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의 현재의 지명은 터키의 알라세히르(Alasehir)이다. 고대 빌라델비아는 루디아 지방의 중앙 고원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던 고대 도시로 교통의 중심지이며 서쪽으로는 버가모와 사데를 잇고 동쪽으로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를 잇는 도시였다.

버가모왕 아탈루스 2세(BC 159~138),곧 필라델푸스(Philadelphus)는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빌라델비아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합성어로써 '형제애'를 뜻한다고 한다. 빌라델비아는 헬레니즘 문화를 동방의 오지까지 전파하는 역할을 한 곳인데 BC 19년에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던 것을 티베리우스 황제가 재건하여 소아시아의 중요한 성읍이 되었다.

 

성경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책망을 받지 않고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사도 시대의 빌라델비아는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인해 성도들은 매우 불안했으며 이 불안은 도리어 이들의 신앙을 더욱 뜨겁게 해 주었다.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교회였으나 안으로는 내실이 있는 교회였는데 그들은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잘 견디어 나갔기 때문에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되었고 이 교회는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본이 되었다. 

 

파묵칼레(히에라볼리)의 북서쪽으로 자리잡은 빌라델비아에 남아있는 성 요한 교회의 유적을 찾아가 보았다.
 

 

전성기 때에 큰 규모였으리라 짐작되는 성 요한 교회는 터키에 자주 발생하는 지진으로 인해 거의 다 무너지고 아래는 돌로, 윗부분은 벽돌로 되어있는 두 개의 육중한 돌기둥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뿐이어서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성 요한 교회는 기둥 두개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교회 유적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담장 바로 옆의 조그마한 주택은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색을 칠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옆 집의 벽은 샛노란 색으로 칠했는데 역시 터키 사람들의 남다른 색채 감각은 알아주어야 한다. 

 

 

성 요한 교회의 바로 맞은 편에는 조그마한 자미(이슬람 사원)가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술이 아름다울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일 것도 같지 않은  이 조그마한 자미의 나즈막한 담장을 타 넘으려던 꼬마애가 카메라에 잡혔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타 넘고 가려던 이 꼬마는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얼음'이 되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던지.... 

 

 

마침 '여름 코란 학교(?)'를 마치고 하교하던 중이었을까? 고만고만한 애들이 팔에 커다란 코란을 안고 자미의 담 위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메르하바'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는 한국사람이 신기한지 얘들이 도리어 우리를 보러 몰려 들었다.

아슬람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긴 하지만 터키의 어린 여자애들은 히잡을 잘 쓰지 않는데 자미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중이었는지 모든 여자애들이 다 히잡을 두르고 있었고 모두다 너무 이뻐보였다. 사진을 찍어주니 미소를 띄며 얌전히 포즈를 취해주었는데 저쪽 편 더 어린 여자아이들은 우리들도 찍어주지....하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도 이리 오라고 불렀더니  담장 위에 다소곳이 걸터 앉아서 아주 얌전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모두 9~10살 내외로 보였는데 모두 양 볼이 터질 듯이 통통한 것이 너무나 귀여웠다. 

 

 

좀 더 어린 아이들은 우리 나라 같으면 1~2학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데도 히잡을 써서 그런지 성숙해 보이고 미모도 돋보였다. 가운데 담장을 뛰어넘던 아이도 같이 앉아서 포즈를 취했는데 제일 앞의 여자 아이는 살짝 나온 똥배가 무지 귀여웠다.  

 

 

코란 학교의 왕언니들인가...? 5~6학년 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들은 어린 동생들에 비해 매우 의젓하고 벌써 여인네의 티가 난다.
크면 모두 다 한 인물 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이쁜 모습들이다. 집에서 싸 온 간식일까? 아니면 자미에서 나눠주는 간식일까?
간식을 먹다가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서 제법 세련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아이가 손에 든 것은 터키의 전통 요쿠르트인 '아이란'이고 갱지같은 포장지에 싸인 빵은 터키의 국민적인 빵 '시미트'이다. 

 

 

교회 건너 그늘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던 연세 지긋한 아저씨들 또한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손자인 듯한 아이가 매우 귀엽다고 했더니 아주 아주 좋아했는데 동서고금을 비롯하고 손자 사랑은 다를 바가 없나보다. 

 

 

카메라를 가지고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필자와 동행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빵집 총각들도 일하다 말고 나와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계속 구경하고 있었다. 터키인의 주식과도 같은 빵 '에크멕'이 진열장에 잔득 진열되어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에크멕은 필자가 지금껏 먹어본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으로 손꼽는 빵이다. 

