 

 

 

교회 건너 그늘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던 연세 지긋한 아저씨들 또한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손자인 듯한 아이가 매우 귀엽다고 했더니 아주 아주 좋아했는데 동서고금을 비롯하고 손자 사랑은 다를 바가 없나보다. 

 

 

카메라를 가지고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필자와 동행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빵집 총각들도 일하다 말고 나와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계속 구경하고 있었다. 터키인의 주식과도 같은 빵 '에크멕'이 진열장에 잔득 진열되어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에크멕은 필자가 지금껏 먹어본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으로 손꼽는 빵이다. 

 

 

빵집에서는 시미트,에크멕 등 터키의 전통 빵을 장작불을 때는 전통적인 오븐을 사용해서 굽고 있었는데
오븐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열기가 장난이 아닌 오븐 옆에 바싹 붙어서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빵집 주인인 듯한 아줌마와 그의 아들도 이방인을 위해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옆에 있던 동행 S가 아줌마를 보고 "촉  규젤~(Very Beautiful)"이라고 하며 손을 둥글게 모으는 제스츄어를 하자 아줌마는 생전 처음 보는 S를 와락...안아주었고
시미트(참깨가 발려져있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대중적인 터키빵)를 종이에 싸서 뭐라...뭐라 하며(가면서 먹으란 뜻인 듯.....)우리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받은 시미트를 한입 베어무니 고소한 맛과 함께 처음 만나는 사람도 이웃같이 대하는 빵집 아줌마의 인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빌라델비아에서는 성 요한 교회의 폐허와 그 근처 동네를 잠시동안 돌아보기만 하고 떠나야했다. 칭찬받는 믿음을 가졌던 빌라델비아의 교회터를 돌아본 것도 인상에 남았지만 이슬람 사원 앞에서 만난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순박하고 정감어린 모습들은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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