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건축치료사로 불리우는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이 전시된 비엔나의 마술관 쿤스트하우스빈 바로 옆에는 그가 디자인한 레스토랑 '둥겔분트'가 있다.
레스토랑 이름 '둥켈분트'는 '암다채(暗多彩)'란 뜻으로
훈데르트바서는 원색인 칼라에 물기가 더해져서 더욱 빛을 발하는 어둡고 다채로운 색감 둥겔분트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둥겔분트는 쿤스트하우스빈  건물에 바싹 붙여서 지어졌는데 앞 마당은 온통 나무와 넝쿨식물로 뒤덮였다.





트렌치 코트를 입은 오스트리아 신사의 뒤를 따라 둥겔분트의 문을 밀고 들어가 본다.





쿤스트하우스빈의 블랙과 화이트의 체커보드 무늬의 컨셉을 따라 둥겔분트 역시 블랙과 화이트의 체커보드 무늬로 뒤덮여 있다.





블랙과 화이트가 반복되는 체커보드 무늬지만 일정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고 크거나 작고, 삐뚤거나 깨어져있으며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등 하나도 일정하지 않은 무늬가 레스토랑 바닥 전체를 뒤덮고 있고





바닥 뿐 아니라 쿤스트하우스빈과 이어진 벽에도 체커보드 무늬가 이어지는데 역시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무늬가 일정하지 않지만 난잡하지 않고 파격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균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정감이 들게 한다.





눈에 뜨이는 디자인 외에 레스토랑 내부가 온통 살아숨쉬는 식물들로 뒤덮여있는 것 또한 둥겔분트의 특징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식물의 공간을 옥상이나 옥내 정원으로 다시 만들어 
살아갈 터전을 잃은 식물들에게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럼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파라다이스를 이루길 원했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모든 건물에는 어디든 이와 같이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온실처럼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천정이 유리로 된 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로 보인다.





모든 작품의 원료를 자연에서 가져왔지만 평생 자연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았던 훈데르트바서는 
버려진 빈 병이나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건축 자재로 활용하기도 했는데
둥겔분트에서는 이렇게 깨어진 타일과 색유리를 모아 붙여 예술로 승화시킨 멋진 테이블도 있어 앉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레스토랑에 왔으니 이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여 음식을 맛볼 차례다.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앉은 테이블 역시 훈데르트바서의 멋진 회화 작품이다.





식사 전에 탄산이 섞인 '알름두들러(Almdudler)'라는 음료를 먼저 맛본다.
살짝 찝찔한 느낌이 나면서 톡 쏘는 맛! 음...그다지 기분좋은 맛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어찌나 탄산 음료를 좋아하는지.....!
생수인줄 알고 사서 열어보면 어김없이 탄산수여서 시원한 생수 한병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기억이 난다.





스프와 메인 디쉬로 이루어진 간단한 점심 메뉴에서 먼저 나온 호박 스프는 정말 엄청나게 짜다.
우리나라 사람이 소금 섭취가 많다지만 비엔나에서 이날 먹은 스프는 너무 짜서 물을 타서 드시는 분도 있었다는.....^^;;





메인 디쉬는 파스타와 돼지고기가 한접시에 담겨져 나왔는데 요리의 이름은 '슈바인츠라구나'이다.
스파게티는 평범한 맛이고 돼지고기는 살코기만으로 되어 있어 약간 퍽퍽한데 소스 역시 많이 짠 편이고
한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의 양이 남자들도 다 먹기 힘들 정도로 많아 필자는 다 먹지 못하고 남겨야만 했다.





레스토랑 둥겔분트를 떠나기 전에 꼭 들려야 할 곳은 화장실이다.
지난번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휴게소 아우토그릴 화장실도 구경하셨겠지만
이곳 둥겔분트의 화장실 역시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남녀가 마주보고 있는 타일 작품 가운데 문을 밀고 들어서면 남녀 화장실로 갈라지게 된다.





세면대 앞에 서니 쪼끄만 거울이 정말 귀엽다.
커다란 전신 거울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이 보기엔 다소 답답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개성 만점인 프레임 속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는 기분좋은 경험이다.
거기다 가운데를 톡 건드려 멋지게 깨어진 거울이라니......!





화장실 안도 역시나 예술 작품이다.
늘 하얀 타일이 반듯하게 정열된 화장실만 보다가 사선으로 눕기도 하고 깨진 것을 이어붙이기도 한 타일을 볼 때의 신선함이란.....!
편안하게 앉아 볼일을 보며 좌우의 멋진 예술 작품을 즐기는 것 또한 훈데르트바서의 화장실에서 맛보는 특별한 경험이다.





