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1.18 화진포 언덕 위의 작은 집, 이승만 별장 31
  2. 2010.01.15 화진포 송림에 자리잡은 이기붕 별장 23


 7번 국도의 끝,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화진포는 

 바다의 일부가 외해(外海)와 분리된 석호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천혜의 명승지이다. 



이 곳은 또한 대한민국 설립 당시 최고 권력자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 곳인데 
김일성 별장인 '화진포의 성'과 '이기붕 별장', '이승만 별장'이 지척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이승만 별장이 있고 바로 뒤에 이승만 기념관이 2007년에 개관하였다. 



이승만 별장은 1954년 지어진 작은 집인데 이대통령의 하야 전까지 별장으로 사용했고
이 후 건물을 방치하여 폐허가 되었으나 1997년에 현 위치에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마치 6,70년 대의 시골 동네 구멍 가게 같이 생긴 건물은 별장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할 정도의 규모인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별장으로는 소박함을 넘어 초라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하지만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한 이 별장의 넓지 않은 마당에 서면 화진포를 한눈으로 가슴에 안을 수 있으니
별장의 위치 조건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순 없을 순 없을 것 같다.
'지자요수(智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하더니 이박사께서 지척에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별장을 짓지 않고
호수를 바라보는 곳에 집을 지은 이유를 별장 앞 마당에 서서 호수를 바라 보니 그 맘을 이해할 것 같았다. 



도르레가 달린 미닫이문을 드르륵.....밀고 들어가니 휑~한 거실 하나...쬐끄만 방 두개가 전부인 20평이 될까 말까한 조그마한 집이다.
거실 한 가운데 쓰시던 의자 위에 두 분의 모습을 쏙 빼닮은 밀랍 인형이 앉아 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박사께서 앉아 책을 읽던 일인용 소파와 무릎 담요...그리고 발등상은 세월의 흔적으로 색이 많이 바래었다.
 


앞쪽 방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직접 쓰던 화장대.서랍장,옷장들이 진열되어 있는 침실인데
손때 묻은 가구들이 무척이나 소박해 보인다..


 

직접 쓰던 좁고 딱딱한 침대와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불이 눈에 들어온다.
당대 최고 권력자가 쓰던 침대와 이불이 이처럼 초라하다니....
가구와 침구에서도 그 당시 우리 나라의 어려웠던 경제 사정이 미루어 짐작되어진다. 



한쪽에는 직접 입었던 평상복과 고름이 없는 개량 두루마기가 금방 벗어놓은 것 처럼 걸려 있다. 



그리고 여행 때 쓰던 이박사의 가방이 방 한켠에 얌전하게 놓여있다. 

 


달랑 방 두개에 하나는 침실..하나는 서재로 썼던 듯 뒷편 방에는 별장에서 쓰던 책상과 의자,
라디오, 타자기, 손때 묻은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읽던 성경은 펼쳐진 채로 책상 앞에 놓여 있다.



홑문으로 된 거실 유리창은 문을 닫아도 싸늘한 냉기가 문 틈으로 들어와서 방문자의 코트 자락을 여미게 한다. 
거실 문을 통해서 보는 화진포는 신비스럽도록 아름다운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프도록 서글픈 느낌이 드는걸까? 



별장 옆 빈터에는 생전의 휘호를 새겨놓은 비들을 돌아보고 바로 위에 있는 '이승만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원래의 별장이 있던 자리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기념관인데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 정식 명칭이다.
 


안에는 이박사의 어린 시절, 망명 시절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고......



 대통령으로 집무하던 시절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외에 생전에 쓰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친필 휘호가 쓰여진 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경무대에서 쓰던 놋그릇과 은수저.....



의사봉과 워싱턴 시장으로 부터 받은 행운의 열쇠, 돋보기, 만년필, 회중시계,낚시 도구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명성왕후 시해범 처단 방문(친필 복사본)등의 자료와 



이승만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선출했음을 알리는 임명장등의 귀중한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의 유복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33세 때 제네바에서
58세의 저명한 동양인 이승만을 만나 사랑에 빠져 날계란 하나 사과 한개로 식사를 대신하며
평생을 조국통일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독립 운동가의 아내가 되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같이 살며 늘 한복을 입고 살았던 그녀의 모습은 진정한 애국자의 모습이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한복은 검소함으로 본이 되었던 그녀의 삶을 대변해준다.




낡아빠진 그녀의 앞치마, 다 떨어질 때까지 사용하던 방석 커버도 보인다. 


