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율 48%를 찍은 왕가네식구들 같은 드라마도 한번도 안 본 필자, 새삼스럽게 주말드라마에 빠졌다.

 주말에 외출했더라도 웬만하면 드라마 방영 시간인 저녁 8시에 맞춰 귀가 하고 있는데

김희선, 이서진 주연의 '참 좋은 시절'이 필자가 살고 있는 경주를 무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배경이 현시점이 아니라  마치 8~90년대가 배경인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오래 되고 낡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동네가 드라마 전체에 펼쳐지는데

이는 사정동, 황오동, 황남동 같이 주민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경주 시내 한복판에서 촬영한 것이다.

 

 

 

 

수요일, 반월성 벚꽃 구경 하러 길을 나섰더니  카페 드롭탑(Cafe Droptop) 앞이 웬지 어수선하다.

촬영 장비를 실은 트럭들과 분주하게 오가는 스텝들. 그리고 연예인차량임이 확실한 검은색 밴.

오늘 이곳에서 주인공인 김희선(차해원)이나 이서진(강동석 검사)의 촬영분이 이루어지는게 분명하다.

 

길 건너편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까 검은 밴에서 김희선이 내려 카페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서진은 아직 촬영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카페 반대편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 앞에 세워진 차들을 보니 두번째 칸에 주차된 검은색 승용차가 눈에 많이 익숙하다. 

드라마에서 이서진이 직접 운전하며 타고 다니던 그 차가 틀림없다.

 

 

 

 

좀 기다리니 하얀색 밴이 카페 드롭탑 앞으로 서서히 들어온다. 저 하얀 밴에는 이서진이 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밴에서 내린 이서진. 내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니 카페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이서진의 뒷모습조차 순식간에 차단해 버린다. 그 순간 터지는 군중들의 탄식!!

 "아잉~ 인사는 안 해도 얼굴이라도 보여주지. 너무 하네~!" 카페 맞은 편에 서 있는 팬들이 푸념을 한다.

 

 

 

 

카페 밖으로 나와 촬영을 하지않을까 기다려봤더니 밖으로 나와서 찍지는 않고 카페 안에서만 촬영이 계속된다.

김희선이 먼지떨이로 카페의 먼지를 터는 장면이 여러번 계속되고 이서진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카페 손님으로 분한 보조 출연자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이서진.

이서진 트레이드 마크인 깊게 패인 보조개가 유리를 통해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NG가 났던 것일까? 이서진이 폭소를 하며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다.

드라마에선 까칠하기 이를데 없는 강동석 검사의 웃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비록 유리창을 통해서지만 드라마 밖에서 이서진의 웃는 모습을 만나게 되다니.....

무뚝뚝하고 까칠하기 그지없는 강동석 감사가 갑자기 푸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때 카페 드롭탑의 문이 잠시 열리더니 둘러싼 스텝들 사이로 김희선이 잠시 얼굴을 보인다.

촬영장 맞은편에서 구경하던 팬들, "와! 김희선이다! 김희선~!!!"하고 난리가 났다.

 

 

 

 

종업원 복장의 김희선. 드라마에서 본 것 처럼 화장기가 거의 없지만 정말 예쁘고 청순하기까지 보인다.

김희선의 모습을 본사람들. "와~ 진짜로 얼굴 쪼맨하네~~!!" 하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촬영 중 잠시 문 열린 틈을 타 번개 같이 몇장의 사진을 찍긴 했는데 금세 카페 문이 닫혀 버린다

잠시만 이쪽을 보고 정지해 주었더라면 더 예쁜 모습을 찍을 수 있었을텐데......아쉽다.

찍은 장면은 드라마에 어떻게 나올까? 현장을 보고나니 다음 방송이 더욱 궁금해진다.

이번 토요일 '참 좋은 시절'은 웬만하면 본방사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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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상가로 북적이는 경주역 앞을 떠나 육교를 건너 역 바로 뒷편으로 접어들면

번잡하고 화려한 역 앞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새로운 동네가 펼쳐진다.

 낡은 기와 지붕, 어깨를 스쳐야 지날 수 있는 좁디 좁은 골목, 녹슨 철문.....

미로와 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지나다보면 뜬금없이 고추밭이 나오고

페인트가 벗겨진 시멘트 담벼락을 지나면 더 이상 가기 힘들 정도로 무성한 풀밭이 나오기도 한다.

6~70년대에 지어진 수백채의 주택들이 좁은 골목들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곳에 서면

여기가 과연 도시의 한가운데 위치한 마을인가 싶을 정도로 적막하기만 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오래 전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황오동 골목길의 밤시간.