식사를 마치고 둥겔분트 마당으로 나오니 이곳에서는 나무에서 떨어져 뒹구는 낙엽조차 멋스럽다.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어 생활로 녹아드는 곳, 바로 훈데르트바서의 레스토랑 둥겔분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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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빈)에 여행 오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고 꼭 들리는 건축물이 있는데
그것은 비엔나 시내 헤츠가세역(驛) 근처에 있는 한 시영 아파트이다.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획일적인 아파트만 보시던 분들이 이 시영 아파트 앞에 서신다면
여기가 동화의 나라의 일부인가......아니면 놀이 동산 건물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건물은 비엔나의 유명한 랜드마크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Hundertwasserhaus).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가이자 생활 디자이너, 건축가, 환경주의자, 평화주의자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1928~2000)가 
비엔나 중심가에 있던 낡은 시영 아파트를 생물이 살아 숨 쉬는 아파트로 개조한 건물이다.





2차대전 이후 전쟁으로 피폐할데로 피폐해진 비엔나에서는 
서민들의 시급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영 아파트들이 많이 지어졌는데
되는대로 지어진 시영 아파트들의 환경은 그야말로 열악하기 이를데 없었다고 한다.
편의 시설은 하나도 없이 오직 주민들의 성냥갑 같은 방들이 복도에 감방처럼 줄지어 들어서고
수십 가구가 공동 수도 하나, 공동 화장실 하나를 공유해야 하는 형편이었다고....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지어진 시영 아파트의 재건축을 위하여
비엔나 시청은 시영 아파트 재건축 디자인 공모를 했는데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디자인이 채택되게 된다.

딱딱하고 획일적인 건물들 일색인 비엔나 한가운데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알록달록한 동화의 집 같은 시영 아파트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주위 환경과 안 어울린다'는 염려 등으로 부정적 여론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입주 신청자가 3만명이나 폭주하는 등 많은 시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 되자
시영 아파트 재건축 프로젝트는 1983년에 시공하여 1986년에 완공하게 된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 시민들을 위해 무보수로 참여했다는 재건축 프로젝트에 일화도 전한다.

완공식에 7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등 대성황을 이루자 아파트 재건축은 매우 성공적인 평가를 이끌어냈고
한 사람의 예술가가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해낸 모범 사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비엔나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비엔나의 명물이 되었다.




이렇게 지어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대지 총면적은 1,543㎡이고,
층수는 3층부터 9층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52호가 거주하는 각 주택의 규모는 30~150㎡ 정도인데 주택 외에도 4개의 사무실, 16개의 개인 테라스,
3개의 공동 테라스, 2개소의 어린이 놀이터와 윈터가든(winter garden),
카페로 구성된 복합 주거 시설로 자리잡았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전경을 찍기 위해 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에서 보아도 전체의 모습이 앵글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자연에는 바로 잰 듯한 반듯한 직선은 없다'인위적인 직선을 거부한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앞길도 이렇게 자연의 동산을 그대로 옮겨온 듯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앞에 서서 위로 올려다 보니 건물 외벽에 자라나 있는 나무와 함께 제일 먼저 알록달록한 벽의 색감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화이트, 옐로우, 레드, 블루, 블랙.......건물에서는 잘 쓰지 않는 화사하고 다양한 색채가 모두 한 곳에 쓰였는데
훈데르트바서에게 다채롭고 눈부신 색깔의 집은 행복한 집과 같은 의미이다.

 



유럽의 겨울이 대부분 그렇듯이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방문한 날도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많이 흐린 날이었다.
어제 저녁 살짝 내린 비로 인해 건물은 부분적으로 비에 젖어 있어 사진이 많이 우중충하게 나온 것이 흠이다.
훈데르트바서는 비오는 날에는 모든 사물이 비에 젖어 고유의 색감이 더 빛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오는 날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자기의 중간 이름을 레겐탁(Regentag, 비오는 날)이라 짓기도 했지만
화가가 아닌 초보 사진가에게는 흐린 날 보다는 밝고 화사한 날의 사진이 더 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훈데르트바서는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 그 안에 자신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고 싶어 했는데
블루마우 리조트, 슈피텔라우 소각장, 쿤스트하우스빈에서처럼 훈데르트바서의 집들의 창은 하나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단독 주택을 지을 수 없어서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 사는 요즈음, 
남이 설계하고 지은 집으로 이사온 사람들은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자신의 존재와 개성을 드러내기는 힘든 일이라서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큼은 스스로 만들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훈데르트바서는 이 권리를 '창문권'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는 '한 사람이 창에서 팔을 뻗쳐 닿는 범위는 개인의 공간이며 그 공간만큼은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라는 문구를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세입자 계약서의 첫 문구에  써넣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모든 세입자는 자신의 창문을 알록달록하게 칠할 수도 있고 색색의 타일로 장식하기도 한다.

