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지나 북쪽으로 700m 쯤 가다보면 

약간 돋우어진 둔덕 위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드는
특이한 형태의 석탑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석탑 주변으로 가까이 가서 문화재 안내판을 읽어보면
후미진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석탑이 국보 40호라는 점에 놀라게 된다.

정혜사지 13층 석탑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 파격성에 있다.
이 석탑은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위에 5.9m 높이로 13층이나 되는 몸돌을 올린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중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이다.

1층 탑 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탑의 1층 몸체에는 높이 131cm, 166cm인 모서리 기둥이있고,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다.
2층부터는 너비와 높이가 갑작스럽게 줄어들었으며 몸체돌과 지붕돌이 같은 돌로 만들어져 있어 그 양식이 특이하다.

지붕은 경사가 느린데 모서리는 볼록하고 처마 층급 받침은 3단이다.
석탑 주변에는 주춧돌과 기왓장들이 흩어져 있는 이곳은 정혜사터라 전하는데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어 
1962
년에 국보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폐사된지 오래인 정혜사터는 옥산서원과 독락당 주변의 운치있는 계곡과 숲들과 함께
여름이면 시원한 피서처로서,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면 호젓한 산책코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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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쭈욱쭉 뻗어나가는 서양의 잘 생긴 침엽수림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구불구불 뒤틀리고 굽은 기이한 모습의 소나무들이 많다.

현대판 솔거로 불리우는 배병우 작가의 사진으로 유명한 삼릉의 소나무처럼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소나 염소의 고삐에 매단 둥그스름한 고리를 이르는
순 우리말 <도래>의 모양에 빗댄 정겨운 순우리말이다.


천년고도 경주에서도 도래솔이 멋스런 곳은 삼릉과 경애왕릉, 정강왕릉, 헌강왕릉 등인데
그중에서도 절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안강읍 육통리에 위치한 흥덕왕릉이다.
안강읍을 벗어나 기계 사거리로 향하는 68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왼쪽에 나타나는 표지판, 흥덕왕릉.
눈에 잘 안 뜨여 그냥 스쳐 지나가기 일쑤일 정도로 작은 표지판이다.





도로라기 보다는 농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좁은 도로를 달려 육통리 마을길을 한참동안 가다가

어느집 뒷마당 같은 골목길을 꺾어 돌아서면 갑자기 거대한 솔숲이 앞을 가로막는다.





문화재 안내판 하나 외롭게 서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솔숲은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가 않다.






솔숲으로 올라서보면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한 수천그루의 도래솔.
키가 작으면서도 이리저리 꼬이고 뒤틀린 흥덕왕릉의 도래솔은 기묘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수천그루의 도래솔은 어느 하나 제대로 뻗어 있는 것이 없고
무엇이 그리도 고통스러운지 밑둥치와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까지도 심하게 뒤틀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어떤 도래솔은 뿌리는 다르지만 연리목처럼 서로 줄기를 맞대거나 서로 엉키어 있다.

금강송처럼 올곧게 자라서는 서로 만날 수가 없어서 이리도 서로 몸을 부대끼며 천년의 사랑을 이어온 것일까?




 

이곳에 누워있는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년)은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당나라에서 처음 차(茶)씨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게 한 왕이다.




흥덕왕과 그 왕비 장화부인에 얽힌 순애보는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흥덕왕의 부인 장화부인은 소성왕의 딸이니 흥덕왕에게는 조카가 되는셈인데
흥덕왕은 즉위 2개월 만에 사랑하던 왕비 장화부인을 잃게 된다.

왕비가 죽자 신하들은 왕조의 흥왕을 위해 흥덕왕에게 재혼을 권유해 보았지만
왕은 "앵무새도 짝을 잃고 혼자 슬퍼하다 죽는다"며 재혼을 거부하고 모든 즐거움을 멀리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10년 후, 왕비와 합장하라는 유언을 남긴 후 세상을 떠나게 되니
이곳에 왕비와 함께 합장되게 된다.
살아서는 너무나 짧아 안타까운 사랑이었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함께 부르는 천년의 사랑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신라왕릉 중 유일한 합장묘이고 애틋한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능원은 유달리 포근하고 아늑해 보인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능은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는데 왕비 장화부인과 함께 매장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1977년 발굴조사 때 상당수의 비편과 함께 '흥덕'이라 새긴 비의 조각이 나와 흥덕왕릉임이 밝혀졌다.



