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에서 자계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언덕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언덕에 올라 숲 어귀에 서서 옥산서원을 내려다보는 풍경도 참 평화로워 보인다.

서원을 나와 독락당으로 가기 위해 큰길인 옥산서원길을 두고 자계천 옆으로 이어지는 세심길로 걸어가본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농촌 양옥들이 늘어서 있는 마을길을 따라 걷다보면 담벼락에 핀 꽃 한송이도 너무 정겹다.

 

 

 

 

독락당 앞에 이르니 기와집 담장 옆 감나무 아래에서 감따기가 한창이다.

보아하니 집주인은 아니고 온 가족이 감따기 체험을 하러 왔나보다.

아이는 감따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고 투덜거린다. 세상에 쉬운건 없는가 보다.


 


 

감따는 풍경과 마을 앞 조그만 난전 구경을 한후 회재 이언적 선생의 사랑채 독락당으로 향한다.

대문과 길은 서로 수직으로 앉는게 보통인데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길과 대문은 희한한 관계이다.

대문이 길을 외면하듯 무심하게 비켜 앉아 있는데 이는 대문 안을 함부로 보지 않게 하는 배려인 듯......


 



경청재를 지나 작은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만나는 희한한 공간, 계곡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도 가을빛이 드리웠다.

커다란 향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고 담장을 쌓아 더욱 자연스러운 멋이 우러나는 공간이다.


 


 

골목을 나와 반석으로 된 계단을 내려오니 독락당의 정자 계정과 자계천이 어우러진 풍경이 가히 그림이다.

계곡을 향해 살포시 들어앉은 계정 아래 반석 사이로 수정 같이 맑은 물이 졸졸졸 흘러내린다.

 

 

영화 제작자들은 어쩌면 이렇게 숨어 있는 멋진 장소들을 곳들을 속속들이 찾아냈을까?

계정 앞 계곡 또한 옥산서원 세심대와 마찬가지로 영화 '역린'의 한장면으로 등장한다.

정순왕후(한지민)이 이동식 목간통을 만들어 목욕하는 곳으로 혜경궁 홍씨(김성령)가 찾아오는 장면이다.

 

구중궁궐의 대왕대비가 어찌 화려한 목간통을 야외에 지어놓고 옷 벗고 유유자적했으랴만

영화는 영화일 뿐......딴지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계정 앞을 흐르는 자계천 맑은 물 속에도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거울같이 맑은 자계천에 비친 가을나무들은 흐르는 물에 미동도 하지 않고 마지막 자태를 뽐낸다.


 


 

절반은 집 안 쪽에 있고 절반은 계곡에 들어와 앉은 독락당의 정자 계정.

이곳에 앉아 쉬던 이는 사람이 살던 세상과 자연의 경계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아니.....이곳에서 사람이 사는 세상보다 그림같은 자연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을 것이다.

 


Copyright 2014.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11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들었다. 북쪽에서는 불어오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이지만

따스한 남쪽나라(?) 경주에서 11월 중순은 가을의 절정, 일년중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다.

 


 

 

토요일 흐리고 비가 와서 단풍 구경을 나서지 못해 아쉬웠는데 일요일이 되니 날이 화창해진다.

점심 후  집에서 나와 느긋한 발걸음으로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인근 옥산서원으로 향했다.

경주에서 출발하여 안강 읍내를 벗어나 28번 국도 호국로를 타고 가다 화물차 계측소 지나서 우회전,

양쪽에 은행나무가 줄서 있는 옥산서원길로 접어들어 2km쯤 진행하면 옥산서원이 있는 옥산2리이다.


 

 

 

시골 내음이 풍기는 마을, 옥산2리. 정겨운 벽화길에도 가을햇살이 아련하게 비추인다.

 


 

 

마을 벽화를 보며 길을 걸어가는데 머리 옆으로 뭐가 툭~!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놀라 옆으로 비켜 보니 감나무에서 농익은 홍시감이 저절로 바닥에 떨어져 묵사발이 되었다.

1/10초만 빨리 떨어졌더라도 머리에 홍시 세례를 받을 뻔 했다. 무셔라.....!

 


 

 

옥산서원 바로 입구에 이르러 보니 서원 뒷산의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

소나무 보다 잡목이 더 많은 뒷산은 마치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은 듯 하다.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에 옥산서원과 인근 독락당도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72년에 세운 서원이다.

경내에는 사당인 체인묘, 구인당,동재(민구재), 서재(암수재),무변루, 역락문, 어서각,회재선생 신도비들이 있다.

 


 

 

무변루를 거쳐 중심 건물인 구인당 앞에 이르니 한무리의 사진가들이 모여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동호회원 중 한분이 모델이 되어 도포와 정자관을 쓰고 옥산서원 현판 아래 서니 

사진가들이 일제히 셔터를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하기 그지없다.


 


 

서원도 서원이지만 이곳 옥산서원은 서원 옆 너럭바위처럼 펑퍼짐한 암반이 장관이다.

