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신성천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안동 길안천으로 합해지는 낙동강의 상류 신성계곡.

하얀 바위 계곡이 신비로운 행성에 온 듯한 백석탄 및 구비구비 비경으로 가득한
신성계곡의 들머리에 날아갈 듯 앉아 있는 정자 방호정을 찾아 길을 나섰다.





방호정으로 향하는 다리 위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 보니 뒷산의 바위줄기가 뻗어내리다
물속으로 뛰어들기 직전에 만들어진 절벽에 그림같은 산수정원이 만들어졌다.





다리를 건너서 방호정 옆으로 난 돌계단으로 올라가 본다.
건너편에서 보는 경치도 좋지만 아랫편에서 올려다보는 경치도 너무나 정겹다.





정자로 향하는 계단 아래 오니 어디선지 "냐옹~~~"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난다.

정자 아랫편을 내려다보니 예쁘게 생긴 길냥이 한마리가 가게 옆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구...이쁘기도 해라~~ 너무 이쁜 냥이로구나~ "하며 고양이를 부르니
너무나 가늘고 이쁜 목소리로 "냐옹~~~"하고 대답을 한다.





길냥이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계속 쳐다보며 아는 척 하는게 신기하여
냥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냥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냥이야~~ 넌 이름이 뭐니~~? 냐옹~~~~" 
"냐옹~~~~~"   
"냥이야~~ 넌 사는 곳이 어디니? 냐옹~~~~"
 "냐옹~~~~"          
너 혼자 이곳에 살고 있니? 친구는 없니? 냐옹~~~~"





한참이나 "냐옹~~~~냐옹~~~~~" 하던 길냥이가 슬그머니 방호정 대문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대문 앞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틀고 앉은 냥이. 다시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냐옹~~~~"하며 말을 걸어온다.
길냥이는 자신에게 보내는 관심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한참이나 "냐옹~~~ "하며 소리를 내더니 이제는 무심한듯 쉬크하게 털고르기를 한다.




앞다리를 쭈욱 뻗어 자잘한 털까지 고루고루 핥아주며 털고르기를 하던 길냥이.




몸을 스르르 일으키더니 방호정 축대 아래로 난 개구멍을 지그시 응시한다.
앗! 냥이야~ 들어가지 말고 나랑 같이 놀아~~! 냐옹~~~~!"  




필자의 간절한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냥이는 몸을 길게 늘어뜨리더니 유유히 개구멍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한참이나 기다려도 냥이는 소식이 없고 경내를 다 돌아보고 나올 때 까지 길냥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냥이야~~ 추운 겨울날 따스하게 지낼 구멍은 잘 마련해 놓았겠지? 내년 봄에 와서 다시 만나자~"
길냥이가 사라진 개구멍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인사를 남기고 쓸쓸함만 남은 방호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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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한 '서출지'는 
면적 7,000㎡, 못 둘레 약 200m로 규모가 비교적 아담하고 조용한 연못이다.

경주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첨성대, 대릉원, 안압지에 사람으로 넘쳐나는 봄, 가을 주말에도
서출지는 남산을 오르는 관광객들이 스쳐 지나갈 뿐
시내의 유적지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 늘 한적한 편이다.

이 연못은 사계절 주변 경관이 무척 아름다운데
4월에는 주변을 둘러싼 벚나무에 일제히 벚꽃이 피어 환상적인 경치를 자아내고
7,8월에는 연못 전체에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사진을 즐기는 애호가들에겐 최고의 출사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또 겨울철 눈이라도 내릴 때면 하얗게 눈을 인 남산 아래 정자 이요당은 가슴이 두근거릴만큼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또한 요즈음은 경관 조명도 멋지게 해 놓아서 연못가 벤치에 앉아 호젓한 야간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인 곳.

신라 천년 고도 경주야  어느 곳이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서출지는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장소인지라 자주 가서 조용한 시간을 즐기곤 하는데
오늘은 서출지의 환상적인 야경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처음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삼식이(시그마 30mm)로 찍은 사진이라 약간은 답답한 느낌이 드는데
다음 기회에 더 내공을 길러 더욱 좋은 사진으로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사적 제138호로 지정된 서출지는 삼국시대부터 있던 유서깊은 연못인데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신비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 하는 것이었다. 
이에 괴이하게 여긴 왕은 신하를 시켜 따라 까마귀를 따라 가보게 하였다.





