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그의 본명은 테무친이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후엘룬 우진은 그의 아버지 이수게이 바타르가 약탈해 온 여자였다.
후엘룬은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가
이수게이의 형제들에게 발각되어 적장인 이수게이의 부인이 된다.

후엘룬은 잡혀와서 10 달 만에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수게이는 고민 끝에 아이를 친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테무친이라 하였다.
자신이 타타르족의 테무친 우게의 목을 벤 날에 태어났으므로 적장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준 것이다.

뒤에 칸(Khan,왕이란 뜻)으로 추대된 그는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를 통일한 대제국을 건설하여
몽골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치고 1,227 년에 세상을 떠났다.





칭기즈칸.....몽골의 역사는 그 이름과 함께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몽골족 가운데는 몽골계 외에도 투르크나 탕구드계 등 여러 언어 집단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13 세기 초, 테무친이 칭기즈칸에 추대되고 몽골 제국을 창건하면서 '칭기즈칸'과 '몽골'이 갖는 카리스마로 인해
다른 소수 부족의 언어와 의식은 모두 철저히 몽골에 동화되고 만다.
이로써 오늘날 몽골족 대부분이 칭기즈칸을 자신들의 시조로 생각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행기를 타고 몽골 울란바타르에 내리니 칭기즈칸 공항이라는 붉은 네온이 여행자를 맞아 준다.




공항에 한 벽면에는 어김없이 칭기즈칸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는 곳마다 관광 기념품점에는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상품들이 진열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칭기즈칸 열쇠 고리는 기본이고.....

화폐에도 색깔과 액면가만 다르지 칭기즈칸의 초상 일색이다.

(10,000 투그릭은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10,000원 정도이다.

500 투그릭에도 칭기즈칸...1,000 투그릭....역시 칭기즈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상점이나 음식점의 가장 중심이 되는 벽면에도 이렇게 칭기즈칸의 초상이 붙어 있고





몽골 게르의 북쪽인 신성구역에는 어김없이 칭기즈칸의 초상화나 





칭기즈칸을 새긴 카페트가 떡하니 게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다.





울란바타르의 중심인 수흐바토르 광장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중심에도





칭기즈칸의 동상이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울란바타르 남쪽 산등성이에 새겨진 칭기즈칸의 대형 형상은 몽골 사람들의 자부심을 더욱 고취시켜주는데
이 형상은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한지 800년 되는 지난 2006년에 만들어졌다.




몽골 사람들은 최고라는 의미가 없는 곳에는 절대로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칭기즈칸 공항, 칭기즈칸 호텔, 칭기즈칸 보드카.....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것이 아니면 절대로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나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칭기즈칸이란 명칭을 함부러 사용하는 사람은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테러 당할 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칭기즈칸이 죽은지 780 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몽골에는 칭기즈칸이 살아 있음을 본다.
몽골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는 살아있는 칭기즈칸은 
각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몽골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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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곳 바로 '수흐바토르 광장'이다.




울란바타르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가장 번화한 거리 피스 애비뉴(평화의 거리)를 건너면 눈 앞에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수흐바토르 광장은 울란바타르의 어느 지역이든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인데
광장을 중심으로 국회 의사당, 역사 박물관, 중앙 우체국, 외무부 청사, 국립 오페라 하우스, 자연사 박물관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각국의 대사관, 사원, 대학 등의 교육 기관 또한 이 광장과 가까운 곳에 밀집해 있다.



이 광장을 '수흐바토르 광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광장 중앙에 몽골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수흐바토르'의 동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수흐바토르가 1921년 7월 11일 혁명을 선포하고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1925년부터 이곳을 수흐바토르 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흐바토르(Damdinï Suhbator )는 가난한 유목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16세 때 역전 마차의 마부가 되었고
1911년 몽골 독립 후 건군된 자치 몽골군의 소집을 받고 입대하여  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총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웠다.
1918년에 정부 인쇄소의 식자공이 되었는데 그 동안 중국과 무능한 몽골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러시아 혁명에 자극을 받은 수흐바토르는 1920년 6월 초이발산 등과 몽골인민당을 결성하고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전후 두 차례에 걸친 레닌과의 회담을 통하여 몽골 혁명의 성공과 그 후의 국가건설을 위한 전술 지도를 받고
1921년 인민의용군을 결성, 총사령관이 되어 적군()과 함께 마이마친에서 군사를 일으켜
7월 10일 우르가(현재 울란바타르)에 인민 정부를 수립하고 스스로 국방장관이 되었다.



