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령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4 유신에게 풍월주 물려준 호재 고윤후 56
  2. 2009.06.11 '선덕여왕'에서 본 14면 주사위 주령구 30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매회 알쏭달쏭한 문제를 제기해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더해 가는 선덕여왕.
지난 회에서는 국선 문노가 주관한 풍월주 비재의 두번째 문제인
신라의 세가지 의미를 덕만공주가 마방진에서 그 해답을 찾는데서 종결이 되었는데

33회 방송에서는 세번째 무술 비재를 통해서 누가 다음 풍월주가 될 것이냐에 촛점이 맞추어질 것 같다.

하지만 화랑세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어보았다면
14세 풍월주 호재를 잇는 15세 풍월주는 유신랑이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는 일.

드라마에서는 비재를 통하여 풍월주를 선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호재 스스로 유신에게 양위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풍월주의 위는 부제가 이어받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호재의 부제인 보종이 풍월주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마땅하나
보종은 유신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였을 뿐 아니라 유신이 '중망(衆望, 여러 사람에게 받는 촉망)'이 있다고 하여 그 지위를 양보하였는데
이는 미실 궁주가 만호태후(진평왕,만명부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종이 유신에게 풍월주의 위를 양보한 것에 대원파가 불평이 많았으므로 이에 유신은 16세 풍월주의 위를 보종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누가 풍월주가 되는지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 문노가 주관하는 풍월주 비재의 3가지 문제가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풍월주가 될 때의 유신의 나이는 15세였으니 현재의 엄태웅과는 다소 줄이 그어지지 않는 배역이어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꼬투리 잡을 마음은 없고....^^






사실 필자로서는 새롭게 풍월주에 오르는 유신랑보다는 풍월주 호재의 시대가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촬영장에서 만난 호재는 정말 화랑 중의 화랑 '풍월주'로서의 풍채와 카리스마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0화랑이 다 모인 선덕여왕 촬영장에서도 풍월주 호재 '고윤후'는 단연 빛이 난다.






풍월주 호재를 비롯해서 청룡익도의 석품(홍경인),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비천지도의 알천(이승효),
이화정도의 덕충(서동원)...등 서라벌이 10 화랑이 한곳에 다 모였으니 '이보다 더 보기 좋을 순 없다'.






서라벌 최고의 꽃미남 10화랑들이 다 진을 치고 서 있지만 그중에서도 풍월주 호재의 카리스마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앞모습은 물론이고 옆모습도 조각 미남이니 서라벌 여인네들의 가슴을 울리고도 남았을 풍월주 호재에게 딱 맞는 배역이다.






촬영 도중 가끔 이렇게 샤방한 미소까지 날려주니 현대의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 또한 함께 설레이지 않을까....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알천랑 이승효와 함께 잡힌 샷은 저절로 눈이 즐겁다.






경주 신라 밀레니엄 파크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여러번 촬영 현장을 스케치하는 동안에
이요원, 고현정, 엄태웅, 류상육, 이문식, 정웅인....등 여러 탈렌트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싸인도 받았지만
10 화랑의 촬영이 있던 날, 풍월주 호재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던 필자의 바로 앞으로 걸어왔을 때
180 이 넘는 큰 키에 광채나는 얼굴, 거기다 발 아래까지 끌리는 화려한 풍월주 의상으로 인해 완전 압도 당해버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싸인 좀 해주실래요?" 할 뻔 했다.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카메라 가방을 열고 수첩과 볼펜을 찾느라 뒤적거리고 있는데
 "자~~ 10 화랑 얼른 용인 세트장으로 이동하세요~!" 하는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필자의 앞에 서 있던 풍월주 호재, 다시 방향을 돌려 황망하게 자리를 뜨고 마는 것이다.
이런....ㅠㅠ
절실하게 '싸인 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이 처음이었는데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말다니....
아직까지도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1981 년생으로 지금까지는 시청자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 '고윤후'. 
그가 연기한 '14세 풍월주 호재'는 기해년(己亥年,579) 생으로 화랑세기에는 ' 호림공(虎林公)'으로 기술되어 있다. 

