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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들었다. 북쪽에서는 불어오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이지만

따스한 남쪽나라(?) 경주에서 11월 중순은 가을의 절정, 일년중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다.

 


 

 

토요일 흐리고 비가 와서 단풍 구경을 나서지 못해 아쉬웠는데 일요일이 되니 날이 화창해진다.

점심 후  집에서 나와 느긋한 발걸음으로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인근 옥산서원으로 향했다.

경주에서 출발하여 안강 읍내를 벗어나 28번 국도 호국로를 타고 가다 화물차 계측소 지나서 우회전,

양쪽에 은행나무가 줄서 있는 옥산서원길로 접어들어 2km쯤 진행하면 옥산서원이 있는 옥산2리이다.


 

 

 

시골 내음이 풍기는 마을, 옥산2리. 정겨운 벽화길에도 가을햇살이 아련하게 비추인다.

 


 

 

마을 벽화를 보며 길을 걸어가는데 머리 옆으로 뭐가 툭~!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놀라 옆으로 비켜 보니 감나무에서 농익은 홍시감이 저절로 바닥에 떨어져 묵사발이 되었다.

1/10초만 빨리 떨어졌더라도 머리에 홍시 세례를 받을 뻔 했다. 무셔라.....!

 


 

 

옥산서원 바로 입구에 이르러 보니 서원 뒷산의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

소나무 보다 잡목이 더 많은 뒷산은 마치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은 듯 하다.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에 옥산서원과 인근 독락당도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72년에 세운 서원이다.

경내에는 사당인 체인묘, 구인당,동재(민구재), 서재(암수재),무변루, 역락문, 어서각,회재선생 신도비들이 있다.

 


 

 

무변루를 거쳐 중심 건물인 구인당 앞에 이르니 한무리의 사진가들이 모여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동호회원 중 한분이 모델이 되어 도포와 정자관을 쓰고 옥산서원 현판 아래 서니 

사진가들이 일제히 셔터를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하기 그지없다.


 


 

서원도 서원이지만 이곳 옥산서원은 서원 옆 너럭바위처럼 펑퍼짐한 암반이 장관이다.

회재 이언적이 '세심대(洗心臺)'라 이름하였다는 이곳에서 정조 때 초시도 치뤄졌다고 한다.   


 

 

 

독락당에서 흘러온 자계천은 세심대를 만나 폭포를 이루고 도랑처럼 깊에 파여진 소, 용추를 만들었다.

때마침 어제 비가 온지라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옥산서원에서 회재 선생의 사랑채인 독락당으로 가려면 자계천 반석 위에 걸쳐진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영화 '역린'중 삿갓을 쓴 을수(조정석)과 월혜(정은채)가 만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외나무다리는 흔들리지도 않고 제법 든든하지만 발 아래 계곡물을 내려다보면 저절로 오금이 저려온다.

발 아래 흐르는 물을 애써 외면하며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이어지는 독락당의 가을 속으로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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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이란 1972년부터 유네스코(UNESCO)에서 인류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특별히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놀라운 것은 이런 세계문화유산이 좁디좁은 마카오에만 총 30군데가 있다는 사실이다중국문화와 포르투갈 문화가 잘 조화된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동서양 문화의 통합과 공존의 살아있는 증거물로써 건축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매우 의미가 깊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카오 여행 자료를 찾는 분들을 위해 여행 중 돌아본 세계문화유산 30곳을 간략하게 소개하오니 동서양 문화의 조화를 이룬 마카오 세계문화유산들을 앉은 자리에서 즐감하시길 바라오며......

 

   

1. 아마사원 (A-ma Temple)  

 

 

아마사원은 마카오라는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원에는 신상제일(神山第一殿), 홍인전(弘仁殿) , 관음각(觀音閣)과 불상등이 있다. 각기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는 신전이 있는 아마사원은 각각 유교, 도교, 불교뿐만 아니라 다수의 토착 신앙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이다.

 

 

2. 바라 광장

 

 

아마 사원 앞에 자리잡고 있으며 내항을 마주하고 있다. 광장의 앞면은 포르투갈풍의 모자이크 무늬로 조성되어 있다. 물결 무늬로 디자인된 광장의 표면은 바다의 물결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고, 마치 흐르는 물의 느낌과 해변의 매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3. 무어리쉬 배럭(Moorish Barracks)

  

 

1874년 건축된 무어리쉬 배럭은 마카오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인도 고아(Goa)로부터 파견된 인도 고아인 용병을 수용하기위해 사용되었다. 지금은 마카오의 해상 행정국의 본부를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모습에서는 무굴제국의 요소가 가미된 신 고전주의 양식이 돋보이고 있다

 

 

  

4. 만다린 하우스 (Mandarin’s House)  

 

 

1869년에 건축되었고,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 정관잉(鄭觀應)의 고택이었으며, 여러가지 모양의 창과 지붕, 집의 상부구조, 건축 재료 등은 주로 중국 전통방식으로 설계 되었다. 그러나 회색 벽돌의 사용과 인도 스타일의 천정, 문틀, 창문 개폐방식 등과 같은 다양한 이국적인 양식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5. 릴라우 광장(Lilau Square)

 

 

릴라우의 지표에서 나는 물은 예전 마카오의 주요 수원이었다. 유명한 포르투갈의 속담중에 릴라우의 물을 마셔본 사람은 결코 마카오를 잊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에 대한 마카오인의 애정은 각별하다. 이지역은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서 거주했던 지역 중 하나다.