간간히 개짖는 소리만 들려오는 좁은 골목길에는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비칠 뿐 인적이 드물다.

일찍 누우신 할아버지의 노여움이라도 살새라 숨소리 죽이며 황오동으로 올빼미 산책을 나서본다.

 

 

 

 

 

경주역 광장을 나와 역사 전체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 역뒷편으로 가본다.

바로 아래는 얼기설기 얽혀 있는 철로길.

 

 

 

 

오래 되어 간판의 글자조차 낡아버린 수퍼. 장사가 잘 되야 할텐데......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 이사 갈 때 짐은 어떻게 옮길까?

 

 

 

 

열린 적 없을 것 처럼 굳게 담긴 문. 사람이 살고 있으면 좋으련만......

 

 

 

 

골목길이 정말 컴컴하다.

저멀리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을 따라 더듬거리며 걸어가본다.

 

 

 

  

골목이 꺾어지는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있을까?

칠흙처럼 어두운데 저멀리 희미한 불빛만 보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막다른 골목 옆 담장에는 담장 전체를 다 덮으며 호박넝클이 무성하게 자랐다.

 

 

 

 

어느 집엔 대문을 다 휘감으며 꽃들이 피어 있길래 휴대폰 플래쉬로 비춰보니 능소화가 피었다.

 

 

 

 

대문 앞에 오트바이가 얌전하게 주차되어 있다.

승용차가 들어오기 힘든 좁은 골목에서는 오트바이가 아들보다 낫다.

 

 

 

 

간판조차 없는 작은 수퍼가 애처롭다. 불국사 옆도 아닌데 수퍼 이름이 불국사 수퍼라니......

 

 

 

 

이곳에도 아이들이 살고 있나 보다. 빨간 어린이 자전거가 너무 반갑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드는 옛날 이발소. 여기서는 아직도 성업 중이다.

들어가서 살펴보고 싶었지만 용기내지 못 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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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 중이라 카메라가 없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조명이 거의 없는 가운데 찍은 사진들이라 노이즈가 정말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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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경수(김상경)가

선영(추상미)를 무작정 따라나서 도착한 곳 경주 황오동(쪽샘길).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오가던 길, 낮은 처마의 한옥이 좁은 시멘트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던 그 길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450 여채의 한옥이 모여 있어 경주 제일의 유흥가이자 부촌으로 불리우던 황오동은

이제는 모두 허물어지고 여기저기 발굴을 위해 파헤쳐진 현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영화에서의 황오동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실망부터 앞서는 곳이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경주에는 황오동 못지 않은 골목길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대릉원을 사이에 두고 황오동과 마주보고 있는 곳, 바로 사정동(사정길)이다.

 

회색 시멘트 담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고 하늘로 처마를 들어올린 한옥들이 서로 마주보는 곳.

노란 담장과 파란 대문이 너무나 잘 어울리고, 대문에 걸린 빛바랜 편지함이 미소를 짓게 하는 곳.

골목마다 높이 내걸린 점집의 대나무, 담장 위에 힌 병조각조차도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드는 곳.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어울리고, 잠긴 대문보다 열린 대문이 더 많은 곳.

빠른 걸음보다는 느린 걸음이 더 어울리는 골목, 경주 사정동(사정길)을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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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경수(김상경)이 선영(추상미)를 무작정 따라나서 도착했던 황오동 쪽샘길.

좁고 후락한 시멘트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낮은 처마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골목은 이제 찾기가 힘든다.
경주의 대표적인 유흥가였던 황오동 쪽샘길은 문화재 정비사업으로 철거되고 부서진 마을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도 철거되지 않고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골목이 여기저기 남아 있으니 그중 하나는 '비두길'이다.
첨성대를 지나는 바로 옆길인 '비두길'은 <북두칠성과 다른 별을 비교하는 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보니
천문관측기관인 첨성대와 장구한 세월을 나란히 한 유서깊은 길에 너무나 적합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이 골목은 해방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과 70~80년에 지어진 한옥들이 뒤섞여 있는데
70년대만 해도 경주의 중심지역이라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이 길은 이제는 퇴락해버려 한적하기만 하고
골목의 몇집 건너 한집은 국가유공자의 명패가 붙어 있을 정도로 연세많은 어른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주말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유적지 첨성대를 바로 마주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들어가보지 않는 골목.
70년대에서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버린 듯한 골목 '비두길'로 살며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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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맞은편의 쪽샘마을은 임금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해서
고려때에는 황촌(皇村)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샘(泉)이 있었는데 그 물이 맑고 좋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줄지 않았다고 전하며
사람들이 쪽박을 떠 마셨다하여 '쪽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우물은 황오리 반구정샘, 백율사의 우물과 함께 경주 3대 우물로도 유명하며
현재 쪽샘 마을에는 200여 가옥에 130개의 우물이 보존되어 우물이 많기도 유명하다.

