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이와 같은 카피를 내세우며 혜성같이 나타나 
80년대 우리나라 스포츠 브랜드를 일찌감치 제패한 '나이키(NIKE)'

나이키는 1972년 빌 보어먼이라는 육상 코치와 필 나이트라는 육상선수가 만나 탄생된 이후로
수없이 난립하는 많은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도 여전한 인기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데....



나이키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의 비결은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에 그 이유가 있기는 하겠지만

날렵한 부메랑이 날아가는 듯한 특이한 로고 '스워시(Swoosh)'야말로 나이키 인기의 일등 공신이 아닐까 생각된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사모트라케의 니케

          
나이키(NIKE)의 브랜드 네임은 '승리(Victory)'라는 뜻인데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전하기 위해 42.195Km를 달렸던 그리스 병사가 기도를 올린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유래되었다.
로마 신화에서 니케는 역시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아(Victoria)여신에 해당되는데 니케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 바로 '나이키'이다.

나이키 창립 당시 회사를 상징할 만한 로고를 찾던 보어먼, 나이트 두 동업자는
포틀랜드 주립대학에 다니던 여대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ine Davison)에게 로고 디자인을 의뢰하는데
캐롤린은 여신 니케의 날개와 옷자락에 흐르는 선에서 영감을 받아
승리를 표현하는 V를 부드럽게 뉘어 놓는 현재의 로고를 만들어 내어 나이키의 열정적인 스포츠 정신과 승리의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때 캐롤린은 나이키 로고 "스워시(Swoosh)" 를 넘기고 단돈 35달러를 받았는데
현재의 나이키 로고 이미지의 가치는 약 100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에 로고를 넘긴 캐롤린은 많은 돈을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살지는 않았을까....?

이후 나이키 탄생과 번창은 시대와 딱 맞아 떨어졌는데 야심에 찬 미국 베이비 붐 세대의 개인주의와
자기 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은 조깅 붐으로 이루어졌고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는 세계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으니
나이키는 스포츠 품목으로는 유일하게 코카콜라에 이어 유명 브랜드 2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캐롤린이 영감을 얻었다는 니케의 온전한 모습을 터키의 에베소(에페스, Efes) 유적지에서 만날 수 있다.

니케는 티탄 신족의 하나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여신 스틱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와 모습이 비슷하지만

단독으로 그려질 때는 날개가 달려 있고 종려나무 잎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어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 있는 니케 신전의 니케(파이오니오스의 니케)는 승리의 상징인 날개가 없다.
그것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가 날아가지 말고 영원히 아테네를 지켜주길 원하는 시민들에 의해 그 날개가 잘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개 잘린 니케는 아테네를 지켜주지 못했는데
터키의 침공을 받아 아테네의 상징 아크로폴리스가 터키 총독 관저로 쓰이기도 하고

1687년 베네치아가 아테네를 침공했을 때에는 베네치아군이 쏜 포탄이 파르테논에 쌓아둔 화약을 폭발시켜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이 날아가 파괴되고 신전 안의 박공부에 붙어 있던 많은 조각상은 산산조각이 나서 오랫동안 쌓여 있었다.
이후 엘긴이라는 사람이 대부분의 조각품을 자기나라 영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이후 조각품 대부분은 대영박물관 파르테논 특별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고 파르테논 신전은 껍데기만 남아 있는 형편이니....
아테네 시민은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자른 댓가를 톡톡이 치른 셈이다.

 


하지만 엄청난 스포츠 마케팅 효과를 창출해낸 일등공신 '에베소 니케'의 아름다운 날개와 부드러운 곡선의 옷자락은

강인한 스포츠 정신에 영향을 미친 덕분인지......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이천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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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의 토목 공사'라고 불리우는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 민족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지도상의 총연장 길이는 약 2,700km이지만 지선까지 다 합한다면 약 6,400km에 이르니

만리를 훌쩍 넘어 만 육천리에 이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길이가 긴 건축물.



중국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에 오르기 위해 
북경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팔달령에 도착했다.

이 팔달령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곳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이며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만리장성에 쉽게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올라타야 한다.

 

 

옛적 사람들은 힘들여 올랐을 만리장성을 요즘은 편안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즐기면서 오를 수 있다.

 

 

 

장성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엄청난 규모의 만리장성이 실감되기 시작하고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발밑이 짜릿짜릿하기도 하다. 

 

 

팔달령 정상의 해발고도는 1015m이며, 산세는 비교적 험준한 편. 

장성 위에 올라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쌓다 죽었기 때문이고

일하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 하고 장성 아래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장성에 올라 계단을 밟아서 헉헉거리고 올라가다 보면 점점 경사가 심해지는데

더 올라가다 보면 아예 계단도 없는 급경사가 나타난다.

