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0.10.28 터키 여행 완소 가이드북 추천 37
  2. 2010.10.25 터키 요리, 그 환상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44
  3. 2010.10.14 공통점 많은 형제의 나라 터키와 한국 39
  4. 2010.10.11 터키에는 이방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37
  5. 2010.09.06 지름신 초강림하는 터키 그랜드 바자르 41
  6. 2010.09.02 터키/ 활력 넘치는 이스탄불 거리 풍경 44
  7. 2010.08.31 이스탄불 시내에서 본 '한국인'이란 간판 48
  8. 2010.08.19 1500년간 이스탄불을 지킨 아야소피아(성 소피아 성당) 55
  9. 2010.08.16 푸른 유리의 사원 블루모스크 29
  10. 2010.08.11 거대 전차경기장 유적 이스탄불 히포드롬 (술탄 아흐멧 광장) 35
  11. 2010.08.06 이스탄불 술탄아흐멧 광장의 여유만만 아침 풍경 46
  12. 2010.07.31 즐거운 눈속임 이스탄불 매직카펫쇼 44
  13. 2010.07.30 죽여주는 그맛 ! 터키 아이스크림 '돈두르마스' 71
  14. 2010.07.29 다이어트 시켜주는 터키 길거리 체중계 77
  15. 2010.07.22 무한감동이 밀려오는 도시 이스탄불! 109
  16. 2010.07.20 다리 색깔로 달라지는 터키 그리스간 국경 38
  17. 2010.04.29 밤이 더욱 아름다운 도시 터키 쿠샤다시 42
  18. 2010.01.10 유일하게 칭찬받은 서머나의 폴리캅 교회 38
  19. 2009.10.31 하늘과 물빛이 하나된 호반도시 터키 에이르디르 33
  20. 2009.10.24 이슬람 신비주의 도시 코니아, 현대적인 할인점 풍경 35
  21. 2009.09.29 성상품 넘쳐 나는 이슬람 국가 터키 69
  22. 2009.08.29 터키 아다나와 안디옥의 길거리 풍경 26


그동안 연재해 왔던 터키 여행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터키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몇 권 추천하고자 한다.

직접 현지를 방문한 여행에서 얻는 즐거움이야 말해 무엇하리오만 직접 여행을 가지 못하더라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는 지식이 또한 쏠쏠하지 않는가..... 아래에 열거한 책들은 터키 여행기를 쓸 때에 필자에게 많은 도움을 준 책이라 특별히 추천할 뿐  출판사 측과는 눈꼽 만큼도 이해 관계가 얽혀 있지 않았음을 밝혀 두면서....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인 '인사이드 가이드'와 '디스커버리 채널'이 공동 작업한 '인사이드 가이드 시리즈'의 '터키'편.
터키인들의 삶과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문가들의 자세한 소개글과 함께 터키의 매력적인 명소와 호텔, 레스토랑, 스포츠, 축제 등 여러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유적지마다 얽혀 있는 역사적 사실,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의 상세한 소개, 세밀한 현지 지도 탑재가 돋보이며 유명 사진 작가들의 작품성이 뛰어난 사진을 보는 맛이 압권인 책이다.

 

 

야심만만 세계 문화 정복 프로젝트 '큐리어스 시리즈' 제10권. 세계로 향한 지적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문화 체험 가이드북 <터키>편이다. 터키의 역사와 문화에서 사람들의 특성, 언어와 예절, 여행, 음식과 대중문화, 정착과 사업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터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행, 유학, 사업,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친절한 안내서이다.
 

 

터키인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담은 '작품' 수준의 사진이 실려 있어서 보는 사람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하는 책. 개인적으로는 터키인의 생활이나 국민성을 탐색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이다. 

 

 

테마가 있는 세계 여행 '터키'편. 터키의 교통정보, 숙박, 생활정보, 일반 상식, 관광명소, 요리에서 선물 고르기까지 여행을 떠났을 때 현지에서 필요한 정보를 망라하고 있다.
  

 

잡지 형식으로 많은 현장 사진을 함께 담고 있고 호텔과 식당의 주소와 연락처도 세세히 수록 되어 있다.  가볍지만 알찬 내용이라서 가이드 북으로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우리 실정에 맞도록 제작한 해외 여행 가이드 북 '세계를 간다' 제22권. 터키여행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해외여행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현지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실용적인 여행 정보를 정리하였다.  

 

 

관광, 교통, 식사, 숙박 등 필수적인 여행 정보를 가득 담았으며, 해당 지역의 사회, 역사, 문화, 풍속 등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최신 개정판이 새로 업데이트 되었다고 하며 많은 정보를 담기 위해서인지 사진의 사이즈가 너무 작은게 옥의 티..... 

 

 

 

'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은 터키의 문화와 정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읽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현재의 모습을 뒷받침해주는 다양한 역사 이야기와 1만 년을 통해 보는 신화,성서의 무대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역사와 유적 이야기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외대 터키어과를 나와 터키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터키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저자 이희철은 20년간 터키 연구에 몰구하여 터키의 정치뿐만 아니라 터키의 문화·역사에 남다른 정열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터키에 살면서 피부로 느낀 것을 서술하고 있어서  정확하고 생동감 있는 터키의 모습을 전해준다.

 

 

위에 소개한 책 '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의 저자 이희철이 20년 이상 터키에 살며 연구와 답사를 한 경험을 토대로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칭송을 받는 이스탄불의 문화와 역사를 생생하게 풀어내고 있다.   

 

 

서양의 비잔틴 제국과 동양의 오스만 제국, 두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조화롭게 지니고 있는 역사의 도시인 이스탄불을 찾는 사람들이 유적지를 문화사적인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 등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격동의 도시 '이스탄불'을 소개하는 책. 인류의 역사를 담은 유적들 이야기와 도시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인 이스탄불의 곳곳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이스탄불이 탄생하기까지의 굴곡의 역사를 소개한다. 또한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모습들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이스탄불을 통해 나와 다른 모습과 생각들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글로벌시대에 적합한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 이희수 교수는 이스탄불을 너무나 사랑하여 무려 85회를 방문하였다 한다. 따라서 그가 들려주는 이스탄불 이야기에는 인류의 역사를 담은 유적들 이야기뿐만 아니라, 도시민들의 생활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두 터키 홀릭이 터키 곳곳을 4년 간 누비며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터키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여행기록이다. 터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마음까지 사로잡혀 바람처럼 자유롭게 터키 곳곳을 떠돌았다는 두 저자가  터키 사람들과 섞이면서 만들어낸 예측불허의 에피소드가 사진과 함께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하지만 첨부한 사진의 사이즈가 작고 사진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점과 개인의 체험기 위주라는 점에서 여행 지침서로 쓰기엔 추천할만 하지는 않다. 

 

 

장편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은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인데 1, 2권으로 되어 있다. 16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통해 동.서양 문명의 충돌과 화해의 역사를 조명하는 추리 소설.   

 

 

이야기는 1591년, 눈 내리는 이스탄불의 외곽에 버려진 우물 속에서 시작되는데 우물 바닥에 죽어 누워 있는 시체 '엘레강스'는 어떻게 해서 자신이 나흘 전에 살해당해 우물 바닥에 던져졌는지를 이야기한다. 세밀화가들 사이의 질투와 긴장감, 낯선 그림에 대한 종교적인 두려움과 그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은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는 패배감과 함께 세큐레와 카라의 불운한 사랑 이야기에 맞물려 전개된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는 인류 문화 유산을 총 정리해서 보여주는 명저 중의 명저.
그 중 '오스만의 화려한 황제 슐레이만'은 14세기 비잔틴제국의 폐허 위에 세워져 1923년 터키공화국이 건설될 때까지 지속되었던 대제국인 오스만 제국의 가장 화려한 팽창과 번영을 이룩했던 황제 슐레이만의 치적과 생애, 예술세계,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를 원색의 사진, 삽화로 조명한 주옥같은 책이다.
 

 

특히 오스만 제국 당시 세밀화와 톱카프 궁전 보물 등의 방대한 사진 자료를 보는 맛이 쏠쏠한 책. 문고판이라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와 저렴한 가격도 시공 디스커버리 시리즈의 장점이다.

 

 

이스탄불 소재 유적에 관해 가장 자세한 해설과 사진이 나와 있는 책. 아쉽게도 현지 터키 출판사에서 한국어로 출판한 책이라 이스탄불의 유적지 기념품 가게에서만 구할 수 있다.
 

 

'하기야 소피아'에 대한 설명만도 13쪽에 걸쳐 나와 있을  정도로 이스탄불의 유적을 상세하게 조명한 책. 현지에 여행을 가신다면 꼬옥 사서 소장하시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와 있는 터키 여행 관련 도서 중 몇권을 소개해 드렸다. 혹, 이 중 한권이라도 읽으실 마음이 나셨다면 터키로 떠날 마음의 준비는 이미 다 끝난 듯 하다.

자.....그럼 우리 함께 신화의 나라, 환상의 나라, 신과 인간이 함께 사랑한 땅 터키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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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요리는 프랑스, 중국 요리와 더불어 세계 3대 요리로 꼽힌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기간 동안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에서는
궁중 요리사들이
고대 로마 미식가들의 식도락과 비견되는 사치스러운 요리법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터키에서 물고기와 닭,고기,과일,야채 등 음식 재료가 풍부하게 생산되고 고대 아나톨리아에 뿌리내린 수많은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터키는 특히 야채 요리가 많이 발달하여 우리나라에는 잘 쓰이지 않는 가지 요리만도 5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요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가 대부분이지만 모든 것이 여유로운 터키인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요리 자체를 즐긴다.

터키인의 주식은 빵과 고기류의 음식으로 거의 유럽 식단에 가깝고 풀 코스로는 수프, 샐러드, 메제(에피타이저), 주요리, 후식, 음료....의 순서로 나오는데 지방에 있는 아주 조그만 식당에 가더라도 규모와 서비스의 질은 다르겠지만 정식 코스를 밟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터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수프 중에서 렌틸콩 스프(메르메지크 쵸르바스, Mercimek Çorbasi )는 터키의 된장국이라고 할 만큼 대중적인 수프인데  지방과 식당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렌틸콩 수프(Mercimek Çorbasi)는 우리나라 녹두죽과 맛이 비슷한데 함께 곁들여져 나온 레몬 즙을 뿌려서 먹으면 더 상큼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얇은 반죽 위에 간단한 재료를 얹어서 구운 라흐마준(Lahmacun)이라는 터키식 피자는 식사라기 보다는 터키의 패스트 푸드 감각의 음식이다. 코스 요리에서는 주요리가 나올 때까지 허기를 다스린다. 라흐마준(Lahmacun)의 맛은 피자에 못지 않고 크기 또한 상당히 커서 허기를 다스리다가 배부를 지경이다.

 


렌틸콩 스프와 함께 샐러드(Salatasi)가 나오는데 정육면체로 썬 토마토와 양파, 오이, 고추,
특이하고 향긋한 허브들을 이용하여 만든
양치기 샐러드(초반 살라타스, Çoban Salatasi))가 가장 대중적인 샐러드이다.

 

 

초반 살라타스와 함께 바게트같이 생긴 에크멕(Ekmek)을 렌틸콩 수프에 담궈먹으면 훨씬 부드럽고 환상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꼭 나오는 초반 살라타스와 메르지메크 초르바스는 터키의 국민적인 음식이다.  수프와 샐러드 다음으로 나오는 매제(Meze)는 전채(에피타이저)에 해당하는데 메제에는 요쿠르트, 가지 샐러드,토마토 다진 요리,작두콩 삶은 요리,피망 도르마....등 유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부터 채소와 콩을 삶은 것까지 수십 가지의 종류가 있어서 매제로 메인 요리를 대신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리고 메인 요리의 순서가 되는데 터키에는 고기 요리가 주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생선 요리도 일품이다. 고기 요리는 잘 알려진 케밥이 유명하지만 그 밖에도 쿄프테, 피데, 돌마, 뵈레이, 티바. 사르마 .....등 다채로운 메뉴가 많다. 이슬람 교도가 많다보니 돼지 고기는 잘 사용하지 않고 양고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도 잘 아는 터키의 요리, 시슈 케밥(Şiş Kebab)은 쇠꼬챙이에 끼워 화덕에 돌려가며 구운 후 접시에 담아서 나온다. 


 

되네르 케밥(Döner Kebabi)은 터키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음식 중 하나인데 양 한 마리를 잡아 살코기의 전 부위를 얇고 널따랗게 썰어서 마늘,양파즙,박하,각종 향료로 된 양념을 뿌려 하루 저녁을 재운다. 그 다음 날 회전판 가운데 일자로 세워진 쇠꼬챙이에 차곡차곡 고기를 끼워 둥글게 원통형으로 쌓아올려 서서히 돌려가며 굽는다. 표면이 익으면 익은 부분을 가늘고 긴 칼로 얇게 잘라내어 얇고 둥글넙적한 빵인 피데에 끼워먹거나 밥에 얹어 토마토 등의 야채와 함께 먹는다. 고기 몇 점에 양 한 마리의 모든 부위가 담겨 있는 셈이어서 부드럽고 맛이 환상이다.

 

 

괴프테(Köftecisi)는 케밥과 함꼐 터키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써 양고기를 다져 양념한 후 둥글넙적하게 빚어 화덕에 굽는 요리로 마치 우리나라 떡갈비와 비슷하다.

 

 

호텔이 아니더라도 터키의 대부분의 레스토랑 식탁에는 테이블보가 깔려져있는데 일반 가정에서도 식사 때에는 꼭 테이블보를 덮은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그래서 가는 곳 마다 리넨으로 된 비싼 테이블보로부터 손뜨게로 정교하게 짠 예쁜 레이스 테이블보를 파는 가게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급 호텔의 부페 레스토랑에서
  테이블보를 깔지 않고
그냥 식탁 위에 종이 매트 한 장이나 작은 테이블 매트 한 장 깔고 음식을 주는 것을 여러번 본 적이 있는지라 그들의 정갈한 테이블보가 새삼 정성스럽게 느껴졌다.

 

 

터키 요리에는 또한 빵이 빠질 수 없는데 이들은 빵을 신성시한다고 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식사 할 때 아이들이 빵을 조금이라도 남겨선 안 되며 남은 빵이 있으면 버리지 않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만약 실수로 빵 조각이 땅에 떨어지면 그 빵을 주워 입맞춤을 하고 경의의 표시로 이마에 가져다댄다.

 

 

터키의 대표적인 빵은 에크멕(Ekmek)으로 일반적으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무한정 공급된다. 프랑스 바게트와 모양과 맛이 비슷하지만 길쭉한 형태의 바게트에 비해 타원형의 럭비공 모양에 가깝다. 주요리류가 고기류이기 때문에 대부분 이 빵에 고기를 싸서 먹는다.

 

 

에크멕과 함께 터키인의 대중적인 빵은 시미트(Simit)이다.  동그란 고리 모양의 빵으로 위에 참깨가 뿌려져 있고 부드러운 에크멕과는 달리 조금 딱딱한 편이다. 참깨가 많이 묻어 있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며 양이 상당하여 배고플 때 먹으면 그만이다. 
터키 빵 중에서 한국 사람의 입맛에 잘 맞는 빵에는 발론 피데(Balon pide)가 있다. 소금만 넣어서 반죽해서 전통의 화덕에 구운 빵 발론 피데(Balon pide)를 한국사람들은  걸레빵이라고 부르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속이 빈 공갈빵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중동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빵이다.

 

 

시골에는 아직도 이런 전통 화덕에서 구운 빵을 파는데 그 맛은 정말 환상적이다.

 

 

그리고 터키 고유의 발효 식품인 투루슈(tursusu,터키식 짠지)는 반찬 역할을 한다. 피클과 비슷한 오이 투루슈나 고추 장아찌와 비슷한 비베르 투루슈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그리고 디저트는 대부분 살인적으로 달콤한  바클라바(파이를 벌꿀에 잰 과자), 과일 푸딩, ,여러가지 신선한 제철 과일등을 먹는다.
고기를 주식으로 사용하는 민족이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달콤한 과자를 후식으로 먹는 이유는 대부분 단 맛이 느끼함을 없애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터키의 풍부한 일조량으로 인해 모든 과일은 과일은 아주 싸고 신선하며 당도가 높아서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공해가 없으니 그다지 씻을 필요도 없는지라 포도도 껍질 채 다 먹는다.

 

 

시골에서는 과일 장수가 추를 사용한 저울로 무게를 재어서 판다. 과일이나 야채가 흔해서 박스 채로 사도 너무나 싼데 터키의 과일 가게에 가서 과일을 낱개로 사려고 하면 주인이 놀라서 쳐다 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음료가 빠질 수 없다. 다른 이슬람국가는 음주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반해 터키는 이슬람국가인데도 술에 대해서 제재가 없고 매우 관대하다. 술은 어디서나 간단히 구입할 수 있고 값도 싸다. 터키의 국민주인 라크(Raki),지방색이 풍부한 각 지방의 와인,맥주(Bira).....등 다양한 술을 다양한 요리와 함께 즐긴다.

유명한 '아이란(Ayran)'은 요쿠르트를 물에 희석하여 얼음을 띄워서 마시는 음료이다.  불가리아의 한 장수 마을이 요쿠르트로 유명해 진 적이 있는데 알고보면 그 마을은 터키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니 터키는 그야말로 요구르트의 종주국이랄수 있다.
그만큼 유목민의 후손인 터키인들에게 요쿠르트는 중요한 식재료이다. 이 요쿠르트는 신 맛이 나므로 꿀이나 잼을 타서 먹는 것이 좋다. 집에서 터키식 요쿠르트를 만들어 먹어 보면 금방 중독이 되어 시중에서 파는 요쿠르트는 멀리 하게 되기도 한다.

