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요트와 에게해 크루즈선들이 늘어서 있는 해안을 통해 그리스 및 에게해의 다른 섬들로 연결이 되는 도시인 터키 쿠샤다시(Kusadasi).

 

 

반짝이는 아름다운 바다와 드넓은 백사장,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크루즈선들의 정박으로 인해 유럽인들이 즐겨찾는 이곳은 터키의 에게해 연안의 휴양 도시 중에서도 규모와 시설이 손꼽히는 리조트 도시이다. 
 

 

예전에는 거대 유적 도시 에베소(에페스)로 가는 경유지에 불과했던 이곳은 지금 수십개의 관광 호텔과 휴양촌이 해안선을 따라 자리잡고 있으며 레스토랑과 나이트 크럽은 나날이 증가하는 많은 관광객들로 그득하여 유럽의 여느 도시보다 더 북적거리는 곳이다.  

 

 

쿠샤다시 입구에 위치한 '비둘기섬'은 긴 방죽으로 본토와 연결된 작은 섬이다. '귀베르진 아다스'라고 불리우는 이 작은 섬은 꽃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이 섬을 둘러 싼 14,5세기의 성채가 복구되어서 지금은 터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나이트 크럽으로 변모되었다. 600년이 넘은 오래된 성채를 나이트 클럽으로 변모시키다니....! 우리 같으면 보존한다고 일반인의 통제를 막았을 텐데....  온 나라 안에 이천년 넘는 고대 유적이 차고 넘치는 터키에서는 600년 된 성채 정도는 그저 생활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쿠샤다시의 호텔에 짐을 풀고 배터리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으니 빨간 불이 점멸하며 이상 증상을 보인다. 아무래도 고장인 것 같이 생각이 되어 하나 새로 살 겸 쿠샤다시 다운타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SUV차량 처럼 생긴 택시를 불러서 타고 바자르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바자르 입구에 도착하니 이즈닉 타일로 장식된 공동 수도가 먼저 반겨준다. 이슬람 교도들은 정결 의식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슬람 사원은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꼭 공동 수도가 있다.
 

 

터키도 여느 유럽과 같이 서머 타임을 실시하므로 여름엔 9시나 되어야 해가 지는데  리조트 도시인 관계로 바자르에는 낮보다는 밤에 손님이 많아 낮시간에는 비교적 한산하다.

 

 

휴양 도시인만큼 유럽이나 터키 전역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아 길에 앉아 노닥거리는 사람이 많다.  

 

미용실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남자들은 머리 하러온 여자 친구나 아내를 기다리는 듯..... 

 

 

이곳에서도 역시나 패스트 푸드점이 대세인 듯 거리에는 버거 킹, 프라이드 치킨집....등이 보이는데

 

 

터키의 청소년들은 주로 패스트푸드점 2층에서 밀회를 가지곤 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각처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들끓는 곳이라 옷차림이나 애정 표현이 비교적 자유롭다.

 

커피나 아이스크림, 쥬스 등을 파는 카페도 성업 중인데 아이스크림은 1유로 정도이다.

 

 

바자르의 좁은 골목에 밀집한 상가들은 우리네 재래 시장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데 물건의 진열 상태도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으며 기념품가게들에는 마치 우리나라 관광지에서처럼 조잡한 물건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해적판 게임 CD와 유희왕 카드 같은 것을 파는 좌판을 지키는 꼬마는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주목받는 도시인 쿠샤다시의 부동산 가게에는 매물의 사진과 가격들이 유리에 빼곡이 붙어있다.  

 

 

환상적인 맛의 터키 케밥집의 다양한 메뉴가 눈에 확 들어온다. 

 

 

관광 안내용 모니터인 것 같은데 역시 우리네와 같이 무용지물인 듯.... 아무도 안 쓰는지 앞에 자전거와 모터 사이클이 주차되어있고 낙서만이 노란 페인트 위에 선명하다.

