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드라마를 잘 안 보지 않던 필자, 
요즘 [닥.본.사]하고 있는 드라마는 바로 선덕여왕.

선덕여왕의 주 무대인 경주에 살고 있는 필자인지라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모두 너무나 친근하기만 하다.

선덕여왕 6회에는 진평왕이 연회에서 여흥을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진평왕이 "자~! 이제는 내 차례구나..주령구를 던져라!" 고 명하니 시녀는 희한한 모양새의 주사위를 왕 앞에서 굴린다.
시녀가 주사위를 굴리자 나온 글씨는 '음진대소 (飮盡大笑)'.


"음진대소라... 하하하....자, 모두 잔에 술을 따라라 !"
진평왕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다 마시곤 껄껄 소리내어 크게 웃자 좌중의 신하들도 따라서 크게 웃는다.


드라마에서 나온 희한한 모양새의 주사위는 바로 '주령구(酒令具)'이다.
1975년 경주 안압지 발굴시에 출토된 참나무 주령구에는 
14면 각각에 술 마실 때의 다양한 벌칙이 쓰여져 있어서 우리의 시선을 끈다.

주령구를 보는 박물관 관람객들은 특이한 모양새와 면마다 적힌 벌칙을 보고 신기해 하는데
왜 하필 주사위를 14면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것은 기존 주사위가 6면 밖에 없으니 좀 더 많은 면이 나오도록 궁리하다
정육면체의 모서리 8개도 각각 면이 되게 깎아서 14개의 면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고
정육면체 주사위를 가지고 수많이 던져 놀다가 닳아버린 모서리들에 각각 면을 만들어 글자를 써넣다보니
6+8=14 이렇게 14면을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주령구의 각면에는 쓰인 다양한 벌칙들을 보면 그 당시 신라인들의 풍류적인 음주 문화를 엿볼 수 있는데 
4각형인 여섯면에 쓰인 벌칙을 보면.....

1.금성작무 (禁聲作舞) : 소리없이 춤추기
2.중인타비 (衆人打鼻) : 여러사람 코 두드리기
3.음진대소 (飮盡大笑) : 술 한잔 다 마시고 크게 웃기
4.삼잔일거 (三盞一去) :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5.유범공과 (有犯空過) : 덤벼드는 사람이나 별난 짓으로 골려도 가만히 있기
6.자창자음 (自唱自飮) :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6각형인 여덟 면의 벌칙 또한 재미있기 그지 없다. 


7.곡비즉진 (曲臂則盡) : 팔뚝을 구부려 다 마시기
8.농면공과 (弄面孔過) : 얼굴 간질러도 꼼짝 않기
9.임의청가 (任意請歌) :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10.월경일곡 (月鏡一曲) : 월경 한 곡조 부르기 (달이란 여자에 관한 내용일 듯..)
11.공영시과 (空詠詩過) : 시 한 수 읊기 
12.양잔즉방 (兩盞則放) : 술 두 잔이면 즉각 마시기
13.추물막방 (醜物莫放) :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14.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 스스로 괴래만(밤 늦게 곤드레 되어 들어오는 모양새)으로 부르기


이 주령구를 던지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을 신라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날에도 이런 14면체 주사위를 만들어 던지며 술자리를 한다면 얼마나 풍류가 깃든 모임이 될까...
14개의 벌칙을 오늘날에 맞게 현대적으로 살짝 바꿔서 친구들과 한잔 하실 때 써보시길 바란다.

[현대판 주령구 벌칙]
1.금성작무 (禁聲作舞) : 음악없이 춤추기
2.중인타비 (衆人打鼻) : 옆 사람한테 코맞기
3.음진대소 (飮盡大笑) : '원샷'하고 크게 웃기
4.삼잔일거 (三盞一去) : 석잔 '원샷'
5.유범공과 (有犯空過) : 통과
6.자창자음 (自唱自飮) : 노래 부르고 '원샷'
7.곡비즉진 (曲臂則盡) : 옆사람과 '러브샷'하기
8.농면공과 (弄面孔過) : 간지럼 참기
9.임의청가 (任意請歌) : 다른 사람 노래 시키기
10.월경일곡 (月鏡一曲) : 달 들어가는 노래 한곡 부르기
11.공영시과 (空詠詩過) : 시 한 수 읊기
12.양잔즉방 (兩盞則放) : 받은 술잔 남겨놓지 말고 빨리 돌리라.
13.추물막방 (醜物莫放) : 못난이 흉내내기
14.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 최신 유행가 부르기