이 일대에는 1900 년대 초부터 한옥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경주시 청사 맞은편에 위치해 중심지였던 이곳에는
 60~70년대에 요정 100 여곳이 들어서 유흥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통금'이 있던 그 무시무시하던 시절에도 유일하게 통금이 적용되지 않았던 경주 쪽샘지구에는
'신라의 달밤'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흥청대었고 아침이면 팔우정에서 해장국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부와 시의 무관심 속에 40 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은 경주의 대표적 슬럼으로 전락했고
지금은 일부 식당들과 골동품상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황오동 쪽샘길은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경수(김상경)가 선영(추상미)를 무작정 따라나서
도착했던 곳이기도 한데 주인공들이 따라 걷던 한적하고 후락한 골목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군데군데 집이 헐린 자리는 간이 주차장이 됐고 여기저기 발굴을 위해 파헤쳐진 현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450 여채의 한옥이 모여 있던 이 땅 아래에는 70 여기의 신라 고분이 숨어 있기 때문에
 
경주시가 이곳에 있는 한옥을 헐어내고 고분 공원으로 만들어 관광자원화하는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바로 옆 대릉원(천마총)과 함께 경주 도심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될 전망이다.

현재 유물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고 그 가운데서 아직 생활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흉물같이 방치되어 있고 보상작업이 끝나면 다 철거될 예정이다.
몇년 내로 다 철거되어 고분공원이 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쪽샘길.....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골목, 경주 쪽샘길의 오늘을 사진 몇 장으로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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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세를 찾아나선 비담,
염종의 근거지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삼한지세를 찢어 
공을 접고 노는 춘추를 발견한다.
어이 상실한 비담, 피묻은 칼을 춘추의 목에 겨누자
망나니 공자는 "이거 니꺼야?" 되물으며 겁에 질린 듯한 미소를 짓는다.

 
'선덕여왕' 38회에서 소개되었던 이 장면은 선덕여왕 애청자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시리라.
멋적은 듯한 웃음마져 너무나 샤방했던 춘추, 그의 귀에 떡하니 걸려 있는 커다란 귀걸이가 눈에 확 들어 오는데....

42회 방영분에서 덕만공주를 만나 화해하는 장면에서는 귀걸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데.....춘추가 달고 있는 저 귀걸이는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은데.....

4세기 금귀걸이 (경주 월성로 가-13호 고분)

경주국립박물관 전시실에서 전시되어 있는 월성로 고분 출토 금귀걸이와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매회 '선덕여왕'을 볼 때마다 덕만이나 미실, 미생, 춘추, 보량...등의 옷차림이나 장신구에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데
그것은 필자가 장신구 등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기도 하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인물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신구들이
실제로 국립경주박물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시품이기 때문에 더욱 친근감이 간다.

'선덕여왕'에서 가장 화려한 차림으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는 단연 미실.

드라마에서 매회 마다 그녀가 선보여주는 의상과 화려한 장신구를 보는 재미 또한 쏠솔하다.

또 신라 최고의 플레이보이 미생의 한쪽 귀에 걸린 커다란 귀걸이도 우리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고

춘추가 보량에게 귀걸이를 골라주는 이런 장면에서도 신라 귀족들의 복식에서 장신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미생, 춘추, 진평왕, 알천....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신라의 지배층은 남녀 모두 그들이 속한 사회적 지위를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귀걸이를 착용했다고 한다.
비슷한 도안의 귀걸이를 착용함으로써 그들끼리는 자신들이 신라를 이끄는 지배층이라는 우월의식을 느끼려고 한 것이다.


신라의 귀걸이에는 신라인의 미적 감각과 최고조에 이른 금공예 기술이 녹아 있는데
전 세계를 통틀어 경주만큼 금귀걸이가 많이 나오는 곳도 없다 한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형태의 귀걸이 중에 유난히 고리가 굵은 귀걸이(태환이식,太環耳飾)들을 보면 
저렇게 굵은 고리를 어떻게 귀에다 걸까..? 무겁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을 누구나 하게 되는데
실제로 굵은 고리의 속은 텅 비어 있어서 보기보다는 무게가 가벼우며 가는 고리는 직접 귀에다 걸기도 했지만 
굵은 고리는 긴 금실을 꿰거나 가죽끈을 꿰어 귓바퀴에다 걸거나 관테나 모자에 장식했다.


