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브룬 궁전과 함께 비엔나의 랜드마크라 불리우는 슈테판 성당(Stephansdom)을 찾아 보았다.

비엔나 구시가지 중심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슈테판 성당 앞에 이르니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아래 성당의 위용이 정말 대단하다.




전체적으로 성당이 침침해 보인다. 야간 조명이 약해서 그런가? 
자세히 살펴보니 성당 전면과 남탑 일부가 공사중이라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아름다운 슈테판 성당의 완벽한 모습을 대할 수 없어 약간은 아쉬웠지만
유럽의 많은 유명 성당들이 대부분은 언제나 보수공사 중인걸 많이 보았던지라 여기서도 그런가 보다....할 수 밖에 없었다.





12세기 중반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1340년에 완성된 슈테판 성당은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나,
1359년에 고딕양식으로 재건축되었고, 실내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비엔나 사람들은 이르기를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이 비엔나의 영혼이라면
슈테판성당(Stephansdom)은 비엔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심장이라고 말한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전쟁의 포화도 견디어낸 슈테판 성당은 그야말로 비엔나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밤늦은 시간 도착하여 외부만 둘러보고 간지라 다음날 낮시간에 다시 성당으로 가보았다.
입을 다물지 못 하게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함께 밤시간에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지붕의 사라센 문양이 눈에 확 들어온다.





남탑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앞에 선 남녀가 너무나 왜소하게 느껴질 만큼 성당의 규모가 크다.
멀리서 찍지 않으면 제대로 전체의 모습을 담을 수 없는지라 성당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보이는데로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본다.

















성당 외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성당 정문으로 들어가 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성당 정문은 '
거인의 문'(리젠토르: Riesentor)이라고 부른다.
문의 이름은 '거인의 문'이지만 문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문으로 들어가니 성당 입구 벽의 문양이 참 특이하다.
돌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마치 노끈을 정교하게 엮어서 세워둔 것 같이 보인다.





슈테판성당은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장례 미사를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이든과 슈베르트가 소년시절 성가대원으로 활약한 곳이기도 한 곳 답게 엄청나게 큰 파이트 오르간도 눈에 뜨인다.




중앙 제단 뒷편에 있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2차 대전의 포화 중에서도 손상을 입지 않고 온전히 보존이 되었다.





슈테판성당의 성직자들은 2차 대전의 와중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유리창을 떼어 지하 카타콤(지하묘지)에 숨겨 두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중세 건축의 당시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당 천정을 줄 지어 떠받치는 큰 기둥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뜨이는 기둥은 망토를 걸친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석상이다.
특이한 것은 성모의 망토 안에 여러 사람의 얼굴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성모의 망토에 싸여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석상은 
'
보호의 망토를 입은 성모(Madonna with the Protective Cloak)'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조각품이다.




슈테판성당의 카타콤에 있는 작은 항아리에는 마리아 테레자 여제의 내장을 비롯해서
아름다운 왕비 엘리자베트(씨씨)의 내장 등 합스부르크 왕조 인물들의 내장들이 귀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다시 성당 바깥으로 나와 이번에는 높이 솟아있는 탑들을 살펴본다.



늘 흐리고 잔뜩 찌푸린 비엔나의 겨울 오후에도 가끔 이렇게 파아란 하늘이 드러날 때가 있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이고 있는 지붕 장식은 하나하나가 다 정교한 예술 작품이다.








정문 양쪽에 서 있는 두개의 탑은 모양이 이교도 사원의 탑과 흡사하게 생겨서 '이교도의 탑'이라 불리운다.





슈테판 성당의 뒷편에 있는 탑은 각각 남탑과 북탑이다.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남탑이 완성된 것은 1359년이었고
1450년, 프레데릭 3세 황제 때에 북탑의 건설이 착수되었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 



 



독수리탑이라고도 불리우는 북탑은
남탑의 장엄함에 비추어 규모면에 있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남탑과 대칭하여 세우려 했던 북탑은 1511년에 꼭대기에 르네상스 스타일의 장식만 추가된채 공사가 중단되었다. 
137m인 남탑에 비해 북탑의 높이는 60m로 규모가 훨씬 작지만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남탑에 비해서 북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올라갈수 있다.
전망대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인 품메린(Die Pummerin,큰 종)가 있는데 무게는 21톤이나 된다고......




슈테판 성당의 자랑은 뭐니뭐니 해도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137m 높이의 남탑이다.
비엔나의 사방 어디서나 볼수 있는 남탑은 마치 등대와 같아서 
시내에서 방향을 잃으면 슈테판성당의 남탑을 보고 찾아오면 될 정도이다.

비엔나 사람들은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슈테판성당을 보고 이제야 비로소 집에 돌아온듯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고 하며 
슈테판성당의 남탑을 '슈테플(Steffl: Old Steve)'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하고 있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비엔나의 랜드마크 슈테판 성당.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는 137m 첨탑의 343개의 계단을 헐떡이며 올라가서 찍은 사진은
다음 포스트에서 소개해드리길 약속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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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건축치료사로 불리우는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이 전시된 비엔나의 마술관 쿤스트하우스빈 바로 옆에는 그가 디자인한 레스토랑 '둥겔분트'가 있다.
레스토랑 이름 '둥켈분트'는 '암다채(暗多彩)'란 뜻으로
훈데르트바서는 원색인 칼라에 물기가 더해져서 더욱 빛을 발하는 어둡고 다채로운 색감 둥겔분트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둥겔분트는 쿤스트하우스빈  건물에 바싹 붙여서 지어졌는데 앞 마당은 온통 나무와 넝쿨식물로 뒤덮였다.





