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타르 동남쪽에 위치한 만쉬르 사원으로 가는 길은 멀고 멀기만 하다. 

쿠션이 좋지 않은 고물 버스는 초원을 달리는 내내 터덜거리며 달려
여행에 지친 허리와 엉덩이에 더욱 심한 통증을 가져다준다.



제한 속도가 80km라고 쓰여져 있는 도로지만 도로는 누더기가 되도록 여기저기 기워져 있어
버스가 60km정도의 속력을 내어도 마치 말을 탄 것처럼 털썩거린다.



상태가 좋지 못한 도로를 2시간 정도 달려가니 드디어 만쉬르 사원의 입구가 보인다.
몽골 사원의 지붕 모양을 본뜬 관광 안내소 겸 매표소는 험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다.



만쉬르 사원 입구로 들어서니 날아갈 듯한 지붕 처마를 하고 있는 정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하얀 게르들의 모습이 참 평화롭다. 그런데 앞쪽의 전나무들은 왜 말라죽어버렸을까.....
죽었으면 베어내기라고 하면 좋을텐데 그냥 둔 모습이 모기 흉하다.
몽골의 산들은 참 희한한데 산의 어떤 부분에는 전혀 나무가 없고 어떤 부분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다. 무슨 이유일까?
나무의 씨앗이 날아가서 땅에 뿌리를 내리더라도 옆에 나무가 없으면
혼자서 큰 나무로 성장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사람이나 나무나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인가 보다.



만쉬르 사원은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서구의 학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몽골의 중심 불교인 라마 불교가 융성했을 때는 이곳에 200여개의 라마 불교 사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남아 있는 엄청난 크기의 솥단지를 보면 전성기 때 이곳에 얼마나 많은 승려들이 상주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몽골이 공산주의화 되면서 라마 불교는 핍박을 받게 되고 이곳에 있던 대부분의 불교 사원은 훼철되었는데
만쉬르 사원 이곳저곳에는 옛날 사원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을 뱔견하게 된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는 사원과 현재 운영 중인 사원 4~5동의 건물과 20여개의 게르만이 남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이곳에 있던 불교 사원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의 몽골 박물관처럼 이곳도 내부를 촬영하는데는 입장료의 수배가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박물관 내의 소장품은 동물의 박제나 풍속화들이 대부분이라 돈을 지불하고 촬영하는 것은 내키지 않을 정도이다.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소장품은 17살 소녀의 정강이뼈로 만들어진 피리인데 
놀랍게도 이 피리는 소신공양처엄 자신의 몸을 바친 소녀의 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촬영료를 내지 않으면 촬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다.



몽골에서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어버(어워)'를 여기서도 어김없이 만날 수 있다. 어버는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같은 곳인데 
몽골에서 어버는 마을의 수호신이요, 초원에서는 이정표이며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신성한 곳이다.



사원 터에는 일종의 선돌과 같은 '모미'도 여기저기 서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모미에 둘러쳐진 천에는 어김없이 몽골의 화페인 투그릭이 여러장 꽂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쉬르 사원에는 나무껍질을 이용한 차탄족(순록 유목민이란 뜻)의 전통 천막 오르츠도 전시되어 있다.  
천막 가운데 원시적인 형태의 난로가 있는 오르츠는 원래는 순록의 가죽으로 천막의 바깥을 덮는다고 하는데
몽골인의 77.5%를 차지하는 할흐족의 천막인 게르(Ger)와는 그 모습이 너무나 다르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천막과 모습이 거의 유사하게 생겼다.



만쉬르 사원은 몽골인들에게는 사원으로보다 휴양지로의 기능이 우선하는 곳이다.
우거진 침엽수림 가운데 베풀어진 커다란 게르들은 우리나라의 호텔이나 콘도처럼 방문객들에게 대여되는 시설이다.
 울란바타르 사람들은 소풍을 갈 때나 여름 휴가를 지내기 위해서 자연 경관이 좋은 이곳을 즐겨찾는다고 한다.



