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박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01 베드로 동굴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 38
  2. 2009.04.14 세계 최대 성베드로 성당과 카타콤 25


  
베드로 동굴교회가 있는 수리아(시리아, Syria) 안디옥(안티오크,Antakya)으로 가기 위해서는

터키에서 4번째로 큰 도시 아다나(Adana)에서

차로 번잡한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다시 남쪽 해안 도로를 거쳐


이스켄데룸(Iskenderun)을 지나 하타이(Hatay)지역으로 가야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승리를 기념하려고 마을을 건설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켄데룸이다.

고대 도시 이스켄데룸은 지금은 아쉽게도 제철소에서 뿜어내는 스모그가 가득한 현대 도시가 되었다. 



구비구비 먼 길을 걸어서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던 곳을 이제는 편하게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도로를 따라 남쪽 시리아 관문으로 알려진 산고개를 올라가면 이곳에 성경에 등장하는 안디옥(안티오크)이 자리잡고 있다.

안디옥(안티오크,Antakya)은 현재 하타이(Hatay)지역의 도시로서 현재 인구는 10만 정도 된다.

지금은 비록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BC 2세기에는 급격히 발전하여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은 로마 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그 당시 50만 인구와 거주하고 있어서 '동방의 여왕'으로 불리워서 로마의 영광에 비견될 만한 도시였다. 



스데반의 순교 후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곳으로 피신하여 큰 교회를 이루었는데

안디옥에서 믿는 자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후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곳은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다가 동역한 이후 바울의 1,2,3차 전도 여행의 출발지가 되었고

교회사적으론 AD 252~300년 사이에 10 여 차례 기독교 공의회가 열리는 등 아시아 교회의 대주교가 거하는 곳이 되었다.



안디옥에서도 베드로 동굴 교회(셴 피에르 킬리세시)는 쿠르툴루쉬 거리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산의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자리잡고 있어서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안디옥의 베드로 동굴 교회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8~9살 쯤 되어보이는 애들이 너댓명이 몰려온다.

낡은 옷에 새카맣게 그을려 눈만 반들반들한 애들이 몰려와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너무 이쁘게 핀 들꽃 묶음을 쥐어주는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애들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들꽃을 받은 것이 고맙기도 해서 

애들을 안고 고맙다고 하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애들이 손을 내밀며 "머니,머니"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순간 약간 당황했지만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주려고 하니 안내를 해준 후세인 베이가 와서 절대 돈을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애들에게 돈을 주면 나쁜 습관이 돼서 자꾸 구걸을 하려고 하니 안쓰러워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후세인 베이의 말이 타당하기도 하여 돈을 주려던 것을 다시 거두고 동굴교회 입구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는데

바라보고 있는 애들의 시선이 자꾸만 눈에 걸리며 미안스럽기만 했다.





안디옥 시가가 내려다 보이는 가파른 산허리에 자리한 베드로 동굴 교회는 기독교 박해 시대에 은신한 기독교인들이 모임을 갖고

여러 갈래 비밀 통로를 통해 동굴 바위산으로 피하는 도피처로 이용했다.

지금의 교회 건물은 12~13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의 일부이며 동굴 교회 내부에는 일부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동굴 안 제단 벽 위에는 천국의 열쇠와 두루마리 성서를 들고 있는 사도 베드로 상이 있으며

제단의 오른쪽에는 치료 효능이 있다고 말하는 약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바로 제단의 왼쪽에는 기독교인들의 도피처로 사용했던 굴이 있는데 

굴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위기의 때에 산으로 도피하는 통로가 되었다.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베드로 동굴 교회 앞에는 행인도 다니지 않고 기념품 가게도 없이

내리쬐이는 강렬한 햇빛 아래 모든 것이 그저 멈춰 버린 것 같이 조용하기만 하다.

내려가는 길 어귀의 뙤약볕 아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앉아서 스스로 돌을 깎아 만든 조그마한 기념품을 팔고 있을 뿐이다.






난 거기서 2달러를 주고 목에 달 수 있도록 만든 길이 4cm정도의 물고기 모양 펜던트를 하나 샀다.