 

터키 사람들은 춤추고 노는 것을 무지무지 좋아하기 때문에 어딜 가든지 디스코텍이나 가라오케가 빠지지 않는다. 이 곳에는 우리나라 처럼 관광 버스 춤도 성행하고 유럽에서 가장 큰 디스코텍도 터키에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 색으로 무질서하게 간판이 난립한 것도 우리 나라와 비슷한데 네거리에 위치한 귀금속 가게 근처에서 카메라 전문점을 찾아냈다. 
 

 

카메라 용품점 안에는 디카가 많이 진열되어 있고 관광지라 일회용 카메라도 많이 볼 수 있다.

 

먼저 온 손님이 마시고 간 차이 잔이 얌전히 놓여 있는데 터키에서는 손님에게 차이 한잔 대접은 기본이다.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는 복합 상가로 추정되는 건물은 터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풍경. 

 

각양각색 간판들이 조그만 점포나 사무실마다 들어서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다. 
  

 

호텔 셔틀 버스로 추정되는 차에 손님이 오르고 있는 모습은 쿠샤다시에서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지중해에 가까운 쪽이라 야자수가 가로수로 자라고 있고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라 고급차가 많고 사람들의 행색이나 집들도 모두 깔끔하다.  

 

 

횡단 보도도 중앙선도 없는 길에는 차는 차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갈길을 간다. 

 

 

거리 뒷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보니 주차 수준은 우리 나라와 비슷해 보인다.  

 

 

세 시간 정도 다운타운을 돌아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식사를 한 후 쿠사다시의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나왔다.
낮에는 길도 잘 모르고 열기가 장난이 아니라서 택시를 타고 왕복했는데 9시쯤 되니 한낮의 더운 기온도 식어 한결 시원해진지라 해변 구경도 하면서 걸어서 바자르까지 갔다. 

 

 

다운 타운의 상점은 크루즈선을 타고 부두에 도착한 수많은 승객을 상대로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길거리에는 터키인과 유럽인들이 한데 섞여  마치 인종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쿠샤다시는 남녀의 차림새가 이스탄불 다음으로 세련되었던 곳이었는데 가는 곳 마다 훈남, 훈녀가 득시글거린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도 사람들이 넘쳐나고 모두 밖에 나와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음식을 즐기고 있다.  

 

 

길거리에 앉아 전통차 '차이'를 마시는 모습은 터키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람 다니는 길에 아무 생각없이 놓여있는데도 테이블과 의자들을 다들 잘 피해다닌다.
 

 

음식점의 입간판들이 길에 버젓이 나와 있는 걸로 보아 간판에 대한 규제는 별로  없는 듯 하다. 

 

 

레스토랑에 앉은 사람들은 남녀 모두 축구를 보며 괴성을 질러대고 있는데 축구는 터키에서는 공통 언어여서 남녀 노소 다 축구를 모르고는 서로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이라고. 

터키 전역에는 약 200 여개의 프로 축구팀이 있는데 축구 리그는 3 부로 되어 있어 거의 매일 축구 경기가 있기 때문에 터키 전국민이 축구와 함께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집마다 다 TV가 있지만 모두 카페에 모여 축구를 보는데 이는 우리처럼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질러가며 축구를 보는게 더 신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여행객이 주고객인 쿠샤다시의 바자르에는 갖가지 상품이 넘쳐나는데 우리 나라로 치면 "골라 골라 만원 샵" 정도인 "Everything is  10 Euro"라는 카피도 눈에 뜨인다.

 

유럽 관광객들은 여자나 남자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데 이렇게 동네 장에 나온듯한 편안한 옷차림의 유럽 아줌마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이슬람이 대부분인 터키이지만 검은 머리에 스모키 메이크업을 진하게 한 터키 여자들도 이곳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거나 어깨를 노출한 정도의 옷차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터키 여자들이 미니 스커트나 핫 팬츠로 다리를 노출한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는데 유럽이나 터키에서는 상체 노출보다 하체 노출이 더 심한 노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국 여성 여행객들이 터키의 작은 도시에서 미니 스커트 등을 입으면 좋지않은 추파와 야유의 대상이 되든지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대형 크루즈선들이 매일 정박하는 자유로운 도시 쿠샤다시에서는 모든 것이 다 허용되니 안심해도 된다.  

