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블로거의 포스트를 통해 최근에야 개방된 아름다운 수원지가 양산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위치한 <법기수원지>.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서 1932년까지 5년여에 걸쳐 만들어진 이 수원지는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된 적 없다가

201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방되어 80년간 감추어졌던 수원지의 비경을 비로소 드러내게 되었다고 한다.

양산IC에서 빠져나와 양산대학 교차로를 거쳐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위치한 법기수원지 입구에 이르니

수원지 안에는 전혀 주차시설이 없으니 입구 도로 한쪽에다 차를 주차하라는 안내문이 나온다.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주말인데도 그다지 차량이 많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게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수원지 입구에 들어서니 아름드리 히말라야시다 나무와 함께 하늘을 찌를 듯한 편백나무 숲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들어서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압도하는 쭉쭉 뻗은 나무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수림지 내 나무는 7종에 총 644그루라고 하는데 그중 59그루의 히말라야시다와 편백나무 644그루가 가히 압권이다.

 

 

 

 

좌우로 사열하듯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들은 모두가 수원지 조성 당시에 심겨진 나무들로

수령이 거의 80년 ~ 130년 정도라는데 대부분 아주 잘 자랐다.

 

 

 

 

편백나무숲 끝부분에는 별장처럼 아름다운 집이 한채 서 있어 가까이 가 보니 화장실이다.

예전에는 직원들의 관사로 쓰였던 집이었지만 지금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로 개조했다고 한다.

 

 

 

 

편백나무 숲 사이로 드리우는 오후의 나무 그림자가 너무 따스해보여 선뜻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숲에 머무르며

나무로부터 뿜어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음껏 들어마시니 절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듯 하다.

 

 

 

 

편백나무숲 옆에 다른 나무가 일열로 심겨져 있기에 자세히 보니 추자(호두)나무이다.

편백나무와 추자나무 아래에는 예쁜 모양의 벤치도 많이 놓여 있어 

지친 다리도 쉬어가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눌 수 있어 너무 좋다.

 

 

 

 

댐은 편백나무숲 옆에 자리잡고 있는데 총 길이 260m에 높이 21m로 흙을 쌓아 만들어진 댐이다.  

지금으로부터 86년전인 1927년 12월 20일자 동아일보에는 양산 법기리 상수원지 기공식 소식과 함께

수몰지 주민의 이주대책과 생계 문제를 거론한 기사가 크게 실리기도 한 것을 보아

그 때에도 이 수원지 댐 공사가 국가적인 대규모 토목공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댐 아래에 서서 위로 서서 보니 계단이 까마득하다.

중앙에서 댐마루를 향해 사선으로 가로질러 놓여 있는 '하늘 계단'은 총 124계단!

80년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댐에 거슬리지 않게 겸손한 모습으로 방문자를 맞이하고 있다.

 

 

 

 

하늘계단을 오르다 멈춰 댐 마루를 올려다보니 그림같은 반송들이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댐마루에 올라 아래를 보니 댐마루 아래 숲들이 한눈에 펼쳐져 보인다.

 

 

 

 

활엽수가 별로 없어 단풍 구경은 별로이지만 풀 한포기에서도 가을 느낌이 난다.

 

 

 

 

댐마루에 오르니 수원지의 물보다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댐마루 여기저기에 서 있는 법기반송들이다.

 

 

 

 

반송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땅에서부터 '여러 갈래의 줄기로 갈라져 쟁반처럼 자란다'하여

'소반(쟁반) 盤'을 사용하여 '반송(盤松)'이라고 한다.

 

 

 

 

법기수원지 둑마루에는 7그루의 반송이 있는데 호수와 어우러져 그 자태가 일품이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수원지댐 건설 당시(1927~1932)에 옮겨 심어 수령은 약 130년이다.

이 반송을 옮겨심을 당시 벌써 나무의 수령이 50년 이상 되어서 어른 20명이 목도하여 댐 위로 옮겨심었다고 전한다.

 

 

 

 

구불구불 너무나 잘 자란 반송들은 그 가지를 옆으로 마음껏 뻗고 있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갈 때는 머리를 숙여서 가지 아래로 지나야 하는데 그것 또한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반송 앞으로 펼쳐지는 수원지는 폭은 그다지 넓어보이지 않는데 건너편 산들과 어울려 너무 고즈녁하다.

 

 

 

 

맑디맑은 호숫물에는 건너편 산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 은빛 물결과 함께 가을산들이 미소짓는 듯 하다.

 

 

 

 

 

 

 

수원지 호수 우측면에 연하늘색 탑 하나가 서 있어 다가가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취수탑이다. 이 취수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 된 탑이라고 한다.

