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암각화로 꼽히는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경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한번도 찾아보지 못한게 마음에 걸려서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토요일 오전에 반구대 암각화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내남네거리에서 포석로를 따라 좌우로 유적지가 펼쳐져 있는 한가한 길을 쉬엄쉬엄 따라 가다가

구불구불 멋드러진 소나무가 우거진 삼릉과 용장휴게소를 지나

내남농공단지에서 큰 도로로 접어드니 도로의 이름이 '반구대로'다.

양산 가는 길에 자주 오가던 도로의 이름이 반구대로였다니.....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도로의 이름이 오늘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주차장에 이르러 차를 세워놓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 숲길로 들어서니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싱그럽다.

 

 

 

 

바깥 세상은 작열하는 태양이 내려쪼이는 한더위지만 숲길의 바람이 등허리에 맺힌 땀을 살포시 식혀준다.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군데군데 지렁이가 여기저기 꿈틀거리는 숲길 사이로 드리운 햇살이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한참을 걸어가니 탁 트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반구대이다.  바로 건너편 산기슭 암벽에 암각화가 있는 것이다.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본 후 암각화가 있다고 짐작되는 곳으로 망원경을 겨누고 한참 살펴보았다.

하지만 암각화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도대체 암각화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 부분 파란 풀이 나 있는 윗부분이 암각화가 새겨진 부분이라고 하는데.......

 

 

 

 

200mm 망원렌즈로 당겨서 몇장 찍어 보았다. 확대하면 암각화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까?

 

 

 

 

사진이 선명하지 않은 탓일까? 수천년 세월의 흐름에 암각화가 희미해진 것일까?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확대해 봐도 암각화 그림 상태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었다.

반구대 근처의 사연댐의 수위가 차오르는 1년 중 몇개월은 물에 잠겨 있다는 암각화.

물에 잠긴 암각화가 아니라 물 위로 드러난 암각화의 존재와 주변형세를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서야 했다.

 

 

 

 

반구대 앞을 떠나 약 1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울산암각화박물관으로 가서 암각화 그림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1층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다양한 암각화의 사진.

이렇게 많은 암각화가  존재하고 있었다니!

 

 

 

 

2층에는 반구대 암각화의 모형이 커다란 벽면에 새겨져 있어 반구대에서 확인하지 못한 암각화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모형에는 암각화에 새겨진 여러 형상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실제의 암각화도 이렇게 선명하면 좋으련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물 속에서 침식되기를 거듭한 결과 지금은 형상을 그 형상을 쉽게 관찰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1971년에 처음 발견되어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의 크기는 가로 8m, 세로 2m정도이다.

 

 

 

 

반반하고 매끈거리는 병풍같은 바위 면에 고래, 개, 늑대, 사슴, 호랑이, 멧돼지, 곰, 토끼 , 여우, 거북, 물고기, 사람들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들이 표현되어 있는데 최근 발견된 11점까지 함하면 모두 307점이다.

 

 

 

 

이곳에 표현된 동물들은 주로 사냥 대상의 동물이고 동물 가운데는 교미의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배가 물룩하여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동물의 모습도 보인다.

 

 

 

 

어떤 그림은 두 손을 얼굴에 모으고 춤을 추는 주술사의 모습과 그 아래 새끼를 업은 듯한 귀신고래와 왼쪽에 거북의 모습 그리고 U자형의 그물에 갇힌 호랑이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 사람들이 동물들이 많이 번식하여 사냥거리가 많게 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고기잡이배와 그물에 걸려든 고기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실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주술적 행위로 보는데 아마도 당시에 반구대 지역이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빌고 그들에 대한 위령을 기원하던 주술적인 장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년이면 반 이상 물에 잠기는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카이네틱 댐(Keinetic Dam)이란 대안을 내어놓았다고 한다.

카이네틱 댐이란 암각화 전면에 수위 변화에 따라 높이 조절이 가능한 투명막(폴리카보네이트)으로 된 댐인데

암각화를 중심으로 앞쪽에 철근을 이용한 기초를 한 후 약 30m 길이의 원형 제방을 쌓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쓰면 암각화 바로 앞에다 시설물을 고정하기 위한 철근을 박아야 한다는데

이는 암각화 앞 80m 떨어진 지점에 생태 제방을 쌓자는 울산시의 안 보다 더 주변경관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에서 내놓은 카이네틱댐의 설치안 도면을 보면 반구대 암각화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만일에 카이네틱 댐을 이용한 임시제방건이 국회 통과를 한다면 이후에 반구대 암각화를 찾는 분들은 암각화는 보지 못하고 암각화 주변에 플라스틱 제방이 둘러싸 있는 흉칙한 모습만 보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울산시의 물 문제도 해결하고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도 하는 방법이 정녕 이런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일까?