터키의 음료 중의 대표적인 것은 뭐니뭐니 해도 차이(Çay)일 듯.....차이는 터키에서 마시는 홍차인데 터키 사람들는 차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여  차이와 함께 하루가 끝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차이를 빼놓고는 터키를 논할 수 없다. 차이는 중앙 부분이 약간 좁은 '차이파르다'라는 작은 컵으로 마시는게 일반적이며 여기에 옆에 곁들인 각설탕을 넣어서 먹는게 터키식이다. 터키를 여행하는 사람은 꼭 차이에 대한 추억담이 한 둘 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주 진하고 독특한 맛이 나는 터키 커피(Türk Kahvesi)도 환상의 맛! 커피 가루와 설탕과 물을 함께 끓여 거르지 않고 컵에 담은 후 가루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마시는데  다 마시면 잔 아래의 커피 가루가 입에 들어오므로 다 마시지 않고 아래에 찌꺼기를 조금 남겨 차 받침을 덮어 거꾸로 세운 후 컵에 생기는 무늬로 그날의 운세를 점친다. 터키인들이 커피잔 바닥에 생긴 무늬를 얼마나 빨리 풀이해내는지 놀랄 정도라고.......

                                                                                    

 

음식에 관한 한 터키인들은 대단히 창의적이어서 재료만 있으면 무슨 음식이든 잘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Hi~Seoul'이나  'Dynamic Korea' 처럼 터키를 상징하는 슬로건은 'Mosaic Turkey'인데 터키 음식은 중앙 아시아로부터 내려온 터키 전통 요리에 발칸 반도,아라비아,북부 아프리카....등  여러 정복지의 음식을 <혼합하여 재창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 환상적인 터키 음식으로 인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는데 터키 음식이 더욱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 나라 사람의 입에도 그 간과 맛이 맞는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에크멕을 메르지메크 초르바스에 찍어먹는 날이 다시 오길 간절히 바라면서.....간단하나마 터키 음식 소개를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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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구 상의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 점이 있겠지만
약 8,000km의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과 터키는 흡사한점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도 언어의 유사성을 들 수 있는데 터키어와 우리 말은
같은 우알타이어족에 속하여
문장 구성,문법,모음 조화 등이 우리말과 거의 비슷하고
리 말과 어순도 꼭 같이  S+O+V 의 순이다.

 터키와 우리나라 사람은 언어가 비슷하여서 그런지
사고 방식 면에서 일면 상통하는 점이 상당히 많고 감정의 표현 방법도 비슷하며
전통적인 관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에서 우리와 유사한 점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길거리에서 'SU'라고 쓰인 트럭을 보았는데 물어보니 놀랍게도  'SU'는 터키어로 "물(水)'이란 뜻이란다.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게 새삼 실감나는 부분이었다.

 

터키를 찾는 사람들은 상점이나 백화점마다 유명 브랜드가 쫙 깔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터키는 개방된 시장이어서 샤넬의 최신 디자인에서부터 각종 생활 용품까지 수입 안되는 것이 없는 곳이다.
우리들처럼 터키의 젊은이들도 나이키,아이다스,리바이스 등 
유명 상표의 옷을 입고 친구들 앞에 은근히 자랑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곳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짝퉁 브랜드가 판을 친다.
 

 

 

 터키 사람들의 청결 의식은 대단하여 여자들은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는데 시간을 들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해 열심히 자기 집을 쓸어서는 밖으로 휙...갖다 버리곤 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터키의 거리에는 노점상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참으로 다양한 물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점상은 불법이지만 길에는 노점으로 넘쳐나고
아침부터 밤중까지 거리에서는 소리 높여 물건을 파는 여러 목소리가 섞여서 들려온다.
터키의 노점상들은 경찰이 나타나면 재빨리 몸을 피하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목청도 좋아야 한다고......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터키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 매우 친절하다.
필자가 탔던 차가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에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승용차 때문에
전진도 후진도 하지 못하고 난감하게 끼어 었었는데 어디선가 한 
청년이 나타나
양 옆에 있는 가게들을 이리저리 다니며 운전자를 불러내어 차를 빼내게 하고
차 앞에 서서 "앞으로...뒤로...좀 더..."를 크게 외치며 차를 빼내게 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청년은 운전자가 고맙다는 말도 하기 전에 유유자적 자기 갈 길을 가버리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와 같이 터키인들은 친절이 넘치는데
시골 같은데서 누가 길을 물으면
자기 하던 일을 다 제쳐 놓고 아예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본 트럭 위의 생수병이 너무나 친근하다.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선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돗물을 음료수로 먹지 않기 때문에  
물 배달 업체에 신청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커다란 물통을 배달해 주고 이렇게 빈 통을 수거해 간다.
신선한 물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즉가하는 추세라서
이스탄불 곳곳에는 주유소와 비슷한 시설의 물 판매소도 등장했을 정도라고 한다. 

 

 

멀리 갈라타 타워가 보이고 그 앞에 샛노란 택시들이 지나가고 있다.
택시를 잡을 때에는 우리처럼 손을 들면 되고 요금은 미터기로 계산하며 야간 역시 할증료가 있다.
택시 요금을 바가지 씌우는 일은 거의 없으나 운전자가 목적지를 정확히 아는지는 미리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고...... 

 

 

한국에 몇년 거주했던 한 미국인이 '한국에서 차를 몰면서 살아남는 재주'라는 글을 한 잡지에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스위스의 어떤 자동차 경주 선수 또한 터키에서의 운전 경험은 '놀라운 일로 가득 찬 흥미진진한 경험'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다반사인 끼어들기, 추월, 급브레이크,경적 울리기......이런 것 또한 이스탄불에선 보통의 일과라고.....
 

 

 

이스탄불의 도로는 언제나 차로 가득 차서 차간 거리같은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운전자들은 모두들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서둘러 차를 몰며
엄지 손가락은 언제나 경적을 울릴 태세를 취하고 있다. 
경적을 울리는 방식도 우리와 비슷한데 짧게 한번 울리면 경고나 감사의 의미, 길고 끈질기게 울리는것은 강한 비난의 뜻이란다.
터키에서 운전하려면 이 모든 경고와 비난의 소음과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운전 습관에서 느낄 수 있듯이 터키 사람들은 한국사람처럼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편이라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핏대를 올리며 싸운다고 한다.
필자는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보딩을 기다리다가 항공사 직원과 승객이 다투는(!) 현장을 보게 되었는데
큰 소리로 말다툼을 하다가 심하게 흥
분한 항공사 직원이
갑자기 데스크를 발로 밟고 올라 붕~ 날아서 승객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구경 중에 최고가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둘러서서 보는데
항공사 직원이 승객을 때리며 싸우는 현장을 보니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터키인들은 이렇게 주먹다짐을 하고 싸워도 술 한잔 마시고는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어버린다고 한다.  

 

 

블루 모스크 부속 아라스타 바자르 옆 노천 카페에서 흥겨운 민속 음악이 흘러나오기에 가보니
남자들 여섯명이 서로 어깨를 잡고 일렬로 서서 즐거운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춤은
 중앙 아나톨리아의 민속춤으로 '할라이 댄스'라고 부른단다.
얼마나 신나고도 힘차게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아가는지
노천카페에 앉은 필자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같이 끼여 춤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터키 사람들은 우리처럼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특히 터키의 젊은이들은 대중 음악에 열광하는데
터키 팝은 음악은 터키 풍이면서도 악기나 비트는 세련된 유럽식이다.
시장,레스토랑,버스 안 어디서나 노래를 틀어놓아 사방에서 열정적인 노래 소리가 들려오며
젊은 운전사가 차를 몰고 지나가면 그 안에서 들려오는 강한 비트의 음악은 도로의 콘크리트 바닥이 울릴 정도이다.
 
  
                    터키의 뮤직 비디오에는 19금으로 분류해야하지 않나..생각될 만큼 야하고 섹시한 춤이 난무하는데 
           
 여자의 춤은 물론 남자의 춤도 섹시하게 허리를 돌리며 추는 춤이 대부분이어서 이 곳이 정말 국민의 95%가 무슬림인 나라가 맞나....하고 의심이 드는 신기한 나라이다. 

이슬람에선 음악과 춤을 금한다.
   하지만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의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세속주의 채택으로 인해
  터키는 법률상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비교적 자유로운 이슬람국가이다.

                                           

오늘날 터키 지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종교적 억압과는 거리가 먼 나라를 발견하게 되는데 
 터키인들은 단체 관광을 가는 버스 안에서도 통로에서 춤을 추며 흥겹게 노래 부른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관광버스춤을 추는 나라>라니.....정말 형제의 나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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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는 이방인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고 한다.


이방인 혐오증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종족으로 섞인 터키 땅,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 교차하고


융화되는 변화 속에서 사는 튀르키쉬(터키 사람)들은

누가 토종인지...누가 이방인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터키 땅에서 터키 말만 하면 다 튀르키쉬라고 느낄 정도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이희철 지음 '터키' 참조)

현대 복장을 한 여성과 히잡을 쓴 여성이 성 소피아 사원 입장료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현대 복장을 한 여성이 히잡을 쓴 여성에게 이 줄이 입장표를 사는 줄인지 아닌지를 물어본다.

       히잡 여성:(놀라며)아니..터키 말을 아세요?

       현대 여성:(당황한 듯)예...터키 사람이에요.

       히잡 여성:아~~ 전혀 터키 사람같지 않네요..외국인인줄 알았어요.

       현대 여성:당신도 전혀 터키 사람 같지 않네요. 아랍 사람이줄 알았어요.

      히잡 여성:엠함둘라(신에 감사하다는 뜻) 우리는 다 무슬림이고 터키 사람이죠..뭐....

      현대 여성:맞아요.  



토종이 이방인이 될 수 있고 이방인이 토종이 될 수 있는 것이 터키다.



눈이 작고 골격이 작은 우리 나라 사람도 터키에 가서 터키 말을 구사하면서

투르키쉬와 가장 가까운 친족 관계에 있도 한국 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타타르'라고 하면 의심들 하지 않고 믿는다고 한다. 
 


튀르키쉬의 이방인에 대한 환대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방인이 '메르하바(안녕하세요)'란 말 한 마디만 해도 그들은 깜짝 놀라며

그들이 큰 일이라도해낸 것처럼 좋아하며 도와줄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 

 


그들은 경제적 여유와는 상관없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손님을 접대한다.



아나톨리아(터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 지역을 말한다.)에선

여행자가 아무 집에서나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면  묵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방문객을 그렇게나 반기는 것은 낯선 방문객이 신이 보낸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터키의 가정에서 손님이 물을 청하면 받침 접시 위에 예쁜 수가 놓인 천이나 레이스로 된 컵받침을 받쳐서 물을 내오며

손님이 물을 마시는 동안 안주인은 받침 접시를 들고 기다린다.

이런 일은 손님 접대에 대한 터키인의 정성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수년간의 인구 이동과 그에 따른 문제로 인해 도시에서는 이런 손님 접대를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지만
 
터키 제일의 도시 이스탄불의 구석 구석에서도 이방인을 환대하는 터키인의 따스한 정()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가 있다. 



 'Dynamic Korea'처럼 터키를 상징하는 언어는 'Mosaic Turkey'이다.

 투르키쉬, 유러피안, 아메리칸, 아시안이 하나가 되는 곳.

분주함과 여유로움과 다양함이 한데 뒤섞여 있는 곳, 터키.  

터키의 거리를 자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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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의 초강림으로 인해 빈곤한 여행객의 주머니를 한순간에 비워버리게 하는 곳...

'그랜드 바자르(카팔르 차르싀)'는 외국인들이 이스탄불에 오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다.

외국의 수반들이 터키 대통령을 방문하면 영부인들은 어김없이 그랜드 바자르를 방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수천개의 상점에서 판매되는 수백만 종의 물건들은 전 세계의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카팔르 차르싀'는 '지붕이 덮인 시장'이라는 뜻인데 이 시장은 동양 다른 나라의 지붕이 있는 시장의 원조가 되었다.

 중국에서 시작되는 실크 로드의 종착점이기도 한 이 곳은  오랫동안 동서양 문물을 교환하는 장소가 되었다.

원래의 건물은 비잔틴 제국 때 지어져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1461년에 크게 확장한 이후로 시장의 규모는 날로 커져 갔다. 

 


바자르로 들어가는 입구는 18개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누루오스마니에 게이트와 베야즈트 게이트이다.

누루오스마니에 게이트의 박공 머리에는 의장용 무기와 책,깃발이 새겨져 있고

'카팔르차르싀(그랜드 바자르의 터키식 이름) 1461년' 이라는 연도가 새겨져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지금까지 12번의 강한 지진과 9번의 대화재로 소실되었고

재난 때마다 복구되었는데 1894년 지진과 1954년 대화재 이후 가장 크게 복구되었다.

 


이 바자르의 전체 면적은 30 ha(약 93,000 평 정도)의 넓이이며 80개의 시장 거리에

약 3,500개 이상의 상점이 있고 15,000명의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시장 안에는 7개의 분수와 하나의 우물, 그리고 커다란 사원 하나와 12개의 작은 사원이 있고 

학교와 목욕탕도 있었는데 1894년 지진 후 복구에서 철폐되었다. 

 


오스만 제국 때에부터 이 시장은 상업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환전소와 은행 등 각종 경제활동이 행해지던 곳이었다.

 

 
오스만 시대에는 각종 향료나 섬유,나무 등을 파는 전문 거리가 형성되어 있었고

19세기 중반까지 노예 시장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초에는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도망나온 사람들이 가지고 온

각종 골동품 등 왕실의 보물들을 이 시장에서 팔곤 했다.

 


또 유럽에서 들어온 각종 레이스 품목 및 고급 천,침대 커버 등도 이 곳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랜드 바자르의 메인스트리트에는 즐비한 보석상이 제일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는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특히 금장신구에 돈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도시 여인들은 보석이 박힌 금팔지나 금반지를 선호하며 시골 여인들은 순금으로 된 귀걸이,팔찌를 많이 착용한다.

터키 남자의 부의 척도는 그의 아내가 착용한 금팔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터키인들은 여유 있을 때 금팔찌를 하나씩 사모은다.
 

 
그랜드 바자르의 어느 보석상 앞 거울에서 주인의 양해를 구한 후 귀걸이를 고쳐 끼우고 있을 때

보석상 주인이 "당신이 한 귀걸이가 무슨 보석이냐"고 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이건 이미테이션"이라고 했더니 그 주인은 "왜 이미테이션을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그 보석상 주인은 필자의 남편이 돈이 없는 아주 불쌍한 남자려니.....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질 좋기로 유명한 터키 카펫의 가장 오래된 카펫 생산지는 콘야인데 13세기에 이미 카펫 제작소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이스탄불 인근에 카펫 공장이 많이 들어서 손으로 짠 수공예 카펫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카펫은 면,양모,실크로 만드는데 양모로 된 카펫을 제일 선호한다.

60년 이상 된 수공예 카펫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제작 연도가 확실치 않을 때에는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여야 한다고 한다.

비싸지 않고 대중적인 카펫은 길게 짜 두었다가 손님의 원하는 대로 이렇게 잘라서 팔기도 한다.

관련 포스트 : 눈을 의심케 한 이스탄불 매직 카펫쇼

 


문양의 나라 터키의 접시에는 저마다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터키인들의 대표적 기념품  '나자르 본주(Nazar Boncugu)'는 파란색 바탕으로 된 유리에 까만 눈이 그려진 일종의 부적인데

열쇠 고리,키 홀더,목걸이,팔찌....각가지 형태로 다 있다. 

영어로는 이블 아이(악마의 눈)라고도 하는데 가장 강력한 악마의 눈을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주위의 악마들을 도망가게 하며 타인의 질투나 질시를 빨아들여 주위의 재난으로 부터 자신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모든 집의 들어가는 입구나 상점의 문 옆에는 어김없이 이것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련포스트 : 밤이 더욱 아름다운 도시 쿠샤다시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터키의 기념품 가게도 본국에 돌아가기전에 돈을 다 쓰고 싶어하는

외국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쓸모 없고 조잡한 물건들이 많다.

바자르나 다른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흥정의 기술을 배워두어야 하는데

터키 상인은 가격을 얘기할 때 가장 높은 가격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깎아 달라고 하면 얼마에 사기를 원하냐고 묻는다.

상인이 제시하는 가장 높은 가격과 소비자가 원하는 가장 낮은 가격의 차이를 줄여나가다가

가장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보게 되는데 그 가격은 대체로 처음 부른 가격의 반 정도가 되는 편이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 손님은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니 주의할 일이다. 
 


터키인의 대부분은 청결을 소중하게 여겨 닦을 것이 없는 깨끗한 유리창도 닦고 또 닦는다. 
 


바자르 안에는 점포도 많지만 여러가지 편의 시설들도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카페도 군데 군데 있어서 '차이'를 마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즉시 '차이'를 배달해 준다.

우리나라처럼 쟁반을 들고 오트바이를 탄 아가씨가 오는게 아니고 잘 생긴 총각들이 '차이'를 들고 온다.

왜냐하면 식당이든, 가게이든, 카페이든 터키의 모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남자이기 때문이다.

대신의 여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간이 찻집에는 물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곳곳이 간이 음식점도......
 


쇼핑하다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의자들도 군데 군데 마련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환전소도 군데 군데 있는데 카드도 받는다.

