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나라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는 흔히 '라마교'라고 부르는 티벳 불교이다.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이거나 불교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몽골이다.

몽골인들이 의식적으로 불교를 믿게 된 것은 13세기 부터인데
16세기에 이르러 티베트 불교는 몽골 땅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21년에 몽골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각가지 방법으로 종교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는데

1937~1939년 사이에는 거의 모든 불교 사원이 폐쇄되거나 박물관으로 바뀌는 등 수난을 겪었다.
이 기간 동안에 20,300명에 이르던 몽골의 승려들은 모두 구금, 또는 처형되었고
20세기 초 750개에 이르던 불교 사원은 대부분 다 철폐되어야 했다.

1989년 이후 찾아온 민주화로 인해 몽돌에는 전통 문화 복원 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고
사회주의 시절에 탄압 받았던 전통 종교와 신앙도 제 자리를 찾게 되는데
티베트 불교는 몽골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몽골 사람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그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이후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망가졌던 사원은 다시 복원이 되고 환속했던 승려들은 사원으로 돌아왔으며
종교 박해 속에 신앙을 버렸던 신자들은 다시 사원을 찾아 마니차를 돌리고 오체투지를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몽골 불교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간단사(Gandan)'는 '몽골의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사원이다.





입구에는 이렇게 대형 마니차가 있어 불교 신자들은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마니차를 한번씩 돌리고 경내로 들어간다.



몽골, 만주, 티베트 건축 양식이 다 혼합된 간단사원 대법당은 의외로 소박하고 아담하다.
지붕의 색깔이 황금색인 것도 상당히 눈에 뜨이는데 지붕 위에도 대형 마니차가 코너 마다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대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예불을 하는 순례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법당과 부속건물을 한바퀴 돌면서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유리 진열장 속에 들어 있는 불상 앞에도 오체투지를 위한 판이 여러개 마련되어 있었지만
날이 더워서 그런지 사원 구경을 다하고 돌아나올 때까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쁜 델을 잘 차려입고 마니차를 돌리는 할머니를 따라 대법당 순례길(코라, Kora)을 뒤따라가 보았다.





대법당을 빙 둘러가며 마니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순례자들은 모두가 마니차를 한번씩 돌리며 지나간다. 뱅글뱅글.......





마니차 돌리기는 오체투지와 함께 티베트인의 대표적인 수행 중의 하나이다.



불교경전을 넣어 돌릴 수 있게 만든 통인 마니차는 한번 돌릴 때 마다 안에 들어 있는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경전을 읽는 대신에 그저 슥~ 한번 돌리기만 하면 읽은걸로 쳐 준다니......
공부하는 아이들도 책 안에 있는 내용을 외우는 대신에 한번 돌리기만 하면
머리 속에 다 들어오거나 읽은걸로 쳐준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대법당의 중앙 부분에 이르니 이렇게 자그마한 표식이 있고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은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하다.
짐작컨대 아마도 이 부분이 불상이 있는 곳인 것 같다.




 마니차 골목의 꺾어지는 부분에 오색 타르쵸를 두른 신성한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에 머리를 대고 잠시 뭐라고 기도하더니




기둥에다 몽골의 지폐인 투그릭을 꽂아 놓는다. 꽂힌 돈을 슬그머니 빼가는 사람은 없을테지?




'위대하고 성스러운'이란 뜻을 지닌 간단(Gandan)사원의 의 유래는 울란바타르와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원래 울란바타르의 이름은 ‘이흐 후레’라고 했는데 이것은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
간단사의 담장을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살기 시작하자 명명된 이름이다.




간단사는 17세기 제1대 복드 칸 잔바자르(G. Zanbazar)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시기는 분명치 않다. 
이후 100여 년에 걸쳐 간단사는 아홉 개의 사원과 도서관 그리고 5,000 승려의 숙소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는데 .
1937~1939
년에 사회주의자들이 몽골 종교계를 억압하게 되자 대부분의 사원은 철폐되고 승려들은 투옥되거나 속화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간단사는 종교 활동을 허가 받은 최고령 150명의 승려들로 사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는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몽골도 독립하게 되자 사원들은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고 
간단사도 불교부흥을 위래 노력한 결과 예전의 위상을 다시 찾게 되었다.