여러겹으로 둘러쳐진 게르는 여름에는 이렇게 덮개의 아랫부분을 들어올려 통풍을 시키는데 안에 들어가보면 의외로 무척 시원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아무리 여름이라도 들어올린 덮개를 내려서 보온을 해야 잘 때 추위에 떨지 않게 된다.



아름드리 전나무 아래 게르 앞에 불뚝한 배를 드러냔 아저씨들이 뭔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것이 보이길래 다가가 보았다.

돌 위에 놓고 뭔가를 해체하고 있는 모습이 궁금하여 가까이 가긴 했지만
혹시나 실례가 될까봐 머뭇거리고 있으니
아저씨들이 손을 흔들어 부르며 가까이 와서 보라고 한다.
카메라를 들어보이며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듯으로 눈짓을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선뜻 승락해준다.



커다란 돌 위에는 염소 한 마리가 불에 반쯤 그을린 채로 누워있다. 에고 불쌍해라.....!
튜브 아이막의 초원에서는 산 양을 통빼로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온몸을 각을 뜨는 과정을 보고 하나 하나 사진 찍기도 했지만
이렇게 불에 그을린 채로 누워 있는 염소를 보니 저렇게 불쌍한 동물의 고기를 먹는다는데 마치 죄악처럼 느껴진다.



만쉬르 사원은 몽골에서도 고원지대라 아름드리 침엽수림이 우거지고 공기가 너무 맑을 뿐 아니라
초원 곳곳에는 아름다운 야생화가 어우러진 천국과도 같은 곳인데

발아래 여기저기에는 높은 산 공기 좋은 곳에서만 자란다는 에델바이스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아침 이슬에 젖어......하며 노래로만 만나던 에델바이스인데
이렇게 몽골의 아름다운 만쉬르 사원의 초원에서 만나게 되니 너무나 반가웠다.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한 에델바이스 한송이 꺾어 책갈피에 살며시 넣어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다음에 올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고이 제자리에 남겨 두고 아쉬운 마음으로 만쉬르 사원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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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몽골.
가도가도 끝없는 지평선과 초원 뿐인 몽골은 신조차 버린듯이 척박한 땅이다.

그러나 몽골의 자연이 이렇듯 끝없는 초원만 계속되는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몽골의 자연은 크게 5개 권역으로 나뉘어지는데 동부의 평원과 서부의 산맥, 북부의 숲과 호수,
남부의 사막, 그리고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한 톱 아이막(중앙 道)이 그것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바타르 근처에는 놀랍게도 이렇게  큰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의 이름은 '톨'강이다.




수량도 풍성한 톨강 유역에는 몽골에서 보기 힘드는 싱그러운 숲들이 펼쳐져 지나치는 이들의 눈을 시원하게 한다. 




올란바타르에서 멀지 않는 곳에는 울창한 수목 사이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천국과 같은 곳이 있는데 
바로 울란바타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항헨티 산기슭에 있는 테를지
(Terelji) 국립공원이다.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푸른 초원, 울창한 전나무가 우거진 산과 그 뒤쪽으로 얼굴을 내민 바위산,
우거진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톨강,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하얀 게르가 어울려 한폭의 풍경화로 다가오는 테를지 국립공원. 

거북바위를 지나 테를지 국립공원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면 구름을 이고 있는 웅장한 산 아래로 울란바타르-2 호텔이 나타난다.
이 호텔에서 묵어보지는 못하고 점심식사만 했는데 경관이 정말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멋진 호텔이다.

호텔 앞에도 말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는데 드넓게 펼쳐진 테를지 국립공원 안의 초원은 골프장으로 이어진다. 




말과 너무나 친숙한 몽골인지라 가는 곳 마다 이렇게 말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울란바타르-2 호텔 바로 옆에 더 멋들어진 건물이 있기에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북한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란다.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북한 호텔이라고 하니 뭔가 두려운 느낌이 들어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울란바타르-2 호텔 뒷편으로 돌아가서 보니 호텔 담 너머로 북한 호텔이 지척이다.
건물은 지은지가 얼마 되지 않는지 상당히 산뜻해 보이고 고급스러워보인다.




