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타임머신 여행을 떠난 듯 6,70년대의 추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계동길.

차 두대가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은 계동길을 이리저리 걷다가 
영진문고와 경기철물건재상 사이로 난 좁은 길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봉산 게스트하우스와 노란벽 작업실이 양쪽으로 펼쳐지는 북촌로6길.
얼마 걷지 않아 소나무 내음이 그대로 풍겨나는 듯 단아한 한옥집이 나타난다.

바로 서울 종로구 계동길 북촌마을의 또 다른 진주 '청원산방'이다.






나즈막한 담장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대문채에는 예스러운 글씨체의 '청원산방(淸圓山房)'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담벼락에는 '성심예공원'과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26호 소목장 심용식 창호 연구소'라는 팻말이 함께 걸려 있다.
이곳 청원산방은 전통창호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작은 박물관이라고 하면 되겠다.





미리 전화를 걸어보지 않고 방문한지라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두들겨 보았더니
안에서 기척이 나더니 겨자색 셔츠를 입은 남자분이 나오신다.
바로 무형문화재 소목장이신 심용식 선생님이시다.
멀리 경주에서 청원산방의 소식을 듣고 집의 내부를 구경하러 왔는데
집안을 돌아보아도 실례가 되지 않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하시며 직접 집안을 안내해 주신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맞은 편을 바라보니 마주 보이는 안채에도 멋진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의 이름은 
‘계수헌(桂樹軒)’. 계수나무가 있는 달나라처럼 아름답다는 뜻인데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란 의미가 담겨 있는 현판이라고 한다.
대문에 걸려 있는 '청원산방(淸圓山房)'이라는 현판과 함께 우리나라 서단의 거목인 초정 권창윤 선생께서
청원산방이 전통문화와 전통창호의 앞날을 은은한 달빛처럼 비춰 주길 바라는 기대와 소망을 담아 쓴 것이다.




일반적인 한옥의 창호는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는데 반해 청원산방의 창호는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주 보이는 창호에 정자매화꽃살문과 솟을빗꽃살문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이는데
대부분 두겹으로 된 청원산방의 문은 안쪽 문이 간결하면 바깥문은 화려하게, 바깥문이 장식적이면 안쪽문은 담담하게 만들어달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ㄷ자 모양으로 조붓하게 들어앉은 방들에는 귀갑살문, 완자팔각문, 정자살문, 꽃완자문......등 각기 다른 종류의 문과 창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전통 창호를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인 이집의 
문과 창은 주기적으로 교체되어 방문객들에게 보여진다고 한다.

 




마당 한구석에는 꽃담이 잘 꾸며져 있어 눈길을 끄는데 꽃담 아래에 나무로 꾸며진 수도도 있어 운치를 더해주기도 한다.




마당에는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고운 모래 위에 구들장돌로 된 댓돌이 깔려 있어서
마치 강물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댓돌을 밟고 집안으로 들어가 본다.





장지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방안으로 들어서니 8폭 매화 병풍이 다소곳하게 둘러쳐 있고 그 앞에 나무로 된 침상이 자리잡고 있다.





바깥에서 보는 창호 역시 아름답지만 이렇게 안에서 비쳐보이는 소박한 창호는 화려한 창호보다 더욱 아름답다.
이런 창호는 완자창의 기본인 사분합완자미서기문이라고 하는데 보통 화려한 꽃살문의 내부문으로 사용하는 문이다.





역시 안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완자교살문. 우리 조상들의 디자인 감각은 정말 너무나 현대적인 것 같다.






사분합아자미서기문의 제일 안쪽에는 채광과 외부 조망을 위해 유리를 끼웠다.
이맇게 다소곳하고 정갈한 창호로부터 화려하고 특색있는 창호까지 청원산방에는 모든 창호가 다 모였다.

서재 및 응접실의 용도로 보이는 방에는 책과 찻잔, 기념패등이 서가에 빼곡이 꽂혀 있었는데 서가 또한 방의 구조에 맞춰 직접 짜맞춘 것이다.





서재의 꽃완자문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안 마당과 꽃담이 너무나 아름답다.





바깥문은 소박한 세살문이고 안쪽에는 이렇게 화려한 꽃완자문을 두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서재의 남쪽 부분의 창호는 동산 위에 달이 든 것같은 모양의 달아자살문으로 되어 있다.
마치 만월이 방 안에 둥그렇게 뜬 것 같은 창호를 보니 어쩐지 안쪽으로 발을 디뎌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달아자살문을 양쪽으로 살짝 밀고 들어서니 거기는 심용식 선생의 컴퓨터 책상이 놓여 있다. 이렇게 멋진 컴퓨터방이라니....
더구나 채광을 위해서 이곳의 창호는 한지가 아닌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에 비치는 무심한 대나무가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컴퓨터방에서 왼쪽으로 꺾어 살펴보니 세상에......! 여기는 너무나 모던한 주방이다.
블랙과 화이트로 세련되게 매치를 이룬 주방 가구들을 보니 이런 집에 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불현듯 일어난다.



