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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쭈욱쭉 뻗어나가는 서양의 잘 생긴 침엽수림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구불구불 뒤틀리고 굽은 기이한 모습의 소나무들이 많다.

현대판 솔거로 불리우는 배병우 작가의 사진으로 유명한 삼릉의 소나무처럼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소나 염소의 고삐에 매단 둥그스름한 고리를 이르는
순 우리말 <도래>의 모양에 빗댄 정겨운 순우리말이다.


천년고도 경주에서도 도래솔이 멋스런 곳은 삼릉과 경애왕릉, 정강왕릉, 헌강왕릉 등인데
그중에서도 절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안강읍 육통리에 위치한 흥덕왕릉이다.
안강읍을 벗어나 기계 사거리로 향하는 68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왼쪽에 나타나는 표지판, 흥덕왕릉.
눈에 잘 안 뜨여 그냥 스쳐 지나가기 일쑤일 정도로 작은 표지판이다.





도로라기 보다는 농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좁은 도로를 달려 육통리 마을길을 한참동안 가다가

어느집 뒷마당 같은 골목길을 꺾어 돌아서면 갑자기 거대한 솔숲이 앞을 가로막는다.





문화재 안내판 하나 외롭게 서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솔숲은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가 않다.






솔숲으로 올라서보면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한 수천그루의 도래솔.
키가 작으면서도 이리저리 꼬이고 뒤틀린 흥덕왕릉의 도래솔은 기묘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수천그루의 도래솔은 어느 하나 제대로 뻗어 있는 것이 없고
무엇이 그리도 고통스러운지 밑둥치와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까지도 심하게 뒤틀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어떤 도래솔은 뿌리는 다르지만 연리목처럼 서로 줄기를 맞대거나 서로 엉키어 있다.

금강송처럼 올곧게 자라서는 서로 만날 수가 없어서 이리도 서로 몸을 부대끼며 천년의 사랑을 이어온 것일까?




 

이곳에 누워있는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년)은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당나라에서 처음 차(茶)씨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게 한 왕이다.




흥덕왕과 그 왕비 장화부인에 얽힌 순애보는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흥덕왕의 부인 장화부인은 소성왕의 딸이니 흥덕왕에게는 조카가 되는셈인데
흥덕왕은 즉위 2개월 만에 사랑하던 왕비 장화부인을 잃게 된다.

왕비가 죽자 신하들은 왕조의 흥왕을 위해 흥덕왕에게 재혼을 권유해 보았지만
왕은 "앵무새도 짝을 잃고 혼자 슬퍼하다 죽는다"며 재혼을 거부하고 모든 즐거움을 멀리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10년 후, 왕비와 합장하라는 유언을 남긴 후 세상을 떠나게 되니
이곳에 왕비와 함께 합장되게 된다.
살아서는 너무나 짧아 안타까운 사랑이었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함께 부르는 천년의 사랑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신라왕릉 중 유일한 합장묘이고 애틋한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능원은 유달리 포근하고 아늑해 보인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능은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는데 왕비 장화부인과 함께 매장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1977년 발굴조사 때 상당수의 비편과 함께 '흥덕'이라 새긴 비의 조각이 나와 흥덕왕릉임이 밝혀졌다.



능의 밑둘레는 65m, 직경 22.2m, 높이는 6.4m이니 비교적 아담한 규모이다. 

둘레에는 호석에 십이지상을 새겼고 그 주위에 2단 돌난간(41개, 높이는 약 1.9m)을 설치했는데 
당시 호석과 십이지상의 변천 과정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십이지상도 거의 손상이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십이지상을 차례대로 소개해드리자면 쥐[子],  소[丑],





범[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잔나비[申], 닭[酉],
 




개[戌], 돼지[亥]이다.
 



능의 모서리에는 네마리의 돌사자를 세워 능을 보호하게 하였는데



특히 전면 동편 사자상의 목걸이를 자세히 보면 왕(王)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덤 앞 왼쪽에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비석을 받쳤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거대한 받침돌의 크기로 보아 비석의 크기도 상당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앞쪽으로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각각 2기씩 세웠는데 
신라묘제에서도 문인상과 무인상이 좌우로 완전하게 배치된 곳은 이곳 흥덕왕릉과 괘릉 뿐이다.





