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4 유신에게 풍월주 물려준 호재 고윤후 56
  2. 2009.06.08 '선덕여왕' 미실궁 직접 가보니 55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매회 알쏭달쏭한 문제를 제기해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더해 가는 선덕여왕.
지난 회에서는 국선 문노가 주관한 풍월주 비재의 두번째 문제인
신라의 세가지 의미를 덕만공주가 마방진에서 그 해답을 찾는데서 종결이 되었는데

33회 방송에서는 세번째 무술 비재를 통해서 누가 다음 풍월주가 될 것이냐에 촛점이 맞추어질 것 같다.

하지만 화랑세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어보았다면
14세 풍월주 호재를 잇는 15세 풍월주는 유신랑이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는 일.

드라마에서는 비재를 통하여 풍월주를 선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호재 스스로 유신에게 양위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풍월주의 위는 부제가 이어받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호재의 부제인 보종이 풍월주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마땅하나
보종은 유신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였을 뿐 아니라 유신이 '중망(衆望, 여러 사람에게 받는 촉망)'이 있다고 하여 그 지위를 양보하였는데
이는 미실 궁주가 만호태후(진평왕,만명부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종이 유신에게 풍월주의 위를 양보한 것에 대원파가 불평이 많았으므로 이에 유신은 16세 풍월주의 위를 보종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누가 풍월주가 되는지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 문노가 주관하는 풍월주 비재의 3가지 문제가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풍월주가 될 때의 유신의 나이는 15세였으니 현재의 엄태웅과는 다소 줄이 그어지지 않는 배역이어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꼬투리 잡을 마음은 없고....^^






사실 필자로서는 새롭게 풍월주에 오르는 유신랑보다는 풍월주 호재의 시대가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촬영장에서 만난 호재는 정말 화랑 중의 화랑 '풍월주'로서의 풍채와 카리스마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0화랑이 다 모인 선덕여왕 촬영장에서도 풍월주 호재 '고윤후'는 단연 빛이 난다.






풍월주 호재를 비롯해서 청룡익도의 석품(홍경인),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비천지도의 알천(이승효),
이화정도의 덕충(서동원)...등 서라벌이 10 화랑이 한곳에 다 모였으니 '이보다 더 보기 좋을 순 없다'.






서라벌 최고의 꽃미남 10화랑들이 다 진을 치고 서 있지만 그중에서도 풍월주 호재의 카리스마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앞모습은 물론이고 옆모습도 조각 미남이니 서라벌 여인네들의 가슴을 울리고도 남았을 풍월주 호재에게 딱 맞는 배역이다.






촬영 도중 가끔 이렇게 샤방한 미소까지 날려주니 현대의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 또한 함께 설레이지 않을까....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알천랑 이승효와 함께 잡힌 샷은 저절로 눈이 즐겁다.






경주 신라 밀레니엄 파크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여러번 촬영 현장을 스케치하는 동안에
이요원, 고현정, 엄태웅, 류상육, 이문식, 정웅인....등 여러 탈렌트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싸인도 받았지만
10 화랑의 촬영이 있던 날, 풍월주 호재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던 필자의 바로 앞으로 걸어왔을 때
180 이 넘는 큰 키에 광채나는 얼굴, 거기다 발 아래까지 끌리는 화려한 풍월주 의상으로 인해 완전 압도 당해버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싸인 좀 해주실래요?" 할 뻔 했다.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카메라 가방을 열고 수첩과 볼펜을 찾느라 뒤적거리고 있는데
 "자~~ 10 화랑 얼른 용인 세트장으로 이동하세요~!" 하는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필자의 앞에 서 있던 풍월주 호재, 다시 방향을 돌려 황망하게 자리를 뜨고 마는 것이다.
이런....ㅠㅠ
절실하게 '싸인 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이 처음이었는데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말다니....
아직까지도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1981 년생으로 지금까지는 시청자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 '고윤후'. 
그가 연기한 '14세 풍월주 호재'는 기해년(己亥年,579) 생으로 화랑세기에는 ' 호림공(虎林公)'으로 기술되어 있다. 

