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던 길에 만난 정동진(正東津).

사실......들리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수년전에 처음 찾아보았던 정동진은 바다와 얼굴을 마주한 호젓한 간이역이 아니었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역사, 드라마의 인기를 입고 만들어진 엄청나게 큰 모래시계,

우후죽순처럼 세워진 모텔과 식당, 거기다 뜬금없이 언덕 위에 우뚝 세워진 크루즈호텔까지.......

정동진역의 낭만은 간곳 없고 번득이는 상술만이 혼재한 곳이란 기억만이 남아 있다.

 

두번 찾을 가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냥 차를 몰아 스쳐가려다가

그래도 다시 한번......? 하는 생각에 갑자기 핸들을 꺾어 정동진으로 향했다.

 

 

 

 

붉은 기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정동진역의 아담한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해서 다시 번듯하게 증축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 중 다행이다.

한적하기만 하던 어촌마을 정동진은 1994년 방영되어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한 SBS드라마 '모래시계'가

이곳 정동진역에서 촬영되고 난 이후 하루 아침에 국내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정동진역, 역사도 작고 대합실도 자그마하다.

기차 운행 횟수도 별로 없지 않을까 의외로 운행 편수가 적지 않아 보인다.

주말에는 삼척까지 바다 쪽으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 바다열차도 운행된다고 한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의 가격은 500원이다.

입장권을 구매한 다음 방문 기념으로 정동진역 스탬프도 찍어 보았다.

 

 

 

 

대합실의 자그마한 문을 밀고 역 구내로 들어가니 바로 코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철로 앞의 <오늘 해뜨는 시각>안내판이 이곳이 유명한 해돋이 명소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신라 때에 임금이 사해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진 이곳은

정초에는 새해 일출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이다.

 

 

 

 

해돋이 시각표 앞 하트 안에는 글씨를 쓴 돌맹이들이 소복이 채워져 있다.

"보*이랑 첫 여행, 나중에 결혼해서 다시 오고 싶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시작이야!"

"울산대 최강 커플 **이와 **"....같은 사랑의 언약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와서 사랑의 약속을 돌맹이에 새겨서 남기고 간

연인들의 사랑의 추억이 바래이지 않고 언제나 계속되어야 할텐데.......

 

 

 

 

철로 건너면 바다를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떨기 해송이 눈에 들어온다.

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이 긴 생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서 있던 이 나무는

방송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기도 했다.

 '고현정나무'라고 불려오다가 고현정이 결혼한 이후로는 '모래시계 소나무'로 불리우고 있다고 한다.

수령 30년 정도의 소나무는 크게 불품은 없지만 정동진의 추억을 남길 포인트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양 광화문에서 정(正)동(東)쪽 에 나루터(津)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이름지어진 정동진.

소박한 자연석으로 된 표지석이 화려한 조형물보다는 도리어 마음을 사로잡는다.

 

 

 

 

동해남부선, 삼척선, 영동선.......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철도 노선의 역들 중 가장 해안 가까이에 있다는 정동진역은

현재는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 인정을 받은 역이기도 하다.

 

 

 

 

모래시계 이후에도 베토벤 바이러스, 우리 결혼했어요. 등 여러 TV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촬영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앓는 몸살의 흔적은 정동진역 구내 여기저기에서 눈에 뜨인다.

 

 

 

 

무궁화호를 타고 해안을 달리며 기차 여행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기도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

기차가 정동진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라도 보려고 하니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썬크루즈 리조트나 조각공원은 들려본 적이 있는지라 패스하기로 하고 역사를 나와 해변으로 향해본다.

 

 

 

 

바다는 역시 좋은 것이다.

탁 트인 바다의 넉넉함은 정동진 마을의 어수선함에 상한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바닷가의 암초들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던 정동진바다의 추억은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바닷가 산책을 마친 후 기차 시각에 맞춰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와본다.

강릉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천천히 미끌어져 들어온다.

 

 

 

 

KTX도 좋고 새마을호도 좋지만 기차 여행의 낭만은 역시나 무궁화호인 것 같다.

너무 빨리 지나가 바깥을 보면 멀미나는 KTX보다는 

차창 밖으로 서서히 풍경이 밀려나는 기차를 타야 여행이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동해 바다옆을 지나는 열차라면 더욱 더.......

 

 

 

 

스쳐 지나가버리려고 했던 정동진. 이제는 예전의 번잡함이 조금은 덜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역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기차,

해풍에 허리를 구부린 소나무가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을 만드는 정동진.

