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자가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할 것을 하나 들라면 바로 섹시하고 요염한 춤으로 알려진 벨리 댄스가 아닐까.....벨리 댄스는 고대 이집트 벽화에 춤추는 모습이 묘사되어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몸통(belly)과 허리를 흔들거나 비트는 춤은 사막지대에 사는 민족에게 특히 두드러지는데 뛰거나 발장단을 칠 만큼 단단한 지면이 아닌 모래땅에서는 발이나 손의 동작이 제한되므로 발밑을 고정시키고 몸통의 동작에 중점을 두는 춤을 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집트를 비롯한 중근동 각지에서 흔하게 벨리 댄스를 추어왔었지만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여성의 노출도가 많은 춤이 경원시되면서 차차 그 화려함을 잃어가게 되었는데 비교적 계율이 엄격하지 않은 터키는 오스만 시대에 전래된 이후로 벨리 댄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예전에는 사실 벨리 댄스를 직업으로 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시베르 잔'같은 가수들이 벨리 댄스를 통해 스타덤에 오르기도 함으로써 현재는 벨리 댄서 지망자들이 많아졌다고.....

 

 

터키에서도 유명한 관광 온천지역인 파묵칼레의 호텔 히에라폴리스에서는 투숙객들을 위한 벨리 댄스 공연이 저녁마다 펼쳐진다. 호첼 정원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니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아라베스크 풍의 음악과 함께 검은 옷을 입은 댄서가 무대로 등장하였는데 신비감을 주기 위해서일까...? 머리를 검은 두건으로 가리고 입장했다.

잠시 두건을 쓴 채 춤을 추다가 두건을 벗는데 보니 예상보다 미모가 돋보이는 벨리 댄서다. 영화나 TV에서 본 벨리 댄서들은 대부분 살집이 좀 있고 허리가  튼실한 여자들이던데 이 벨리댄서는 허리도 날씬하고 아랫배도 거의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슴이 풍만하고 키까지 큰 아주 바람직한 몸매와 용모의 소유자였다. 

 

 

요염한 몸 동작, 배꼽을 드러낸 아슬아슬한 복장을 입고 골반 아래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벨리댄스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춤이 아닐까? 무대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멋진 춤을 선보이는 벨리 댄서는 춤추는 내내 관중석을 보고 방긋방긋 웃어주기까지 하니 남자 관객들의 마음이 설레이지 않을 수 없다. 양손에 케스터네츠를 들고 아라베스크 음악에 맞춰 허리를 돌리며 춤을 추는데 우리나라의 아마츄어 벨리 댄서들의 허리만 열심히 돌려대던 댄스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이 댄서는 완전 몸이 각각의 부위 별로 따로 노는 것이었다. 목을 흔들면 몸의 다른 부분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목만 왔다 갔다 하고
가슴을 흔들면 다른 부분은 가만히 둔 채 가슴만 흔들고 배를 흔들면 배 아래 위는 가만히 있고 배만 신기하게 흔들어지는 것이었다.

 

 

벨리 댄스의 절정은 이 댄서의 가슴 흔들기.....신체의 모든 부분은 움직이지 않고 가슴만 요동치며 움직이는데 더 놀라운 것은 양쪽 가슴이 상.하.좌.우로 각각 흔들어지는 것이다. 가슴을 따로 흔드는 이 묘기에서 남자 관객들의 괴성과 함께 우뢰같은 박수가 쏟아졌다...는건 두말하면 잔소리...^^

 

 

무대에서의 공연은 다 끝나고 이제 관객들에게로 댄서가 내려왔다. 이제 부터가 관객 서비스의 시작.....^^ 주로 남자 손님들이 많은 테이블을 찾아가 가슴 흔들기....배꼽 흔들기 들의 기교를 선보인다. 그러면 관객은 팁을 주는데 이 댄서는 받은 팁을 브라 안에 잘 갈무리 해두었다.(주머니가 없으니 가장 안전한 곳인 듯 하다..^^)

 

 

팁을 많이 받은 벨리 댄서......더욱 흥이 나서 케스터네츠를 흔들며 서비스로 배꼽 흔들기도 추가해서 관객을 즐겁게 하는데 남자들은 즐거워 죽을 지경인데 반해 동행인 여자들은 겉으로는 웃고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매우 띠꺼워하기도 하고 어떤 여자들은 벨리 댄서가 자기 앞으로 올 때에 남편의 손을 억지로 끌고 일어나 자리를 뜨기도 했다.