 

 

선물 가게에 들어가 보니 특히 터키 도자기의 화려함과 퀄리티는 상상 이상이다.

 

 

길 양쪽에 빽빽하게 들어찬 관광상품점들은 가게의 규모도 대단하고  상품도 질도 상당히 높다.  가게마다 화려하고도 특이한 장식품들이 즐비하여 사고 싶은 충동을 참으려면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한다.

 

 

터키의 대표적 기념품은  파란 눈알이 그려진 장식품  '나자르 본주(Nazar Boncugu)'이다.

 

이것은 파란색 바탕으로 된 유리에 까만 눈이 그려진 일종의 부적인데
열쇠 고리, 키 홀더, 목걸이, 팔찌....각가지 형태로 다 있다.

 

 이블 아이(악마의 눈)라고도 하는 나자르 본주는 가장 강력한 악마의 눈을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주위의 악마들을 도망가게 하며 타인의 질투나 질시를 빨아들여 주위의 재난으로 부터 자신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지녀서 터키의 대부분 집의 들어가는 입구나 상점의 문 옆에는 어김없이 이것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념품 중에는 <의외로> 인물의 초상도 보인다. 이슬람 국가에선 예로부터 인물의 초상이 절대 금지되어 있어서 왕들 조차도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그림이란 것은 오직 책의 삽화일 때만 존재할 수 있는데 이는 신성화, 우상 숭배의 염려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왕들이 자신의 권세와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책 삽화의 주인공을 자신의 얼굴로 넣는 것이었는데
그런 책을 몇 권을 제작했느냐가 왕의 권세를 증명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후대 왕들이 취임하면 전의 왕들의 책들에서 얼굴만 자신의 얼굴로 갈아치우기도 했다고 한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얘기임)  

 

 

이렇게 다양한 냉장고 자석이 많은데 왜 안 사왔지....여행지의 냉장고 자석 콜렉션이 취미인데 고르다가 못 사온 것이 내내 아깝기만 하다.    

 

 

 식료품 가게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터키 젤리가 눈에 뜨인다. 터키 젤리는 달콤하고 완전 죽이는 맛이다.  

 

 

 피파 스폰지밥 스파이더맨 등....익숙한 게임들이 눈에 띈다. 4개에 30유로.....20파운드....50 예니터키리라이고 테스트 해보고 사 가란다. 음반가게에서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의 음반을 달라고 하니 'Tarkan' 베스트 앨범을 추천해 주어서 처음으로 Tarkan을 처음 알게 되고 팬이 되었는데 CD의 값이 유달리 싼 것이 이상하다고 했더니 나중에 들어보니 불법 다운로드 복제 CD였다...ㅎ

 

 

터키의 대부분의 아파트는 주상복합이 많았다. 이슬람사원마저도 1층에는 바자르로 세를 주는 경우가 허다한데 바자르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사원을 운영한다는데 심지어 가장 큰 사원인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에도 수백년 전부터 모스크 아래에 '아라스타 바자르'라는 바자르가 있어서 사원의 수입을 충당하기도 했다고. 

 

 

 

 늦은 시간이지만 가게는 낮보다 오히려 손님이 많다.
 

 

 터키는 가는 곳마다 보석 가게가 널려 있는데 특히 금은 세공품이 주를 이룬다. 터키에서 남편들은 늘 아내에게 보석을 선물하는데 아내가 걸친 고가의 보석은 남자의 부를 상징한다고.....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에 갔을 때에 보석 가게 앞에서 거울을 보며 뺐던 귀걸이를 다시 끼우고 있었는데 보석 가게 남자가 필자가 하고 있는 귀걸이와 목걸이가 무슨 보석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건 이미테이션"이라고 말했더니 그 남자는 "왜 당신의 남자는 당신에게 이미테이션을 사주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도 보석 가게 남자는 앞에 선 여자가 돈이 너무나 없는 불쌍한 여행객으로 보였으리라.... 