신하는 남산 동쪽에 있는 피촌까지 와서는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만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길에서 헤매게 되는데 연못 가운데서 나타난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노인은 신하에게 글이 써진 편지를 건네 주고 신하는 왕에게 그것을 올리게 된다. 





왕이 편지를 보니 
겉봉에 쓰여 있기를
'이 편지를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을 것이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게 된다면 차라리 떼보지 말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옳다'고 하니 천기를 보는 일관이 아뢰되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두 사람은 일반 백성을 말하는 것이요,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도 그렇게 여겨 편지를 떼어 보니 그 글에 이르기를 '거문고 집(琴匣)을 쏘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곧 궁궐에 들어가 무사를 시켜 활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거기에는 궁궐의 내전에서 불공드리는 승려와 궁주(宮主)가 서로 간통하고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왕은 두 사람을 처형시켰다.





연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그때부터 연못의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였고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신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의 첫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정월 15일은 까마귀를 기리는 날인 오기일(烏忌日)로 정해서 찰밥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이 풍습은 정월 대보름의 풍습으로 그대로 이어 내려오고 있다.




현재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정자는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그는 이곳에서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정자의 문은 잠겨 있지만 관리인에게 잘 부탁하면 가끔 열어주기도 하여
대청마루에 앉아 서출지와 주변 경관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도 있다.


정자의 이름은 이요당(二樂堂)인데 '이요(二樂)'라 함은 '仁者樂山, 智者樂水'란 말에서 두 樂를 따온것이니
산(경주 남산)이 있고 물(서출지)이 있는 서출지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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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노 촬영지를 찾아서'라는 컨셉으로 여행 계획을 잡은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세찬 비가 주룩주룩....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많은 고민에 빠졌지만 이왕 계획한 일이라...우중에 길을 나선다.
앞도 잘 안 보이게 자욱한 비안개 속을 더듬더듬 운전해 안동 시내에 도착하니 그나마 빗줄기가 좀 가늘어져 
병산서원 가는 길에 위치한 정자 체화정에 잠시 들려 운치있는 정경을 담아본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 위치한 체화정은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00호 이다.




이 건물은 진사 이민적(1702~1763)이 학문을 닦기 위해 마련한 정자로
순조 때 용눌재 이한오가 노모를 모시고 거쳐하기도 한 곳이다.



정자 앞에는 삼신선(三神仙)을 상징하는 3개의 인공 연못이 있는데 건물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졌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락집이다.


일반적으로 방 앞쪽에 퇴칸은 방 보다 적게 만드는데 여기서는 방의 크기와 같은 3칸 마루를 설치 하였으며
건물 사면에 난간을 둘러서 연못을 조망하기에 적당하도록 배려하였다.



체화정은 건립 당시의 연못과 정자가 잘 보존되어 있어 조경미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정자 난간에 기대어 조그마한 연못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너무나 고즈녁하여 오히려 비오는 날 찾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건물 양쪽에 수려한 자태의 배롱나무가 서 있어서 운치를 더해주는데
여름에 잎이 나고 붉은 백일홍이 만발한 정경은 겨울과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아직은 추워보이기도 하지만 시원한 바람 부는 여름날
누마루 위에 다시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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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인년, 새해 새날이 밝아왔다.

부지런한 분들은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잠도 안 자고 기다리며
새해 첫 일출의 시간을 맞이하고 멋진 사진도 찍어 블로그의 탑을 장식하는데
난 편안하게 거실의 창문을 열고 '명활산성'위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했다.

 원래 번잡한 곳을 가는 것을 좀 안 좋아하는데다 예전에 동해안으로 해맞이를 가는 길에
엄청나게 밀려 있던 차 안에서 신랑이랑 사소한 일로 대판 싸우고 차를 되돌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해맞이 알러지가 좀 생겼기 때문....^^
그 이후론 1월 1일의 번잡합을 피해 그 다음날이나 다른 조용한 날에
동해안으로 가서 늦은 해맞이도 하며 여유를 즐기곤 한다. 


 동해안 7번 국도는 부산에서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국토를 종단하는 국도.
그 길이도 대단하지만 7번 국도길의 풍광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이다.
많은 구간의 도로가 바다와 나란히 뻗어있어서 눈부시게 푸른 바다와 함께 차를 모는 맛은 정말 운전의 피로를 잊게 해 줄 정도이다.
바닷길 어디든지 가다가 세우기만 하면 해맞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7번 국도의 장점.