벨리 댄서의 독무가 있은 후에는 무대 위로 관객을 불러내었는데 서양과 동양 남녀가 각각 5명씩 불려나왔다. 그런데 서양 여자나 남자들은 제 나름대로 열심히 춤을 추는데 반해 동양인들은 쮸삣쮸삣하면서 수줍음을 타느라고 엉덩이 한번 제대로 못 흔들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유럽인,미국인,동양인.......한 사람씩 벨리 댄스를 흉내 낼 수 있도록 시간이 주어진 다음 제일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불러내었는데 터키 남자인 듯 했다. 조명이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깨까지 길러 늘어뜨린 머리, 적당한 콧수염, 탄탄한 근육의 20대 후반의 멋진 꽃미남이 앞으로 나오자 여인네들의 눈이 반짝이기 사작했다. 

이 남자를 '핫산'이라고 부르겠는데(핫산은 우리 나라로 치면 '철수'정도의 이름?) 이 핫산의 춤 솜씨는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벨리 댄서가 어떤 동작을 하던 멋지게 따라할 뿐만 아니라 아라베스크 음악에 맞춰 너무나 섹시하고도 살짝 끈적한 댄스 동작을 우리에게 선보여주었다. 우리 나라는 남자 댄스 가수의 춤이 섹시함 보단 파워풀한 것을 중시하는데 비해 터키의 뮤비를 보면 남자의 춤도 어찌 그리 섹시한지.....핥을 듯 쳐다보며 허리를 꼬는 춤이 거의 여자의 춤이나 매 한가지인데.....이 핫산의 춤도 마치 그것과 같아서 여자 관객들의 시선을 한 눈에 모아버렸다. 

이 핫산의 벨리 댄스는 갈수록 절정에 달하여 음악에 몸을 싣고 흔들다 더워진(?) 이 남자....나중엔 웃도리까지 벗어 던졌는데 그 몸매가 가히 예술.....(몸이 그 정도니 과감하게 옷을 벗지.....^^ ) 나중엔 뒤로 허리를 완전히 꺾어서 춤추다  거의 바닥에 누워서 섹시한 동작의 춤을 추기까지했는데 그 때에 여자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호텔 정원을 떠나 보낼 듯하였다. 환상의 춤 솜씨를 선보인 후 벨리 댄서와 함께 손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한 핫산.....관중들의 우뢰같은 박수와 함께  관중석으로 퇴장했는데 저 남자가 도대체 어디서 온 남자야....하면서 여자들의 웅성거림이 한동안 계속되었다는........^^  


이와 같이 터키에서 벨리 댄스를 관람하는 도중에는 반드시 관중을 불러내어 함께 춤추는 이벤트가 벌어지는데 터키에서는 벨리 댄스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며 젊은이들이 가는 디스코텍에서나 결혼식의 축하연 자리에서도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면 터키 남성들은 즉시 춤추러 나오곤 한다.

이후에 혹시 터키에서 가셔서 벨리 댄스를 관람하실 때에 댄서가 여러분을 지목하여 부른다면 어떻게 하실지....혹시 공연 때에 '하디.하디(자,자)' 라는 권유의 말을 하며 여러분에게 춤추기를 권유하면 망설이지 말고 무대로 올라가서 춤을 추어 보심이 어떠한지......
당최 춤을 출줄 모르신다고.....? 당신이 댄서의 벨리 댄스 흉내를 내든지 자신만의 막춤을 추든지 어떤 춤을 추더라도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엄청난 환호와 갈채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혼자 노는 것이 아니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즐기는 것. 그것이 터키식 놀이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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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의 현재의 지명은 터키의 알라세히르(Alasehir)이다. 고대 빌라델비아는 루디아 지방의 중앙 고원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던 고대 도시로 교통의 중심지이며 서쪽으로는 버가모와 사데를 잇고 동쪽으로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를 잇는 도시였다.