 

우리 나라 사람이 유럽이나 다른 곳에 가면 일본에서 왔냐고 먼저 물어보지만 터키에서는 보면 한국인이냐고 먼저 묻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카펫가게 아저씨는  필자가 코레에서 왔다고 하니 어느 도시에서 왔냐? 서울? 대구? 부산? 하며 말을 걸었다. 20년 전에 부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던 이 아저씨는 한국말도 '쬐끔' 한다.   

 

 

바자르 뒷골목으로 가면 유난히 타투나 피어싱을 하는 가게가 많다.

 

 

이슬람과 타투라...영 줄이 안 그어지는 조합이지만 이곳은 여행객들이 주를 이루는 도시라 그런지 주민의 대부분은 이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나는 곳이다.  

 

 

뒷골목에서는 조명이 밝지도 않은 곳에서 길거리 문신질을 하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헉....도인을 방불케하는 옷차림과 등과 팔에 문신을 새긴 사람 발견. 터키 전역에서 이런 사람 처음 보았는데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보다. 

 

유럽 관광지는 밤이 되면 길에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이 무지 썰렁하던데 여긴 12시가 넘어도 사람이 줄어들지 않고 점점 흥청거리고 청소년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닌다.

 

이슬람 신자가 대부분인 터키지만 이곳 쿠샤다시에서는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밤이 너무나 아름다운 젊음과 정열의 도시, 이곳은 터키의 '쿠샤다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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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단지에서 출발하여 불국사 가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 왼쪽편에 위치한
전통 기와집들의 군락을 만날 수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경주 민속 공예촌이다. 


 토함산 아랫자락 2만평에 여기 저기 자리잡은 민속 공예촌은
소중히 간직하여야  할 선조님들의 얼과 멋과  솜씨를 계승하고자 모인 장인들의 마을. 


경주 시민은 물론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이곳은 

 도자공방,금속 공방, 목공예 공방, 자수정 공방, 자수·한복 공방 등 여러 공방과
민속 공예 전시관,신라역사과학관, 예촌공예화랑 등이 기저기에 한가롭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특히 금속, 도자, 목공, 보석, 석공, 자수, 토기공예 등 18업체의 공방에서는 

 제조 과정 및 전시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수준 높은 공예품을 생산자로부터 싼 가격으로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특히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도자 공방은 방문한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데 

 

  몇몇 공방에 들어가 토기와 도자기 제품들을 집중적으로 돌아본다. 

 할로윈에 쓰면 알맞을 듯 한 호박을 갈라놓은 듯한 도자기. 

  소박한 모양의 함지박 안에 들어있는 호리병. 

 150cm이상의 깊고 오래된 논흙으로 구워 건강에 매우좋은 주전자와 솥. 

 함부로 쓰지 못하고 모셔두어야 할 것 같은 이쁜 꽃이 그려진 함지박. 

 장독 위에 놓여진 토우들도 너무나 이쁘다. 

 흙으로 빚었는데 마치 닥종이 인형같은 느낌이 든다. 

 집에서 실로 이빨 뽑던 그 시절 그 추억이 누구나 떠오르는 장면. 

 투박한 그릇, 섬세한 그릇,  큰 그릇, 작은 그릇... 

 아름다운 꽃을 담기에 부끄럽지 않을 멋진 화분도...  

  오묘한 빛깔로 인해 절로 눈길이 가는 자기. 

  은은한 빛으로 그 품위를 말해주는 다기 세트는 여자들을 유혹하고...  

 때론 이렇게 하나에 수백만원씩 하는 도자기가 있어 만져보다가 모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군데 군데 놓여진 장식 토우들은 까까머리 친구들과 놀던 그 때를 아십니까? 를 연상케 한다. 