트렌치 코트를 입은 오스트리아 신사의 뒤를 따라 둥겔분트의 문을 밀고 들어가 본다.





쿤스트하우스빈의 블랙과 화이트의 체커보드 무늬의 컨셉을 따라 둥겔분트 역시 블랙과 화이트의 체커보드 무늬로 뒤덮여 있다.





블랙과 화이트가 반복되는 체커보드 무늬지만 일정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고 크거나 작고, 삐뚤거나 깨어져있으며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등 하나도 일정하지 않은 무늬가 레스토랑 바닥 전체를 뒤덮고 있고





바닥 뿐 아니라 쿤스트하우스빈과 이어진 벽에도 체커보드 무늬가 이어지는데 역시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무늬가 일정하지 않지만 난잡하지 않고 파격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균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정감이 들게 한다.





눈에 뜨이는 디자인 외에 레스토랑 내부가 온통 살아숨쉬는 식물들로 뒤덮여있는 것 또한 둥겔분트의 특징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식물의 공간을 옥상이나 옥내 정원으로 다시 만들어 
살아갈 터전을 잃은 식물들에게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럼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파라다이스를 이루길 원했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모든 건물에는 어디든 이와 같이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온실처럼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천정이 유리로 된 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로 보인다.





모든 작품의 원료를 자연에서 가져왔지만 평생 자연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았던 훈데르트바서는 
버려진 빈 병이나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건축 자재로 활용하기도 했는데
둥겔분트에서는 이렇게 깨어진 타일과 색유리를 모아 붙여 예술로 승화시킨 멋진 테이블도 있어 앉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레스토랑에 왔으니 이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여 음식을 맛볼 차례다.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앉은 테이블 역시 훈데르트바서의 멋진 회화 작품이다.





식사 전에 탄산이 섞인 '알름두들러(Almdudler)'라는 음료를 먼저 맛본다.
살짝 찝찔한 느낌이 나면서 톡 쏘는 맛! 음...그다지 기분좋은 맛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어찌나 탄산 음료를 좋아하는지.....!
생수인줄 알고 사서 열어보면 어김없이 탄산수여서 시원한 생수 한병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기억이 난다.





스프와 메인 디쉬로 이루어진 간단한 점심 메뉴에서 먼저 나온 호박 스프는 정말 엄청나게 짜다.
우리나라 사람이 소금 섭취가 많다지만 비엔나에서 이날 먹은 스프는 너무 짜서 물을 타서 드시는 분도 있었다는.....^^;;





메인 디쉬는 파스타와 돼지고기가 한접시에 담겨져 나왔는데 요리의 이름은 '슈바인츠라구나'이다.
스파게티는 평범한 맛이고 돼지고기는 살코기만으로 되어 있어 약간 퍽퍽한데 소스 역시 많이 짠 편이고
한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의 양이 남자들도 다 먹기 힘들 정도로 많아 필자는 다 먹지 못하고 남겨야만 했다.





레스토랑 둥겔분트를 떠나기 전에 꼭 들려야 할 곳은 화장실이다.
지난번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휴게소 아우토그릴 화장실도 구경하셨겠지만
이곳 둥겔분트의 화장실 역시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남녀가 마주보고 있는 타일 작품 가운데 문을 밀고 들어서면 남녀 화장실로 갈라지게 된다.





세면대 앞에 서니 쪼끄만 거울이 정말 귀엽다.
커다란 전신 거울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이 보기엔 다소 답답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개성 만점인 프레임 속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는 기분좋은 경험이다.
거기다 가운데를 톡 건드려 멋지게 깨어진 거울이라니......!





화장실 안도 역시나 예술 작품이다.
늘 하얀 타일이 반듯하게 정열된 화장실만 보다가 사선으로 눕기도 하고 깨진 것을 이어붙이기도 한 타일을 볼 때의 신선함이란.....!
편안하게 앉아 볼일을 보며 좌우의 멋진 예술 작품을 즐기는 것 또한 훈데르트바서의 화장실에서 맛보는 특별한 경험이다.





식사를 마치고 둥겔분트 마당으로 나오니 이곳에서는 나무에서 떨어져 뒹구는 낙엽조차 멋스럽다.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어 생활로 녹아드는 곳, 바로 훈데르트바서의 레스토랑 둥겔분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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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는 우리의 외피와 의복에 이어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집과 건물을 세번째 피부라고 표현했다.
행복한 집과 다채로운 집을 꿈꾸던 그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만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스스로의 창의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城)을 짓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집은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 볼 때 누가 사는 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주거지의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이라도 스스로 만들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창문의 권리'라고 불렀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쿤스트하우스빈,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등 그가 디자인한 모든 건물은
제마다 모양이 다른 창문으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뜨이는 건물은
오스트리아 그라쯔(Graz)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블루마우 온천 리조트이다.

다양한 모양과 색상이 공존하는 이곳의 건물은 땅에서 금방 솟아난 듯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있는 느낌을 전해주고
금방이라도 동화 속의 난장이가 집안에서 불쑥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상상마져 들게 하며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를 그대로 살려서 지은 집들은
유선형으로 물결치듯 서로 이어지다가 땅으로 연결되며 언덕으로 이어진다.
모든 지붕은 1m이상 흙으로 덮고 옥상 정원을 만들었는데 지붕이 온통 잔디와 나무로 우거져 있어
언덕을 산책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붕 위로도 돌아다니게 된다.