그러나 집집마다 카드 단말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카드를 들고 점원의 뒤를 따라 골목 사이로 들어가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의 경우도 카드를 든 점원이 하도 빨리 걸어서 앞으로 가는 바람에 골목에서 사람을 놓쳐 어리둥절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이 시장에서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흥정인데 터키의 상인들의 상술은 아주 특별하다.

그들은 터키식 차(차이) 한 잔으로 장사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거래는 차로 시작하여 차로 끝나게 된다.

 손님이 가게 에 들어오면 일단 차이부터 권하고 거래가 이루어지면 또 한번 차이를 권하는 것이다.

들어와서 차이 한잔 하고 가라는 말로 손님을 부르는데

차이를 얻어 마시고 물건을 사지 않고 나온다고 해서 욕 얻어먹을까...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여기는 이스탄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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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사람이 동시에 사랑한 땅', 터키 이스탄불 거리는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과거와 현대가 뒤섞인 구시가지의 뒷골목에는 이 거리에선 말이 끄는 수레와 최신형 벤츠가 뒤섞여 다니며 
차들은 세울 곳만 있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주차를 하고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집들과 모스크의 첨탑보다 더 높이 솟은 호화 현대 아파트들이 뒤섞여서 조화를 이룬다.

시내 한가운데를 둘러싸고 있는 1,500년이 넘은 비잔틴 시대 성벽 유적 옆을 수많은 차들이 뒤엉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메트로, 트램, 버스, 돌무쉬, 택시.....등 다양한 교통 수단이 한데 뒤섞여 지나간다.

미니버스인 돌무쉬는 일반 버스보다 편리하고 싸서 서민들이 자주 이용한다.

'가득하다'는 뜻의 돌무쉬는 말 뜻 대로 가득 차 있을 때가 많은데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승객을 태운다.

돌무쉬 운전자들은 동시에 여섯 가지 일을 해낸다고 하는데 승객들과 잡담을 하며 차창을 닦고,

맞은 편에 오는 돌무쉬 운전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요금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 주며,

길가에 돌무쉬를 타려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그리고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한다고....

고속 도로가 잘 발달된 터키는 도시의 오토가르(Otogar,장거리 버스 터미널)마다

 

'오토뷔스(Otobus,버스)'가 잘 구비되어 먼 거리를 냉방 장치가 잘 된 안락한 좌석에 앉아 갈 수 있다.

오토뷔스는 남자 차장으로부터 간식과 차까지 대접받을 수 있으며 화장실은 물론 뷔페까지 설치된 2층 버스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오토 버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벤츠 버스가 즐비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갖가지 살림 살이를 싣고 이사가는 트럭을 만났다. 세간 살이도 몇 안 되는 걸로 보아 자취하는 청년 둘이 이사를 가는 것일까?
 

우리네 이사 풍습처럼 거울을 제일 마지막에 실었는데 주인들도 짐칸에 실려서 이사를 간다.
 


터키의 고속 열차는 앙카라와 이스탄불을 오가는 '푸른 기차'뿐이다.

그러나 터키에서 기차는 아주 안전한 교통 수단이며 기차의 등급은 없으나

식당차에는 제복을 입은 웨이터들이 하얀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메뉴를 날라다 준다고 한다.
 

 
터키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있어서 누구나 자신의 기호와 주머니 사정에 알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특히 이스탄불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굉장히 많은데 터키 요리는 세계 3대 요리에 속할 만큼 훌륭한 요리이다.

이 집은 되네르 케밥이 무지 맛있었던 식당으로 기억된다.

터키 사람들은 쪼끄마한 식당에 가도 식탁보를 정성스럽게 깔아놓는걸 잊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식탁 매트를 깔거나 유리를 깔지 않고 수가 놓이거나 레이스가 달린 하얀 식탁보를 정성껏 깔아 놓는다.

바자르에 가면 여러가지 종류의 레이스로 된 식탁보나 뜨게로 된 식탁보가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식탁보를 까는 것은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이다.

 
식당 건물에 붙어 있던 전통 화덕인듯....요즘은 쓰지 않는지 주변이 깨끗하다.

 
 식당에서 남자들끼리만 식사를 할 때에는 초대한 사람이 계산을 하지만 
남녀가 함께 식사를 할 때에는 남자가 반드시 음식값을 부담한다.이곳은 남성다움이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

 이 인형은 메뉴판을 펴놓고 바구니에 앉아 있는데 구두 사이즈가 맞지 않는지 신발을 반만 신은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터키의 식당 입구에는 가격표가 비치되어 있지 않다.입구가 지나치게 호화로운 곳은 대체로 음식값이 비싸지만 그것이 맛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식당 안은 좁아서 대부분 바깥에다 식탁을 베풀어 놓고 손님을 받는다.

유럽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식당 바깥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다. 

간판도 제대로 붙지 않은 구멍가게에도 과일은 항상 풍성하다. 구멍가게 풍경은 우리네 옛날 가게 풍경과 어찌 그리 비슷한지....

블루 모스크 축대 바로 맞은 편에 있던 한국 음식점이 있는데 음식은 그다지 맛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음식점 바로 옆에는 안내판도 없는 오래 된 유적이 있는데 이스탄불에는 이렇듯 가는 곳마다 길거리에 유적이 널려 있다. 

쟁반에다 무엇인지 먹을 것을 받쳐들고 가는 이스탄불 소년..음식 배달을 가는 것으로 보인다. 

쇼핑의 천국 터키는 가는 곳마다 활력이 넘친다. 유럽에서는 저녁 시간만 되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도시가 온통 적막에 쌓여 있는 경우가 많지만 터키는 도시 중심의 큰 상점과 백화점을 제외한 주택가의 모든 상점은 10시 이후까지 영업을 하며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안가나 관광지의 상점들은 우리나라 처럼 새벽까지도 물건을 판다.

 터키의 가게 점원들은 친절하고 민첩하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물건을 구경하고 차나 한잔 마시라고 권한다. 이런 상황에 익숙치 못한 외국인들은 물건을 강매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지 않지만 마음이 약해서 차마 거절치 못하고 가게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손님들은 가게 점원들과 마치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한 것처럼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 받게 된다. 물건을 사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이스탄불 시내를 오고 가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첨단 패션을 잘 소화시키는 젊은이들이다. 여자들은 히잡을 두르고 몸에 피트되는 청바지를 입고 명품 썬글라스와 핸드백을 멘 언발란스한 패션이지만 그것 또한 얼마나 잘 어울리고 아름다운지.....

원래 터키의 아가씨들은 미모가 출중한데다 대부분 피부가 하얗고 스모키 화장을 진하게 하므로 눈이 크게 부각되어 이방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여 여행자들은 아가씨들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 면 여자나 남자나 대부분 배가 나오고 살이 찌게 된다.  

사원 근처의 히잡 여인들도  다른 이슬람 나라와는 달리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법으로 관공서나 학교에서 히잡이 금지되었지만 이곳의 여인들은 종교적인 이유와 패션으로 히잡을 즐긴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된 무슬림 남자들은 여자를 무시하고 가정에 관심이 없을 것 같으나 수퍼에는 온 가족이 다 함께 쇼핑을 오며 관광도 꼭 같이 한다든지 실제로 우리나라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연세가 꽤 된 히잡 아주머니가 캠코더를 휘두르는 것이 너무 멋져 보여서 포즈를 부탁했더니만면에 웃음을 띄면서 아주 다정한 포즈를 취해주었다.

아야 소피아 앞에서 너무나 멋진 구두닦이 할아버지를 보았는데 너무 열중하고 있어서 인사를 못 걸어보았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어찌 저리 깨끗한 옷차림일까...그 점이 궁금하다. 

터키 사람들은 특히 유머 감각이 넘친다. 길거리에서 우리나라 장기와 비슷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는 "원 달라~!"라고 말한다.진짜인줄 알고 멈칫 하니 이 남자들은 막 웃으면서 카메라를 위해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하늘색 정복을 입은 교통 경찰이 손짓하여 버스를 세운다.'운전 기사가 신호 위반을 했나...'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열린 문으로 경찰이 뭐라 뭐라고 하니 운전 기사가 생수를 두병 전해준다. 아항......교통 정리를 하던 경찰이 더위에 목이 마르니까 물 좀 달라고 차를 세운거로구나... 참 재미있기도 해서 얼른 셔터를 눌러 경찰을 찍었다.


 

근데 사진 찍힌 교통 경찰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핸드폰을 슥...꺼내는 것이 아닌가..?  핸드폰을 꺼낸 경관....버튼을 삑삑....누르더니 필자를 향해서 조준하고 찰칵...!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관광객을 보고 핸드폰 사진을 찍는 교통 경찰이라니......!

정말 이스탄불에서나 볼 수 있는 여유만만하고 재미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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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내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우연히  '코렐리'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코렐리'는 터키어로 '한국인'이란 뜻이다.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터키사람(튀르키쉬)들은 필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한결같이 " Do you know?  We are brothers~"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에는 그저 한국전 참전이나 월드컵 때에 우리나라와의 친분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참 친밀하게 생각하는구나...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터키에서 돌아온 후 터키와 우리나라간의 관계에 대해서 책을 여러권 사서 읽게 되었는데 거기서 왜 튀르키쉬들이 한국인을 '형제(카르데쉬)', 또는 '피를 나눈 형제(칸 카르데쉬)'라고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예맥족이라고 보는데
이 예맥족은 만주 몽골계,튀르크계등을 포함하는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종족이라고......

한민족과 튀르크족은 공통의 조상을 갖고 한민족의 무리는 동쪽으로, 튀르크 족의 무리는 서쪽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본단다.
튀르크족을 중국에서는 흉노,또는 돌궐이라고 칭하는데 역사에 기록된 바로는 흉노는 고조선과 동맹을 맺은 일이 있고
돌궐은 수나라의 침입 때에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같이 싸웠다고 하니
우리와 터키는 먼 옛날부터 같은 조상을 지닌 형제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지만 터키의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사실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터키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자기들의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 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우리 나라와 터키가 더욱 가깝게 된 계기는 바로 한국 전쟁인데 한국전 당시 터키군은 미군 다음으로 많은 15,000명의 군인을 파견했고 전사자 등 인력 손실 인원은 3,216명에 이르렀다. 튀르크 군단은 16개국의 참전국 중 가장 용맹하기로 이름났었고 전쟁 중에 한국의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한 학교도 세웠다. 

한국전에 참여했던 참전 용사를 터키에서는 '코레 가지'라고 부르는데
터키의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전 참전 용사나 그의 친척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코레 가지'들은 정말 한국을 사랑한다. 전쟁 이후 발전된 한국을 자기 조국이 발전한 만큼이나 기뻐하고 한국을 '바탄(조국)'이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코레 가지'들이 터키 국민에게 심어 놓은 한국에 대한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터키사람들이 한국을 '형제(카르데쉬)'로 보고 더욱 가깝게 여기게 된 것은 '코레 가지'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애정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기 위해 그들은 우리를 '피를 나눈 형제(칸 카르데쉬)'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한국전 이후 참전 용사들은 '코렐리(한국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게 되었는데
한 마을에 마흐메드가 두 명 있다면 한국전 참전 용사는 '코렐리 마흐메드'으로 불리우고 있다.
'코레 가지'들은 이름 대신 '코렐리(한국인)'라고 불리우는 것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오늘날 터키의 '코렐리'들은 한국의 대명사가 되었다.(이희철 저 '터키' 참조)

2002년 월드컵 준결승 때에 우리 나라와 터키의 대형 국기가 나란히 펼쳐졌을 때 
터키 국민은 큰 감동을 받았고 터키의 '코렐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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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누구에게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단 하나, 바로 '아야 소피아 (터키어,Ayasofya)',
또는 '하기아 소피아(그리스어,Αγία Σοφία)'라고 불리우는 '성 소피아 대성당'이다.

 아야 소피아는 비잔틴 시대의 건축물 중 최대의 걸작으로 AD537년에 완공되었다.
교회가 건축된 이후로 제국의 멸망까지 새로운 많은 건축 기술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야 소피아를 능가할 수 있는 어떤 건축물도 건축되지 못했으므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오르기도 했다.

  

 

이 건물은 537년에 건설되어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기까지 916년간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1453년부터 1934년까지 481년 동안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대규모의 복구 사업을 거친 후에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던 시절에 회칠하여 사라졌던 비잔틴 모자이크들이 빛을 보게 되었으며
1935년에 교회도,이슬람 사원도 아닌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써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아야 소피아를 방문하기 위해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라고 쓰인 입구로 들어선다.

3개의 돔이 예배당인 아야 소피아는 돔 형식으로 만들어진 첫번째 건축물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섯개의 돔 건축중의 하나이다. 

 아야 소피아의 구조를 보면 중앙 돔 정점까지의 높이는 56.6m 이니 무려 15층 건물의 높이에 해당된다. 

건물의 전체 길이는 100m이고 내부 공간의 크기는 75m X 70m로 내부 넓이는 7,570 평방미터(2,300평)에 이른다. 

 

 

 외랑 벽에는 아야 소피아의 역사를 알려주는 설명 판넬이 여러개 붙어 있다.
 현재의 아야 소피아는 사실 이 자리에 세워진 세번째 건물인데 AD 360년에 비잔틴 황제 콘스탄틴이
메갈로 에클레시아(거대한 교회)라는 목조 건물을 세웠지만 404년에 발생한 화재로 완전히 불타버렸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416년에 다시 지어진 교회는 532년에 니카 혁명 기간 동안 반란군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두번째 교회의 토대와 계단,부서진 박공 부분은 현 '아야 소피아'입구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외랑의 한 부분에는 아라베스크 무늬의 작품들과 걸개,소형 액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외랑을 거쳐 내랑으로 들어서면 길이가 60m, 넓이가 11m인 내랑의 천정은
완전히 금색 모자이크로 덮여 있고 
벽들은 모두 대리석과 아름다운 돌조각으로 장식되었다.  

내랑에서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9개가 있는데 9개의 문 중 맨 끝의 3개씩 6개의 문은 일반인이 드나드는 문이다.
 한가운데의 문은 황제만 드나들 수 있고 황제의 문 보다 조금 낮은 2개의 문은  고위관직자,사제,대신들이 사용하였다.
황제의 문에 붙어 있던 금판과 대신의 문에 붙어 있던 은판은 라틴군에 의해 도난당했다.  


 

 황제의 문 위 박공 머리에는 9세기에 만들어진 모자이크가 있는데
가운데 보좌에 앉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비잔틴 황제 레오 6세가 무릎을 꿇고 있고
양 원 안에는 성모 마리아, 대천사 가브리엘의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다.

 

 

 본당으로 들어가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엄청나게 거대한 돔이다.
동서로 31m, 남북으로 33m인 중앙 돔에는 40개의 창문이 있는데 이 창으로 빛이 들어와 실내를 밝혀 준다.
당시에는 유리가 없었으므로 대리석 투조판(透彫板)을 사용하여 창을 만들었단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4개의 창은 빛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10세기경에 보수할 때 파손되어 채광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대리석 판을 얇게 잘랐으면 돌판을 통하여 빛이 비칠까...

 돔의 한가운데는 원래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예수님의 초상화가 있었는데 
오스만 터키의 정복 이후 이 그림은 코란의 문구로 덮이게 되었다. 

 

 

본당의 후진의 반원 돔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젊고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있다.
이층의 왼쪽 끝에 가면 더 잘 보이는 이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는 그림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고
 옆에는 가브리엘 천사의 모자이크도 있다.

 

 

 돔 옆 네 코너에는 3개의 날개가 달린 체루빔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천사의 얼굴은 각각 사자,황소,독수리 ,그리고 천사의 모습이었으나
역시 오스만 제국 이후 다각형의 별 모양으로 덮여 버렸다.

 

 
중앙 안 쪽 부분에는 금색으로 장식된 '미흐랍(Mihrab)'이 있다.
미흐랍이란 '이슬람 중심지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움푹 패인 곳'을 말한다.
이슬람 교도들이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할 때 엎드리는 방향을 표시하는 것인데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에 이곳에 미흐랍이 설치되었다.

 

 

미흐랍의 오른편에는 이슬람 예배의 설교단이 있는데 이슬람의 설교자인'이맘'이 금요일에 설교했던 곳이며
미흐랍의 왼쪽에는 1849년에 만든 오스만 술탄의 화려한 옥좌가 있다.

 

 

벽과 코너에는 8개의 거대한 원판이 걸려 있는데 이슬람 지도자들의 이름이  쓰여있다.
 

 

 미흐랍의 오른쪽의 판은 알라, 왼쪽에는 무하메드,
그리고 나머지 판들에는 이슬람 초기 칼리프(종교지도자)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직경 7.5m의 이 둥근 판들은 이슬람 세계의 가장 훌륭한 달필이라고 하는데
아라비아 문자에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는 글씨인지 그림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아야 소피아를 짓기 위해 5년간 100명의 기술자와 10,000명의 노동자들이 투입되었는데
 내부에 사용된 대리석들은 지중해에 있는 국가와 소아시아의 대리석 석광에서 가져 왔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와 수학자가 함께 설계해서 세운 이 건물은 가장 자리로 107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본당에는 40개,위층 갤러리에는 67개가 있고  돔 형식으로 된 이 건물의 한 가운데에는 전혀 기둥이 없다.

 

 

이 기둥들은 에페스의 항구 체육관,레바논의 아폴로 신전 등에서 가져 온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벼운 자재로 거대한 돔을 만들기 위해서 로도스섬에서 특별한 타일과 벽돌이 운반되었다.
기둥과 벽의 대리석의 문양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도 자연스럽다.