 의복은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앞니가 빠진 그 시절 어린이들. 

 연탄 한장 사서 새끼줄에 꿰어가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언덕을 올라서 마을의 뒷편으로 가면 

 신라요를 비롯한 토기 공방이 있는데 토기의 제작 과정과 함께 도자기 가마 등도 돌아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전혀 다른 향가와 만엽가 (http://blog.daum.net/kmb2274)

특히 신라요의 도자기 명장 유호웅 선생께서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화장 기름병 등 드라마 소품 300 점을 직접 재현하기도 했는데....

이곳 신라요에서는 토기 만들기 체험 실습을 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든 도자기는 가마에 구워 택배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으니 
어린이가 있는 가정은 가족 단위 체험 학습을 꼭 해보고 가시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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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의 토목 공사'라고 불리우는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 민족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지도상의 총연장 길이는 약 2,700km이지만 지선까지 다 합한다면 약 6,400km에 이르니

만리를 훌쩍 넘어 만 육천리에 이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길이가 긴 건축물.



중국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에 오르기 위해 
북경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팔달령에 도착했다.

이 팔달령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곳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이며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만리장성에 쉽게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올라타야 한다.

 

 

옛적 사람들은 힘들여 올랐을 만리장성을 요즘은 편안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즐기면서 오를 수 있다.

 

 

 

장성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엄청난 규모의 만리장성이 실감되기 시작하고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발밑이 짜릿짜릿하기도 하다. 

 

 

팔달령 정상의 해발고도는 1015m이며, 산세는 비교적 험준한 편. 

장성 위에 올라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쌓다 죽었기 때문이고

일하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 하고 장성 아래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장성에 올라 계단을 밟아서 헉헉거리고 올라가다 보면 점점 경사가 심해지는데

더 올라가다 보면 아예 계단도 없는 급경사가 나타난다.

윗부분의 계단이 없는 경사에서는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 
올라가기가 정말 힘들어

다리가 약한 사람들이나 연세가 많은 분들은 더 이상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기도 한다.



팔달령의 정상 부분으로 가는 길목에 이르니 사람으로 길이 막혀 더 갈 수도 없이 밀려 있다.

왜 이렇게 길이 막혀있나 하고....겨우 뚫고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것이다.

아니....뭐가 있길래.....?

인파를 뚫고 머리를 들이밀어 보니 줄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 비석 앞에 서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비석에는 '부도장성비호한(不到長城非好漢)'라고 쓰여져있었는데

이것은 '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이란 뜻이니

중국 사람들은 만리장성에 올라보아야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진정한 남자가 되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만리장성에 오르는건가....?

그래서 그런지 사진 한 번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다 중국 '남자'들이었다.
 

 

 

중국에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가는 곳마다 왠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북경 시내 어디를 가든지 사람이 물결로 바글바글....@.@

13억의 중국 인구가 정말 실감이 났는데 여기 만리장성에도 장성이 무너질까봐 걱정될 만큼
많은 사람이 장성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리장성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엄청난 건축물에 대한 감탄보다 장성을 쌓느라고 피와 땀을 흘렸을 수많은 백성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두번째로 떠오른 것은 '하루밤을 지내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이야기였는데

만리장성을 소개한 김에 '하루밤을 지내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의 유래를 여러분들께 전해드릴까 한다.

이 이야기는 http://cafe.daum.net/yn30  에서 퍼와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음을 알려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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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 사회에서 쓰고 있는 '하루밤을 지내도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현재 사용되고 있지요.

그러나 본래 이말은 그 사용함에 있어서 그 내용과 뜻이 달리 시작되었고


그 원래 나온 배경과 그 어원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답니다.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그 스토리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진시왕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을 계획을 세우고거국적으로 많은 석공들과 부역자들을 동원시키면서


그 대(大)역사를 시작해서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었지요.


어떤 마을에 한 젊은 부부가 막 결혼해서 아주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었데요.