 

6.성 로렌스 성당 (St. Lawrence’s Church)

 

 

마카오의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인 성 로렌스 성당은 원래 16세기 중반에 예수회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현존하는 모습은 1846년의 재건된 것이다.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카오 반도 남쪽 해안에 자리잡은 이곳은 포르투갈 선원들의 가족들이 선원들의 안전 귀항을 기원하며 기도 드리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은 펑순탕 (Feng Shun Tang) - 바람을 잠재우는 곳 - 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성당의 주변 지역은 부촌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를 두고 성당의 영광 때문에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성당 외부 장식은 바로크의 영향을 받은 신 고전주의 스타일로 설계되었다.

 

 

7. 성 요셉 신학교 및 성당 (St. Joseph Seminary and Church)

 

 

 

 

이 신학교는 1758년에 성바울 대학과 함께 건축되어 중국과 일본 등 각지에 다수의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이 신학교는 대학과 동일과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을 양성 했으며, 1800년대 포루투갈의 여왕인 도나 마리아 1세로 부터 사명감으로 뭉친 집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신학교 옆에 있는 성 요셉 성당은 1758년에 건축되었으며, 중국에서의 바로크 양식이 적용된 대표적인 예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은 2001년 유네스코에서 발간되는 알틀라스 먼디알에 소개 되기도 했다.

 

 

  8. 성 아우구스틴 광장 (St. Augustine’s Square)  

 

 

 

이 곳은 성 아우구스틴 성당과 돔 페드로 5세 극장, 성 요셉 신학교 및 성당 그리고 로버트 호 퉁 경의 도서관과 같은 주목할 만한 유적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조약돌로 된 포장 도로는 전통적인 포르투갈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9. 성 아우구스틴 성당 (St. Augustine’s Church)  

 

 

 

1591년에 스페인 아우구스틴(Augustinian) 사제단에 의해 신학교로 건설되었으며, 부활절때, 도시를 가로지르는 유명한 행진을 매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 사제들은 비가 올때마다 지붕을 중국 야자나무 잎으로 덮었다고 한다. 이때, 바람에 야자나무잎의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용의 수염처럼 보였다고 해서 이 성당의 별명이 롱송뮤” (龍鬚廟) - 긴 수염을 가진 용의 사원이라는 뜻 - 라고 도 한다

 

 

10. 돔 페드로 5세 극장 (Dom Pedro V Theatre)

 

 

300석 규모의 이 극장은 1860년에 지어졌다. 그 당시에는 극장의 주요 부분만이 지어졌고, 1873년에 와서야 신고전주의 풍의 정면까지 완성되었다. 이곳은 중국에 최초로 설립된 서양 스타일의 극장으로, 오랜 기간 마카오인의 문화적 상징물로서 각광을 받았으며, 현재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11. 로버트 호 퉁경의 도서관 (Sir Robert Ho Tung Library)  

 

 

 

 

이 빌딩은 원래 1894년 이전에 지어졌으며, 도나 캐롤리나 쿤하(Dona Carolina Cunha)의 거주지였던 곳이다. 그러나 1918년에 홍콩의 부유한 사업가인 로버트 호 퉁경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어 그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1955년에 로버트 호 퉁경이 별세 하였을 때 그의 유언에 따라 마카오 정부에 공용 도서관으로 사용되도록 기부되었다.

 

   

12. 릴 세나도 빌딩 (“Leal Senado” Building)

 

 

1784년에 마카오 시 의회 건물로 지어졌으며, 지금까지 이러한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 ‘릴 세나도(Loyal Senate)’라는 이름은 신의 도시 마카오, 이보다 위대한 것은 없으니라고 1654년 포루투갈의 왕 돔 존 4세가 부여한 것에서 차용한 것이다. ‘릴 세나도빌딩은 신 고전주의 디자인의 장식과, 원본 그대로의 벽과 뼈대, 뒤뜰의 정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건물의 1층에는 포르투갈 스타일의 작은 도서관과 작은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의전을 진행하던 회의실도 자리하고 있다.

 

 

13. 세나도 광장 (Senado Square)

 

 

세나도 광장은 초창기부터 이어온 마카오의 중심지로서, 현재에도 많은 공식적인 행사와 축제 장소로서 각광받고 있다. 광장 양면의 건물들은 파스텔 빛의 신 고전주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유럽의 우아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관광객들과 현지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4. 삼카이뷰쿤 (Sam Kai Vui Kun) ; 콴 타이 사원 (Kuan Tai Temple)

 

 

이 사원은 최근에는 성 도미니크 시장으로 불리는 오래된 중국식 시장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 곳은 상인들의 회의 장소였으며 현재 중국인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서 이용 되고 있다. 서양풍의 건축물들과 이국적인 광장으로 이름난 중심부에 가장 중국적인 사원이 오랜 시간 동안 본래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2가지 문화의 공존과 번영이 낳은 마카오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 주고 있다.

 

 

15. 자비의 성채 (Holy House of Mercy); 자애당

 

 

자선 사업을 위해 지어진 이곳은 1569년 마카오의 첫 주교에 의해 설립되었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자선 단체를 모델로 만든 이곳은 마카오의 첫 서양식 병원으로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다양한 사회 복지에 대한 기초를 만든 곳이다. 신 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옆문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에는 선교와 관련한 다양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16. 대성당 (Cathedral) 

 

 

이곳은 1622년에 타이파(진흙과 갈대로 구성된 건축재료)로 지어진 카톨릭 성당이다. 1780년의 재건축 동안, 그동안에 지켜져 오던 종교적인 행사들은 자비의 성채의 옛 예배당으로 옮겨 졌다. 건물의 정면은 기둥과 두개의 종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외벽은 상하이 석고로 발라져 모놀리식 외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7. 대성당 광장

 

 

대성당 앞의 광장은 종교적 이유로든 역사적 이유로든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는 곳이다.