비록 영화의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동해 바다의 넉넉함과

기차가 역으로 들어올 때의 설레임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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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서울 성곽길, 부안 마실길, 영덕 블로로드......
가는 곳 마다 건강을 위한 걷기 코스가 잘 마련되어 있는 요즈음.
부산의 둘레길이라 불리우는 '이기대 해안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이기대 해안길'은 총 8.6km에 이르는 해안길로 광안리의 민락동 회센터에서부터 시작하여
광안리 해수욕장, 용호만, 동생말, 어울마당, 농바위를 거쳐 오륙도까지 이르는 길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의 입구인 동생말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륙도까지의 약 4.6km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되는데
필자는 자연공원 관광안내소 지점에 차를 세우고 숲길로 내려가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걷는 코스를 선택했다.





싱그러운 내음이 풍기는 숲길을 조금 걸어서 내려가니 눈앞에 바로 탁 트인 바다와 건너편 달맞이 언덕이 나타난다.

 




해안길에 서니 저멀리 광안대교의 수려한 모습과 함께 해운대의 마천루, 동백섬의 누리마루, 달맞이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광안대교의 모습은 광안리에서 보는 것 보다 전체의 모습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해안 언덕에 서서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해안길 너럭바위가 참 희한도 하다.
크고 둥그런 물 웅덩이가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데 꼭 공룡 발자국같이 생겼다.





바로 앞에 있는 표지판을 읽어보니 역시나...!
이 둥그런 자국은 6,500만년전 중생대 백악기말에 살았던 대형초식공룡인
울트라사우루스의 발자국 화석으로 추정된단다.





해안길 전체를 둘러가며 이렇게 너럭바위들이 둘쑥날쑥하며 자리잡고 있으니 보기에도 참 좋고
낚시를 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해안 동식물 관찰하기에도 참 좋은 곳이다.






이곳의 경관이 좋은 해안 바위를 '섶자리'라고 부르는데
'섶자리'란 '섶'과 '자리'의 합성어로 '물고기가 많이 모일 수 있는 잘피와 몰이 무성한 곳'이라고 한다.
잘피는 침수식물을 이름이고 몰 역시 해초의 일종이니
이곳에 홍조류, 갈조류, 녹조류 같은 해안식물이 무성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





해안길을 오르며 내리며 걸어가는 동안 좌우에 조그만 야생화들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섶자리에 해안동식물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갯까치수영, 돌가시나무, 해국, 메꽃.....등 아름다운 야생화까지 덤으로 볼 수 있으니 해안길 트레킹이 심심치 않다.





이쯤 해서 이기대란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기대(二妓臺)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좌수영의 역사와 지리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는 '동래영지'에

좌수영 남쪽으로 15리에 두 명의 기생(二妓)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고 한다.
혹자들은 이르기를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축하연을 열고 있을 때
당시 두 명의 기생이 함께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투신했고 그 무덤이 이곳에 있어서 유래된 명칭이라고도 한다.





이기대 어울마당은 1,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해운대'촬영장소로 유명하다.
119구조대원인 이민기와 해운대에 놀러온 날라리 강예원의 데이트하는 장면이 이기대에서 촬영된 것.
이기대에서 광안대교, 해운대 야경을 보면서
이민기가 사투리로 이기대의 지명과 유래를 설명해주는 바람에
강예원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해프닝을 겪는 극중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리라.

이때 단순한 영화의 배경으로만이 아니라 직접 이기대라는 이름이 영화 속에서 거론되는 바람에
그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기대 산책로가 사람으로 붐비게 되었다고 한다.





 

평일에는 그나마 좀 한산하지만 주말에는 이기대 해안길을 찾는 사람들이 일일 평균 5,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영화와 함께 미치는 상승 효과는 대단한 것 같다.

 

 



이기대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이기대 해안길에서 가장 멋있다는 치미바위, 농바위까지 가지는 못 하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차를 몰고 승두말 언덕으로 향했다.



용호 농장이 있었다는 승두말 언덕은 SK뷰 아파트 군락이 마치 장성처럼 버티고 서 있어 입을 딱 벌리게 한다.

아파트 주민이야 오륙도를 눈 앞에 거느리는 최고의 경관을 접할 수 있어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이기대 자연공원의 경관이 아파트로 인해 답답함을 주게 되니 보는 이로서는 마음 아픈 일이다.






탁 트인 바다 끝에 서 있는 승두말 언덕 아래 오륙도가 일렬로 서서 찾아오는 이들을 반겨준다.




부산의 랜드마크인 오륙도는 승두말 언덕에서 보면 두개의 섬으로 보이지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보면 밀물 때는 5개의 섬, 썰물 때는 6개의 섬으로 보인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본 오륙도의 모습은 필자의 지난 포스트에서 상세히 기술했으니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라며.....
오륙도 관련 포스트 : 가슴이 탁 트이는 해운대 - 오륙도 유람선 여행



 


처음 걸어본 부산의 둘레길 이기대 해안산책로.
사전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갔던지라 이기대 해안 산책로의 전체 모습을 살펴보지는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이기대 해안길의 아름다움과 부산 앞 바다의 치명적인 매력에 푸욱 빠져서
부산에 사는 사람들을 <억수로> 부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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