그렇게 재미있게 산지 불과 한 달도 다 채우지 못한 때에


남편이 그만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여 끌려가게 되었답니다.


그 때 나라법에 일단 징용이 되면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그

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데요.



그저 인편을 통해서 안부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부역장에 한 번 끌려 들어가게 되면 공사가 끝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죽거나 해야지 그러기 전에는 나올 수가 없었데요.


졸지에 그 젊은 신혼부부는 그만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그 젊고 아리따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는터라 혼자서 살아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답니다.




남편을 부역장에 떠나보내놓고 외롭게 혼자 살고있는 외딴집에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들었어요.


나그네는 여인의 남편 나이 쯤 들어보이는 젊은 사내였는데

싸릿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서며



“갈길은 먼데 그만 날이 저물었고 이 근처에는 다른 인가도 없고 해서 이렇게

아들었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그저 하루 밤만 묵어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정중하게 간청을 드렸어요.



그 여인은 혼자 살고 있기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매정하게 그리 할 수 없었던 것은 주변이 워낙 산세가 험한 데다가


또 인가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 나그네의 사정이 너무도 딱한지라 묵고 가기를 허락했더래요.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는 말을 걸었어요.


“보아하니 이 외딴 집에는 아주머니 혼자 살고있는 듯한데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으신가 보죠?” 하고 물었어요.


여인은 숨길 이유도 없고 해서 남편이 부역가게 된 그 사정을 말해 주었답니다.


그 후 밤이 깊어가자 여인의 사정을 다 알아채고 난 그 사내는

노골적으로 수작을 걸기 시작했고

여인이 쉽사리 허락하지 않자
실랑이가 거듭되었고 사내는 점점 더 안달이 나게 됐데요.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아주머니는 돌아 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 정조를 지킨들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직 당신은 너무도 젊지 않습니까?

내가 당신을 평생 책임질 터이니

나와 함께 이 곳을 떠나
멀리 다른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같이 삽시다 .”



사내는 별별 수단으로 여인을 꼬드겨 보았지만 여인은 냉냉하기만 했데요.
 

여인이 완강히 거절하면 할 수록 사내는 더 열이 나서 점점 더 적극적으로 달려 들었데요.



 

 

 


여인이 생각하기를 '깊은 이 야밤에 더욱이 인적이 없는 이 외딴집에서 나 혼자 절개를 지키겠다고 저항해 본다 한들



도저히 저 힘센 사내를 어떻게 당해 낼 것인가.....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겠구나'하고 또 생각하기를

'내가 살아나려면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는 수 밖에 없겠구나'하고 체념하였데요.


그리고 여인은 이렇게 말을 하였드래요.


“내가 손님이 원하는 뜻을 받아 드리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라고 말했드래요.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그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것이니말해 보라고 했어요. 그 때 여인은 말하기를.......



“내가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고 잠시라도 함께 하고 산 부

부간의 의리가 있으니 그냥 당신을 따라 나설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터이니

날이 밝는대로 제 남편을 찾아 가서

이 새 옷으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 주시고

그 증표로 남편의 글 한 장만 받아와 주셨으면 하는 부탁입니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 주는 심정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혀 드리고 싶어서 부탁하는것이니

그리만 해 주신다면
제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당신이 저의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저는 평생동안 당신을 의지하고 서방님으로 모시고 살 것입니다.



제 부탁을 들어 주시겠다고 지금 약속을 먼저 해 주신다면

오늘 밤 제가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라고 말을 맺었데요.


 


 


나그네는 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또 여인의 마음씨가 너무도 가상한지라

참 마음씨 고운 여인을

얻게 되겠구나 하고 내심 쾌재를 부르며 말하기를


“날이 밝는 대로 즉시 그리 해 주겠노라”고 약속하여 주었데요.

그 여인은 그 날 밤 그 사내를 받아 드렸고 그 사내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야수와 같이 달려들어
굶주렸던 그의 욕정을 만끽하게 채운 후 곧바로 골아 떨어졌데요.