오늘날 승려들의 삼분의 일은 사회주의 전 세대이며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25세 이하의 젊은 승려들이라고 한다.
현재 울란바타르에 있는 라마승의 총인원이 400명 정도라고 하는데 간단사원에만 300명 정도의 승려가 있다고 하니
간단사원은 울란바타르 신앙의 구심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당을 한 바퀴 돈 사람들은 간단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관음대불전으로 향한다.





1996년에 복원되었다는 관음대불전은 티베트 사원보다는 훨씬 소박하고 간결해 보인다.
간단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관음대불전을 찾는 이유는 법당 안에 엄청나게 큰 불상인 개안관음상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도 역시 대형 마니차를 돌리고 들어가는데
법당 내부도 중앙에 개안관음상이 있고 불상 주위를 마니차를 돌리며 한바퀴 도는 구조로 되어 있다.





관음대불전 안에 들어가니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내부 촬영을 하려면 5,000투그릭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단다.
우리 돈 5,000원 정도의 사진 촬영비가 약간 아깝게 느껴져서 불상 뒤편으로 돌아가 관리인 모르게 살짝 살짝 몇 컷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전광석화처럼 나타난 관리인 아저씨.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진을 찍으려면 당장 돈을 내란다.
하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져서 마음 먹고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몽골에서는 박물관이든, 사원이든 내부 촬영을 하려면 반드시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 특징인데
심지어 복드 칸 궁전 같은 곳에서는 실외 사진을 찍는데도 돈을 지불해야 했었다.





돈을 지불했으니 플래쉬를 터뜨려 찍든 몇장을 찍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26m짜리 개안관음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서 마음껏 셔터를 눌러보았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는 이 금불 입상은 불상에 입혀진 금의 무게만도 150kg에 이른다니 놀랄 일이다.



 









개안관음상 주변을 둘러가며 천정까지 질서있게 들어찬 진열장 안에는
이같이 손바닥 만한 불상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관음대불전을 찾은 순례자들은 불상을 한바퀴 돌며 마니차를 돌린 후 개안관음상 앞에서 예불을 한다.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몽골의 불전함은 투명창으로 되어 있어 쌓인 불전이 한눈에 다 보이는게 특징이다.



 

몽골 신앙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울란바타르 사람들의 생활의 구심점이 되는 장소,
몽골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관광 명소, 울란바타르의 간단대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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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인근 '투브 아이막'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투브 적십자 여성 지도자와 자원 봉사자들은 
한국에서 찾아간 봉사대원들을 형제와 같이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주었다.

투브  아이막의 주민 현황과 적십자사 활동 현황에 대한 브리핑이 있은 후에는
중학생 두명이 마두금이라고 알려져 있는 모린호르를 아주 멋진 솜씨로 연주해 주었고
배, 가슴, 머리까지 사용하여 발성하는 몽골 특유의 노래 '흐미'도 들려 주었다.
이 학생들은 우리나라 SBS 프로그램 스타킹에도 출연한 몽골 전통음악의 유망주들이라고 하는데
학생들의 모린호르 연주 동영상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확인하시기 바라며....

한국에서 가져온 우정의 선물 상자를 전달과 양국 대원들과의 친교 시간 후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니
투브 적십자 지도자의 절친인 인근 중학교 학교장이 한국 봉사대원들을 초청했다고 하며 방문하기를 강권한다.
학교 방문으로 인해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일정이 다소 늦추어질 우려는 있었지만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인근의 중학교로 향했다.




중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주변 초원의 낮은 구릉에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학교 옆에도 벽돌로 지어진 연립 주택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학교의 사정도 일반 주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담장도 없이 을씨년스럽게 서있었다.