버가모왕 아탈루스 2세(BC 159~138),곧 필라델푸스(Philadelphus)는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빌라델비아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합성어로써 '형제애'를 뜻한다고 한다. 빌라델비아는 헬레니즘 문화를 동방의 오지까지 전파하는 역할을 한 곳인데 BC 19년에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던 것을 티베리우스 황제가 재건하여 소아시아의 중요한 성읍이 되었다.

 

성경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책망을 받지 않고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사도 시대의 빌라델비아는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인해 성도들은 매우 불안했으며 이 불안은 도리어 이들의 신앙을 더욱 뜨겁게 해 주었다.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교회였으나 안으로는 내실이 있는 교회였는데 그들은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잘 견디어 나갔기 때문에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되었고 이 교회는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본이 되었다. 

 

파묵칼레(히에라볼리)의 북서쪽으로 자리잡은 빌라델비아에 남아있는 성 요한 교회의 유적을 찾아가 보았다.
 

 

전성기 때에 큰 규모였으리라 짐작되는 성 요한 교회는 터키에 자주 발생하는 지진으로 인해 거의 다 무너지고 아래는 돌로, 윗부분은 벽돌로 되어있는 두 개의 육중한 돌기둥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뿐이어서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성 요한 교회는 기둥 두개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교회 유적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담장 바로 옆의 조그마한 주택은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색을 칠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옆 집의 벽은 샛노란 색으로 칠했는데 역시 터키 사람들의 남다른 색채 감각은 알아주어야 한다. 

 

 

성 요한 교회의 바로 맞은 편에는 조그마한 자미(이슬람 사원)가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술이 아름다울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일 것도 같지 않은  이 조그마한 자미의 나즈막한 담장을 타 넘으려던 꼬마애가 카메라에 잡혔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타 넘고 가려던 이 꼬마는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얼음'이 되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던지.... 

 

 

마침 '여름 코란 학교(?)'를 마치고 하교하던 중이었을까? 고만고만한 애들이 팔에 커다란 코란을 안고 자미의 담 위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메르하바'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는 한국사람이 신기한지 얘들이 도리어 우리를 보러 몰려 들었다.

아슬람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긴 하지만 터키의 어린 여자애들은 히잡을 잘 쓰지 않는데 자미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중이었는지 모든 여자애들이 다 히잡을 두르고 있었고 모두다 너무 이뻐보였다. 사진을 찍어주니 미소를 띄며 얌전히 포즈를 취해주었는데 저쪽 편 더 어린 여자아이들은 우리들도 찍어주지....하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도 이리 오라고 불렀더니  담장 위에 다소곳이 걸터 앉아서 아주 얌전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모두 9~10살 내외로 보였는데 모두 양 볼이 터질 듯이 통통한 것이 너무나 귀여웠다. 

 

 

좀 더 어린 아이들은 우리 나라 같으면 1~2학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데도 히잡을 써서 그런지 성숙해 보이고 미모도 돋보였다. 가운데 담장을 뛰어넘던 아이도 같이 앉아서 포즈를 취했는데 제일 앞의 여자 아이는 살짝 나온 똥배가 무지 귀여웠다.  

 

 

코란 학교의 왕언니들인가...? 5~6학년 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들은 어린 동생들에 비해 매우 의젓하고 벌써 여인네의 티가 난다.
크면 모두 다 한 인물 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이쁜 모습들이다. 집에서 싸 온 간식일까? 아니면 자미에서 나눠주는 간식일까?
간식을 먹다가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서 제법 세련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아이가 손에 든 것은 터키의 전통 요쿠르트인 '아이란'이고 갱지같은 포장지에 싸인 빵은 터키의 국민적인 빵 '시미트'이다. 