호림공은 진골정통으로 복승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지소태후의 딸인 송화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혹은 말하기를 '공주의 사자(私子)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잘 알 수 없다' 고도 하고 비보랑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진평왕의 황후이자 선덕여왕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바로 호림공의 적형(嫡兄,서자가 자기 아버지의 정실에서 난 형을 이르는 말)이다.

호림공은 용력이 많고 격검(검을 쓰는 법을 익힘)을 좋아하여 일찍 문노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13세 풍월주 용춘공이 호림공을 부제로 발탁하였고 계해년(603년)에 풍월주가 되었다.
그는 검소하게 지냈으며 진골 정통이었지만 골품으로 뽐내지 않았으며 
마음가짐이 청렴하고 곧아 재물을 풀어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호림공은 처음 문노의 딸 현강랑주(娘主)를 아내로 맞았으나 일찍 죽어 하종의 딸 유모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였다.
(유신 또한 하종의 딸이자 유모의 동생인 영모와 결혼하니 유신과 호재는 동서지간이 되는 셈이다.)
그 때 미실궁주의 나이가 이미 많았는데 유모를 매우 사랑하여 귀한 아들을 보기를 원하였으므로
호림공에게 명하여 천부관음을 만들어 아들을 기원하도록 하였다.
이에 선종랑을 낳았는데 자라서 율가(律家)의 대성인이 되었고 호림공은 부처를 숭상함이 더욱 깊어져 
풍월주의 위를 유신에게 양위를 하고 스스로 ‘무림거사(茂林居士)’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호림은 보종을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으며 그들의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았고
보종은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고 하니 호림과 보종의 관계는 묘한 뉘앙스가 풍겨난다.
화랑세기의 기록은 보종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에 촛점이 맞추어지는데
미생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보종의 이력에 대해선 다음 기회가 되면 글을 쓰기로 하고...

풍월주를 양위한 후 호림공은 조정의 일에 간여하지 않았지만 국가에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받들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 동일하게 알천, 임종, 술종, 염장, 유신, 보종 등과 더불어 칠성우(七星友)를 이루어
남산에서 만나 유(遊)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며 (삼국유사에는 보종이 빠진 6인이 모였다고 기록)
"통일의 기초가 호림공 등으로부터 많이 시작되었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 통일에 유신, 알천을 비롯한 호림공의 공 또한 지대했을 것으로 볼수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14세 풍월주의 지위를 유신에게 물려주게 되는 호재(호림공).
개인적으로 바라는 바는 비록 풍월주의 위에서 물러나더라도 
선덕여왕 드라마에서 호재의 멋진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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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드라마를 잘 안 보지 않던 필자, 
요즘 [닥.본.사]하고 있는 드라마는 바로 선덕여왕.

선덕여왕의 주 무대인 경주에 살고 있는 필자인지라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모두 너무나 친근하기만 하다.

선덕여왕 6회에는 진평왕이 연회에서 여흥을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진평왕이 "자~! 이제는 내 차례구나..주령구를 던져라!" 고 명하니 시녀는 희한한 모양새의 주사위를 왕 앞에서 굴린다.
시녀가 주사위를 굴리자 나온 글씨는 '음진대소 (飮盡大笑)'.


"음진대소라... 하하하....자, 모두 잔에 술을 따라라 !"
진평왕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다 마시곤 껄껄 소리내어 크게 웃자 좌중의 신하들도 따라서 크게 웃는다.


드라마에서 나온 희한한 모양새의 주사위는 바로 '주령구(酒令具)'이다.
1975년 경주 안압지 발굴시에 출토된 참나무 주령구에는 
14면 각각에 술 마실 때의 다양한 벌칙이 쓰여져 있어서 우리의 시선을 끈다.