 

 

18. 로우 카우 맨션 (Lou Kau Mansion)

 

 

188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저택은 도시 곳곳에 고급 저택을 소유했던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 '로우 카우'의 가족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이 오래된 저택의 위치는 과거크리스천 도시의 중심지인 세나도 광장과 대성당 광장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다양한 사회적 단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 스타일의 청회색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이층 집으로, 후기 청 왕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인 시관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19. 성 도미니크 광장

 

 

성도미니크 성당 앞에 자리잡고 있는 광장은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광장 주변은 음식, , 화장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20. 성 도미니크 성당 (St. Dominic's Church)

 

 

 

본래 멕시코의 아카풀코에서 건너온 3명의 스페인계 도미니카 사제들에 의해 1587년에 건축되었으며, 이 성당은 성녀 로자리의 형제애 (Brotherhood of Our Lady of the Rosary)라는 곳과 이어져 있다. 중국땅에 발간된 첫 포르투갈 신문 (1822912일자 [차이나 삐])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건물 뒷편의 종탑은 작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300점을 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다.


 

21. 성바울 성당의 유적(Ruins of St. Paul's)

 

 

 

성바울 성당의 유적은 1602년부터 1640년에 지어졌고, 1835년에 훼손되었던 마터 데이 성당의 정면과 성당 옆에 위치해 있던 성바울 대학의 잔해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옛 마터 데이 성당과 성 바울 대학, 그리고 몬테 요새는 모두 예수회의 건축물로 마카오의 아크로폴리스(성채)”로서 여겨졌다. 근처에 성 바울 대학의 오래된 고고학적 유물들이 그들의 정교한 학술 프로그램과 함께 극동에 지어진 첫 유럽풍의 대학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오늘날의 성 바울 성당의 유적지는 도시의 제단으로서의 상직적인 역할을 한다.

 

 

22. 예수회 기념 광장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1920년돠 1930년 사이에 건설되었으며 그중 두개의 건물은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23. 구 시가지 성벽 (Section of the Old City Walls)

 

 

1569년 초기부터 포르투갈인들은 마카오 주위에 성벽을 쌓기 시작 하였다. 이는 포르투갈인들이 외부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아프리카나 인도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독특한 것은 현지의 재료와 기술을 혼합하여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완성하였다는 것이다. 진흙, 모래, 볏집, 자갈, 귤껍질등을 혼합한 춘암보 (Chunambo)는 성벽의 주재료가 되었다.

 

 

 24. 나차 사원 (Na Tcha Temple)

 

 

 

 

1888년에 지어진 이 사원은 당시에 급속도록 퍼지고 있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나차에 바쳐진 곳이다. 성바울 성당의 유적 바로 뒷 편에 위치하고 있는 나차 사원은 마카오가 중국과 서양의 문물이 공존하면서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며 다양한 문화의 정체성과 종교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마카오의 대표적인 매력 중에 하나다.

  

 

25. 몬테요새( Mount Fortress)

 

 

 

 

몬테요새는 1617년에서 1626년 사이에 건축되어 사다리꼴 모양으로 약 10,000 평방 미터 지역을 점유하고 있으며 마카오의 방어를 위한 중심부였다. 원래 요새는 300여년 동안 제단으로 사용 되었으나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요새로 전환되었다. 요새는 후에 마카오 총독의 관저로 사용 되었으며 또한 육군막사, 감옥, 관측소 등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막카오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성 바울 성당의 유적과 마카오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26. 까모에스 광장

 

 

 

이 광장은 까모에스 정원돠 성 안토니오 성당, 신교도 묘지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까모에스 정원은 푸른 나무드로가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많아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장소이다.

 

 

27. 까사 가든 (Casa Garden)  

 

 

 

1770년에 포르투갈 귀족이자 정치가이며 부유한 상인인 마뉴엘 페레이라 (Manuel Pereira)의 여름 별장으로 건축되었으며, 마카오에서 가장 좋은 별장이라 할 수 있다. 후에 동인도회사에 대여를 했으며, 현재는 동방기금재단 (Oriental Foundation)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28. 신교도 묘지 (Old Protestant Cemetery)

 

 

신교도 묘지는 마카오의 다양한 커뮤니티의 측면에 대한 식견을 제공하는 곳이다. 카사정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곳은 마카오의 초기 신교도인 커뮤니티의 광범위한 기록을 보여준다. 묘지와 함께 1821년에는 로버트 모리슨(1782-1834)을 기리며 오늘날 모리슨 예배당이라고 불려지는 예배당이 설립되었다.  18세기에 마카오에서 살았던 위대한 화가 죠지 쉬너리, 대영제국 드루이드호의 함장이자 윈스턴 처칠의 조상인 존 스펜서 처칠 경 등 역사 속의 유명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저명 인사들과 함께 동인도회사의 직원들과 미국과 영국 출신의 신교도인들도 함께 잠들어 있다. 

