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문득 차를 몰고 달려간 곳은 안동이다.

안동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드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은 그냥 지나치고

한적한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털석거리며 달려간 곳, 병산서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더 귀한 곳.

마지막 숨겨둔 무릉도원과도 같은 병산서원은

언제 찾아가도 여행자를 배신하지 않고 그 신비함을 조심스럽게 드러내준다.

 

 

 

 

서원 입구에 이르니 겨울에 왔을 땐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던 배롱나무들이 진분홍 꽃망울을  화사하게 꽃 피웠다.  

 

 

 

 

서원 입구 복례문 양쪽에도 배롱나무(백일홍나무)들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만대루로 오르는 돌계단 위에도 진분홍 꽃망울이 등불을 화사하게 켰다.

 

 

 

 

서원의 중심 건물인 입교당과 동재, 서재 사이에는 배롱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선비들이 배롱나무의 붉은 색에 현혹되지 않도록 강당 바로 앞에 배롱나무를 심지 않았던 것일까?
 

 

 

 

입교당 돌계단을 올라 마루에 걸터 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갑자기 먼지가 휘이.....일어나며 돌풍이 일어난다.

돌풍과 함께 어디선가 물내음이 묻어오기 시작한다. 소나기 한자락 하려는 것일까? 

 

 

 

 

불어오는 돌풍과 함께 물내음이 비릿하게 묻어오더니 피할 사이도 없이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긋기 시작한다.

 

 

 

 

쏟아붓듯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같이 사진 찍던 외국인들도 황급히 서원 마루 위로 올라 비를 피한다.

 

 

 

 

바람과 함께 묻어온 소나기는 서원 마루까지 적시며 한자락 시원하게 내리퍼붓더니 

이내 빗줄기가 약해지고 점점 개이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동쪽 하늘에 아스라한 무지개까지 만들어준다.

 

 

 

 

한차례 세찬 소나기가 지나간 서원 안 마당은 금세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 물길이 만들어졌다.

참으로 신기한 자연의 조화들이다.

 

 

 

 

비 그치고 나니 배롱나무꽃과 이파리들이 물을 함빡 머금어 더욱 화사하게 빛난다.

슥슥 오려내어 액자에 넣어 집에다 걸어두고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다.

 

 

 

 

입교당 뒷쪽 열린 문 사이로 보는 만대루의 모습도 한폭의 펼쳐진 그림이 되었다.

 

 

 

 

입교당 뒤로 돌아가보니 더욱 크고 오래 된 배롱나무들에도 꽃들이 만발했다.

구불구불 길게 드리워진 배롱나무 가지들은 존덕사 삼문의 붉은 빛과 어우러져 더욱 운치를 더해준다.

 

 

 

 

진사청 문 옆에도 엄청나게 자란 배롱나무가 담장을 붉게 물들였다.

 

 

 

 

'비단 같은 꽃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 피어 있으니 품격이 최고이다.' 라고 한

강희안의 '양화소록'의 싯구처럼 처연하도록 붉은 빛은 보는 이의 혼을 다 빼앗을 기세이다.

 

 

 

 

진사청 좁은 안마당의 하늘도 온통 배롱나무 꽃들로 뒤덮였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후두둑 떨어진 꽃들이 마당 안을 붉게 물들였으니 이게 바로 진정한 꽃 카페트로구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아니더라도 저 붉은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서야 이곳을 떠날 수 있으리라.

 

 

 

 

진사청을 나와 다시 만대루 아래를 거쳐 복례문으로 향한다. 

 

 

 

 

비를 머금은 복례문의 기와 지붕은 더욱 빛이 나고 배롱나무 너머 펼쳐지는 산의 나무들도 더 싱그럽게 다가온다.  

 

 

 

 

비를 머금은 만물은 마치 오월의 신록인양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푸르르니

열린 문을 통해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도 더욱 화사함이 더해진다.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 서로 백일을 바라보니,

 너와 더불어 한 잔 하리라' 라는 성삼문의 싯구처럼

한여름을 수 놓는 배롱나무의 처연한 붉은 빛은 참으로 곱디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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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에서 영천으로 가는 길목에 경관이 빼어난 정자가 있다는 친구의 말에
정자의 이름도 제대로 모른채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경주에서 영천 가는 길에 정자와 서당이 있어서 들러보았다는 얘기 외엔
서당의 이름도 정자의 이름도 모르는 친구를 옆에 태우고
시간이 흘러 희미해진 기억에 의지하여 길을 헤매기를 한시간여......