312개의 객실이 있는 블루마우 온천 리조트에는 창문이 무려 2,200개나 된다.
하지만 창문이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모양의 창문은 하나도 없다. 

블루마우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2,200개의 서로 다른 창문을 통하여
그동안 억눌렸던 개성을 표현하고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동화의 성(城)의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이다.

2,200개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 블루마우의 창문들.
그중 일부를 사진으로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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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와 왈츠의 본 고장, 음악의 도시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비엔나.
비엔나 시내에는 미술 전시를 알리는 시설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시선을 끈다.

13세기 후반 이후 600년간 합스부르크 왕가는 비엔나(빈,Wien)을 황제의 도시로 삼고
비엔나를 기점으로 유럽 대부분의 영토를 지배하였는데
권력의 척도가 얼마나 많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가로 결정되던 시대에
유럽 최고의 미술 작품들이 비엔나로 몰려든 것은 당연한 결과.

이와 같이 유럽 최고의 화려한 미술 문화를 지니고 있는 비엔나에는 
빈 미술사 박물관, 벨베데레 궁전, 알베르티나 미술관 등 셀 수 없이 많은 미술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클림트, 에곤 쉴레 등 '빈 분리파'의 작품을 마음껏 관람할 수 있는 곳은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 건물의 길 건너편에 위치한 
박물관 지구 뮤지엄 쿼터(뮤제움스 콰르티에,Museums Quartier,MQ)이다.





2001년 6월 미술관 단지로 개관한 이곳은 미술을 축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가 망라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약 일만평 가량의 부지인 뮤지엄 쿼터는 놀랍게도 예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굿간이었다고 하는데
전체 틀을 둘러싼 마굿간의 형태를 그대로 남겨둔 채로 전시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젊은 복합 문화 공간인 이곳 뮤지엄 쿼터에는 레오폴드 미술관, 현대 미술관 무목(MUMOK), 쿤스트할레 빈,
줌 어린이 미술관과 담배 박물관 같이 전시 위주 공간과 함께 건축 전시 및 공연 이벤트 공간인 건축 센터, 무용 이벤트 공간인 탄츠 콰르티에,
실험적인 뉴 미디어 전시 공간인 퍼블릭 넷 베이스, 어린이 전용극장과 영화관, 디자인 숍, 카페테리아 등
10 여개의 독립적인 공간이 유기적으로 커다란 단지를 이루고 있어 관람객들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이 복합 미술 단지에서 필자가 돌아 본 곳은 레오폴드 미술관이다.
미술관 앞에 이르러 건물을 바라보니 아니! 이게 그 유명한 레오폴드 미술관이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고전적인 건축 양식이 시내 건물의 주를 이루고 있는 비엔나의 미술관 건물이 이리도 썰렁할 수가 있나.....
아무런 장식도 없고 마치 상자처럼 네모 반듯한 기능성 위주의 미술관이라니!
도무지 예술성도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현대적이지도 않는 황당한 미술관 건물 외관에 약간은 실망감이 앞선다.


레오폴드 뮤지엄은 2001년 개관했다고 하니 정말 역사가 짧은 미술관이다.
하지만 루돌프 레오폴드와 그의 아내가 수집해 온 5,000점 이상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은 현대 오스트리아 회화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컬렉션을 자랑하는데 
쿠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등 '빈 분리파'의 작품을 특화 전시하여 
10년이 안 되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진주 같은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20점이나 되는 에곤 쉴레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세계 최고의 에곤 쉴레 미술관으로도 불리우기도 한다.





필자가 갔을 때에는 클림트, 에곤 쉴레, 콜로먼 모저 등 빈 분리파 작품 외에 세잔느, 피카소, 쟈코메티  특별전도 열리고 있었는데
에곤 쉴레 마니아라면 꼭 들려보아야 할 레오폴드 미술관과 소장 작품 소개는 다음 기회에 올려드리기로 하고......





레오폴드 미술관의 멋진 작품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미술관 문을 나서니 어느새 저녁 시간.
미술관 문을 나서니  어.....! 아까와는 바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동행한 분들의 "우와~!!!!"하는 감탄 소리에 뒤를 돌아 미술관을 보니 세상에나~!
창고 같이 밋밋하고 심심하기만 하던 레오폴드 미술관 벽에 아름다운 영상이 그려져 있다.





MQ로고를 새긴 비행기가 날아가며 떨어뜨린 수많은 선물 상자가 미술관 벽에 가득 하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사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가 바쁘다.
필자도 질새라 무한 셔터질을 반복했다.
이런! 이런 멋진 야경을 위해서 삼각대가 필수인데....!
무거운 삼각대를 가지고 올 수가 없어 손각대로만 이런 풍경을 담은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화려한 PIGI 쇼는 미술관 벽 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레오폴드 미술관 뿐 아니라 뮤지엄 콰르티에 마당 바닥 전체가 화려한 영상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낮에는 미술관 마당에 웬 비닐 하우스인가? 어울리지 않게.....! 라고 생각했던  가건물들도 모두 화려한 색색의 전구들로 치장을 했다.





대체 뭐하는 곳이지....?하고 들어가 보았더니 비닐로 둘러싸인 가건물들은 음식물과 주류등을 파는 가건물들이다.
안에는 비트가 강한 음악 속에서 흔들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비엔나 젊은이들로 열기가 가득했다.





낮과 밤의 모습이 이리도 다를 수가 있다니.....!
죽어 박제된, 격식만 차리고 있는 미술관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숨쉬고 즐기는 뮤지엄 쿼터의 모습들은 못내 부럽기만 했다.