호텔 뒷편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숲이 있다고 하기에 산책길에 나섰다.
호텔 뒷편길로 들어서보니 발 앞에 바로 맑은 강물이 펼쳐진다. 바로 '멀리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의 '톨'강이다.




산책길에 나서니 주춤하던 비가 또 약하게 내리며 강물 위로 점점이 뿌려진다.




햇살로 눈부시는 톨강을 볼 수는 없지만 대신 비를 머금어 너무나 싱그러운 수풀이 눈 앞으로 펼쳐지니 도리어 이색적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튼튼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걸어서 건너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은 강물에는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과 멀리 산의 모습까지 거울처럼 비쳐진다.



다리 위에서 강물을 보니 완벽하게 아름다운 반영이 펼져진다. 흐르는 강물인데 어찌 이리도 고요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파아란 하늘이 담긴 반영은 아니지만 그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다리 위에 서 있는데 바로 앞 강물 위를 늑대같이 생긴 시커먼 개가 혼자 강물을 건너간다.

아니 늑대같이 생긴 개가 아니라 거의 늑대다. 인적도 없는 강물을 건너가는 넌 대체 누구니.....?




다리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서니 숲이 깊어갈수록 경치는 점입가경이다.




수령이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숲 전체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제 오늘 갑자기 내린 많은 비 때문인지 떠내려온 가지들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고......




자잘한 나뭇가지들은 강물에 밀려올라와 아름드리 나무 아래 그 몸을 맡기었다.

 



강물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큰 홍수에 뽑혀 넘어졌는지도 모를 커다란 나무들이 여기저기 강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뿌리채 뽑힌 거목들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갑자기 내린 큰 비가 이곳 톨강을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숲 속 여기저기를 얕게 흐르던 강물은 어느새 합쳐져서 큰 강을 이루어 흘러간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몽골에 와서 나무들이 뿌리채 뽑힐 만큼 큰 홍수가 지나간 흔적을 보게 되다니!

예상치 않게 비가 와서 파란 하늘 아래 톨강이 흐르는 테를지를 볼 수 없다고 불평하던 일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태초의 신비로운 숲을 연상시키는 테를지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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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없는 초원과 황무지만 계속될 것 같은 몽골. 이런 몽골에도 기암괴석이 펼쳐지고 울창한 수목 사이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천국과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울란바타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항헨티 산기슭에 있는 테를지(Terelji) 국립공원. 1993년, 몽골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테를지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는 몽골의 자랑거리이다. 일전에 몽골에 다녀온 분들이 찍은 사진이나 여행 가이드북에서 테를지를 처음 보았을 때 몽골스럽지 않은 의외의 풍경에  "와....몽골에도 이런 곳이 있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눈이 부시도록 파아란 하늘 아래 우거진 침엽수림과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유럽의 어느 나라인 것 처럼 착각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테를지로 향하는 날은 날씨 운이 없었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몽골이지만 테를지로 향하는 날은 아침부터 궂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이 귀한 몽골 사람에게야 반갑기 그지없는 비이지만 어렵게 찾아간 여행자에게 비는 여행을 힘들게 하는 자연현상이므로 시작부터 힘이 빠지게 하고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테를지를 찍어봐야지.....하는 욕심은 살포시 접어두어야 했다.



누가 이곳을 몽골이라 했던가..... 끝없이 펼쳐지는 전나무 숲을 한참이나 달리던 버스가 숲길에서 느닷없이 멈춘다.
저쪽을 보라는 기사의 손짓을 따라서 올려다보니 저 멀리 산 정상의 바위 모습이 합장하는 스님의 모습이다.
차안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 바위를 향하여 절을 하고 사진찍기를 마치니 버스는 다시 빗 속을 덜컹덜컹 달리기 시작한다.


테를지를 향해 한참을 가다보니 길 가에 차량들이 여기저기 정차해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한쪽에는 소방차도 보인다. 
어...무슨 일이지? 교통사고가 난건가?


알고보니 울란바타르 방송(UBS)에서 드라마를 찍으러 온 것이라고 한다. 오....이곳까지 와서 드라마 찍는 현장을 만나다니....

