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00만의 이즈미르(Izmir)는 이스탄불,앙카라에 이은 제 3의 도시로써 터키의 주요 산업지이며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 여행가들이 들려서 볼만한 역사적인 볼거리는 적지만 에베소(에페스)와 페르가몬 유적 관광과 함께 에게해 연안 리조트로 가는 기점으로써 여행에서 주로 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도시이다. 

 

 

이즈미르는 성경에 서머나(스미르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약 시대에도 잘 지어진 공공 건물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호메로스의 출생지이기도 한 서머나에는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를 기념하여 세운 신전이 있어 그 곳에서 황제 숭배가 행해졌는데 이곳 신자들은 황제에 대한 예배를 거부함으로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굴하지 않아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을 받은 교회로 요한 계시록에 기록되었다. 

 

 

옛날부터 내려온 국제 도시답게 도시는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는데 가로수가 대부분 야자수인 것이 인상적이었고 

 

 

역동적인 터키 제 3의 도시답게 곳곳에 건설 중인 건물이 눈에 많이 뜨였다.

 

 

서머나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다 목적지인 폴리캅 교회 앞에 도착하니 이미 5시가 넘어 교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어 교회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는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부를 못 보고 가기엔 너무 서운하다고 사정했더니 형제의 나라 한국에서 왔으니 관람 시간이 늦었지만 특별히 예배당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며 교회 뜰로 안내해주었다

 

 

교회 문이 잠겨 있는지라 사무실 계단을 통해 올라가서 가서 다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니 조그만 뜰이 있었고 맞은 편에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외관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그다지 큰 것 같지 않았다. 

 

 

아주 소박한 교회 문을 통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내부는 상당히 넓었고 장식도 너무나 화려하였다.  

 

 

맨 앞의 제단은 비잔틴 교회의 전형적인 장식으로 잘 꾸며져 있었는데 

 

 

제단 가운데에는 폴리캅 감독의 형상이 있었다.

 

 

교회 내부를 돌아보니 예수님의 성화는 옆 쪽에 위치하고 있고... 

 

 

어린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로부터.... 

 

 

여러 성인들의 조각...등.... 

 

 

교회 전체를 돌아가며 빼곡이 성화와 조각들로 채워져 있었다.  

 

 

입구쪽 유리 상자 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형상이 실제 크기의 형상으로 조각되어있었는데 옆구리에 창에 찔린 흔적에서 물과 피가 흐르는 모습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이 교회를 폴리캅 교회라고 부르는 까닭은 사도 요한의 수제자 폴리캅(Polcarpus) 감독이 시무하였던 곳이기 때문인데 AD 160 년에 교회를 핍박하던 박해자들이 폴리캅 감독을 잡아서 예수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을 때에 그는 "예수님을 믿은지 86년 동안 주님은 한번도 나에게 잘 못 하신 일이 없는데 내 어찌 주님을 모른다 하리오.." 라고 대답하여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는데 화염 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순교하였다고 한다. 바로 왼 쪽 아래 부분에 폴리캅의 화형 장면이 천정화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는 계시록 2장의 기록이 바로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며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주님의 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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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의 현재의 지명은 터키의 알라세히르(Alasehir)이다. 고대 빌라델비아는 루디아 지방의 중앙 고원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던 고대 도시로 교통의 중심지이며 서쪽으로는 버가모와 사데를 잇고 동쪽으로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를 잇는 도시였다.

버가모왕 아탈루스 2세(BC 159~138),곧 필라델푸스(Philadelphus)는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빌라델비아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합성어로써 '형제애'를 뜻한다고 한다. 빌라델비아는 헬레니즘 문화를 동방의 오지까지 전파하는 역할을 한 곳인데 BC 19년에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던 것을 티베리우스 황제가 재건하여 소아시아의 중요한 성읍이 되었다.

 

성경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책망을 받지 않고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사도 시대의 빌라델비아는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인해 성도들은 매우 불안했으며 이 불안은 도리어 이들의 신앙을 더욱 뜨겁게 해 주었다.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교회였으나 안으로는 내실이 있는 교회였는데 그들은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잘 견디어 나갔기 때문에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되었고 이 교회는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본이 되었다. 

 

파묵칼레(히에라볼리)의 북서쪽으로 자리잡은 빌라델비아에 남아있는 성 요한 교회의 유적을 찾아가 보았다.
 