 

 


아침에 누가 흔드는 기척에 사내는 그만 달게 자던 잠을 깨었어요.
 
눈을 떠 보니 어제 밤에 잠자리를 같이 했던 그 여인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어요.


밝은 아침 햇살에 비치는 그 여인을 다시 보니

밤에 보던 때보다 더 젊고 절세의 미모에다

그 고운 얼굴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니
천하의 미색 양귀비가 따로 없다고 느껴졌데요.
 
그 사내는 그만 저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다는 황홀감에 도취해



간밤의 피로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어제 밤에 한 약속을

한시라도 빨리 이행하기 위하여 길 떠날 차비를 하였드래요.




여인은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롱 속에 있는 새 옷 한 벌을 꺼내 보자기에 싸더니 그 사내의 괴나리 봇짐에 챙겨 넣어 주는 것이었지요.



사내는 잠시라도 그 녀 곁에서 떨어지기 싫었지만

약속한 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급해졌데요.


하루라도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와서 평생을 그 녀와 해로하여야겠다 는일념으로

부지런히 길을 재촉했답니다.



 

 


드디어 부역장에 도착하게 됐고 그 사내는 공사판 감독관을 찾아가그 여인의 남편과의 면회를 신청하면서 그 감독관에게 말했데요.


그 여인의 남편에게 옷을 갈아 입히고 꼭 그 사람으로부터

한 장의 글을 받아 가야 한다는 사정 이야기를......
 
그 감독관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말하기를“옷을 갈아 입히려면 공사장 밖으로 그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비우면 아니되므로 옷을 갈아 입는 동안

누가 그 사람대신 그 자리를 맡아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공사장의 규칙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옷을 갈아 입을 동안에

당신이 잠시 그리해 줄 수 있다면 당신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오.”



사내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져 그리 하겠노라고 하였어요.


그래서 사내는 그 감독관을 따라 들어가 여인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고

가져 온 옷 보따리를 여인의 남편에게 건네주었어요.



여인의 남편이 감독관을 따라 옷 보따리를 들고 나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사내는 그 여인의 남편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데요.



 

 


여인의 남편은 아내가 보내 준 보자기를 펼쳤어요.


거기에는 자기의 새로 지은 옷 한벌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어요.


자기를 이토록 생각해주고 좋은 새 옷을 지어 보내준 아내의 정성에


눈물을 훔치며 저고리를 들어올려 입으려 하자 옷 속에서 편지같은 것이 떨어졌어요.


펼쳐 보니......


“당신의 아내 해옥입니다. 당신을 그 공사장에서 끌어 내기 위하여  이 옷을 전한 남정네와 하루 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 하루 밤을 같이 자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 입는 즉시
곧바로 저의 집으로 돌아오시고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없으시거나 허물을 탓하시려거든



그 남자와 다시 교대하여 그 공사장안으로 들어 가십시오.”


남편은 생각하기를 자신을 부역장으로부터 빼내 주기 위하여



외간 남자와 하룻밤을 자기까지 하면서 그 어려운 일을 해 낸 아내를 용서하고


그녀와 평생 같이 오손도손 사는 것이 백 배 천 배 낫다고 생각되었고,


생각하기를 어느 바보가 '만리장성'이 완공되어져야 풀려 날 수 있는

부역장으로 다시 들어가 교대를 해 주겠는가? 하고
 
그 남편은 곧장 옷을 갈아 입는 즉시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가 아들 딸 낳고



현명한 아내 덕분에 행복하게 여생을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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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과 달리 천진은 관광할 곳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산업 경제 도시이다.

천진의 시장이나 상가, 일반 주택지는 돌아보았지만 딱히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은 둘러보질 못 해서

천진의 관광 명소를 소개해달라니까 천진에선 '고문화거리'외엔 달리 갈만한 곳이 없단다.