로 지나가면서 언뜻 보니 여배우가 아주 예쁘다. 좀 더 자세히 보게 고개 좀 들어보세요.....


한참을 달려 테를지 국립공원 매표소 앞에 이르니 앞에 이르니 잠시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찌뿌드드......시야는 뿌옇고 어둡기만 하다.
매표소 좌우에는 캠프촌들이 자리잡고 있고 마주 보이는 산세는 국립공원답게 웅장하게 보인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이렇게 말을 대여해주고 있다.
말을 타고 테를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이 아무도 없다.
몽골의 말들은 아라비아말들에 비해서 체구가 그리 크지 않다. 우리나라 조랑말보다 약간 더 큰 정도.....


테를지의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비를 머금은 흙들은 붉은 황토빛을 머금고 있는데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거친 길을 한참이나 달려온 버스. 드디어 고장이 나 버렸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 고장난 차를 수리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중심이 되는 곳에 이르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가 눈 앞에 펼쳐진다.


몽골 관련 책자나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거대한 바위, 바로 '거북바위'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쳐들고 있는 머리, 등을 덮은 등딱지, 엎드린 형상이 영락없는 거북의 형상이다.


거북바위만 멋진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도 빼어나기 이를데 없다. 사진의 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하얀 건물이 하나 보이는 데 이곳은 이 주변에 위치한 유일한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은 문이 전혀 없으므로 볼일을 보면서 주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세계최고 경관(?)의 화장실이다.


웅장한 기암괴석과 쭉쭉 뻗은 침엽수림을 보면 마치 알프스 중턱의 어느 마을같다. 하얀 게르만 없다면......


주차장(?)에 가까운 곳에도 올망졸망하고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어 심심치 않다.


맑은 날씨였다면 파아란 하늘 아래 이런 멋진 풍경들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정말 아쉽다.
 


그래도 간만에 내린 비로 인해 주변 산의 나무들이 푸르름으로 가득해서 너무나 보기가 좋다.


중생대 화강암지대에 융기된 암산이 오랜 세월 바람과 비에 침식되어 형성된 높은 암벽과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 나지막한 계곡과 푸른 초원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테를지의 지명은 이곳에 많이 자라고 있는 식물이름 '테를지'(우리말로 '각시 석남')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웅장한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테를지는 몽골인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몽골 최고의 휴양지이다.
거북바위를 지나 테를지국립공원 안으로 쑥 들아가서 만난 아름다운 톨강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울창한 삼림은 다음편에서 보여드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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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호령하던 몽골 왕의 일상은 어떠 했을까?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거처하던 복드 칸 궁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마지막 복드 칸이 몽골사회주의 이전까지 왕비와 함께 20년간 머물렀던 복드 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왕의 거처인 겨울궁전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과 왕비의 의복이나 침대 같은 화려한 수공예품이나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궁전은 궁전 안 7채의 라마 사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하얀 서양식 건물로 되어 있다.
이 겨울궁전은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것으로 
왕과 왕비의 유품과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입장료의 4배나 되는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실내의 전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조명이 어두운데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가 힘든 곳이었다.


 



 게르에서 생활하던 벅드 칸이지만 그의 유품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복드 칸과 왕비 뿐 아니라 대비의 휴식용 침대도 흑단과 비단으로 장식한 화려한 침대이다.




복드 칸의 황금색 델(Deel, 몽골 전통 의상을 델이라고 한다)에는 황룡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고




복드 칸 의복의 바깥 부분에는 양단에 용을 산호와 진주로 정교하게 상감해 넣었다.




왕비의 델과 모자도 정말 아름답다. 전체가 너무나 정교한 수로 뒤덮여있다. 하나를 수놓는데도 몇년이 걸리지 않을까?





은과 진주로 장식한  대비의 델(Deel)과 신발(고탈,Gutul).
몽골의 전통 신발인 고탈은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게 특징이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발의 좌우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나?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머리 장식.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인데 몽골사람들의 머리에 쓴 모자나 장식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다.





복드 칸이 종교 의식 때 입던 의복과 의식에 쓰이는 도구들.
몽골의 왕인 복드 칸은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이기 때문에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다.




