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중국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스럼 없이 '중국인의 생활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의 몇 도시를 여행하면서 활기찬 모습의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아침 나절 공원이나 길가에 나와 춤추고 운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상해에서도 곳곳에서 운동을 하며 아침을 열어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윤봉길이 의거를 일으켰던 홍구공원(지금은 노신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본 다양한 아침 풍경을 사진으로 소개해 본다.


 

 

 아침 나절 공원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서 모두다 무술을 연마하거나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남녀 노소 구분 없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서 태극권을 연마하느라 여념이 없다. 

 

 부채를 이용한 무술을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며 지나가는 노인들의 뒷편에는 무술 고단자인듯한 복색의 사람이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다. 

 

 멋진 도복을 입은 사부님을 따라서 열심히 태극권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너무나 많다. 

 

 

 먼저 준비 체조로 몸을 풀고... 

 

 튼튼한 허리는 기본...이쪽 저쪽으로 허리를 돌리면서 유연성 운동도 하고 

 

 관절도 여기 저기 풀어주고...스트레칭도 열심히 한 후... 

 

 멋진 사부님을 따라 천천히 태극권을 연마한다. 

 

 중국 권법이라고도 하는 태극권은 태극의 원리, 특히 음(陰)·양(陽)의 조화를 응용한 무술이다.  

 

 각 동작의 발 자세와 몸 자세는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가르치는 사람마다 체계가 다르다고 한다. 

 

  태극권은 물이 흐르듯 유연하고 율동적이며 신중한 동작을 이용하는데 언뜻 보면 무술인지 무용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운동으로서의 태극권은 신체조절 훈련을 하는 동안 굳어진 근육과 긴장을 풀도록 고안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다지 과격하지 않은 운동같이 보여서 한번 배워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공원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네들만의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데 이렇게 정체 불명의 댄스를 추며 체력을 단련하는 사람도 있고 

 

 카세트를 틀어놓고 포크 댄스를 열심히 추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코트에서 베드민튼을 치는 사람...... 

 

 코트를 못 차지하고 통로에서 배드민튼을 치는 사람도 부지기수... 

 

 운동하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며 땀도 식히고...모두다 느긋해 보인다. 

 

 한쪽 편엔 젊은 사람 못지 않는 유연성을 자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쉬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할머니도 눈에 뜨이고.....  

 

  기력이 딸리면 이렇게 기구를 사용해서 운동하는 모습도 많이 눈에 뜨인다. 

 

 

 공원에서 아침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한데 이렇게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북경의 천단 공원에 갔을 때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서 큰 소리로 노래를 배우고 부르길래
무슨 데모를 하나...하고 놀라 물어보았더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그냥 노래를 배우고 부르며 즐기는거였다.
또 돌 바닥에 물글씨를 쓰면서 자기 서예 솜씨를 자랑하는 사람 등 아침을 블기는 형태는 실로 댜양하였다.

관련 포스트 : 북경 천단공원에서 본 중국의 아침

 

 

 공원을 나오니 번잡한 길가에서도 이렇게 운동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내 건강을 위해선 남의 이목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중국인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탄의 길거리의 좁은 공간에서도 이렇게 아침부터 붙들고 춤추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카세트를 크게 틀어놓고 남녀 노소 구별없이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볼룸 댄스를 추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도장에서나 추는 춤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건강을 위해서 남녀노소가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운동이다.  

 

 

  아침 나절부터 길거리에서 서로 붙들고 볼룸댄스를 추는 모습은
이런 모습에 익숙치 않은 여행자의 눈에는 정말 진귀하기만한 중국의 일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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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를 찾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빠뜨리지 않고 꼭 들리는 곳이 있는데...
그 이름은 
노신공원(루쉰꽁위엔,魯迅公園).  


 



고교 시절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적이 있는 阿Q正傳을 쓴 중국의 대문호 노신(루쉰,魯迅)의 묘와 기념관이 위치해 있는 공원이다. 

 

 

 

노신을 기념하는 공원에 한국인들이 뭐하러 가냐고 반문하실 것인데....
지금은 이름이 노신공원이지만 옛 이름이 홍구 공원(훙커우 공원,虹口公園) 이란걸 알면 다들 "아항~" 하실 것이다. 