이곳에서 비엔나의 젊은이들과 함께 음료를 나누며 비엔나의 예술과 낭만을 만끽해보고 싶었지만
느긋한 밤시간을 보내기엔 너무나 여유가 없는 여행자인지라
새로운 얼굴로 변신한 뮤지엄 쿼터의 야경을 뒤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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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고도 길게 느껴지는 유럽의 겨울 밤.
오후 2시만 되어도 마치 저녁 5시 해질녘 같은 느낌이 들고
저녁 5시 쯤 되면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시계를 보지 않으면 한밤중인가 생각될 정도인데
어두워져 춥고 스산한 느낌마져 드는 비엔나 거리에서도 유난히 따스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

비엔나에 여행오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린다는 전통 레스토랑 '호이리게'.
호이리게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는 그린칭 마을은 도심에서 좀 떨어진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마을의 전통적인 분위기는 비엔나의 고풍스런 맛을 한결 더해주고 있다.





'호이리게(Heuriger)'란 '그해 생산된 포도로 만든 햇와인(Heuriger Wein)' 이나 그런 '와인을 파는 선술집같은 레스토랑'을 이르는 말이다.

호이리게(Heuriger)는 올해의란 뜻을 가진 Heurig에서 기원되었다고 하니 오스트리아산 보졸레누보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되실 듯.



그린칭 마을에서도 가장 유명한 호이리게는 단연 Bach & Hengl.
호이리게 Bach & Hengl로 들어서니 노란 불빛과 함께 오스트리아 전통 장식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바깥에 탁자를 베풀어놓고 식사를 하며 호이리게를 즐기곤 한다는데
날이 추운지라 마당은 쓸쓸하기만 하여 레스토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독일 메르켈 총리와 클린턴도 왔다간 집이라고 알려진 Bach & Hengl의 벽에는
얼굴만 봐도 이름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빼곡이 붙어 있다.
사진이 깔끔하게 붙어 있으니 유명인들의 싸인이 붙은 우리나라 맛집보다는 어쩐지 품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음식은 주문하면 웨이터들이 테이블까지 가져다주는 부페식으로 
닭고기, 돼지고기, 소시지, 각종 샐러드와 피클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닭고기, 돼지고기, 모듬 소시지, 감자, 샐러드 등의 모듬 세트는 1인당 12.5유로 정도인데
이렇게 큰 그릇에 담겨져 나오므로 개인 접시에 덜어먹으면 된다.





화이트 호이리게(Heuriger, weiB)를 시키면 이렇게 큰 유리병에 담아서 내어오는게 특이한데
맑고 투명한 호이리게의 빛은 보는 이들의 미각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주 약한 음주에도 '깨꼬닥'하고마는 필자이지만 비엔나 특산 호이리게를 맛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조금씩 맛을 보았는데 맛은 보졸레누보와 거의 비슷한거 같았다.(술맛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내릴 수 없는 필자라 정확치 않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호이리게를 소다수와 섞어 마시기도 한다는데 대체 어떤 맛일지 그것 또한 궁금하다.





샐러드 후에는 스프가 나온다. 손잡이 달린 스프 컵에 담겨나온 스프는 보기에는 그냥 멀건 국물이다.





스푼으로 건더기를 떠보니 우리 소면같은 국수가락이 건져진다. 이것도 스파게티 종류인가....?
맛은 고기국에다 국수를 만 것 같은 맛이다. 거부감도 없고 맛도 제법 훌륭하다.





스프를 먹고 나니 감자와 함께 메인 요리가 나왔다.
본 고장 소시지와 정통 햄, 닭고기 등.....접시에 하나 가득 담긴 육류 들이 보기만 해도 침이 줄줄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줄줄이 비엔나'라는 CF로 유명해졌던 비엔나 소시지(vienna sausage)는
미리 조리한 원료육을 작은 창자 굵기로 성형하여 훈열, 가열한 제품으로
비엔나에서 처음 생산되기 시작해서 비엔나 소시지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4cm정도의 작은 소시지를 비엔나 소시지라고 말하는데
본 고장 비엔나 소시지는 사진에서와 같이 15cm 길이의 양 내장에 충전된 소시지로 독일어로는 Wienner라고 표기한다.




소시지, 햄, 닭고기, 감자.....등을 한 접시에 세팅해 보았다.
육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환상적인 음식이지만 채식을 주로 하는 한국인들이라면 왠지 약간은 느끼한 식단.....
그것도 바로 앞에 산더미 같이 쌓인 각종 햄, 소시지들을 보며 먹으니 몇개 못 먹고는 금방 질려 포크를 놓아야 했다.

기타와 바이올린, 아코디언의 앙상블로 특징지어지는 슈라멜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호이리게를 찾는 사람도 많다는데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두 팀이나 와 있었던터라 
이들을 위해 비엔나 전통 음악 보다는 만남 등 한국 음악을 더 많이 연주한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아....그리고 이 연주는 무료가 아니므로 반드시 팁을 준비해서 주어야 한다고 한다.





멋진 슈라멜 음악을 들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쳐가니 드디어 후식이 나왔다.





후식은 오스트리아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사과 파이 아펠 스트루델(Apfelstrudel)이다.
아펠 스트루델은 크기가 보통 가로 30cm 정도 되는 두툼한 크기의 빵으로 
그 안에 사과를 통으로 썰어 넣고 말린 건포도를 함께 넣어 잘 구워낸 파이이다.