동편에 서있는 무인석을 보면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있는데
그 당시 당군(唐軍)에 소속된 서역인부대의 용맹성이 알려져서 그 상징으로 서역인을 세웠다는 설이 전해 온다.




서편의 무인석도 역시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편 앞쪽에는 문인석이 서 있고




서편에도 역시 문인석이 서 있는데 뒷편으로 구불구불하게 자라거나 쓰러져 자라는 도래솔들은 한폭의 그림이다.





무덤을 둘러싼
도래솔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서역인 모습의 무인석과 함께 천년의 사랑을 지켜온 것처럼
무덤 위에도 각가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보듯이.......


 


살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라도 함께 부르려 했던 것일까?
비록 두 사람의 육신은 썩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을지라도 영혼은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러 있으리라.
천년을 하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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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변변한 눈 한번 오지 않던 경주.
올해는 웬일인지......폭설이 잦네요.
지난 토요일 내린 눈이 제대로 녹지도 않았는데
월요일 아침 일어나 창문을 여니...... 또!!!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군요.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보고 기뻐하기도 잠시......
차를 가지고 출근해야 하나? 차를 두고 출근해야 하나? 
고민고민하던 끝에
용감하고 무모하게 차를 몰고 출근했었지요.
아침에 좀 내리다가 그치겠지......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나갔는데
웬걸......! 하루 종일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네요.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는데도 일하느라 사진 찍으러 나갈 수 없으니 마음은 '콩밭'에 있고......
언제 퇴근 시간이 되나.....시계만 보고 있는데
오후가 되니 눈발은 더욱 거세어지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앞도 잘 안 보일 지경이 되어 버리네요.

눈이 너무 많이 오니 '사진 찍어야지!' 하는 생각보단 '헐.....어떻게 집에 가지....?' 이런 걱정만 앞서더군요.
'차를 버리고 걸어서 가야 하나? 눈이 이렇게 심하게 오니 버스나 택시 타기도 수월치 않을텐데.....!'
걱정 걱정하던 끝에 '에라 모르겠다!' 용기를 내고 차 위에 쌓인 눈을 낑낑거리며 걷어내고는 도로로 나셨답니다.
이면도로를 조심조심 벗어나 차량 통행이 많은 간선도로로 나서니
눈이 질퍽하게 녹아 범벅이 되긴 했지만 한결 운전하기가 쉬워지더군요.

 
조심조심, 거북이 걸음으로 차를 몰고 가다보니 옆에 황성공원이 나타나더군요.
눈으로 뒤덮힌 공원을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사진 찍으면 좋겠는데......집에는 가야 하고.....ㅠㅠ
사진 찍다 집에 못 가면 어쩌지? 그치만 이럴 떄 설경 사진 안 찍으면 언제 찍겠냐!'

눈이 더 많이 와서 길이 막힐까봐 내심 걱정은 되긴 했지만 무작정 황성공원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한뼘이나 쌓인 눈 위에 주차를 하고, 트렁크에서 등산화 꺼내 신고, 왼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손으로 찍을 수 있는 가벼운 NEX-5를 들고 황성공원으로 들어갔어요.

사람의 통행이 거의 끊긴 공원으로 들어서니 쌓인 눈으로 발목이 푹푹 빠지는 곳이 많았고
세찬 눈발로 인해 우산을 써도 얼굴과 카메라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막을 수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황성공원의 설경은 정말 감탄 그 자체이더군요.
거대한 기와 지붕 위로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도서관, 휘날리는 눈 속에서 칼을 들고 하늘을 찌르는 김유신 장군,
구불구불 구부러진 채로 눈 속에 파 묻혀 있는 그림같은 소나무들,
소복소복 쌓인 눈 속으로 삐죽이 모습을 드러낸 작은 가지들.....