 

 한국인에게 홍구공원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윤봉길의 아호인 매헌(梅軒)을 본따 의사의 기념관인 매정(메이팅,梅亭)이란 이름의 정자가 1994년에 세워졌고 

 

 1998년에는 '윤봉길 의거 현장'이라고 새겨진 돌비가 매원 입구에 세워졌다. 

 

 

1929년 어느 날, 서당 뒷산을 산책하던 19세의 윤봉길은
건너편 공동 묘지에서
여러개의 묘표(墓表)를 뽑아서 메고 오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건너편 산에서 내려오던 청년은 윤봉길을 만나자 마자 그를 붙들고 간청하게 되는데
부모의 묘소를 찾기 위해 공동 묘지에 갔으나 일자무식인지라 묘표에 쓰인 글을 읽을 수가 없으니
어느 묘가 부모의 묘인지 알수가 없어
할 수 없어 근처의 여러개의 묘표를 다 뽑아서 들고 글을 아는 분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청년의 딱한 사정을 들은 윤봉길은 부모의 함자를 물어본 후 여러개의 뽑힌 묘포 중에
그 청년의 부모의 묘표를 쉽게 찾아내어 주니 청년은 너무나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 "묘표를 뽑고 그 위치를 표시해 두었습니까?" 라는 윤봉길의 질문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청년은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그제서야 깨닫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서
"아이고~~이를 어쩌나~~우리 부모님의 묘를 이젠 영영 잃어버렸네~~!" 하고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 윤봉길은 묘표를 뽑아 무덤의 위치조차 알 수 없게 만든 그 청년의 무식이
나라까지 잃게 한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는 우선 자신의 집 사랑방에서 인근 학동들을 가르치다가 학생들이 늘어나자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의 문맹 퇴치와 민족 의식의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농민 독본 저술,월진회 조직등을 통하여 단순한 계몽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민족 정신의 부흥을 목적하였다.
1929년에 접어들자 농민 계몽, 농촌 개혁 운동은 기반이 닦아지기 시작하였으나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한국인의 진정한 행복은 농촌 개혁의 수준에서 머물 수 없었고

완전한 독립을 달성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던 중 마침내 임시정부 국무령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자신이 소원하던 조국 독립의 제단에 나서게 된다.

백범과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행할 예정이다"는 상해 일일신문의 보도를 접하고 의열 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게 되는데
의거 3일전인 4월 26일 이 의거가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 의사의 대변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백범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윤봉길은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라는 선서를 하고

27일과 28일에는 홍구공원을 철저히 답사하여 거사의 만전을 기하였다.  

 

거사일인 4월 29일 아침 윤봉길은 백범과 마지막 조반을 든 후 

차고 있던 새 시계를 백범에게 주고 자신은 선생의 낡은 시계를 차고 담담한 심정으로 자리를 나서게 된다.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였고 삼엄한 경계가 겹겹이 처졌다.  

 

단상 위에는 일본인 장군들과 주중공사, 주중총영사, 일본거류민단장 등 침략의 원흉들이 도열해 있었다.  

 

 

 

 

사열이 끝나고 식전이 벌어졌을 때 한국의 열혈 청년 윤봉길은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사제 폭탄을 몰래 숨겨 가지고 식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나라를 빼앗긴 한국인의 울분과 애국심을 물통모양의 그릇의 폭탄에 담아

일본인 장군들과 거류민 단장 그리고 일본 공사를 향해 정확하게 던졌고
그 폭탄이 폭발하면서 여럿이 부상 당하고 목숨을 잃은 자도 없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 호외 기사가 그 때의 사건 정황을 세세히 설명해 주고 있고 

 

해외 언론들은 다투어 당시 정황을 타전했는데 당시 상하이 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참고하면
"폭탄이 터진 후 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군중들 사이에 조선 사람 윤봉길이 있었다.