우리는 느끼한 육류를 먹고 난 후에 엄청나게 달콤한 파이나 케이크를 후식으로 먹는 서양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서양인들은 속이 썩도록 달콤한 파이나 케이크가 육류의 느끼함을 없애준다고 생각한단다.
하긴.... 술 먹은 다음 날 해장으로 계란 후라이나 햄버거를 먹는다니......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 같다.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아펠 스트루델.
하지만 속이 뒤집어지도록 달콤한 스트루델을 햄과 소시지, 닭고기등 육류를 잔뜩 먹은 후에 먹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뜨겁고 얼큰한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면서도 "어...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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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동화처럼 아름다운 마을 블루마우로 가기 위해서는
비엔나에서 베른바흐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고속도로 상에는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특이한 모양의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다.





차에서 내려 휴게소 건물을 보니 "아!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이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직선을 거부하면서 모두 곡선으로 지어진 휴게소 건물 벽마다 강렬하게 내리그어진 원색의 선들.

그의 철학에 따라 유리창의 색깔과 모양 역시 어느 하나도 같지 않고 제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휴게소의 이름은 아우토그릴(Autogrill). 원래 이름은 바드 피샤우(Bad Fitchau)이다.





둥글게 휘어진 계단을 올라 휴게소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니

둥그런 천정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둥, 그리고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에는 어디든지 있는 분수가 여행자를 반긴다.




외부의 모습과 달리 레스토랑의 내부는 훈데르트바서의 분위기가 다소 약한 느낌이 든다.





곡선으로 처리된 인테리어, 다양한 색상의 타일로 덮은 바닥이나 천정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 있으나

내부 인테리어는 어딘지 살짝 특징을 잃은 느낌이 드는데......





알고 보니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이 건물의 초창기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색깔이 짙었으나
휴게소의 소유가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간 이후에 인테리어가 상당 부분 바뀌었다고 한다.



레스토랑에서 비엔나의 자랑거리인 '멜랑쥬'커피 한잔(3.78 유로)을 맛본 후 1층으로 내려가본다.





휴게소 1층에는 아담한 슈퍼마켓이 자리잡고 있는데  
슈퍼마켓의 바닥 또한 훈데르트바서의 예술 감각이 조화를 잘 이룬 하나의 작품이다.






하지만 1층에서 빠뜨리지 않고 돌아보아야 할 곳은 수퍼마켓이 아니라 바로 화장실이다.
입구로 들어서니 손으로 만지면 파란 물감이 묻어날 것 같은 문과 알록달록 개성있는 모양의 타일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화장실을 구경하기위해 휴게소에서 쉰다고 할만큼 오스트리아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화장실인데
훈데르트바서의 초창기 디자인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생활 속의 미술관이다.





어렸을 적 여자 화장실을 몰래 들여다보다 같은 반 여자 친구들에게 변태 취급 받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필자의 시선과 함께 하시는 남성분들은 죄의식(?) 없이 여자 화장실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으니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마시고 살며시 필자의 뒤를 따라오시길 바라며......

유럽 많은 나라의 공중 화장실은 사용료를 지불해야 편안하게 근심을 풀 수 있지만
이미 레스토랑에서 멜랑쥬 한잔을 마셨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서니 손을 씻는 공간이 정말 환하고 햇빛이 잘 비쳐 느낌이 너무 따스하다.
둘러보니 세면대 앞의 거울이 정말 환상적이다!





커다란 전면 거울은 어디서도 볼 수 없고 크고 작은 거울이 삐뚤빼뚤한 프레임 속에 오밀조밀 들어앉았다.





어떤 거울은 일부러 깨뜨려 놓았다.
깨진 거울을 세면대 앞에 붙일 생각을 하다니....정말 남들과는 다른 머리를 가진 훈데르트바서다. 






거울을 둘러싼 프레임의 색감이 정말 오묘하다.




바닥 타일도 컬러의 조화가 정말 예술이다. 왜 훈데르트바서를 색채의 마술사라고 하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세면대가 위치한 곳에서 보니 너무나 컬러풀한 문들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둥근 화장실의 가운데에는 훈데르트바서 건물의 큰 특징인 곡선 기둥이 자리잡고 있고
기둥을 중심으로 다양한 색감의 문들이 반원을 이루고 늘어서 있다. 



컬러는 약간 어두운 원색들인데 훈데르트바서는 이를 암다채(暗多彩, 둥겔분트)라고 불렀다. 








원색인 컬러에 물기가 더해져 더 짙은 색감을 나타내주는 암다채는 그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루는 컬러이다.





레드, 블루, 옐로우, 그린, 블루, 블랙.....그리고 화이트......
어쩌면 촌스러울 수도 있는 색감들이 한데 어울렸는데도 자연스럽고 세련되기 그지없다.





화장실 내부 색감의 조화는 벽과 문에서 시작하여 바닥으로도 이어진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훈데르트바서는 깨어진 타일 조각 하나도 버리는 법 없이 이렇게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화장실에 들어와서 넋을 잃고 돌아보며 셔터를 계속 누르느라  볼일을 봐야 한다는 본연의 자세는 그만 망각해버린 필자!
이제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설 차례이다.

 



음.....여자 화장실도 별거 아니잖아.....하시는 분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화장실 칸 마다 같은 모양의 벽과 바닥이 하나도 없이 모두 다른 모습, 다른 색감으로 장식해 둔 것을 볼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가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을 재디자인했다는 것은 일전에 소개해 드렸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예술가, 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가
이런 한적한 고속도로 휴게소와 화장실까지 디자인했다는건 약간 의외였다.
하지만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보는 전시회에서만 접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예술이 아니라도
우리 삶 속에 들어와서 생활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예술,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예술이 아닐까.....? 

