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하순으로 접어드니 남쪽에 자리잡은 경주의 단풍들도
그 아름다운 날개를 떨구고 낙엽이 되어 이리 저리 바람에 쓸려다닌다. 
매서운 겨울이 오고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는건가 생각하니
괜스레 떠나려고 하는 가을이 아쉬워 붙잡고 싶어진다.

그런데 남녘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니 
가지산 석남사의 단풍은 아직도 여전히 붉게 타고 있다고 한다.
가지산 석남사라면 경주에서는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  
일하던 중에 잠시 시간을 만들어 가지산 석남사로 떠나본다. 


경부고속국도에 들어서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자니 이내 언양 JC가 나타난다.
톨게이트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이내 석남사 입구이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길을 건너려고 눈을 들어보니 길 건너편이 온통 붉은 물결이다.





아직도 이렇게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단풍잎을 자세히 보니 하나하나가 정말 고운 빛이다.
제대로 물이 들지 않았다거나 썩은 이파리 하나 없이 모두가 붉게 붉게 타오르고 있다.

거기다 단풍이파리가 다른 곳의 단풍과 비해서 현저히 크기가 작다.
이렇게 이파리가 작아서 늦게까지 붉게 타오르고 있는걸까?




어설프게 보이는 버스 정류장도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더욱 운치있어 보인다.
왠지 '가을우체국 앞에서'가 아니라 '가을정류장 앞에서'라는 노래라도 지어 불러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버스 정류장 안에서 보니 창 너머로 보이는 단풍나무는 누가 그린 것 처럼 구도가 완벽하다.
그야말로 액자에 넣어놓은 최고의 그림이다.


 



붉게 타는 단풍길을 뒤로 하고 일주문으로 들어서본다.




일주문 안에는 아쉽게도 단풍나무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양쪽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었고 떨어진 낙엽들은 길가에 포근하게 쌓였다.


 걸어갈수록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온다.



 
절집에 가까워올수록 나무들은 더 앙상해지고 늦가을의 쓸쓸함이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전해져온다.


 


한참을 걸어가니 드디어 절집이 나타난다.


 



가지산(伽智山)에 위치한 석남사(石南寺)는 신라 헌덕왕 16년인 824년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절이 위치한 가지산은 예로부터 산수가 깊고 그윽하며 빼어난 준령으로 천연절경을 이룬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가지산은 다른 이름으로  석안산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석남사(石南寺)는 석안산의 남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석남사가 유명해진 것은 이곳이 비구니들의 수행 도량으로 이름난 절이기 때문이다.



창건된지는 오래 된 사찰이지만 여러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옛모습은 찾기 힘들고
지금 석남사의 면모는 비구니 인홍 주지승이 취임한 1957년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문화재로는 창건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남사 부도(보물 369호)와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5호인 삼층석탑, 울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4호인 석남사 수조가 있을 뿐이다.


  

절 마당 한켠에 있는 석남사 수조는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재료는 화강암이다.


 

절집은 오래 되지 않았으나 여승들이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경내가 깨끗하고 담장 하나도 오밀조밀하기 이를데 없다.




담장 옆에는 아직도 꽃잎을 떨구지 않는 구절초가 수줍은 자태를 드러내었다.


 이름난 승려들의 유골을 넣어둔 돌탑을 부도라고 하는데
석남사 부도는 이 절을 처음 창건한 도의국사의 사리탑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부도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석남사 부도는 보물 369호로 지정되었다.

 



절집과 부도를 돌아보고 내려오니 선원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스님과 고양이가 눈에 뜨인다.

 

연신 눈치를 보며 빵 부스러기를 먹고 있는 절냥이가 너무 안쓰럽게 보인다.

절냥이야~~ 널 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고 천천히 먹으렴~

절집을 다 돌아보고 다시 일주문 밖으로 나와서 다시 보아도 역시 할말을 잊게 만드는 단풍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뒤로 하고 어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떠나는 가을을 보내기가 너무나 아쉬워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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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출발하여 산내면을 지나 구비구비 운문사로 향하는 산길은
'운치있다'는 표현이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아침나절 내린 비로 인해 멀리 보이는 산허리에는 안개 구름이 낮게 걸리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마주하는 아름드리 숲들은 싱그러운 얼굴로 여행자를 반긴다.





운문사 입구로 들어서니 아름드리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한데 어우러져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하니 도시 생활에서 찌들었던 스트레스가 일순간에 씻겨지는 듯 하다.





일반적인 사찰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서 걸어서 올라가다보면 숨이 차고 땀이 나기 마련인데
운문사는 계곡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지라 차량으로도 사찰 입구까지 바로 진입이 가능하다.





아름드리 나무가 터널처럼 이어진 평탄한 길을 기분좋게 걷다보면
금방 사찰 입구에 다다라 요즘 같이 더운 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호거산 운문사...호랑이가 살았던 산이라고 해서 호거산이라고 하나보다.





호거산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둘러싸인 산세는 예사롭지 않고 높은 산허리에 안개가 걸리니 더욱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범종루를 거쳐 들어선 사람들의 시선을 제일 먼저 모으는 것은 바로 입구에 자리잡은 엄청나게 커다란 소나무이다.
마치 커다란 표고버섯처럼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거의 땅을 뒤덮으며 자라고 있는 이 소나무는 처진소나무라 불리운다.





높이는 9.4m, 줄기의 둘레는 3.37m 정도의 이 아름다운 소나무는 천년 기념물 180호로 지정되었는데 
처음에는 나무의 모습이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반송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분류한다.