식물을 키워 이렇게 덩쿨이 드리워지게 창문을 장식할 수도 있고 아름다운 목걸이처럼 사슬을 걸기도 하며
혼자만의 발코니로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볼 수도 있다.





일본에 여행 다녀온 기념품일까....? 이렇게 일본 남자 어린이날의 상징인 고이노보리를 드리워 남들보다 튀어보이는 집도 보인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에
풍성하게 자라나 있는 나무들은 보기만해도 행복한 집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데
그가 디자인한 건물은 어디나 지붕과 마당은 물론 계단과 실내에까지 무성한 식물로 넘쳐난다.

 




우리를 보호해주고 살 공간을 제공해 주는 집을 제 3의 피부라고 표현했던 그는

집이 세워짐으로 인해 빼앗겨버린 식물의 생활 공간을 식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빼앗은 식물의 공간을 건물에다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가 디자인한 모든 건물은 옥상과 마당, 계단을 가리지 않고 식물을 심었다.





심겨진 식물은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주고 인간은 식물로 인해 기쁨이 더욱 넘치게 되는데 
인간은 식물을 통해 그늘을 얻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먼지와 소음에서 벗어나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된다.



또 자연을 그대로 집의 일부로 들여놓기를 원했던 훈데르트바서는 
풍성한 나무와 함께 꼭 물이 흐르는 분수를 건물에 설치했는데 이제는 겨울이라 기능이 분수의 기능이 중단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사유 재산의 개념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시영 아파트가 임대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임대 아파트는 일정한 거주 기간이 지나면 집을 비워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엔나의 시영 아파트는 한번 거주한 사람은 평생 그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상속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수에 알맞은 집을 임대할 수 있는데 독신자는 작은 크기의 아파트를 ,
결혼해서 가족의 수가 늘어나면 여러 가족이 살 수 있는 더 큰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건물, 같은 면적의 아파트에 산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소득에 따라서 임대료가 다르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었다.
다시 말하면 소득이 적은 가장이라도 가족의 수가 많으면 큰 아파트에 살면서 임대료를 적게 내고
소득이 높은 독신자는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임대료를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적인 능력이 부족한 가장이라도 내 가족들이 편히 살 수 있는 공간을 저렴한 임대료로 얻을 수 있다니....!
서민 복지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환상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평생 번 돈을 저축해도 서울 소재 아파트 하나 사기 힘든 형편이라
모든 사람들이 집 장만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이렇게 평생 임대해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주어진다면 집 장만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살아 숨 쉬는 예술 작품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도 정말 좋지만 서민 복지를 위한 오스트리아의 임대 아파트 제도는 정말 부러운 부분이었다.
우니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한시바삐 도입되어 우리 서민들의 휘어진 허리가 쭉 펴질 때가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훈데르트바서하우스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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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자랑인 예술가 훈데르트바서의 미술관 쿤스트하우스빈.
1,2 층에 전시된 훈데르트바서의 회화와 건축물 모형을 정신놓고 보다가

미술관 마당으로 나와 보니 벽 쪽에 그어놓은 이상한 선들이 보인다.

하얀 타일로 삐뚤빼뚤......마치 아이가 장난한것 처럼 그어 놓은 선,
헐.....이건 주차선이 아닌가!

자동차 주차선이 이렇듯 제 맘대로의 곡선이라니....대체 어떻게 주차하라는거지?





주차선을 자세히 보니 하얀색만은 아니고 간간히 검정색, 파란색, 붉은색이 섞여 있다.

거기다 바닥의 어떤 부분은 시멘트 포장, 어떤 부분은 그냥 흙 위에 낙엽만 덮힌 상태....
평생 직선으로 반듯반듯 구획지어 그어진 주차선만 보던 필자에겐 다소 황당스럽기까지 한 주차선이다.





거기다 오른쪽 세번째 주차선은 좁기가 이를데 없다.
어떻게 차를 대라는거지?





해답은 간단하다!  그냥 자기가 대고 싶은대로 적당하게 대면 되는 것이다.

오른쪽에 주차한 차는 두 차선을 물고  자연스럽게 차를 세워놓았다.

우리나라 아파트 주차장 같으면 왜 차선에 맞추어 대지 않았냐고 아침부터 싸울 수도 있을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하게 두 차선을 사용해서 주차한 차를 보니 갑자기 보는 사람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에는 자로 잰 것 같은 반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건물의 외관은 물론 지붕, 바닥, 계단 등을 다 곡선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주차선까지 곡선일 줄이야....!