호림공은 진골정통으로 복승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지소태후의 딸인 송화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혹은 말하기를 '공주의 사자(私子)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잘 알 수 없다' 고도 하고 비보랑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진평왕의 황후이자 선덕여왕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바로 호림공의 적형(嫡兄,서자가 자기 아버지의 정실에서 난 형을 이르는 말)이다.

호림공은 용력이 많고 격검(검을 쓰는 법을 익힘)을 좋아하여 일찍 문노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13세 풍월주 용춘공이 호림공을 부제로 발탁하였고 계해년(603년)에 풍월주가 되었다.
그는 검소하게 지냈으며 진골 정통이었지만 골품으로 뽐내지 않았으며 
마음가짐이 청렴하고 곧아 재물을 풀어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호림공은 처음 문노의 딸 현강랑주(娘主)를 아내로 맞았으나 일찍 죽어 하종의 딸 유모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였다.
(유신 또한 하종의 딸이자 유모의 동생인 영모와 결혼하니 유신과 호재는 동서지간이 되는 셈이다.)
그 때 미실궁주의 나이가 이미 많았는데 유모를 매우 사랑하여 귀한 아들을 보기를 원하였으므로
호림공에게 명하여 천부관음을 만들어 아들을 기원하도록 하였다.
이에 선종랑을 낳았는데 자라서 율가(律家)의 대성인이 되었고 호림공은 부처를 숭상함이 더욱 깊어져 
풍월주의 위를 유신에게 양위를 하고 스스로 ‘무림거사(茂林居士)’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호림은 보종을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으며 그들의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았고
보종은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고 하니 호림과 보종의 관계는 묘한 뉘앙스가 풍겨난다.
화랑세기의 기록은 보종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에 촛점이 맞추어지는데
미생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보종의 이력에 대해선 다음 기회가 되면 글을 쓰기로 하고...

풍월주를 양위한 후 호림공은 조정의 일에 간여하지 않았지만 국가에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받들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 동일하게 알천, 임종, 술종, 염장, 유신, 보종 등과 더불어 칠성우(七星友)를 이루어
남산에서 만나 유(遊)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며 (삼국유사에는 보종이 빠진 6인이 모였다고 기록)
"통일의 기초가 호림공 등으로부터 많이 시작되었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 통일에 유신, 알천을 비롯한 호림공의 공 또한 지대했을 것으로 볼수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14세 풍월주의 지위를 유신에게 물려주게 되는 호재(호림공).
개인적으로 바라는 바는 비록 풍월주의 위에서 물러나더라도 
선덕여왕 드라마에서 호재의 멋진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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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이 끝난 월화 드라마 시장을 허리케인같이 강타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

남성들만이 전유하던 왕의 자리를 공주의 신분으로 도전하여 성공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일대기를 화려한 색채감과 풍성한 에피소드 등으로 펼쳐갈 예정인데....


이제 겨우 초반일 뿐인데도 선덕여왕 시청에 대한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선덕여왕의 최대 정적으로 종횡무진 맹활약을 하는 미실 고현정의 화려한 등장으로 초반 세몰이를 하더니
아역 배우 남지현 및 외국인 단역 배우의 출연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3,4회에서도
시청률 20%를 가뿐히 제끼는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평소에 사극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는 아니었으나 선덕여왕은 방영 이전부터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다렸는데 
이는 국내 드라마 중 처음으로 신라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주 무대는  바로 계림(경주).
드라마의 많은 부분이 촬영되는 미실궁과 화랑 산채, 화랑 연무장 등의 오픈세트가
신라 밀레니엄 파크 내에 개장되어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드라마에서 타이톨 롤인 선덕여왕 못지 않게 강력한 캐릭터는 바로 고현정이 열연하는 미실.
왕족과 화랑들을 비롯한 서라벌의 뭇 남성들을 손아귀에 넣고도 모자라 황후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신라 시대 최고의 팜므 파탈 미실의 존재는 주인공인 선덕여왕 못지 않는 캐릭터이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선덕여왕보다 미실이 더 어울리지 않느냐는 네티즌들의 많은 의견이 있었던 것처럼
미실은 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데......
드라마 중 많은 씬의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실궁'이 궁금해졌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에서도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미실궁'....
'천년 고도'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미실궁 세트장은 지난 5월 14일에 오픈했다.