 

 

빵집에서는 시미트,에크멕 등 터키의 전통 빵을 장작불을 때는 전통적인 오븐을 사용해서 굽고 있었는데
오븐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열기가 장난이 아닌 오븐 옆에 바싹 붙어서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빵집 주인인 듯한 아줌마와 그의 아들도 이방인을 위해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옆에 있던 동행 S가 아줌마를 보고 "촉  규젤~(Very Beautiful)"이라고 하며 손을 둥글게 모으는 제스츄어를 하자 아줌마는 생전 처음 보는 S를 와락...안아주었고
시미트(참깨가 발려져있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대중적인 터키빵)를 종이에 싸서 뭐라...뭐라 하며(가면서 먹으란 뜻인 듯.....)우리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받은 시미트를 한입 베어무니 고소한 맛과 함께 처음 만나는 사람도 이웃같이 대하는 빵집 아줌마의 인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빌라델비아에서는 성 요한 교회의 폐허와 그 근처 동네를 잠시동안 돌아보기만 하고 떠나야했다. 칭찬받는 믿음을 가졌던 빌라델비아의 교회터를 돌아본 것도 인상에 남았지만 이슬람 사원 앞에서 만난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순박하고 정감어린 모습들은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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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가 어디냐고 물으면 터키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코니아(콘야,Konya)'라고 대답한다.
수도 앙카라에서 250 km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인구 80만이나 되는 대도시가 왜 제일 보수적인 도시일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코니아에 내려보았더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성경에서 '이고니온'이라고 불리웠던 코니아는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로마,헬라 제국 시대에는 브르기아 지방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바울 시대에는 수리아와 에베소를 연결하는 유명한 상업 도시였다.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이 곳을 방문하여(사도행전 13:51)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 신자를 얻게 된 기록도 있으며(사도행전 14:1~7)

1071년부터 1308년까지는 셀주크 투르크 제국의 수도이었기도 한  유명한 도시이다.


그런데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코니아가 알려진 이유 중의 하나는
이 곳이 '메블레비'로 불리우는 터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 종단의 발상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메블레비 교단의 창시자인 '메블라나 젤라렛딘 루미'는 글을 모르는 일반 대중도
쉽게 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세마'라는 수행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세마'는 흰 옷을 입은 수행자들이 음악에 맞춰 끝도 없이 뱅글뱅글 돌며 신과의 합일을 느끼는 방법이다.

수피즘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한 번 정도는
팔을 하늘로 치켜 들고 뱅글뱅글 도는 세마 명상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세마 명상춤은 무스타파 케말 대통령의 정교 분리 정책에 의해서 일시 금지되었으나
지금은 완화 정책으로 인해서 다시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메블레비에서 세마를 추는 사람을 '세마젠'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의상이 흰색인 것은 수의를 뜻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춤이 시작되기 전에 그들이 걸치는 검은 색 망또는 무덤을 뜻하고 머리에 쓰는 긴 모자는 묘비를 의미한다고.....
인간이 가장 겸손해지고 솔직해지는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신과의 합일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란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나. 

이 곳 코니아의 메블라나 박물관에는 수피파의 시조 메블라나의 묘가 있으며
터키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온 몸을 검은 차도르로 휘감은 여성도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도시이다.

신비주의 이슬람의 도시 코니아는 셀주크 터키 술탄의 궁정이나 알라딘 자미(사원)등이 남아있는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어서 도시의 풍경은 황량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신개발 지역이 더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런 주택 지구는 밋밋하게 지어진 아파트, 나무 하나 없는 주차장 때문에 너무나 삭막한 느낌이 든다.

신주택지구에는 주상 복합 스타일의 아파트가 많은데 우리처럼 베란다가 새시 유리로 되어있는 경우는 많이 없고
대개의 경우 베란다에 커튼처럼 커다란 흰 천을 쳐놓았다가 한낮에 태양이 내리쪼일 때 가려서 열기를 막아준다. 

코니아 변두리는 훨씬 더 터키 색이 강하다.
삼륜 오토바이 뒤로 파랑과 초록문의 색감이 참 고운데 터키 사람들은 건물 색을 다양하게 쓰는 것이 특징이다.

 

터키의 어느 마을을 가도 그렇듯이 펩시의 간판이 자리잡고 있고
코딱지만한 잡화점에는 잡다한 생활 용품등이 길가에까지 전시되어있다.

