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매표소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서면 
석굴암 주차장까지 펼쳐지는 토함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아흔아홉구비 차도가 생기기 전부터

옛사람들이 걸어서 오르던 토함산 등산로는
여느 다른 산에 비해 비교적 길폭이 비교적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가벼운 차림으로도 오르고 내릴 수 있어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멋진 산책길이다.
경주에 몇년 동안 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던 토함산 등산로를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에 찾아보았다.
 




벚나무 단풍은 많이 떨어졌지만 불국사 담장을 따라서 자라고 있는 단풍나무들은 아직 고운 빛깔이 여전하다.





토함산 석굴암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접어들면 바로 앞에 펼쳐지는 단풍나무 터널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단풍에 감탄하며 올라가다 보면 누구나 걸음이 거북이처럼 늦어진다.



 조금 걷다가 올려다 보고 조금 걷다가 사진 찍고......
빨리 정상을 찍고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은 이곳에서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어떤 곳은 단풍나무 터널이 너무 무성해서 아래가 어두울 정도로 그늘이 짙어졌다.




단풍이 물드는 색깔도 상당히 다양하다.

 



이렇게 핏빛으로 물드는 단풍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노란 빛으로 물들어있는 단풍나무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붉게 물들었든, 노랗게 물들었든 빛을 받아 반짝이는 단풍들은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넓게 뻗은 등산로를 한참 올라가다 보면 길이 조금씩 좁아지고 경사도 가파른 곳이 서서히 나타난다.




한참 오르다 보면 토함산 등산로의 명물인 오동수가 눈 앞에 나타난다.
물맛이 좋고 깔끔하여 불국사 아랫 동네 주민들은 매주 이물을 뜨러 산에 오르곤 한다.


옛날 한 스님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이곳을 지나다가 이상히 여겨
지팡이로 바위를 젖혀보니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났다고 해서
그때부터 이 샘물을 '오동수'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동수로 마른 목을 축이고 다시 숨이 약간 찰 정도의 오르막을 한참이나 걸어 오른다.


 
소나무와 참나무,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져 가을산은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었다.



등산로의 경사가 급해질수록 숨은 가빠오지만 
환하게 내려비추이는 빛은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석굴암 주차장에 가까웠음을 느끼게 한다.





이윽고 석굴암 주차장에 이르니 석굴암 통일대종루가 이고 있는 하늘이 오늘따라 눈이 부시도록 푸르르다.




종루 바로 맞은편에도 단풍나무가 여러그루 있는데 마치 거대한 한그루의 단풍나무 같이 보이기도 한다.

 

석굴암 주차장 한켠에는 노점을 펴놓고 여러가지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늘어놓은 물건들은 다양하기 이를데 없다. 산수유, 고사리, 도라지,  쑥가루, 고추부각, 은행구이, 군밤......




동글동글한 감과 역전 번개시장에서 볼 수 있는 찐쌀도 있고



 

공해없는 곳에서 자란 국화잎을 말려 차를 끓여먹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 같다.


이곳에서 제일 인기있는 것은 역시 군밤이다.  
"아지매요~~~ 군밤 하나 팔아주소~~"라는 할머니들의 강권에 못 이겨
그만 열개 삼천원 하는 군밤 한봉지를 받아들고야 말았다.
토함산에 올라 저 아래 펼쳐지는 경관을 내려다보며 먹는 군밤은...... 꿀맛이다!



오늘 등산의 목적지는 석굴암 주차장까지!
군밤도 먹고, 시원한 물도 마시고 한참을 앉아쉬다 다시 등산로를 통하여 불국사로 내려간다.



붉게 타는 단풍 터널이 너무나 아름다운 불국사 - 석굴암 등산로.
너무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는데도 게으름으로 자주 찾지 않은 것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토함산으로 올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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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토함산을 차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 산자락 아래로

 '동리,목월 문학관'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는데.... 

 

 

석굴암을 찾는 관광객들이 대부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곳에

우리 문학의 거두인 김동리,박목월 두 작가의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왜 동리,목월 문학관이 있나....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지만

동리,목월이 다 경주 출신이라는걸 알면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일 듯.... 

신라 문화 지킴이이신 햇빛님과 함께 '동리,목월 문학관'을 둘러 보았다.

 

 

김동리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벽에 붙어 있는 대형 사진이 정겹게 다가온다.