 

 

29. 성 안토니오 성당 (St. Anthony’s Church)

 

 

1560년 이전에 대나무와 목재로 만든,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한 곳이다. 이 곳은 예수회가 마카오에 가장 처음으로 본부를 설치한 곳이기도 한다.. 성당은 몇 번의 재건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성당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성당다. 과거에는 많은 포르투갈인들의 결혼식이 이 성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중국인들은 그것을 화왕당花王堂- 꽃들의 성당 - 라고 불렀다고 한다. 

 

 

30. 기아요새(기아 예배당 및 등대포함) Guia Fortress( including Guia Chapel and Lighthous)

 

 

기아 요새는 1622년에 건축되었으며, 반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카오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 요새는 기아 등대와 예배당을 포함하고 있다. 기아 예배당은 1622년에 건축되었으며 동서양 기술을 절묘하게 적용하여 장식한 다채로운 벽화들이 독특한 곳이다. 

 

(문화 유산에 대한 모든 해설은 마카오 정부 관광청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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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가 보유한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적인 소개를 마지막으로 지리하게 연재되었던 마카오 여행기를 마칠까 합니다.

다음에는 초스피드 일정으로 다녀온 일본 큐슈 여행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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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올려지는지?

밥그릇을 뒤엎어놓은 듯 볼록볼록한 봉분들이 가득한 한국의 묘지들은

약간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발을 들여놓기에 꺼려지는 곳 중의 하나인데......

 

마카오를 여행하는 동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교도묘지에 들린 적이 있다.

까사 가든의 오른쪽으로 난 작은 문이 바로 신교도묘지로 들어가는 문인데

이곳에는 최초의 중국어 성경을 번역한 로버트 모리슨을 비롯하여

영국 예술가 조지 쉬너리 등 영국, 미국, 독일 , 네덜란드 출신 정부 관리들과

마카오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낸 160여명의 외국인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묘지를 상상하며 이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의외로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는 조용하고 양지바른 마당을 만나고 놀라곤 한다.

작은 꽃과 우거진 나무들로 둘러싸인 한적하고 아담한 마당에 놓인 아름다운 묘비들.

평화롭고 느긋한 공기마저 감도는 마카오 신교도묘지를 몇장의 사진으로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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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의 중심 광장인 세나도 광장은 물결치는 듯한 모자이크바닥 깔사다와 함께

분홍, 노랑, 연두.......연한 파스텔빛으로 칠한 포르투갈풍 건물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광장 주변의 둘러선 알록달록한 건물들 속에서 유난히 하얀 건물 하나가 눈에 뜨인다.

 

 

 

 

동화속의 공주가 살 것만 같은 이 아름다운 건물은 자비의 성채(仁慈堂大漏, Santa Casa da Misericordia).

자애당이라고도 불리우는 자비의 성채는 네오클래식풍의 외관이 특히 아름답다.

 

 

 

 

자비의 성채는 1569년, 마카오의 첫 주교인 돈 벨키오르 까네이로(Don Belkior Carneiro)가 자선사업을 위해 건립한 곳이다.

돈 벨키오르 까네이로 주교는 선교를 비롯한 많은 선행사업을 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왼쪽 골목으로 돌아들어가니 자비의 성채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난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바로 앞에 나타난 석상. 돈 벨키오르 까네이로 주교의 흉상이다.

까네이로 주교는 마카오에 부임한 첫 주교이며 자선사업을 위해 자비의 성채를 건립한 인물이다.

 

 

 

 

2층 박물관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는 오성홍기와 함께 마카오 깃발이 반갑게 맞이한다. 

 

계단을 올라서니 환한 미소로 방문자를 반기는 박물관지기 할아버지.

검은 베레모를 살짝 걸쳐쓰신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입장료가 얼마냐고 물으니 티켓은 5 MOP(약 700원)이지만 그냥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한다.

저렴한 입장료이지만 돈을 받지 않는다니 너무 기분이 좋아 감사를 표하고 얼른 전시실로 들어갔다.

 

 

 

 

전시실은 크게 넓지 않고 아담한 편인데 정말 깔끔하게 잘 전시되어 있다.

 

 

 

 

2001년 12월에 개관했다니 박물관 자체의 역사는 오래지 않으나 소장품들은 모두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것들로

하나 하나 마카오와 마카오의 카톨릭 선교 역사를 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들이다.

 

 

 

 

고대 필사본, 청동 벨, 유화, 상아상과 종교 예술품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중국, 일본, 유럽제 자기들이  작은 공간에 빼곡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작은 상자들은 얼른 집어서 주머니에 넣고 싶을만큼 정교하고 앙증맞은 것이 많이 있었다.

너무 예쁜 소장품들을 그냥 보고 돌아서기가 아쉬워서 소장품을 촬영해도 좋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을 한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다니는 여행인지라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사진은 모두 NEX-5로 촬영한 것이다.)

 

 

 

 

 

 

 

 

 

 

 

 

 

 

 

 

 

 

 

 

 

 

 

 

 

 

 

 

 

 

전시품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려니 박물관지기 할아버지가 여기도 보고 가라며 다른 방으로 안내를 한다.

들어가보니 오~!!! 여기가 바로 자비의 성채의 핵심이 되는 본관 홀이다.

가운데 회의 탁자가 놓여 있고 벽에는 마카오 역대 주교들의 사진이 빼곡이 걸려 있다.

 

 

 

 

깔끔하고 단아한 창에는 진초록의 휘장이 멋스럽게 드리워졌고 과하지 않은 멋을 부린 천정 샹들리에도 너무나 아름답다.

 

 

 

 

발코니로 나가보니 발코니 공간이 너무 평온하고 아름답다.

