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산에 안 올라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이말은 직장 동료들이 필자를 놀릴 때 가끔 하는 말인데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몇년전 필자는 폐지로 가득한 쓰레기산을 정복한 경험이 있다.

털어놓긴 민망한 일이지만 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서를 폐지로 분류해서 내버렸기 때문이다.
처리가 완결된 문서이기도 하고 이미 보존 기간도 지난지라 아무 생각없이 폐지로 내어보내버렸는데
바로 며칠 후 그 문서가 황급히 쓰일 일이 생겨 꼭 찾아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할 수 없이 폐지를 수거해 간 재활용센터를 수소문하여 전화를 거니
그날 수거해간 폐지가 경주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영천의 재활용 공장으로 갔다는 소식.
급히 차를 몰아 폐지 수집장까지 간 필자와 동료 직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 했는데
5층 아파트 높이로 쌓여 있는 엄청난 폐지 쓰레기산을 보고는 모두가 탄식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쓰레기산 아래에 위치한 폐지들은 이미 썩을대로 썩어 냄새는 코를 진동하고
그 위에 다시 무질서하게 쌓이고 쌓인 폐지들은 원래의 존재가 뭔지 모르게 다 뒤섞여있는지라
필자가 버렸던 폐지 박스를 찾는다는건 해변에서 잃어버인 바늘 찾기 같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전날 경주에서 온 쓰레기차가 버리고 간 지역을 중점적으로 몇시간이나 뒤진 끝에
기적과도 같이 내버렸던 문서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쓰레기산을 다리가 아프게 오르 내리던 동료들은 기쁨에 못 이겨 모두 부등켜 안고 소리를 질렀고
온몸에 먼지를 뒤덮인 것도 잊고 모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쓰레기산을 내려왔다는 황당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

그날 몸에 배인 쓰레기 냄새가 집에 가서 샤워 해도 잘 없어지지 않았다는 동료들의 푸념은
"쓰레기산에 안 올라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란 놀림으로 두고 두고 회자되었는데.....


이렇듯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쓰레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필자인지라
이름만 들어도 품격이 넘치는 비엔나 여행 일정 속에 <쓰레기 소각장 방문>이 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유쾌한 일이 못되었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가이이자 건축 치료사인 훈데르트바서가 외관을 개조했다는 쓰레기 소각장이라지만
그래봤자 냄새나는 쓰레기 소각장이지 별수가 있겠어......하는 다소 시큰둥한 마음을 안고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했다.




비엔나 지리에 익숙치 못한 슬로바키아 출신 운전 기사로 인해 비엔나 시내를 한참이나 돌아 겨우 도착한 슈피텔라우(Spittelau).
버스에서 내려 눈을 들어 보니 히야......비엔나의 11월에는 좀체로 보기 힘드는 멋들어진 하늘 구름 아래
희한하게 생긴 건물이 소각장으로 향하는 육교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펼쳐져있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원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을 보니 지금까지의 무관심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무한셔터질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도나우 강 운하 변에 서 있는 쓰레기 소각장이라니.....더구나 바로 옆에는 지하철역까지!
정신을 차리고 소각장 건물을 자세히 보니 하얀 외벽에는 파랑 빨강 검정 등 원색의 문양이  강렬하고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황금빛 구슬을 올렸다.





그리고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창들이 눈에 쏘옥 들어와 박혔다.




그중에도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은 당당하게 치솟은 거대한 굴뚝.
마치 올림픽 성화 같기도 하고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 같기도 한 굴뚝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금빛 찬란하게 빛나며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소각장 굴뚝에 도입한 꾸뽈(Coupole: 러시아,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양파 모양의 돔)은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건물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자세한 안내를 받기 위해 먼저 관리동 건물로 향하였다.




관리동에도 건물 곳곳마다 어린 훈데르트바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에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직선으로 된 
기둥을 거부했던 그는 
건물 입구의 기둥도 둥그스름한 항아리 모양의 곡선으로 처리했다.