 

 

교회 건너 그늘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던 연세 지긋한 아저씨들 또한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손자인 듯한 아이가 매우 귀엽다고 했더니 아주 아주 좋아했는데 동서고금을 비롯하고 손자 사랑은 다를 바가 없나보다. 

 

 

카메라를 가지고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필자와 동행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빵집 총각들도 일하다 말고 나와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계속 구경하고 있었다. 터키인의 주식과도 같은 빵 '에크멕'이 진열장에 잔득 진열되어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에크멕은 필자가 지금껏 먹어본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으로 손꼽는 빵이다. 

 

 

빵집에서는 시미트,에크멕 등 터키의 전통 빵을 장작불을 때는 전통적인 오븐을 사용해서 굽고 있었는데
오븐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열기가 장난이 아닌 오븐 옆에 바싹 붙어서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빵집 주인인 듯한 아줌마와 그의 아들도 이방인을 위해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옆에 있던 동행 S가 아줌마를 보고 "촉  규젤~(Very Beautiful)"이라고 하며 손을 둥글게 모으는 제스츄어를 하자 아줌마는 생전 처음 보는 S를 와락...안아주었고
시미트(참깨가 발려져있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대중적인 터키빵)를 종이에 싸서 뭐라...뭐라 하며(가면서 먹으란 뜻인 듯.....)우리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받은 시미트를 한입 베어무니 고소한 맛과 함께 처음 만나는 사람도 이웃같이 대하는 빵집 아줌마의 인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빌라델비아에서는 성 요한 교회의 폐허와 그 근처 동네를 잠시동안 돌아보기만 하고 떠나야했다. 칭찬받는 믿음을 가졌던 빌라델비아의 교회터를 돌아본 것도 인상에 남았지만 이슬람 사원 앞에서 만난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순박하고 정감어린 모습들은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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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차로 12시간 거리를 가면 나타나는 파묵칼레는 터키에서 손꼽히는 온천 휴양지이다.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인 파묵칼레(Pamukale)는 목화솜을 깔아놓은 듯한 신기한 순백색 석회층으로 인해 유네스코 지정 세계 복합유산(세계에서 단 20 곳임)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 오는 여행자는 신비한 경관 뿐 아니라 고대 '히에라폴리스(히에라볼리,Hierapolis)'의 유적도 함께 돌아볼 수 있어 좋다.

히에라폴리스는 BC190년에 페르가몬왕 에우메네스 2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옛날에 파묵칼레 테르말 뒤 쪽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플루토니움이라는 구멍 속에서는 마시면 죽는다고 알려져 있는 유독 가스가 나왔는데 이곳에 들어갔던 한 사제가 소량의 가스를 흡입한 뒤에 혼수 상태에서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 이후부터 히에라폴리스(성스러운 도시)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 도시는 비잔틴 시대까지 인구 십만명이 넘는 도시로 오랫 동안 결쳐져 번성하였으나 결국 셀주크 터키에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 

 

 

유적 중에서도 '도미티안 황제의 문'이라는 3개의 연속 아치와 원통형의 탑으로 되어있는 건물이 눈에 뜨인다. 고대 도시의 남북을 관통하는 대로 끝에 위치한 이 문은 도미티안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AD 84~85년에 세운 문인데 로마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어 '로만 게이트'라고도 불리우는 히에라폴리스의 상징적 건물이다.

19세기 말에 발굴이 시작된 유적 발굴 작업은 현재는 이탈리아가 중심이 되어 발굴 복원하고 있는데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한 빌립을 기념한 빌립 순교 기념 교회, 원형 극장, 목욕탕, 시장터, 체육관 등이 남아있다. 복원조차 힘들 정도로 방대한 유적으로 가득 차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의 잔재는 당시 이 도시의 거대함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히에라폴리스에는 무덤으로 이루어진 '네크로폴리스(죽은 자의 도시)'가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히에라폴리스는 옛날부터 온천으로 유명한데다 의학이 발달한 곳이어서 수많은 환자들이 이곳으로 찾아 왔는데 병 치료를 하러 왔다가 낫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묻혔으므로 도시는 점점 무덤이 늘어갔다.
 