세나도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에는

로맨틱한 철제 테이블들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어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데 테이블 여기저기에 놓인 꽃다발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 아기자기하게도 꾸며놓았구나.'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박물관지기 할아버지가 오셔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테이블 앞에 꽃다발을 들고 앉으란다.

필자의 카메라를 가지고  대신 사진을 찍어주는데 일일이 포즈 지도를 다 해준다.

"다리를 꼬아 올리고......고개를 약간 숙이고......미소를 띠고......."

 

 

 

 

전시품을 돌아보고, 전시품 사진을 찍고, 너무나 기억에 남는 인증 샷을 남기고.......

자비의 성채 박물관에서 보낸 몇시간은 필자의 기억에 노래 남을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의 여유와 즐거움을 배가시켜준 멋쟁이 사진가 할아버지가 부디 건강하셔서

자비의 성채를 지키는 행복한 시간을 오래 누리시길 기원해보며 자비의 성채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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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 하우스에서 아마 사원을 가기 위해 서쪽으로 난 일방통행로로 걸어가본다.
마카오의 이면도로는 도로 폭이 너무나 좁고 일방통행인 곳이 대부분인데
이는 마카오 시내 전역에 퍼져 있는  옛 건물들과 세계문화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다.





노폭이 조금 넓은 길을 가다 보면 느닷없이 길이 좁아지고 심지어는 보행자도로조차 끊기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차라도 지나가면 건물에 바싹 붙어 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할 정도이다.
우리 같으면 도로를 넓히기 위해 건물을 철거하거나 이전하고 도로를 낼텐데.....
전통 건물과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생활의 불편함도 감수하는 마카오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면도로 양옆에는 이렇게 건물과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서민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좁은 도로와 건물도 답답해 보이는데 베란다조차 모두 창살로 가려져 있어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일요일 오후시간이라 대부분의 사무실과 가게들이 문을 닫은 가운데서
간혹 가다 문을 연 동네 구멍가게가 보이길래 한장 살짝 찍어보았다.
우리나라 시골 점방처럼 가게 안에는 갖추어진 물건들도 얼마 없어보이지만 친근감이 드는 것은 웬 일인지......





조금 걸어가니 느닷없이 근처 서민아파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독톡특한 모양의 건물이 눈 앞에 나타난다.
마카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르투갈풍도 아니고 중국풍도 아닌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의 이름은
'무어리쉬 배럭(Moorish Barracks, Quartel dos Mouros, 港務局大樓)'라고...... 






1874년에 이탈리아 건축가인 카슈토(Cassuto)의 설계로 지어졌다는 무어리쉬 배럭은 
무굴제국의 요소가 가미된 신 고전주의 양식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본래는 인도 고아(Goa)에서 파견된 용병을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는 마카오 해상청으로 쓰이고 있는지라 관광객들에게는 건물의
테라스만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일인지라 테라스 참관도 하지 못 하고 바깥에서 한바퀴 돌면서 사진만 담았다.
아마 사원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야경 사진을 한번 담아보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그것 또한 시간대가 잘 맞지 않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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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여행의 첫날, 파스텔톤의 유럽풍 건물로 들러싸인 릴라우 광장 바로 앞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다린 하우스'가 자리잡고 있어서 찾아 보았다.
'만다린(mandarin)'이란 '중국 신해혁명 이전의 고급 관리'를 지칭하는 말로
만다린 하우스는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 정관잉(鄭觀應, Zheng Guanying)이 살던 고택이다. 
중국어로
'정가대옥(政家大屋)' 이라 불리우는 거대한 규모의 만다린 하우스는
중국 전통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집이라 의미가 무척 깊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1869년에 건축되었다는 만다린 하우스(Mandarin House, Casa do Mandarim)의 내부로 들어가 본다.
만다린 하우스는 매주 수, 목이 휴관이므로 가기 전에 꼭 휴관일을 체크해야 하는데
대문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멋진 건물이 대문 안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문으로 들어서니 벽에 붙은 향단에는 생재(生財), 생자(生子)....등 여러가지 기복 문구가 쓰여 있고
바로 앞 테이블에는 안내 브로슈어가 다소곳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문을 지나 바로 마주 보이는 곳이 매표소인가 했더니 관광 안내소이다.
30개나 되는 마카오의 세계문화유산은 모두 입장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무료로 들어가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니 아.....! 보름달처럼 둥글게 만들어 놓은 문이 너무나 특이하다.
원형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뭔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마져 든다.




원형의 문을 통과하여 뒤를 돌아보니 원형의 문 밖으로 보이는 대문채 벽과의 조화가 너무 아름답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양쪽에 전시관이 있는 중문에 들어서니 사각문틀 밖으로 안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안채로 들어가기 전에 작은 전시관 두 군데를 돌아 보고 전시관 동쪽문으로 나가니 넓직한 주정원(Main Garden)이 나타난다.
회색 담장에 둘러싸인 너른 정원에는 만다린 하우스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커다란 나무들이 군데군데 서 있다.




정원을 돌아보고 전시관과 중문을 거쳐 안채로 들어오니 건물의 규모가 제법 웅장하다. 

2층으로 이루어진 만다린 하우스는 정원과 하인들이 머무르는 별채까지 합하여 
1,200평에 이르는 규모인데
담벼락의 길이만 해도 120m에 달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창과 지붕, 집의 상부 구조, 건축 양식은 중국 전통 양식으로 주로 설계되었는데

 



회색 벽돌의 사용과 인도식 천장, 문틀, 창문 개폐 방식 등과 같은 다양한 이국적인 양식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만다린 하우스의 지붕 바로 아래는 중국풍의 그림과 색색으로 칠해진 부조들로 장식되어 있어 시선을 붙잡는다. 