대나무 숲 저편으로 미실궁의 솟을 대문이 보인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위엄있게 서있는 홍살문 아래로 이어진 무지개 다리가 미실의 궁으로 인도한다.


무지개 다리 앞에 서서 궁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서슬이 시퍼런 미실이 걸어나올 것 같다.



잠시 정면에서 비껴 측면에서 연못과 무지개 다리를 살펴 본다.
아직 개장한지 얼마 안 되어 수련이 조금 엉성하게 자라있는 것이 맘에 걸리는데
드라마의 전개와 함께 이 연못의 수련도 점점 자라 무성해지겠지.


뒤로 좀 더 물러나 무지개 다리와 미실궁을 함께 잡아 보니 훨씬 더 안정감 있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무지개 다리를 지나면 높은 기단 위에 미실 본궁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계단을 올라 본궁 바로 앞에 서니 기둥과 인방의 화려한 장식이 눈에 확 들어온다.


서까래와 인방, 설주마다 화려하고 세밀한 문양을 그려놓았고


건물의 색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써서 위엄을 더해 주었다.
 


본궁에 이어진 건물은 제 1별궁인데 드라마에서 미실이 측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주로 별궁에서 이루어진다.


본궁의 가운데 문을 밀고 들어서니 실내는 아무런 장식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문화유산 해설사이신 홍연무 선생께서 특별히 별궁 내부까지 안내해 주셔서 자세히 돌아볼 수 있었다.


별궁 내부도 천정과 설주, 인방에는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었으나 그외에 별다른 장식은 없었고 약간 썰렁하기까지 하다.드라마 촬영을 할 때마다 컨테이너 트럭에 커튼,카페트 등 소품과 기자재들을 잔뜩 싣고 와서 설치하는데

촬영이 끝나면 다시 모두 수거해서 차에 싣고 가버린다고 한다.


다른 드라마에 활용도 해야 하고 다음 촬영까지 그냥 두면 유실 우려도 있기 때문에 다 가져가는 것이리라..



실내에서 나와 본궁 기단 위에 미실궁 대문쪽으로 한바퀴 휘....둘러 본다.


북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은 제2 별궁이다.


 바로 반대편 제3 별궁에서 잡으면 아주 그림이 좋다.



제2 별궁은 방이 없이 회랑과 누각으로만 이루어진 건물이다.


제2 별궁의 누각 위에 서서 아래 연못이나 본궁, 맞은 편 제3 별궁을 바라 보는 정경이 평화롭다.


제2 별궁의 누각 바로 맞은 편 무지개다리 너머로는 제3 별궁이 자리잡고 있다.


제 3별궁 또한 ㄷ자 모양의 회랑과 누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연못을 양쪽에 두고 긴 회랑이 ㄷ자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넓고 큰 회랑은 시원하기도 해서 앞으로 연회나 결혼식 장소로 대여하지 않느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미실궁 세트장은 그다지 넓지 않으나 드라마에서의 좋은 그림을 위한 공간들이 구석 구석 숨어 있다.


산으로 난 협문에서는 배역들이 드나들거나 문 뒤에 서서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들을 찍는다.



병사 대신 문화해설사님을 세우고 한컷 찍어 보았다.


협문이나 정문이나 모두 붉은색으로 통일미를 주고 문양도 통일미를 주었다.


실내와 실외에 놓인 이색적인 모양의 등대도 눈에 뜨이고.....


기단석에서 솟아 나와 구불구불 흐르는 물길도 이색적이다.

미실궁에 대한 자상한 안내와 해설을 해주신 문화유산 해설사 홍연무 선생님께서 감사를 드리며
선덕여왕의 또 다른 세트장인 '김유신 화랑 산채'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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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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