경주 현곡면에서 시작하여 구불구불 산구비를 몇번이고 돌고 돌다보니 
영천호국원을 지나고 고경까지 갔지만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한지라

답사를 포기하고 안강 휴게소를 경유하여 다시 경주로 돌아가던 길.
딱실못 입구에 이르니 "좌회전하면 될 것 같은데......"하면서 
드디어 정자로 들어가는 길을 기억해낸다.


좁은 국도를 따라 한참 들어가니 차 한대도 비켜가기 힘든 좁은 마을길이 나타난다.
구불구불구불구불.....드문드문 집들이 있는 있는 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드디어 저 멀리 범상치 않은 고택이 눈에 뜨인다.

바로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에 위치한 성산서당(聖山書堂))이다.




성산서당 앞에는 제법 너른 공터가 있어 차를 주차하고 내려 서당을 멀리서 살펴보았다.
뒤로는 병풍처럼 산을 두르고 발 아래로는 계곡을 두었으니 최고의 명당 자리에 지은 집임이 분명하다.




서당 바로 앞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어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 문을 살짝 밀어보니 아뿔사.....! 서당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하는 수 없이 나즈막한 담장 너머로 까치발을 들고 내부를 살펴보는 정도 밖에 할 수 없었다.




성산서당은 조선 중기 학자인 정극후(1577∼1658)를 추모하기 위해 순조 14년(1814년)에 세워진 서원이다.
정극후는 학문에 비범하였으나 60세까지 과거에 응하지 않다가 인조12년(1634년)에 벼슬길에 올랐다.
늦게 오른 벼슬길이었지만 정극후는 곧 사퇴하고 후학양성에 전념하고 문묘사향지, 역년통고, 서악지 등의 저서를 남겼다. 
서원에는 사우와 서사가 있었으나 사우는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폐사되고 지금은 서사만 남아 있는데
최근에 서원에서 성산서당(聖山書堂)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담장 너머로 서당의 내부를 살펴보고 뒤돌아서니 서당 앞을 흐르는 석천 맞은편에
날아갈 듯 날렵한 정자가 들어 앉아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정극후가 세운 정자 수재정이다.





건너편 정자로 가기 위해선 계곡을 가로지르는 수재교를 지나야 한다.
무분별한 행락객들의 질서없는 행동으로 인해 평소에는 다리의 문이 잠겨 있다고 하는데
혹시나 하고 내려가 보았더니 다리 입구의 문이 활짝 열려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수재교를 건너 야트막한 둔덕 위로 오르니 정자 위로 오르는 문은 역시 굳게 잠겨 있다.
계곡과 어우러지는 정자의 빼어난 비경 때문에 행락객들이 몰려와 쓰레기를 버리고
시설을 훼손하는 것에
넌덜머리가 난 후손들이 평소에는 문을 굳게 잠궈 버리곤 한다니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정자 위로 올라가 볼 수는 없지만 계단을 통하여 개울 아래로 내려가 정자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가뭄 탓인지 개울 물이 많이 줄어든지라 앵글에 정자가 다 잡히는 곳으로 다행히 진입할 수 있었다.




광해군 12년(1620년), 정극후는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서 이곳에 정자를 세웠는데
성산을 배경으로 석천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은 축대를 쌓은 다음 정자를 앉혔다.




정자는 앞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로 가운데 칸은 마루로 하여 개울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고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건물 앞면 전체에는 툇마루를 내어 난간을 두른 후 작은 물림을 하여 기둥을 받치고 했는데
건물의 건축 기술에는 조선 중기 양식과 조선 후기 양식이 모두 사용되고 있어 여러차례 중수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건물은 영조 4년(1728년)에 중수한 건물이라고 한다.


석천으로 불리우는 앞 개울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지금은 오랜 가뭄으로 흘러가는 물이 얼마 되지 않지만
비가 오고 계곡에 물이 불어나면 너럭바위 위로 물이 흐르는 멋진 풍치를 즐길 수 있을 것 하다.





숨겨진 비경이라 할만큼 아름다운 개울가에 자리잡은 성산서당과 수재정.
오늘은 다행히 수재교의 문이 열려 있어 석천과 함께 아름다운 수재정을 사진으로도 담을 수 있었다.
이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디 조상들이 전해 준 문화재를 아끼고 잘 보존하여
문화재 훼손 우려로 인해 출입구가 폐쇄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조그만 바램을 가져보며 수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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