주차선은 반드시 직선이라야 하고 넓이도 획일화되어 있어야 한다는건.....필자의  편견이었다.
선을 물고 대든..... 들어가다 말든..... 너무나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을 것 같은 곡선 주차선.
이 주차선 앞에서는 누구나 반듯하게 차를 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거 같아  이렇게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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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미술 작품과 그가 디자인한 건축물을 돌아보기 위한 오스트리아 여행,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빈,Wien)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km를 달려
스티리아(Styria, Steiemark)주에 위치한 바른바흐(Barnbach)로 향한다.
스티리아의 주도 그라츠(Graz,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에서 얼마 멀지 않은 바른바흐는 
스티리아주 보이츠베르크구에서도 가장 조그만 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은 도시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곳에 훈데르트바서가 새롭게 디자인한 성 바바라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평화롭다 못 해 한산한 느낌까지 드는 시골 마을 바른바흐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성바바라 교회에 이르니
바로 앞에 보이는 교회 건물....
아.....교회가 너무 예쁘네....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그 도시를 대표하는 교회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날아갈 듯 가벼워보이는 교회는 처음이다.
많은 유럽의 교회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과 함께 근엄하고 묵직하게 버티고 있다면
훈데르트바서의 교회는 쓸데없는 권위를 훌렁 벗어 던진 듯 가볍고 행복해 보인다.




성 바바라 교회(Church of St. Barbara)입구에는 그가 디자인한 건물에는 빠질 수 없는 분수가 자리잡고 있다.





역시 겨울이라 분수에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성모상인가 했더니 광부와 건축업자의 수호성인인 성녀 바바라상이란다.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디오스쿠루스의 딸로서 뛰어난 미모를 지녔는데,
그의 부친은 수많은 청혼자들의 기를 꺾기 위하여 그녀를 탑 속에 가두었다고 한다.
어느날 부친은 그녀가 크리스챤이 된 것을 발견하자 그녀를 죽이려고 덤벼들었으나
아버지의 분노를 피하여 기적적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곧 다시 붙잡힌 그녀는 이번에는 재판관 앞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였다.
이러한 벌로도 만족하지 못한 그의 부친은 그녀를 산으로 끌고가서 죽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끝내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고.....




교회 파사드(facades)엔 마치 유치원 아이가 그린 듯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심볼들이 한가득 새겨져 있다.





교회 첨탑 높은 곳을 장식하며 화려하고 근엄하게 자리잡고 있기 십상인 시계는
여기서는 가볍게 변모했으며 심지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두개의 시계 중 하나는 상식을 뒤엎는 시계!  아예 윗부분이 없다.
그리고 시계의 숫자도 8,9,10,11,12,1,2,3,4......뿐이다.  도대체 5,6,7은 어디로 실종된거지?
시간을 어떻게 보는건지 아무리 보아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하다....아시는 분 조언 주시길....




교회 파사드(facades) 왼쪽에 새겨진 이 심볼을 보고 왜 국민은행 로고가 여기에 있지? 하며 우스개 소리를 하는 분이 계셨는데
P자에 X자가 겹쳐진 이런 십자가 모양의 심볼은 카톨릭 교회의 제단이나 제구에 많이 쓰이는 것을 본다.
이는 그리스어인 '크리스토스(Xρωτδ = XPISTOS)'의 앞에 두 글자 X와 P를 따온 말로서
영어로는 크라이스트(Christ)로, 한국에서는 그리스도라고 읽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말이다.
읽을 때는 '엑스 피' 나 '피 엑스'로 읽으면 안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이므로 '키로'(Chi Ro)로 읽어야 한다고.....
크리스 마스를 뜻하는 X-Mas의 X가 바로 이 키로 (XP)를 뜻하는 말로서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를 의미하는 말이다.




파사드의 왼쪽에는 이렇게 돛을 단 배가 그려져 있다.
어쩐지 훈데르트바서의 자유로운 영혼을 감싸 주었던 보트 레겐탁(Regentag)과 같은 느낌을 준다.





파사드의 옆면엔 대형 십자가와 기도하는 사람의 형상이 모자이크로 되어 있다.





교회 첨탑에는 오스트리아의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양식인 황금색의 꾸뽈(Coupole)이 눈에 확 들어온다.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에는 어디든지 이 꾸뽈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이는데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블루마우, 그리소 심지어는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높은 굴뚝에도 이 꾸뽈 양식이 채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꾸뽈(Coupole)이란 러시아 -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양파 모양의 돔을 일컫는 말인데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바실리 성당의 돔 등에서 볼 수 있는 러시아 정교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꾸뽈은 신에 대한 간절한 기도를 형상화한 것으로 둥근 양파 머리는 촛불을, 그 위의 십자가는 촛불의 심지를 의미하는데
러시아 정교회 건물에 하나같이 꾸뽈이 서 있는 것은
꾸뽈이라는 촛불이 인간의 간절한 기도의 염원을 하늘을 향하여 대신 태운다는 의미라고 한다.





