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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4 북경 옥류관에서 만난 북한 아가씨 41




북경 여행 중 저녁을 옥류관에서 먹을 기회가 있었다.

옥류관은 평양 옥류관의 분점인데 김정일이 외화 벌이의 일환으로 개점한 식당이라고 한다.

난생 처음 만나는 북한 사람과 북한 음식에 대한 호기심 반 설레임 반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들어간 홀은 비교적 깨끗하고 넓은 곳이었는데

탁자가 여러 개 놓여있고 앞에는 넓은 무대와 대형 TV가 놓여있었다.

메뉴로는 평양 냉면과 불고기 등을 시켰는데 음식 맛은 남한 사람의 입맛에는 너무 심심한 것 같았다.

남한식으로 변해버린 평양 냉면 맛에 익숙해진 탓인지 뭔가 빠진 듯한 밍숭한 맛이었다.


종업원 아가씨들은 다 한복을 입고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는데

다 북한 고위 간부들의 자제들이라 탈북의 위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하는 일들을 아주 자랑스러워한단다. 

밥을 먹는 동안 앞에서는 공연이 벌어졌는데 TV에서 나오는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을 추고

떠꺼머리 총각과 아가씨의 사랑을 주제로 한 춤도 추었다.(약간 꼭두각시춤 같기도 한) 

 

 

그 중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었는데 북한에서 제작한 노래방 영상인 듯 했다.

'긴 밤 지새우고 풀 잎마다 맺힌~'이란 가사가 나오면

먼 동이 트고 풀잎에 이슬이 맺혔다가 또르르 떨어지는 그림이 나오고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하면

한복입은 아가씨가 동산에서 배시시 미소를 띄는 둥....영상은 다 이런 식이었는데

'나 이제 가노라 ~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하는 대목에서 격동의 시절에 데모하는 장면이 나오는게 아닌가......

대학생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독재자는 물러가라고 외치고

전경들은 그 데모하는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봉으로 내리치며

최류탄을 떠트려서 피하고 도망치고 군중들이 오열하는 장면이 노래 배경 화면이었다.

 

 

 

순간 뒷목이 서늘해지면서.......

적지에서 밥을 먹는 듯 씹는 밥의 맛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종업원들은 "맛있게 드시라~요"하면서 연신 옆에서 웃어댔지만

우리가 먹고 주고 가는 식사대와 팁이 다 북으로 보내져서

김정일의 야욕을 채우는 기금으로 쓰인다는 생각을 하니 영 떨떠름하였다. 

그러나 밖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하였는데  어떤 곡에서는 아가씨들이 식탁 앞으로 와서
"같이 춤추시라요~'를 연신 말하면서 아저씨들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
앞으로 불러내어서 아저씨들이랑 몸을 대고 춤추는 등 꼭 면소재지 나이트 클럽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우리 식탁의 서빙을 맡은 아가씨는 눈이 동그랗고 볼이 통통한 북한식으로 보자면 상당히 이쁜 외모였는데

간드러지는 말투와 능숙한 접대 솜씨로 보아 경력도 상당히 오래 된 것 같았다.

 

 

동행에게 700 위엔이나 하는 (거의 90000원 상당) '해구신주'를 사드시라고 권하였는데

술을 가져와서 아저씨에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받으시라요~"하며 술을 한 잔 따르니

이쁜 아가씨에게서 술잔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이분은 앞에 앉은 내게도 술을 권하라고 했다.

원래 술 한잔이라도 마시면 거의 기절에 이르는 나인지라

"아....술을 못 마시거든요...."하고 거절을 했더니 이 아가씨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가슴에 살짝 손을 대고 배시시 웃으면서

"이건 술이 아니고 제 마음입네다~(간드러진 북한 말투로....)"

나 또한 웃음을 터뜨리며 한 잔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가씨 또한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는데

옆 좌석에 앉아 있던 한국 관광객 아이가 "언니,가슴에 단건 뭐에요?"라고 물으니

'이건 경외하는 김일성 어버이 수령님이십니다."라고 다소곳이 말하였다.

그런데 다시 그 아이가 "언니. 그 배지 저 주시면 안 돼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일순간 나도 놀랐는데 모두가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하여 그 아가씨를 쳐다 보았다.

그러니 그 아가씨는 배지를 손으로 살포시 감싸쥐면서

"아무나 모시는 분이 아닙네~다~"라고 고개를 숙이곤 다른 자리로 물러갔다.

같은 말에 같은 얼굴 생김새라도 북한 사람들과 우리들 사이에는

아주 엄청나게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시고 옥류관 식당을 나올 때는 종업원 아가씨들과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하면서......

나도 그 말을 하면서 이뿐 아가씨랑 악수하고 헤어졌는데

마음 속 한가운데서 뭔가 모를 약간의 서운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 통일이 되어서 그 아가씨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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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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