 

 
하트 모양이 너무나 귀여운 기둥 앞에서 아야 소피아 경비원의 모습을 사진에 같이 담아 보았다.
눈웃음치기를 좋아하는 터키 사람들이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할 때엔 좀 근엄한 자세를 보인다.
그래야 더 공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그렇지만 이 직원의 굳게 다문 입에도 미소가 서려 있는걸 볼 수 있다.

 

 

 아야 소피아 안에는 이렇듯 고양이가 제 세상인양 돌아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슬람 국가는 거의 고양이 천국이랄 수 있는데 무슬림들의 고양이 사랑은 이슬람 예언자 무하메드가
자신의 옷자락 위에서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 옷자락을 잘랐다는 얘기에서 기인한다.
반면 개는 아주 천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서 그런 것일 듯....

 

 

 '눈물 기둥, 혹은 땀흘리는 기둥(Weeping Column)'라는 기둥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기둥의 물에 닿는 것만으로 병이 나으며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고대로 부터 내려오는 기둥인데
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기 때문에
현재는 기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판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한가운데 뚫린 구멍에 엄지를 넣고는 손을 떼지 않고 한 바퀴 돌릴 수 있으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너도 나도 엄지를 넣고 돌려 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바퀴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입구의 오른 쪽과 왼쪽에 놓여 있는 1,250 리터의 거대한 대리석 항아리는 16세기에 페르가몬의 고대 도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과거에는 문 밖에 놓여 있어서 이슬람 교도들이 물로 몸을 청결케 하는데 사용했다는데
발굴 당시 이 엄청나게 큰 항아리 안에 보물이 가득 들어있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2층 갤러리는 여성들이 예배를 보는 장소이자 종교회의 때 사용되던 곳이다.
갤러리란 건축물에서 벽을 따라 그 길이만큼 만든 좁은 발코니,또는 플랫폼을 말하는데
화랑(畵廊)을 뜻하는 '아트 갤러리'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갤러리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아니고 비탈길인데 그 이유는 다른 여성들이 가마를 타고 올 때에
기도하고 있는 여왕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갤러리의 한쪽 부분은 그야말로 '화랑'으로의 구실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현대 타일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 갤러리에서 아래 층을 내려다 보니 사람이 자그마하게 보이는게 아찔하기 보이며 높이가 실감이 난다.

 

 

 갤러리 오른쪽의 입구에 있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면 비잔틴 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디시스(Deesis)'불리는 이 모자이크의 내용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것인데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인간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표정은 선명하고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표정을 담고 있다.

 모자이크를 보면 아랫부분이 회칠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술탄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자
무슬림의 성전(聖戰) 관습에 따라 3일간의 콘스탄티노플 약탈이 허용되었지만
아야 소피아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메흐메드 2세는 이 건물을 파괴치 말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건물은 보존될 수 있었지만 비잔틴 제국의 교회는 이슬람 사원이 되었고 모자이크로 된 아름다운 기독교 성화들은 회칠로 뒤덮여졌다.
그리고 아야 소피아 건물 바깥에 네개의 미나레트(이슬람 첨탑)도 그 때 세워지게 된다.
1930년대 미국인 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성화 복원 작업으로 회칠로 뒤덮인 성화들은 이제 하나하나 옛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른쪽 복도 안쪽 벽에 있는 모자이크는 요하네스 콤네소스 2세와 이레네 황후가
아들인 알렉시우스와 함께 (알렉시우스는 꺾어진 벽쪽에 있어서 사진에 담아지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기 예수께 헌금을 봉헌하는 장면이다.

 

 

왼쪽에 있는 모자이크는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여제(女帝) 조에와 그의 세번째 남편 콘스탄틴 모노마쿠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제 조에는 세번 결혼했는데 처음 이 모자이크에는 그의 첫남편인 로마노스 3세가 그려져 있었으나
결혼할 때마다 모자이크에서 남편의 얼굴과 머리 위에 쓰인 문구를 바꾸었다.
72세로 죽은 조에의 얼굴만이 젊은 시절 얼굴 모습 그대로이다.

 

 

갤러리에서 내려와 출구인 남쪽 입구문으로 나가는 통로의 벽과 천정의 타일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아야 소피아의 내부를 다 관람한 후 나오는 마지막 남쪽 출구문 외벽 위에는 
두 명의 황제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오른쪽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을 예수께 왼쪽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 소피아를 손에 들고 예수께 봉헌하고 있어 시선을 끈다.

아야 소피아에서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모자이크라고 할 수 있다. 

 

 

밖으로 나와서 다시 바라본 아야 소피아는 석양 무렵의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는데
때마침 정원에 서 있던 검은 차도르의 두 여인과 함께 어울려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도대체 그 시대에 어쩌면 저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오늘날의 건축 기술로도 따라잡기 힘든 노하우가 자리잡고 있었을 듯 하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던 비잔틴 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1500년 이상 한 자리에 서서 이스탄불의 흥망 성쇠를 바라본 건축물....
 아야 소피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역사의 흐름을 말없이 지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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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장식된 푸른 유리창과 아름다운 타일로 인해서 '블루 모스크(Blue Mosque)'라고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사원(sultanahmet camii,술탄아흐메드 자미)'은 터키와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히포드롬의 동쪽에 있는 이 사원은 성 소피아 성당과 마주 보고 있는 위치에 있어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게 되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원래 이 자리는 비잔틴 제국의 궁전이 있던 자리인데 궁전은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다 파괴되었고 이 후 술탄 아흐메드 1세 황제는 성 소피아 사원을 지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성과를 능가하려는 야심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이 사원을 1609년에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하게 된다.

 

 

14세에 술탄의 자리에 오른 술탄 아흐메드 1세는 이 사원이 완공된지 1년만인 27세에 위장병으로 사망하였으니 권력과 부귀 영화도 죽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것을.....

 

 

   블루 모스크는 이스탄불과 터키 전역에서 6개의 미나레(첨탑)가 있는 유일한 사원이다. 술탄 아흐메드 1세는 건축가 메흐메드 아아에게 첨탑을 황금으로 만들라고 명령했는데  '금'의 터키어 발음은 숫자 '6'과 비슷하기 때문에 건축가는 이 점을 잘못 이해했고 그래서 금 대신에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6개의 미나레가 있는 사원을 지었다고 전한다. 

 

 

미나레에는 발코니가 2,3개씩 붙어 있어서 블루 모스크에는 총 16개의 발코니가 있다.
 

 

 

이 건물은 회교 신학교, 병원, 아라스타 바자르, 왕릉, 대상들의 숙소, 학교, 그리고 대중 우물이 사원과 함께 있는 사원 복합 건물이다. 사원 복합 건물을 짓기 위하여 비잔틴 왕궁,히포드럼(전차 경기장)의 관중석, 그리고 많은 귀족의 궁전들이 파괴되었는데 이 곳이 사원 자리로 선택된 것은 토프카프 궁전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의 부속 건물중의 하나인 아라스타 바자르(시장)는 사원의 축대 아랫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바자르이다.

 

 

사원의 부속 건물인 카페나 레스토랑의 임대료는 사원의 운영 자금으로 충당된다. 


 

외부에서 바깥 정원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모두 다섯개가 있는데 가장 중앙문에는 체인이 걸려 있다. 체인이 걸려 있는 이유는 말을 타고 사원에 들어오는 술탄이 다른 사람들처럼 경건하게 말에서 내려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계단을 올라와서 내부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3개가 있는데 내부 정원의 규모는 72 X 64m로 사원 본당의 규모와 거의 맞먹는다. 중앙에는 육각형 세정용 분수가 있는데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보기 위해서 손발을 닦는 의식을 가지는 곳이나 지금은 그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슬람 신도들은 남쪽과 북쪽 벽면에 있는 수도 시설에서 예배를 보기 전에 손발을 닦는다.
 

 
본당 입구에는 경찰과 경비원들이 지키고 서 있었고 이슬람 사원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므로 비닐 봉지가 많이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입문은 나무문이나 철문으로 되어 있지 않고 이렇게 장막으로 둘둘 말아서 가려놓은 것이 이채롭다.

 

 

입구의 높이를 낮게 해 둔 것은 역시 어느 누구든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라는 뜻일 듯.....

 

 

사원의 본당의 규모는 51m X 53m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실내는 의자가 없고 모두 카페트로 되어 있는데 이 이미지는 빌려온 사진이라 필자가 방문했을 때의 카페트와는 다르다. 그리고 양 옆에 나무 벤치처럼 생긴 것들은 신발을 놓는 곳인데 밖의 신발장이 꽉 찼을 때 사용된다.  본당 안에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오일 램프가 까마득한 천정에서부터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게 눈길을 끄는데 엄청나게 화려하고 거대한 이 크리스탈 오일 램프는 오래 전에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모든 이슬람 사원에는 메카의 방향으로 '미흐랍'(이슬람 중심지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움푹 패인 곳 )이 있는데 가운데 서 있는 남자의 오른쪽 뒷편으로 미흐랍이 보인다. 

 

 

이 사원을 '블루 모스크'라고 서양인들이 부르는 이유는 사원 내부의 벽과 돔에 사용된 타일과 그림의 색들이 거의 푸른 색과 녹색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사원의 내부 장식에 사용된 21,043개의 푸른 타일은 이즈닉 타일(이즈미르에서 생산한 타일)이다.
 

 

 중앙의 돔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아치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뒤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들은 타일과 내부 장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사원에는 전체 260개의 창문이 있는데 처음 지을 때 사용되었던 베네치안 유리들은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고 지금 있는 것들은 모조품이다.  중앙의 돔과 동서로 난 반원형 지붕,그리고 벽과 기둥에 쓰여진 글씨는 모두 이름난 서예가의 작품이며 내용은 코란의 인용문이다. 

 

 

바닥에 깐 카페트는 유명한 실크 카펫 제조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이슬람 사회에서는 모든 기도회가 카펫이 깔린 바닥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터키의 카펫의 제조 기술은 더욱 발전하였다.  바닥에 깔린 카펫을 자세히 보면 일일이 구획이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구획은 바로 한 사람이 앉는 자리이다. 이슬람 예배의 모습을 보면 엎드려 메카의 방향으로 절을 할 때에 줄이 매우 질서 정연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질서정연한 줄의 비결은 바로 이 카펫에 있는 것이다.  

   

사원 안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였는데 관광객이 버글버글하는 시끄러운 실내에서도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코란 삼매경에 빠진 사람.....  

 

 

소지품은 내팽겨쳐 놓고 한 쪽 구석에서 누워 잠자는 사람.....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등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슬람 사원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하고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들은 사원에 준비되어 있는 히잡으로 머리에 쓰거나 어깨를 가려야 한다. 이슬람 사원은 입장료는 없지만 출구에 준비된 헌금 상자에 돈을 넣으면 되는데 이슬람 교도나 이방인이나 돈을 넣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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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도 올드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수많은 문화 유산이 밀집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작 놀라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 역사지구' 안에는 톱카프 궁전 문을 나서면 성 소피아 성당이요, 그 맞은 편은 블루 모스크, 바로 옆은 히포드롬, 바로 아래는 지하 궁전, 조금 걸어가면 그랜드 바자르....이렇게 역사적인 볼거리로 넘쳐나니
이스탄불에 한번 발을 붙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떠나기를 아쉬워 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히포드롬이 있던 '술탄 아흐멧 광장'은  가히 이스탄불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데 광장 중앙에 있는 고대 유적들과 주위에 있는 건물들은 터키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적인 유적들이다.                                         

히포드롬(hippodrome)이란 '경마와 전차경주가 벌어졌던 고대 그리스의 원형경기장'을 말하는 것인데  바로 영화 '벤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륜 마차 경기장'을 말하는 명칭이다. 이 경기장은 도시를 정복한 로마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가 AD 20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AD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틴 대제가 규모를 확장하여 완성하였다.
                                               
한번에 10대의 전차가 경주를 한 히포드롬은 길이 480 m에 넓이가 120 m로 로마의 시쿠스 맥시무스 다음으로 큰 경기장(히포드롬)인데 'U'자 형태의 경기장을 중심으로 최대 100,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40줄의 계단식 좌석이 있었다.

경기를 관람하는 시민들은 청팀과 녹팀으로 나뉘어 응원하였는데 나중에는 정치,종교적으로까지 대립하여 갈라진 두 팀은 히포드롬에서 격렬하게 싸우기도 하고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고...

 

 

전형적인 히포드롬은 언덕을 파헤쳐서 만들어졌으며, 굴착된 흙은 반대측의 관중석을 지탱하기 위한 둑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이곳 역시 땅이 편평하지 않았기 때문에 히포드럼의 서쪽 부분에 축대를 쌓았는데 마르마라의 해변로를 통해 광장 쪽으로 오면 웅장한 축대의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잔틴 시대에 히포드롬의 기능은 세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스포츠 및 예술 활동 장소여서 전차 경기 및 격투사들의 격투도 이곳에서 열렸다. 두번째 기능은 정치 무대로써의 기능이니 오스만 시대의 정예부대인 예니체리의 폭동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세번째 기능은 비잔틴 황제들에 의해서 훌륭하게 장식된 야외 박물관으로써의 장식의 기능이다.

 

 

실제로 중앙분리대에의 장식된 '스피나'에는 전 세계에서 가지고 온 이집션 오벨리스크 기념비와 델피 신전에 있는 청동뱀 제단, 해시계 등 각종 기념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4개의 청동말 장식도 있었으나 1204 년의 제4차 십자군 원정 당시 베네치아인들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현재 베네치아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의 정면에 장식되어 있다. 

 

 

 'U'자 형태의 경기장 중앙에 세워진 기념물인 '스피나'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이집션 오벨리스크'인데 '디킬리타쉬'라고 부른다.
이 오벨리스크는 3,500년전에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AD 390년, 비잔틴 황제 테우도시우스 1세는 이집트 룩소에 있는 카르낙의 아몬 신전에서 이 기둥을 가져와 현재 위치에 세웠다. 

 

 

연한 핑크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오벨리스크의 무게는 약 300톤이고 높이가 원래는 32.5m 였는데 수송 과정에서 밑부분의 40%가 깨어져나가 현재 높이는 20m 정도이다. 

 

 

 오벨리스크의 사면에는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의 용맹을 말해주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아래 부분의 몇 개의 인물화와 글자는 수송 도중에 떨어져나갔다. 

 

 

 맨 아래 부분에는 AD 389년에 만들어진 대리석 받침대가 있다. 

 

 

이 받침대의 사면에는 히포드럼의 황제의 자리에 앉아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것을 지켜보는 황제의 모습, 전차 경기 후 무희들의 춤 추는 모습,전차 경기 모습, 외국의 사신들로부터 조공물을 받는 황제의 모습 등 히포드럼에서 행해진 그림과 글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부조되어 있다. 

 

 

 100년마다 한번씩 평균 6.5 강도의 지진이 이 도시를 강타했어도 이집션 오벨리스크는 피해를 입지 않고 1,600 여 년간 이곳에 끄덕없이 있어왔다. 바로 옆에 보이는 미나레(첨탑)는 술탄 아흐멧 사원(블루 모스크)의 미나레 중 하나이다.  

 

 

히포드롬에서 두번째로 오래 된 기념물은 BC 479년에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세워졌던 뱀기둥이다. 이 뱀기둥은 팔라테아 전투에서 페르시아에 대항해서 싸운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AD 326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에서 가져와 이 곳에 세워 두었다. 뱀기둥은 세마리의 뱀이 몸을 서로 꼬고 올라간 모습이며 머리 위에는 직경이 2m가 되는 거대한 황금 트로피가 있었다. 

 

 

 그러나 이 트로피는 이스탄불로 오기 전에 벌써 분실되었으며 뱀들의 머리는 오스만 제국 때에 돌에 맞아 부서졌다. 이 머리 중에 하나는 1847년 성 소피아 성당 보수 공사 때에 발견되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또 하나는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 높이는 6.5m였으나 현재는 5m이다. 

 

 

 세번째 기념물은 콘스탄틴 기둥은 콘스탄틴 7세에 의해 세워졌는데 황제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바셀레우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히포드럼 광장의 중심에 세워 놓았다. 10세기에 세워진 이 기둥의 높이는 35m 이며 외부에는 원래 청동이 입혀져 있었다. 그러나 13세기초 라틴군이 이 도시를 접령한 후 청동을 떼어내어 동전을 주조하는데 사용하여서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1894년에 있었던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부셔졌던 이 기둥은 최근에 다시 복구되었다. 

 

 

히포드롬 광장에 있는 독일 분수(빌헬름 분수)는 이 곳에 있는 기념물 중 가장 마지막에 세워진 것이다. 

 

 

 이스탄불을 방문한 독일의 황제 카이세르 빌헬름은 자신에게 보내 준 환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이 우아한 분수를 만들었다. 

 

 

이 분수는 그가 독일로 돌아가자마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완성된 후에 기차로 이스탄불로 옮겨져 1898년에 히포드롬에 세워졌다. 

 

 

 분수의 안쪽 지붕은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입혀져 있어 화려함을 더해 준다. 

 

 

 이름은 독일 분수이나 분수의 기능보다는 샘 같이 보이는 분수이다. 터키를 여행하다보면 길가 곳곳에서 샘을 만날 수 있고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여행자들은 작열하는 땅 밑의 물이 그토록 시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이런 샘에서 나는 물은 안심하고 마셔도 되는데 이런 물은 여행자의 갈증을 달래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술탄 아흐멧 사원 맞은 편, 히포드롬 맨 끝에 있는 건물은 오스만 제국 때에 유일한 고관의 궁전 이브라힘 파샤 궁전이다. 