복드 칸과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옥좌. 가운데 태극 문양은 몽골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복드 칸의 보좌 앞에 불전함이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폐가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왕이자 라마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복드 칸을 생불(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하는 라마 불교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왕실에서 쓰이던 삼발이 화덕인데 독립 국가 몽골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한 방에는 이렇게 화려한 복드 칸의 침대가 놓여 있는데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공예품이다.




바로 옆에 놓여진 왕비의 침대 역시 흑단으로 정교하게 아로새겼다.




그 외에 이렇게 중국 풍의 자기들도 눈에 뜨인다.




연회에 쓰이던 대형 접시.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그려져 있는 접시이다.




오른쪽은 화병, 왼쪽은 아이락(aikag, (馬乳酒))을 마실 때 쓰는 사발이다.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서 만드는 아이락은 발효되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며
기포가 솟아오르며 술이 되는데 맛은 우리나라 막걸리 같이 약간 비릿하고 시금털털한 맛이다.





6~7도의 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락을 몽골 사람들은 술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여서
이렇게 세숫대야만한 잔에 담아 두 손으로 들고 마신다.





복드 칸의 소장품 중에슨 이렇게 뮤직 박스도 있다. 뮤직 박스 안에는 유럽 클래식 음악 8~10곡이 내장되어 있다고.......




복드 칸이 선물받은 코끼리.




코끼리의 의상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의식 때 쓰이던 코끼리 의복도 궁전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들었단다.





복드 칸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안장과 게르 모형.
게르 모형이 얼마나 귀여운지.....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것 같다.





벅드 칸이 5세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배라고 한다. 장난감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하다.





전시품 중에는 이렇게 진귀한 동물의 박제가 많다. 모두가 복드 칸의 즉위식 때 이웃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양산과 전용 마차도 한쪽에 다소곳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화려한 게르가 눈에 뜨인다. 게르 앞에 진열된 복드 칸의 양산은 전부 공작 깃털로 만들어졌다고.....




김수미가 보았으면 하악대며 좋아했을 듯한 너무 멋진 표범 무늬 게르.
가까이 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게르를 덮은 가죽은 진짜 눈표범(Leopard) 150 마리의 가죽으로 이루어졌단다!
갑자기 게르의 덮개로 일생을 마친 눈표범들이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자연 보호 관념이 없던 옛날의 일이니 용서해야겠다.

복드 칸이 야외로 나갈 때 쓰는 이 게르는 그가 25번째 생일에 선물받은 게르라고 한다.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몽골 세밀화이다.

이슬람 세밀화에 많은 영향을 준 몽골 세밀화는 그 표현법과 정교하기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보고 있는 듯한 몽골 세밀화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있노라며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위의 그림은 '아이락 축제'를 그린 것으로 B. Sharav(1869~1939)의 작품인데

아이락 축제가 벌어지는 주변의 모습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해서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몽골의 성 풍속도도 짐작할 수 있는데
충격적이라고 표현할만한 몽골의 성풍속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상세한 세밀화 그림과 함께 소개해 두었으니 아래 링크를 눌러보시기 바라며......

관련 포스트 : 충격적인 성묘사의 몽골 세밀화





B. Sharav가 그린 '겨울궁전' 세밀화를 보면 과거 복드 칸 궁전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맨 앞의 푸른 지붕과 하얀 벽의 건물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궁전 앞에는 엄청나게 큰 무쇠솥도 전시되어 있어 당시 궁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 인한 왕가의 몰락으로 이제 왕과 왕비가 궁전을 거니는 모습은 비록 볼 수 없고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 칸이 거닐던 정원에는 마른 풀만 무성히 자라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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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를 믿는 몽골에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가 있다.
몽골의 복드 칸이기도 했던 자나바자르는 
세속의 삶은 물론 영적인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장했는데

몽골에는 자나바자르부터 마지막 8대까지 8명의 자나바자르가 있었다.

마지막 자나바자르이자 8대 복드 칸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몽골 사회주의 직전까지 20년간 왕비와 함께 거주했던 곳이 바로 복드 칸 궁전이다.
정교합일을 추구하는 몽골 복드 칸들은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기 때문에
복드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1채의 왕의 거처로 이루어져 있다.