그는 군경들에 의해 구타 당해 쓰러졌다. 주먹, 군화, 몽둥이가 그의 몸을 난타했다.
만일 한 사람이 죽게 된다면 바로 그 조선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곧 그 회색 양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땅에 떨어졌다. 잠시 후 그 한국인은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의 몸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총검을 가진 군경들이 그가 쓰러져 있는 곳에 비상 경계선을 치고 군중들로부터 그를 차단했다.
군경들이 비상 경계선 안에서 그를 감시하였다. 곧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그 조선인은 (일본군에 의해) 머리와 다리가 들려 짐짝처럼 통째로 차 뒷좌석에 구겨 넣어졌다.
그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윤봉길은 의거 직후 체포되어 벌써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윤봉길 의사의 이 쾌거는 곧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특히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이 의거에 감격하여 
"중국 1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격찬하고 종래 무시로 일관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여
군관학교에 한국인 특별반을 설치하는 등 비로소 한국인의 독립 운동이 갖는 의미를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한동안 침체 일로에 있던 임시정부가 다시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역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힘입은 바가 컸다.  

 

윤봉길 의사는 일제의 가혹한 고문 끝에 그해 5월 28일 일제 군법 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
1932년 12월 19일 일본인들은 그를 십자가 모양의 형틀에 묶여 총살시키는 것도 모자라 애국지사 윤봉길의 유해를 쓰레기 처리장에 방치하기도 했다.
유해는 광복 후인 1946년에야 조국에 안장되었고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서한의 한 구절에서 그의 나라와 겨레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 강보에 싸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거사 당시 그의 나이 25세.
두 아들은 아직 걸음마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다.
그 어린 아이들과 아내,부모를 두고 어떻게 그리 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나라와 겨레를 향한 그의 뜨거운 애국심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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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지저분하고 촌스런 나라다?"

일전에 소개해드린 상해의 아름다운 거리 와이탄과
황포강 너머 푸동 지역의 야경을 보신 분은
중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어느 정도 깨어지는 것을 체험하셨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상해 최대, 아니 중국 최대의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남경로(南京路,난징루)는
거리의 길이만 5km가 넘고 각양각색의 상점과 레스토랑, 백화점, 호텔등이 밀집해 있어
주말이면 발을 디딜수 없을 정도로 붐비는 그야말로 한국의 명동과 비견할 수 있는 젊음의 거리이다. 

 

얼마전 이병헌, 김태희, 김소연, 김승우가 주연한 KBS 드라마  '아이리스(IRIS)' 또한 남경로에서 찍었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그 중 길이가 약 1200미터에 이르는 남경로의 보행 거리는 천천히 걷는 사람, 급히 지나가는 사람, 한가하게 앉아서 쉬는 사람,
여기저기 상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항상 흥청거리는 분위기로 인해 여행객들에게는 빠뜨리지 않아야 할 필수 코스이다. 

 

 이곳에는 화련백화점(華聯商廈, 화롄상사), 제일식품상점, 제일백화점, 신화서점 등 상하이에서 유명한 여러 상점들이 즐비하며  

 

 양쪽에 늘어선 건물들에는 보석상, 의류 브랜드, 커피 숍, 레스토랑등 여러 업종들이 다양하게 입점해 있다.  

 

 세일이 한창인 백화점들은 화려한 네온 사인으로 고객을 유혹하고... 

 

 여기 저기 위치한 백화점 역시 세일 등으로 한창 성업 중이다. 

 

 남경로 거리에서는 큰 규모의 보석 상가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술집의 간판은 요란한데 도대체 입구는 어디 있는지....? 

 

 새해 인사가 요란스럽게 걸려 있는 이 의류 브랜드의 이름은 Youngor(雅戈尔,야거얼)   

 

 

상해 최대의 번화가 답게 외국 프랜차이즈점도 즐비한데
KFC는 중국어로 '肯德基(컨더지=덕을 갖춘 긍정적인 태도)'이고 위층에 보이는 '网吧'라는 간판은 피씨방이다

 

 

 맥도날드의 중국식 표기는 '麥當勞(마이당라오=힘든 노동 끝에 얻은 수확)' 

 

 메뉴들의 가격을 짐작해 보시길...^^(현재 1위엔= 약 200원) 

 

 맥도날드, KFC 뿐만 아니라 Hagen-Dazs, TCBY, Pizza Hut 등
유명한 글로벌 체인점들도 많아 세계각지의 미식(美食)들을 맛볼 수 있는데 
사진에서 2층에 있는 보이는 피자헛은 중국어로

必勝客(삣씽학)이라고 한다.