 

네크로폴리스의 무덤은 현재 12,000기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 중에는 도굴로 파헤쳐진 것도 많다. 형태는 석관,집 모양의 무덤,큰 규모의 사원 형태 등 다양한데 무덤의 형태에 따라 생전의 직업과 지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죽은자의 도시는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해주어 사람들은 일순간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된다.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은 2세기에 만들어진 대로마 목욕탕의 벽과 아치,돔을 살려서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신상,장식 조각,종교적 상징물과 히에라폴리스와 네크로폴리스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해 두었는데 너무 일찍 찾아간지라 문을 안 열어서 안을 돌아보진 못하였다.  

 

 

파묵칼레의 상징인 석회봉을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마치 새하얀 설산처럼 보이기도 하고 빙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석회층은 대지 상부에서 흘러내려온 석회 성분이 함유된 물이 오랜 시간을 거쳐 결정체가 되고 대지 전체를 덮은 것이라고.....

 

 

이곳의 석회봉은 길이 약 3km, 두께 약 300m, 아래 평지에서 보면 약 100m의 높이로 형성되어 있는데 가까이 가서 올려다 보면 훨씬 더 높다는 인상이 든다. 윗 부분의 석회봉에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같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석회봉 위에 올라가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 석회봉 아래 마을이 훤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이곳을 마음대로 출입했다고 하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이제는 석회층의 자유로운 출입은 금지되었다. 

 

 

파묵칼레의 석회봉은 정말 솜으로 만든 요새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 얼어붙은 폭포를 연상케도 한다. 온천수에 섞인 탄산석회 침전물이 수천,수억년 동안 두텁게 쌓여 만들어진 석회층이 마치 다랭이논처럼 펼쳐져있는데 여기에 고인 물은 아침 햇살을 머금을 때는 파아란 빛으로, 저녁 노을이 짙게 물들 때에는 붉은 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답다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터키에서 사 온 CD에 들어있던 사진 이미지에는 석회봉 온천풀장에서 수영하고 있는 환상적인 장면이 들어 있었는데 한때는 이렇게 수영을 즐길만큼 수량이 풍부했다고 하나 현재는 석회층 보호 차원에서 입장이 금지되어있으므로 여기서 수영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처럼 터키도 지나친 개발 붐으로 인해 온천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대지진이 있었던 14세기에 파괴된 석회층보다 사람들이 마구 들어가서 파괴시킨 석회층이 더 심각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석회봉의 윗 부분까지만 출입이 허가되어있어서 신발을 벗고 석회봉으로 올라갈 수 있다. 입구 나무로 된 계단 옆에 아무렇게나 신을 벗어 놓고 들어가면 된다. 

 

 

 아침이라 사람들은 많이 없었지만 먼저 온 사람들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놀고 있었다. 석회봉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 맨발로 걸으면 마치 지압을 하는 것처럼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파여진 도랑을 따라 온천수가 아래까지 흐르고 있는데 석회봉 위 물도랑 사이로 걸어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 도랑 안은 밖보다 암석이 거칠어 지압하는 것 처럼 발에 자극이 심하고 어린 아이발 처럼 연약한 피부를 가진 사람은 발이 따가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바닥에 깔려 있는 석회가루는 미네랄이 풍부해서 피부의 주름 개선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관광객들은 하얀 가루를 얼굴에 바르기도 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사람들은 석회봉 윗부분 여기저기에 고인 물에 너도 나도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며 즐겁게 놀기도 한다. 고인 물은 그다지 깊지 않아 발목 정도 잠기는 정도이지만 따스한 물의 온기는 온몸으로 퍼져나가서 발에 났던 상처는 물론 지쳐있던 여행자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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