윗부분의 계단이 없는 경사에서는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 
올라가기가 정말 힘들어

다리가 약한 사람들이나 연세가 많은 분들은 더 이상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기도 한다.



팔달령의 정상 부분으로 가는 길목에 이르니 사람으로 길이 막혀 더 갈 수도 없이 밀려 있다.

왜 이렇게 길이 막혀있나 하고....겨우 뚫고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것이다.

아니....뭐가 있길래.....?

인파를 뚫고 머리를 들이밀어 보니 줄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 비석 앞에 서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비석에는 '부도장성비호한(不到長城非好漢)'라고 쓰여져있었는데

이것은 '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이란 뜻이니

중국 사람들은 만리장성에 올라보아야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진정한 남자가 되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만리장성에 오르는건가....?

그래서 그런지 사진 한 번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다 중국 '남자'들이었다.
 

 

 

중국에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가는 곳마다 왠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북경 시내 어디를 가든지 사람이 물결로 바글바글....@.@

13억의 중국 인구가 정말 실감이 났는데 여기 만리장성에도 장성이 무너질까봐 걱정될 만큼
많은 사람이 장성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리장성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엄청난 건축물에 대한 감탄보다 장성을 쌓느라고 피와 땀을 흘렸을 수많은 백성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두번째로 떠오른 것은 '하루밤을 지내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이야기였는데

만리장성을 소개한 김에 '하루밤을 지내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의 유래를 여러분들께 전해드릴까 한다.

이 이야기는 http://cafe.daum.net/yn30  에서 퍼와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음을 알려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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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 사회에서 쓰고 있는 '하루밤을 지내도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현재 사용되고 있지요.

그러나 본래 이말은 그 사용함에 있어서 그 내용과 뜻이 달리 시작되었고


그 원래 나온 배경과 그 어원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답니다.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그 스토리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진시왕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을 계획을 세우고거국적으로 많은 석공들과 부역자들을 동원시키면서


그 대(大)역사를 시작해서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었지요.


어떤 마을에 한 젊은 부부가 막 결혼해서 아주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었데요.



그렇게 재미있게 산지 불과 한 달도 다 채우지 못한 때에


남편이 그만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여 끌려가게 되었답니다.


그 때 나라법에 일단 징용이 되면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그

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데요.



그저 인편을 통해서 안부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부역장에 한 번 끌려 들어가게 되면 공사가 끝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죽거나 해야지 그러기 전에는 나올 수가 없었데요.


졸지에 그 젊은 신혼부부는 그만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그 젊고 아리따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는터라 혼자서 살아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답니다.




남편을 부역장에 떠나보내놓고 외롭게 혼자 살고있는 외딴집에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들었어요.


나그네는 여인의 남편 나이 쯤 들어보이는 젊은 사내였는데

싸릿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서며



“갈길은 먼데 그만 날이 저물었고 이 근처에는 다른 인가도 없고 해서 이렇게

아들었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그저 하루 밤만 묵어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정중하게 간청을 드렸어요.



그 여인은 혼자 살고 있기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매정하게 그리 할 수 없었던 것은 주변이 워낙 산세가 험한 데다가


또 인가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 나그네의 사정이 너무도 딱한지라 묵고 가기를 허락했더래요.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는 말을 걸었어요.


“보아하니 이 외딴 집에는 아주머니 혼자 살고있는 듯한데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으신가 보죠?” 하고 물었어요.


여인은 숨길 이유도 없고 해서 남편이 부역가게 된 그 사정을 말해 주었답니다.


그 후 밤이 깊어가자 여인의 사정을 다 알아채고 난 그 사내는

노골적으로 수작을 걸기 시작했고

여인이 쉽사리 허락하지 않자
실랑이가 거듭되었고 사내는 점점 더 안달이 나게 됐데요.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아주머니는 돌아 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 정조를 지킨들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직 당신은 너무도 젊지 않습니까?

내가 당신을 평생 책임질 터이니

나와 함께 이 곳을 떠나
멀리 다른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같이 삽시다 .”



사내는 별별 수단으로 여인을 꼬드겨 보았지만 여인은 냉냉하기만 했데요.
 

여인이 완강히 거절하면 할 수록 사내는 더 열이 나서 점점 더 적극적으로 달려 들었데요.



 

 

 


여인이 생각하기를 '깊은 이 야밤에 더욱이 인적이 없는 이 외딴집에서 나 혼자 절개를 지키겠다고 저항해 본다 한들



도저히 저 힘센 사내를 어떻게 당해 낼 것인가.....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겠구나'하고 또 생각하기를

'내가 살아나려면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는 수 밖에 없겠구나'하고 체념하였데요.


그리고 여인은 이렇게 말을 하였드래요.