 

  

고독이 무서웠던 아이 동리(본명 시종(始鐘))는 어머니가 42세 때 얻은 막내였다.

먹을 젖이 부족했던 아이는 3세 때부터 아버지가 드시고 난 술찌꺼기를 먹고 늘 비틀대었고

6세 때에 '내가 달라면 주고 때리면 맞아주었던' 소꿉 친구이자 첫사랑으로 생각한 선이를 잃고

이어 사촌 남순누나의 죽음의 충격으로 평생 죽음이란 명제를 화두로 삼게 된다.

어머니를 닮아 키가 작았던 동리는 계절마다 이름모를 병으로 앓아눕기가 일쑤였고

혼자 산과 들을 배회했던 우울한 소년이었다.

20세 초반에는 잠시 출가의 꿈을 가졌으나 가부좌가 되지 않아

승려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시와 소설로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1941년 화랑의 후예 당선 후 경주에서 소설가 이기현과 함께...

 

 

 동리는 야학을 통해 만났던 진주 사범 출신의 김월계와의 첫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동리의 두번째 여인은 동화통신사 여기자였던 손소희.

그녀는 '혜성'이란 잡지와 다방 '마돈나'를 시작하며 김동리와 급격히 가까워졌고

인간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 동리로서는

 손소희와의 사랑을 전혀 불륜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부인을 두고 손소희와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손소희는 세번이나 개인전을 가지기도 했는데

김동리는 김월계와의 이혼이 성립된 1966년경부터 또 다른 안식처를 찾고 있었다.  

자신에게 순종하며 오직 자신만을 쳐다보는 소녀의 존재를 찾고 있었던 것.

 

그러던 중 24살의 작가 서영은을 만나 파문을 일으키는데 손소희는 그들의 사랑을 용서하고 덮어준다.

그래서  손소희는 남편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서영은에게 거처할 곳도 마련해 주고

 동리는 서영은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찾는 두집 살림을 다시 하게 된다.

서영은은 숨겨진 여인으로 25년을 지내다 손소희 사후에 세째부인의 칭호를 얻게 된다.

 

 

기념관에는 그의 손때 묻은 그의 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창작의 도구가 된 만년필과 안경이며.....

 

 

즐겨 피우던 담배 파이프와 문인협회 주소록.

 

 

동리의 손목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시계들.

 

 

김동리의 부채작품.

 

 

동리의 문방구.

 

 

수많은 낙관들도 볼거리다.

 

  

 펼쳐진 동리의 사진첩에는 육영수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

 

 

 선생의 다이어리.

 

 

 김동리는 다이어리에 정초에 찾아오는 세배객들의 선물 목록을 잊지 않으려 기록해 두기도 했다.

 

 

방명록도..

 

 

겉장이 너덜너덜해진 서라벌 예술 대학 재직 당시 강의 노트.

당시 그가 가르치던 모든 제자가 등단하여 문인이 된 사례는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그의 육필 원고들.

 

 

퇴고의 흔적이 원고마다 나타나 있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잘라 스크랩해두기도 했다.

 

 

잡지에 게재되었던 그의 평론들.

 

 

 빛 바랜 도서 출판 계약서도 눈에 뜨인다.

 

 

동리의 대표작인 황토기,무녀도

 

 

 김동리 소설집 황토기.

 

 

을화는 영문판 뿐 아니라 독어 번역판도 발간되었다.

 

 

한쪽에는 둘째 부인 손소희의 썬글라스와 여권, 그리고 손소희의 출판 기념 방명록도 전시되어 있다. 

 

 

만화가 들이 그려준 동리의 캐리커쳐는 그의 특징을 잘 나타내었고....

 

 

 노년의 김동리의 초상화에 쓰인

'山花水鳥皆知己" 란 글귀가 인상적으로 와 닿았다. 

자연의 모든 것이 다 동리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었으리라.

 

 

방으로 꾸며진 전시실에는 문갑이며 소장품, 모필들이 생전에 쓰시던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선생이 쓰시던 책상 위에는 방금이라도 글을 쓰다가 일어나서 나간듯 원고지와 볼펜이 놓여져 있었는데

여기서 한국 문학사를 빛낸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동리 문학은 나귀이다. 모든 것이 죽고 난 뒤에 찾아오는 나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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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의 뜻은 무엇일까....

동리의 마음을 느껴 보며 한참이나 사색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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