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소주에 이르니 
 잔뜩 흐려 있던 무거운 하늘이 끝내는 비로 변해서
처음 이 도시를 방문한 여행자를 반겨 준다.
 


 

 

 소주는 인구 약 574만 명(1997)의 도시로 시내에 운하망이 발달되어  '물의 도시',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고
옛 관료, 지주들이 꾸민 정원들이 많아 '정원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시가지는 둘레 23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성 안쪽과 그 바깥의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특히 구시가지는 하얀 회벽과 검은 기와 지붕의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다.  

 



 

신축 중인 연립 주택들도 전통적인 가옥의 형태를 유지한 가운데 도시의 미관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건립하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했고
시가지 한가운데 유명 브랜드의 고층 아파트들이 쑥쑥 올라가는

우리 경주의 현실과 상당한 비교가 되어 잠시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소주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졸정원(拙政园)은

소주 여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졸정원은 북경의 이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으로 꼽히는 곳인데  

 중국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이 정원은 원래 당나라의 시인 육귀몽의 집이었던 것을
어사였던 왕헌신이 중앙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칩거할때 개축한 것이다. 

 조정에서 물러난 왕헌신은 원나라 때 다홍사라는 절이었던 이곳을 인수하여 개인 정원으로 바꾸었다.  

 이곳을 개조할 때, 문정명이라는 명대의 유명한 예술가가 참여를 하였다고 한다. 

 왕헌신은 몇년 후 다시 이곳을 팔게 되는데,
그는 비단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으며, 비단장수 왕서방의 원조가 되었다. 

 

졸정원(拙政园)이란 이름은 진나라의 반악이 쓴 글가운데

'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정이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영어로 졸정원

을 'Humble Administrator's Garden(미천한 행정가의 정원)'이라고 번역 하기도 한단다.  

 명대 후기의 건축물인 졸정원은  청나라  강희제 때까지 방치되었다가
 다시 한번 개축을 거치고  건륭제 때는 서원으로 바뀌게 되는데....  

 초기의 흔적보다는 후기의 양식이 훨씬 더 두드러진 오늘날의 졸정원은  

 1997년  '쑤저우 고전 원림' 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졸정원 내부는 동원, 중원, 서원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핵심은 중원에 집중되어 있다.

 

 중원에는 원향당, 향주, 독특한 모양의 견산루와 파산랑, 비파, 해당, 파초가 빽빽히 들어선 비파원 등이 건축물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건축물은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띠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면적 약 5만 평방 미터의 너른 졸정원의 3/5 정도는 연못이 차지하고 있어서 

 연못 주변으로 누각과 정자 등이 여기저기 위치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 졸정원의 포인트인데 
비가 간간이 뿌리는 가운데 돌아보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연못의 반영이 제대로 안 나타난 점이 실로 아쉽기만 하다. 


 

이 정원은 후손이 하룻밤에 마작으로 날려버렸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 당시에도 발지압이 성행했던 듯...정원의 앞 마당은 크고 작은 조약돌로 장식되어 있어서
차가운 겨울비가 아니었더라면 맨발로 디디며 여행에 지친 발의 피로를 달래었으리라...  

 아름다운 정원의 풍광을 감하게 한 흐린 하늘과 잿빛 연못이 못내 아쉬워
1달러 짜리 핑크빛 우산으로 인공적인 화사함을 살포시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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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를 방문하시는 분들께 꼭 관람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공연이 있는데
바로 토르고(Torgo) 패션쇼이다.
몽골 전통 민속 음악과 민속 퍼포먼스와 함께 아름다운 몽골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이 패션쇼는
우리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몽골 전통 의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지를 알게 해 준다.

매일 6시에 공연이 열리는 토르고의 일층에는 각가지 민속 의상과 민속 원단을 전시해 두었는데
토르고(Torgo)라는 몽골어가 '비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만큼
모든 옷이 실크 원단으로 되어 극도로 화려하다.