ㅁ자로 지어진 학교는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쌓은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엉성한 모습이었는데
몽골 사람들은 외부 치장하는 부분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며 
보온과 단열을 위해 벽의 두께는 거의 1m 정도로 만들어 겨울 추위에 대비한다고 한다.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학교 현관 앞에 서니 교패와 학교의 현판이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곧이어 적십자 지도자의 친구인 학교장이 나와서 일행을 반겨주었는데 역시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사회주의 교육을 받은 몽골에서는 각 기관에서 여성 우두머리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몽골 또한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은 편인데
울란바타르에선 물론이고 유목민들 조차도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고 애쓴다.
만약 아이들이 많아 모두 대학 교육을 시킬 형편이 못 되면 맏딸만 대학에 보낸다고 하는데
이는 딸만이라도 힘든 유목민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방학 중인지라 학교는 직원들만 근무하고 학생들은 하나도 없이 너무나 조용하기만 했다.





학교 복도는 어떤 부분은 돌이나 시멘트로, 어떤 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는데




학교의 오랜 연륜을 말하는 듯 나무 복도도 많이 낡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장의 설명을 들으니 몽골에는 초등학교가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는 없고 초등학교 과정이 포함된 중학교부터 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초등 과정 6년과 중등 과정 2년이 함께 들어있는 몽골의 중학교 과정은 8년이 되는데 
7세 때 중학교에 입학해서 중학교 8년, 고등학교 3년 , 대학교 4년의 과정을 거치게 되니 
대학 졸업 때까지의 기간은 우리나라보다 단축되는 셈이다.

공산주의 체제의 영향을 받은 몽골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한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몽골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사설 유치원도 있지만 유치원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수업료는 전혀 받지 않는다.
몽골 유치원 관련 포스트 : 너무나 귀여운 몽골 유치원 아이들





복도의 벽에는 우리나라처럼 학생들의 작품이나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간행물들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고....




시원하고 활달한 필치로 쓰인 음표와 글씨들도 한눈에 확 들어왔다.




환경 게시물에는 아이들이 삐뚤빼뚤 써놓은 낙서가 여기저기 눈에 뜨였는데




손이 근질근질한 아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인가 보다.




복도 한쪽 벽에는 이렇게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했는데
초원에 뛰어노는 대형 말 그림을 보니  보니 "역시 몽골!"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교실로 들어가 보았더니 세상에! 교실이 온통 파란색 일색이다.
벽도 파랑, 천정도 파랑, 책상과 걸상도 온통 파랑.....역시 파란 하늘의 나라 몽골이다.




교실 넓이는 우리나라 교실 반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책걸상 또한 너무나 작고 낮았다.
그 또한 얼마나 많은 세월이 이 책걸상을 거쳐 갔는지 낡아빠질대로 낡은 모습이었다.




컴퓨터, TV, 사물함....등 우리나라엔 보편적인 교실 집기들은 전혀 없고 달랑 칠판 하나 뿐인데
칠판에 쓰인 글씨를 자세히 보니 <금강 칠판> !
한국 자동차, 한국 물건이 몽골 전체를 평정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학교 교실에서 한국 물건을 만나니 그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교실 뒤 환경판에는 알쏭달쏭한 몽골 고유 문자가 적혀 있었는데 몽골 고유 문자의 가장 큰 특징은 세로쓰기이다.




오늘날 몽골에서는 몽골 전통 문자와 키릴 문자(Cyrillic alphabet)를 병행해서 쓰는데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몽골인지라 일상 생활 전반에서는 전통 문자 보다는 키릴 문자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보니 칸마다 문이 없었고 작은 변기와 보통 변기가 바로 옆에 함께 있는 것이 눈에 뜨였는데
이는 초등에서 중등 과정이 한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인 듯....

학교장의 인도를 받아 도서실도 둘러보았는데 방학 중인데도 사서 교사가 나와 있었다.