 7번 국도의 수많은 해맞이 명소 중에서도 베스트에 꼽히는 망양정에서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울진군 근남면에서 왕피천을 옆으로 끼고 바다를 향해 해안도로를 달린다.

실직국(悉直國)의 왕이 이곳으로 피난해 숨어 살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은 왕피리,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은 왕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특히 은어의 서식지로 강태공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낚시 명소로
어느 지인은 여
름 휴가 때만 되면 왕피천에서 은어를 잡느라 휴가를 다 보낼 정도..
또 바로 근처에는 천년기념물 155호인 성류굴이 있어서 함께 돌아보면 금상첨화이다.



 해변에 위치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상가 뒤쪽으로 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 바다 위로 날아갈 듯이 정자가 앉아 있다.


 이름하여 '망양정(望洋亭)'이니 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란 뜻이다.


망양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옆으로는 왕피천이 흐르고 앞으로는 푸르른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드넓은 해변은 맑고 오염이 없는데다가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모기떼를 전혀 볼 수 없는 곳이라
여름밤에 텐트를 치고 해변에서 밤을 새워도 모기에 물릴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이 이 곳의 장점이다.



 본래 강원도의 동해안지방에는 명승지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를 일컬어 관동팔경이라 부르는데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경상북도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이 이에 해당하고 간혹은 월송정 대신 시중대를 넣기도 한다. 
 


특히 이들 팔경에는 정자나 누대가 있어 많은 한량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으며
이에 얽힌 전설과 문학등이 가사로 전해져오고있다.


 

망양정은 고려때는 현재의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었다고 하는데 1860년 철종11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그 이후 허물어 무너진 것을 1958년에 다시 중건하였고



 2005년에 심하게 낡은 것을 다시 해체하여 새로 지었으므로 아직도 단청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산뜻하다.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중 이 곳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여 손수 어제시(御製詩)를 지어 하사하기도 하였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글자를 써보내 정자에 걸도록 했으며



 정조대왕의 어제시(御製詩)의 흔적도 현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외 망양정을 그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백납병(百納屛)' '망양정도(望洋亭圖)가 유명하다.


 

강호에 병이 깁퍼 듁님의 누엇더니  관동 팔백니에 방면을 맛디시니,  어와 셩은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중략)

쳔근을 못내 보와 망양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날이니 하날 밧근 무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  블거니 쁨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은산을 것거 내여 뉵합의 나리난 닷,  오월 댱텬의 백셜은 므사 일고.

(하략)

각중에(갑자기) 왠 사설인고...하시겠지만
우리들이 고교 시절 국어 시간에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본 적이 있는 싯귀일 것이다. 

바로 송강 정철이 읊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에 대한 구절이다.


선조의 명을 받아 관찰사로 강원도에 가게 된 정철이 금강산과 관동 팔경의 아름다움을 연시조로 읊어쓰는데 이것이 바로 관동별곡.
시조에선 한양에서 출발하여 철원,금강산,총석정,삼일포,경포호,촉서루를 거쳐 망양정에서 달맞이를 하고 신선을 만나는 것으로 끝맺는데
관동 별곡에서 많은 구절이 망양정의 묘사에 치중된만큼
망양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경관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아름답다.


망양정에  처음 오른 기억은 대학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울진 성류굴을 돌아보고는
망양정 바로 아래 살던 선배 집에 무작정 찾아간 것이 망양정에 처음 오르게 된 때.
처음 보았던 망양정 앞 바다는 무서울 만큼 짙푸르고 맑았으며 바람이 불면 파도 또한 거세게 밀려와서
30분 정도 바닷물에서 놀아도 수영복 안에 모래가 가득 차 있었던 황당한 기억이 떠오른다.



망양정은 해맞이 뿐 아니라 보름날 달맞이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
바다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정자에서 보는 것은 해맞이보다 더 감동적인데
보름달이 떠오르면서 주변 바다가 금빛으로 반짝이며 파도치는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빛에 부서지는 금빛 바다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는데
새해 해맞이를 제대로 못 하신 분은 동해안 정자 위에서 대보름 달맞이를 해보심은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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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위치한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萬和亭)을 찾아가는 길......
경주에서 출발하여 미스 네비가 인도하는대로 건천을 넘어 운문댐을 돌아 한참을 가니
 동창천을 옆에 낀 울창한 숲 언덕에 서남향으로 앉아 있는 운치있는 정자가 보인다.