복드 칸 궁전 앞에 이르러 보니 궁전의 정문은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세개의 열린 문 뒤로 화려한 모습의 문은 평화의 문이라고 하는데
이 문들은 8대 복드 칸의 대관식을 기념하여 1912~ 1919년 사이에 지어진 문으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졌다.

단청도 산뜻하고 진한 색감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내부의 소박하고 퇴락한 궁전 건물과 비교하면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근래에 와서 단청을 새롭게 입힌 것 같이 보인다.





평화의 문이라 불리우는 세개의 문에 그려진 그림은 복드 칸 시절 몽골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고
제일 가운데 문은 왕과 왕비가 출입하던 문이지만 지금은 세 문 다 사용하지 않아 출입할 수 없다.





안쪽에서 자세히 살펴보아도 궁전의 문은 정말 화려하고 단청도 정교하기 그지없다.






관광객을 비롯해서 모든 방문객은 옆에 위치한 쪽문을 이용해 출입해야 한다.
복드 칸 궁전의 입장료는 2,500 투그릭(한화 2,500원 정도)인데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내부 촬영은 물론 외부 촬영을 하는데도 반드시 사진 촬영료를 내어야 하는데
카메라 한대 당 사진 촬영료는 10,000투그릭, 비디오 촬영은 15,000투그릭을 지불해야 한다.
궁전 입장료의 4배에 달하는 사진 촬영료를 내어야 하니 배 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넓은 곳을 관람하며 몰래 카메라를 찍을 수도 없는 일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했다.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료 뿐 아니라 궁전 안내 브로슈어조차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필자는 몽골어와 영어로 된 보잘 것 없는 브로슈어를 5달러나 주고 구입해야했다.





복드 칸 궁전은 궁전이라 하기는 규모가 다소 작아 보인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궁전은 왕의 거처와 7채의 라마 사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의 유품이나 진귀한 수공예품, 각종 왕실 용품을 볼 수 있도록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7채의 사원 건물 중 남북으로 자리잡은 사원 건물은 2층, 혹은 3층으로 되어 있고

동서로 자리잡은 부속 건물들은 1층으로 되어 있는게 특징인데 안에는 건물 안에는 불상과 탱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라마 사원 오른쪽에 위치한 하얀 서양식 건물은 복드 칸이 왕비와 함께 살던 겨울궁전이다.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이 서양식 목조 건물에는 복드 칸과 왕비의 유품을 비롯하여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겨울궁전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상세히 소개해드릴까 한다.





제일 안쪽의 3층 건물은 사원의 주가 되는 곳이라(메인 템플) 지붕이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궁전 문을 지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은 Maharaja(위대한 왕) 사원이다.  





사원은 1893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퇴락한 단청으로 인하여 연륜이 더 오래 된 건물같이 보인다.





첫번째 건물 문을 통과해서 나가니 자그마한 마당과 함께 Naidan 사원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아랫층 기와 지붕에는 전혀 채색을이 되어 있지 않고 2층 누각 지붕에만 진한 초록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다.
무슨 뜻이 있어서 누각 지붕에만 채색을 한건지 아니면 현재 복원하는 과정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서로 배치된 부속 건물 역시 지붕은 전혀 채색이 되어 있지 않고 단청도 빛 바래인 채 그대로인데





어떤 부속 건물은 촌스러울 만큼 진한 색으로 단청이 되어 있어서 건물들 간에 통일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아마도 단계적으로 복원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생각해 보지만 신빙성은 없다.




동서로 배치된 부속 사원은 각가 탱화의 사원, 아플리케 사원, 장서의 사원, 만신전 등인데
건물의 내부는 의외로 많이 화려하고 탱화와 불상을 비롯하여 티베트 불교의 상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원과 사원 사이의 안 마당에는 여기저기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마치 관리를 안 하고 버려진 폐허같은 느낌도 든다.
왜 잔디를 깎지 않지?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몽골에 있는 동안 잔디를 깎아둔 건물은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몽골에서 목초는 짐승의 귀한 먹이이니 잔디를 깎는다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제일 안쪽 건물은 궁전 내부에서 가장 화려하다. 
주 사원인지라 건물은 3층으로 지어 위압감을 더 해주고 건물 지붕도 황금색으로 단청이 되어 있다.