또 드라마에서 미실이 자주 걸고 나오는 아름다운 귀걸이를 보면

금드리개 (경주 교동)

경주 교동에서 출토된 이 금드리개를 토대로 귀걸이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5~6세기 금드리개 (황남대총)

드리개(垂飾)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하로 길쭉한 나선 모양의 장식이 일반적인 형태로써 귀걸이와 유사한데
 금관이나 금동관의 화려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관테의 둘레에 장식한 것이다.

금드리개 (경주 황오동)

금드리개 (경주 월성로)

황오동이나 월성로에서 출토된 이런 금제 드리개는 요즘에도 응용될 수 있을 만큼  세련된 분위기이다.

5∼6세기 금드리개  보물 633호 (황남대총)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길이 15.5㎝의 이 금제 드리개는 신라 무덤에서 출토되는 드리개 가운데 가장 호화스러운 작품이기도 하다.

반지는 남녀 모두 애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양손 모두에 끼었는데

 천마총 발굴 당시 널 안에 누운 부장자는 열손가락에 다 반지를 끼고 있었다.


반지는 금, 은, 옥 등으로 만들었는데 금반지는 윗부분이 넓고 마름모꼴을 한 것이 대부분이나
금령총의 반지는 마름모꼴의 윗부분에 다시 마름모꼴의 장식을 배치하고 그 안에 칠보 유리옥을 넣어 만들었다.
신라의 금반지는 오늘날에도 못 따라갈 화려하고 발달된 세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팔찌도 역시 금, 은, 동, 옥으로 만들었는데 역시 남녀 공용으로 보통 양팔에 착용하였고 

한번에 여러 개를 차기도 하였다니 신라의 귀족들은 그 당시의 패션 리더였음이 분명하다.

3세기 유리와 비취 목걸이 (경주 황성동)

목걸이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인류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인 장신구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석기시대부터 목걸이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뼈나 뿔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든 후 구멍을 뚫어 가죽 등에 매달아 목에 착용하거나
돌이나 흙, 조가비, 고동 또는 동물의 이빨에 구멍을 뚫어 엮어서 착용하기도 했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 등의 무덤에서는 천하석으로 만든 대롱옥과 곱은옥
,
둥근 옥 및 작은 구슬 등으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가 출토되고 있다.


5,6세기 목걸이, 황남대총 출토품

원삼국 시대의 무덤과 집터에서는 벽옥, 수정, 활석, 유리, 마노 등의 구슬을 이용한 목걸이가 출토되고 있다. 
그 중 남색 유리구슬 목걸이는 신라 고분 출토품의 주종을 이루는데
유리구슬을 몇 줄에 꿰어 중간에 금제의 장식금구로 연결하고 가슴에서 배까지 길게 늘어뜨리는 형식이다.

4~5세기 금목걸이 (경주 월성로)

또한 왕족이 묻혔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무덤에는 금목걸이가 출토되기도 하는데
월성로에서 출토된 이 목걸이는 금실을 고리로 만들어 사슬처럼 연결한 것으로
단순하면서도 너무나 세련된 형태이어서 현대에 착용한다고 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이다.

금목걸이 길이 33.2cm (황남대총 남분) 국보 194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는 금실로 엮어서 만든 금줄에 금제의 곡옥을 매달아 늘어뜨리는 양식인데
 
금실을 꼬아서 만든 금사슬 4줄과 속이 빈 금구슬 3개를 교대로 연결하고, 늘어지는 곳에는 금으로 만든 곱은옥을 달았다.
경주 지역 신라 무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목걸이가 푸른빛의 곱은옥을 사용한데 반하여 전체를 금으로 만든 특이한 목걸이이다.
금 사슬, 금 구슬, 곱은옥 등의 비례와 전체적인 크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풍기는 걸작이다.
 