회재 이언적이 '세심대(洗心臺)'라 이름하였다는 이곳에서 정조 때 초시도 치뤄졌다고 한다.   


 

 

 

독락당에서 흘러온 자계천은 세심대를 만나 폭포를 이루고 도랑처럼 깊에 파여진 소, 용추를 만들었다.

때마침 어제 비가 온지라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옥산서원에서 회재 선생의 사랑채인 독락당으로 가려면 자계천 반석 위에 걸쳐진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영화 '역린'중 삿갓을 쓴 을수(조정석)과 월혜(정은채)가 만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외나무다리는 흔들리지도 않고 제법 든든하지만 발 아래 계곡물을 내려다보면 저절로 오금이 저려온다.

발 아래 흐르는 물을 애써 외면하며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이어지는 독락당의 가을 속으로 들어가본다.


Copyright 2014.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을 거쳐 옥산서원을 가는 길에 안강으읍에 위치한 외바우식당에 들러보았다.

안강 맛집을 검색하던 중 많은 사람들이 올린 리뷰글이 필자의 발걸음을 인도했기 때문이다. 


 



안강읍 산대리 2402-6(구부랑3길 12)로 네비를 찍고 식당 앞에 이르니 식당을 소개하는 글들이 화려하다.

2대 45년간에 거쳐 화끈한 맛을 선보여 온 곳이라고 하니 그 맛이 어떨까 들어가기도 전에 궁금해진다.





외바우 지식경제부장관상 수상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으뜸음식점 인증도 받았다니 왠지 믿음이 간다.

식당 내부는 상당히 크고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 곳과 테이블에 의자로 된 곳 등 다양한 크기의 방도 준비되어 있다. 

놀이터도 준비되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분들은 편안한 식사를 즐길 수 있을 듯......





테이과 의자로 되어 있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방으로 안내되니 벌써 상차림이 베풀어졌다.

오늘의 메뉴는 낙지, 불고기, 삼겹살, 버섯등이 들어간 '버섯낙물삼 철판볶음'. 1인분에 12,000원이다.

 




그런데 너무 배고픈 상태로 간지라 미쳐 사진도 찍기 전에 신나게 버섯낙불삼을 재빠르게 섞어버렸다.

낙지, 불고기, 삼겹살 위에 새송이버섯, 표고버섯, 팽이 버섯 등이 올려진 비쥬얼이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는데....ㅠㅠ

하는 수 없이 섞다 말고 지저분한 상태로나마 한컷 찍어 보았다.

 

 

 

 

사각 쟁반에 담긴 채로 서빙이 된 기본 반찬들은 매우 정갈하며 맛도 수준급이다.

 


 






 

 

둥근 철판에 담긴 낙지, 불고기, 삼겹살, 버섯 등을 이리 저리 섞으니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금새 먹음직스러운 색깔이 나온다.



 

 

색깔 한번 대박이다. 화끈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주 좋아할 색깔이다.

사람 잡아먹을 듯 완전 빠알간 색의 낙불삼 볶음이 "어디 한번 날 먹어봐라~"하고 유혹을 하는 듯 하다.

 

 

 

 

이 정도라면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들은 먹기가 힘들 것 같다.

낙불삼 철판 볶음은 매운맛, 보통맛, 순한 맛이 있다고 하니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들은 순한 맛으로 주문하면 될 듯.

 


 

 

물 없이 자작하게 볶아진 버섯낙불삼 철판볶음을 앞접시에 담으니 하얀 그릇과 어울려 보기가 그럴싸하다.

 


 

 

자! 이제 밥과 함께 상추에 싸서 입안으로 가져갈 때다. 한입 베어무니 정말 매콤하다.

낙지와 불고기, 삼겹살, 각종 버섯 등이 양념과 어우러져 달달하면서도 화끈한 맛을 내준다.

처음에는 입이 얼얼하도록 매운데 상추와 함께 싸서 호호거리며 먹다보니 어느새 철판의 바닥이 드러난다.

 


 

 

낙불삼을 어느 정도 먹었으니 마지막으로 밥을 비벼먹을 때다.

밥공기를 그대로 철판에 엎어 슥슥 비비니 보기 좋은 철판비빕밥이 되었다.

 


 

 

매뭐서 호호거리면서도 낙불삼 철판볶음을 다 해치우고

철판비빔밥까지 싹싹 긁어서 먹고나니 배가 너무 불러 저절로 허리가 뒤로 젖혀진다.

 


 

 

반찬까지 깡그리 다 비우고 어지러진 테이블 위를 찍을 때가 가장 재미있다.

비록 tvn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의 '식샤'님이 아니더라도 빈 그릇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이 음식이 참 맛잇습니다....라는 장황한 말보다는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여기에 올려드린 맛집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모든 리뷰는 전혀 댓가를 받지 않고 작성되었음을 밝혀드립니다.


Copyright 2014.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하늘을 향해 쭈욱쭉 뻗어나가는 서양의 잘 생긴 침엽수림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구불구불 뒤틀리고 굽은 기이한 모습의 소나무들이 많다.