바쁜 일정 중이었지만 오스트리아인의 삶 속에 깊이 녹아들어 하나가 된 훈데르트바서의
친근하고도 특별한 미술관에 편안히 앉아 잠시 깊은 명상에 빠져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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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산에 안 올라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이말은 직장 동료들이 필자를 놀릴 때 가끔 하는 말인데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몇년전 필자는 폐지로 가득한 쓰레기산을 정복한 경험이 있다.

털어놓긴 민망한 일이지만 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서를 폐지로 분류해서 내버렸기 때문이다.
처리가 완결된 문서이기도 하고 이미 보존 기간도 지난지라 아무 생각없이 폐지로 내어보내버렸는데
바로 며칠 후 그 문서가 황급히 쓰일 일이 생겨 꼭 찾아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할 수 없이 폐지를 수거해 간 재활용센터를 수소문하여 전화를 거니
그날 수거해간 폐지가 경주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영천의 재활용 공장으로 갔다는 소식.
급히 차를 몰아 폐지 수집장까지 간 필자와 동료 직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 했는데
5층 아파트 높이로 쌓여 있는 엄청난 폐지 쓰레기산을 보고는 모두가 탄식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쓰레기산 아래에 위치한 폐지들은 이미 썩을대로 썩어 냄새는 코를 진동하고
그 위에 다시 무질서하게 쌓이고 쌓인 폐지들은 원래의 존재가 뭔지 모르게 다 뒤섞여있는지라
필자가 버렸던 폐지 박스를 찾는다는건 해변에서 잃어버인 바늘 찾기 같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전날 경주에서 온 쓰레기차가 버리고 간 지역을 중점적으로 몇시간이나 뒤진 끝에
기적과도 같이 내버렸던 문서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쓰레기산을 다리가 아프게 오르 내리던 동료들은 기쁨에 못 이겨 모두 부등켜 안고 소리를 질렀고
온몸에 먼지를 뒤덮인 것도 잊고 모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쓰레기산을 내려왔다는 황당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

그날 몸에 배인 쓰레기 냄새가 집에 가서 샤워 해도 잘 없어지지 않았다는 동료들의 푸념은
"쓰레기산에 안 올라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란 놀림으로 두고 두고 회자되었는데.....


이렇듯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쓰레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필자인지라
이름만 들어도 품격이 넘치는 비엔나 여행 일정 속에 <쓰레기 소각장 방문>이 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유쾌한 일이 못되었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가이이자 건축 치료사인 훈데르트바서가 외관을 개조했다는 쓰레기 소각장이라지만
그래봤자 냄새나는 쓰레기 소각장이지 별수가 있겠어......하는 다소 시큰둥한 마음을 안고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했다.




비엔나 지리에 익숙치 못한 슬로바키아 출신 운전 기사로 인해 비엔나 시내를 한참이나 돌아 겨우 도착한 슈피텔라우(Spittelau).
버스에서 내려 눈을 들어 보니 히야......비엔나의 11월에는 좀체로 보기 힘드는 멋들어진 하늘 구름 아래
희한하게 생긴 건물이 소각장으로 향하는 육교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펼쳐져있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원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을 보니 지금까지의 무관심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무한셔터질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도나우 강 운하 변에 서 있는 쓰레기 소각장이라니.....더구나 바로 옆에는 지하철역까지!
정신을 차리고 소각장 건물을 자세히 보니 하얀 외벽에는 파랑 빨강 검정 등 원색의 문양이  강렬하고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황금빛 구슬을 올렸다.





그리고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창들이 눈에 쏘옥 들어와 박혔다.




그중에도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은 당당하게 치솟은 거대한 굴뚝.
마치 올림픽 성화 같기도 하고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 같기도 한 굴뚝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금빛 찬란하게 빛나며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소각장 굴뚝에 도입한 꾸뽈(Coupole: 러시아,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양파 모양의 돔)은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건물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자세한 안내를 받기 위해 먼저 관리동 건물로 향하였다.




관리동에도 건물 곳곳마다 어린 훈데르트바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에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직선으로 된 
기둥을 거부했던 그는 
건물 입구의 기둥도 둥그스름한 항아리 모양의 곡선으로 처리했다.



로비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 슈피텔라우 소각장 로비에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달 주기로 교체 전시되는데
주로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를 따른 사진 작품과 조각 작품들이 많았다.
쓰레기 소각장에 현대 미술 전시라니......정말 상식을 깨는 소각장이다.


컨퍼런스룸에서 간단하게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변천사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1971년 설립된 이 소각장은 1987년까지는 여느 쓰레기 소각장과 다를바 없이 그저 밋밋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7년, 과열로  인해 대형 화재가 발생하게 되어 쓰레기 소각장의 기능이 중단되는 일이 생겼는데

비엔나 시장 헬멋 질크는 화가이자 환경 운동가, 건축 치료사인 훈데르트바서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외관 개조 작업을 맡게 했다.

친구인 환경 운동가 베른 로이치의 영향을 받았던 훈데르트바서는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던지라 리모델링 사업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비엔나와 같은 대도시는 아무리 분리수거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생산된 쓰레기를 처리할 쓰레기 소각장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각장 개조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스폰서링이나 자신의 작품 판매 수입을 통해서 리모델링 비용도 분담하였다.

2년 반에 걸친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마침내 최신식 배기 가스 정화 기술이 장착된 친환경 소각장으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기계, 환경과 예술이 공생하는 조화의 본보기이자 자원 낭비를 막아주는 공업 단지 건설의 뜻을 품고 있던
훈데르트바서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리모델링 과정과 소각장의 현황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비디오를 시청한 후 관리동에서 나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직접 쓰레기 처리가 이루어지는 소각장 현장으로 가보았다.





