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1.30 상해임시정부 유적지, 민족의 애환 서린 곳 20
  2. 2009.05.17 보물 제 904호는 Made in Greece 12


윤봉길 의사 유적지인 노신공원(구 홍구공원)과 함께 상해를 찾는 한국인들이 
빠뜨리지 않고 돌아보아야 할 장소가 있으니 다름아닌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상해의 어느 한 건물에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초기에는 부처마다 여러개의 청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임시정부 청사가 사용했던 건물들 대부분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고 오늘날 우리가 임시정부 청사로 알고 찾아가는 곳은 
마당로(馬當路)에 있는 3층 벽돌집(사진에서 오른쪽집)의 일부분으로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직후까지 13년 동안 사용한 곳이다.

  이 유적지는 매우 낡은 골목 안에 위치해 있어서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만큼 초라하지만,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상해의 명소이다. 

 

 현재는 어느정도 수리가 되고 개방되었지만 이전에는 열쇠로 굳게 잠겨져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은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한 때 중국 당국에서는 철거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국교 수교 후 우리나라의 요청으로
그대로 남게 되었으며 1992년부터는 국내 S그룹의 노력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지금은 상해 인민 정부에서 유적지로 지정, 직접 관리하고 있는데

한해 20만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들이 내는 
상당한 입장료 수익으로 인해 상해 관광사업에 큰 도움이 됨으로 이 건물을 철거할 이유는 이제 없을 듯 하다. 
 

 

 

 관람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골목 입구에 참관인을 안내하는 사무실에서 접수를 하는데
장소가 협소하고 단체 관람객이 많은 관계로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 입장하게 된다.
좁은 골목이라 관람객들이 기다리며 많이 떠들었는지 조용하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청사 옆에 증축한 전시관으로 들어서서 임시정부 관련 비디오를 시청한 뒤에 안내를 받아 1층부터 3층까지 관람하게 되어 있다.
전시관 내에는 당시 쓰였던 가구, 서적,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 또한 도움이 될 듯 하다.  

  청사는 15평 정도나 될까한 아주 좁은 공간이며
나무로 된 좁고 낮은 계단은 머리가 닿을 듯 하여 고개를 숙이고서야 올라가게 되어있고
화장실이 갖춰지지 않은 건물이었던지 계단 모퉁이에 화장실 설비가 위치하고 있다.

 

 임시 정부 청사 실내의 유적은 그당시 유물도 아닌 듯 한데 사진 촬영이 금지라고 한다.
내부의 사진 몇장은 똑딱이 카메라로 지나가면서 급하게 찍은 것들이라 사진의 퀄리티가 떨어짐을 이해하시길 바라며...  

 

 2층에는 박은식 , 이동녕 등 임시정부 대통령이 사용하던 집무실이 있다.  

 

 10평이나 될 듯한 좁은 공간에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침대가 함께 놓여 있다. 

 

 2인용 식탁에 의자 4개를 둔 이곳은 정부 집무실이다. 

 

 3 층에는 요인 숙소가 있으며 그 후 옆문을 통해 새로 증축한 전시관으로 연결되어
각종 기사자료 및 사진들을 관람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 

 충칭에 있던 임시 정부 청사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그때의 형편을 알 수 있다.

 

 

 순수한 민간에 의한 지도체제로 구축되었던 임시정부는 민주적인 정치체제와 자주독립열망을 구현하는 민족 정신의 산 증인이다. 

 

  임시정부청사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청사 입구를 찍어보았다.  

 

 임시 정부 청사 바로 맞은 편의 건물도 구차한 모습은 매일반이다. 

 

 3층에서 왼쪽으로 찍은 사진. 왼쪽 아래로 도로에서 들어오는 골목 입구가 보인다. 

 건물들은 대부분 100년 정도 된 건물이지만

개발제한구역이라서 옛모습 그대로 대부분 보존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임시정부  청사를 돌아보고 나오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아무리 망명 정부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정부 청사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장소...

일제강점기 때의 암울했던 우리의 국운과 이국에서 이름없이 청춘을 불태웠던

애국 지사들이 눈 앞에 떠올라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그들이 목청 돋우어 불렀을 독립군가의 한 소절이 자꾸만 귀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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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보물 제 904호는 Made in Korea 가 아니다.

외국의 문화재가 국보나 보물이 되는 경우가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물로 지정된 외국 문화재는 10 여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는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경기대회 마라톤 경주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것인데....


바로 이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는 국내 최초로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겨 버린 일제강점기인지라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는 태극기 대신 부끄러운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지만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소식은

국민들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긍심과 피 끓는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등극하였을 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인 것이다. 
 

 



이 높이 21.5㎝의 청동 투구는 기원전 6 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에 의해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에서 발굴되었다.






형태를 보면 머리에 썼을 때 두 눈과 입이 나오고 콧등에서 코끝까지 가리도록 만들어졌으며 

머리 뒷부분은 목까지 완전히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눈과 입의 노출을 위해 도려낸 부분과 목과 접촉하는 부분에는 윤곽선을 따라 실을 꿸 수 있도록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투구 안쪽에 천을 대어 머리에 썼을 때 완충 효과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코린트식의 투구는 머리를 완전히 덮고 있기 때문에 명령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결정적인 결점을 지녔고

또한 무겁고 무더워서 여름철에 부적합한 약점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후의 그리스의 투구는 귀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손기정 선수의 전리품이자 우리 국민의 희망이었던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는
주권을 잃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상황 탓에 오랜 기간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베를린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는데 1986년, 그리스 부라딘 신문사의 주선으로
독일 정부는 청동 투구를 우리나라에 반납하게 되었으니 50여 년 만에 드디어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강대국 박물관의 소장품 중 많은 유물은 식민지 시대에 부당한 방법으로 긁어 모은 것이 많으나

우리의 이 청동 투구는 자랑스런 전리품으로서 우리의 진정한 보물 904호가 된 것이니

국립 박물관을 관람할 기회가 있으신 분들은 꼭 이 그리스 청동 투구를 마주 대하여 서서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손기정 선수의 위대한 투혼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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