 

 

 이 건물은 1520년 술탄 슐레이만 대제가 국무총리였던 이브라힘 파샤에게 선물한 것으로 지금은 터키 및 이슬람 예술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이륜 마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던 히포드롬 광장 주변의 오늘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넘쳐 난다. 

 


 히포드롬 옆 블루 모스크에 부속으로 딸린 건물들은 사원의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바자르나 레스토랑으로 운영되어 왔다.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관광 나와 열심히 설명을 듣는 유럽인 단체 관광객들도 보이긴 하지만 이륜 마차가 달리던 히포드롬은 이제는 이스탄불 시민들의 아침 산책 코스가 된다. 경찰도 근무를 하는지.....노는지 모를 정도로 여유로와 보이는 이곳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낭만의 도시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멧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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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자연환경과 수천년에 걸친 문명의 자취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
'신과 인간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땅, 세계의 박물관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중심 히포드롬(술탄 아흐멧 광장)에는 아침부터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대는데....

 이스탄불의 아침은 여유로우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경찰은 광장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광장에 나온 사람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눈다.
노는지 순찰을 다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빵 상인의 수레 속에는 갓 구운 빵이 잔득 들어있다.
동그란 도너스같이 생긴 빵은 터키의 대중적인 빵 시미트(Simit).
동그란 고리 모양의 빵으로 위에 참깨가 뿌려져 있고 부드러운 에크멕과는 달리 조금 딱딱한 편이다.
깨가 많이 묻어 있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며 양이 상당하여 배고플 때 먹으면 그만이다. 

블루 모스크의 부속 건물인 레스토랑들에는 아침부터 손님 받을 준비가 한창이다.
이슬람 사원에서는 사원의 경비 충당을 위해 부속건물을 레스토랑이나 바자르에 세를 주는 경우가 많다.  

 레스토랑 옆에는 관광 상품점이 즐비하고 아침부터 가게 앞에 진치는 남자들도 눈에 뜨인다. 

도로에 있는 코카 콜라 캔의 모형이 눈에 뜨이는데 터키 어느 오지를 가더라도 모든 구멍 가게의 간판에는
어김없이 코카 콜라나 펩시 콜라의 로고가 붙어 있어 이 상표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실감하게 해 준다.   

 노란 옷을 입은 청소부는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거리를 청소를 해서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한다.
터키 사람들의 청결 의식은 대단하여 TV 광고의 상당 부분이 세제 광고로 메꿔져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자기 집 외의 청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광장의 나무에는 비닐 봉지꽃도 여기저기 피어 있다.

교복 차림으로 광장 벤치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경찰이 참견하는 현장.....

 "야...학교 안가고 뭐해....?" "지금 방학이거등여....?"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어느 곳에서나 청소년의 얼굴에는 반항심이 가득하다.
이 훈훈한 고딩들도 언젠가는 아저씨가 되어서 배둘레햄이 되겠지... 
손에는 시미트를 들고 있는 걸로 보아 아침은 광장에서 해결하는 듯 하다.

방학 기간인데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터키의 학교에도 보충 수업이 있는 것일까...?
실제로 터키에는 대학 입학 경쟁률이 아주 심하여 터키의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교문을 나서면
학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잽싸게 학원으로 실어간다고.....   

동내 가게들은 우리네 구멍 가게들과 비슷하다.  '점방'이라고 하면 어울릴만한....
아,....물론 우리네 *마트와도 같은 대형 할인점도 곳곳이 자리잡고 있지만
터키의 동네 가게는 우리네 삼청동 뒷골목의 가게와 같이 미소가 절로 배어나온다.
냉장고  안의 수박 1/4 통, 구석의 계란판들도 은근히 귀엽다. 
 

하트 무늬가 로고인 ALGIDA란 아이스크림은 터키 전역의 가게에 다 깔려 있다.
그리고 생수도 거의 독점인지 Erikli란 생수는 가는데마다 없는데가 없다. 

 히포드럼 광장에 서 있던 Erikli 생수 트럭.
신선한 물에 대한 수요는 많아서 이스탄불 곳곳에는 주유소와 비슷한 시설의 물 판매소도 있을 정도이다.

아야 소피아와 블로 모스크가 있는 시내 중심지 '술탄 아흐멧 지구'는 더 이상의 도로 확장이 불가능해
이렇게 차 한대만 겨우 다닐 수 있는 일방 통행 도로나 진입 금지 도로가 많다. 

 오래 된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이 섞여 있고 시가지는 매우 깨끗한 편이다.

 중심지의 도로는 돌로 깔려 있으며 보도 또한 많은 부분이 화강암이나 다른 돌로 포장되어 있다.

영국인 같은 북쪽 유럽 사람은 선풍기도 없이 생활하는 사람도 많지만 터키는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 있다.  .  

  우리나라처럼 전봇대나 기둥에 전단지를 많이 붙이는 점도 비슷한데
떼는 사람이 떼고 가면 돌아서서 그 자리에 바로 전단지를 풀칠해서 붙여 놓는다고... 

 택시는 Taksi 라고 표기되어 있다.
왜냐하면 터키어는 X 나 W 발음이 없어서 터키어 알파벳에는 이 두 글자가 없기 때문이다.
택시 요금은 저렴한 편이며 잔돈은 팁으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가에 현대의 액센트가 주차되어 있다.
터키에서 굴러다니는 우리 차를 종종 볼 수가 있었는데
특히 경찰차로 쓰이고 있는 라세티를 보았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투어용 이층 버스......버스가 너무 너무 럭셔리하다.
보통 터키의 관광 버스나 고속 버스는 차가 아주 좋은데 벤츠같은 고급 기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기사들은 차를 깨끗이 닦는데에 온 정성을 다 기울인다.
(근데 이 경찰은 사진마다 다 출연하는구나...) 
 

 조용한 '술탄 아흐멧 광장' 광장의 아침....
빛깔이 많이 바래어진 이 의자에 앉아 시미트와 터키 요쿠르트를 먹으며
오늘 하루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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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때가 되었으므로 호텔에서 식사를 한 후
이스탄불 중의 이스탄불, '술탄 아흐멧 지구'의 밤 풍경을 돌아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여자들이 낯선 외국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않을까...생각되시겠지만
저녁만 먹으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암흑으로 변하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는 달리
터키의 밤 거리는 늦게까지 상점들이 문을 열 뿐만 아니라 의외로 안전한 편이어서
늦은 저녁 식사에도 불구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술탄 아흐멧 지구는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 토프카프 궁전, 지하 궁전, 그랜드 바자르...가 밀집해 있는
올드 이스탄불....그러니까 이스탄불 중의 이스탄불이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오니 트램 정류장이 있고 사람들은 앉거나 서서 트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램(Tramvay)은 바크르쿄이라는 이스탄불 서부 지구부터 카바타쉬라는 베쉭타쉬 지역까지 연결하고 있다.
트램은 5~1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차내는 청결하고 에어컨 상태도 좋다. 
특히 이 트램은 우리나라 현대로템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하니 더욱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오래된 오스만 시대의 건물과 신식 트램,그리고 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이 조화를 이루는 곳, 이스탄불이다. 
 


 너무나 화려한 가죽 제품들이 많이 걸린 가죽 전문점에 들어가 백과 구두를 구경하였다.
주인은 아주 영어가 유창하였고 이 가죽 전문점엔 한국인이 많이 온다고 하였다. 
  


 얼마 안 걸으니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사원)이 은은한 경관 조명 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나타난다.
아야 소피아는 내일 밝을 때 돌아보기로 하고 토프카프 궁전 입구 쪽으로 가서 카펫과 기념품 가게들을 돌아보았다. 
한 기념품 가게 주인 청년은 나이가 스물 셋 밖에 안 됐는데 벌써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는 등 프라이드가 대단했는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혀를 굴리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귀를 쫑긋하느라 혼이 났다.  



 아야 소피아의 맞은 편 블루 모스크 앞 광장에 다다르니 터키 대학생 두 명이 말을 걸어 왔다.
수줍게 말을 더듬으며 말을 걸어온 이 대학생들은 "자기들의 영어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대화를 하고 싶단다. 
해양대 2학년생이라고 하는 이 학생들은 배를 타고 터키의 항구 도시를 순회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순진하고 예의바른 이 학생들은 비교적 또렷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무지 힘들게.....' 대화를  한참 하다보니 모두가 회화의 밑천도 떨어지고...^^;;
다른 곳도 구경하고 싶은지라 좋은 여행 되라고 손을 흔들고 주고 헤어졌다.


블루모스크는 건물 전체를 비추는 조명으로 인해 밤에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요즈음은 유적지나 타워의 경관 조명이 잘 되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데
오래 된 유적에 비쳐진 경관 조명은 낮의 모습모다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야 소피아는 이제는 박물관이 되었으므로 밤에는 입장할 수 없지만
블루 모스크는 이슬람 사원이기 때문에 밤에도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문이 열려 있어 

관광객들과 기도하러 온 사람, 더위를 식히러 온 이스탄불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스크에서  만난 터키인 가족들은 아이가 '촉 규젤'하다니까 매우 좋아하며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촉 규젤 = 매우 아름답다, 아주 예쁘다)
알고 있는 몇 마디 안 되는 터키어로 얘기를 걸었는데 너무나 좋아하며 환하게 웃어주던 터키인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몇 몇 한국인인 듯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을 다른 관광지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는 일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반가와 하며 '어디서 오셨어요...'하면서 기분좋게 인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이스탄불에 오면 모두 마음이 너그러워 지고 행복해 지는걸까...


 '미나레(minaret,이슬람 사원의 첨탑,아랍어로 등대라는 뜻)' 에도 경관 조명이 이쁘게 비추인다.
블루 모스크는 미나레트가 여섯개 있는 터키 유일의 사원인데 미나레의 갯수에 따라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오일 램프가 까마득한 천정에서부터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는데
오래 된 수백개의 크리스탈 오일 램프는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넓이의 바닥에는 실크 카페트가 깔려 있는데 카페트의 무늬는 일정하게 구획이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의 예배 광경을 보면 엎드려 절할 때 줄이 참 잘 맞춰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마다 앉는 자리가 구획지어진 이 카페트의 덕이라고 보면 된다.


오래 된 블루 모스크의 축대 아래에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시장 '아라스타 바자르'가 있다.



이 바자르는 블루 모스트의 운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방편으로 
오래 전에 지어졌는데


바자르 안의 많은 기념품 가게에는 주로 머리에 쓰는 히잡이나 스카프, 벨리 댄스 복장, 카펫, 도자기 등을 팔고 있다. 
 


바자르의 가게 앞에는 이렇듯 로마시대의 기둥 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터키에는 수천년 된 유적들이 거리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혹은 티 테이블로.혹은 의자로 쓰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터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놀라곤 하는데 왜 유적을 박물관에 두고 잘 보존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니...길에 널려 있는 것이 모두 다 유적인데 어떻게 다 유리 속에 넣어두나요?" 하고 이상하다는 듯 반문한단다.



바자르 안을 구경하고 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서 갑자기 동행인 S양의 손목을 덥썩 잡더니 
"이 귀엽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낙타 몇 마리에 저에게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일순간 깜짝 놀랐지만 앞에 선 아가씨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관용적 표현'이라는걸 눈치 채고
"음...낙타 천 마리...? 아니 아니 이천으로 합시다~!! 빨리 이 아가씨 데려가고 낙타 이천 마리 주세요~"
라고 했더니 이 터키 아저씨, 함께 폭소를 터뜨리며 가게에 들어와서 차이나 한잔 하고 놀다 가라고 한다.  


 사진은 동행인 K양, 초상권 보호를 위해 면상 비공임당...^^

하도 강권하는 바람에 카펫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엄청나게 좋은 카펫도 있었고 조그마한 킬림도 있었는데
주인은 카펫 장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차이를 권하더니 
자기의 '매직 카펫쇼'를 보여주고 싶단다.
의자에 우리를 앉히곤 길이 120cm정도 되는 붉은색의 카펫을 한장 들더니
"혹시 심장이 약하지는 않으신가요? 놀라서 기절하지 말고 카펫에 눈을 떼지 말고 똑바로 지켜 보세요~"
하며 카펫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가게 바닥에 휙 내던지는 것이다.

뭥미...? 뭐가 매직쇼야.... 카펫이 뭐가 달라지기나 했나...? 하고 자세히 보다가 순간 "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분명이 붉은색 카펫을 바닥으로 던졌는데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은 하얀색 카펫이었다.
우리는 "와아~~~와아~~팬태스틱~!"하면서 박수를 쳤더니 우리의 리액션에 신이 난 이 아저씨...다시 카펫을 들더니
"이번엔 하얀 카펫을 붉은 카펫으로 바꿉니다~" 하면서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다시 가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니 이번엔 카펫의 색상이 다시 붉은색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주인에게 "잠깐~!" 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으로 가보았다.
반대편에 서서 보니 카펫은 요술처럼 하얀색이었는데 다시 앉아 있던 방향으로 와서 보니 붉은색이었다.
그렇다.....이 카펫은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이도록 짜여 있는 '멋진 예술품'었던 것이다.
 '매직 카펫 쇼'라.....ㅋㅋㅋ
정말 환상적인 매직쇼를 보여준 카펫 가게 주인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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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터키를 대표하는 음식은 케밥과 요쿠르트,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터키 전통 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스'를 소개할까 한다.

'마라쉬 돈두르마스(Maras Dondurmasi)'는
300년 전 터키의 카흐라만 마라쉬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카흐라만 마라쉬 사람들은 하얀 눈이 내리면 
그 눈을 치우지 않고 동굴이나 웅덩이 같은 곳에 보관하고
입구에는 관목 줄기나 나무 토막을 덮어 여름이 와도 녹지 않도록 하였다.
 

 

 푹푹 찌는 여름이 오면 그 고장에서 생산되는 양이나 염소의 젖을 넣고 난초의 뿌리 가루,과즙을 넣어 

떡메 치듯이 계속해서 치대고 누르며 반죽을 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스크림은 찰떡 같이 되어 흘러내리지도 않고 길게 늘어난다.


이 돈두르마스는 칼로 썰어서 먹을 수도 있는데
찰지면서도 뒷맛은 부드러운게 한번 먹으면 아주 잊혀지지 않는 맛이 된다.


요즈음은 터키를 넘어 세계로 향하는 음식이 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수입해와서 프랜차이즈점이 성업 중이다. 



현지에서 이 돈두르마스를 파는 상인은 대개 전통 복장을 하는데
수레 위에는 소리가 다른 여러가지 모양의 종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 기회만 나면 돈두르마스를 사먹곤 했는데
그 맛도 맛이지만 파는 상인의 익살스러운 장난이 관광객에겐 큰 볼거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사원 옆 골목 돈두르마스 상인의 쇼는 그 중 제일 볼만하다.  


 

  갖은 테크닉을 다해 아이스크림을 비벼대어 푹 퍼가지고는
돈두르마스를 손님에게 주었다가.... 빼앗았다가.... 돌려서 떨어뜨리려 했다가.....
주려다가 빼앗아 가서는 종을 쳐서 울리고....큰 뭉터기 채로 퍼서 주려고 하다가......
손님의 입에다가 푹 집어 넣는 등 갖은 장난을 다 친다. 


 

환상적인 쇼를 보고나서 받아먹을 때의 그 즐거움으로 말하자면 2달러 정도의 아이스크림 값은 전혀 아깝지 않다. 

 

터키 남자들의 해학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돈두르마스 쇼에서 더 잘 드러나게 되고
특히 이쁜 여자가 손님일 때에는 돈두르마스 쇼가 가히 절정에 다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손님들과의 기념 촬영을 먼저 제안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데
터키 남자들이 여자들과 사진을 찍을 때의 특징은 
얼굴을 바싹 붙이거나 허리를 끌어안거나 어깨를 꼬옥 끌어안는 것이 다반사니
혹 터키 땅에 처음 가시는 여자분들은 당황하지 마시기 바란다...^^

(사진의 여성은 K양. 초상권 보호를 위해 면상 비공개임당..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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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을 하는 동안, 길거리나 바자르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풍경이 있는데
다름 아니고 체중계를 길에다 내어놓고 앉아 있는 부녀자나 노인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는 사우나, 찜질방이 한 동네에도 몇 군데씩 있어서 갈 때마다 체중을 잴 뿐만 아니라
많은 가정이 체중계를 구비하고 있어서 하루에도 몇번 씩 자기 체중을 재곤 하는데
터키의 가정에는 체중계가 없는 집이 많다보니 길거리 체중계에 올라 자기 체중을 확인하는 사람이 많다.

오토가르(버스 터미널)같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는
덩치가 아주 크고 화려하기까지한 전자식 체중계가 놓여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너무나 간단한 가정용 구식 체중계를 놓고 하염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체중계를 지키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이나 부녀자, 노인들이 많은데
저렇게 하루종일 지키고 앉아 있으면 대체 얼마나 벌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사람들은 대부분 체중계 앞을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체중계에 올라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는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야경을 구경하러 술탄 아흐멧 지구로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트램길 바로 옆에서 손뜨개 용품을 늘어놓고 파는 아주머니 앞에 저울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밤이 깊었고 거리에는 다니는 사람도 한산해지는 시간이라
뜨게용품을 사는 사람도 몸무게를 재는 사람도 없이 모두가 그 앞을 스쳐 지나가길래
체중 재는 장면을 기념사진으로 남기기로 하고 
사용료를 물어보니 두명에 1달러란다.
일행이 세 명이니 세 명에 1달러 해달라고 하니 아주 근엄한 표정으로 "No!"라고....ㅠ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깎아달라고 조르니 마지못하는 듯 허락을 한다.