소각장 마당에는 반듯하게 생긴 주황색 쓰레기차가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비엔나 전역에서 수거된 쓰레기는
재활용 쓰레기와 소각할 쓰레기로 구분한 후 소각할 쓰레기는 트럭에 실려와 이곳 소각장에서 태워지게 된다.





쓰레기차는 쓰레기 투입구로 후진하여 들어가 쓰레기를 투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깥으로 전혀 쓰레기가 흩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집하장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어 무척이나 위생적으로 보였다.
냄새가 진동하고 쓰레기 풀풀 날리는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을 예상했던 필자로써는 정말 부럽게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견학 코스를 돌아보기 위해 소각장 건물로 들어가는 길에 동화의 집같이 너무나 이쁜 건물이 눈에 뜨였다.





이는 시각을 다투는 쓰레기차 운전자들이 건물 안 까지 들어가지 않고도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게 배려한 외부 화장실이란다.
운전자들의 화장실조차도 이렇듯 아름답게 꾸며준 훈데르트바서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피부로 느껴졌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창을 통해 아래로 내려다 보니 순서를 기다리며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주황색 쓰레기차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쓰레기차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렇게들 깨끗한거야......





견학 코스인 건물의 계단과 복도 곳곳에는 이렇게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그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가는 곳 마다 붙어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보니 여기가 쓰레기 소각장인지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인지 아리송할 정도였고





슈피텔라우 소각장 측은 물론이고 비엔나 시민들이 훈데르트바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계단과 복도 여기저기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전시와 함께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소개와
소각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들도 자리잡고 있어서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었다.




소각장의 하이라이트(?)인 쓰레기 집하장 견학도 빠질 수 없다.
집하장은 상부에서 유리를 통해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쓰레기라 해도 쓰레기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는.....^^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중앙 통제실.
이곳에서는 현재 연간 25만 톤의 도시 쓰레기를 처리하여 60MW의 증기 및 전기를 생산, 소각시설 자체 전기로 사용하거나
인근 6만여 세대에 온수를 공급하는 등 비엔나시 아파트 37%에 열 공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 통제실은 일반인들의 관람이 불가능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히 공개해주신 관계자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한때 도시 한가운데 흉측하게 자리잡고 있어 시민들에게 외면받아야 했던 쓰레기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어 비엔나의 공기를 더 깨끗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각에서 발생하는 여열을 비엔나 6만 가구에 공급함으로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여 친환경 시설로 거듭나게 되었다.

친환경 소각장이란 기능적인 부분도 물론이지만 훈데르트바서의 멋진 디자인이 더욱 눈길을 끄는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현재 각 나라의 공무원들을 비롯해서 5~6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비엔나의 관광 명소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서울시에서도 슈피텔라우 소각장을 견학한 후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을 벤치마킹한 소각장을 노원구에 건립했는데
안타깝게도 건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역 주민과 서울시와의 마찰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가 중랑구, 노원구, 동대문구의 쓰레기를 함께 처리할 계획으로 하루 800톤 소각이 가능한 소각장을 세웠는데
소각장 주변의 주민들이 타 지역 쓰레기의 반입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
할 수 없이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하기로 한다는 임시 협약을 맺고 한동안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했는데
서울시는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한다면 소각장 가동률의 17~18%만 가동하게 되니 비효율적이라고
다시 타 지역 쓰레기 반입을 주장하고 나서는 통에 주민과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혐오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주민들이 가스통까지 들고나와 격렬한 시위를 하는 것을 가끔 본다.
이는 팽배한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련 기관의 시책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커져있다는 것이 더 문제일 것이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 아름다운 외관은 물론이고
분진이나 각종 유해 물질을 걸러내는 최첨단 장치가 완벽히 갖추어져 있어 공해 물질을 거의 배출시키지 않는데 비해서
노원 소각장은 대기 오염 방지시설인 백 필터(Bag Filter)나 경찰 필터(Police Filter)등의 설비를
예산 부족이나 장소 협소를 이유로 설치하지 않은 것이 주민들의 불신의 이유라고 한다.

이런 일련의 불협 화음이 부디 잘 해결되어 우리의 소각장도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환경 친화 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과 함께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아름다운 외관만 벤치마킹하지 말고 환경 파괴를 최소화시킨 사례까지 벤치마킹한다면
우리의 혐오 시설들도 아름다운 변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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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부터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 바서>의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내년 3월 15일까지 100일 동안 열리게 되는 이 전시에는

그의 작품 <세 번째 피부>, <블루 블루스>를 포함한 회화 63점,

예술 작품으로 승화 된 건축 모형 작품 8점,
수공으로 제작 된 태피스트리 5점,

오리지널 그래픽 작품 26점, 오리지널 스탬프, 사진, 영상 등

총 120 여 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응....? 이런 예술가도 있었나....?" 했었다.

필자의 미술 전반에 관한 지식이 얄팍하기 그지없었는데다가 

그동안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대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고 할만큼

서구에서는 이미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술가지만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생소하기도 한 이름인데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을 디자인한 작가라는 말을 들으니

"아하!"하며 그의 작품 스타일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건축치료사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

삶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을 주창하였던 토탈 아트의 선구자 클림트, 에곤 쉴레의 뒤를 이어 

비엔나 토탈 아트의 정점을 장식한 그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1928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훈데르트바서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아리안이었으며 어머니는 유태인이었다.