함께 공연되는 몽골 전통 음악과 공연은 다음에 다시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전통적인 몽골 의상과 더불어 현대에 맞게 디자인한 신개념 퓨전 의상까지...멋진 몽골의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플래쉬가 없어서 ISO를 1600으로 올려서 찍다 보니 사진 상태가 좋지 않군요.....이해하시길 바라며....)

남녀가 입고나온 이런 몽골 전통 의상은 델(deel)이라고 한다.
부스라는 허리띠로 졸라매어 옷의 길이와 폭을 조절하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비단천에 화려하게 수놓은 허리띠를 매기도 한다.


몽골에 살고 있는 각 민족은 델의 재단, 색깔, 장식품으로 자기들의 민족을 구분한다.


남자 모델이 신은 고무신처럼 코가 살짝 들려진 신발은 고탈(Gutul)이라고 한다 .


이 커플은 마치 칸(Khan) 부부처럼 당당하고 화려한데 몽골에서 모든 패션의 완성은 모자이다.
모자는 남자 여자 모두 사용하며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하여 모자를 썼다.


모자는 전통의 의미와 실용적인 목적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몽골사람들은 모자(말드가이)를 쓰지 않으면 복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몽골인들은 모자를 아주 귀하게 여겨 모자는 반드시 허리띠 윗부분이나 선반 위에 놓아야 하는데
모자를 발로 밟으면 그것은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녀들은 꼭대기에 단추 모양의 보석 장식이 달린 토르촉 모자를 쓴다.


보통 모자 꼭대기에서 길게 늘여뜨린 끈이 바람에 날리게 하는데


돈 많은 여자들은 여기다 진주를 매달기도 한다.


이런 모자를 보면 우리네 전통 모자인 '남바위'가 생각난다.
고려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풍습이 전해져 우리의 전통 복식에도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남바위나 족두리, 원삼을 비롯하여 연지 곤지, 은장도 등도 그 기원이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모자는 지금도 도시 사람에게 많은 인기가 있으며 


검은 담비로 만들어진 모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몽골을 알리는 포스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단 형상의 이 머리 모양은
몽골인의 난로를 지킨다는 독수리 설화처럼 난로를 지키는 여성의 임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몽골 사람들은 검소한 유목민의 평소 생활을 보상받기 위해 멋지게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폭한 기후와 거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중세의 여행객들은 몽골사람들이 모든 계절에 적합하고 실용성까지 갖춘 옷을 만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패션쇼가 끝나면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한 퓨전 의상들을 선보인다.


지극히 몽골스러우면서도 아주 화려하기 이를데 없고 감각적인 의상들을 해설없이 눈요기 하시길.....























패션쇼가 끝난 후에 잠시 모델들과 기념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다....하고 모델들의 포트레이트를 몇 장 찍었다.


모델들은 아주 친절하게 포즈를 취해 주었으므로 짧은 시간이나마 정신없이 몇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그리고 미인 모델만 보아서 눈이 심드렁해진 여성 팬들을 위하여......


카리스마 돋보이는 남성 모델샷도 서비스로 함께 올려드린다.


패션쇼의 제일 마지막에 가면을 쓰고 나왔던 칸(khan).


가면을 벗으니.....185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 어울리는 멋진 훈남이다.


이 훈남이랑 기념 사진 한번 찍으려고 여성 관람객들이 줄을 섰다는 전설이.....^^;;


전통 의상 패션쇼 소개를 간략하게(?) 마치면서.....개인적으로 모델 중 베스트를 꼽아 보았는데
3위에는 정열적인 의상에 어울리게 환한 미소를 띄어주던 이 모델....


2위에는 특히 오묘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던 모델.


하리수를 살포시 닮은 미녀 모델은 그 세련된 무대 매너가 가장 기억에 남아서 베스트 1위로 선정해 보았다.