열람실 없이 교실 반칸 정도인 도서실에는 책장 몇개 정도의 장서가 전부였고




도서실 가운데 책상 위에는 학생들의 교과서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설명을 들어본 즉,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학교에 책을 맡겨 두고 가는데 이 책은 다음 후배들에게 물려주게 된다고 한다.




몽골의 여름 방학은 6, 7, 8월 세달이나 되는데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도와 양을 치거나 말을 훈련시키거나 하며 자신들의 몫을 훌륭하게 해 낸다.
새학기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9월에 시작되며 9월 1일이면 모든 학교가 입학식을 거행한다고.....




교실과 도서실 등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건물 내에 위치한 체육관으로 향했다.
농구대, 탁구대, 평균대, 늑목 등 운동기구가 여기저기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체육관에서 내려다 보니 우리나라 운동장 정도의 너른 공간은 보이지 않았고 농구장 하나가 갖추어져 있을 뿐이었다.
학교만 나서면 다 초원이라 언제든지 달리고 뛸 수 있는 환경이라 운동장이 필요없었던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안내를 받아 둘러 본 학교의 교육 환경은 많이 열악해 보였고
컴퓨터는 물론 참고 도서도 너무 부족하여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부모는 어렵게 살아도 아이들만은 이런 환경을 벗어나 살기를 원하는 
몽골 가정의 높은 교육열로 보아 몽골의 앞날은 어둡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전해져 왔다.
비록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더라도 앞으로 몽골을 한걸음 앞으로 인도할 귀한 인재들이
이 학교에서도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보며 튜브 중학교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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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인근 지역을 여행하며 이동하는 동안에는 차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과 간간히 나타나는 게르와 말, 양떼들은
여행자의 시선을 차창에 고정시키고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시내나 초원 가운데로 난 길을 갈 때나 필자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인적없는 길을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는 전봇대였다.





몽골에서 전봇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길을 찾지 못할 때 전봇대를 이정표로 해서 목적지를 찾아가곤 한다니 몽골 전봇대는 일석이조의 고마운 존재이다.





그런데 전봇대가 서 있는 모양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몽골 전봇대 대부분은 그 모양이 A 자형인 것이 특징이다.





전봇개 바로 앞에 서서 찍어보았는데 이렇듯 절묘한 A자형 일수가...!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더러 우리네 것과 같이 콘크리트 전봇대가 서 있는 곳이 많지만....





조금만 외곽지로 나가면 어김없이 나무 전봇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근데 자세히 보면 전봇대의 주지지대가 땅에 박힌 콘크리트 기둥에 단단히 묶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땅에 박혀있는 전봇대 나무가 썩어서 내려앉는걸 방지하기 위해서인 듯....





그럼 모두 다 콘크리트로 전봇대를 하면 될텐데....
나무가 별로 없는 초원지대조차 이렇게 나무 전봇대를 박아놓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A자형 전봇대는 옆으로는 튼튼해 보이는데 그대신 앞으로는 넘어지지 않을까도 의문 가는 점 중에 하나였다.
변압기가 올려진 더블 A 자 모양의 이런 전봇대는 정말 튼튼해 보이는데.....

몽골의 특이한 모양의 전봇대는 호기심 어린 이방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모양의 전봇대가 있을까...? 아주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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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푸른 초원의 나라, 몽골.
이번 몽골 방문은 개인 여행이 아니라 봉사와 국제 교류가 주목적이었고
활동 장소가 울란바타르 인근에 한정되어 있었던 관계로

사적인 취향대로 사진을 찍고 관심있는 부분들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정신이 살아서 움직이는 몽골까지 가서 그냥 돌아올 수는 없는 일.
이동하는 도중이나 행사 도중에라도 눈에 보이는 것은 무차별적으로...필사적으로 다 셔터를 눌러 대었는데

이렇게 담은 사진들을 집에 돌아와서 열어 보니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다.

