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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26 '워낭소리' 그 후, 할아버지 찾아 봉화로 가봤더니...... 70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날 아침, 문득 차를 몰고 봉화로 향했다.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출발, 탁 트인 7번 국도를 시원하게 달리다가 영해면에서 영양으로 가는 918번 지방도로 들어서니

간간히 오고 가는 몇대의 차가 눈에 뜨일 뿐 오고 가는 길이 너무나 한가롭다.

2차선으로 된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숨가쁜 고개를 넘어서니 드디어 봉화읍이다. 

 

읍내라고 하지만 내려쬐는 뙤약볕 아래 지나가는 행인조차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시장 앞 거리.

기웃기웃 요기할 곳을 찾다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문을 밀고 들어섰다. 식당 안 역시 한산하다.

식사를 시켜놓고 봉화읍 지도를 펴 살펴보고 있으려니 친절한 주인이 어디를 가보실 예정이냐고 묻는다.

워낭소리 할아버지댁을 가보려 한다고 하니 주인이 난색을 표하며

"거기 가 봤자 별로 볼 것도 없을텐데요. 그 할배 지금 집에도 없고 병원에 계시는데 오늘 내일..... 한다던데요?"한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3시간 반이나 차를 몰아 봉화까지 온 것은 단지 최원균 할아버지를 만나보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현재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집에는 아무도 없다니......

음료수라도 한통 사 들고 찾아가서 영화 정말 감동적으로 보았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근황을 살피고 오려고 했는데......

안 계신다니 발걸음을 돌려야 하나.....생각하다가 그래도 영화에 나왔던 집이라도 먼발치에서 한번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원래 계획대로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란 네비 아가씨의 목소리를 듣고 주변을 살펴보니

<워낭소리 주연 최원균, 이삼순 부부의 집 200m>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대인 300만의 관객을 모은 영화 '워낭소리' 주촬영지인 이곳. 봉화군에서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명소가 되어 버린 할아버지의 집 앞은 워낭소리공원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워낭소리공원은 영화 장면을 담은 포토월이 반원 형태로 둘러져 있고

공원 가운데에는 할아버지와 늙은소 누렁이의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포토월에는 영화의 스틸 사진과 함께 영화 '워낭소리'를 보지 않은 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까지 곁들여져 있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이야 "아이구....번듯하게 잘 해놨네.."하고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워낭소리 영화의 여운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부분이다.

 

 

 

 

 

 

 

다리가 불편하신 최원균할아버지는 항상 늙은소 누렁이가 끄는 달구지를 자가용으로 타고 다녔는데

달구지 조형물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이 흥겨운지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이다.

 

 

 

 

워낭소리공원을 뒤로 하고 할아버지댁으로 가기 위해 약간 경사진 언덕으로 올라가본다.

누렁이가 할아버지를 태운 달구지를 힘겹게 끌고 올라가던 장면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집 입구 길에는 이렇게 워낭소리 영화 이후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장승들도 눈에 뜨인다.

영화 촬영지를 관광지로 만들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타나 보인다.

 

 

 

 

그런데 집앞에 이르니 영화에는 안 보이던 녹색 철문이 새로 생겼다. 영화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철문에는 '부모님 건강상 이유로 집을 당분간 개방 못 함.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식당 주인의 말대로 할아버지께서 정말 많이 편찮으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문 앞에 서서 철문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집 내부는 영화에 나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집안에 늙은소 누렁이의 동상도 세워져 있고 장승도 세워져 있는 등 집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영화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여기도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으로 변모시켜 버린 것일까?

 

 

 

 

질퍽하고 어수선하던 마당은 번듯하게 포장이 되고 사시던 집도 일부 보수를 한 듯한 모습이다.

 

 

 

 

철문 앞을 떠나 경사진 길로 내려오니 눈에 많이 익은 나무가 앞에 서 있다.

누렁이가 죽은 후 할아버지께서 누렁이와 항상 함께 하던 워낭을 들고 앉아 허탈하게 들판만 바라 보던 바로 그  나무이다.

 

 

 

 

주변의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죽은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는 영화에 나오던 모습 그대로여서 마음을 짠하게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 앞 밭의 꼴이 말이 아니다. 수백평에 이르는 밭 전체가 수박밭인데 수박이 모두 말라죽어가고 있다.

 

 

 

 

따지도 않은 수천개의 수박은 가지에 달린채로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고 있고 한곳에는 깨지고 터진 수박들이 썩어가고 있는 중이다. 

올여름 남부지방을 강타한 최악의 가뭄으로 수박들이 다 말라죽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수박을 가꾸던 할아버지께서 병환으로 쓰러져 입원하셨기 때문에 돌볼 사람이 없어 폐기된 것일까?

잘 자라던 수천개의 수박이 전부 내동댕이쳐져 썩어가는 모습은 할아버지의 병환 소식 만큼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할아버지댁을 나와 워낭소리공원에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누렁이의 무덤을 찾아보았다.

포크레인으로 파서 매장한 후 둥그렇게 봉분을 해놓았던 누렁이의 무덤은 기념비와 함께 꽃밭처럼 단장되어 있었다. 

 

 

 

 

'누렁이(1967~2008)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이 30년을 부려온 소.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이 소의 나이는 무려 40살까지 살다 갔다.

소와 인간의 교감과 진심이 빚어낸 울림은삶의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었던 소, 누렁이 여기에 잠들다.'

 

 

얼마전까지도 시간만 나면 누렁이의 무덤 앞에서 한참이나 앉아 있다 갔다는 최원균 할아버지.

"이 소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거여...."하던 할아버지는 이제 그토록 사랑하던 누렁이를 따라 갈 준비가 되신걸까?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나도 모르게 먼산을 바라보았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종이던 최원균 할아버지께서

2013년 10월 1일 향년 85세로 임종하셨습니다.

고인의 빈소는 봉화해성병원 장례식장이고 발인은 10월 4일 오전 9시입니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뜻에 따라 먼저 간 누렁이의 곁에 나란히 묻힌다고 하는데

누렁이는 별세 3일전 9월 28일 워낭소리 공원 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삼순 씨(82)와 9남매가 있습니다.

 

비록 할아버지는 영면에 드셨지만 워낭소리 영화와 함께

최원균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할아버지는 영원히 기억될 것 입니다.

사랑하던 누렁이와 함께.....

삼가 최원균 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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