경주에서 자주 보기 힘든 기막힌 설경인지라 오래 거닐며 눈 쌓인 공원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쌓인 눈 때문에 걷기가 힘든데다 시간도 이미 5시를 넘어가고 있는지라
공원의 전체를 돌아보진 못 했지만 부분이라도 담은 것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차로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다시 엉금엉금 기어서 '무사히' 집에 도착했어요.

얼어붙은 몸을 따스하게 한 후 저녁 준비를 마치고 나니 8시가 훌쩍 넘었네요.
창밖을 내다 보니 이미 20센티 넘게 내린 눈은 그칠 기세도 안 보이고 점점 더 많이 내려서
밤시간인데도 어둡지 않고 온 세상이 환하기만 하네요.

눈 안 오기로 소문난 경주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다니!
끝날 것 같지 않던 대단한 한파를 비롯해서 십여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까지......
정말 이번 겨울은 모든 이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겨울인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엔 밤새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을텐데 도대체 어떻게 출근해야 하나요.....?
에라...모르겠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일이고.......
오늘 밤은 황성공원 설경 사진이나 보며 기분좋게 잠들어야겠습니다.
<정말 정말 만나기 힘든 경주의 환상적인 설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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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그 끝머리가 깊숙이 방어진 반도에 꼬리를 감춘 곳,

대왕암을 비롯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해안의 절경을 이루고 있어

옛 선비들이 '제2의 해금강'이라 부르기도 했던 울산의 끝 '울기(蔚埼)'



이곳에 자리잡은 대왕암 공원은 28만평에 이르는 넓은 공간에 펼쳐진 아름드리 해송림이 특징인데
조선시대 말을 기르던 목장이었던 이곳에 러·일전쟁 이후 해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인공적으로 1만 5천 그루의 해송림이 조성된 이후 울산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곳이다.





또 이곳에 위치한 기묘한 바위 중에서도 용추암, 또는 댕바위라고도 불리는 대왕암은
신라시대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어서도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하여 바위섬 아래에 묻혔다는 전설이 있는 곳.
1박2일 6대 광역시 특집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이 대왕암은 육지에 있는 바위와 철교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우리나라에서 간절곶과 함께 일출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코 끝이 시리도록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피부 속 깊숙히 파고 드는 피톤치드를 몸으로 느끼며
공원의 끝자락에 위치한 대왕암을 향하여 입구에서 600m 정도 걸어가다 보면
바다를 바라보는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하얀 등대와 만나게 되는데 바로 105년 역사를 지닌 울기 등대이다.




일제가 동해와 대한 해협의 해상을 장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세워진 울기등대는
고종 광무 10년 (1906년) 3월 24일 처음 불을 밝히기 시작했으니 우리나라에서 3번째 오래 된 등대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울산 방어진항은 매월 6~700척의 어선과 3~4천명의 어부들이 드나들었고 포경업도 성업 중이었으며
관련 산업인 방어진 철공소와 무라카미(村上) 조선소가 들어서기도 한 분주한 항구였기 때문에
이 등대는 동해 남부 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을 지키는 등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맨 처음 6m 등탑으로 세워진 등대는 주변의 소나무가 점점 자라나 등대의 기능이 제한을 받게 되자 1972년엔 3m를 증축하게 되는데
그후에도 주변 소나무들이 점점 자라나게 되자 1987년 12월 12일에는 구 등탑을 증축하는 대신 새로운 등탑을 건설하게 된다.
현재 기능이 정지된 상태로 남아 있는 구등탑은 구한말 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아서
2004년에는 대한민국등록문화재 106호로 지정된 바 있다.





구등탑 대신 1987년 24m의 높이로 건립된 신등탑의 경우 촛대 모양으로 조형미가 아주 뛰어나다.




울기 등대는 지금 단순히 등대의 구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휴양시설로도 이용되고 있다.
등대 주변에 콘도처럼 꾸며진 '송죽당'과 문인들이 시상을 떠올리게 하는 '문인의 방'등
주위의 솔 향기와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다바람 소리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특이한 하루를 남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등대 내에 1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이 있어 봄철, 가을철 주말이면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려
관광객들로 하여금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며, 오솔길공원, 문학공원 등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끈다.