 
K가 먼저 체중계에 올라가고 필자가 체중 재기 인증 샷을 남기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니
히잡을 쓴 이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강경한 어조로 "No photos !"라고 외친다.

대부분의 터키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걸 매우 좋아해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서로 찍으려고 포즈를 잡기도 한다.
찍은
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주면 너무나 즐거워 하며 크게 웃고 고맙다고 하는데 이처럼 거부하는 케이스는 처음이었다.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는 이 아주머니는 다른 이슬람권에서 왔거나 콘야 지방에서 온 수피파 교도가 아닐까..짐작해 보았다.
그런데 체중 재는 K의 인증샷을 찍다보니 아주머니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같이 찍히게 되었다.
이 사진을 히잡 쓴 아주머니가 보면 자기 영혼이 빠져 나갔다고 싫어하실까....?

 K가 올라가서 체중계 눈금을 보니 원피스에 샌들까지 다 신고 올라갔는데 몸무게가 2kg나 덜 나간다.
그 다음 S가 올라가도 -2kg, 필자가 올라갔는데도 마찬가지로 체중이 -2kg이다!
와우~! 팬태스틱.....! 너무 착한 저울이에요~!

이 엉터리 길거리 체중계는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이스탄불을 방문한 세 여자에게 <다이어트>를 시켜준 것이다.
너무나 쉽게 다이어트 시켜준 이 <착한> 저울에게 우리는 기분좋게 1달러를 지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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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축소판, 인류 문명의 박물관, 제국의 수도,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이 명칭이 모두 가능한 곳은 세계에서 단 하나.....바로 이스탄불이다.


이곳은 단순히 이스탄불로만 부르기에는 성이 안 찰 정도로 '감동이 밀려오는 도시'이다.
터키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이희철 박사에 따르면이스탄불은 "아! 이스탄불..." 이란 감탄사로 로 불러야 느낌이 차 오는 그런 도시라고 한다.  

 역사 시간에 우리가  비잔틴 제국이라고 불렀던 동로마 제국이 AD 330년부터 AD 1453년까지 이곳을 수도로 삼아 번창했고그 뒤를 이은 오스만 제국도 AD 1453년 부터 AD1923년까지 이곳을 수도로 삼았으니1600년간 세계를 주름잡은 대제국의 수도를 지낸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다. 

 

      골든 혼에 위치한 콘스탄티노플, 이미지 출처: http://www.reisenett.no

            이스탄불 2,700년의 장구한 역사를 단 몇 줄로 줄여서 설명해 보면.... 이스탄불의 가장 오래 된 이름은 '라고스'였다.현재의 사라이부르누에 세워진 라고스라는 도시는 BC 660년  '비잔티움'이 이 도시에 세워질 때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비잔티움이란 명칭은 그 지역에 새롭게 거주한 그리스인 메가라 족의 족장 '비자스'의 이름을 딴 것인데이 명칭은 로마 시대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까지 계속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헤레나 여제, 이미지 출처: http://upload.wikimedia.org

 AD 324년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상업,교통,방어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비잔티움에 도시 재건을 시작하여6년 만인 AD 330년에 완공하고 이름을 '노바 로마'로 하였으니 바로 '새 로마'라는 뜻이다.그리하여 로마 제국의 수도는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바뀌게 된다. AD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그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이 도시를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플을 그린 그림, 이미지 출처 :http://www.constantinople.org.uk

           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제국 내부의 경제 파탄 및 부패로 인해AD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후 두 아들에 의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는데....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두고 정치,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던 동로마 제국에 비해상대적으로 약해져 있던 서로마는 AD 476년에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되어 로마 제국의 정통성은 비잔틴 제국이라고도 불리던 동로마 제국에 의해 이어져 나가게 된다.

  성 소피아 성당(하기야 소피아)              

               로마 제국의 상속자이자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은 황제의 강력한 지배와 군사적 통치권을 강화하게 되는데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AD)때에는 국력을 확장하고 성 소피아 성당을 재건하는등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명실상부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스탄불 시내를 둘러싼 비잔틴 시대 성벽 

       이로써 비잔티움 천도 AD 330년부터 AD1453년 수도 함락까지  1123년간 '콘스탄티노플'은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격, 이미지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에 제동을 건 것은 11세기말 튀르크계인 셀주크 제국이었으니셀주크의 침공과  십자군 원정에 의해 군사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비잔틴 제국은 점점 약소국으로 전락하다셀주크 투르크족이 건설한 오스만 제국의 메흐매드 2세의 침공으로 인해 AD 1453년 비잔틴 제국은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되고 '콘스탄티노플'은 함락 당하게 된다. 

  전성기 오스만 터키의 영토, 이미지 출처 :http://www.bahaullah.org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개칭하는데 이후 16세기 쉴레이만 1세 황제 때에 동서 정벌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이르는 최대의 영토를 가지게 된다.또한 메카의 정복과 함께 마호메트의 자손들에게 내려오던 '칼리프'라는 칭호를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이어받게 되니 오스만 제국은 모든 이슬람 국가의 맹주로 군림하게 된다.

  1912년의 이스탄불,   이미지 출처 :http://www.dimitris.gr

  건국 초부터 쉴레이만 황제 때까지 오로지 영토 확장에만 주력해 왔던 오스만 제국은 내부에서부터 부패하기 시작하여 최대 전성기와 함께 점점 쇠퇴가 오기 시작하는데17세기 후반 빈공격 당시 곤경에 봉착한 것을 계기로 수 차례에 걸친 패전을 겪은 뒤 인해 제도를 서구화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한다.

 이스탄불 전경, 이미지 출처 : http://www.firstworldwar.com

20세기 초 열강들의 영토 점령으로 인해 패색이 짙어가던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편에 서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독일이 패전하자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연합국에 의하여 분할 점령될 형편에 놓이게 되고400년 이상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 온 그리스조차 아나톨리아(터키 중부의 땅)의 일부를 요구하고 나선다.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이미지 출처 :http://lh4.ggpht.com

 이 때 터키 공화국의 국부(터키어로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이 등장하여 열강에 의한 영토 점령에 반대하고 민족적 저항 운동을 계속해 나가는데 1921년 아나톨리아로 공격해온 그리스 군대를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군대가 대패시키니 다른 나라 군대 또한 스스로 철수하게 된다.1923년 로잔평화조약에 따라 공식 국가 승인을 받아 1923년 정식으로  터키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니이스탄불은 제국의 수도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내륙에 있는 앙카라로 넘기게 된다.  

   이스탄불의 위스크다라 지역 (가이드북 스캔 이미지)


그러나 아직도 터키의 경제, 문화, 관광의 중심지는 이스탄불이라고 할 수 있으니 
터키 여행에서 이스탄불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앙꼬없는 진빵'이 되고 마는 격이다.

 동서양을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  이미지 출처 :  http://www.information-turkey.net


딱딱한 역사를 읽어 내려가는데는 언제나 지루함이 따른다.
하지만 2,700년 내려온 이스탄불의 역사를 위와 같이 단 몇 줄로 간단히 기술하여 보았으니세계사의 축소판, 인류 문명의 박물관인 이스탄불을 이해하는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자~그럼.....무한감동이 밀려오는 도시 이스탄불로 떠나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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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네압볼리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가기 위해서는
에디르네에 위치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경을 통과할 때 프리 패스이다.
EU에 가입되어 있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끼리는
남의 나라도 옆 동네 가듯 아무런 제재 없이 차로 넘나들 수 있는데
터키는 아직 EU에 가입을 하지 못한지라 
그리스에서 터키로 넘어가려면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경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 지대에는
도로를 제외하고는 여기저기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와 그리스의 관계는 우리와 일본의 관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제의 36년간의 통치를 받았던 것처럼
그리스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후 400년간 오스만 터키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독립후에도 발칸 전쟁 등 터키와 숱한 전쟁을 벌이다가 1921년 로잔 협정에 의해
터키 내에 살던 120만명의 그리스인과
그리스에 살던 45만명의 터키인을 서로 추방하였으니
현재도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만큼 서로 앙숙인 관계이며
특히 400년간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 사람들은 터키 사람들을 아주 아주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리스 국경에서 여권 검사를 하고 면세점을 들려보니
면세점에는 오직 술과 담배 뿐이고 화장실 외에는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 터키 국경 지대의 편의 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을 통과하려면 그리 넓지 않은 강 하나를 건너야 한다.
특이한 것은 다리 난간의 색깔인데 강 한가운데가 서로의 영토 경계선이라서
그리스 영토 부분을 지날 때에는 강의 난간이 그리스를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강의 중간 부분을 지나 터키 영토인 다리 부분에 오면 난간의 색깔이 터키를 상징하는 붉은 색으로 바뀌게 된다.


강폭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순식간에 그리스에서 터키로 넘어오게 되기 때문에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다리 색깔이 가운데서부터 달라지는지 볼 사이도 없이 넘어와 버리게 된다.


 드디어 국경을 넘어 터키의 영토로 진입한지라 버스 뒤편 창을 통하여 사진을 찍었다.
저멀리 파란 난간의 다리와 이쪽 붉은 난간의 다리 사이에 펄럭이는 두 나라의 국기가 눈에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리스로 들어가기 위해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많은 차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다리를 지나 터키 쪽 국경 검문소로 진입하니 '튀르키에'라는 터키의 국명이 선명하게 보인다.
검문소를 지나가면서 보니 보초병들이 지키고 서 있길래 차 안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더니
보초를 서는 군인이 '터키 남자 특유의 눈웃음'을 치며 차가 안 보일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든다.
보초병이 여자를 보고 눈웃음이라니....!


 터키 영토로 진입하니 그리스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지루함 때문에
차에서 내려 담배를 태우거나 삼삼오오 짝지어 얘기를 나누는 터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터키 국민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게 성격이 무지 급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을 잘 참지 못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길거리 노점상들은 너무나 친근하고 정겹게 보인다.
터키는 넓고 비옥한 토지로 인해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과일들은 값이 싸고 당도도 높으며 무지 신선하다.
 


 국경 도시 에디르네를 지나면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오게 된다. 


이스탄불 길가의 가로수는 올리브 나무가 많고 사람들의 모습은 아주 여유로워 보인다. 


인구 1,200만명이 밀집해서 살아가고 있는 이스탄불의 모습은 아주 활기차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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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요트와 에게해 크루즈선들이 늘어서 있는 해안을 통해 그리스 및 에게해의 다른 섬들로 연결이 되는 도시인 터키 쿠샤다시(Kusadasi).

 

 

반짝이는 아름다운 바다와 드넓은 백사장,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크루즈선들의 정박으로 인해 유럽인들이 즐겨찾는 이곳은 터키의 에게해 연안의 휴양 도시 중에서도 규모와 시설이 손꼽히는 리조트 도시이다. 
 

 

예전에는 거대 유적 도시 에베소(에페스)로 가는 경유지에 불과했던 이곳은 지금 수십개의 관광 호텔과 휴양촌이 해안선을 따라 자리잡고 있으며 레스토랑과 나이트 크럽은 나날이 증가하는 많은 관광객들로 그득하여 유럽의 여느 도시보다 더 북적거리는 곳이다.  

 

 

쿠샤다시 입구에 위치한 '비둘기섬'은 긴 방죽으로 본토와 연결된 작은 섬이다. '귀베르진 아다스'라고 불리우는 이 작은 섬은 꽃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이 섬을 둘러 싼 14,5세기의 성채가 복구되어서 지금은 터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나이트 크럽으로 변모되었다. 600년이 넘은 오래된 성채를 나이트 클럽으로 변모시키다니....! 우리 같으면 보존한다고 일반인의 통제를 막았을 텐데....  온 나라 안에 이천년 넘는 고대 유적이 차고 넘치는 터키에서는 600년 된 성채 정도는 그저 생활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쿠샤다시의 호텔에 짐을 풀고 배터리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으니 빨간 불이 점멸하며 이상 증상을 보인다. 아무래도 고장인 것 같이 생각이 되어 하나 새로 살 겸 쿠샤다시 다운타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SUV차량 처럼 생긴 택시를 불러서 타고 바자르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바자르 입구에 도착하니 이즈닉 타일로 장식된 공동 수도가 먼저 반겨준다. 이슬람 교도들은 정결 의식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슬람 사원은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꼭 공동 수도가 있다.
 

 

터키도 여느 유럽과 같이 서머 타임을 실시하므로 여름엔 9시나 되어야 해가 지는데  리조트 도시인 관계로 바자르에는 낮보다는 밤에 손님이 많아 낮시간에는 비교적 한산하다.

 

 

휴양 도시인만큼 유럽이나 터키 전역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아 길에 앉아 노닥거리는 사람이 많다.  

 

미용실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남자들은 머리 하러온 여자 친구나 아내를 기다리는 듯..... 

 

 

이곳에서도 역시나 패스트 푸드점이 대세인 듯 거리에는 버거 킹, 프라이드 치킨집....등이 보이는데

 

 

터키의 청소년들은 주로 패스트푸드점 2층에서 밀회를 가지곤 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각처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들끓는 곳이라 옷차림이나 애정 표현이 비교적 자유롭다.

 

커피나 아이스크림, 쥬스 등을 파는 카페도 성업 중인데 아이스크림은 1유로 정도이다.

 

 

바자르의 좁은 골목에 밀집한 상가들은 우리네 재래 시장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데 물건의 진열 상태도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으며 기념품가게들에는 마치 우리나라 관광지에서처럼 조잡한 물건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해적판 게임 CD와 유희왕 카드 같은 것을 파는 좌판을 지키는 꼬마는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주목받는 도시인 쿠샤다시의 부동산 가게에는 매물의 사진과 가격들이 유리에 빼곡이 붙어있다.  

 

 

환상적인 맛의 터키 케밥집의 다양한 메뉴가 눈에 확 들어온다. 

 

 

관광 안내용 모니터인 것 같은데 역시 우리네와 같이 무용지물인 듯.... 아무도 안 쓰는지 앞에 자전거와 모터 사이클이 주차되어있고 낙서만이 노란 페인트 위에 선명하다.

 

터키 사람들은 춤추고 노는 것을 무지무지 좋아하기 때문에 어딜 가든지 디스코텍이나 가라오케가 빠지지 않는다. 이 곳에는 우리나라 처럼 관광 버스 춤도 성행하고 유럽에서 가장 큰 디스코텍도 터키에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 색으로 무질서하게 간판이 난립한 것도 우리 나라와 비슷한데 네거리에 위치한 귀금속 가게 근처에서 카메라 전문점을 찾아냈다. 
 

 

카메라 용품점 안에는 디카가 많이 진열되어 있고 관광지라 일회용 카메라도 많이 볼 수 있다.

 

먼저 온 손님이 마시고 간 차이 잔이 얌전히 놓여 있는데 터키에서는 손님에게 차이 한잔 대접은 기본이다.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는 복합 상가로 추정되는 건물은 터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풍경. 

 

각양각색 간판들이 조그만 점포나 사무실마다 들어서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다. 
  

 

호텔 셔틀 버스로 추정되는 차에 손님이 오르고 있는 모습은 쿠샤다시에서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지중해에 가까운 쪽이라 야자수가 가로수로 자라고 있고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라 고급차가 많고 사람들의 행색이나 집들도 모두 깔끔하다.  

 

 

횡단 보도도 중앙선도 없는 길에는 차는 차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갈길을 간다. 

 

 

거리 뒷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보니 주차 수준은 우리 나라와 비슷해 보인다.  

 

 

세 시간 정도 다운타운을 돌아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식사를 한 후 쿠사다시의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나왔다.
낮에는 길도 잘 모르고 열기가 장난이 아니라서 택시를 타고 왕복했는데 9시쯤 되니 한낮의 더운 기온도 식어 한결 시원해진지라 해변 구경도 하면서 걸어서 바자르까지 갔다. 

 

 

다운 타운의 상점은 크루즈선을 타고 부두에 도착한 수많은 승객을 상대로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길거리에는 터키인과 유럽인들이 한데 섞여  마치 인종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쿠샤다시는 남녀의 차림새가 이스탄불 다음으로 세련되었던 곳이었는데 가는 곳 마다 훈남, 훈녀가 득시글거린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도 사람들이 넘쳐나고 모두 밖에 나와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음식을 즐기고 있다.  

 

 

길거리에 앉아 전통차 '차이'를 마시는 모습은 터키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람 다니는 길에 아무 생각없이 놓여있는데도 테이블과 의자들을 다들 잘 피해다닌다.
 

 

음식점의 입간판들이 길에 버젓이 나와 있는 걸로 보아 간판에 대한 규제는 별로  없는 듯 하다. 

 

 

레스토랑에 앉은 사람들은 남녀 모두 축구를 보며 괴성을 질러대고 있는데 축구는 터키에서는 공통 언어여서 남녀 노소 다 축구를 모르고는 서로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이라고. 

터키 전역에는 약 200 여개의 프로 축구팀이 있는데 축구 리그는 3 부로 되어 있어 거의 매일 축구 경기가 있기 때문에 터키 전국민이 축구와 함께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집마다 다 TV가 있지만 모두 카페에 모여 축구를 보는데 이는 우리처럼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질러가며 축구를 보는게 더 신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여행객이 주고객인 쿠샤다시의 바자르에는 갖가지 상품이 넘쳐나는데 우리 나라로 치면 "골라 골라 만원 샵" 정도인 "Everything is  10 Euro"라는 카피도 눈에 뜨인다.