 

 

 코카콜라는 "

可口可樂(크어코우크어러)'

 

 

 이렇게 일본 음식점도 군데 군데 보이고....실로 댜양한 업종을 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이 거리는 차가 다닐 수 없는 대신 그 사이로 미니열차가 수시로 관광객과 쇼핑객들을 태우고 다닌다.  

 

 유명한 남경동로 '신화 서점(구준표네 그룹 산하인가..? ㅋ)' 도 보이는데
그 앞을 지나는 미니 열차에는 여성 갱년기 치료제 '靜心'광고가... 

 

 어....장동건이다...!
신화 서점 앞을 지나는 미니 열차엔 삼성 카메라 광고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IC卡,IP 卡.....카드 충전소이다.
上자와 下자가 합쳐진 이 희한한 글자  '卡'는 카드란 뜻인데 '카'라고 읽는다. 

 

 신카드 전시...아마 복권인 듯.....^^;;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님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무척 깨끗하다는 사실인데
이곳은 자동차와 함께 노점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있고
수시로 자동 청소차와 청소원들이 남경로 여기저기를 쓸고 닦으며 다니기에 가능한 것 같다. 

 

  각종 잡지들이 전시되어 있는 가판대.
벌거벗은 여자들의 사진으로 표지가 도배된 이곳은 공산주의 국가 중국...! 

 

 남경로 가운데 비치된 공중 전화.
요즘은 중국 사람들도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적이라 우리와 같이 이용객이 적은 듯... 

 

 이곳에서 황포강 유람선 티켓도 살 수 있다. 

 

   보행거리의 아침은 야경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상점들의 문이 열리지 않은 거리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붙들고 사교춤을 추는 사람, 태극권을 하는 사람,
보드를 타는 사람,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로 즐비하여 밤의 화려함과는 전혀 다른 공원과 같은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데
활기찬 상해의 아침 풍경을 기대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남경로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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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도 손꼽히는 현대 도시 상해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초고층 빌딩 들이 늘어선 초현대적인 거리 바로 뒷편에
리얼한 서민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구질구질한 뒷골목이 아닐까? 

 외탄의 화려한 야경을 돌아본 후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상해 뒷골목은 그야말로 중국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식당은 6층까지 있는 규모가 큰 음식점이었다. 

 1층에는 주방과 수족관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작은 규모의 수족관을 층층이 놀려 놓아
식당의 수족관이라기 보단 도리어 마치 열대어 파는 가게같이 보인다. 

 도대체 먹을 수 없을 것 같이 빨간 물고기가 한 가득....이런 물고기로 요리를 한단 말인가...  

 식당의 규모에 비해 주방은 쬐끄마하다...다른 층에도 주방이 따로 있는지 궁금. 

 요리하는 와중에도 카메라를 의식하느라 요리가 제대로 될른지....  

 주방은 구질구질하지만 들고 나오는 요리는 모두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공중 전화 부스는 우리것이나 별반 다름이 없고.. 

 족욕 용품이나 미용 용품 가게도 골목에 많이 있었다. 

앗...이것은.....
저렇게 얼음을 통채로 얼려 리어카에 싣고 나오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이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열심히 얼음을 쪼개는 얼음 장수 아저씨.  저렇게 비위생적으로 운반하는 얼음으로 설마 음식을 만들지는 않겠지? 

 이 동네는 술집, 식당,여관등이 즐비해 있는 곳이라 간판의 네온 사인도 아주 화려하다. 

유흥가가 밀집된 지역이라 밤이 깊지 않았는데도 걸어가는 아저씨들의 발걸음은 벌써 비틀비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긴 적합하지 않은 곳인 듯 한데....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아래는 상점,위는 식당...이렇게 되어 있는 집이 많다. 

 여기도 족욕.. 

 저기도 족욕... 

온통 족욕집이다. 역시 발맛사지의 천국 중국이다. 

 중국인들의 붉은색 사랑은 간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온통 붉은 색의 간판 일색이다. 

 용도를 알수 없는 이상한 집에 쓰여진 '환영 광림'이란 글귀.... 

 

 코딱지만한 구멍가게에도 큰 글자로 쓰인 '환영광림'. 

 쇼윈도우든 발 밑의 매트이건 어디든 '환영광림'하지 않는 곳이 없구나. 