 

 

 

 

약간은 아쉬움이 남지만 법기수원지의 관람 코스는 여기까지가 끝이다.

전체 680만 평방미터 중에서 댐과 수림지 2만 평방미터에 한하여 전격적으로 개방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구역은 수원지 보호를 위해 개방이 제한되었다고 한다.

수원지가 비록 일제의 주도하에 건설되었지만 실제 댐 건설의 주역은 강제 동원되었던 우리의 선조들이다.

근현대의 격랑 속에서 우리와 함께 온갖 풍상을 함께 겪어온 근대 문화 유산이니 잘 보존되어야 할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히말랴야시다도 편백나무숲도 아름답지만 뭐니뭐니해도 법기수원지의 아름다움은

댐마루의 반송과 호수가 어우러져 그려내는 그림같은 풍경이다.

거기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힐링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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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호령하던 몽골 왕의 일상은 어떠 했을까?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거처하던 복드 칸 궁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마지막 복드 칸이 몽골사회주의 이전까지 왕비와 함께 20년간 머물렀던 복드 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왕의 거처인 겨울궁전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과 왕비의 의복이나 침대 같은 화려한 수공예품이나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궁전은 궁전 안 7채의 라마 사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하얀 서양식 건물로 되어 있다.
이 겨울궁전은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것으로 
왕과 왕비의 유품과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입장료의 4배나 되는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실내의 전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조명이 어두운데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가 힘든 곳이었다.


 



 게르에서 생활하던 벅드 칸이지만 그의 유품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복드 칸과 왕비 뿐 아니라 대비의 휴식용 침대도 흑단과 비단으로 장식한 화려한 침대이다.




복드 칸의 황금색 델(Deel, 몽골 전통 의상을 델이라고 한다)에는 황룡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고




복드 칸 의복의 바깥 부분에는 양단에 용을 산호와 진주로 정교하게 상감해 넣었다.




왕비의 델과 모자도 정말 아름답다. 전체가 너무나 정교한 수로 뒤덮여있다. 하나를 수놓는데도 몇년이 걸리지 않을까?





은과 진주로 장식한  대비의 델(Deel)과 신발(고탈,Gutul).
몽골의 전통 신발인 고탈은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게 특징이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발의 좌우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나?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머리 장식.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인데 몽골사람들의 머리에 쓴 모자나 장식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다.





복드 칸이 종교 의식 때 입던 의복과 의식에 쓰이는 도구들.
몽골의 왕인 복드 칸은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이기 때문에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다.




복드 칸과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옥좌. 가운데 태극 문양은 몽골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복드 칸의 보좌 앞에 불전함이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폐가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왕이자 라마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복드 칸을 생불(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하는 라마 불교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왕실에서 쓰이던 삼발이 화덕인데 독립 국가 몽골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한 방에는 이렇게 화려한 복드 칸의 침대가 놓여 있는데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공예품이다.




바로 옆에 놓여진 왕비의 침대 역시 흑단으로 정교하게 아로새겼다.




그 외에 이렇게 중국 풍의 자기들도 눈에 뜨인다.




연회에 쓰이던 대형 접시.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그려져 있는 접시이다.




오른쪽은 화병, 왼쪽은 아이락(aikag, (馬乳酒))을 마실 때 쓰는 사발이다.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서 만드는 아이락은 발효되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며
기포가 솟아오르며 술이 되는데 맛은 우리나라 막걸리 같이 약간 비릿하고 시금털털한 맛이다.





6~7도의 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락을 몽골 사람들은 술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여서
이렇게 세숫대야만한 잔에 담아 두 손으로 들고 마신다.





복드 칸의 소장품 중에슨 이렇게 뮤직 박스도 있다. 뮤직 박스 안에는 유럽 클래식 음악 8~10곡이 내장되어 있다고.......




복드 칸이 선물받은 코끼리.




코끼리의 의상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의식 때 쓰이던 코끼리 의복도 궁전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들었단다.





복드 칸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안장과 게르 모형.
게르 모형이 얼마나 귀여운지.....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것 같다.





벅드 칸이 5세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배라고 한다. 장난감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하다.





전시품 중에는 이렇게 진귀한 동물의 박제가 많다. 모두가 복드 칸의 즉위식 때 이웃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양산과 전용 마차도 한쪽에 다소곳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화려한 게르가 눈에 뜨인다. 게르 앞에 진열된 복드 칸의 양산은 전부 공작 깃털로 만들어졌다고.....