종탑의 옆면과 뒷면에도 역시 시계가 있는데 옆면의 시계를 자세히 보면 '스마일'의 형상이다.
이마에 해당되는 윗부분에는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 하트가, 웃는 입 모양은 움직이지 않는 믿음을 상징하는 닻이,
그리고 두 눈은 알파와 오메가로 되어 있는데 이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는 요한계시록 1:7~8절의 말씀에서 따 온 것이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슥슥 그린 것 같은 이 형상들을 보니 보는 필자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교회를 둘러싼 마당에는 특이하게도 세계 모든 종교를 의미하는 열두개의 문들이 서 있다.
기독교, 유태교, 불교,  이슬람교, 일본의 신도, 기타 원시 종교의 상징물까지.....





Friedrich  Zeck 신부의 계획에 따라 훈데르트바서는 세인트 바바라 교회를 재 디자인하는 일을 허락했는데
훈데르트바서는 교회 주변 또한 이 계획에 포함시켜 달라고 했고 세계 모든 종교를 의미하는 열두 개의 문들을 디자인했다.













유대인인 훈데르트바서가 카톨릭 교회 마당의 12개의 문에 각 종교의 상징을 박아 둔 것은 그의

종교 다원주의 성향 때문인 듯.....
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자신의 민족이 겪는 아픔을 똑똑히 목도했기에 종교가 서로 관용하고 대화함으로 평화를 유지하길 원했다.





이 교회를 재디자인한 것은 1987년인데 화가인 훈데르트바서가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기능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현대 건축들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는 신념이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의 메마른 건축들을 치료하여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동거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크고 작은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의 예술이 ‘행복한 삶의 추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
그가 인간이 실질적인 삶을 영유하는 공간인 건축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자연의 굴곡을 그대로 보존하고 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에 식물이 자라나며 불규칙하며 둥글게 굴려진 구석과 모서리’ 등
그가 추구한 공간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행복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암다채(暗多彩)를 좋아하지만 성 바바라 교회 벽의 색감은 전혀 어둡지 않고 너무나 가볍고 밝다.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둡고 음산한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오묘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톤의 벽은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까지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에 대한 철학을 생각하며 교회 건물과 마당의 상징물들을 다 훑어 본 후 내부를 보기 위해 교회 문을 밀고 들어가 본다.





눈 앞에 펼쳐지는 교회의 내부는 의외로 외부와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훈데르트바서가 재디자인한 건물이니 교회 내부도 의례히 구불구불한 곡선과 울퉁불퉁한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교회 안은 의외로 평범하다고 느껴질만큼 단순하고 간결하다.


 

 
이렇게 외부와 내부가 다른 것은 훈데르트바서는 교회의 외부 디자인과 마당의 종교적 상징물을 디자인하고
교회 안 인테리어는 지역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 내부 장식도 훈데르트바서 스타일로 했더라면 더욱 통일미가 있었을텐데.....조금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훈데르트바서는 교회 내부의 두군데만 디자인했는데 그 중 하나는 교회 출입문 왼쪽 세례반 뒤에 있는 나선형 창문이다.





훈데르트바서는 나선은 생명의 원초적인 형태이며 자연과 닮은 유기적인 형태라고 생각했고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나선은 인간의 삶과도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했다.
하나의 나선은 가늘고 약하지만 돌고 돌아 겹쳐질수록 그 세계는 견고해지고 풍성해지며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인 동시에 다른 존재와 존재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훈데르트바서의 나선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양과 색의 배합이 우리나라 부채 태극선과도 흡사한 느낌을 준다.





또 하나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제단 위 예수 그리스도상의 후광 부분이다.





십자가상의 예수상에서 비치는 후광은 빛의 습성상 똑바로 나가지만 
직선으로 된 부분도 자세히 보면 삐뚤빼뚤한 모자이크 타일을 붙여서 완성했다.
직선의 표현도 곡선으로 하는 훈데르트바서. 정말 누구도 하기 힘든 발상의 전환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색채 감각과 그의 남다른 생각이 함께 빚어낸 멋진 작품 성 바바라 교회.
날이 흐리고 우중충한지라  아이들의 그림 같이 천진난만한 이 교회를 환하게 담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 날아갈 듯 가볍고 쾌활하고 즐거운 교회에 찬란한 햇살이 비추어주었더라면 더욱 화사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을까.....그의 천진함과 자유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을까.......
떠날 시간이 되어서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하는 소리를 여러번 들은 후에야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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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훈데르트바서를 일컫는 이름은 여러가지이다.
화가, 생활 디자이너, 건축가, 환경주의자, 평화주의자.......
도시 디자인을 혁신하고 생활의 미학을 높인 점에서는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와
건축에서 곡선을 살리고 자연을 추구하는 면에서는 스페인의 가우디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훈데르트바써에게 디자인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건축은
그것이 꿈이나 목표라기보다는 꿈을 실현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상적인 삶을 살고 싶어 했고 발상을 뒤집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은 예술가 훈데르트바서.
2000년 어느날 그가 '특별한 세상'이라고 말하던 뉴질랜드에서 비엔나로 오던 도중
퀸 엘리자베드호 갑판에서 세상을 떠났다.