왼쪽의 돌은 베드로 동굴 교회에서 굴러다니던 작은 돌멩이고 오른쪽이 물고기 모양의 돌 팬던트이다.  


베드로 동굴 교회에서 나와 다소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니 애들이 다시 들꽃 묶음을 들고 따라오며  "머니~~머니~~~"하면서 외쳤다.

꽃 하나 사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그 아이들에게 손을 오랫동안 흔들어 주었다.

아이들도 안 보일 때까지 차 뒤를 따라오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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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성당을 둘러보기 앞서서 먼저 들린 곳은 카타콤이다.

카타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에 숨어든 지하무덤이다.

그리스어 '카타콤베'에서 왔으며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나폴리,몰타,아프리카,소아시아 등 여러 지방에서 카타콤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이 분포되어있다고 한다. 





카타콤의 내부는 거의 미로와도 같은데 이 곳의 카타콤의 길이만도 거의 500km 의 길이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로마 병사들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이곳에 길을 여러 갈래로 내고

그 길에 또 각각 여러 갈래의 길을 내어
길 곳곳에 표시해둔 날짜를 통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한

그들의 힘들었던 생활이
물고기 모양의 상징물과 여러가지 문양들로 새겨져 고스란히 벽에 남아있다.



카타콤의 입구는 다른 관광지와 다르게 앞이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까지 와서 카타콤을 돌아 보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가 보다.

카타콤의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

로마의 박해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숨어든 이곳에는 그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냥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볼 뿐이었다. 

 

카타콤을 돌아보고 발길을 성 베드로 성당으로 돌렸다.

성 베드로 성당은 이탈리아어로는 San Pietro Basilica 라고 하는데 보통 바티칸 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당의 기원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에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성당 건립에 쓰일 엄청난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발행하였는데

마틴 루터가 면죄부 발행에 반대하여 그 폐단을 지적하며 95개조 항의 문을 내붙이고 공개토론을 제의한 것이

종교 개혁의 실마리가 되었다.

  

사진은 광장의 반대편에서 찍은 것인데 성당과 더불어 광장도 엄청나게 크다.

광장은 1656~1967년 사이에 걸쳐 베르니니의 설계로 지어졌다고 한다.

광장 가운데의 첨탑은 높이 25.5m의 이집트 오벨리스크이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인데 성당 광장에 왜 세워놓았을까......

이방신의 기념비조차도 성당 앞에 전리품으로 놓아두고 싶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옆의 건물은 교황이 집무하는 바티칸 시국이다.

오른 쪽에서 두번 째 창이 교황의 방이라고 하는데 가끔 창을 열고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한단다.

 

성당을 관람하기 위해 성당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긴 줄은 줄어들 줄 모르고

성당 문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밀리고 밀고 더 이상 한발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되었는데 입구에서 검색이 강화되어 그렇단다.

우선 여자들은 민소매 옷차림 입장이 거절되어 등을 훤히 드러낸 옷을 입은 서양여자들이 가차없이 쫒겨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백팩에서 가디건을 하나 꺼내어 위에다 걸쳤는데 내 차례가 되자 뒤에 맨 백팩을 벗어 보라는 것이다.

경비원들은 내 가방을 뺏어서 이리저리 뒤지더니 다시 성의없이 돌려주었다.

내가 테러범이라도 된 것같이 보이나.... 싶어 언짢은 마음으로 성당 문을 들어섰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 오른 편에 '피에타'가 있었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23세 때 완성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정신병자가 휘두른 망치에 손상을 입은 후에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다.  



성당 문 앞의 천정 장식이다.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된 성당의 돔은
이후

영국의 세인트폴 성당 돔, 파리의 앵발리드,워싱턴의 국회 의사당 돔 등
많은 건축물의 본보기가 된다.
 



성베드로 성당은 가로 150m, 세로 218m, 높이 50m의
세계에서 최고 큰 성당으로 동시에 5만명이 미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부속 예배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지붕 천정과 등이 아름다워 찍어보았다.
 



성당의 왼쪽에는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문을 지키고 서있는 호위병들의 복장이 마치 피에로와 같이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그들의 임무는 바티칸 시국을 경호하는 것일까.....아님 관광객을 위한 포토 모델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희한한 복장은 보는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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