 

유럽 관광객들은 여자나 남자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데 이렇게 동네 장에 나온듯한 편안한 옷차림의 유럽 아줌마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이슬람이 대부분인 터키이지만 검은 머리에 스모키 메이크업을 진하게 한 터키 여자들도 이곳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거나 어깨를 노출한 정도의 옷차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터키 여자들이 미니 스커트나 핫 팬츠로 다리를 노출한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는데 유럽이나 터키에서는 상체 노출보다 하체 노출이 더 심한 노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국 여성 여행객들이 터키의 작은 도시에서 미니 스커트 등을 입으면 좋지않은 추파와 야유의 대상이 되든지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대형 크루즈선들이 매일 정박하는 자유로운 도시 쿠샤다시에서는 모든 것이 다 허용되니 안심해도 된다.  

 

 

선물 가게에 들어가 보니 특히 터키 도자기의 화려함과 퀄리티는 상상 이상이다.

 

 

길 양쪽에 빽빽하게 들어찬 관광상품점들은 가게의 규모도 대단하고  상품도 질도 상당히 높다.  가게마다 화려하고도 특이한 장식품들이 즐비하여 사고 싶은 충동을 참으려면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한다.

 

 

터키의 대표적 기념품은  파란 눈알이 그려진 장식품  '나자르 본주(Nazar Boncugu)'이다.

 

이것은 파란색 바탕으로 된 유리에 까만 눈이 그려진 일종의 부적인데
열쇠 고리, 키 홀더, 목걸이, 팔찌....각가지 형태로 다 있다.

 

 이블 아이(악마의 눈)라고도 하는 나자르 본주는 가장 강력한 악마의 눈을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주위의 악마들을 도망가게 하며 타인의 질투나 질시를 빨아들여 주위의 재난으로 부터 자신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지녀서 터키의 대부분 집의 들어가는 입구나 상점의 문 옆에는 어김없이 이것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념품 중에는 <의외로> 인물의 초상도 보인다. 이슬람 국가에선 예로부터 인물의 초상이 절대 금지되어 있어서 왕들 조차도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그림이란 것은 오직 책의 삽화일 때만 존재할 수 있는데 이는 신성화, 우상 숭배의 염려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왕들이 자신의 권세와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책 삽화의 주인공을 자신의 얼굴로 넣는 것이었는데
그런 책을 몇 권을 제작했느냐가 왕의 권세를 증명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후대 왕들이 취임하면 전의 왕들의 책들에서 얼굴만 자신의 얼굴로 갈아치우기도 했다고 한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얘기임)  

 

 

이렇게 다양한 냉장고 자석이 많은데 왜 안 사왔지....여행지의 냉장고 자석 콜렉션이 취미인데 고르다가 못 사온 것이 내내 아깝기만 하다.    

 

 

 식료품 가게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터키 젤리가 눈에 뜨인다. 터키 젤리는 달콤하고 완전 죽이는 맛이다.  

 

 

 피파 스폰지밥 스파이더맨 등....익숙한 게임들이 눈에 띈다. 4개에 30유로.....20파운드....50 예니터키리라이고 테스트 해보고 사 가란다. 음반가게에서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의 음반을 달라고 하니 'Tarkan' 베스트 앨범을 추천해 주어서 처음으로 Tarkan을 처음 알게 되고 팬이 되었는데 CD의 값이 유달리 싼 것이 이상하다고 했더니 나중에 들어보니 불법 다운로드 복제 CD였다...ㅎ

 

 

터키의 대부분의 아파트는 주상복합이 많았다. 이슬람사원마저도 1층에는 바자르로 세를 주는 경우가 허다한데 바자르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사원을 운영한다는데 심지어 가장 큰 사원인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에도 수백년 전부터 모스크 아래에 '아라스타 바자르'라는 바자르가 있어서 사원의 수입을 충당하기도 했다고. 

 

 

 

 늦은 시간이지만 가게는 낮보다 오히려 손님이 많다.
 

 

 터키는 가는 곳마다 보석 가게가 널려 있는데 특히 금은 세공품이 주를 이룬다. 터키에서 남편들은 늘 아내에게 보석을 선물하는데 아내가 걸친 고가의 보석은 남자의 부를 상징한다고.....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에 갔을 때에 보석 가게 앞에서 거울을 보며 뺐던 귀걸이를 다시 끼우고 있었는데 보석 가게 남자가 필자가 하고 있는 귀걸이와 목걸이가 무슨 보석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건 이미테이션"이라고 말했더니 그 남자는 "왜 당신의 남자는 당신에게 이미테이션을 사주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도 보석 가게 남자는 앞에 선 여자가 돈이 너무나 없는 불쌍한 여행객으로 보였으리라.... 

 

우리 나라 사람이 유럽이나 다른 곳에 가면 일본에서 왔냐고 먼저 물어보지만 터키에서는 보면 한국인이냐고 먼저 묻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카펫가게 아저씨는  필자가 코레에서 왔다고 하니 어느 도시에서 왔냐? 서울? 대구? 부산? 하며 말을 걸었다. 20년 전에 부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던 이 아저씨는 한국말도 '쬐끔' 한다.   

 

 

바자르 뒷골목으로 가면 유난히 타투나 피어싱을 하는 가게가 많다.

 

 

이슬람과 타투라...영 줄이 안 그어지는 조합이지만 이곳은 여행객들이 주를 이루는 도시라 그런지 주민의 대부분은 이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나는 곳이다.  

 

 

뒷골목에서는 조명이 밝지도 않은 곳에서 길거리 문신질을 하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헉....도인을 방불케하는 옷차림과 등과 팔에 문신을 새긴 사람 발견. 터키 전역에서 이런 사람 처음 보았는데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보다. 

 

유럽 관광지는 밤이 되면 길에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이 무지 썰렁하던데 여긴 12시가 넘어도 사람이 줄어들지 않고 점점 흥청거리고 청소년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닌다.

 

이슬람 신자가 대부분인 터키지만 이곳 쿠샤다시에서는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밤이 너무나 아름다운 젊음과 정열의 도시, 이곳은 터키의 '쿠샤다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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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00만의 이즈미르(Izmir)는 이스탄불,앙카라에 이은 제 3의 도시로써 터키의 주요 산업지이며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 여행가들이 들려서 볼만한 역사적인 볼거리는 적지만 에베소(에페스)와 페르가몬 유적 관광과 함께 에게해 연안 리조트로 가는 기점으로써 여행에서 주로 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도시이다. 

 

 

이즈미르는 성경에 서머나(스미르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약 시대에도 잘 지어진 공공 건물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호메로스의 출생지이기도 한 서머나에는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를 기념하여 세운 신전이 있어 그 곳에서 황제 숭배가 행해졌는데 이곳 신자들은 황제에 대한 예배를 거부함으로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굴하지 않아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을 받은 교회로 요한 계시록에 기록되었다. 

 

 

옛날부터 내려온 국제 도시답게 도시는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는데 가로수가 대부분 야자수인 것이 인상적이었고 

 

 

역동적인 터키 제 3의 도시답게 곳곳에 건설 중인 건물이 눈에 많이 뜨였다.

 

 

서머나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다 목적지인 폴리캅 교회 앞에 도착하니 이미 5시가 넘어 교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어 교회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는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부를 못 보고 가기엔 너무 서운하다고 사정했더니 형제의 나라 한국에서 왔으니 관람 시간이 늦었지만 특별히 예배당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며 교회 뜰로 안내해주었다

 

 

교회 문이 잠겨 있는지라 사무실 계단을 통해 올라가서 가서 다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니 조그만 뜰이 있었고 맞은 편에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외관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그다지 큰 것 같지 않았다. 

 

 

아주 소박한 교회 문을 통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내부는 상당히 넓었고 장식도 너무나 화려하였다.  

 

 

맨 앞의 제단은 비잔틴 교회의 전형적인 장식으로 잘 꾸며져 있었는데 

 

 

제단 가운데에는 폴리캅 감독의 형상이 있었다.

 

 

교회 내부를 돌아보니 예수님의 성화는 옆 쪽에 위치하고 있고... 

 

 

어린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로부터.... 

 

 

여러 성인들의 조각...등.... 

 

 

교회 전체를 돌아가며 빼곡이 성화와 조각들로 채워져 있었다.  

 

 

입구쪽 유리 상자 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형상이 실제 크기의 형상으로 조각되어있었는데 옆구리에 창에 찔린 흔적에서 물과 피가 흐르는 모습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이 교회를 폴리캅 교회라고 부르는 까닭은 사도 요한의 수제자 폴리캅(Polcarpus) 감독이 시무하였던 곳이기 때문인데 AD 160 년에 교회를 핍박하던 박해자들이 폴리캅 감독을 잡아서 예수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을 때에 그는 "예수님을 믿은지 86년 동안 주님은 한번도 나에게 잘 못 하신 일이 없는데 내 어찌 주님을 모른다 하리오.." 라고 대답하여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는데 화염 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순교하였다고 한다. 바로 왼 쪽 아래 부분에 폴리캅의 화형 장면이 천정화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는 계시록 2장의 기록이 바로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며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주님의 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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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골로새를 지나 라오디게아(지금의 데니즐리)로 가다보면 청옥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게 되는데 이 호수는 바로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에이르디르 호수다. (터키에서 제일 큰 호수는 반 고양이로 유명한 '반'호수이다.)  

 

 


마치 바다처럼 넓디 넓은 에이리디르 호수의 물빛은 신비로울 만큼 아름답다.

 


보통 빙하 호수의 물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빛깔을 띄곤 하는데 에이르디르 호수는 빙하호도 아닌데도
눈이 시리도록 찬란한 터키의 하늘색을 그 가슴에 담아서 그런지 터키석 같은 물빛을 지니고 있다. 


호수가를 빙 둘러 한 바퀴 도는 구불구불한 도로는 가는 곳 마다 천혜의 관광지이다.
터키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바다나 호수가에 여름철을 지나기 위한 별장들을 가지고 있는지라 이렇게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아름다운 호텔 ,팬션 ,빌라들이 즐비하다. 


에이르디로 호숫가에는 가도가도 끝없는 올리브 농원이 펼쳐져있고 과일을 재배하는 과수원도 많다.
사시 사철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터키의 과일은 당도가 높아서 아주 맛있다. 터키에서는 과일 값이 아주 싸기 때문에 터키 사람들은 웬만하면 과일을 박스채 산다.


 

너른 호수를 옆으로 끼고 한바퀴 돌다보니 호수와 꼭 같이 '에이르디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이 나온다. 에이르디르는 비록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BC500년에 이미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을 만큼 역사가 오래 된 도시이다. 호반도시 에이르디르는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주변에는 에이르디르 호수 뿐만 아니라 찬드르라는 유명한 계곡과 코바다 국립 공원등이 자리잡고 있어서 찾는 이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오래 있어도 싫증나지 않는 매력을 가진 도시라고 한다.


 

느긋하고 평화로운  에이르디르의 점심 시간, 케밥집 앞에도 밖에 나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점심을 먹으러 들린 호숫가의 호텔에는 건물  5~6층 높이의 자작나무 군락이 호텔 1층 천정을 뚫고 자라고 있다.
원래 나무가 자라고 있던 곳에 호텔을 증축하여 지은 둣 한데 나무를 베지 않고 건물과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호텔 내의 카페에 들어가 보니 카페의 주방 한가운데 아름드리 나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에이르디르의 중심부는 매우 작은데 성벽에서 보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처 예실섬에는 휴양도시답게 팬션이 밀집되어 있는데 섬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매립되어 돌무쉬(조그만 합승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마을에 있는 오래 된 셀주크 성채 부근에는 15세기에 건설된 '흐르즈베이 자미'라는 사원이 있는데건물 뒷편에 미나레(첨탑)가 보이는 건물이 흐르즈베이 자미다.

 


흐르베이 자미 앞에 '된다르베이 마르마사(된바르베이 신학교)'라는 유적이 있는데 얼마전 복구되어 현재 쇼핑 몰로 사용되고 있다.
유적을 복구해서 쇼핑몰로 쓰다니.....정말 놀랍지 않은가?

에베소 바로 근처의 쿠샤다스라는 도시에도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둘기섬(귀베르진 아다스)'이라 불리우는 섬이 있는데
섬 전체가 아름다운 꽃으로 잘 가꾸어져 낙원 같은 이 섬에는 14,5세기의 아름다운 성채가 있다. 그런데 이 성채는 지금 복구되어 터키 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이트 클럽이 되었단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터키에서는 기원전의 신전 기둥이 동네 아저씨들의 체스판이 되어 있고 로마 시대의 석관이 카페의 테이블로 쓰여 손님을 받으며 파묵칼레의 온천 수영장의 바닥에는 신전 기둥이 그대로 누워있는 정도이다.

놀란 외국인들이 터키 사람들에게 왜 이런 귀한 유적들을 박물관에 넣어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냐고 물으면 터키 사람들은 참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라 전체에 유물이 천지삐가리이고(널려있고) 온 나라가 박물관인데 왜 유리 상자 안에 그것을 가두어 두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고.....실제로 이스탄불의 박물관에 가보면 유물이 하도 많아서 마구잡이로 쌓여있다는 느낌마져 든다고 한다.  

터키 사람들에게 유적이나 유물은 박물관의 유리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잠자면서 것이 아니고 동네 한가운데서 위치해서 그 곳을 드나들도 그곳에서 쉬며 사람들과 같이 숨을 쉬고 있었다. 터키의 유적은 이른바 죽은 유적이 아니고 살아있는 유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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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가 어디냐고 물으면 터키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코니아(콘야,Konya)'라고 대답한다.
수도 앙카라에서 250 km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인구 80만이나 되는 대도시가 왜 제일 보수적인 도시일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코니아에 내려보았더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성경에서 '이고니온'이라고 불리웠던 코니아는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로마,헬라 제국 시대에는 브르기아 지방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바울 시대에는 수리아와 에베소를 연결하는 유명한 상업 도시였다.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이 곳을 방문하여(사도행전 13:51)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 신자를 얻게 된 기록도 있으며(사도행전 14:1~7)

1071년부터 1308년까지는 셀주크 투르크 제국의 수도이었기도 한  유명한 도시이다.


그런데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코니아가 알려진 이유 중의 하나는
이 곳이 '메블레비'로 불리우는 터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 종단의 발상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메블레비 교단의 창시자인 '메블라나 젤라렛딘 루미'는 글을 모르는 일반 대중도
쉽게 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세마'라는 수행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세마'는 흰 옷을 입은 수행자들이 음악에 맞춰 끝도 없이 뱅글뱅글 돌며 신과의 합일을 느끼는 방법이다.

수피즘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한 번 정도는
팔을 하늘로 치켜 들고 뱅글뱅글 도는 세마 명상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세마 명상춤은 무스타파 케말 대통령의 정교 분리 정책에 의해서 일시 금지되었으나
지금은 완화 정책으로 인해서 다시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메블레비에서 세마를 추는 사람을 '세마젠'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의상이 흰색인 것은 수의를 뜻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춤이 시작되기 전에 그들이 걸치는 검은 색 망또는 무덤을 뜻하고 머리에 쓰는 긴 모자는 묘비를 의미한다고.....
인간이 가장 겸손해지고 솔직해지는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신과의 합일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란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나. 

이 곳 코니아의 메블라나 박물관에는 수피파의 시조 메블라나의 묘가 있으며
터키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온 몸을 검은 차도르로 휘감은 여성도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도시이다.

신비주의 이슬람의 도시 코니아는 셀주크 터키 술탄의 궁정이나 알라딘 자미(사원)등이 남아있는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어서 도시의 풍경은 황량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신개발 지역이 더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런 주택 지구는 밋밋하게 지어진 아파트, 나무 하나 없는 주차장 때문에 너무나 삭막한 느낌이 든다.

신주택지구에는 주상 복합 스타일의 아파트가 많은데 우리처럼 베란다가 새시 유리로 되어있는 경우는 많이 없고
대개의 경우 베란다에 커튼처럼 커다란 흰 천을 쳐놓았다가 한낮에 태양이 내리쪼일 때 가려서 열기를 막아준다. 

코니아 변두리는 훨씬 더 터키 색이 강하다.
삼륜 오토바이 뒤로 파랑과 초록문의 색감이 참 고운데 터키 사람들은 건물 색을 다양하게 쓰는 것이 특징이다.

 

터키의 어느 마을을 가도 그렇듯이 펩시의 간판이 자리잡고 있고
코딱지만한 잡화점에는 잡다한 생활 용품등이 길가에까지 전시되어있다.

가게 앞에 있는 엄청나게 큰 용량의 세탁 세제들이 시선을 끄는데 이것은 터키의 가정들이 예민할 정도로 청결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터키 주부들은 일상 중 많은 시간을 마룻바닥을 솔로 문질러 닦거나 속옷을 세탁하고 삶는 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TV 광고의 많은 부분이 청소용품 광고로 채워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관광지도 아닌 보수 이슬람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다 혹시 잡혀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고 약간은 무섭기도 했지만......
호텔을 나서니 길에는 어디에서인지 뿌연 연기가 나와서 거리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울리며 온 도시를 내리덮고 있어
가슴을 찍어 누르는 듯한 두려움과 신비로움이 온 몸을 감쌌다 

그런데 아잔 소리가 나면 다 길가다 엎드려 메카 쪽을 향하여 기도할 줄 알았더니
아잔 소리가 나든 말든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제 갈길을 가고 있다.