 

 자전거의 천국 중국에는 가는 곳마다 자전거가 여기저기 세워져있다.
자전거 도둑이 많기 때문에 열쇠를 무지 많이 채워 놓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전거에 일곱개의 자물쇠를 채워 놓았더니
열다 열다 목적을 이루지 못해 화난 도둑이 자물쇠를 하나 더 채워 놓아서 주인도 못 타게 만들어 놓은 일도 있다고 한다. 

 외탄 뿐 아니라 뒷골목에도 이렇게 서양풍의 건물들이 군데 군데 남아 있는데
이제는 풍상에 낡을대로 낡아 곧 쓰러질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인들의 빨래는 모두 이렇게 밖에다가 장대를 길게 내밀어서 넌다.
고급 아파트도 장대를 밖에 내밀어 빨래를 넌 모습은 비슷한 듯... 

 점퍼, 셔츠,내복,양말,장갑.....각가지 빨래를 재주껏 널어 놓았는데
상해에 널린 대부분의 집 빨래의 특징은 널어논 많은 빨래 중에서도 수건은 딱 한 장 뿐이라는 것....
수건이 빨래의 1/2을 차지 하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대조가 된다.  

 잡동사니 상인의 모습은 우리나라 재래시장 앞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옷걸이,고무줄...등 레파토리도 거의 비슷하구나...^^ 

 행인들의 모습도 매우 여유롭다.  컴컴한데서 식당의 불빛에 의지해서 신문 읽는 아저씨며.... 

 도인같이 수염을 기르고 지나가는 할아버지. 

 담배 파는 행상 아주머니의 모습도...팔리면 팔리고 말면 말고...그런 느낌을 준다. 

 뒷골목에서 보는 고층 빌딩들의 불빛은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데 

 번화가에도....뒷골목에도.....밤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도시는 다시 곤한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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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중국을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나라라고 했던가?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상해(上海, Shanghai) 공항에 내리자 마자 그 규모에 놀라게 되고
외탄의 서양식 건물과 황포강 주변에 늘어선 
수많은 고층 빌딩, 남경로의 화려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된 KBS 수목 드라마 '아이리스(IRIS)'의 상해 씬에서도
북한 공작원 김승우와 김소연이 황포강 야경을 배경으로 접선하는 장면들이 나와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황포강의 동쪽과 서쪽의 야경은 상해 관광에서 제일 큰 볼거리라고 말할 수 있다.
낮시간대의 경치도 볼만하지만 황포강변을 구경하는데 가장 좋은 시간은 저녁무렵이다.
포서(浦西)의 모든 건물과 강 맞은쪽의 포동(浦東)건물들이 등불을 밝히는 저녁 시간의 풍광은 찬란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황포강의 보석같은 야경을 감상하는데엔 황포강 유람선을 타는게 최고다.  

 

 

  레스토랑으로 된 유람선 등 각가지 모양의 유람선은 관광객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한데  

 

 

 필자가 탔던 유람선도 설레이는 마음을 표현하는 듯 수백개의 반짝이 전구로 멋을 내었다.  

 

 

야경을 조망하기엔 배위로 올라가는게 최고...추운 날이지만 승선객들은 객실보다는 유람선 윗부분으로 올라가 야경을 즐긴다.  

 

 

 출발한 유람선은 황포강의 포동지역으로 돌아 항구 깊숙이 들어갔다가 포서 지역으로 돌아 출발지로 오게 된다.  

 

 

상해의 중심을 흐르는 황포강의 동쪽인 포동(浦東)지역엔  

 

 

 세계에서 제일 높은 88층의 호텔인 찐마오 빌딩, 상해국제회의중심 등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각 빌딩마다 색색의 조명으로 그 자태를 뽐낸다. 

 

 

  어떤 빌딩들은 건물 벽 전체가 전광판이다.  

 

 

 특히 동양 1위,세계 3위를 자랑하는 높이 468미터의 방송관제탑인
동방명주(東方明珠)는 어둠 속에 찬란한 빛을 발하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서쪽으로 보면 상해시 인민정부 청사를 비롯한 대형 빌딩들과 유럽식 건물군이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
이른 바 상해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외탄으로 불리우는 곳이다.  