수흐바토르의 동상이 서 있는 장소는 1921년 몽골군이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개선 환영식이 열렸던 장소이며
7월 11일, 수흐바토르 장군이 혁명을 선포할 때 말을 타고 서 있었던 곳이다.
당시 그가 탄 말이 오줌을 쌌는데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를 길조라고 생각하여 그곳에 말뚝을 박아놓았고
나중에 동상을 세울 때에 그 말뚝을 찾아내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동상 밑에는 1,865kg의 금과 수흐바토르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입었던 옷 한벌, 그리고 장군 부인이 눈물을 닦은 손수건을 넣어 두었다.



원래의 동상은 1931년에 만들어졌는데 1946년에 혁명 25주년을 기념하면서 새 동상으로 다시 만들어 세우고 이전 동상은 현재 몽골 대학교에 있다.
영웅은 단명이라던가....그는 30세 때 결핵으로 짧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수흐바토르 장군상 뒤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은 몽골 국회의사당이다.



국회 의사당 정면에는 몽골을 상징하는 세명의 동상이 서 있는데 가운데는 칭기즈 칸, 왼쪽은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두번째 칸인 오고타이 칸,
오른쪽은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중국을 통일하고 베이징에 원(元)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이다.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를 통일한 대제국을 건설하여 몽골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친 칭기즈 칸은 몽골을 상징하는 이름이며 몽골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건물 중앙에는 수흐바토르 장군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2005년에 몽골 국립 묘지로 이전했으며
국회 의사당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완전한 새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몽골의 영웅들이 있는 계단으로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올라가서 자세히 살펴보거나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국회의사당과 수흐바토르 동상 사이에는 이곳이 울란바타르의 중심이며 기점이라는 표식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8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수흐바토르 동상을 중심축으로 하여 광장에는 울란바타르의 중요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국회의사당 바로 서쪽 건물은 몽골 역사 박물관이며 그 뒤편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몽골의 대부분의 궁전이나 사원,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고
5,000~ 10,000(우리와 돈 가치가 비슷하다) 투그룩 정도의 사진 촬영비를 내면 촬영이 가능하다.
몰래 사진 찍다가 들키면 몽골 관리인이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당장 돈을 내라고 요구한다.



광장 입구 서쪽에 있는 건물은 중앙우체국인데 건물 벽에 코카 콜라 광고판이 버티고 서 있는 건물이 우체국이라는데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광장의 동쪽엔 민주당 당사, 몽골 중앙 문화원, 국립 오페라 하우스가 자라잡고 있다.
 


뒤의 건물이 몽골 중앙 문화원이다.



몽골 국립 오페라 하우스는 아주 밝은 핑크색으로 칠해진 것이 이색적으로 보이며 바로 뒤의 건물은 샹그리라 호텔이다.



수흐바토르 광장의 남쪽 피스 에비뉴 건너편에는 반달 모양의 특이한 고층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울란바타르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보이는 유명한 건물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건축한 건물이라는데 울란바타르 친구의 말로는 부실 공사라고 한다. 
외국에 짓는 건룸이라도 좀 더 견고하고 내실있게 지어서 국가 위상을 실추시키기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몽골의 중요한 혁명 기념일이나 국경일에 수흐바토르 광장에서는 국가 차원의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그 때는 광장 가운데 있는 수흐바토르의 동상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로 가득 차며
결혼식을 끝낸 신랑 신부들이 웨딩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



가히 울란바타르의 정치, 경제, 문화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수흐바토르 광장은
몽골인들에게는 울란바타르의 상징이며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몽골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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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아침은 고요하다.

이드 파크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조차도 조용하였다.

한 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있길래 가보았더니

약간 높은 단 위에 한명이 서서 연설을 하고 있고
십여명의 사람들이 서서 그냥 조용히 연설을 듣고 있었다.

누구든지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하이드파크에 와서 연설을 한단다.

하지만 흥분된 느낌은 없었고 연사도 청중도 너무 조용하기만 하였다.

약한 안개에 싸여 아침의 하이드 파크는 분주함조차도 차분해보였다. 



