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도 광장(Largo do Senado)'은 마카오 여행의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포르투갈어로 '의회'라는 뜻의 세나도 광장은 마카오의 공식적인 행사나 축제가 열리는 곳.
필자도 마카오 일정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저녁으로 세나도 광장을 돌아다니곤 했는데
이는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와 셔틀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세나도 광장 근처에 내리게되고 
광장 뒤 시장이나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 후에야 그날의 여행 일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종로구 면적 만한 마카오는 일정이 대부분 걸어서 관광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세나도 광장을 분기점으로 하여 움직이면 가고 싶은 곳을 쉽게 찾아가게 되고 길을 잊을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마카오에 오기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블로거들이 찍었던 
세나도 광장의 멋진 사진을 봐왔던지라 기대감을 잔뜩 안고 찾아간 세나도 광장이었는데

막상 세나도 광장 앞에 도착해서 광장을 보는 순간 엄청난 실망이 몰려와 한숨을 푹 쉴 수 밖에 없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포르투갈 건물과 바닥 모자이크 타일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다울 것이라고 기대하며 찾아갔던 세나도 광장.

그러나 찾아간 시기가 정말 좋지 않았다!  
중국의 설날인 춘절을 앞두고 춘절 준비로 어수선함의 극치를 이루는 세나도 광장을 눈앞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울긋불긋 휘황찬란한 춘절 장식등과 반짝이등이 내걸리고

15세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자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양국 식민지의 기준점으로 삼기 위해 세운
교황자오선 분수는 붉은 천과 엄청나게 큰 등장식인형으로 그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게 가려져버렸다.
아쉽다! 저 춘절 축하 무대와 붉은 장식 무대만 없어도
파스텔톤의 건물 사이로 물결치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바닥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을텐데......






아무리 아래를 내려다 보고 이리 저리 앵글을 맞추어 보아도 당최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오지가 않는다.

가뜩이나 춘절 준비로 정신없는 와중에 광장 한쪽에서는 붉은 옷의 사람이 바닥에 드러누워 시위하느라 난리가 났다.

마카오 시민의 휴식처라는 세나도 광장이 왜 이런 난리법석이 되었는지......




하얀 벽이 아름다운 릴세나도 빌딩에는
'공희발재(恭喜發財, 돈 많이 버세요)'라는 새해 인사가 붉은 천으로 내걸렸다.
릴 세나도 빌딩의 춘절 장식은 그나마 광장 내에서 제일 봐줄만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어수선한 광장 풍경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근처의 건물을 몇장 사진으로 담아본다.








세나도 광장의 포르투갈풍 건물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결치듯 흐르는 모자이크 바닥인데
'깔사다(Calcada)'라고 부르는 이런 모자이크 바닥돌 역시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것 중의 하나이다.





물결을 따라 동서문화가 함께 춤추는 듯한 모자이크 바닥 타일 '깔사다'에는 
마카오 수백년 역사의 무게가 돌 하나 하나에 고스란히 박혀 있다.
'물에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핑게로 1550년에 처음 마카오에 상륙한 포르투갈 무역상은

마카오항을 통하여 중국의 실크, 도자기, 차 등의 수많은 물자를 포르투갈로 실어날랐는데
올 때는 빈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하여 배 밑바닥에 포르트갈 석회석을 가득 채워가지고 와서
중국의 물자를 싣고 포르투갈로 돌아갈 때는 배 밑에 채워왔던 돌을 모두 마카오에 버리고 갔다고 한다.
그때 버려졌던 포르투갈의 석회석들은 조각으로 잘라져서 광장이나 길을 장식하는데 쓰였는데
이런 깔사다는 마카오의 전역의 길과 광장 바닥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나마 제일 안정되고 조용한 곳은 자비의 성채와 약국 사이에 위치한 변호사 골목이다.
변호사 사무소가 많아서 변호사 골목이라 하는 이곳의 깔끔한 건물 벽과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창문은
알록달록한 춘절 장식으로 지쳐버린 눈과 마음을 일시적으로나마 안정시켜 주었다.
마카오가 왜 '작은 유럽'으로 불리우는지 이 작은 골목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밤시간에 찾은 세나도 광장은 낮보다는 조금 안정감을 준다.
보수공사중이라 어설프기 짝이 없었던 우체국 건물도 하얀 조명 속에서 약간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는 모습이다.