 



아취형의 옆문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사방이 벽과 창으로 둘러싸인 작은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는 벽과 양쪽으로 덧문을 활짝 연 창들의 색감이 조화롭게 다가온다.




정원은 아무런 장식없이 단지 나무 한그루만 자라고 있을 뿐이라 정갈하고 고즈녁한 느낌마져 가져다 준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천정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문에 조각한 문양은 화려하고도 다채롭다.










건물의 중심부에는 이렇게 2층까지 정방형으로 뚫린 공간이 두군데나 있는데
집 안에 하늘을 통하게 한 것은 비가 떨어지는 운치를 집 안에서 볼 수 있게 했고
비를 재화로 여겨 비가 집 안에 들어오듯 재산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원한 것이다.





뚫린 하늘 아래 2층에서 문을 열면 반대편까지 훤하게 드러나 채광은 물론이고 통풍까지 잘 되니
마카오의 덥고 습기 찬 날씨를 이기기에는 제격인 설계이다.





2층에서 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가운데 뚫린 공간이 장방형의 돌로 마무리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가운데 공간을 돌로 커다란 물받이를 만들어 
비가 올 때는 빗물이 돌 물받이로 떨어져 배수구로 빠져나가게 해주니 
아열대지방의 집중호우를 슬기롭게 이기고 건물을 시원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멋진 공간이다.





2층 한가운데는 이 건물의 주가 되는 넓다란 공간이 있는데 천정도 창문도 커서 너무나 시원해 보인다.
방 가운데 높이 걸린 현판을 보니 커다란 글씨로 '여경(餘慶)'이라고 쓰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여경(餘慶)'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글에서 온 말로써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한 보답
으로 뒷날 그의 자손이 받는 경사'이니 
집 주인인 '정관잉'은 아마도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베풂으로 많은 복을 받았나 보다.




만다린 하우스의 외관도 멋지지만 집 내부의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장식은 보는 이들을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건물의 회랑들의 안쪽 문들은 들문으로 되어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창 아래 공간들은 아마도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들창문 위 육각형의 문살 사이를 창호지로 발랐나 생각되겠지만 마카오의 맨션들은 커다란 굴 껍질을 평평하게 문질러서

창호지대신 문살 사이에 끼우기 때문에 견고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직사광선은 피하고 밝은 빛은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한다.




회랑을 거쳐 건물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니 그곳에는 장식 가구가 없고 이렇게 오래 된 궤짝들이 쌓여 있다.
만다린 하우스의 귀중한 물건들이 이 궤짝들에 담겨서 보관되고 있었을까......



 

건물을 다 돌아보고 안뜰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려고 하니 벤치 바로 옆에 오래 된 우물이 보인다.
이제는 철망으로 폐쇄되어 무심한 도르래만이 바쁘게 오르내렸던 옛날을 회상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명한 사상가 정관잉과 그의 가족들, 하인들로 북적거렸을 만다린 하우스는 
이제는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고 마카오에 오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찾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영화를 누리던 그들과 그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관잉의 '여경'사상에 힘입어 후손들은 조상이 누리던 영화를 이어받아 누리고 있을까?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만다린 하우스를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대문을 나서면서도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 하고 자꾸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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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하 성당 마당에서 마카오 타워와 마카오의 멋진 다리들이 보이는 시원한 경치를 감상한 후
성당 담장 왼쪽으로 내려가는 급경사로 서망향사항(西望洋斜巷)길로 내려가 보았다.
좁고 경사가 급한 골목을 한참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조그마한 사거리가 나왔다.
사거리에는 세계문화유산의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들이 서 있기는 한데 분명하지가 않다.
동네 아주머니께서 반려견을 데리고 주변을 지나가릴래 물어보려고 하니
그분은 영어를 전혀 모르고 우리는 광동어를 전혀 모르고....

얼른 지도를 펴서 손가락질로 물어보니 금방 눈치 채신 아주머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길 아래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가란다.





난간도 없는 가파른 시멘트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보니
경차 하나도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길이 발 아래 펼쳐진다.

관광객들은 잘 모르지만 주민들이 자주 다니는 지름길임이 분명하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 위를 올려다 보니 마카오 서민들이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서민아파트들이 양 옆으로 펼쳐진다.




다닥다닥 붙은 서민아파트를 몇채 지나니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면서
눈앞에 노란색, 민트그린......등 파스텔톤의 화사한 집들로 둘러싸인 광장이 나타난다.




파스텔톤의 포르투갈 주택으로 둘러싸인 광장이 바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릴라우 광장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커다란 성당이나 별다른 큰 건물은 보이지 않고 평범한 동네 마당 같다.
관광객들도 많지 않고 동네 주민들이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조그만 광장이 세계문화유산이라니! 약간은 실망스럽다.




커다란 나무 몇 그루와 조그만 매점, 벤치 몇개가 놓여있는 작은 광장인 이곳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첫번째 거주지 중 한곳이라고 한다.

릴라우는 포르투갈어로 '산에서 솟는 온천'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나오는 물은 마카오의 주요 용수원으로 사용되었다는데
지금은 벽쪽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분수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광장을 둘러싼 가옥들은 대부분 핑크색이나 민트크린, 화사한 개나리색으로 칠해져 있어 밝은 느낌을 주고




가옥들의 창은 포르투갈풍의 색색의 덧문들로 장식되어 아시아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가져다 준다.




