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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3 자장면이 2천원? 남는 장사 맞아요? 87
  2. 2009.05.15 자장면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32






며칠 째 계속되고 있는 추위로 인해 사람들의 몸은 물론 주머니도 꽁꽁 얼어붙은 요즈음...
빠듯한 살림살이에 외식은 고사하고 자장면 한 그릇 시켜 먹기도 쉽지가 않다.
밀가루값의 상승으로 과자값도 오르고 밀가루를 재료로 한 음식값도 따라 오르다 보니
서민의 음식으로 사랑을 받던 자장면도 이제 4,000원 이하인 곳은 찾기가 힘든데... 
며칠전 옆 동네를 지나다가 자장면 2,000원이라고 붙은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아니..자장면이 2,000원이라고...? 그래 가지고 무슨 이윤이 남을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차를 세우고 들어가 보았다.
문 앞에는 "물가 안정. 우리가 실천합시다!"라고 구호마져 쓰여 있는 이 집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실내의 벽에 여기저기 붙은 상장과 메달이 먼저 눈에 뜨인다.
무슨 메달인가 보았더니 이 집 주인 아저씨의 마라톤 참가 메달과 완주 기록증이다.
마라톤에 심취하신 쥔장이신 듯...벽에는 온통 결승점에 골인하는 쥔장의 자랑스런 사진이 여기저기 붙었다.  


게다가 내실 문에 느닷없이 붙어 있는 저 누런 종이는 또 무얼까.... 


하핫.....누렇게 변색되어 스카치 테이프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그 종이도
2001년도에 대마도에서 있었던 마라톤 대회 완주증이었다. 


기록증 위의 상장들 또한 자녀들이 학교에서 받은 각종 상장들이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실소를 머금을 듯한 기념품이지만 이 집에서는 최고의 보물임에 분명하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동안에 그릇에 가득하게 담긴 자장면이 나왔다.
양은 여느 자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고 언뜻 보기엔 크게 맛있어 보이지는 않다. 

 나무 젓가락을 쩍 하니 갈라서 쥐고는 사정없이 비벼 본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 
 

 왼손으로 비비고~♬   양 손으로 비벼도 돼요~!
들었다 놓았다.....열심히 비벼 대니 처음 보다 훨씬 맛갈스러워 보인다. 

  한 젓가락 크게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보니...음....2,000원짜리 자장치곤 꽤 괜찮은 맛인데...?
허겁지겁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배가 벌떡 일어난다. 


 앙증맞은 칠판에 적힌 메뉴판을 보니 자장면 2,000원, 짬뽕 2,500원...곱배기는 1,000원 추가이니 겨우 3,000원이다.

 이렇게 싸게 받아서 남는 것이라도 있을까......
모두 다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과감하게 가격을 인하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노력들이 안쓰럽다.
담에 한번 더 와서 먹어주어야지....생각하며 자장면집을 나선다.




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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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이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고 물으면
우리 나라 사람은 대부분 스스럼없이 '자장면'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요즘은 전화 한 통만 하면 누구나 쉽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자장면이지만
예전에는 자장면 먹기가 그리 흔치 않던 시절이 있어서
성적 올리면 자장면 사 준다는 말씀에 현혹되어 밤새워 공부하던 기억,
졸업식 날이면 가득 차 있던 자장면 집 풍경의 기억은
30대 이후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나 역시 자장면이라고 하면 우리 집 바로 건너 건너에 위치했던 '충후반점'이 떠오른다.
대만 출신이었던 중국인 부부의 음식점 안에는 항상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고
교사 출신이었다는 소문의 '충후 반점' 아주머니의 아주 자그마한 체구와
그가 입었던 비단옷과 수가 예쁘게 놓인 꽃신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본토에 가면 오히려 자장면을 맛보기가 힘든다고 한다.
그것은 자장면이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청나라 사람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한국식 퓨전 중국요리이기 때문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우리 나라는 청나라에 근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 때 약 30여명의 상인들이 함께 들어오면서 공식적으로 청인의 유입이 시작되었는데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되고 지금의 인천 북성동 일대 오천여평에
청인들의 거주지역이 생기니  이 곳을 '청관거리(현 차이나 타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05년 청관 거리에는 '산동회관'이 들어서서 중국 요리를 맛보이게 되는데
1912년에는 그 이름을 '공화춘(共和春)'이라고 개칭하게 된다.
이 때 중국의 대중 음식인 청요리를 처음으로 접했던 우리 서민들은
그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라게 되었으며 이어 청요리가 점점 인기를 끌게 되자
청인들은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다.

처음 자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옛터를 찾아 보았다.
최고급 청요리로 명망을 높였던 공화춘은 새로운 외식 산업의 흐름에 밀려 1984년에는 폐업을 하게 되고
지금은 폐허가 된 채 차이나 타운의 한복판에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강산이 열 번이나 바뀐 100년 동안 공화춘을 대표해왔던 간판은 일부가 삭아서 떨어져 나가 글씨조차도 알아먹기가 힘이 든다.
앞으로 이 곳에 자장면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는데 옛모습을 유지하는 가운데 낡은 부분만 잘 보수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업 후 20년이 지난 2004년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공화춘이 문을 열게 되었다. 

정통 중국요리 '공화춘'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보니
원조 자장면을 맛보지 않고는 돌아갈 수가 없어 공화춘의 문을 열고 들어서 본다.

 안의 모습은 일반적인 중국요리점과 크게 다를바 없다. 

앉자 마자 종업원이 내어오는 찻잔에는 '공화춘'이란 글씨가 얌전히 쓰여져 있었다. 

자장면과 공화춘....차이나 타운의 역사가 쓰여진 종이 매트가 깔려져 있고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메뉴판도 같이 나왔다. 
자장면 본래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자장면과 삼선 짬뽕을 시켰다. 

 조금 기다리니 삼선 짬뽕이 나왔다..
국물이 얼~큰~한것이 한국 사람의 입맛에 딱 맞다.

드디어 자장면도 나왔다.
원조 자장면을 원조 청요리점에서 대하니 감개무량이다.
자장면의 표면적인 모습은 다른 중국요리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장면은 현재의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작장면(炸醬麵)'이라고 읽혀진다.
중국식 발음으로는 '자장미엔' 또는 '짜장미엔'이라고 읽혀지며
'작'의 중국어 발음이 한국어의 '자'를 발음하듯 하며 듣는이에 따라 '짜'로 들리기도 하니
우리가 쓰는 '자장면'은 한국식 발음과 중국식 발음이 혼합되어 불리어 지는 것이다.

이 때.....
작(炸)은 '물에 튀기다'라는 뜻이며
장(醬)은 된장 등의 발효식품 등을 뜻하고
면(麵)은 밀가루, 국수라는 뜻이다.  



자...이제 자장면이 나왔으니
자장면의 어원 풀이를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얼른 사정없이 비벼야 한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어떻게 비벼대던지... 비비는 테크닉은 각자가 알아서 구사할 일이다. 

신나게 회오리로 저어서 비벼 봐도 끝장나게 잼있다.

 

원조 자장면의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윤기흐르는 고탄력 면발을 보시기만 해도 대충 짐작이 가실 것이다.
왜 원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이 기막힌 맛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

이 포스트를 한 밤중에 열어 보시는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원조 자장면으로 인해 여러분의 건실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제동이 걸리는 불상사가
오늘 저녁 생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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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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