세나도 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자비의 성채(자애당)도 아랫부분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라
아랫부분의 어수선함을 날리고자 윗부분만 찍어보았다.


 
북적거리는 대낮에도 고요한 느낌을 주던 변호사 골목은 밤에도 역시 실망을 주지 않아 감사한 마음이다.

춘절 준비 기간에 돌아보았던 마카오의 중심지 세나도 광장.
멋진 모자이크 바닥을 사진으로 담아보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붉고 노란 등과 춘절 인형 장식이 판치는 어수선한 광장만 보고 돌아가게 되었다.
다음엔 꼭 춘절 기간을 피해서 와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해 보면서 마카오 세나도 광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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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福' 받기를 원하는 것이야 우리나라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인 만큼 복 받기를 좋아하는 민족도 잘 없을 것 같다.

 

 

 '福'자는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글자로서 생활 용품 어디서나 '福'자가 두루 쓰이고
상점은 물론 일반 가정집 어디든 '福' 자가 붙어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길거리의 배전판에도 '福' 자가 쓰여져 있고.... 

 

 심지어는 신발 바닥에 까는 깔창에서조차 '福' 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발바닥에서 머리 끝까지 복 받으라고 신발에다 까는것일까...? 

 

  '福' 붙이기 문화는 천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 전통 문화인데 
위로 왕공귀족들, 아래로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신령이 내려와 자신에게 '福' 을 갖다 줄 것을 기도했고
심지어 별로 자상하지 않았던 서태후마저도 일찍 수많은 '福' 자를 적어 대신과 하인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 중국인들은 '福' 자를 대문 앞에 거꾸로 붙이기를 좋아한다.
'福' 을 거꾸로 붙이는 유래로는 여러가지가 전하는데 그 중 한가지를 보면
명나라를 건립한 주원장이 어느날 평복차림으로 민심을 살피고 있었는데
자기 업적을 노래하는 사람이 없어 조금 불쾌해하자
눈치빠른 한 신하가 백성들에게 붉은 종이에 복자를 써서 대문에 붙이도록 했다.
붉은 홍(紅)과 붉을 주(朱)는 뜻이 같고 붉은 종이에 복자를 써서 붙이면
해마다 황제에게 복을 내려준다는 의미를 갖게 한것이다.  

 

그런데 글을 모르는 한 백성이 복자를 거꾸로 붙이자 주원장이 발끈하여 그 사람을 목 베게 했다.
그 때 류백온이라는 신하가 나서서  '거꾸로'를 나타내는 '따오(倒)'와
'도달하다'를 나타내는 '따오(到)'의 발음이 같아
'복을 거꾸로' 붙이면 '복이 온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폐하에게 복이 쏟아져 내리라는 의미로 해석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흐뭇해진 주원장은 그사람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중국사람들은 '福' 이 자신들의 집에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福' 자를 거꾸로 붙이게 되였다고 한다.

 이렇게 명절 때 붙인 '福' 자는 부적이 헤어지거나 저절로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떼지 않으니 중국 사람들의 집에는 거의 일년 내내 이런 부적이 붙어 있다고 보면 된다.
 중국의 할인점에서 물건을 산 후에  '福' 자가 써진 종이를 사은품으로 주는 경우도 보았는데
이는 설날에 문 앞에 붙여 두고 오래 오래 '福' 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리라....


 비록 우리네 풍습에로는 '福' 자를 대문에 붙이지는 않지만 
'福' 이 임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한결같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설날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큰 '福' 이 거꾸로 쏟아져 들어오시기를 기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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