급히 차를 돌려 정자 앞 빈터에 세우고 담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만화정의 대문을 손으로 살짝 밀어보니 아뿔사....문이 잠겨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정자 담 옆에서 잡초를 제거하시던 분께 문의하니
마침 그분이 운강고택,섬암고택,만화정 등을 관리하고 계시는 분이셨다.


퇴직 교사이시면서 밀양박씨 후손으로 인근의 여러 고택들을 관리하고 계시는
박성규 선생의 뒤를 따라 만화정의 행랑채 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행랑채가 파란 철대문인 것에 마음이 걸렸다. 나무 대문으로 복원하면 좋을텐데...


볕 좋은 아침...행랑채와 곳간에 비치는 햇살이 눈이 부시게 따사롭다.


건물은 정자인 만화정과 함께 행랑채, 하당 ,곳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류주택 답게 곳간의 모양새 하나하나에도 신경쓴 것이 눈에 뜨인다.


행랑채 섬돌 아래서 보니 정자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행랑채에서 정자쪽 문에 서니 안뜰과 함께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정자가 보였다.


정자 바로 옆쪽으로 물빛이 고운 동창천이 흐르고 있는데 
바로 앞에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막지 않았을 때는 더욱 기막힌 경관이었을 듯...


대문 안쪽에 서서 우러러 보니 하늘을 이고 있는 만화정은 마치 입으로 불면 날아갈 둣 가벼워 보인다.


주변 산수의 아름다운 풍광과 잘 어울리게 섬세하게 설계된 이 만화정은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운강 고택(별도 포스팅 예정)의 부속건물인데
운강 박시묵 선생(1814~1875)선생이 조선 철종 7년(1856년)에 지은후 공부하면서 강론하던 집이다.


정자는 한칸 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에 방 1간, 동쪽에 2간의 통방을 배치하고


막돌을 쌓은 기단 위에 장대석 테두리를 두른 2중 기단을 두었다.


처마는 길게 내밀고 네 모퉁이에는 활주를 세웠으며 누마루에는 삼면에 헌함을 돌려 바닥을 확장하였다.


마루는 한간이라 그다지 넓지 않고


부채처럼 넓게 조각한 판대공 아래


정자를 거쳐간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도리(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굵은 나무)와 섬세하게 조각된 화반대공(대공:마룻대를 받는 짧은 기둥)이 눈길을 끌고


도리의 모서리에도 이렇게 꽃 문양을 새겨져 있으며


용두가 받쳐져 있기도 하는 등 섬세한 장식이 인상적이다.


정자를 돌아 후원으로 가 보니


안뜰보다 넓은 후원에는 운강 박시묵 선생의 비가 서 있었다.


푸르른 강물과 어우러진 주변의 경관은 너무나 아름다워 더운 날씨에 등에 고인 땀을 식히기엔 안성맞춤이다.


만화정은 특히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민을 격려하기 위해 종창천에 왔을 때
이곳 방에서 숙식하였던 곳이기도 해서 더욱 유명한 정자가 되었다.


운문 들판의 이름은 원래 만화평(萬花坪)이라고 하는데
만화평을 굽어 보는 위치에 있는 이 집을 만화정(萬和亭)으로 지은 것은 운강선생의 큰 뜻이 있지 않을까.

안민영(安玟英)의 주옹만영(周翁漫英) 한 구절처럼 
모든 일이 화평하라는 뜻이리라....

이 하나의 마음이 화하면 기운도 화한 법 (這箇心和氣亦和)

나의 마음과 기운을 화하게 하여야 중화를 이루리라 (和吾心氣致中和)
냇물이 사해로 귀의함이 모두 살아 있는 것 같고 (川歸四海渾如活)
온 산에 꽃 핌은 모두 함께 화의 기운 얻음이라 (花發千山共得和)
풍채와 운치는 다 같이 삼대(夏殷周)의 순후한 학풍으로 돌아가리 (風韻同歸三代學)
공부는 요컨대 한 덩이 화에 있음이로다 (工夫要在一團和)
세간 만사 화가 귀한 것이니 (世間萬事和爲貴)

일마다 오직 화하면 모든 만사가 다 화하리라 (事事惟和卽萬和)


만사가 어수선한 이때에 만화정(萬和亭)에 올라 온갖 시름을 잊고 화평함을 누려보심이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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