능의 밑둘레는 65m, 직경 22.2m, 높이는 6.4m이니 비교적 아담한 규모이다. 

둘레에는 호석에 십이지상을 새겼고 그 주위에 2단 돌난간(41개, 높이는 약 1.9m)을 설치했는데 
당시 호석과 십이지상의 변천 과정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십이지상도 거의 손상이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십이지상을 차례대로 소개해드리자면 쥐[子],  소[丑],





범[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잔나비[申], 닭[酉],
 




개[戌], 돼지[亥]이다.
 



능의 모서리에는 네마리의 돌사자를 세워 능을 보호하게 하였는데



특히 전면 동편 사자상의 목걸이를 자세히 보면 왕(王)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덤 앞 왼쪽에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비석을 받쳤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거대한 받침돌의 크기로 보아 비석의 크기도 상당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앞쪽으로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각각 2기씩 세웠는데 
신라묘제에서도 문인상과 무인상이 좌우로 완전하게 배치된 곳은 이곳 흥덕왕릉과 괘릉 뿐이다.





동편에 서있는 무인석을 보면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있는데
그 당시 당군(唐軍)에 소속된 서역인부대의 용맹성이 알려져서 그 상징으로 서역인을 세웠다는 설이 전해 온다.




서편의 무인석도 역시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편 앞쪽에는 문인석이 서 있고




서편에도 역시 문인석이 서 있는데 뒷편으로 구불구불하게 자라거나 쓰러져 자라는 도래솔들은 한폭의 그림이다.





무덤을 둘러싼
도래솔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서역인 모습의 무인석과 함께 천년의 사랑을 지켜온 것처럼
무덤 위에도 각가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보듯이.......


 


살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라도 함께 부르려 했던 것일까?
비록 두 사람의 육신은 썩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을지라도 영혼은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러 있으리라.
천년을 하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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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 바로 옆에는 회재 이언적 선생의 종갓집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종택은 선조 34년인 1601년에 회재 이언적 선생의 손자 휘와 준,순 두 형제가 세운 집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은 중종 33년인 1538년에 청백리에 가자되기도 했는데
청백은 공경지심에서 나온다 하여 후손들은 본 집을 경청재(敬淸齋)라고 이름하였다.

경청재의 사랑채인 독락당(獨樂堂)은 개인 살림집으로는 유일하게 보물 413호로 지정된 집인데
중종 27년인 1532년에 회재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 두고 내려와 지은 집이니
경청재보다는 사랑채인 독락당이 먼저 지어진 셈이다.

옥산서원을 돌아본 후 경청재 앞에 서니 위엄있게 버티고 있는 솟을삼문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다. 
문 앞에 서있는 아름드리 벚나무는 이제 막 꽃 피울 준비를 마쳤다.
열흘만 늦게 왔더라면 솟을삼문 앞에 드리워진 벚꽃의 아름다운 자태를 담아올 수 있었을텐데......

경청재의 솟을삼문을 지나 독락당으로 향하는 좁은 돌담길은 신비함마져 감돈다.
황토와 기와, 돌을 이용해서 지은 돌담과 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바닥,
그리고 담장을 뚫고 비스듬히 자란 나무등걸.....모두가 그대로 자연의 일부분이다.

문이 닫긴 종택의 안마당에는 샛노란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찾아오는 이를 반긴다.
이 종택은 지금도 이언적 선생의 후손들이 기거하는 곳인지라
안으로 들어가 종택의 여기저기를 상세하게 살펴볼 수 없는 점이 너무 아쉽다.
독락당으로 향하는 돌담길과 바로 옆 계곡 만이 개방되어 있어 찾는 이들이 돌아볼 수 있을 뿐이다.