광장의 규모는 비록 작지만 광장을 비롯한 주변 포르투갈 주택의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광장을 떠나 만다린 하우스, 아마 사원 등을 구경하고 밤에 돌아올 때 다시 릴라우 광장으로 와 보았다.
낮에도 비교적 한가하던 길인데 밤이 되니 길에는 사람도 별로 안 다니고 너무 조용하고 한가롭다.




낮에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담소를 나누던 광장에도 고요함만이 감돈다.




우리도 이 동네 주민인 것 처럼 벤치에 앉아 새소리도 듣고 동네 개가 지나가는 것도 보고 잠시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지친 다리와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한결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몇개의 포르투갈 주택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 릴라우(Largo do Lilau, 亞婆井前地).
우리 눈에는 평범한 동네 마당 같이 보이는 이런 공원도 마카오에서는 세계문화유산이 되는데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재들은 왜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하고 세계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을까?
우리의 문화재에 대해 우리 모두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세계인들도 우리 문화 유산의 가치를 인정해 줄텐데......
부러운 마음과 아쉬운 마음을 함께 가지고 릴라우 광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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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서서히 지나가고 겨울의 초입에 든 어느 주말.
오랜만에 양동마을을 찾아 본다.
필자의 집에서 30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양동마을은
1년에도 두세번은 꼭 들러서
계절의 변화를 담곤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가을에는 양동마을을 찾는 발길이 조금 늦었다.

마을에는 이미 겨울빛이 짙어져가고 군데군데 은행나무에는 노란 잎이 듬성듬성 남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마을 안에는 차들이 장난 아니게 많다.
예전에는 주말에도 크게 붐비지 않던 이곳이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고 난 후부터는
찾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마을회관 앞에 이십여대 정도 공간이 있던 주차장은 이제 턱없이 모자라
논을 밀어버리고 슬러그를 부은 후 그곳에 임시로 주차장을 만들었다.

 



양동마을 어귀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도 요즘은 상당히 활기를 띤다.
평소에는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파는 품목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경주 특산품인 경주빵, 찰보리빵으로부터......




어묵, 찐 계란, 핫바에 양동마을에서 만든 유과와 약과......




강냉이와 뻥과자까지......온갖 주전부리는 다 모였다.



 

 

 양동점방에는 이렇게 원두커피나 유자차 등 음료도 팔고 있는데 가게 앞 메뉴판에는 <양동 bucks>라고 되어 있고


 

 

가게 옆 창문에는 <양동 bux>라고 표기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가게의 간판도 새로 만들어 달았다.

"100년 넘은 양동점방, 1900년~~~"

이전에는 이런 가게에서도 물건을 파나.....싶을 정도로 한산한 가게였는데
가게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가게 입구 위에 달린 간판에는 "양동점방 1970~"이라고 쓰여있다.
옆에 달린 간판에는 1900년 부터라더니 가게 앞에는 1970년이라니.....도대체 어느게 맞는 말인지.....?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께 "이 점방이 100년이나 되었나요?"하고 물으니

"네....1900년 초에 이 마을에 처음 점방이 생겼답니다.
그러다 우리 시어머니께서 이 점방을 운영하기 시작하신게 1970년이죠...."한다.

1900년에 시작되었으면 100년이 넘어 거의 112년이나 되는 세월인데.....
그때 생긴 가게가 없어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했다는 것이 참 대단한 일이다.


양동점방 아주머니께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고 난 뒤에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는데 마을 주민으로써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물어보니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인데 집안까지 사람들이 불쑥불쑥 들어와
이것저것 만지고 해서 사생활 보호가 안 되는 점이 많기는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소득을 올릴 수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사실 양동마을에는 편의점 같은 시설은 물론 관광객들이 물 한병이라도 살만한 가게조차 별로 없는 형편이라
마을 어귀에 자리잡은 양동점방은 개점 100 여년 만에 최고의 호황을 맞게 되었다.
양동마을 스타벅스 '양동점방'의 친절한 아주머니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날 날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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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마을과 함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주목을 끌고 있는 경주 양동마을.
세간에 널리 알려져 수많은 관광객으로 들끓는 안동 하회마을과는 달리
지금까지 양동마을은 그저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 불과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틈날 때 마다 들리던 양동마을이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건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양동마을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의 한명으로써
마을이 고즈녁하고 평화롭던 예전의 분위기를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의 상태 그래도만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더 바랄 것이 없으련만......
너무나 
화사한 5월의 양동마을을 카메라의 앵글 속에서라도 잠시 붙잡아 본다.





마을 어귀에는 화사하게 꽃핀 이팝나무가 방문자를 맞이한다.





멀리서 보면 하얀 쌀밥(이밥)과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고 불리우는데 양동마을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나무이다.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파란 새
싹들이 돋아나니 마을 전체에 생기가 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랍집과 기와집 사이 푸르른 신록들이 
아늑하고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마을 서쪽에 있는 관가정으로 천천히 올라본다.
초가지붕 위에 요즘은 보기 힘든 TV 안테나가 솟아있는 것도 재미있다.




관가정의 사랑채 누마루에 오르면 옷깃 사이로 바람도 절로 스쳐 가겠지......



 

관가정 담 앞에 서니 길 건너편 집들도 뛰면 한달음에 닿을 듯 눈 앞에 펼쳐진다.