주령구를 보는 박물관 관람객들은 특이한 모양새와 면마다 적힌 벌칙을 보고 신기해 하는데
왜 하필 주사위를 14면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것은 기존 주사위가 6면 밖에 없으니 좀 더 많은 면이 나오도록 궁리하다
정육면체의 모서리 8개도 각각 면이 되게 깎아서 14개의 면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고
정육면체 주사위를 가지고 수많이 던져 놀다가 닳아버린 모서리들에 각각 면을 만들어 글자를 써넣다보니
6+8=14 이렇게 14면을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주령구의 각면에는 쓰인 다양한 벌칙들을 보면 그 당시 신라인들의 풍류적인 음주 문화를 엿볼 수 있는데 
4각형인 여섯면에 쓰인 벌칙을 보면.....

1.금성작무 (禁聲作舞) : 소리없이 춤추기
2.중인타비 (衆人打鼻) : 여러사람 코 두드리기
3.음진대소 (飮盡大笑) : 술 한잔 다 마시고 크게 웃기
4.삼잔일거 (三盞一去) :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5.유범공과 (有犯空過) : 덤벼드는 사람이나 별난 짓으로 골려도 가만히 있기
6.자창자음 (自唱自飮) :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6각형인 여덟 면의 벌칙 또한 재미있기 그지 없다. 


7.곡비즉진 (曲臂則盡) : 팔뚝을 구부려 다 마시기
8.농면공과 (弄面孔過) : 얼굴 간질러도 꼼짝 않기
9.임의청가 (任意請歌) :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10.월경일곡 (月鏡一曲) : 월경 한 곡조 부르기 (달이란 여자에 관한 내용일 듯..)
11.공영시과 (空詠詩過) : 시 한 수 읊기 
12.양잔즉방 (兩盞則放) : 술 두 잔이면 즉각 마시기
13.추물막방 (醜物莫放) :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14.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 스스로 괴래만(밤 늦게 곤드레 되어 들어오는 모양새)으로 부르기


이 주령구를 던지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을 신라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날에도 이런 14면체 주사위를 만들어 던지며 술자리를 한다면 얼마나 풍류가 깃든 모임이 될까...
14개의 벌칙을 오늘날에 맞게 현대적으로 살짝 바꿔서 친구들과 한잔 하실 때 써보시길 바란다.

[현대판 주령구 벌칙]
1.금성작무 (禁聲作舞) : 음악없이 춤추기
2.중인타비 (衆人打鼻) : 옆 사람한테 코맞기
3.음진대소 (飮盡大笑) : '원샷'하고 크게 웃기
4.삼잔일거 (三盞一去) : 석잔 '원샷'
5.유범공과 (有犯空過) : 통과
6.자창자음 (自唱自飮) : 노래 부르고 '원샷'
7.곡비즉진 (曲臂則盡) : 옆사람과 '러브샷'하기
8.농면공과 (弄面孔過) : 간지럼 참기
9.임의청가 (任意請歌) : 다른 사람 노래 시키기
10.월경일곡 (月鏡一曲) : 달 들어가는 노래 한곡 부르기
11.공영시과 (空詠詩過) : 시 한 수 읊기
12.양잔즉방 (兩盞則放) : 받은 술잔 남겨놓지 말고 빨리 돌리라.
13.추물막방 (醜物莫放) : 못난이 흉내내기
14.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 최신 유행가 부르기






신라인의 풍류와 놀이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귀한 유물 '주령구'
현재 경주 국립 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되어 있는 주령구는 사실 '복제품'이다.
1975년 출토된 진품은 '안타깝게도' 유물 보존 처리도중 전기 과열로 일순간에 불타 버렸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출토된 적 없는 단 하나의 주령구.....
단 한순간의 실수로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유물을 잃어 버리다니....
천년 이상 안압지의 뻘 속에서 그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가 출토되자 마자 소실되어 버린 이일은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존 수준을 다시 한번 짐작케 하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천만 다행으로 발굴 직후 남겨둔 전개도와 컴퓨터 단층 촬영,정밀 사진을 통해 재현을 해내어 다시 박물관에 전시하긴 했지만
숭례문의 예처럼 한번 소실되어 복원된 문화재는 더 이상 조상의 손때가 묻은 귀한 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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