로비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 슈피텔라우 소각장 로비에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달 주기로 교체 전시되는데
주로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를 따른 사진 작품과 조각 작품들이 많았다.
쓰레기 소각장에 현대 미술 전시라니......정말 상식을 깨는 소각장이다.


컨퍼런스룸에서 간단하게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변천사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1971년 설립된 이 소각장은 1987년까지는 여느 쓰레기 소각장과 다를바 없이 그저 밋밋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7년, 과열로  인해 대형 화재가 발생하게 되어 쓰레기 소각장의 기능이 중단되는 일이 생겼는데

비엔나 시장 헬멋 질크는 화가이자 환경 운동가, 건축 치료사인 훈데르트바서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외관 개조 작업을 맡게 했다.

친구인 환경 운동가 베른 로이치의 영향을 받았던 훈데르트바서는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던지라 리모델링 사업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비엔나와 같은 대도시는 아무리 분리수거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생산된 쓰레기를 처리할 쓰레기 소각장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각장 개조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스폰서링이나 자신의 작품 판매 수입을 통해서 리모델링 비용도 분담하였다.

2년 반에 걸친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마침내 최신식 배기 가스 정화 기술이 장착된 친환경 소각장으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기계, 환경과 예술이 공생하는 조화의 본보기이자 자원 낭비를 막아주는 공업 단지 건설의 뜻을 품고 있던
훈데르트바서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리모델링 과정과 소각장의 현황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비디오를 시청한 후 관리동에서 나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직접 쓰레기 처리가 이루어지는 소각장 현장으로 가보았다.





소각장 마당에는 반듯하게 생긴 주황색 쓰레기차가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비엔나 전역에서 수거된 쓰레기는
재활용 쓰레기와 소각할 쓰레기로 구분한 후 소각할 쓰레기는 트럭에 실려와 이곳 소각장에서 태워지게 된다.





쓰레기차는 쓰레기 투입구로 후진하여 들어가 쓰레기를 투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깥으로 전혀 쓰레기가 흩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집하장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어 무척이나 위생적으로 보였다.
냄새가 진동하고 쓰레기 풀풀 날리는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을 예상했던 필자로써는 정말 부럽게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견학 코스를 돌아보기 위해 소각장 건물로 들어가는 길에 동화의 집같이 너무나 이쁜 건물이 눈에 뜨였다.





이는 시각을 다투는 쓰레기차 운전자들이 건물 안 까지 들어가지 않고도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게 배려한 외부 화장실이란다.
운전자들의 화장실조차도 이렇듯 아름답게 꾸며준 훈데르트바서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피부로 느껴졌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창을 통해 아래로 내려다 보니 순서를 기다리며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주황색 쓰레기차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쓰레기차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렇게들 깨끗한거야......





견학 코스인 건물의 계단과 복도 곳곳에는 이렇게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그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가는 곳 마다 붙어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보니 여기가 쓰레기 소각장인지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인지 아리송할 정도였고





슈피텔라우 소각장 측은 물론이고 비엔나 시민들이 훈데르트바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계단과 복도 여기저기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전시와 함께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소개와
소각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들도 자리잡고 있어서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었다.




소각장의 하이라이트(?)인 쓰레기 집하장 견학도 빠질 수 없다.
집하장은 상부에서 유리를 통해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쓰레기라 해도 쓰레기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는.....^^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중앙 통제실.
이곳에서는 현재 연간 25만 톤의 도시 쓰레기를 처리하여 60MW의 증기 및 전기를 생산, 소각시설 자체 전기로 사용하거나
인근 6만여 세대에 온수를 공급하는 등 비엔나시 아파트 37%에 열 공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 통제실은 일반인들의 관람이 불가능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히 공개해주신 관계자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한때 도시 한가운데 흉측하게 자리잡고 있어 시민들에게 외면받아야 했던 쓰레기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어 비엔나의 공기를 더 깨끗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각에서 발생하는 여열을 비엔나 6만 가구에 공급함으로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여 친환경 시설로 거듭나게 되었다.