가게 앞에 있는 엄청나게 큰 용량의 세탁 세제들이 시선을 끄는데 이것은 터키의 가정들이 예민할 정도로 청결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터키 주부들은 일상 중 많은 시간을 마룻바닥을 솔로 문질러 닦거나 속옷을 세탁하고 삶는 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TV 광고의 많은 부분이 청소용품 광고로 채워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관광지도 아닌 보수 이슬람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다 혹시 잡혀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고 약간은 무섭기도 했지만......
호텔을 나서니 길에는 어디에서인지 뿌연 연기가 나와서 거리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울리며 온 도시를 내리덮고 있어
가슴을 찍어 누르는 듯한 두려움과 신비로움이 온 몸을 감쌌다 

그런데 아잔 소리가 나면 다 길가다 엎드려 메카 쪽을 향하여 기도할 줄 알았더니
아잔 소리가 나든 말든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제 갈길을 가고 있다.

길에는 여자나 남자나  혼자서 다니는 사람들은 잘 없었고 가족 단위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히잡을 두르거나 검은 차도르를 발끝까지 덮어 쓴 여자 옆에는
자유로운 복장을 한 남편이 아이를 안거나 손을 잡고 따라 다니고 있어서

이슬람 가족들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매우 가정적인 분위기란 걸 한 눈에도 느낄 수 있었다. 

 

재래 시장은 우리나라 90년대 같은 분위기였는데  가게 마다 마네킨에다 옷을 입혀 세워둔 것이 특징이었고
특히 가운데 마네킨은 어디가 부러졌는지 노끈으로 목을 단단히 붙들어 매어 벽 사이의 철근에다 고정시켜 놓았다.  

 

가방, 신발, 속옷 등을 함께 파는 가게 앞의 남자 마네킨은 맨 머리에다 넥타이를 두르고 있다.
우리 나라의 노래방 패션이 터키로 옮아간건가...? 

 

터키의 극보수도시 코니아 재래 시장에도 어김없이 짝퉁은 넘쳐나고 있다.
마네킨들의 수염은 매직펜으로 직접 그려 놓는 센스....^^

시장에서 나와 다운타운을 걸어가니 조그만 애들이 떼를 지어 따라왔다.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는 도시인지라 자기들과 다르게 생긴 동아시아 사람이 무척 신기한가 보다.
아이들은 큰 눈을 반짝이며 신기한 표정으로 졸쫄 따라다녔는데 그 중에 용기가 있는 애들은 "Hello~~"하며 인사도 건넨다.
손을 흔들며 웃어주면 부끄러움을 타며 도망가기도 하고 어떤 애는 같이 손을 흔들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길을 걸어오다가 마주치면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외지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코니아에 동아시아 사람이 나타나니 그들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자기네들끼리 힐끗거리며 쳐다보며 수근수근한다. 
"와...저 사람 봐라. 어디서 온 사람이야..? 중국 사람? 일본 사람? 아냐...한국 사람일거야....근데 여기에 웬 일로 왔지....?"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코니아 거리 구경을 하러 갔다가 도리어 그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 구경을 시켜준 형편이 되었다. 

재래 시장을 지나 중심가를 한참 가니 상당히 큰 Multi-Flex 가 나타난다.
할인점, 영화관,레스토랑이 모두 모여있는 복합 건물이었는데 지하로 내려가니 'Afra'라는 엄청 큰 할인점이 있다.



할인점  'Afra' 입구에 있는 간판 중 indirim 은 discount라는 의미인 듯....아마 그 날의 특별 할인 품목을 광고하는 것 같다.

할인점 안은 우린 나라의 매장과 거의 비슷하고 없는게 없는데 매장 안이 갖가지 물건으로 넘쳐나고 있다.
남편,아내,아이들.....온 식구들이 같이 쇼핑을 나오는데 애들의 수는 둘이나 셋,경우에는 네 명 씩도 데리고 나온다.
카트에다 애들을 태우는 건 우리 나라와 모습이 꼭 같다.
하얀 치마,검은 상의를 입고 검정과 흰색의 스트라이프가 있는 히잡을 두른 뛰어난 패션 센스의 아줌마가 눈에 뜨인다.
히잡(스카프)은 여자들의 패션 품목으로 대부분 수십개씩 가지고 있어 옷에 따라 바꾸어 매고 다닌다고 한다. 

 

트렌치코트와 히잡, 숄더백의 색감을 잘 맞추어 입은 아줌마들이 여기도 눈에 뜨인다.
아내들의 장보기에는 남편들도 꼭 따라 와서 같이 물건을 고르는게 아주 보기가 좋아보인다.
뒤에는 경품으로 차 한 대를 준다는 광고가 걸려있는데 우리 나라 마티즈와 모양이 같다. 마티즈인가.....?