하이드 파크 옆에는 로얄 앨버트 홀( Royal Albert  Hall )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연주회장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공의 지휘하에 1871년에 완공되었다.

마침 '프롬스(PROMS)' 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앨버트홀앞에는 '프롬스'를 알리는깃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프롬스'는 산책을 의미하는 ‘프롬나드(Promenade)’와 ‘콘서트(Concerts)’의 합성어인데

관객들이 공연장에서 음악을 산책한다는 낭만적인 뜻이 담겨 있다.

1895년 시작되었다고 하니 벌써 11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공연이다. 

'프롬스'의 공연은 클래식 공연이라 입장권이 비쌀 것 같지만

티켓값은 10~20 파운드(약1만 7500~3만5000원) 선으로 영국 물가로는 저렴한 편이다.

특히 인기가 높은 공연 무대 바로 앞 공터인 아레나(Arena)석 가격은 5파운드(약 8000원)에 불과하다.

입석이어서 서서 들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나라도 싼 값에 그 좌석을 사서 연주를 들을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나라 클래식 공연의 티켓 값은 너무 비싸지 않은가......

왠만한 이름난 연주자 티켓 값이 뒷 좌석 값도 10만원이 훌쩍 넘는 이 현실......

우리도 이처럼 싼 값에 유명 연주가들의 연주를 들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맘 간절하였다. 

 

 

로얄 앨버트홀 맞은 편 켄싱튼 가든 쪽으론 앨버트 기념비(Albert Memorial)가 서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먼저 죽은 남편 앨버트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고딕 양식의 기념탑이다.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게 기념비 전체가 금으로 도금되어 있는데

가운데 있는 앨버트 공의 금동상 손에는 당시 만국박람회의 카다로그가 들려있고

위의 삼각형 지붕위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금으로 장식된 앨버트 기념비를 보니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사랑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념비의 4면에는 4대륙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각각 세워져 있다.  대영제국의 세력이 4대륙에 뻗쳐져 있었던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앨버트 기념비에서 자리를 옮겨 국회의사당(Houses of Parliament)으로 향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국회의사당은 전세계 모든 의사당 건물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11세기에 왕궁으로 건축되었던 옛 건물은 1834년에 일어난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고딕 복고 양식의 거대한 건축물로 재건되어 템즈 강 왼쪽 언덕에 우뚝 솟아 있다.

건물은 정면 길이만도 300m가 넘고 천개 이상의 방을 갖추고 있으며

그 유명한 빅벤은 높이가 거의 100m로 아직도 손으로 태엽을 감는 전문적인 시간지기가 있다.

그리고 꼭대기 조그만 방에 불이 켜져있으면 '의회중'이란 것을 나타낸단다.

 

 

남의 나라 국회의사당이라 안으로 들어가보진 못하고(하긴 우리 나라 의사당도 함부로 가보지 못하긴 마찬가구나.)

의사당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템즈강 건너편으로 가서 조망하기로 했다.

템즈강변에 서니 의사당의 모습이 한눈에 잘 들어왔고 9시 뉴스에서 런던 특파원이 트렌치 코트를 입고(꼭 트렌치 코트라니까....!)

"지금까지 런던에서 특파원 ***였습니다."하던 자리에 서서 나도 특파원이라도 된 듯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었다.

템즈강변은 화단이 깨끗하게 잘 조성이 되어있었고 이뿐 벤치도 군데군데 놓여있어서 데이트하는 선남선녀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들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앉아 여러 포즈로 사진도 찍어보고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바로 주변에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Abbey)이 있다.웨스트민스터는 "서쪽의 대사원"이라는 뜻으로 시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참회 왕 에드워드(Eward the confessor) 의해 지어졌으며 프랑스에서 온 노르망디공 윌리엄은 잉글랜드 왕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1066년에 여기서 대관식을 치렀다 . 그 후 40명이 넘는 영국의 왕이 차례로 대관식을 거행하는 등 영국 왕실의 역사가 응축된 곳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고딕양식의 이 건물에는 가늘고 긴 스테인트 글라스가 장관인데 사원안에는 찰스디킨스, T.S.엘리어트, 윌리엄 워즈워스 대한 인물의 묘가 가득여 관이 너무 많아 바닥에 세워놓았을 정도라고 한다. 바로 옆의 도서관 건물도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이 풍겨나왔다. 