친환경 소각장이란 기능적인 부분도 물론이지만 훈데르트바서의 멋진 디자인이 더욱 눈길을 끄는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현재 각 나라의 공무원들을 비롯해서 5~6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비엔나의 관광 명소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서울시에서도 슈피텔라우 소각장을 견학한 후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을 벤치마킹한 소각장을 노원구에 건립했는데
안타깝게도 건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역 주민과 서울시와의 마찰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가 중랑구, 노원구, 동대문구의 쓰레기를 함께 처리할 계획으로 하루 800톤 소각이 가능한 소각장을 세웠는데
소각장 주변의 주민들이 타 지역 쓰레기의 반입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
할 수 없이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하기로 한다는 임시 협약을 맺고 한동안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했는데
서울시는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한다면 소각장 가동률의 17~18%만 가동하게 되니 비효율적이라고
다시 타 지역 쓰레기 반입을 주장하고 나서는 통에 주민과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혐오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주민들이 가스통까지 들고나와 격렬한 시위를 하는 것을 가끔 본다.
이는 팽배한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련 기관의 시책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커져있다는 것이 더 문제일 것이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 아름다운 외관은 물론이고
분진이나 각종 유해 물질을 걸러내는 최첨단 장치가 완벽히 갖추어져 있어 공해 물질을 거의 배출시키지 않는데 비해서
노원 소각장은 대기 오염 방지시설인 백 필터(Bag Filter)나 경찰 필터(Police Filter)등의 설비를
예산 부족이나 장소 협소를 이유로 설치하지 않은 것이 주민들의 불신의 이유라고 한다.

이런 일련의 불협 화음이 부디 잘 해결되어 우리의 소각장도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환경 친화 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과 함께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아름다운 외관만 벤치마킹하지 말고 환경 파괴를 최소화시킨 사례까지 벤치마킹한다면
우리의 혐오 시설들도 아름다운 변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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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graffiti)는  벽이나 지하철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휘갈겨 쓴 글씨 또는 그림을 이르는데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에서 유래했고
고대의 동굴 벽화,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그라피티는 1960년대 후반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미국의 흑인 젊은이들이
뉴욕의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와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힙합(hip-hop) 문화와 결합하면서 확대, 발전되었다.
그라피티를 다른 말로 태깅(Tagging)이라고도 하는데,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완성한 뒤
자신들의 이름이나 별칭을 그려넣은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라피티는 초기에 인종주의· 고립· 환경오염· 정체성 상실 같은 사회 비판에 뿌리를 두었지만,
최근에는 신변 잡기적인 부분에까지 작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그라피티는 뒷골목 범죄자들의 낙서로 폄하되던 지위를 벗고
유럽과 미국 도시에서 친숙한 거리 미술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전에 유럽 여행 중에도 고속도로나 도시 곳곳에 그라피티가 자리잡고 있는걸 수없이 많이 보았는데
이렇듯 그라피티가 예술로서 뿌리를 내린 데는 미국 태생의 세계적인 화가 장 바스키야의 공이 컸다.
(장 미셀 바스키야 관련 포스트 : 28세에 요절한 천재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야)

  그러나 아직도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을 롸이터(Writer,낙서쟁이)라고 부르는 등
크라임 형태로. 또는 미술계의 아웃사이더로 취급받고 있으며
안티 그라피티(Anti-Graffiti)도 있을 정도로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역시 그라피티 문화에 대한 인식이 거의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라피티는 소수 마니아에 의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래 사진은 한적한 시골 국도변 나들목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
지방에서 보기 힘든 그라피티라...반가운 마음에 사진에 담아 보았다.
아직 미완성작인지 휘갈기다 치운 그림도 많았는데....
이 그림을 보시는 여러분에게도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라피티.....낙서인가? 예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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