고택 안에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었는데도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볼 수 없는 서운함에
까치발을 하고 담장 너머로 팔을 길게 뻗어 찍은 산수유 사진 몇장과 함께 경청재의 봄소식을 전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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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반월성, 안압지, 대릉원, 불국사, 석굴암.......
국보급 유물과 유적이 넘치다 못해 발끝에 채이는 신라 천년 고도 경주.
신라 도읍지인 경주에는 의외로 조선 시대 문화 유산도 많다.

그중에서도 눈에 뜨이는 곳은 작년 8월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 유엔국제과학문화기구)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안동 하회 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안게 된 양동마을.
그리고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강 옥산서원이다.





경주 안강읍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28번 국도에서 약간 벗어나서 옥산리로 들어서면 
시원하게 펼쳐진 너럭바위와 그림같이 흐르는 물줄기를 거느린 유서깊은 서원 옥산서원을 만나게 된다.





옥산서원 앞에 이르니 봄햇살이 너무나 따사롭다.
고개를 들어 역락문 앞 고목을 보니 앙상하던 나뭇가지에도 이제 꽃봉오리 터질 준비가  다 되었다.






사적 제154호로 지정된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선조 5년인 1572년에 경주 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한 서원이라고 한다.





서원의 정문인 역락문을 살며시 밀어본다.
삐거억.....소리에 놀라 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선다.

 




역락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앞에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누각 무변루(無邊樓)가 가로막고 있다.
문들이 다 닫혀 있어 상당히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서원 안쪽에서 보면 문이 없는 이층 누각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 특이한 형태이다.





무변루 아래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나즈막한 야산을 뒤로 두르고 들어 앉은 서원의 마당이 나타난다.






정면에 자리잡은 건물은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때 사용하는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이고
좌우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은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닦는 곳인 민구재,은수재이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체인묘,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실,
이언적의 신도비를 모신 신도비각, 이언적의 문집 및 판본을 보관하던 경각, 판각 등이 있다.





1572년 창건한 옥산서원은 1574년에 선조대왕으로 부터 편액,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사액(賜額)서원이 되었는데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구인당의 정면에 걸린 옥산서원의 편액(扁額)은 원래 이산해의 글씨였으나,
1839년 불에 타버린 구인당을 새로 지을 때에 추사 김정희가 다시 쓴 글씨라고 한다.




경주와 포항 사람들에게 옥산서원은 보배같은 휴식처이다. 

서원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와 맑은 개울물이 펼쳐지고
회재 이언적 선생이 수학하던 독락당도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찾아오는 이를 반겨준다.

 




특히 서원 바로 앞에 넓게 펼쳐진 너럭바위 사이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사시사철 흐르는데
타는 듯이 더운 여름날에도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나무 그늘 밑에서 부채질을 하면 금새 등줄기에 맺힌 땀이 다 말라버린다.




그림같이 펼쳐진 너럭바위와 드리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옥산서원의 멋진 풍경은 
사진 동호인들이나 화가들에게 너무나 좋은 피사체이다.





이날도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을 멋진 필치로 화폭에 옮겨 담는 화가들을 만났다.




하얀 화선지 위에 슥슥슥.......붓을 움직이면 산이 펼쳐지고 서원이 세워지고 나뭇가지도 구불구불 자라난다.

눈 앞에 펼쳐지는 옥산서원, 그리고 화가의 예리한 붓끝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옥산서원.
경치도 그림이 되고.......그림도 경치가 되고......하나로 녹아들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사시사철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 바로 안강 옥산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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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에 다녀오는 길, 마을을 나서니 해도 어둑해지고 배도 출출해진다.
밥이라도 먹고 가야할텐데.....어디로 가서 먹지......? 
생각하다 양동 마을에서 가까운 안강 읍내로 핸들을 돌린다.