지붕만 황금색으로 채색되었나 했더니 가까이 가서 보니 세밀하게 조각한 문양 마다 황금이 입혀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는 단청과 퇴락한 황금빛은 서로 어우러져 묘하고도 신비한 느낌마져 가져다 준다.
"왕이 거처했다는 사원이라더니.....뭐 이리 초라하나......단청도 색이 다 바래고 관리를 전혀 안 하고 있구만.....쯧쯔쯔......."
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산뜻하게 채색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는 궁전 정문 보다는 
퇴락하고 희미해진 단청이 더욱 기품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내부 역시 외부와 마찬가지로 붉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잘 이루고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다.





방과 방을 구별하는 문도 화려하기 그지없고 천정도 화려한 무늬로 꾸며져 있다.





한쪽에 놓여진 화려한 흑단의 가구에는 몽골 사람들이 생각하는 극락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궁전이라지만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내부의 전시품들은 라마 불교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있다.  


 



궁전을 다 돌아보고 시간이 허락하면 출입문 옆 조그만 기념품 가게에 들려봐도 되겠지만
특별한 기념품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의 고색창연한 라마 사원의 아름다움을 손에서 놓치 못하고 한참을 방황하다
왕과 왕비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 겨울궁전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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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나라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는 흔히 '라마교'라고 부르는 티벳 불교이다.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이거나 불교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몽골이다.

몽골인들이 의식적으로 불교를 믿게 된 것은 13세기 부터인데
16세기에 이르러 티베트 불교는 몽골 땅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21년에 몽골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각가지 방법으로 종교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는데

1937~1939년 사이에는 거의 모든 불교 사원이 폐쇄되거나 박물관으로 바뀌는 등 수난을 겪었다.
이 기간 동안에 20,300명에 이르던 몽골의 승려들은 모두 구금, 또는 처형되었고
20세기 초 750개에 이르던 불교 사원은 대부분 다 철폐되어야 했다.

1989년 이후 찾아온 민주화로 인해 몽돌에는 전통 문화 복원 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고
사회주의 시절에 탄압 받았던 전통 종교와 신앙도 제 자리를 찾게 되는데
티베트 불교는 몽골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몽골 사람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그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이후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망가졌던 사원은 다시 복원이 되고 환속했던 승려들은 사원으로 돌아왔으며
종교 박해 속에 신앙을 버렸던 신자들은 다시 사원을 찾아 마니차를 돌리고 오체투지를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몽골 불교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간단사(Gandan)'는 '몽골의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사원이다.





입구에는 이렇게 대형 마니차가 있어 불교 신자들은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마니차를 한번씩 돌리고 경내로 들어간다.



몽골, 만주, 티베트 건축 양식이 다 혼합된 간단사원 대법당은 의외로 소박하고 아담하다.
지붕의 색깔이 황금색인 것도 상당히 눈에 뜨이는데 지붕 위에도 대형 마니차가 코너 마다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대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예불을 하는 순례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법당과 부속건물을 한바퀴 돌면서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유리 진열장 속에 들어 있는 불상 앞에도 오체투지를 위한 판이 여러개 마련되어 있었지만
날이 더워서 그런지 사원 구경을 다하고 돌아나올 때까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쁜 델을 잘 차려입고 마니차를 돌리는 할머니를 따라 대법당 순례길(코라, Kora)을 뒤따라가 보았다.





대법당을 빙 둘러가며 마니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순례자들은 모두가 마니차를 한번씩 돌리며 지나간다. 뱅글뱅글.......





마니차 돌리기는 오체투지와 함께 티베트인의 대표적인 수행 중의 하나이다.