자, 이 산만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을 가지고 어떻게 포스팅을 하지..?
당최 계획이 떠오르지 않고 암담하기만 하다.
마치 만들 요리의 종류를 염두에 두지도 않고 
시장에서 보이는 식재료를 닥치는대로 담아 와서 냉장고에 한가득 넣어두고는

오늘 저녁 도대체 무슨 요리를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을 끼니 때마다 하는 것에 비유하면 좀 이해가 되실지.....^^





몽골에 잠시 다녀온다고 친지들에게 말하니 국가 명칭부터 헛갈리고 생소해하는 분이 많았다.

몽고? 몽골? 어떤게 정확한 표현이지?
학교 다닐 때 역사 시간에는 분명히 '몽고'라고 배웠는데 '몽골'은 또 무언지.....?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몽고와 몽골은 같은 나라를 말하는 것인데 그 의미에 있어서는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이름은 '몽골(Mongol), 대외적인 공식 명칭은 '
몽골리아(the Republic of Mongolia)'이다.
몽골을 몽고로 부르는 것은 마치 '한국인'을 '조센진'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몽고(蒙古)'라는 한자어로 표기한데서 기원한다.

그 한자는 무지몽매할 '몽[蒙]'자에 오래된 것이라는 뜻의 옛 '고[古]'자를 쓰는데 
중국인은 주변 국가 중 유일하게 한번도 지배해 보지 못한 '강한' 몽골인을 '몽매하다'며 비꼬아 부른 이름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항상 자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이고 주변국들은 오랑캐로 생각했기 때문에 
동서남북의 다른 민족들을 다 오랑캐의 뜻을 가진 한자인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으로 불렀다.
중국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동이(東夷), 즉 동쪽 오랑캐인 것이고
투르크 족은 '돌궐'로, '훈'족은 '흉노'로 표현하였으니....대부분 부족의 이름에는 비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몽골(Mongol)'의 원뜻은 '몽'이라는 부족이 '중심(골, ГОЛ)'이 되어서 세운 국가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진 이름'몽골'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바꾼 '몽고'라는 중국식 표현은 그리 좋은 표현이 아니므로
몽골인들의 앞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는 서울에서 평양, 북경,도쿄, 타이빼이 다음으로 가깝다.
이렇게 가까운 나라 몽골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몽골이 그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었기 때문에 우리와의 단절은 더 심하였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주변국들이 만들어낸 몽골 고립 정책에 동화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에 이르러 공산당 일당 집권에 종식을 고하고 의회 제도를 받아들여 무혈 자유화를 이룬 이후
모래 폭풍보다 거센 개방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우리나라와 교류의 문도 트이기 시작했다. 


1990년 우리나라와 수교가 이루어진 이후 울란바타르에는 한국대사관이 설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몽골의 북한 대사관은 한떄 폐쇄되었다가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이후 몽골 대통령 2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답방하기도 하며 수교의 문은 점점 넓어져
현재 많은 몽골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몽골에 체류하거나 방문하는 한국인의 수는 날로 증가하는 중이다.





요즈음 몽골의 젊은 대학생들 상당수는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으며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몽골의 텔레비젼에는 하루종일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는데 한국에서 종영이 되자마자 몽골에 바로 방영이 된다고 하고
홈쇼핑 채널에서는 한국의 홈쇼핑 방송이 더빙만 몽골어로 되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몽골 젊은이들은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데 한국의 최신곡들을 우리보다 더 정확한 가사로 외워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길에는 엑센트, 엘란트라, 마티즈, 그레이스....등 수많은 한국산 중고차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으며 
수퍼나 백화점에는 한국산 제품이 진열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놀라게 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나라, 마치 형제를 만난 듯 우리와 꼭 같이 생긴 사람들이 사는 나라 몽골.
지금부터 중구난방, 오리무중 몽골 여행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기대감일랑은 던져버리시고 부담없이....편안하게....루비의 뒤를 따라오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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