신라인의 풍류와 놀이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귀한 유물 '주령구'
현재 경주 국립 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되어 있는 주령구는 사실 '복제품'이다.
1975년 출토된 진품은 '안타깝게도' 유물 보존 처리도중 전기 과열로 일순간에 불타 버렸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출토된 적 없는 단 하나의 주령구.....
단 한순간의 실수로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유물을 잃어 버리다니....
천년 이상 안압지의 뻘 속에서 그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가 출토되자 마자 소실되어 버린 이일은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존 수준을 다시 한번 짐작케 하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천만 다행으로 발굴 직후 남겨둔 전개도와 컴퓨터 단층 촬영,정밀 사진을 통해 재현을 해내어 다시 박물관에 전시하긴 했지만
숭례문의 예처럼 한번 소실되어 복원된 문화재는 더 이상 조상의 손때가 묻은 귀한 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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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더해 갈수록 점점 흥미진진해져 가는 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이 이제 계림으로 당도하게 됨으로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월, 화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화랑들의 등장 씬....^^

낭천제 ,낭장 결의 등 화랑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을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롭고
미실 주위의 여러 화랑이나 카리스마 짱인 국선 문노를 비롯해
김유신,김춘추 등 '꽃미남' 화랑들이 등장할 예정이라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보고 있다.


화랑들의 등장 씬을 찍은 세트장 역시 신라 밀레니엄 파크 내에 조성되었는데
무술을 연마하는 '화랑 연무장'은 드라마에서 이미 간간히 소개되었고
곧이어 '김유신 화랑 산채'가 시청자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될 예정...

방송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김유신 화랑 산채'를 미리 돌아보았다.


미실궁과 화랑 연무장 사이에 자리잡은 김유신 화랑 산채.
아직 드라마 촬영 외에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바리케이드를 밀고 안내해 주시는 홍연무 문화 유산 해설사님.


야산 바로 아래에 둥글게 조성되어 있는 산채는 아늑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김유신의 화랑 시절 관련 장면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로 촬영된다고 한다.


산채의 조감도를 보시면 구조가 어느 정도 감이 잡히실 듯...
(조감도는 선덕여왕 홍보 블로그 http://blog.naver.com/seonduk 에서 빌려왔습니다.)


8동의 건물을 입구문에서 오른쪽 부터 차례로 소개하자면 오른쪽이 마굿간, 그 다음이 말먹이 창고이다.



먹이 창고 등을 비롯한 모든 건물의 지붕은 너와로 이어져 있다.



말목들이 가로질러 매어져 있지만 촬영 중이 아니라서 말은 여기에 없다.


문화 유산 해설사님이 먹이 창고 옆으로 난 통로로 안내를 해 주셨다.



통로 위에서 보면 반원으로 된 공간이 보이고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말들이 대기하는 곳이 있다.



반원 모양의 말 대기 장소엔 공연을 준비하는 말들이 대기하고 있다.
바로 마주 보이는 문으로 나가면 화랑 연무장으로 가게 되는데 일반인들은 통제가 되는 통로이다.



세상에 말처럼 섹시하기 그지없는 동물이 또 있을까.....너무나 잘 생긴 말들의 모습에 넋이 나가서
가까이 가서 말들을 찍으려고 하니 말은 스트레스 받으면 깨물기도 하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신다.


다시 계단으로 올라와서 먹이 창고 바로 옆 건물은 무기고로 쓰이는 건물이다.


조감도와 비교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무기고와 붙어 있는 큰 건물은 바로 화랑 산채의 본채이다.



입구 문에서 보면 바로 마주 보이는 건물이 본채인 것이다.



본채라고 명명해 놓았으니 이곳에서 가장 많은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나..생각된다.



바로 정면에서 보니 햇살이 너무 강해서 지붕 아래가 그늘져 잘 보이지 않는다.


조감도를 보시면 사진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듯...


산채의 건물들은 통나무를 대충 도끼로 쪼아서 밧줄로 얼기설기하게 묶어서 기둥을 세우고 



거칠게 다듬은 판자로 벽과 바닥을 마무리하고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벽은 황토로 바르고 나뭇가지와 대나무로 창틀을 만들었는데
화랑들의 무술 단련 기구 같은 소품은 할일이 없어 얌전히 옆으로 누워 있다.



저 문을 삐걱....열고 화랑들이 칼을 들고 나와주었으면 좋으련만....(그럼 싸인을 받겠지...? ㅎ)



본채에 이어서 왼쪽은  제1 별채, 오른쪽은 제2 별채이다.



특히 제 1별채는 2층으로 된 구조여서 본채보다 더 웅장해 보인다.



앞에서 바라 보니 어쩐지 극기 훈련장에 있는 시설과도 흡사해서
밧줄이라도 붙들고 뛰어내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든다.