불교경전을 넣어 돌릴 수 있게 만든 통인 마니차는 한번 돌릴 때 마다 안에 들어 있는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경전을 읽는 대신에 그저 슥~ 한번 돌리기만 하면 읽은걸로 쳐 준다니......
공부하는 아이들도 책 안에 있는 내용을 외우는 대신에 한번 돌리기만 하면
머리 속에 다 들어오거나 읽은걸로 쳐준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대법당의 중앙 부분에 이르니 이렇게 자그마한 표식이 있고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은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하다.
짐작컨대 아마도 이 부분이 불상이 있는 곳인 것 같다.




 마니차 골목의 꺾어지는 부분에 오색 타르쵸를 두른 신성한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에 머리를 대고 잠시 뭐라고 기도하더니




기둥에다 몽골의 지폐인 투그릭을 꽂아 놓는다. 꽂힌 돈을 슬그머니 빼가는 사람은 없을테지?




'위대하고 성스러운'이란 뜻을 지닌 간단(Gandan)사원의 의 유래는 울란바타르와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원래 울란바타르의 이름은 ‘이흐 후레’라고 했는데 이것은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
간단사의 담장을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살기 시작하자 명명된 이름이다.




간단사는 17세기 제1대 복드 칸 잔바자르(G. Zanbazar)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시기는 분명치 않다. 
이후 100여 년에 걸쳐 간단사는 아홉 개의 사원과 도서관 그리고 5,000 승려의 숙소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는데 .
1937~1939
년에 사회주의자들이 몽골 종교계를 억압하게 되자 대부분의 사원은 철폐되고 승려들은 투옥되거나 속화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간단사는 종교 활동을 허가 받은 최고령 150명의 승려들로 사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는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몽골도 독립하게 되자 사원들은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고 
간단사도 불교부흥을 위래 노력한 결과 예전의 위상을 다시 찾게 되었다.

오늘날 승려들의 삼분의 일은 사회주의 전 세대이며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25세 이하의 젊은 승려들이라고 한다.
현재 울란바타르에 있는 라마승의 총인원이 400명 정도라고 하는데 간단사원에만 300명 정도의 승려가 있다고 하니
간단사원은 울란바타르 신앙의 구심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당을 한 바퀴 돈 사람들은 간단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관음대불전으로 향한다.





1996년에 복원되었다는 관음대불전은 티베트 사원보다는 훨씬 소박하고 간결해 보인다.
간단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관음대불전을 찾는 이유는 법당 안에 엄청나게 큰 불상인 개안관음상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도 역시 대형 마니차를 돌리고 들어가는데
법당 내부도 중앙에 개안관음상이 있고 불상 주위를 마니차를 돌리며 한바퀴 도는 구조로 되어 있다.





관음대불전 안에 들어가니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내부 촬영을 하려면 5,000투그릭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단다.
우리 돈 5,000원 정도의 사진 촬영비가 약간 아깝게 느껴져서 불상 뒤편으로 돌아가 관리인 모르게 살짝 살짝 몇 컷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전광석화처럼 나타난 관리인 아저씨.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진을 찍으려면 당장 돈을 내란다.
하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져서 마음 먹고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몽골에서는 박물관이든, 사원이든 내부 촬영을 하려면 반드시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 특징인데
심지어 복드 칸 궁전 같은 곳에서는 실외 사진을 찍는데도 돈을 지불해야 했었다.





돈을 지불했으니 플래쉬를 터뜨려 찍든 몇장을 찍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26m짜리 개안관음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서 마음껏 셔터를 눌러보았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는 이 금불 입상은 불상에 입혀진 금의 무게만도 150kg에 이른다니 놀랄 일이다.



 









개안관음상 주변을 둘러가며 천정까지 질서있게 들어찬 진열장 안에는
이같이 손바닥 만한 불상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관음대불전을 찾은 순례자들은 불상을 한바퀴 돌며 마니차를 돌린 후 개안관음상 앞에서 예불을 한다.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몽골의 불전함은 투명창으로 되어 있어 쌓인 불전이 한눈에 다 보이는게 특징이다.



 

몽골 신앙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울란바타르 사람들의 생활의 구심점이 되는 장소,
몽골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관광 명소, 울란바타르의 간단대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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