처진 소나무 관련 상세 포스트 : 막걸리 먹고 자라는 운문사 처진 소나무





운문사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신승이 창건한 절로 608년(진평왕 30)에는 원광법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크게 중창했다고 하고

1690년(숙종 16) 설송이 임진왜란 때 폐허화된 절을 다시 중건하여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되찾게 된 곳이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를 비롯하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미륵전·작압전(鵲鴨殿)·금당·강당·관음전·명부전·오백나한전 등 조선시대의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금당앞석등(보물 제193호)·동호(보물 제208호)·원응국사비(보물 제31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3층석탑(보물 제678호) 등이 있다.




운문사를 돌아보다 보면 한 사찰에 대웅보전이 두군데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운문사의 가장 중심에 웅장하게 자리잡은 신 대웅보전인데 석가모니불이 봉안된 이 대웅보전은 1994년에 건립되었다.





운문사 신 대웅보전의 너무나 아름다운 꽃살문은 무형문화재 제 26호 소목장 심용식님의 작품이다.




















다른 하나의 대웅보전은 신 대웅보전의 앞쪽에 약간 다소곳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신라 시대에 건립한 운문사는 4번 크게 중창하였는데 이 대웅보전은 조선 숙종 44년(1718년)에 지어진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지만 기둥의 간격을 넓게 잡아 칸수에 비해서 건물이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1994년에 새롭게 대웅전을 지은 후에  비로자나불을 봉안했으므로 비로전으로 불리우다가
문화재청에서 보물 835호로 지정한 이후에 원래의 이름인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다시 찾게 되었다.





2007년에 해체 보수하였으므로 단청이나 꽃살문이 너무 산뜻하여 세월의 흔적이  도리어 느껴지지 않는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대웅보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 678호)은 높이 5.4m의 쌍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층 기단에는 앉아 있는 8부중상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한돌로 된 탑신에는 모서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만세루는 학승들의 교육을 위한 강당으로써 주요 행사 때만 사용하는 곳이다.





운문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사찰에
전국 5대 비구니강원 중에 학풍이 가장 엄격하기로 소문난 운문승가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의 경내가 대부분 관광객들에게 개방이 되어 있지만
승가대학은 학승들의 수행을 위해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으므로 그 내부를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승가대학 건물 바로 옆의 공양간의 문이 열려 있기에 살짝 들여다 보니
비구니스님들이 공양 준비를 하고 있었고 반들반들 윤이 난 엄청나게 큰 무쇠솥이 눈에 확 들어왔다.

240명의 학승들은 공부와 노동을 병행하고 있어 운문사 경내에서는 이처럼 청소를 하거나 농사일을 하는 여승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찰 경내는 드넓고 쾌적하며 대웅보전 뒤에는 야생화 단지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가족 단위 나들이나 데이트하는 커플에게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더구나 사찰의 바로 옆 계곡에서는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바람마져 불어오니 
요즘 같이 후텁지근한 날, 무더위를 식히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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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높고 물 맑은 청도가 자랑하는 천년 고찰 운문사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모으는 엄청나게 커다란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의 크기도 거대하지만 그 단아한 모습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며
방문객들은 너도나도 소나무를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쁘다.


마치 커다란 표고버섯처럼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땅을 기어가듯 뒤덮으며 자라고 있는
이 거대한 소나무는 천년기념물 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이다.

 높이는 9.4m, 줄기의 둘레는 3.37m 정도인 이 소나무는 
처음에는 낮게 옆으로 퍼지는 나무의 모습 때문에 반송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가지가 자라면서 아래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분류한다고 한다.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어느 고승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심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임진왜란 때도 운문사 대부분의 절집이 소실되는 가운데서도 화마에서 살아남아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푸르고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는 희귀한 나무이다.


운문사에 있는 비구니 승가대학에는 약 240명의 여승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데
이곳의 스님들은 이 처진소나무를 스승으로 섬긴다고 한다.
다른 나무들은 자랄수록 가지를 위로 펼치는데 이 노송은 자랄수록 가지를 아래로 낮추기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下心)의 겸허한 자세를 본받자는 것이다.



이 처진 소나무가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이 소나무가 '막걸리를 먹고 자라는 소나무'라는 것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오는 삼월 삼짇날은 운문사 처진소나무가 막걸리 공양을 받는 날인데
승가대학에서 교육을 마친 비구니 스님들이 막걸리 열두 말에 물 열두 말을 섞어 이 노송에 부어준다고 한다.


막걸리 공양은 30여 년 전, 쇠약해진 이 소나무를 살리고자 선대 스님들이 고안한 지혜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처진 소나무는 오랜 수령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린 나무처럼 가지의 제일 말단까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막걸리가 나무에 좋은 비료의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인데

토양학자들 의 말로는 과학적으로 꼭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알코올농도가 5-6%에 불과한 막 걸리에 물을 타서 뿌리에 부어 준다면
알코올의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고 들어 있는 전분도 크게 비료역할 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막걸리의 성분이 물에 녹지 않은 토양속의 여러 비료성분을 녹여내어 나무에 이롭다는 주장도 한다.
다만 물탄 막걸리는 한참 가뭄이 심한 봄철에 나무에 물을 주는 효과와도 같아서
나무의 해갈에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은 다소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임진왜란의 화마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운문사를 지키고 있는 처진 소나무....
운문사 천년 세월의 살아 있는 증인은 이 처진소나무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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