 

십자수가 놓인 식탁보 옆에 더 꿰멜 데 없도록 낡은 프란체스카 여사의 장갑을 보니 
영부인조차도 꿰맨 장갑을 껴야 할만큼 가난에 찌들렸던 우리나라의 힘들었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나보인다.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당대 최고 권력자의 별장과 전시관은 암울했던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것 같아
돌아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 당시 상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화진포는 오늘도 무심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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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는 바다와 호수가 함께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으로 인해 대한 민국 초기의 권력자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많았던 곳이다.
이곳에는 김일성 별장인 '화진포의 성'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별장과 함께 부통령을 지냈던 이기붕 별장도 자리잡고 있다.



화진포의 성과 화진포 콘도의 가운데 지점 송림 속에 자리잡은 이기붕 별장은 별장이라기보단 아주 소박한 여염집 같다.
이 건물 역시 화진포의 성과 마찬가지로 1920 년대 이후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인데
해방 이후는 북한의 영토였던지라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이후 당시 이기붕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했기에 이기붕 별장으로 불리운다.

화진포의 성이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것에 반해 이기붕 별장은 해변 근처 송림 옆 나즈막한 곳에 자리잡았는데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담쟁이 덩굴로 둘러 싸인 별장에는 오후 햇살이 환하게 별장을 비추고 있고 주위를 둘러싼 송림들의 자태는 고고하리만큼 아름답다. 

 

이 집은 동쪽으로는 해변을 등지고 서쪽인 호수를 바라보게 지은 형태인데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남향이나 동남향의 집을 선호하고 서향집을 잘 짓지 않는데 반해 이곳에 서향집을 지은 이유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막고 서쪽의 아름다운 호수 전경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혼자 추측해 본다.
  



당시 권력의 실세였던 부통령의 별장이 이 정도인가...할만큼 작고 소박한 집이지만 돌로 된 외관은 오랜 세월에도 끄덕없을 만큼 아주 견고하게 보인다.
 

각진 반월처럼 길게 구부러진 작은 규모의 이 별장은 현재 실내는 원래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고 안보 전시관으로 꾸며 놓았다. 

 

실내로 들어가면 '대동단결 통일달성'이라는 이승만의 휘호가 먼저 눈에 뜨인다. 

 

실제 기거할 때의 별장의 모습 그대로 방과 부엌.....등이 있는대로 보존하면 좋을텐데 왜 하필 안보전시관으로 꾸며야 하는지......
휴전선에 인접한 지형 조건 때문인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이기붕이 생전에 쓰던 기물과 그가 입던 두루마기가 전시되어 있고 벽에는 이기붕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전시물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요즘 보기드문 전화기, 라디오, 구형 타자기가 그나마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시실은 달랑 의자 몇 개,책 상 하나...침대 한개가 전부여서 금방 다 돌아본다. 

 

벽에 걸린 사진에서 이기붕,프란체스카여사,이승만 대통령,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박마리아가 눈에 뜨인다.
네번째 인물은 박마리아의 장남으로 이대통령의 양자가 된 이강석인 듯 하다.

박마리아는 1928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1932년 비국 피바디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35년에 10살 연상이었던 이기붕과 결혼했다.
YWCA 총무, 대한 걸스카우트 및 대한부인회 이사들을 역임하고 1954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까지 역임했던 당대의 재원 박마리아...
그녀의 넘치는 재능이 독재 정권 권력 유지를 위해서 잘못 사용된 점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실세였던 박마리아와 이기붕 부부.
그의 집은 '서대문 경무대'라고 불릴 정도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었다.
박마리아는 장남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켰고,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다. 

1960년 제5대 정ㆍ부통령 선거는 전면적인 관권 부정 선거로 치루어졌는데,
선거 결과 이승만은 대통령에, 이기붕은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4.19 혁명을 불러와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고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박마리아 일가는 결국 경무대에서 가족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당시 소위로 복무 중이던 이강석이 권총을 이용해 이기붕과 박마리아, 동생인 이강욱을 차례로 쏘고 자결한 것이다.
부정 선거의 책임을 모두 이들에게 덮어씌우고 사태를 가라앉히기 위해 누군가 타살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화진포에 자리 잡았던 당세의 권력자들.
그들의 목숨같이 여겼던 권력은 과연 얼마나 오래 그들의 옆에 있었는가.
권력이 얼마나 물거품 같은 것인지를 깨닳은 후엔 이미 때가 늦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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