역시 조감도와 비교해 보는 쏠쏠한 재미...^^


제 1별채에는 앞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가운데 탁자를 두고 빙 돌아가며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붙어 있는데 이곳에서 이루어질 화랑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쉼터 옆의 건물은 창고라고 하는데 어쩐지 외국의 통나무집 같은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인지...



문화 유산 해설사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한바퀴 돌아보고 화랑 산채를 나서니
이 세트장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상당히 궁금하기만 하다.
미실궁과 김유신 화랑 산채를 필자와 함께 돌아본 블로거님들은 
앞으로 전개될 드마라 '선덕여왕'을 더욱 실감나게 시청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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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이 끝난 월화 드라마 시장을 허리케인같이 강타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

남성들만이 전유하던 왕의 자리를 공주의 신분으로 도전하여 성공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일대기를 화려한 색채감과 풍성한 에피소드 등으로 펼쳐갈 예정인데....


이제 겨우 초반일 뿐인데도 선덕여왕 시청에 대한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선덕여왕의 최대 정적으로 종횡무진 맹활약을 하는 미실 고현정의 화려한 등장으로 초반 세몰이를 하더니
아역 배우 남지현 및 외국인 단역 배우의 출연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3,4회에서도
시청률 20%를 가뿐히 제끼는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평소에 사극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는 아니었으나 선덕여왕은 방영 이전부터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다렸는데 
이는 국내 드라마 중 처음으로 신라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주 무대는  바로 계림(경주).
드라마의 많은 부분이 촬영되는 미실궁과 화랑 산채, 화랑 연무장 등의 오픈세트가
신라 밀레니엄 파크 내에 개장되어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드라마에서 타이톨 롤인 선덕여왕 못지 않게 강력한 캐릭터는 바로 고현정이 열연하는 미실.
왕족과 화랑들을 비롯한 서라벌의 뭇 남성들을 손아귀에 넣고도 모자라 황후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신라 시대 최고의 팜므 파탈 미실의 존재는 주인공인 선덕여왕 못지 않는 캐릭터이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선덕여왕보다 미실이 더 어울리지 않느냐는 네티즌들의 많은 의견이 있었던 것처럼
미실은 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데......
드라마 중 많은 씬의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실궁'이 궁금해졌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에서도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미실궁'....
'천년 고도'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미실궁 세트장은 지난 5월 14일에 오픈했다.



대나무 숲 저편으로 미실궁의 솟을 대문이 보인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위엄있게 서있는 홍살문 아래로 이어진 무지개 다리가 미실의 궁으로 인도한다.


무지개 다리 앞에 서서 궁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서슬이 시퍼런 미실이 걸어나올 것 같다.



잠시 정면에서 비껴 측면에서 연못과 무지개 다리를 살펴 본다.
아직 개장한지 얼마 안 되어 수련이 조금 엉성하게 자라있는 것이 맘에 걸리는데
드라마의 전개와 함께 이 연못의 수련도 점점 자라 무성해지겠지.


뒤로 좀 더 물러나 무지개 다리와 미실궁을 함께 잡아 보니 훨씬 더 안정감 있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무지개 다리를 지나면 높은 기단 위에 미실 본궁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계단을 올라 본궁 바로 앞에 서니 기둥과 인방의 화려한 장식이 눈에 확 들어온다.


서까래와 인방, 설주마다 화려하고 세밀한 문양을 그려놓았고


건물의 색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써서 위엄을 더해 주었다.
 


본궁에 이어진 건물은 제 1별궁인데 드라마에서 미실이 측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주로 별궁에서 이루어진다.


본궁의 가운데 문을 밀고 들어서니 실내는 아무런 장식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문화유산 해설사이신 홍연무 선생께서 특별히 별궁 내부까지 안내해 주셔서 자세히 돌아볼 수 있었다.


별궁 내부도 천정과 설주, 인방에는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었으나 그외에 별다른 장식은 없었고 약간 썰렁하기까지 하다.드라마 촬영을 할 때마다 컨테이너 트럭에 커튼,카페트 등 소품과 기자재들을 잔뜩 싣고 와서 설치하는데

촬영이 끝나면 다시 모두 수거해서 차에 싣고 가버린다고 한다.


다른 드라마에 활용도 해야 하고 다음 촬영까지 그냥 두면 유실 우려도 있기 때문에 다 가져가는 것이리라..



실내에서 나와 본궁 기단 위에 미실궁 대문쪽으로 한바퀴 휘....둘러 본다.


북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은 제2 별궁이다.


 바로 반대편 제3 별궁에서 잡으면 아주 그림이 좋다.



제2 별궁은 방이 없이 회랑과 누각으로만 이루어진 건물이다.