현대판 솔거로 불리우는 배병우 작가의 사진으로 유명한 삼릉의 소나무처럼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소나 염소의 고삐에 매단 둥그스름한 고리를 이르는
순 우리말 <도래>의 모양에 빗댄 정겨운 순우리말이다.


천년고도 경주에서도 도래솔이 멋스런 곳은 삼릉과 경애왕릉, 정강왕릉, 헌강왕릉 등인데
그중에서도 절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안강읍 육통리에 위치한 흥덕왕릉이다.
안강읍을 벗어나 기계 사거리로 향하는 68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왼쪽에 나타나는 표지판, 흥덕왕릉.
눈에 잘 안 뜨여 그냥 스쳐 지나가기 일쑤일 정도로 작은 표지판이다.





도로라기 보다는 농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좁은 도로를 달려 육통리 마을길을 한참동안 가다가

어느집 뒷마당 같은 골목길을 꺾어 돌아서면 갑자기 거대한 솔숲이 앞을 가로막는다.





문화재 안내판 하나 외롭게 서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솔숲은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가 않다.






솔숲으로 올라서보면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한 수천그루의 도래솔.
키가 작으면서도 이리저리 꼬이고 뒤틀린 흥덕왕릉의 도래솔은 기묘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수천그루의 도래솔은 어느 하나 제대로 뻗어 있는 것이 없고
무엇이 그리도 고통스러운지 밑둥치와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까지도 심하게 뒤틀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어떤 도래솔은 뿌리는 다르지만 연리목처럼 서로 줄기를 맞대거나 서로 엉키어 있다.

금강송처럼 올곧게 자라서는 서로 만날 수가 없어서 이리도 서로 몸을 부대끼며 천년의 사랑을 이어온 것일까?




 

이곳에 누워있는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년)은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당나라에서 처음 차(茶)씨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게 한 왕이다.




흥덕왕과 그 왕비 장화부인에 얽힌 순애보는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흥덕왕의 부인 장화부인은 소성왕의 딸이니 흥덕왕에게는 조카가 되는셈인데
흥덕왕은 즉위 2개월 만에 사랑하던 왕비 장화부인을 잃게 된다.

왕비가 죽자 신하들은 왕조의 흥왕을 위해 흥덕왕에게 재혼을 권유해 보았지만
왕은 "앵무새도 짝을 잃고 혼자 슬퍼하다 죽는다"며 재혼을 거부하고 모든 즐거움을 멀리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10년 후, 왕비와 합장하라는 유언을 남긴 후 세상을 떠나게 되니
이곳에 왕비와 함께 합장되게 된다.
살아서는 너무나 짧아 안타까운 사랑이었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함께 부르는 천년의 사랑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신라왕릉 중 유일한 합장묘이고 애틋한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능원은 유달리 포근하고 아늑해 보인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능은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는데 왕비 장화부인과 함께 매장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1977년 발굴조사 때 상당수의 비편과 함께 '흥덕'이라 새긴 비의 조각이 나와 흥덕왕릉임이 밝혀졌다.



능의 밑둘레는 65m, 직경 22.2m, 높이는 6.4m이니 비교적 아담한 규모이다. 

둘레에는 호석에 십이지상을 새겼고 그 주위에 2단 돌난간(41개, 높이는 약 1.9m)을 설치했는데 
당시 호석과 십이지상의 변천 과정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십이지상도 거의 손상이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십이지상을 차례대로 소개해드리자면 쥐[子],  소[丑],





범[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잔나비[申], 닭[酉],
 




개[戌], 돼지[亥]이다.
 



능의 모서리에는 네마리의 돌사자를 세워 능을 보호하게 하였는데



특히 전면 동편 사자상의 목걸이를 자세히 보면 왕(王)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덤 앞 왼쪽에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비석을 받쳤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거대한 받침돌의 크기로 보아 비석의 크기도 상당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앞쪽으로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각각 2기씩 세웠는데 
신라묘제에서도 문인상과 무인상이 좌우로 완전하게 배치된 곳은 이곳 흥덕왕릉과 괘릉 뿐이다.





동편에 서있는 무인석을 보면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있는데
그 당시 당군(唐軍)에 소속된 서역인부대의 용맹성이 알려져서 그 상징으로 서역인을 세웠다는 설이 전해 온다.




서편의 무인석도 역시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편 앞쪽에는 문인석이 서 있고




서편에도 역시 문인석이 서 있는데 뒷편으로 구불구불하게 자라거나 쓰러져 자라는 도래솔들은 한폭의 그림이다.





무덤을 둘러싼
도래솔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서역인 모습의 무인석과 함께 천년의 사랑을 지켜온 것처럼
무덤 위에도 각가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보듯이.......


 


살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라도 함께 부르려 했던 것일까?
비록 두 사람의 육신은 썩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을지라도 영혼은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러 있으리라.
천년을 하루같이......



Copyright 2011.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글이나 사진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