역시 할인점에선 세일하는 옷을 사야 본전을 뽑는 법......
사진 찍는 이방인 여자가 신기해 보이는지 건너 편에서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신기해 하고 있다. 

 

갖가지 모양의 수제 소시지가 먹음직스러운 가공 식품 코너.
우리 나라 소시지는 거의 돼지고기로 만들지만 이곳엔 돼지고기 소시지는 없다.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할인점의 식육 코너에는 양고기가 대부분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저씨인데도 몹시 수줍어한다.

 

촌두부같기도 하고 빨래 비누같기도 한 이것은 오리지날 핸드메이드 치즈.
수작업으로 만든 치즈라고 하니....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긴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한 터키는 과일과 채소의 천국이다.
모두 다 박스 채 과일을 사는데 우리 나라같이 과일 몇 개 사는 건 터키에서는 없다. 
그만큼 과일이나 채소등 농산물은 엄청나게 싸다.
터키가 국민 소득이 높지 않은데도 국민의 생활 수준이 그리 낮지 않은 것은
농산물이 아주 싸서 모든 식량이 자급자족되기 때문이라고..... 

과일 박스 뒤편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로 둘러싼 여자 발견.....
이스탄불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차도르 입은 여인이 콘야에는 여기저기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터키 사람들은 사진찍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아주 시골 사람이나 골수 이슬람 신도들은 사진 찍는 것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정면에서 찍을 수가 없어서 뒤에서 몰래 찍었다.

 

히잡이나 차도르로 둘러싸고 있지만 그녀들의 속옷은 우리네보다 더 화려하다.
소박하고 점잖은 여인들의 옷 속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심히 야한 속옷들을 입고 있다고 한다.
검은 차도르로 온 몸을 감싸고 눈만 내놓은 여자들까지도.....

향수 매장에서는 매장 전체에서 유일하게 여자 점원이 향수를 팔고 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엄청난 미인이다. 
터키의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초절정미인인데 그들의 신비로운 화장이 한 몫을 더 한다.
원래도 흰 피부에다 파운데이션을 하얗게 바르고 눈에는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하는지라 크고 검은 눈이 더 신비롭게 보인다.
그리고 머리에는 히잡을 두르는데 옷은 자유롭게 입고 심지어 최신식 청바지도 잘 소화시킨다.
히잡에 청바지라.....무지 언밸런스한 것 같은데도 그녀들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는 청바지에 선글라스, 명품 백을 들고 히잡을 쓴 멋진 여인이 즐비하다.



터키 사람들은 여자나 남자나 미혼일 때는 환상적으로 몸매가 이쁘지만 결혼하면 다 엄청나게 살이 찐다는게 슬픈 일이다.

 

키 19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꽃미남 청년이 할인점에서 치즈를 팔고 있다.
민간인이 이 정도 수준의 외모이면 연예인은 도대체 얼마나 잘 생겨야 한단 말인가.
치즈 파는 청년을 사진 찍으려고 주위에서 머뭇거리자 시선을 의식한 이 청년, 필자 쪽을 쳐다보고 눈을 찡긋하며 눈웃음을 친다.
여자랑 눈을 마주치면 어김없이 살인 미소와 눈웃음을 보내는게 터키 남자들의 특징.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이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나 좋아하며
치즈 포장하던 일도 잊어 버리고 한참 동안 포즈 취하기에 열중한다.

 

여자들이 서비스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꺼리는 터키에서는 계산대의 직원도 남자다.

 

이슬람의 나라답게 할인점의 서점에는  코란을 파는 코너가 있다.
코란의 가격은 24.212 YTL(신터키리라) 이니 우리 돈으론 약 2만원 쯤 되겠다.
15세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이 소년은 
사진 찍는것을 의식하고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빠알개지며 말까지 더듬는 것이 너무나 귀엽다.

사실 터키의 국교는 이슬람교가 아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는 이슬람의 오랜 인습이 터키 개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지 않고 정교 분리의 정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 단체가 정당을 만들 수도 없고 일부다처제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관공서나 학교에서에서 히잡을 쓰거나 예배 행위를 하는 것은 금물이며
종교의 자유는 보장을 받아 모스크,기독 교회,유대인 회당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금요일 예배 시간에도 모스크 안에는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 올리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 반면
모스크 밖에서는 그 시간에도 차 마시고 술 마시고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밤 늦게까지 코니아의 다운 타운 구경을 하고 호텔로 가서 누우니 시장에서 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콘야는 골수 이슬람의 도시라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니 나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코니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미소가 넘쳤고 그들이 보는 시선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먼 터키의 한구석인 이곳 코니아 역시 '사람이 사는 도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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