하얀 꽃이 만발한 이팝나무와 새잎이 돋아난 고목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다.





관가정 앞 고목 아래 한무리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지나간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전통과 현대의 조화이다.






축대 아래 나즈막하게 핀 꽃잔디를 보면 누구나 가던 발걸음을 멈춘다.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집인 향단의 위용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가옥 내부는 물론 방문객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담장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무첨당 너른 마당 한켠에는 빠알간 해당화가 너무나 곱게 피었다.






크고 화려한 해당화에 질새라 꽃에 앉아 열심히 꿀을 모으는 벌도 엄청나게 큰 호박벌이다.





무첨당 뒷간 옆에도 너무나 화사한 꽃들이 만발했다.
이런 뒷간에 앉으면 누구나 쌓인 근심을 편안하게 풀 수 있을 듯.....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마음껏 오월의 신록을 만끽해 본다.





마을의 빈터에는 이렇게 대파꽃들도 무리지어 피었고




벌들은 이꽃 저꽃을 날개가 찢어지도록 날아다니며 부지런하게 꿀을 모은다.




푸르르게 자란 청보리는 길을 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담장 옆에 다소곳이 핀 패랭이꽃에도 저절로 눈길이 간다.


 


마치 솜사탕처럼 꽃망울을 다 함께 터뜨린 수국도 너무나 오랜만이다.





초가 지붕 아래 빠알간 줄장미는 오늘따라 더욱 화사하게 보인다.





금계국의 샛노란 꽃이파리도......





담벼락에 붙어서 핀 하얀 꽃들도 나무의 새싹들에게 질새라 꽃잎을 펼치고 마음껏 오월의 햇살을 들이마신다.






꽃길을 따라 난 길로 마당에 오르면 어머니가 버선발로 마중 나오실 것 같은 곳.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돌담길이 이어지며, 전통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양동마을의 오월은 오늘도 여전히 눈 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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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안개 자욱한 아침, 경주 남산 칠불암과 신선암을 처음 오른 후

초보 산행기와 칠불암 마당에 전시된 벽안의 여승 효공 스님의 그림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이날, 새벽까지 비가 내리다가 아침 나절에 그쳤는데
처음으로 찾아본 남산 칠불암 코스는 필자에게 정말 신비한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평소에 거의 산행을 안 하는데다 한두번 정도 올라본 적 있는 남산도
더운 한낮에 친지들에게 끌려 할수 없이 올랐던터이라 별로 좋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는 터이다.

이날도 망설이다가 비가 그치길래 친구를 따라 등산길에 올랐는데
비가 살짝 와서 등산로가 촉촉이 젖어 있어 심호흡을 하지 않아도 싱그러운 솔향이 그대로 느껴졌고
산중턱에는 안개 구름이 걸려 있는 멋진 광경을 눈으로 직접 보고
팔만 들면 신선이 되어 산 위로 날아갈 듯한 묘한 기분에 빠질 정도로 멋진 기억을 남긴 날이었다.





안개가 살짝 낀 아침 나절 등산에서 또 하나 놀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기 저기에서 부드러운 땅을 밀치고 우후죽순처럼 불쑥불쑥 솟아오른 각가지 버섯들이었다.





시골에서 자라나신 분들이나 평소에 산행을 즐기시는 분들은 웃으실지도 모르나
어릴 때부터 시골 생활을 거의 체험해보지 못하고 자란 필자인지라
버섯이란 그저 시장이나 마트의 가판대 위에 올려진거나 밥상 위에 오른 것을 본게 고작이었으니
비 온 뒤 축축한 나무 아래서 불쑥 땅을 밀고 올라오는 버섯을 직접 본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더구나 경주 남산은 전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일 뿐 아니라 국립공원이라 산나물 등 버섯 채취가 일체 금지되어 있는 곳인지라
등산로 발 밑이나 바로 옆 숲에 있는 버섯들도 등산객이 손대지 않은 채로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올라온 버섯 중에는 식용 버섯 같이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독버섯 같은 것이 많이 보였는데
대부분의 독버섯은 색깔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나 어떤 버섯은 식용 버섯과 같이 수수하게 생긴 것도 많다고 한다.
이날 버섯 사진을 여러장 찍긴 했으나 송이 버섯, 느타리 버섯, 표고 버섯, 새송이 버섯, 팽이 버섯 등...이런 종류의 버섯 밖에 모르는지라
사진으로 담아 오고서도 이건 무슨 버섯입니다...라고 포스팅할 수 없는게 못내 아쉽기만 할 뿐이다.





더구나 이번 산행에서는 정말 이상한 생명체를 보았는데
바위 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빨간 물체를 보는 순간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버섯인 것 같기도 하고....아닌 것 같기도 하고......
건드리면 손을 꽉 물어버릴 것 같이 희한하게 생긴 이 무시무시한 생명체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어느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고 하면 딱 어울리는 이것도 혹시 버섯 종류일까요?
징그럽기도 하고.....섬칫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이 생명체의 이름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혹시나 아시는 분은 제게 넌즈시 알려주시길 간절히 바라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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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신속하게 남겨 주셔서 이 버섯의 정체를 금방 알게 되었네요...ㅎ
닭발버섯이라고도 불리우는 세발버섯이랍니다.
제가 찍은 버섯은 네발인데 아마도.....세발버섯의 변종인가 봐요..

전 생전 처음 본 버섯인데 아시는 분들이 많네요. 무식 완전 탄로남....ㅋㅋ
이래서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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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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