달아자살문의 오른쪽에 난 빗살불발기문을 밀고 들어서니 이곳 또한 너무나 모던한 욕실이 펼쳐진다.




유리로 칸막이가 된 너무나 모던한 욕실은 놀랍게도 욕실 전체가 나무로 되어 있다.
욕실에 습기가 많은데 나무가 썩지 않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럴 염려가 없다고 한다.




집안을 하나 하나 설명하면서 설명해주신 후 심용식 소목장께서는
거북이 모양으로 된 대문 빗장까지도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너무나 아름다운 전통 창호를 한곳에서 다 만날 수 있는 청원산방을 지으신 심용식 소목장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 되던 1969년부터 10여 년 동안
조찬형 선생에게서 전통창호 제작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목공소에서 톱밥가루와 6년을
함께한 끝에 수덕사에 첫 작품을 걸었다고 한다.





이후 심용식 소목장은 이광규, 최영한, 신영훈 선생을 만나 목재 고르는 법, 연장 다루는 법 등
문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과 실습뿐 아니라
장인의 자세와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안목을 배우며
공부의 깊이를 더했다.
국내외 중요 건축물의 창호 제작에 참여하여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는
1981년 성심예공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전통창호 제작활동을 했다.






그는 문 하나를 만드는 데 집 크기, 바람세, 빛의 양뿐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성향까지 고려해
심혈을 기울인다고 하는데.......





좋은 나무를 찾느라 발걸음 내딛지 않은 곳이 없으며, 오랜 세월 나무를 만지면서 축적한 감각을
손이 기억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계보다는 수작업으로 모든 창호를 제작한다고 한다.

이러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철학을 집대성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6년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창호제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에는 ‘서울전통예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는 수백 가지 전통창호의 명맥을 잇는 것은 물론, 전통 창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창적인 창호를 창작하기도 하는데......
 





그가 작업한 전통 창호 작업들을 보면 낙산사 원통보전, 동학사, 백담사 대웅전, 불국사 선원, 불영사, 석남사, 송광사, 
수국사, 수덕사, 운문사. 운주사,해인사 비로전 ......등 사찰의 꽃살문들을 비롯하여 





창경궁 경춘전, 양화당, 문정전, 창덕궁 인정전 등 궁궐의 꽃살문,




과천 제비울미술관, 교보문고 대문,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직동 운경재단, 양평 돌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사랑방, 프랑스 고암서방....등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전통 창호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공간인데도 옛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와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 청원산방. 

아무리 훌륭한 전통문화라도 현대에서 고유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인정받아 재해석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존재가 될 것이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 서서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고 고민하여 독창적인 창호를 개발하고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심용식 소목장.

창호 연구와 제작은 물론 자신의 예술 세계를 물려 줄 수 있는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창호가 박물관에만 전시되어 있는 죽은 전통이 아니고 현대인과 함께 숨쉬는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열정을 아끼지 않는 심용식 소목장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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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수목 드라마 '추노'에서 그 이름이 대두되며 극의 흐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운주사'.
이곳에는 크기도 각각 다르고 모양도 각양각색인 불상과 석탑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 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많은 불탑과 석불이 이 곳에 있었으리라고 짐작되지만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세월을 살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산중턱에는 도선국사가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일으켜 세우지 못한 '와불' 두기가 나란히 누워 있고

와불로 가는 길에 있는 '칠성 바위'는 북두칠성의 방위각이나 밝기가 흡사한 원반형 석재가 

북두칠성의 배열대로 놓여 있어 호기심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런 범상치 않은 와불과 바위, 수많은 석불과 석탑은 누가 무엇때문에 이곳에 조성해 놓았는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세간의 호기심을 더하는 곳이 운주사이다.

필자는 운주사를 상징하는 와불과 다양한 석불, 칠성 바위에 대해 두번에 걸쳐서 포스팅한 바 있는데 
오늘은 특이한 형태의 불상들과 마찬가지로 운주사의 소박하고도 다소 엉뚱한 석탑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형태의 석불로 가득 찬 운주사.
이곳의 석탑 또한 모두 다른 사찰과는 다른 서투르기 짝이 없는 솜씨의 탑들이다.
 

 

예전엔 천불 천탑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17기의 석탑만 남아 있는데
석탑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과 다양한 개성을 뽐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석탑은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적하고 둥근 옥개석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9층 석탑은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의 첫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커다란 바윗돌로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을 삼고 그 위로 윗층 기단을 쌓은 후 9층에 이르는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마름모 안에 꽃 모양을 새긴 모습들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는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했던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운주사의 여러 탑 가운데 높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원래 지방유형문화재 제8호였다가 1984년 보물 796호로 지정되었다. 

9층 석탑의 다음에 있는 7층 석탑은 높이 9.6m로 전남 유형 문화재 276호이다.
상륜부는 소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하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아래서 위로 올려보고 찍은 드라마의 씬에서는 7층 석탑의 단정하고도 날렵한 자태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운주사 쌍교차문 7층 석탑은 X자가 두개씩 새겨져 있는 문양이 무척이나 이채롭다. 