여러분, 몽골 전통 의상과 몽골 모델들이 맘에 드셨나요?
사진으로나마 함께 패션쇼를 감상하신 여러분들의 눈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즐거우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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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의 최종'병기 김춘추.
도대체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지 모를 만큼 드라마에서 덕만보다 춘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한데
활짝 웃는 유승호가 클로즈업되며 드라마가 끝나면 보는 사람 또한 자신도 모르게 따라 미소를 짓게 된다.
너무나 훈훈하게 자라준 유승호를 보면서 흐뭇하지 않은 여성 시청자는 별로 없을 듯 한데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춘추는 '얼굴이 백옥과 같고 온화한 말로 말을 잘하였다'고 하니
춘추 역으로 유승호를 기용한 것은 정말 완벽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신라 제 29대 임금으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
아버지는 금륜태자의 아들 용수공이며 어머니는 어머니는 진평대제와 마야부인의 딸인 천명공주이다.
어린 시절에는 조용하고 말이 적었으며 사색이 깊은 아이였으나 권력 관계와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으므로 
춘추의 커다란 뜻을 간파한 유신은 그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고 받들고 군(君)으로 받들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연대는 춘추가 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결혼함으로 더욱 돈독해지게 되고 이어 두사람은 세력을 합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게 되는데...
 


그럼...춘추가 문희와 결혼하게 된다면 선덕여왕 37회에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는 보종의 딸 보량은 어떻게 된건가?
춘추와 보량 사이의 러브 라인이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고 두사람의 애정 전선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던데 ....
그렇다. 쉽게 말하면 신라의 미소년 공자 김춘추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였으니 절묘한 '양다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겠다.



아끼던 명마의 목을 단 칼에 자를 정도로 결단력이 있던 김유신에게는 보희, 문희 두 여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유신의 동생 보희는 '서악(경주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니 온 서라벌이 오줌으로 가득 차는 꿈을 꾸게 된다.
보희는 참으로 망칙하고 불길스러운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문희는 즉석에서 보희가 꾼 꿈을 사겠다고 제안한다.
불길한 꿈을 팔게 되어 기뻐한 보희는 무엇을 주고 꿈을 사겠느냐고 물으니 보희는 '비단치마'를 주겠다고 답한다.
흡족한 거래가 성립되어 문희가 옷깃을 벌리자 보희는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말했고 문희는 보희의 꿈을 정식으로 사게 된다.

당시 비단치마는 국제 무역을 통해 수입되는 고가품이었는데 
'삼국유사'는 태종 무열대제 때의 포목 한 필 값이 벼로 30섬 혹은 50섬이라고 적고 있으니
지금 시가로 따져서 수백만원쯤 되는 포목보다 훨씬 비싼 비단치마를 꿈값으로 치룬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망칙하게 들릴 수 있고, 개꿈이라고 버릴 수도 있는 꿈을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문희는
보희가 꾼 꿈에 내재한 가능성을 보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열흘 후 유신은 춘추와 함께 축국(蹴鞠,제기차기)를 하다가 일부러 춘추의 치마를 밟아 옷섶의 고름을 떨어지게 한다.
이에 유신은 자기 집에 가서 옷고름을 꿰매기를 청하며 춘추를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유신은 보희에게 춘추의 옷고름 수선을 맡기고자 하나 보희가 병중이었으므로 이에 문희가 나아가 바느질을 해주게 된다.
유신은 문희가 춘추의 옷을 바느질할 때에 '일부러 피하고 보지 않았다'고 하니
여동생을 매개로 하여 춘추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려고 하는 유신의 전략이 잘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다.
유신이 깔아준 멍석....아무도 없는 집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불붙게 되고 1년쯤 지나자 문희는 임신을 한다.


이때 이미 춘추는 보종의 딸 보량(보라궁주,宝羅宮主)와 결혼해서 딸 고타소를 낳은 상태였다.
보량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춘추와 매우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는데 당시 춘추는 보량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량으로 인해 춘추는 임신한 문희를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밀로 할 뿐 아니라 문희를 멀리하게 된다.