길에는 여자나 남자나  혼자서 다니는 사람들은 잘 없었고 가족 단위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히잡을 두르거나 검은 차도르를 발끝까지 덮어 쓴 여자 옆에는
자유로운 복장을 한 남편이 아이를 안거나 손을 잡고 따라 다니고 있어서

이슬람 가족들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매우 가정적인 분위기란 걸 한 눈에도 느낄 수 있었다. 

 

재래 시장은 우리나라 90년대 같은 분위기였는데  가게 마다 마네킨에다 옷을 입혀 세워둔 것이 특징이었고
특히 가운데 마네킨은 어디가 부러졌는지 노끈으로 목을 단단히 붙들어 매어 벽 사이의 철근에다 고정시켜 놓았다.  

 

가방, 신발, 속옷 등을 함께 파는 가게 앞의 남자 마네킨은 맨 머리에다 넥타이를 두르고 있다.
우리 나라의 노래방 패션이 터키로 옮아간건가...? 

 

터키의 극보수도시 코니아 재래 시장에도 어김없이 짝퉁은 넘쳐나고 있다.
마네킨들의 수염은 매직펜으로 직접 그려 놓는 센스....^^

시장에서 나와 다운타운을 걸어가니 조그만 애들이 떼를 지어 따라왔다.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는 도시인지라 자기들과 다르게 생긴 동아시아 사람이 무척 신기한가 보다.
아이들은 큰 눈을 반짝이며 신기한 표정으로 졸쫄 따라다녔는데 그 중에 용기가 있는 애들은 "Hello~~"하며 인사도 건넨다.
손을 흔들며 웃어주면 부끄러움을 타며 도망가기도 하고 어떤 애는 같이 손을 흔들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길을 걸어오다가 마주치면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외지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코니아에 동아시아 사람이 나타나니 그들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자기네들끼리 힐끗거리며 쳐다보며 수근수근한다. 
"와...저 사람 봐라. 어디서 온 사람이야..? 중국 사람? 일본 사람? 아냐...한국 사람일거야....근데 여기에 웬 일로 왔지....?"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코니아 거리 구경을 하러 갔다가 도리어 그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 구경을 시켜준 형편이 되었다. 

재래 시장을 지나 중심가를 한참 가니 상당히 큰 Multi-Flex 가 나타난다.
할인점, 영화관,레스토랑이 모두 모여있는 복합 건물이었는데 지하로 내려가니 'Afra'라는 엄청 큰 할인점이 있다.



할인점  'Afra' 입구에 있는 간판 중 indirim 은 discount라는 의미인 듯....아마 그 날의 특별 할인 품목을 광고하는 것 같다.

할인점 안은 우린 나라의 매장과 거의 비슷하고 없는게 없는데 매장 안이 갖가지 물건으로 넘쳐나고 있다.
남편,아내,아이들.....온 식구들이 같이 쇼핑을 나오는데 애들의 수는 둘이나 셋,경우에는 네 명 씩도 데리고 나온다.
카트에다 애들을 태우는 건 우리 나라와 모습이 꼭 같다.
하얀 치마,검은 상의를 입고 검정과 흰색의 스트라이프가 있는 히잡을 두른 뛰어난 패션 센스의 아줌마가 눈에 뜨인다.
히잡(스카프)은 여자들의 패션 품목으로 대부분 수십개씩 가지고 있어 옷에 따라 바꾸어 매고 다닌다고 한다. 

 

트렌치코트와 히잡, 숄더백의 색감을 잘 맞추어 입은 아줌마들이 여기도 눈에 뜨인다.
아내들의 장보기에는 남편들도 꼭 따라 와서 같이 물건을 고르는게 아주 보기가 좋아보인다.
뒤에는 경품으로 차 한 대를 준다는 광고가 걸려있는데 우리 나라 마티즈와 모양이 같다. 마티즈인가.....?



역시 할인점에선 세일하는 옷을 사야 본전을 뽑는 법......
사진 찍는 이방인 여자가 신기해 보이는지 건너 편에서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신기해 하고 있다. 

 

갖가지 모양의 수제 소시지가 먹음직스러운 가공 식품 코너.
우리 나라 소시지는 거의 돼지고기로 만들지만 이곳엔 돼지고기 소시지는 없다.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할인점의 식육 코너에는 양고기가 대부분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저씨인데도 몹시 수줍어한다.

 

촌두부같기도 하고 빨래 비누같기도 한 이것은 오리지날 핸드메이드 치즈.
수작업으로 만든 치즈라고 하니....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긴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한 터키는 과일과 채소의 천국이다.
모두 다 박스 채 과일을 사는데 우리 나라같이 과일 몇 개 사는 건 터키에서는 없다. 
그만큼 과일이나 채소등 농산물은 엄청나게 싸다.
터키가 국민 소득이 높지 않은데도 국민의 생활 수준이 그리 낮지 않은 것은
농산물이 아주 싸서 모든 식량이 자급자족되기 때문이라고..... 

과일 박스 뒤편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로 둘러싼 여자 발견.....
이스탄불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차도르 입은 여인이 콘야에는 여기저기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터키 사람들은 사진찍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아주 시골 사람이나 골수 이슬람 신도들은 사진 찍는 것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정면에서 찍을 수가 없어서 뒤에서 몰래 찍었다.

 

히잡이나 차도르로 둘러싸고 있지만 그녀들의 속옷은 우리네보다 더 화려하다.
소박하고 점잖은 여인들의 옷 속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심히 야한 속옷들을 입고 있다고 한다.
검은 차도르로 온 몸을 감싸고 눈만 내놓은 여자들까지도.....

향수 매장에서는 매장 전체에서 유일하게 여자 점원이 향수를 팔고 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엄청난 미인이다. 
터키의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초절정미인인데 그들의 신비로운 화장이 한 몫을 더 한다.
원래도 흰 피부에다 파운데이션을 하얗게 바르고 눈에는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하는지라 크고 검은 눈이 더 신비롭게 보인다.
그리고 머리에는 히잡을 두르는데 옷은 자유롭게 입고 심지어 최신식 청바지도 잘 소화시킨다.
히잡에 청바지라.....무지 언밸런스한 것 같은데도 그녀들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는 청바지에 선글라스, 명품 백을 들고 히잡을 쓴 멋진 여인이 즐비하다.



터키 사람들은 여자나 남자나 미혼일 때는 환상적으로 몸매가 이쁘지만 결혼하면 다 엄청나게 살이 찐다는게 슬픈 일이다.

 

키 19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꽃미남 청년이 할인점에서 치즈를 팔고 있다.
민간인이 이 정도 수준의 외모이면 연예인은 도대체 얼마나 잘 생겨야 한단 말인가.
치즈 파는 청년을 사진 찍으려고 주위에서 머뭇거리자 시선을 의식한 이 청년, 필자 쪽을 쳐다보고 눈을 찡긋하며 눈웃음을 친다.
여자랑 눈을 마주치면 어김없이 살인 미소와 눈웃음을 보내는게 터키 남자들의 특징.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이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나 좋아하며
치즈 포장하던 일도 잊어 버리고 한참 동안 포즈 취하기에 열중한다.

 

여자들이 서비스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꺼리는 터키에서는 계산대의 직원도 남자다.

 

이슬람의 나라답게 할인점의 서점에는  코란을 파는 코너가 있다.
코란의 가격은 24.212 YTL(신터키리라) 이니 우리 돈으론 약 2만원 쯤 되겠다.
15세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이 소년은 
사진 찍는것을 의식하고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빠알개지며 말까지 더듬는 것이 너무나 귀엽다.

사실 터키의 국교는 이슬람교가 아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는 이슬람의 오랜 인습이 터키 개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지 않고 정교 분리의 정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 단체가 정당을 만들 수도 없고 일부다처제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관공서나 학교에서에서 히잡을 쓰거나 예배 행위를 하는 것은 금물이며
종교의 자유는 보장을 받아 모스크,기독 교회,유대인 회당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금요일 예배 시간에도 모스크 안에는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 올리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 반면
모스크 밖에서는 그 시간에도 차 마시고 술 마시고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밤 늦게까지 코니아의 다운 타운 구경을 하고 호텔로 가서 누우니 시장에서 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콘야는 골수 이슬람의 도시라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니 나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코니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미소가 넘쳤고 그들이 보는 시선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먼 터키의 한구석인 이곳 코니아 역시 '사람이 사는 도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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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 터키의 성 풍속도는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다소 혼란스럽게 한다.

과년한 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남자랑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
그녀의 오빠나 아버지가 '명예 살인'을 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곳이 터키며
거리에서 손 잡고 다니거나 애무하는 연인들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성범죄가 서양 나라에 비교하여 현저히 적은 걸 보면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는 결코 아닌 듯...
그러나 신문,잡지나 거리의 벽에는 오히려 여성의 상품화 및 개방이 수위를 넘는 듯한 사진이 가득하고
TV의 외설스러운 프로는  밤 시간대에만 아니라 낮에도 토플리스 여자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터키 여행 중 사서 살짝 펴 본 잡지책에는 심하게 선정적인 그림이 많았는데
엄청나게 야한 만화책이 19금 딱지도 없이 팔리고 있어서 여행자를 놀라게 한다.

터키의 국도를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목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많은 좌판이나 길거리 상점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이런 정체 불명의 시커먼 액체를 파는 노점이 길거리에 수도 없이 깔려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차마다 큰 소리로 호객을 하며 와서 사라고 외치곤 하는데 휴게소에도 이런 액체가 즐비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용기에 담아파는 이 액체는 다름아닌 정력제.
내용 성분이나 그 효능이 정말로 믿을만 한지는 알수가 없지만 가는 곳마다 이런 형태의 정력제가 많았는데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만국 공통인 정력 신드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인 듯......

이토록 터키는 이슬람권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여서 모든 이슬람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이슬람권의 뉴욕이나 마찬가지인 터키는 또한 이슬람권에서 음악 등의 대중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사우디,이라크 등 다른 이슬람권에선 아예 허용도 안되는 대중 음악들은 터키의 라디오와 TV를 온통 점령하고 있다.

터키의 모든 대중 가요의 주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는 사랑 타령의 노래이며
터키 음악이나 뮤비는 그 선정적인 강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낮시간에도 터키의 식당에 켜진 TV 에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가수가 온 몸을 더듬으며 끈적거리는 춤을 추고 있는데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남녀 가수들의 야하디 야한 노래와 섹시 댄스를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가 관연 이슬람이 90% 이상인 나라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 수준이 다른데서 기인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여자에게는 순결을 강조하고 처녀성을 기대하는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성적인 관심을 억누르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권장하고 성적인 경험을 은근히 자랑하는데서 기인한다.
사회 전반에 남성을 위한 성상품이 넘쳐나는 곳, 바로 이슬람 국가 터키의 성풍속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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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아다나(Adana)는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의 뒤를 이어  터키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2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중공업과 면화,밀감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당차고 세련된 현대 도시이다. 

하지만 도시의 중심지를 벗어나면 금방 우리나라 면소재지 같은 느낌의 동네가 나타난다.






아침 출근을 위해 부지런히 서두르고 있는 모습은 어디나 다 같다. 






청소차 인부의 모습도 정겹고.....



아무렇게나 난립한 건물과 두서없는 간판들은 우리나라 소도시와 비슷한 느낌을 주어 너무나 친근하다.




오랜만에 보는 손으로 쓴 광고판도 정겹다.





 

터키어로 호텔은 오텔(Otel)이라고 한다. 오텔... 어감이 참 재미있다.



 
 


코딱지 만한 가게도 이름은 마켓이다. 





 


데니즐리로 가는 버스인가....길에는 소형 버스도 눈에 많이 뜨인다.


 


아다나에서 안디옥으로 가는 국도의  주변에는 여기저기 새로운 아파트들이 많이 건축되고 있었다.

넓디 넓은 국토를 가진 터키도 아파트 건축 붐이 일고 있는 듯......그런데 아파트 색상은 아주 컬러풀하다. 



우리 나라의 아파트는 장방형으로 되어 옆으로 집들이 붙어있는 유형이 많은데  비해

터키의 아파트는 사방으로 정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사방으로 집들이 붙어있다. 마치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이렇게 베란다가 삼각형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도 보인다.








마을을 지나면 가는 곳마다 평지와 야산에 올리브나무가 자라고 있다. 

터키특산 올리브유는 참 질이 좋고 올리브 제품도 매우 다양하다.



 


어수선한 듯 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아다나를 지나 안디옥으로 향한다. 

아다나(Adana)에서 안디옥(안티오크,Antakya)으로 가기 위해 아다나에서 차로 번잡한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다시 남쪽 해안 도로를 거쳐 이스켄데룸을 지나 하타이(Hatay)로 가는 여정이다. 


 


가다가 잠시 정차한 주유소 겸 휴게소에는 엔진 오일 등 자동차 용품을 팔고 있다.

만면에 웃음을 띈 경찰 두 명이 동네 아저씨와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경찰도 무지 한가로워 보이는 풍경이다. 


 


주유소에 딸린 식당에는 찾는 손님도 거의 없다.

터키에서는 화장실이 모두 유료인데 식당이나 주유소에 딸린 화장실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트럭을 대어놓고 잠시 쉬러오는 운전기사. 주유소에 들리는 차도 많이 없이 한산하기만 했다.

  

 


길에서 본 건물 중에는 아래는 입주가 완료되어 있고 위에는 미완성인 채로 건물이 구멍이 뚫려있는 건물이 제법 눈에 뜨인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건축주가 돈이 모이면 다시 위층을 신축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도 준공 검사를 해주는지 궁금한 부분이었다.



짙푸른 터키의 하늘 아래 건물은 모두 지극히 컬러풀하다.

건물의 색깔로 쓰지 않는 색이 없을 만큼 주황색 집 옆에 노란색, 파란색...다양한 색상의 집이 많은데 심지어는 보라색 집도 있다.

베란다에서는 어딜 가나 양탄자를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널린 빨래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흰색의 속옷이 많다.

왼 쪽 아래의 하얀 문의 집은 인터넷 카페이다. 



동네 승강장에는 노닥거리는 동네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보이는데 터키 여자들의 90%는 미인이다.

가는 곳 마다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의 미인이 널려있고 터키 남자들 또한 엄청 잘 생겼다.

하지만 3,40대가 되면 무조건 살이 찌고 배가 나온다는 슬픈 현실......ㅠㅠ

 
이탈리아 여자들 또한 20대일 땐 모두 모델 같이 쭉쭉 빵빵한데

40대가 되면 한결같이 엄청나게 살이 찌게 되고 특히 다리가 석회암 기둥같이 굵고 울퉁불퉁해진다.

그것은 이탈리아 지역의 물이 석회질이 많아서 그 물을 평생 먹게 되면 나이가 들어 저절로 다리가 울퉁불퉁하게 굵어진다는 얘기였다.

터키도 지형적인 영향으로 그렇게 살이 찌는지 아님 음식의 영향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이 든 사람들은 대부분 살이 찌고 배가 나온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 도둑이 있는 법인지.....방범창이 설치된 집들이 보이고 빨래 건조대의 모습도 우리와는 다르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2차선 도로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육교는 과연 얼마나 이용이 될까....? 



육교 아래에 있는 부식 가게에는 나무 상자에 채소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 있다.

토마토,가지,피망,양파,감자,오이,마늘,사과,수박,거기다 엄청나게 큰 고추까지.....

색깔이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들은 우리네 부식가게의 채소보다 훨신 당도가 뛰어나고 싱싱한데다 값까지 싸다.

'신이 사랑한 나라 터키'에는 각종 곡식, 채소, 과일이 풍성한지라 국민의 일용할 식량은 풍성하고 삶은 늘 여유롭다. 



자주색 양파가 얼마나 큰지.....어른 주먹보다 훨씬 더 크다.

 


동네 수퍼의 간판은 어딜 가든지 펩시 아니면 코카콜라이다.

터키 어디를 가도 동네 수퍼 간판이 코카콜라나 펩시콜라로 되어 있는 걸 보면 이들의 가공할 만한 시장 잠식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담배,껌 여러가지 주전부리를 파는 동네 가게에는 보드카 광고와 아이스크림 광고가 같이 붙어있고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에는 바 형태의 한가지 아이스크림밖에 없었는데 아이스크림 가격은 우리 나라와 비슷하다. 



역시 동네 수퍼.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주인 아저씨가 밖에 나와서 어슬렁대고 있다.



옷 가게 쇼윈도에는 살짝 촌스런 옷들이 진열되어 있고 많은 마네킨이 쇼윈도를 장식하는게 예전이 우리네 가게들을 보는 듯 하다.








어설픈 옷가게 앞에는 비싼 외제차가 떠억하니 버티고 서 있는데 벤츠나 BMW같은 고급차도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정육점엔 양고기가 다리채로 주렁주렁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집마다 깡통이나 플라스틱 통에 화초를 심어 열심히 가꾸는데 터키 여자들은 집안과 밖을 늘 거울같이 청소하므로 거리는 어딜 가든 깨끗하다.





정육점 옆엔 인터넷 카페(PC방)가 자리잡고 있는데 쪼끄만 마을에 인터넷 카페가 3군데나 있다. 








계획없이 증축한 듯한 빨간 건물 아래에는 케밥 가게가 자리잡고 있는데 케밥 가게 앞에도 코카 콜라의 광고가 어김없이 붙어있다.

동네 아저씨들은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는데 옆 골목의 총각들은 주전자와 물통을 들고 어디에 갔다오는 것일까.....  






그늘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터키의 여유로운 풍경이다.

세련된 맛은 없어도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배어나오는 터키의 마을들은

지나는 여행자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용납해줄 것처럼 편안하게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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