백가지 길을 열어놓고 산 사람 훈데르트바서는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자취는 비엔나 곳곳에 남아 비엔나의 명물이 되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성 바바라 교회,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그리고 쿤스트하우스빈.





훈데르트바서의 미술관 쿤스트하우스빈은
그가 재건축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쿤스트하우스빈 앞에 도착하여 사진을 담으려고 하니 마침 햇살이 환하게 건물을 비춘다.

오후 2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는 유럽의 겨울은 낮시간에도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침침하기가 일쑤인데
쿤스트하우스빈 앞에 서니 정말 감사하게도 하늘이 파랗게 드러난다.





쿤스트하우스 앞은 좁은 도로라 건너편 벽에 바짝 붙어 서도 좀체로 건물 전체를 담을 수가 없어 이렇게 
부분 부분을 앵글에 담아 보았다.





건물을 장식한 화이트와 블랙의 체커 보드 무늬가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체커 보드 무늬이긴 하지만 하나 하나의 모양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고 모두 구불구불한 곡선 모양이다.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이 반짝거리는 모자이크 타일은 산업용 타일이 아니라 모두 수제 타일이라고 한다.




 
건물은 화이트와 블랙을 주조색으로 하여 창에는 레드, 블루, 오렌지, 엘로우, 퍼플..... 자연을 닮은 알록달록한 색을 썼는데

훈데르트바서에게 다채롭고 눈부신 색깔의 집은 행복한 집과 같은 의미였다.





바로 옆에 붙은 획일적이고 밋밋한 건물들을 보면 쿤스트하우스빈이 얼마나 개성있는 집인지 확연하게 대조가 된다.
그는 항상 자연에는 자로 잰 듯한 반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모든 건물에는 곡선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사각의 기둥은 이렇게 둥근 항아리 모양의 기둥으로 변신했고 
건물 바로 앞의 보도 블럭도 이렇게 물이 흐르듯 유연한 곡선으로 이어져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를 원했던 쿤스트하우스빈의 정원은 많은 식물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를 보호해주고 살 공간을 제공해 주는 집을 제 3의 피부라고 표현했던 훈데르트바서는

집이 세워짐으로 인해 빼앗겨버린 식물들의 생활 공간을 식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빼앗은 식물들의 공간을 건물에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디자인한 모든 건물에는 옥상과 마당, 계단을 가리지 않고 식물을 심었다.





식물들은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주고 인간은 식물로 인해 기쁨이 더욱 넘치게 된다.
인간은 식물을 통해 그늘을 얻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먼지와 소음에서 벗어나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된다.
훈데르트바서는 나무를 심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나무 의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식목일'이 있는데 만약 훈데르트바서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우리나라 식목일 홍보 대사를 자처하지 않았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작품의 소재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던 훈데르트바서는 모든 작품의 원료를 자연에서 가져왔는데

이렇게 버려진 빈 병이나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건축 자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를 추구했던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이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싶다면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도록 애써야 한다.
인간은 자연이 손님이며 그것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에 책임이 있다.
쓰레기를 분리하고 재활용하는 것은 아름답고 즐거운 행위이다"라고 주장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Friedensreich Hundert Wasser,百水)'이라고 지은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평생 환경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산 작가이다.





훈데르트바서는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 그 안에 자신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고 싶어 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블루마우 리조트......처럼 훈데르트바서의 집들의 창은 하나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단독 주택을 지을 수 없어서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 사는 요즈음, 
남이 설계하고 지은 집으로 이사온 사람들은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자신의 존재와 개성을 드러내기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는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큼은 스스로 만들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그는 '창문권'이라고 불렀다.





쿤스트하우스빈은
1892년에 지어진 토넷 가구 공업소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것이니 무려 118년이 된 건물이다.
1991년 4월에 오픈한 이 미술관 1,2층은 훈데르트바서의 그림과 컬렉션으로 채워져 있고
3,4층은 현대 작가들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2층의 훈데르트바서 전시 관람료는 12유로, 3,4층의 기획전까지 관람하고 싶으면 16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개성 만점 매니큐어의 손은 제 손이 아니구요...큐레이터님의 손이 찬조 출연했답니다..^^)




쿤스트하우스빈 로비에는 그의 건축물에 어디든지 존재하는 실내 분수대가 중앙 벽면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건축물에 들어앉히는걸 원했던 그는 인공 정원은 물론 실내 분수를 꼭 설치한다.