 


타워브리지 바로 옆에는 런던 타워가 있다. 초창기 왕실 겸 요새에서 후에는 VIP용 감옥으로 전환되었는데'천일의 앤'이 헨리 8세와 불꽃같은 1000일의 사랑을 나누고 참수형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템즈강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국회의사당 건물의 비껴서 맞은 편엔 그 이름도 유명한 런던 아이(London Eye)가 서있다. 
일명 Millennium Wheel 이라고 하는데 거대한 자전거 바퀴를 연상케 하는 놀이기구이다.
높이 135m, 무게는 2100 톤이라고 하는데 올라가면 템즈강 주변 일대를 다 관람할 수 있다.
한번 타는데 30분이 걸린다는데 줄이 한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관람하는데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파리의 에펠탑 처럼 런던도 뭔가 관광과 함께 즐길 거리가 필요했었나보다.하지만
파리의 에펠탑이 주변 경관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것관 달리
런던 아이는 주변의 고풍스런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 웬 바퀴?'이런 느낌을 주었다.
국회의사당이나 런던 브리지 같은 자랑거리가 있는데 왜 이런 물건을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흉물스럽기도 한 물건이었지만런던 사람들은 무지 좋아하고 에펠탑에 비견할 만하다고 자랑한다고 한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은 영국 여왕의 공식 런던 거주지이다.

유명한 왕실 근위병 교대식을 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잘 맞지 않은 관계로 30분 이상 기다려도 볼 수가 없었다.

생각 외로 버킹엄 궁전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고 궁전 앞 마당도 좁은 것이 약간 초라하기까지 하였다.

관광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궁전 담 창살에 붙어서서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나도 창살을 부여잡고 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뭐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버킹엄 궁전 바로 정면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가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었는데 역시 동상은 금 도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빠뜨리지 않아야 할 곳은 뭐니 뭐니 해도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고대 이집트,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의 유물과
서구 선사시대의 유럽 켈트족의 유물, 로마시대의 영국의 유물,
이슬람,중국,일본,한국 등 동서고금이 문화유산을 한데 아우른 세계 제일 규모의 박물관이다.
대영박물관에 대해선 다시 자세히 포스팅하기로 하고 다운타운으로...

 

 

런던 다운타운의 메인 스트리트는 정말 길이 좁았다.2차선 정도 밖에 안 되는 좁은 길에 대형 2층 버스는 얼마나 많이 다니는지......버스가 몇 대 모이면 위 사진과 같이 그야말로 길이 답답하다.우리와 다른 점은 횡단보도가 두길을 직선으로 이어주지 않고 한 쪽 길을 건넌후 가운데 있는 보행자도로에 섰다가 다시 좀 더 가서남은 쪽 길을 건너는 ㄱ자와  ㄴ자를 혼합해놓은 듯한 그런 형태의 횡단보도가 많았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는 영국사람들은 신사여서 질서나 규칙을 잘 지킨다고 들었는데런던 사람들은 횡단 보도가 아닌데에도 서있다가  차만 안 오면 아무데서나 마구 건너는 것이었다.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디나 다 똑 같은 듯...... 

 

  

2층 버스 외에도 관광객들을 위한 2층 투어버스도 많이 다녔다.2층이 오픈되어있어서 걸어다니는 것보다 더 쉽고 편안하게 런던 관광을 할수 있는 버스이다. 다운 타운은 다양한 백화점, 자그마한 기념품 가게 들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어서 여행객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먼저 근처의 캐시미어 전문 판매점에 들러서 보고 있으니 점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난 그냥 둘러보러왔다고 하니 그래도 점원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영국산 캐시미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가게를 나와 백화점 몇 군데를 들려보았는데 상품의 상태는 우리와 별반 다를것이 없었고 우리나라 백화점보다는 훨씬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거리 곳곳에 1인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스코틀랜드 전통 백파이프 연주, 온몸에 흰페인트를 칠하고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어 그 주변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구경하고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의 노점에는 이쁜 기념품이 참 많았는데 2파운드 짜리 열쇠고리 2개, 역시 2파운드 짜리 냉장고용 자석 서너개를 샀다. 비록 이름난 명품이 아니더라도 타워브리지나 버킹검 근위병,2층 버스들이 새겨진 냉장고용 좌석은 아직도 우리 집 냉장고 문에 붙어서 문을 열 때마다 런던에서의 추억을 되살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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