울산지방 해양항만청은 겨울 방학 동안 간절곶 등대와 이곳 울기 등대에서 1박2일 동안 등대지기가 돼 보는 체험 행사를 운행하고 있는데
1월 30일까지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가족과 어린이들은 등대에서 이틀간 머물며 등대불 점ㆍ소등 주기 확인, 항로표지 장비점검, 해양기상 관측 업무, 등대 주변 순찰 등을 체험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문의해 보시기 바라며.....





세간에 일출 사진 명소로 유명한 대왕암 공원이지만 오후 시간에 울기 등대를 방문하신 분들은 해질녘까지 기다려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등대는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와야 비로소 제 기능을 하게 되니 등대가 불빛을 밝히는 저녁 시간까지 기다려
어둠을 가르는 등대의 불빛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보는 것 또한 흔하지 않은 체험이 될 것이니 말이다.





간혹 운이 좋으면 이렇게 가슴이 설레이도록 환상적인 노을을 만나 언제까지나 기억될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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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드라마 '추노'의 자취를 찾아 안동과 영주로 떠난 날,
아침부터 세차게 내리는 비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
먼저 추노의 주촬영지인 병산서원을 돌아보고 화회마을로 들어서니
빗속이라 관광객들도 뜸하고 마을은 고요하기만 하다. 

                           

 얼마전 1박 2일 안동편에서도 소개되었던 하회마을.
3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서
화회마을 어귀에서 시청자들과 줄넘기를 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씨족 마을로 유운룡, 유성룡 형제 대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다.
'하회(河回)'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낙동강 줄기가 S자 모양으로 마을 전체를 감싸돌아 '물도리마을'이라고도 불리운다.


1999년 영국 엘리바베스 여왕이 방문하여 더욱 명성을 얻게 된 이 마을은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민속마을인데

아쉽게도 요즘은 대부분의 마을집이 민박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등
너무나 상업적으로 치우쳐 찾는 이를 씁쓸하게 한다.

 

몇번이나 다녀갔던 마을 구경은 간단히 건너뛰고 마을 끝부분에 있는 소나무 숲으로 향한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이 한눈에 확 들어온다.


눈을 들어 맞은편을 보니 소나무 숲 맞은 편에 펼쳐진 64m 절벽, '부용대(芙蓉臺)'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부용이란 연꽃을 이르는 말로써 처음에는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으로 '북애(北厓)'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솔밭을 지나 하회나루터로 내려서니 발 아래 넓게 펼쳐진 강변의 모래는 곱기만 하다.
 


평소에는 여기서 나룻배를 타고 강건너편 부용대로 오를 수 있으나
오늘은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난지라 아쉽게도 나룻배를 이용할 수 없다.



강 너머로 자세히 살펴보니 너무나 운치있는 고택들이 부용대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동쪽에 위치한 고택은 '옥연정사(玉淵精舍)'로
서애 유성룡 선생이 건립한 정사(학식높은 유학자가 학문을 강의하고 정신을 수양하던 곳)인데

선생이 만년에 이곳에서 임진왜란 때의 일을 추억한 '징비록'을 저술하였으니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이고 역사적으로 상당한 의의가 있는 곳이다.



서쪽에 위치한 고택은 '하회겸암정사(河回謙菴精舍)'로
유성룡 선생의 맏형인 유운룡 선생이 학문 연구와 제자 교육을 위해 세운 것이다.



드라마 '추노'를 보면 많은 장면들이 화회마을 인근의 낙동강변에서 촬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사극에서 등장하지 않은 곳을 화면에 담기를 원하는 곽정환 감독의 로케이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4회에서 운신해있던 사찰을 빠져 나와 대길과 백호의 추격을 피해
나룻배로 강을 타고 내려가는 장면이 부용대 바로 앞에서 촬영되었다.

강을 건너지 못한 대길, 최장군, 왕손이 먼 길을 돌아 세차게 말을 몰고 달려오던 강변은


역시 부용대의 서편으로 하회겸암정사의 바로 앞 강변이다.
먼 길을 달려와 송태하와 언년이가 탄 나룻배를 향하여
애기화살을 겨누는 가슴 조마조마한 장면을 촬영한 곳도 바로 부용대 앞.