 

전성기 때에 큰 규모였으리라 짐작되는 성 요한 교회는 터키에 자주 발생하는 지진으로 인해 거의 다 무너지고 아래는 돌로, 윗부분은 벽돌로 되어있는 두 개의 육중한 돌기둥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뿐이어서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성 요한 교회는 기둥 두개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교회 유적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담장 바로 옆의 조그마한 주택은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색을 칠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옆 집의 벽은 샛노란 색으로 칠했는데 역시 터키 사람들의 남다른 색채 감각은 알아주어야 한다. 

 

 

성 요한 교회의 바로 맞은 편에는 조그마한 자미(이슬람 사원)가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술이 아름다울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일 것도 같지 않은  이 조그마한 자미의 나즈막한 담장을 타 넘으려던 꼬마애가 카메라에 잡혔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타 넘고 가려던 이 꼬마는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얼음'이 되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던지.... 

 

 

마침 '여름 코란 학교(?)'를 마치고 하교하던 중이었을까? 고만고만한 애들이 팔에 커다란 코란을 안고 자미의 담 위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메르하바'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는 한국사람이 신기한지 얘들이 도리어 우리를 보러 몰려 들었다.

아슬람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긴 하지만 터키의 어린 여자애들은 히잡을 잘 쓰지 않는데 자미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중이었는지 모든 여자애들이 다 히잡을 두르고 있었고 모두다 너무 이뻐보였다. 사진을 찍어주니 미소를 띄며 얌전히 포즈를 취해주었는데 저쪽 편 더 어린 여자아이들은 우리들도 찍어주지....하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도 이리 오라고 불렀더니  담장 위에 다소곳이 걸터 앉아서 아주 얌전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모두 9~10살 내외로 보였는데 모두 양 볼이 터질 듯이 통통한 것이 너무나 귀여웠다. 

 

 

좀 더 어린 아이들은 우리 나라 같으면 1~2학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데도 히잡을 써서 그런지 성숙해 보이고 미모도 돋보였다. 가운데 담장을 뛰어넘던 아이도 같이 앉아서 포즈를 취했는데 제일 앞의 여자 아이는 살짝 나온 똥배가 무지 귀여웠다.  

 

 

코란 학교의 왕언니들인가...? 5~6학년 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들은 어린 동생들에 비해 매우 의젓하고 벌써 여인네의 티가 난다.
크면 모두 다 한 인물 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이쁜 모습들이다. 집에서 싸 온 간식일까? 아니면 자미에서 나눠주는 간식일까?
간식을 먹다가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서 제법 세련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아이가 손에 든 것은 터키의 전통 요쿠르트인 '아이란'이고 갱지같은 포장지에 싸인 빵은 터키의 국민적인 빵 '시미트'이다. 

 

 

교회 건너 그늘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던 연세 지긋한 아저씨들 또한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손자인 듯한 아이가 매우 귀엽다고 했더니 아주 아주 좋아했는데 동서고금을 비롯하고 손자 사랑은 다를 바가 없나보다. 

 

 

카메라를 가지고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필자와 동행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빵집 총각들도 일하다 말고 나와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계속 구경하고 있었다. 터키인의 주식과도 같은 빵 '에크멕'이 진열장에 잔득 진열되어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에크멕은 필자가 지금껏 먹어본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으로 손꼽는 빵이다. 

 

 

빵집에서는 시미트,에크멕 등 터키의 전통 빵을 장작불을 때는 전통적인 오븐을 사용해서 굽고 있었는데
오븐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열기가 장난이 아닌 오븐 옆에 바싹 붙어서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빵집 주인인 듯한 아줌마와 그의 아들도 이방인을 위해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옆에 있던 동행 S가 아줌마를 보고 "촉  규젤~(Very Beautiful)"이라고 하며 손을 둥글게 모으는 제스츄어를 하자 아줌마는 생전 처음 보는 S를 와락...안아주었고
시미트(참깨가 발려져있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대중적인 터키빵)를 종이에 싸서 뭐라...뭐라 하며(가면서 먹으란 뜻인 듯.....)우리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받은 시미트를 한입 베어무니 고소한 맛과 함께 처음 만나는 사람도 이웃같이 대하는 빵집 아줌마의 인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빌라델비아에서는 성 요한 교회의 폐허와 그 근처 동네를 잠시동안 돌아보기만 하고 떠나야했다. 칭찬받는 믿음을 가졌던 빌라델비아의 교회터를 돌아본 것도 인상에 남았지만 이슬람 사원 앞에서 만난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순박하고 정감어린 모습들은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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