태어난 그 이듬해 1929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당시는 히틀러가 서서히 정권을 장악하고 반 유대주의 정책을 펴기 시작한 시기라

그는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야 하는 불우한 유년을 보내어야 했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참상은 그로 하여금 평화와 공존의 소중한 가치를 더욱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평화주의적, 환경주의적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사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 예술학교에 3개월간 다닌 것 외에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습작기를 거치며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하게 된 것은 파리 여행을 하면서부터인데

그는 이때 클림트나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색채의 마법사'라 불리울만큼 강력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하였는데

색을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전통적인 색 조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대담한 색들을 구사했다.





매혹적이며 화려한 그의 회화는 색채 뿐 아니라 재료 또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채 자유롭게 사용되었는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색채가 살아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연에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불기운에 구부러진 자를 들고 다녔으며 직선이 배제된 그림을 그리고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그의 그림이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주조적인 이미지는 곡선의 이미지인데

둥글고 유기적인 형태, 원들과 나선은 그가 선호하던 형태들이었다.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만들어 신고 다닌 신발


훈데르트바서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거꾸로 생각해보고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차림표에 없는 것,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것을 원했는데

옷, 모자, 신발 등 몸에 걸치는 것을 직접 디자인해서 입었으며 양말은 언제나 양쪽을 다른 색으로 신고 다녔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이름을 개명했는데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Friedensreich Hundert Wasser,百水)'이라고 지은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에 대한 사랑은 평생 훈데르트바서를 떠나지 않았고 언제나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려고 애썼으며

자연을 그림으로 그리고 자연에 동화된 건물을 지으려고 힘썼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에게는 5개의 피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피부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 외피를 의미하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의복은 두번째 피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번째 피부는 우리 몸을 위한 옷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덮개인 집과 건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선의 감옥 같은 건축들을 혐오하며

아름답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창의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城)을 짓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집은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 볼 때 누가 사는 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번째 피부는 우리가 속한 사회이며 5번째 피부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행복한 집과 다채로운 집을 꿈꾸던 그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만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비엔나 시영아파트 건축 디자인 공모에 자신의 디자인이 채택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건축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첫 건축 프로젝트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난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는데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다양한 창문과  풍성한 나무들은 보기만해도 행복한 집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도시 주택단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주거지의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이라도 스스로 만들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창문의 권리>라 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한 사람이 창에서 팔을 뻗쳐 닿는 범위는 개인의 공간이며 그 공간만큼은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라는 문구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세입자 계약서의 첫 문구에  실제로 쓰여져 있다고 한다.



                                                                                                                                                                                                   블루마우 리조트


훈데르트바서는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초원의 공간을

옥상에 다시 만들어 초원에게 다시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나무세입자라고 불렀는데 나무세입자는 인간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먼지와 소음을 막아주고, 나뭇잎 지붕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줌으로써 세입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루마우 리조트


이런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낸 블루마우 리조트에 잘 나타나있는데

이 리조트의 모든 건물은 옥상 지붕이 온통 식물들로 우거져 있어 사람들이 그 위를 걷고 돌아다닐 수가 있게 되어있다.

옥상에 자라는 식물들로 인해 블루마우의 객실은 에어컨이나 난방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사시사철 적정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유선형 지붕은 땅과 연결되어 자연스러운 언덕이 되고,  2200개의 창문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블루마우.

이 작은 마을은 훈데르트바서의 꿈을 현실로 옮겨놓은 아름답고 독특하며 기발하고 놀라운 '동화의 나라'이다.



                                                                                                                     세인트 바바라 교회


훈데르트바서는 도시의 메마른 건축들을 치료하여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동거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크고 작은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도심에 버티고 서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만 하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게 된 이후 비엔나 시민에게 사랑받는 멋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지상낙원을 향한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전문가와 함께 직접 건축 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그 웅장한 스케일은 실제 건축물 앞에 서는 것과 흡사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꿈꾸는 몽상가이면서 그 꿈을 현실에 옮겨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진정한 예술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꿈을 일깨워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은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바서.





매혹적인 색채와 유기적 형태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훈데르트바서의 회화 작품과

자연과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표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그의 건축물 모형은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에서 곧 확인할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의 환상적인 작품들은 현재 서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2010년 12월 5일부터 2011년 3월 15일까지 열리는 
훈데르트바서 한국 전시
.

아래 링크를 누르면 전시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www.hundertwasser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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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을 주창하였던 토탈아트의 선구자 클림트, 에곤 쉴레의 뒤를 이어 
비엔나 토탈 아트의 정점을 장식한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 .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건축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고 할만큼
서구에서는 이미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술가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가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을 직접 디자인한 사람이라고 하면
모두가 "아하!"하고 그의 작품 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야 볼 수 있었던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문화엠엔씨, ㈜MBC플러스미디어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후원하는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 전시'

2010년 12월 5일(일)부터 - 2011년 3월 15일(화)까지 100일 동안 열리는 전시에는  
오리지널 페인팅, 건축 모형 작품, 오리지널 그래픽, 태피스트리 등의  조화로운 구성을 통하여
지상 낙원을 향한 꿈과 그 꿈을 실현시킨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한국 전시에 앞서 미리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주어졌네요.
 
11월 9일에서 11월 14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인 쿤스트하우스빈,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그가 디자인한 블루마우 리조트,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등 건물을 보고
비엔나에 위치한 미술관 몇군데를 더 돌아보고 오게 됩니다.


내일 아침은 시간이 너무 없는지라 지금 인사 드립니다.
다녀와서 다시 인사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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