제2 별궁의 누각 위에 서서 아래 연못이나 본궁, 맞은 편 제3 별궁을 바라 보는 정경이 평화롭다.


제2 별궁의 누각 바로 맞은 편 무지개다리 너머로는 제3 별궁이 자리잡고 있다.


제 3별궁 또한 ㄷ자 모양의 회랑과 누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연못을 양쪽에 두고 긴 회랑이 ㄷ자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넓고 큰 회랑은 시원하기도 해서 앞으로 연회나 결혼식 장소로 대여하지 않느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미실궁 세트장은 그다지 넓지 않으나 드라마에서의 좋은 그림을 위한 공간들이 구석 구석 숨어 있다.


산으로 난 협문에서는 배역들이 드나들거나 문 뒤에 서서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들을 찍는다.



병사 대신 문화해설사님을 세우고 한컷 찍어 보았다.


협문이나 정문이나 모두 붉은색으로 통일미를 주고 문양도 통일미를 주었다.


실내와 실외에 놓인 이색적인 모양의 등대도 눈에 뜨이고.....


기단석에서 솟아 나와 구불구불 흐르는 물길도 이색적이다.

미실궁에 대한 자상한 안내와 해설을 해주신 문화유산 해설사 홍연무 선생님께서 감사를 드리며
선덕여왕의 또 다른 세트장인 '김유신 화랑 산채'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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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성대...국보 31호로 경주시 인왕동에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천문대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술병 모양의 이 첨성대는

높이 약 9.5m로 원주부는 총 27단으로 되어 있으며 총 석재수는 음력의 일년의 날 수와 같은 362개이다.

13단부터는 내부가 비어 있어서 가운데 난 출입구를 이용해서 사다리를 타고 아래 위로 오르내렸을 것이라 추측된다.

  

 

첨성대에 관한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에'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것이 처음이고

이어 고려사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보다 자세한 기록은 기록은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첨성대조에

"첨성대는 경주부의 남쪽 월남성에 있는데당태종 정관 7년 계사년(癸巳年:633)에 신라 선덕여왕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원형이다.

높이가 19.5척, 위의 둘레가 21.6척, 아래 둘레가 35.7척이다.

가운데를 통하게 해서 사람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첨성대 안을 통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사가 있다.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는 기록은 그밖에도 서운관지나 문헌비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첨성대에 대해 현대적인 해석을 한 사람은일제 강점기에 조선기상관측소에서 근무했던 와다[和田]라는 일본인인데

1910년에 그는 '조선관측소 학술보고'의 '경주첨성대의 설'에서

첨성대는 그 위에 목조가구물을 세우고 혼천의같은 관측기를 설치했던 천문대였으리라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 나라 학자인 홍이섭도 신라에서는 독자적인 천문 관측을 하고 있었으며

그 증거로 경주 첨성대를 들 수 있고 이 것은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고 평가했다.

또한 첨성대에 대해 처음으로 정확히 실측하고 연구한 홍사준은

첨성대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 27단의 상부에 반듯이 누워 중천을 쳐다보며 관측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박동현도 첨성대가 개방식 돔 형태를 가진 천문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같이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견해는 8.15 해방전부터 1960년대까지 정설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첨성대가 과연 천문대였는가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첨성대가 실제로 개방식 돔으로써 관측에 불편한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어 상설천문대로 보기 어렵다는 학설이 있으며

실제로 관측에 사용된 것 보다는 상징적인 탑이라고 주장하는 학설도 있다.

또한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의 모양을 본떠 만든 제단이라고 주장하고

토속 신앙에 따른 농업신인 영성을 숭배하기 위한 제단이었다고 추측하는 학설도 있다.

이와 같이 첨성대에 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데

구조적으로 볼 때에 오늘날의 천문대와는 다르다 하겠지만

소박한 의미의 천문 관측대라고 할 수 있다는 개념이 지배적이다.

 

첨성대가 천문대이든 아니든 첨성대는 신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동부 사적 지구 부근을 돌아보는 사람들 중에선

첨성대 앞에선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담장 밖에서(사실 담장 밖에서도 거의 다 보인다) 대충 둘러보고 가는 사람도 있고

안으로 들어가서 슬쩍 보고는 "흠....겨우 이런 거였어...첨성대가...?"라며 실망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  

너무나 소박한 외관으로 인해 소흘히 여겨지는 곳.한 번 휘익 돌아보고는 다른 유적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중간 기착지....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기에 관심을 받지 못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숭례문이

우리 눈 앞에서 소실되고 난 뒤에 그 아름다움과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에 다시 한번 첨성대의 아름다움과 귀함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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