김수미가 보았으면 하악대며 좋아했을 듯한 너무 멋진 표범 무늬 게르.
가까이 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게르를 덮은 가죽은 진짜 눈표범(Leopard) 150 마리의 가죽으로 이루어졌단다!
갑자기 게르의 덮개로 일생을 마친 눈표범들이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자연 보호 관념이 없던 옛날의 일이니 용서해야겠다.

복드 칸이 야외로 나갈 때 쓰는 이 게르는 그가 25번째 생일에 선물받은 게르라고 한다.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몽골 세밀화이다.

이슬람 세밀화에 많은 영향을 준 몽골 세밀화는 그 표현법과 정교하기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보고 있는 듯한 몽골 세밀화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있노라며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위의 그림은 '아이락 축제'를 그린 것으로 B. Sharav(1869~1939)의 작품인데

아이락 축제가 벌어지는 주변의 모습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해서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몽골의 성 풍속도도 짐작할 수 있는데
충격적이라고 표현할만한 몽골의 성풍속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상세한 세밀화 그림과 함께 소개해 두었으니 아래 링크를 눌러보시기 바라며......

관련 포스트 : 충격적인 성묘사의 몽골 세밀화





B. Sharav가 그린 '겨울궁전' 세밀화를 보면 과거 복드 칸 궁전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맨 앞의 푸른 지붕과 하얀 벽의 건물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궁전 앞에는 엄청나게 큰 무쇠솥도 전시되어 있어 당시 궁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 인한 왕가의 몰락으로 이제 왕과 왕비가 궁전을 거니는 모습은 비록 볼 수 없고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 칸이 거닐던 정원에는 마른 풀만 무성히 자라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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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봄꽃들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겨우 내내 추운 것을 핑게로 카메라에 바람을 자주 쐬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봄꽃이나 한번 찍으러 가볼까....하여 여기저기 검색을 해 보았다.

 

봄꽃 출사지로 유명한 곳을 알아보니 지금 한창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날 철이란다.

넓은 백사장과 매화가 잘 어우러지기로 유명한 섬진강 매화 마을이 그 중에 1순위로 떠올랐으나

경주에서 출발해서 돌아보고 오기엔 너무 일정이 빡빡한지라 양산에 위치한 순매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순매원은 낙동강 하구를 따라 아름답게 피어난 매실농원 옆으로 KTX가 지나가는 풍경을 담기 위해

주말이면 수많은 사진 동호인들이 찾는 곳이다.

사진 전문가이신 이웃 블로거님의 멋진 사진을 보고 항상 탄복해온지라

나도 이번 기회에 그분과 비슷한 멋진 사진을 한번 담아보리라 생각하고 자리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꽃샘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3월 중순에 때아닌 한파 주의보까지 내린 상황이란다.

가지말까....?

잠시 고민되었지만 이번 주말을 넘기면 또 다음 주말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 때까지 매화들이 얌전히 날 기다려줄지가 의문이라

옷깃을 파고들어오는 날카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순매원으로 향했다.

 

순매원에 당도하니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사진 포인트는 두 곳. 1번과 2번 포인트이다.

KTX가 산허리를 돌아서 순매원 옆을 지나가며 S라인을 그리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1번 포인트는

막상 장소에 도착해보니  아침 나절에는 역광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낙동강을 왼쪽에 끼고 철로가 직선으로 뻗어있는 반대편 2번 포인트로 가보았다.

 

벌써부터 삼각대를 벌리고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진사님들....

좁은 언덕배기에는 내 삼각대를 놓을 곳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가족들은 주차장에 있으라고 하고 진사님들의 바로 옆을 비집고 들어가

눈치를 보며 살짝 삼각대를 펼쳐 놓았다.

 

카메라를 켜고 세팅을 하려고 하는데 KTX 한대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지라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하지만 기차는 자주 오고 가니깐....하면서 세팅을 마치고 기차를 기다려 보았다. 

 

 

렌즈를 이리 저리 돌려보아도 파인더에 잡히는 경치가 영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서고 싶은 좋은 장소는 다른 분들이 이미 선점하고 있는지라 

할 수 없이 연습하는 셈치고 서있던 자리에서 찍어보기로 했다.

 

내 옆에는 니콘 D-700을 비롯해서 으리으리한 장비를 벌려놓은 아저씨 몇 명이 서 있어서

저급한 카메라를 버티어 놓고 있던 나는 약간은 기가 죽기도 했는데... 

내 옆에 있던 아저씨, 지루했던지 인사도 없이 내 카메라 뷰 파인더를 스윽...들여다 본다.

아니...이건 대체 뭥미..?