 

천진의 발상지로 '고향의 종적'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천진 고문화거리'는

중국의 전통 문물과 양식을 한 눈에 볼 수있는 문화의 거리로 '진문고리'라는 현판의 정문에서부터 시작해 1㎞ 남짓되는 구간에 펼쳐져 있다.
 


천진시는 1986년에 이 옛 거리를 청조 때의 전통적인 풍모로 복원했는데 1991년에는 천진 십대 명소 중 한 곳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주로 문화용품. 고대 서적. 민속용품. 전통적인 수공업품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상점 안의 상품은 대부분 평범한 것들이 많다.


비록 유리창 거리와 같은 고급품은 없더라도 한집 한집 살펴보다보면 재미있는 완구. 그림책 등을 진기한 물건들을 제법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국내외 손님들의 인기를 끌고 있어 '천진의 진주'라 불리우기도 한다. 

 

우리나라 인사동과  비슷하지만 규모도 훨씬 크고 전통적인 청조의 건물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서 인사동 보다는 잘 정돈된 느낌이 든다. 

 

거리 좌우로 짙은 회색의 단층, 2층짜리 청조 건축양식의 선물가게가 정렬되어 있고 가운데는 각양각색의 노점이 들어차 있다. 


 

거리 중간 중간에는 민속놀이를 주제로 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조각상을 통해서 중국의 전통 놀이를 방문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차나 음료수 등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각가지 먹을 거리도 늘어서 있어 구경하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도 있다.

 


 
진열되어 있는 팽이는 우리네 것과 모양이 꼭 같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팽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연날리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 각가지 화려한 모양의 연을 파는 가게도 있다.

 

 오래 된 듯한 천진시의 지도에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지만 너무나 귀중한 자료인 듯.
 

 
진열품의 대부분은 사실 이렇게 약간 조잡한 관광 상품이다.
 


각가지 동전,고서적,자물쇠등 옛날 물건이 진열되어 관광객들을 기다리나 진품보다 모조품이 판을 치고 있으니 속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진품처럼 포장을 한 모조품들이 대부분이어서 골동품인 줄 알고 사 온 물건들이
알고 보면 흔해빠진 관광상품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진흙 속의 진주 같은 물건을 건지기도 한단다.
 
여기서 팔리는 상품가격은 천차만별, 한마디로 부르는게 값이니 흥정은 기본......일반적으로 처음 주인이 제시하는 가격에서 절반 이하로 깎으면 된다고 한다.
옥 제품이나 돌제품도 많고 조그만 자연석에다 금방 도장을 새겨주는 가게도 성업 중이었다. 
 

 
고문화 거리 중간 쯤에 천진의 변천사를 구경할 수 있다는 천진민속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보니 박물관 입구를 막고  아저씨들의 술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민속 박물관 입구를 다 막고 앉아 대낮부터 술판이라니......정말 황당했지만 비키라고 할 수가 없어서 문 어귀에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고문화 거리 입구로 돌아나오는 길에 길의 좌판 옆에 표범 가죽이 카트에 걸려 있길래 처음으로 보는 신기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 근처에 있던 깍두기 머리를 한 남자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내게로 뛰어 오는 것이 아닌가....

헉....!  위급한 상황을 몸으로 직감한 나.....완전 초고속으로 걸음아....날 살려라~~~하고 달려서 군중 속으로 숨었다.
한참이나 도망 가다가 슬쩍 뒤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가 길 한가운데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간담이 서늘해져서 다시 고문화거리 쪽으로 가지 못 하고 골목 귀퉁이에 숨어 있다가 
만나기로 한 친지의 차가 고문화거리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걸 보고 얼른 달려가서 차에 올라타고 줄행랑을 놓았다.
휴.......십년 감수....라는게 이런 경우를 말하는거겠지?

알고보니  표범 가죽 불법 거래 현장을 사진 찍은 것....여자 혼자인 줄 알고 만만하게 여긴 그들에게 붙들렸더라면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카메라를 그 자리에서 빼앗겼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머나먼 천진 땅에서 인신매매꾼들에게 팔려갔을지도....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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