“내가 손님이 원하는 뜻을 받아 드리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라고 말했드래요.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그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것이니말해 보라고 했어요. 그 때 여인은 말하기를.......



“내가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고 잠시라도 함께 하고 산 부

부간의 의리가 있으니 그냥 당신을 따라 나설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터이니

날이 밝는대로 제 남편을 찾아 가서

이 새 옷으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 주시고

그 증표로 남편의 글 한 장만 받아와 주셨으면 하는 부탁입니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 주는 심정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혀 드리고 싶어서 부탁하는것이니

그리만 해 주신다면
제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당신이 저의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저는 평생동안 당신을 의지하고 서방님으로 모시고 살 것입니다.



제 부탁을 들어 주시겠다고 지금 약속을 먼저 해 주신다면

오늘 밤 제가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라고 말을 맺었데요.


 


 


나그네는 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또 여인의 마음씨가 너무도 가상한지라

참 마음씨 고운 여인을

얻게 되겠구나 하고 내심 쾌재를 부르며 말하기를


“날이 밝는 대로 즉시 그리 해 주겠노라”고 약속하여 주었데요.

그 여인은 그 날 밤 그 사내를 받아 드렸고 그 사내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야수와 같이 달려들어
굶주렸던 그의 욕정을 만끽하게 채운 후 곧바로 골아 떨어졌데요.



 

 


아침에 누가 흔드는 기척에 사내는 그만 달게 자던 잠을 깨었어요.
 
눈을 떠 보니 어제 밤에 잠자리를 같이 했던 그 여인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어요.


밝은 아침 햇살에 비치는 그 여인을 다시 보니

밤에 보던 때보다 더 젊고 절세의 미모에다

그 고운 얼굴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니
천하의 미색 양귀비가 따로 없다고 느껴졌데요.
 
그 사내는 그만 저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다는 황홀감에 도취해



간밤의 피로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어제 밤에 한 약속을

한시라도 빨리 이행하기 위하여 길 떠날 차비를 하였드래요.




여인은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롱 속에 있는 새 옷 한 벌을 꺼내 보자기에 싸더니 그 사내의 괴나리 봇짐에 챙겨 넣어 주는 것이었지요.



사내는 잠시라도 그 녀 곁에서 떨어지기 싫었지만

약속한 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급해졌데요.


하루라도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와서 평생을 그 녀와 해로하여야겠다 는일념으로

부지런히 길을 재촉했답니다.



 

 


드디어 부역장에 도착하게 됐고 그 사내는 공사판 감독관을 찾아가그 여인의 남편과의 면회를 신청하면서 그 감독관에게 말했데요.


그 여인의 남편에게 옷을 갈아 입히고 꼭 그 사람으로부터

한 장의 글을 받아 가야 한다는 사정 이야기를......
 
그 감독관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말하기를“옷을 갈아 입히려면 공사장 밖으로 그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비우면 아니되므로 옷을 갈아 입는 동안

누가 그 사람대신 그 자리를 맡아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공사장의 규칙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옷을 갈아 입을 동안에

당신이 잠시 그리해 줄 수 있다면 당신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오.”



사내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져 그리 하겠노라고 하였어요.


그래서 사내는 그 감독관을 따라 들어가 여인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고

가져 온 옷 보따리를 여인의 남편에게 건네주었어요.



여인의 남편이 감독관을 따라 옷 보따리를 들고 나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사내는 그 여인의 남편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데요.



 

 


여인의 남편은 아내가 보내 준 보자기를 펼쳤어요.


거기에는 자기의 새로 지은 옷 한벌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어요.


자기를 이토록 생각해주고 좋은 새 옷을 지어 보내준 아내의 정성에


눈물을 훔치며 저고리를 들어올려 입으려 하자 옷 속에서 편지같은 것이 떨어졌어요.


펼쳐 보니......


“당신의 아내 해옥입니다. 당신을 그 공사장에서 끌어 내기 위하여  이 옷을 전한 남정네와 하루 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 하루 밤을 같이 자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 입는 즉시
곧바로 저의 집으로 돌아오시고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없으시거나 허물을 탓하시려거든



그 남자와 다시 교대하여 그 공사장안으로 들어 가십시오.”


남편은 생각하기를 자신을 부역장으로부터 빼내 주기 위하여



외간 남자와 하룻밤을 자기까지 하면서 그 어려운 일을 해 낸 아내를 용서하고


그녀와 평생 같이 오손도손 사는 것이 백 배 천 배 낫다고 생각되었고,


생각하기를 어느 바보가 '만리장성'이 완공되어져야 풀려 날 수 있는

부역장으로 다시 들어가 교대를 해 주겠는가? 하고
 
그 남편은 곧장 옷을 갈아 입는 즉시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가 아들 딸 낳고



현명한 아내 덕분에 행복하게 여생을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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