 김유신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 재매정(財買井). 유신의 집터 담장 너머로 보이는 선도산은 지난 5월 9일 일어난 산불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문희를 멀리하는 춘추의 태도에 다급해진 유신은 자신의 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신라 최대의 불쇼'를 벌이게 되는데
사전 계획에 따라 자신의 집 마당에 장작을 높이 쌓아놓고 임신한 문희를 꿇어 앉히고는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
하며 크게 꾸짖으며 어름장을 놓아도 데 문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유신은 누이를 태워 죽이겠다고 온 서라벌에 소문을 퍼뜨린다.

그 때 춘추는 덕만을 따라 남산에서 놀고 있었는데 유신의 집에서 연기가 하늘로 자욱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공주가 유신의 집에서 나는 연기가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좌우에서는 유신의 누이가 부모의 허락 없이 아이를 가져 화형에 처한다고 아뢴다.
이에 덕만은 누구의 아이냐고 되묻자 옆에서 듣고 있던 춘추,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며 용서를 구한다.
덕만에게서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구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들은 춘추는 
황급히 유신의 집으로 가서 화형 당하려는 문희를 구하게 되고 이에 포사(鮑祠,포석정)에서 길례를 행하여 문희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얼마 안 있어 보량은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고 문희는 보량의 뒤를 이어 정궁(正宮)이 되니 문명황후(文明皇后)이며
그녀의 장자인 법민은 바로 문무대제(文武大帝)이다.

김춘추의 정실 부인이 되었지만 유신과 문희는 춘추의 배신 행위에 대한 앙금이 오래 갔다고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진정으로 화해한 때는 선덕여왕 11년(642)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이 백제군에게 전사했을 때이다.
고구려 사신길을 자청한 춘추가 "이번에 내가 고구려에 가서 저들에게 해를 당한다면 공은 무심할 것인가?"라고 묻는데
매부가 죽어도 가만히 있겠느냐는 말은 둘의 관계가 정상이 아님을 뜻한다.
이에 유신이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의 말발굽이 고구려, 백제 두 임금의 대궐 마당을 짓밟아버릴 것"이라고 답하여 
둘은 화해하게 되는데 이는 곧 신라 왕실의 핏줄과 가야계 군사력의 결합이기도 했다.
그 결과 김춘추는 성골 출신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 뒤를 이어 신라 29대 왕에 등극,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는다.


후일의 역사서에서는 남성들의 사적만이 기록되어 있지만 춘추와 유신의 정치적 결속에는 문희의 활약이 지대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가의 비단치마를 아낌없이 투자한 그녀의 비젼은 훗날 김춘추와 그녀의 자손들이 대대로 신라 왕실을 장악하는 위대한 유산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문희는 진정으로 멀리 내다 보는 혜안을 가진 슬기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통찰력이 부족하여 자신이 꾼 꿈을 비단치마와 바꿔버린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다. 
이에 춘추는 보희도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과 개지문을 낳았으니 김춘추는 문희,보희 두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맞아들인 셈이 되는데
유신, 춘추, 문희, 보희를 주축으로 벌어진 이 이야기는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같은 신라 최대의 리얼 스캔들이다.

드라마에서 현재 보량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춘추.
41회에서 춘추는 보량을 납치하듯 자신의 근거지로 데려오고 보량과 춘추의 결혼 문제로 세종 측과 설원랑 측은 서로 대립하게 되는데....
앞으로 드라마의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른지는 작가의 펜끝에 달려 있지만
선덕여왕에서 춘추와 보량, 문희의 삼각관계는 시청자에게 기다려지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보량역의 박은빈은 성공적으로 시청자에게 얼굴을 선보였는데 문희역의 배우역에는 또 누가 캐스팅될른지...?
벌써부터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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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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