 3세기 크리스탈 목걸이. (경주 황성동)
 

금이 흔했던 신라에서 금보다 더 귀한 것은 유리이다.
로만 그라스라고 불리우는 유리그릇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로마 제국에서 생산되어 동쪽으로 확산된 실크로드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다.
황남대총 출토 봉수형 유리병에 보면 파손된 유리병의 손잡이 부분을 금실로 감아 둔 것으로 보아 유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가 있고
중국의 옛 기록에도 '삼한인(三韓人)은 금, 은, 비단보다 구슬을 재보로 여겨 옷에 장식하거나, 목이나 귀에 매달고 늘어뜨려 장식한다'
기록되어 있어 우리 조상들의 각별한 유리 구슬 애호 풍습을 전해 준다.
삼국 시대에 이르러 한반도에서도 유리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도되는데, 이때 가장 많이 제작된 것은 남색 혹은 감색의 유리 구슬이다.
때로는 유리 구슬을 금이나 금동 제품과 함께 장식하거나, 모자이크 구슬처럼 남색 구슬 표면에 작은 노란색 구슬을 박아 넣어 미적 효과를 더하기도 했다.
또한 유리 곡옥을 만들어 갖가지 펜던트에 활용하는 등 목걸이용 유리 구슬의 많은 양이 고분에 부장되었기 때문에
유리 목걸이가 삼국 시대를 대표할 만한 고분 출토품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5~6세기 상감유리구슬 목걸이 ,보물 634호 (미추왕릉 c지구 4호 고분)

윗 사진의 미추왕릉지구에서 출토된 길이 41.6cm의 이 아름다운 색감의 목걸이는 
청색환옥과 마노환옥, 청색관옥, 수정, 홍색마노곡옥 등다양한 빛깔과 모양의 옥구슬이 눈길을 끈다.


특히 하단부에 달린 지금 1.8cm의 유리 옥에는
녹색 물풀이 떠 있는 물 속에서 헤엄치는 16마리의 오리, 구름, 두사람의 인물이 상감되어 있는데
인물상은 얼굴 바탕이 백색이며 세부는 청색선으로 처리하고 입술은 빨간 칠을 하는 등 
신라인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역 또는 지중해 부근에서 수입된 목걸이로 추정된다. 

6세기 금목걸이 보물 456호 (경주 노서동)

나뭇잎모양 날개가 달린 금구슬 70여개와 녹색 옥구슬이 조화로운 이 금목걸이(금제경식)는
신라 목걸이의 화려함을 대변해 주는 걸작인데
선덕여왕이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는 이 목걸이를 재현한 것이다.

6세기 가슴걸이 보물 619호 ( 천마총 )

경주국립박물관 신라실에는 이렇게 고분 출토 현장을 그대로 떠옮겨서 전시해 놓은 귀한 보물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가슴걸이(경식)는 천마총 안의 널(관)에서 발견된 것으로 가슴 윗부분에서 있던 것으로 보아 목걸이로 쓰였던 장신구이다.
금, 은, 비취, 유리 등의 재료를 사용했는데 원래의 줄 외에 가슴 부근에서 좌우로 늘어지는 짧은 가닥이 달려있고
청색 유리옥과 금·은 제품이 여섯줄로 이어져 일정한 간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큰 곡옥이 매달려 있다.
이 가슴걸이는 목에 걸었을 때 전체가 V자형이 되는데 
다른 무덤에서 출토된 목걸이에 비해 매우 화려한 작품이다.

금제 허리띠(과대), 띠드리개(요패) 국보 190호 (천마총)

천마총에서 발굴한 금제 과대와 요패.  과대란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인 허리띠로 길이 125㎝, 띠드리개(요패)의 길이는 73.5㎝이다.
과대는 뚫은 장식이 있는 44개의 판을 연결하였고, 주변에 9개의 구멍이 있어 가죽에 고정시키게 되어있으며 양끝에 허리띠 고리를 달았다.
과대에서 늘어뜨린 장식은 13줄로 타원형 금판과 사각형 금판으로 연결하였는데 과대와 요패는 널 안에서 허리에 착용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본 신라인의 장신구에 대해 소개해 보았는데
신라 장신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금관'은 더 자세한 언급이 필요한지라 다음 기회에 포스팅하기로 하고.....

박물관 전시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라인들의 장신구는 현대의 장신구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을 뿐더러
현대의 패션 리더들이 바로 착용하고 나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세련되고 정교한 디자인이 많다.
이 장신구를 현대의 장인이 그대로 복제하려고 해도 흉내내기 힘들만큼 신라인의 세공술은 뛰어났는데
이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복식에 대한 제약을 받게 되어 장신구가 더 이상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유교 사상을 중요시 여기다 보니 상고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의 사용 습관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 은의 사용을 막았던 조선의 정책은 찬란했던 금, 은 세공기술을 퇴보시켜 신라의 장신구 세공술은 고분 속에서 잠자게 되니
이렇게 멋진 신라인의 장신구는 오늘날 박물관이나 드라마의 재현품에서 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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