대길의 어깨 바로 뒷편에 옥연정사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대길이 서서 활시위를 당기던 곳에 서서 한컷 담아 보았는데 궂은 날씨로 인해 하늘이 하얗게 다 날아가버려 아쉽기만 하다.


강편 서쪽으로 한참 걸어와 부용대와 낙동강 동편을 바라본다.
대길의 화살 공격을 간신히 피하고 뱃사공(김경진 카메오 출연)도 내친 후
유유히 노를 저어 하류로 사라지는 송태하와 언년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던 곳이다.



한떨기 연꽃같은 하회마을 부용대. 비가 와서 파란 하늘 아래 버티고 선 부용대는 담지 못했지만
맑은 날 본 부용대와는 또 다른 운치있는 느낌으로 보게 되었으니 비오는 날 나선 추노 여행은 도리어 행운의 여행길인 듯.....


다만 비가 내림으로 인해 나룻배를 이용해서 부용대를 오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아
자동차를 이용해서 한참을 돌아 부용대에 오르는 코스를 택하고 서둘러 하회마을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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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는 겨울 아침. 
기암절벽과 노송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천혜의 명승지 하조대를 찾아 본다. 


     7번 국도를 타고 양양군 현북면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들어서 하조대로 통하는 좁은 길로 오른다.


주차장 바로 옆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 한잔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른 아침인지라 주인도 없고 난로의 불도 싸늘하게 식어있다.
 


주차장에서 좌편으로 위치한 등대 바위로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요즘  여러 가지 모양의 특이한 등대도 많지만 이렇게 새하얀 등대는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등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하조대의 아침 하늘은 어찌 이리도 푸르른지....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등대 문에 낙서가 한가득이다.


내현과 진환, 인규와 수정, 선미와 승근......


쇠사슬 난간에도 빼곡하게 새겨진 J와 S.....언제나 함께 ♡.....


달과 링의 사랑은 변함없이 계속되어 계속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있을까....?
약속은 둘만 하면 족할 것을...왜 남에게 이렇게들 자랑을 해야하는 것인지.....

 

이렇게 충성스런 시동생이 다 있나.....그런 얘기는 직접 하던지.....문자로 전하란 말이야!! 

많은 사람이 오는 관광지에서 유적이나 건축물에 이렇게 이름을 새기는 것은 
자기 이름을 더럽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다시 한번 기억해 주었으면.....

 

  등대를 나와 다시 반대편 언덕에 위치한 하조대 정자로 향한다.  


 

정자각 앞에 조선 숙종 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이 쓴 '하조대' 세글자가 암각되어 있다. 


하조대 정자는 조선 숙종 때에 처음 건립되었는데

 

이후 퇴락하여 야러번 철폐와 중수를 거듭하였고... 



1940년에 팔각정을 건립하였으나 한국 전쟁 때 다시 불이 타버려 그 후 다시 육각정으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정자의 하조대의 명칭은 조선 초기로 올라가는데
조선 개국 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 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지냈다 하여 하조대(河趙臺)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신을 벗고 정자에 올라서 정자와 주변 풍경을 살펴 본다. 

 


왼쪽으로는 등대 바위가 보이고 소나무 사이로 푸른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자 난간의 작은 틈으로 보는 풍경도 나름 운치가 있다.


마치 한그루의 분재인양 고고하게 서 있는 절벽 위의 소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하조대 사진에서는 꼬옥 빠지지 않는 상징과도 같은 나무이다.
 



하조대에서 바라보는 아침 풍경은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뒤지지 않을 절경이다.


아침 햇살로 인해 반짝이는 금빛 바다는 날 반기며 그 넓은 가슴으로 포근히 감싸주는 것 같다.

 

오래 오래 머무르며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고 싶은 바다.
금빛으로 반짝이며 두팔 벌려 반겨준 바다에게 하륜과 조준에서 유래된 하조대(河趙臺)라는 이름 대신에  
'
賀朝臺(아침을 축하하여 맞이하는 곳)'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 주고 하조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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