 

 

 뱃사공들의 발자국에 의해 만들어진 강변길인 외탄(外灘,The Bund)은
상해의 상징이자 상해의 영혼이 숨쉬는 곳이며 상해 근대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1840년 아편전쟁의 결과 상해가 개방된 이후 영국의 조계지가 된 외탄 일대는
열강의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1920년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고층 빌딩가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건축물은 당시 서양의 복고주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으로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이 모여 있어서 '세계 건축의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운다. 

 

 

 외탄은 북쪽의 백도교로부터 남쪽의 금능동로까지 1.7km 거리에 52채의 서양식 건물과 동서양 빌딩들이 숲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고대 그리스식의 원형 지붕을 한 건물인 HSBC은행이 가장 유명한데
이 건물은 일찍 '수에즈 운하 동쪽과 극동지역사이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바로 옆 건물은 상해 세관이다. 

 

 

위로 올려다 본 상해 세관 건물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150년간 상해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우뚝 선 외탄에는 특히 은행 건물이 밀집해 있다. 

 

 

여기도 은행....저기도 은행....온통 은행 건물이다.  

 

 

또한 황포강 아래로는 푸동지역과 푸서지역을 잇는 외탄 관광 터널이 있는데 

 

 

푸서쪽 출입구는 외탄 진의 광장 북쪽에, 푸동쪽 출입구는 국제회의센터 남쪽, 동방명주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터널의 전체 길이는 646.7미터인데 내벽에 갖가지 색깔의 레이저와 조명을 사용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놓아서
터널 내를 이동하는 모노레일의 투명창을 통해 환상적인 조명과 레이저쇼를 감상할 수 있고
 객차 내에는 고음질의 음향 설비가 되어 있어 갖가지 효과음과 음악을 틀어줌으로써 터널 내에서 벌어지는 시각적 쇼를 한층 멋지게 느낄 수 있다.

   

 

 

 

 황포강변에 위치한 넓은 제방에는 야간 데이트를 즐기는 많은 연인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데
여행에서 빠져서는 안 될 추억의 위해 사진사도 여기저기 대기하고 있고 중국 여행의 묘미인 여러가지 먹거리 또한 빠지지 않는다. 

 

 

 군옥수수 하나 사서 들고 연인과 함께 외탄의 멋진 야경을 즐긴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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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서커스를 '잡기(雜技)'라고 부르는데

잡기는 북경, 사천, 상해 각 지방마다 그 특색이 조금씩 다르다.

북경 서커스는 중국 3대 기예라고도 말하는 무술, 서커스, 변검을 공연하는데 

전통 공연장 공연에서 이 세가지를 다 볼 수 있다.

북경 전통 기예 공연장은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는데

플래쉬를 터뜨리지 못하는지라 조심스럽게 살짝 몇장 찍은 것을 소개해본다.  

 


묘기 중에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독을 조그만 아가씨가 발로 들어올려서 빙빙 돌리는 기술이 있어 관객들은 탄성을 발했는데

나중에 그 돌리던 독 속에서 다시 한 아가씨가 나와서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큰 독 무게+ 성인 여자의 몸무게를 발로 지탱하며 돌리는 조그만 아가씨.......상상이 되는가...... 

 

 

독에서 기어나온 아가씨가 독 위에 올라가면 그 독을 다시 발로 빙빙 굴린다.

사람을 독 위에 태운 채로.......정말 괴력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엔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는 듯....

 



북경 사자탈 놀이는 편안히 즐길 수 있다.

한 사자탈 안에 두 명이 들어가서 각양 재주를 부리는데 사진은 두 사자가 키스하는 귀여운 모습....^^ 

 


보는 사람이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아슬아슬한 묘기.

머리 위에 세운 받침 위에 의자를 8개 포개고 그 위에 나무 벤치를 다시 3개 겹친 후 제일 마지막에 물구나무를 선다.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이 고이고 입술에 침이 다 바짝 바짝 마르게 하는 최고의 난이도의 전통 기예. 

 


언제 봐도 신기한 변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아도 어떻게 가면을 바꾸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중국 무술.....이라면 소림 무술이다.

소림사에서 무술 수행한 승려(?)들의 환상적인 무예 시범은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서커스같은 잡기를 천시해 오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중국에서는 만리장성, 자금성과 같이 전통 종합 기예단을 북경의 3대 자랑으로 여길 정도로 높이 사고 있다.