로비의 바닥 또한 물결 흐르는 듯한 곡선의 모자이크 타일로 뒤덮여 있는데 자연의 언덕처럼 완만한 경사가 있다.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반듯한 직선이 아니라 유연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비 한쪽에 위치한 뮤지엄샵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이용한 다양한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다.








여러가지 기념품 중에서도 그의 작품을 담은 그림 엽서는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이용한 장난감 중에서는 돌리면 이렇게 뱅글뱅글 나선이 그려지는 신기한 팽이도 있는데   

나선이 생명의 원초적인 형태라고 생각했던 훈데르트바서의 그림에는 유난히 나선을 이용한 그림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곡선으로 처리된 계단을 따라 전시관으로 올라가 본다.





올라가는 계단에도 이렇게 빈틈없이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데
계단에 걸려 있는 식물 또한 거창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쿨 식물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 온다.





훈데르트바서라고 쓰인 벽 오른쪽 문을 밀면 전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시관은 적막할 만큼 조용해서 옮겨딛는 발소리가 느껴질 정도였는데
이렇게 가운데에는 앉아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의자를 놓아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전시관 안에는 훈데르트바서의 회화 작품과 테피스트리, 우표 등 콜렉션, 그의 건축 작품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매혹적이며 화려한 그의 회화는 다양한 색채를 사용했으며 재료 또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채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색채가 살아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암다채(暗多彩)의 색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는 암다채가 순수라고 강하고 깊은 색이라고 생각했다.





비오는 날에는 모든 사물이 비에 젖게 되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이 더 빛난나고 생각했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비에 젖은 듯한 강렬한 색감이 가미되어 모두 화려하고 생동적이며 빛이 난다.





훈데르트바써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나 자연과의 조화를 꿈꾸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과 건물은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구성되며 자연의 색을 닮은 노랑, 빨강, 파랑 등 알록달록한 색을 사용했다.
그런 까닭인지 그의 작품에는 어린이 같은 천진함과 자유, 편안함이 느껴진다.

 



백가지 길을 열어놓고 산 사람 훈데르트바서는  눈에 뜨이지 않게 서서히 자라는 식물의 성장과 같이
천천히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어떤 작품은 짧은 시간에 꽃을 피우듯이 완성되었고, 어떤 작품은 완성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이루어 놓은 결과물은 아주 바쁘게 산 사람이라도 평생 흉내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많다.
 




훈데르트바써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로 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며 살았기에 
세상을 더 풍요롭고 더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든 예술가이다.





훈데르트바써는 늘 그림을 그렸고,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었다.
그는 늘 꿈을 꾸며 살았기에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고 꿈을 현실로 옮길 수 있도록 무한히 노력한 사람이다.
그의 남긴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한 가치와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파라다이스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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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부터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 바서>의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내년 3월 15일까지 100일 동안 열리게 되는 이 전시에는

그의 작품 <세 번째 피부>, <블루 블루스>를 포함한 회화 63점,

예술 작품으로 승화 된 건축 모형 작품 8점,
수공으로 제작 된 태피스트리 5점,

오리지널 그래픽 작품 26점, 오리지널 스탬프, 사진, 영상 등

총 120 여 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응....? 이런 예술가도 있었나....?" 했었다.

필자의 미술 전반에 관한 지식이 얄팍하기 그지없었는데다가 

그동안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대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고 할만큼

서구에서는 이미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술가지만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생소하기도 한 이름인데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을 디자인한 작가라는 말을 들으니

"아하!"하며 그의 작품 스타일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건축치료사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

삶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을 주창하였던 토탈 아트의 선구자 클림트, 에곤 쉴레의 뒤를 이어 

비엔나 토탈 아트의 정점을 장식한 그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1928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훈데르트바서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아리안이었으며 어머니는 유태인이었다.

태어난 그 이듬해 1929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당시는 히틀러가 서서히 정권을 장악하고 반 유대주의 정책을 펴기 시작한 시기라

그는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야 하는 불우한 유년을 보내어야 했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참상은 그로 하여금 평화와 공존의 소중한 가치를 더욱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평화주의적, 환경주의적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사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 예술학교에 3개월간 다닌 것 외에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습작기를 거치며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하게 된 것은 파리 여행을 하면서부터인데

그는 이때 클림트나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색채의 마법사'라 불리울만큼 강력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하였는데

색을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전통적인 색 조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대담한 색들을 구사했다.