구도 잘 못 잡았다고 한 수 가르쳐 주려나...하고 기다렸더니

그 아저씨....아무 말도 안 하고 자기의 망원 렌즈를 빼더니 백에서 다른 렌즈를 슬그머니 꺼내 다시 장착을 한다...^^;;

 

막상 기다리고 있으니 이십분 이상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애태우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기차 온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니 모두 황급히 스탠바이한다. 

 

 

 기차는 갑자기 눈 앞을 지나가고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작렬을 하는데

"거...앞에 있는 아저씨~~ 빨랑 비키소~~!!"

앞에서 눈치 없이(?) 얼쩡대다 앵글에 잡힌 한 진사분에게 질책이 쏟아진다. 

 

 

 헉.....하며 사태를 파악하신 아저씨, 총알같이 허리를 수그리고....

카메라들의 셔터 소리는 더욱 세게 작렬한다. 

 

 

 길다고 느껴지던 기타의 끝머리가 나타난다.

"에이~ 똥구멍이잖아..."

ㅎㅎㅎ 모두가 허탈해한다.

앞이나 뒤가 다 슬림하게 빠진 KTX가 아닌 뒷부분이 뭉툭한 열차라서 모두가 실망을 하고는

다시 카메라를 세팅하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삼십분 정도 기다리고 서 있으려니 불어오는 칼바람과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봄 추위가 추워본들 얼마나 추우리...하고 방심하고 방한 차림을 안 했던게 잘못이었다.

언덕배기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은 입고 있던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왔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시려서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다.

기다리고 서 있으니 기차는 어찌 그리 안 오는지....지루하기만 하고 추워서 제 정신이 아니다.

볼은 얼어터질 것만 같고 눈에는 눈물이 주르르...볼을 타고 내린다.

 

아...씨...그냥 가 버려...?  다시 기다려...?

기차 하나만 더 찍어 보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추위에 약한 내게는 고문이 따로 없다.   

 

 

 다시 "기차 온다~~!!!" 하는 외침에 모두가 셔터를 누른다.

이번에는 멋지게 잘 빠진 KTX다. 

 

 

 "오~예~!"

멋지게 한번 찍어 보리라 하고 셔터를 연사로 길게 누른다.

여기저기서 "찰칵,찰칵,찰칵...." 기차 소리와 셔터 소리가 함께 작렬을 한다. 

 

 

 끝머리가 잘 찍히면 한장의 사진은 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셔터를 열심히 누르고 있는데 더 이상 눌러지지가 않는다.

헉스~! 이런 난감한 일이..... 

 

 

사태를 파악하고 다시 셔터를 눌러서 간신히 기차의 머리를 담는데 성공했다.

근데 모니터로 확인해보니 가운에 와 있어야 할 KTX의 머리가 너무 멀게 위치해 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다. 

 

 

 

 삼각대를 거두어 순매원을 뜨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반대편 1번 포인트에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반대편은 언덕배기의 장소가 더욱 협소하여 삼각대를 펼칠 공간도 없었다.

역광이라 빛이 영 살아나지 않는 것이 흠이었지만 오후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남이 삼각대를 펼쳐 놓은 앞의 좁은 공간에 카메라를 들고 쭈그리고 앉았다. 

 

 음지였던 이전의 포인트와는 달리 서있는 곳이 따스해서 기다릴 만 했는데

쭈구리고 앉아 있으니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얼마 안 기다려서 다시 "기차 온다~!!"란 외침이 들리고 모두 다 생기있게 셔터를 눌러 대었다. 

 이번에도 앞머리가 뭉툭한 기차였다.

 

 

 에이~~ 이번엔 금방 꽁무니가 나타난다.

앞도 뒤도 뭉툭한 7량 짜리 통근 열차였다.

기차가 길어야 저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멋진 S라인이 펼쳐질텐데....

이건 뭐 유치원 아이에게 S라인을 바라는 격이다.

 

옆에 있던 다른 진사님들은 기차가 오는 기회를 다시 기다리고 있는데 

난 카메라를 접고 그들의 사이를 빠져나왔다.

차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남들 다 해보는 포인트 출사를 한번 해본 것으로 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달력 사진이나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 최고의 사진들.

최적의 시간대에 최고의 포인트에서 찍은 사진은 많은 사진작가들의 기다림과 발품의 소산물인 것이다.

나처럼 어쩌다 한번 가서 들이댄다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이미 전문가들이 찍어놓은 멋진 사진을 그 자리에 가서 그대로 모방해서 꼭 같은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창작품이 아니라 단지 복사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남에게 보여주지는 못 하더라도

작고 소박한 자신의 표현 욕구나 관심을 그저 <자기의 방식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결과물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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