우리 나라의 하나 뿐인 동춘 서커스단은 겨우 명맥만 이어 오고 있는데 반해 중국에서 서커스단에 입단하게 되면 많은 수입과 인기를 다 누릴수 있기 때문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북경에서 이렇게 서커스를 본 이후 상해를 갔을 때에 다시 상해 서커스를 보게 되었는데 북경 서커스는 명함도 못 낼 만큼 화려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서커스였다. 상해 서커스에 대한 소개는 다음 편에 다시 기술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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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天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 해서 이름 지어진 천진 (天津,텐진)은 
북경, 상해, 중경과 함께 중국 4대 직할시 중의 하나이자, 북방 최대의 무역 항구 도시이다.
천진은 우리에게는 1885년 청나라와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이권을 놓고
자기네끼리 멋대로 맺은 텐진 조약으로
유명한 곳.
중국의 발달된 면모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중국 최대의 산업 경제도시로서
우리나라와는 많은 경제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뿌옇게 흐린 바다를 지나 천진 땅으로 들어서면
구획정리가 잘 된 반듯반듯한  공업 구역들이 끝도 없이 성냥갑처럼 늘어선다.

4대 직할시라는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국제 공항 또한 살짝 구질구질하며 좁고 답답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천진의 엄청나게 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하늘도 회색으로 잔뜩 찌푸려져 있다.

공항 맞은 편 건물 옥상탑의 '우리의 중국을 사랑합시다!'란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북경이나 천진은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비싼 고급 수입차가 많다.
중국에서의 자동차 가격은 엄청난데 그랜져는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을 아무런 구애 없이 물 쓰듯 쓰는 부자가 중국 인구의 약 10%인지라(일억 오천에 이른다...!)
길거리에는 완전 고물이 된 차와 벤츠,아우디가 한데 섞여서 다니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점심을 먹으러 공항 앞 식당에 들렸는데 에어콘이나 선풍기도 변변치 않은 식당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 탓에 온 몸에 열이 나는데 앉으니 펄펄 끓는 차를 먼저 내 온다.
중국 사람들은 전혀 찬 물을 먹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 비해 수질이 좋지 않아서 일찍부터 차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아서 찬물을 먹으면 배탈이 나기가 쉽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여행 오는 중국인들은 식당에서 더운 물을 주지 않고 생수를 주는 것에 많은 불평을 한다고 하니
물 하나 먹는 것도 이렇게 풍습이 다른것에 실소가 머금어졌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한여름에 뜨거운 차와 함께 나온 뜨거운 중국 음식들을 먹고 있으니 나중엔 별로 덥지도 않고 음식의 맛을 즐길 수가 있었다.

 

인구 천만의 도시 천진에는 고문화 거리를 제외하고는 관광 명소가 거의 없는 편이고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천진의 상징 천탑(天塔,텐타)이 유명하다.
탑의 높이는 415.2m로 미터로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에서 2번째로 높으며 TV,방송 수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248미터-278미터 사이의 탑루 내에는 전망대와 200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전식 레스토랑이 있다.
2층의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있어 반경 백리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고 하나
늘 흐리고 안개 낀 천진의 날씨로는 시내 조망이 어려워 실제 올라가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시내에는 특이한 모양의 빌딩도 여기저기 눈에 뜨이는데
중국 사람들은 건물 외부 장식에 아주 치중을 하는데 대부분의 건물 내부의 시설은 엉망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마다 어김없이 옥상과 건물에 화려한 야간 조명을 설치하는데
U.F.O착륙지 같이 멋진 야간 조명 장식을 한 아파트 안에 들어서면
복도와 가정의 조명은 바깥과는 다르게 매우 침침하였다.
  

 
중국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천진도 자전거의 천국이다.
  
상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삼륜차가 많았는데 손님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오트바이 택시이다.

오트바이 택시 너머로 보이는 우리나라 다마스같은 조그만 승합차도 역시 택시인데 
천진사람들은 이런 차를 식빵같이 생겼다고 해서 '빵차'라고 부른다.

  
프라이드를 연상케 하는 택시는 앞 좌석과 뒷 좌석 사이가 창살로 가려져있다.

 
운전자를 택시 강도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살벌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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