매혹적이며 화려한 그의 회화는 색채 뿐 아니라 재료 또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채 자유롭게 사용되었는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색채가 살아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연에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불기운에 구부러진 자를 들고 다녔으며 직선이 배제된 그림을 그리고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그의 그림이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주조적인 이미지는 곡선의 이미지인데

둥글고 유기적인 형태, 원들과 나선은 그가 선호하던 형태들이었다.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만들어 신고 다닌 신발


훈데르트바서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거꾸로 생각해보고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차림표에 없는 것,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것을 원했는데

옷, 모자, 신발 등 몸에 걸치는 것을 직접 디자인해서 입었으며 양말은 언제나 양쪽을 다른 색으로 신고 다녔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이름을 개명했는데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Friedensreich Hundert Wasser,百水)'이라고 지은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에 대한 사랑은 평생 훈데르트바서를 떠나지 않았고 언제나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려고 애썼으며

자연을 그림으로 그리고 자연에 동화된 건물을 지으려고 힘썼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에게는 5개의 피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피부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 외피를 의미하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의복은 두번째 피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번째 피부는 우리 몸을 위한 옷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덮개인 집과 건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선의 감옥 같은 건축들을 혐오하며

아름답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창의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城)을 짓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집은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 볼 때 누가 사는 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번째 피부는 우리가 속한 사회이며 5번째 피부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행복한 집과 다채로운 집을 꿈꾸던 그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만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비엔나 시영아파트 건축 디자인 공모에 자신의 디자인이 채택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건축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첫 건축 프로젝트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난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는데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다양한 창문과  풍성한 나무들은 보기만해도 행복한 집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도시 주택단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주거지의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이라도 스스로 만들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창문의 권리>라 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한 사람이 창에서 팔을 뻗쳐 닿는 범위는 개인의 공간이며 그 공간만큼은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라는 문구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세입자 계약서의 첫 문구에  실제로 쓰여져 있다고 한다.



                                                                                                                                                                                                   블루마우 리조트


훈데르트바서는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초원의 공간을

옥상에 다시 만들어 초원에게 다시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나무세입자라고 불렀는데 나무세입자는 인간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먼지와 소음을 막아주고, 나뭇잎 지붕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줌으로써 세입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루마우 리조트


이런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낸 블루마우 리조트에 잘 나타나있는데

이 리조트의 모든 건물은 옥상 지붕이 온통 식물들로 우거져 있어 사람들이 그 위를 걷고 돌아다닐 수가 있게 되어있다.

옥상에 자라는 식물들로 인해 블루마우의 객실은 에어컨이나 난방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사시사철 적정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유선형 지붕은 땅과 연결되어 자연스러운 언덕이 되고,  2200개의 창문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블루마우.

이 작은 마을은 훈데르트바서의 꿈을 현실로 옮겨놓은 아름답고 독특하며 기발하고 놀라운 '동화의 나라'이다.



                                                                                                                     세인트 바바라 교회


훈데르트바서는 도시의 메마른 건축들을 치료하여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동거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크고 작은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도심에 버티고 서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만 하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게 된 이후 비엔나 시민에게 사랑받는 멋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지상낙원을 향한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전문가와 함께 직접 건축 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그 웅장한 스케일은 실제 건축물 앞에 서는 것과 흡사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꿈꾸는 몽상가이면서 그 꿈을 현실에 옮겨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진정한 예술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꿈을 일깨워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은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바서.





매혹적인 색채와 유기적 형태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훈데르트바서의 회화 작품과

자연과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표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그의 건축물 모형은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에서 곧 확인할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의 환상적인 작품들은 현재 서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2010년 12월 5일부터 2011년 3월 15일까지 열리는 
훈데르트바서 한국 전시
.

아래 링크를 누르면 전시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www.hundertwasser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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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을 주창하였던 토탈아트의 선구자 클림트, 에곤 쉴레의 뒤를 이어 
비엔나 토탈 아트의 정점을 장식한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 .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건축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고 할만큼
서구에서는 이미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술가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가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을 직접 디자인한 사람이라고 하면
모두가 "아하!"하고 그의 작품 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야 볼 수 있었던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문화엠엔씨, ㈜MBC플러스미디어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후원하는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 전시'

2010년 12월 5일(일)부터 - 2011년 3월 15일(화)까지 100일 동안 열리는 전시에는  
오리지널 페인팅, 건축 모형 작품, 오리지널 그래픽, 태피스트리 등의  조화로운 구성을 통하여
지상 낙원을 향한 꿈과 그 꿈을 실현시킨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한국 전시에 앞서 미리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주어졌네요.
 
11월 9일에서 11월 14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인 쿤스트하우스빈,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그가 디자인한 블루마우 리조트,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등 건물을 보고
비엔나에 위치한 미술관 몇군데를 더 돌아보고 오게 됩니다.


내일 아침은 시간이 너무 없는지라 지금 인사 드립니다.
다녀와서 다시 인사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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