반구대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내내 무겁다.



Copyright 2014.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11월 하순으로 접어드니 남쪽에 자리잡은 경주의 단풍들도
그 아름다운 날개를 떨구고 낙엽이 되어 이리 저리 바람에 쓸려다닌다. 
매서운 겨울이 오고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는건가 생각하니
괜스레 떠나려고 하는 가을이 아쉬워 붙잡고 싶어진다.

그런데 남녘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니 
가지산 석남사의 단풍은 아직도 여전히 붉게 타고 있다고 한다.
가지산 석남사라면 경주에서는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  
일하던 중에 잠시 시간을 만들어 가지산 석남사로 떠나본다. 


경부고속국도에 들어서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자니 이내 언양 JC가 나타난다.
톨게이트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이내 석남사 입구이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길을 건너려고 눈을 들어보니 길 건너편이 온통 붉은 물결이다.





아직도 이렇게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단풍잎을 자세히 보니 하나하나가 정말 고운 빛이다.
제대로 물이 들지 않았다거나 썩은 이파리 하나 없이 모두가 붉게 붉게 타오르고 있다.

거기다 단풍이파리가 다른 곳의 단풍과 비해서 현저히 크기가 작다.
이렇게 이파리가 작아서 늦게까지 붉게 타오르고 있는걸까?




어설프게 보이는 버스 정류장도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더욱 운치있어 보인다.
왠지 '가을우체국 앞에서'가 아니라 '가을정류장 앞에서'라는 노래라도 지어 불러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버스 정류장 안에서 보니 창 너머로 보이는 단풍나무는 누가 그린 것 처럼 구도가 완벽하다.
그야말로 액자에 넣어놓은 최고의 그림이다.


 



붉게 타는 단풍길을 뒤로 하고 일주문으로 들어서본다.




일주문 안에는 아쉽게도 단풍나무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양쪽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었고 떨어진 낙엽들은 길가에 포근하게 쌓였다.


 걸어갈수록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온다.



 
절집에 가까워올수록 나무들은 더 앙상해지고 늦가을의 쓸쓸함이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전해져온다.


 


한참을 걸어가니 드디어 절집이 나타난다.


 



가지산(伽智山)에 위치한 석남사(石南寺)는 신라 헌덕왕 16년인 824년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절이 위치한 가지산은 예로부터 산수가 깊고 그윽하며 빼어난 준령으로 천연절경을 이룬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가지산은 다른 이름으로  석안산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석남사(石南寺)는 석안산의 남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석남사가 유명해진 것은 이곳이 비구니들의 수행 도량으로 이름난 절이기 때문이다.



창건된지는 오래 된 사찰이지만 여러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옛모습은 찾기 힘들고
지금 석남사의 면모는 비구니 인홍 주지승이 취임한 1957년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문화재로는 창건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남사 부도(보물 369호)와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5호인 삼층석탑, 울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4호인 석남사 수조가 있을 뿐이다.


  

절 마당 한켠에 있는 석남사 수조는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재료는 화강암이다.


 

절집은 오래 되지 않았으나 여승들이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경내가 깨끗하고 담장 하나도 오밀조밀하기 이를데 없다.




담장 옆에는 아직도 꽃잎을 떨구지 않는 구절초가 수줍은 자태를 드러내었다.


 이름난 승려들의 유골을 넣어둔 돌탑을 부도라고 하는데
석남사 부도는 이 절을 처음 창건한 도의국사의 사리탑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부도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석남사 부도는 보물 369호로 지정되었다.

 



절집과 부도를 돌아보고 내려오니 선원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스님과 고양이가 눈에 뜨인다.

 

연신 눈치를 보며 빵 부스러기를 먹고 있는 절냥이가 너무 안쓰럽게 보인다.

절냥이야~~ 널 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고 천천히 먹으렴~

절집을 다 돌아보고 다시 일주문 밖으로 나와서 다시 보아도 역시 할말을 잊게 만드는 단풍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뒤로 하고 어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떠나는 가을을 보내기가 너무나 아쉬워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본다.


Copyright 2011.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