 마치 아이들이 문양을 빚은 듯한 이 탑은 신라 전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각층 탑신석에 쌍교차문(X)과 마름모꼴(◇)의 형태를 장식하는등
국내 석탑에서는 유례가 없는 특이한 장식을 보여주고 있다. 

경내의 다른 탑에 비해 비교적 안정감을 주는 쌍교차문 7층 석탑의 높이는 7.75m 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형태를 지닌 이 석탑의 이름은 원형 다층 석탑이다.
거북이 모양의 지대석이 1개의 돌이고 기단 면석이 각각 5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몸체돌과 지붕돌이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지대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탑은 전체적으로 매우 이색적인데 이 탑을 '호떡탑'이라고도 부른단다.
정말 잘 구운 호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것 같은 엉뚱한 모양의 석탑이다. 

   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은 보물 798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앞 다층 석탑은 모전 석탑의 유형을 보이며 제작시기는 고려 시대로 본다.  

 운주사 경내에는 이른바 최고의 명당이라는 터가 전해지고 있는데 바로 대웅전 뒤편에 있는 작은 구릉이다. 

 이 구릉 위에는 두 기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원반형으로 생긴 삼층탑에는 아예 명당탑이란 명칭이 붙어 있다. 

 대웅전 뒤에 위치한 운주사 발형 다층 석탑은 일반적인 탑의 상식을 초월한 이형탑이다.
주판알같기도 하고 밥그릇을 엎어놓은 모양같기도 한 괴석은
원해 7석이었으나 지금은 4석만 남아 있다.
전혀 색다른 형태의 석탑이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고 기발한 조영기법을 보이는 석탑이다. 

 운주사 거북바위 5층 석탑은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 

 거북 바위 7층 석탑 역시 2층에서 7층 탑신에 X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고려시대에 나타난 백제계 석탑은 유례가 없는 형태이다.   

칠성 바위 큰 암반 위에 건립된 칠성 바위 앞 7층 석탑은
지대석이나 기단부 등 별다른 시설 없이 자연 암반 위에 탑신부만을 건립하였다.
 


 그 외에도 운주사 여기저기에 자리잡고 있는 크기와 형태가 댜양한 수많은 탑들을 설명없이 소개드리면... 

  

  

 

 
   천년고찰치고는 유일하게 담장도 없이 상식을 파괴하는 서투른 모양새의 석불과 석탑으로 가득찬 운주사.
이름도 없는 장인들의 솜씨로 빚었는지 투박하고 어설프기까지 한 수많은 석불과 석탑들은 
마치 현대미술가의 조각 작품 전시회 같아 오늘도 호기심 어린 여행자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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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BS수목 드라마 '추노' 에서는 
원손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원하는
훈련원 판관 송태하(오지호)와 언년이(이다해)가 운주사 와불이 누워있는 곳으로 오고
그들이 향하는 곳을 미루어 짐작한 이대길(장혁)과 그 패거리들도 운주사로 급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그들이 지나는 천불 천탑의 신비한 가람 운주사 산자락에는 칼로 도려낸 듯한 커다란 원반형 석재가 여기저기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누워 있는 커다란 원반형 석재는 모두 일곱개. 이 석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북두 칠성의 배열 상태로 놓여 있다는걸 알 수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 가운데 유달리 우리의 눈에 띄는 북국성과 북두칠성.
북극성은 길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고 북두칠성은 국자와 같은 모양으로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다.



특히 북두칠성은 민간신앙인 '칠성 신앙'으로 우리 민초들의 삶에 더 밀착되어 있었는데
사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북두칠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언뜻 보면 원반형 7층 석탑의 옥개석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원반형 석재들은 
칠성 신앙의 조형물인 북두칠성석으로 보는 관점이 더 신빙성있게 대두되고 있다. 

언제....누가...어떻게 축조한지도 모른채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천불 천탑의 가람 운주사...
칠성 바위 역시 누가 언제 이렇게 커다란 원반석을 칼로 자른 듯이 잘라 이곳에 갖다 놓았는지....
무엇을 하기 위해 이곳에 갖다 놓았는지......전혀 알려진 바가 없고
운주사에 대해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더욱 깊어져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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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있는 사찰 중에서

운주사처럼 신비스럽고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은 없을 것 같다.

'천불 천탑'이라고도 불리우는 수많은 불상과 불탑들이

언제,....이 곳에 세워졌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수백년 동안 묻혀 있던 앙코르와트처럼 신비로 남아 있는데...

 

특히 이 곳의 많은 불상들은 입체감이 전혀 없이 납작한 것이

아이들의 솜씨로 찰흙판에 납작하게 빚어놓은 찰흙 작품을 보는 것 같이

못 생긴 부처들의 군상으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부처의 얼굴은 너무나 소박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그 중에는 누가 건드렸는지...누가 삐치게 했는지...

조금만 더 건드리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마치 입을 삐쭉거리는 아이 얼굴 같은 불상이 있어 시선을 끈다.

 

이 불상을 만든 석공은 어떤 사연이 있어

이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의 불상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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