이웃인 박씨 아저씨께서 <어머니의 손길이 그립거든 옥천식당으로 가라~>고 하는 제목과 함께
안강에서 유명하다는 옥천 식당을 블로그에 소개하셨던 글이 문득 기억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질녘이 되어 이미 사방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안강 사거리에서 영천 가는 길에 위치한 옥천식당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옥천식육식당이라고 쓰인 간판 옆에 돼지찌개 전문이라고 크게 쓰인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외관상으로는 여자들보다는 남자분들이 얼큰하게 소주 한잔 걸치며 식사하기에 알맞은 집 같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니 탁자 예닐곱개가 놓여있는 실내는 다소 어수선하기까지 한데 식당 안에는 제법 손님들이 많다.

식당의 메뉴는 소고기 찌개 8,000원, 곱창 찌개 5,000원, 돼지 찌개 5,000원 딱 세가지이다.
돼지 찌개가 이 식당의 전문이라기에 2인분을 시키니 
금방 프라이팬에 담긴 돼지 찌개가 나온다. 




반찬은 너무 간단하다. 김치와 삭힌 고추 장아찌 달랑 두 가지.




그리고 뚝배기에 육수가 가득 한 그릇이다.





돼지 찌개 2인분이 담긴 프라이팬을 들여다 보니..... 와! 정말 고기가 많다!



보통 돼지 찌개에는 기본적으로 김치와 두부 등이 들어가고 고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의 프라이팬에는 김치나 두부는 없고 담긴 재료는 돼지 고기, 대파, 그리고 마늘  뿐이다.
크게 숭숭 썬 돼지 고기가 프라이팬에 한가득이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불러오려고 한다.



이미 박씨 아저씨의 글에서 조리법을 본 적이 있는지라 주인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준비된 주걱으로 돼지 고기를 슥슥 볶아본다.





대충 대충......이리 저리......뒤적뒤적......프라이팬에 담긴 재료들을 볶으니
고추가루와 마늘이 잘 어우러져 보기에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이 돈다.




돼지고기를 대충 볶아서 익힌 후에 준비된 육수를 프라이팬에 투입했다.

이미 달구어진 프라이팬인지라 찬 육수를 부었는데도 얼마 가지 않아 금방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프라이팬 가장자리로 잔 방울이 끓어오르고 가운데로는 붉은 거품이 일어나며 맛나게 끓는다.





끓는 소리도 먹음직스럽다. 보글보글보글보글.......
한참 익힌 후에 주걱으로 떠서 고기의 상태를 살펴본다. 음....이 정도면 먹기에 알맞은걸...?





금방 지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 위에 고기 몇점 올려놓아본다. 

밥과 함께 익힌 고기를 입에 넣으니 두툼한 살점이 입 안에서 씹히는 맛이 좋다.



대충 고기와 국물을 건져 먹고 난 뒤에 이렇게 밥을 넣어 볶아도 본다.
여기선 다른 식당에서와 같이 종업원이 볶아주지는 않는다.
찌개만 먹든.....국물을 다 먹고 비벼서 먹든......그건 손님들 마음대로라니까....

밥을 볶은 후 살짝 눋게 해서 프라이팬에 눌어 붙은 누룽지를 긁어 먹는 맛도 나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 집의 음식은 참 촌스럽기 그지 없고 서비스는 퉁명스럽기까지 하다.
프라이팬에 담긴 돼지 고기며, 어설픈 반찬,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식당 내부, 손님이 조리해 먹어야 하는 찌개......
하지만 프라이팬에 담겨 나온 두툼한 고기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것들은 다 용서된다.
거기다 찌개 5,000원, 공깃밥 추가 6,000원에 뜨끈한 돼지 찌개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 같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저녁 무렵엔 더욱 생각나는 뜨끈한 돼지 찌개.....
어머니가 차린 저녁상에 올린 찌개의 맛이 그리우신 분은 옥천 식당으로 가보시길.....^^ 


올려드린 맛집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모든 리뷰는 전혀 댓가를 받지 않고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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