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오봉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2.03 경복궁 근정전,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 28
  2. 2009.09.23 정조의 대전을 장식했던 책거리 병풍 37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원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여기 1925년의 광화문앞을 찍은 한장의 사진에서 그 당시 광화문 앞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의 수난기를 겪으며 일제로 인해 옮겨졌다가  박통 때 헐고 새로 지었다를 반복한 광화문은  2007년부터 다시 완전 해체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라

온전한 경복궁의 모습은 광화문 공사가 다 끝나야 제대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광화문이 보수 중이라 현재 경복궁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는 얼굴 역할을 하는 문은 흥례문이다.
흥례문은 광화문 다음으로, 아니 광화문 못잖게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문인데 사람들은 이 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흥례문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은 지금의 흥례문은 만든 지 15년밖에 안 된 새 문이기 때문이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제가 경복궁을 마구잡이로 난도질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수난을 당했던 문이 바로 흥례문이다.
일제는 1914년 경복궁에서 흥례문을 헐어 없애버렸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광화문은 정문이다 보니 옆으로 옮겨버리긴 했어도 놔뒀지만 흥례문은 가차 없이 경복궁에서 도려내버린 것인데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을 헐어버리면서 흥례문은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  

15년 밖에 안 된 흥례문은 건물에 밴 세월의 무게는 덜해도 그 아름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앞에서 봐도 멋있지만 옆에서 보면 더욱 매력적인 건물이다.

 흥례문을 지나들어가면 내문(內門)인 눈 앞에 근정문이 나타난다. 

왼쪽에 보이는 유화문은 신료들이 궐내 각사와 빈청을 드나들던 문이고 금천을 가로지른 영제교 건너편에 근정문이 자리잡고 있다.
근정문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는 영제교의 북쪽으로 정2품 이상이 서고, 남쪽으로는 정3품 이하가 자리를 잡았다고....  

  근정문은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朝參)의식을 행하거나 즉위식이 거행된 곳인데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를 한 첫 번째 왕이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에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
즉,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곳인 것이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니 왕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가운데는 왕도(王道)가 있고 양 옆에는 품계석이 도열해 있는데 동쪽에는 문관, 서쪽에는 무관의 자리이다. 

'근정(勤政)'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다.

 근정전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전면에는 중요 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필자도 임금님이 서셨던 월대에 올라  임금님의 시선으로 마당을 내려다 보았다.  

월대 위에 놓인 청동제 정(鼎)에 시선이 간다. 이 무쇠 솥은 실제의 용도보다 왕권의 상징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한다.  

 전각의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니 어좌가 보이고 어좌의 배경인 '일월오봉병'이 뒤에 펼쳐져 있다. 

 일월오봉병은 하늘에 걸려 있는 붉은 해와 흰 달,
다섯 봉우리의 산, 폭포, 소나무, 그리고 파도와 출렁이는 물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러니까 '일월오봉병'은 임금의 권세를 상징하는 그림인데
조선시대 임금님의 앉은 보좌 뒤에는 빠짐없이 이 일월오봉병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정전의 너른 바닥에는 방전(方塼)이 깔려 있고 내부에는 궁중 조회 의식에 따른 도승지,도청관들의 자리가 배치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2층으로 되어 있으나 건물 내부는 아래,위층 구분 없이 트여 있어 넓고 높다.   

실내에는 청나라에서 선물 받았다는 칠보대향로가 양쪽에 놓여 있는데
근정전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고 좀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
 

근정전은 새로 보수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단청의 색깔이 산뜻하고 화려하다.  

근정전 정면 문에서는 잘 안 보이는 천정 용문양이 동쪽 문에서는 보인다는
문화재 해설가 분의 말씀을 듣고 동쪽으로 돌아가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왕권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칠조 황룡이 천정에 돋을새김되어 있었는데  발톱이 일곱인 용이라서 칠조룡이라고 한다고.... 

 동쪽 문을 열고 전각 안을 들여다 본 모습이다.  

필자는 우리 고택의 창호문을 너무 좋아 하는데 

 경복궁 전각들의 문은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특히 무쇠를 엿가락 주무르듯 땋아놓은 문고리는 하얀 창호와 어울려 더욱 빛을 발한다.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사람은 어디든지 있는 법인지 궁궐 창호문에 구멍을 내어 놓은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창호의 구멍난 부분으로 안을 한번 훔쳐보고 전각 뒤로 돌아가 본다. 
 

전각 뒤의 그늘에는 아직 눈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조선 시대에 태어 났으면 감히 밟아 보지도 못할 근정전 전각이며 마당을 다 헤집고 돌아 보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근정전 월대를 내려서서 왕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던 편전인 사정전으로 향한다.

Copyright 2010.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조선시대를 그린 사극 드라마를 보면 일반 사대부의 집 사랑방 뒤편에는
어김없이 일필휘지로 써놓은 서예병풍이나 수병풍을 둘러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궁궐의 대전에는 어좌의 뒤에 해와 달, 그리고 다섯개의 산봉우리,
소나무 등이 그려진 '일월오봉병'이 둘러쳐져 있는게 보통인데
특이하게도 정조 치세의 드라마에서는 다른 왕들의 대전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양쪽에 서가가 늘어서 있고 거기에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을 준 아니라

책거리(책가도,冊架圖) 병풍이 떠억 버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책거리(책가도,冊架圖)란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서가에 고동기(古銅器),도자기,꽃병과

서책,붓,벼루,연적 등 각종 문방구류를 진열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책거리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된 시기는 18세기 후반 정조 때이다.


정조가 특별히 책거리에 대하여 애정어린 관심을 보인 것은 정조의 학문 진흥 정책과 연관이 깊다.

정조는 책거리에 대하여 직접 거론할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또한 자비대령화원들의 시험 문제로 책거리를 그리게 하는 등 책거리와 관련하여

늘 책 속에서 살면서 학문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임금이 책거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자 고관대작들도 그 뜻에 부응해서 
당시 귀한 분들은 앞을 다투어 집안의 벽을 책거리 병풍으로 치장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도 책거리의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임금으로부터 시작된 책거리의 관심은 당시 새로운 유행을 이끌었으나

아쉽게도 김홍도의 책거리는 고사하고 정조 당시의 책거리는 한 점도 알려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전하는 책거리는 화원 이형록과 장한종이 책거리로 이름을 떨친 19세기의 작품들이다. 

 


 사진의 책거리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된 책거리(책가도,冊架圖)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들은 당시 문인들이

고동기 등 진귀한 문물들을 수집하며 보고 즐겼던 취미를 보여주는데

이 책거리 그림은 화면을 가득 채운 책가에 책과 기물들을 배치하고

다섯번째 폭 상단에는 인장을 그려 작자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 책거리는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책거리 그림 화가인 이형록(1808~ ? )의 화풍과 유사하나

인장의 글씨가 불명확하여 작자를 확인할 수는 없다.



조선 후기부터 그려졌던 우리나라의 책거리 그림은

중국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다보각경(多寶閣景)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림은 진귀한 골동품과 문방구류를 소재로 하여

새롭게 투시도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문 숭상 사상을 대변해주는 책거리....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익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조선의 선비들을 기억하며

책거리 속에 그려진 다양한 수집품을 하나 하나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 듯 하다. 


올린 사진은 국립 중앙 박물관 유리 안에 있는 병풍을 찍은 것이라

사진의 상태가 고르지 못한 것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오며....  
  

 

책거리(冊架圖)

작자 미상

19세기 조선,비단에 채색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