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경북 예천 '추억의 타임머신 레이스'편에서

멤버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어주었던 순대국집.

말도 안 되는 가격과 맛으로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던 순대국집은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 위치한 박달식당이다.

1박2일의 인기를 업어 유명해진 맛집인가 했더니

이집은 1박2일에 방영되기 전에도

용궁면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예천 택시 기사님들이 즐겨 추천하는 인기 맛집이라고 한다.

 

 

용궁역 바로 앞에 위치한 박달 식당에 이르니 식사를 마치고 나온 주민들로 식당 앞이 북적거린다.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입구부터 테이블이 놓여있어 내부가 상당히 협소해 보인다.

 

 

돌아보니 의외로 안에는 여기저기 방이 위치하고 있고 방마다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이쪽 방에도 저쪽 방에도 방 마다 손님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거주민도 많지 않은 면소재지 구석에 위치한 식당에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들어차 있다니.....!

 

 

1박2일 뿐 아니라 생방송 전국시대, KBS 무한지대 큐 등 여러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파급 효과가 큰가 보다.

 

 

손님들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오픈된 주방 안에서는 많은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손길을 놀리고 있는데

주방 종사자들의 위생모 착용은 물론 주방 내부도 상당히 청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일 구석진 방의 빈 테이블을 간신히 하나 배정받아 앉아 메뉴판을 쭈욱 훑어보았다.

딸랑 순대만, 순대랑  수육이랑, 수육, 오징어 불고기는 7,000원선. 따로국밥은 5,000원이다.

2009년에 1박2일 팀이 와서 식사했을 때는 따로국밥이  3,500원 밖에 안 했다고 하는데

식자재 값이 미친 듯 인상되는 요즈음 3,500원 하던 국밥이

3년만에 5,000원으로 오른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순대랑 수육이랑, 따로국밥을 주문해본다.

 

 

주문하자마자 기본 반찬들이 후다닥 상 위에 베풀어진다.

김치, 깍두기, 마늘 절임 몇 쪽, 생마늘, 청량고추, 다대기, 된장, 그리고 새우젓 등이다.

 

 

기본 반찬이 나오고 금방 '순대랑 수육이랑'이 나왔다.

그런데 순대의 모양이 영 불품 사납다. 예쁘게 썰어지지 않고 속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왔다.

 

 

순대가 뭐 이래? 하고 자세히 보니 대창을 이용한 진짜 중의 진짜 순대이다.

순대피가 대창이다보니 써는 과정에서 깔끔하게 안 썰어지는 모양이다.

순대를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어 씹으며 그 맛을 음미해본다.

대창을 써서 질길 줄 알았는데 전혀 질기지가 않고 적당히 꼬들하고 부드러운 식감이다.

거기다 피와 당면 등 순대 속과 조화를 제대로 이루어 씹는 맛이 일품이다.

 

 

수육도 그냥 대충대충 썰어져서 접시에 턱하니 올려져 있다.

 

 

수육도 아주 잘 삶아졌다. 새우젓에 콕 찍어 맛을 보니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져 퍽퍽하지 않고 목으로 부드럽게 잘 넘어 간다.

 

 

곧 이어 따로국밥이 나왔다. 밥 포함해서 5,000원 짜리 순대국밥이다.

그런데 국물이 진짜 뽀얗다.  마치 사골국물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건더기가 다 가라앉아 보이지 않길래 순대국밥 위에다 청량 고추 썬 것을 듬뿍 얹어 보았다.

이제야 비쥬얼이 좀 그럴싸하게 보인다.

 

 

숟가락을 국밥 그릇에 넣어 건더기 한 숟갈 건져 올려 본다.

 

 

숟가락 위에 올려진 속살이 오동통한 순대는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숟가락으로 푸욱 떠서 건져 올려보니 와! 건더기가 정말 많이도 들어있다.

순대 외에도 머릿고기 등 여러가지 부위의 건더기가 푸짐하기도 하다.

 

 

따로 나온 공기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필자는 유명 맛집 조건의 첫째를 밥 맛으로 꼽는데

영업이 잘 안 되는 식당은 밥을 해서 온장고에 보관하다가 내어놓기 때문에 밥이 굳어있는 경우가 많지만

유명 맛집은 식탁 회전이 그만큼 빠르기 때문에 손님이 올 때 마다 새밥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달 식당의 밥도 필자의 맛집 조건에 부합되게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합격이다!

 

 

순대국밥의 국물은 사골 육수처럼 맛이 진하고 고소하기 이를데 없다.

밥을 반 정도 덜어 순대국밥에 투입하고 다대기를 넣은 후 허겁지겁 입 안으로 가져가니

얼큰하고 진한 국물이 속을 확 풀어준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국밥 그릇 밑에 가라앉은 건더기가 끝이 안 난다.

아니.....5,000원 짜리 순대국밥에 도대체 순대와 건더기가 왜 이렇게 많이 들어있는 거야!

다 먹어가는데도 그릇 안을 휘저으면 계속 계속 올라오는 건더기 때문에 나중엔 그만 지쳐 버렸다.

 

 

식당에서 상을 받으면 밥과 국은 다 해치우는 것을 나름의 법칙으로 삼고 있던 필자.

이미 순대와 수육을 조금씩 맛보아서 그런지 밥도 국밥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1박2일의 인기를 업고 이름만 무성한 맛집인가 했던 예천 용궁 박달 식당.

특허까지 냈다는 진짜 순대와 푸짐한 순대국밥은 멀리 찾아간 여행자의 뱃속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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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2일 경북 예천편 '추억의 타임머신레이스'에서  제시된 한자를 받아 쓰는 '과거시험 미션'을 치를 때

 한자사전에도 없는 엉터리 한자를 써서 시청자들의 폭소와 쓴 웃음를 자아내던 곳을 기억하시는지?

       과거시험을 치르던 바로 그 장소는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 예천군 삼강 주막이다.

 삼강주막은 사극에서 보던 '주막'가운데서 실제로 남아 있는 최후의 주막이라고 하여 찾아 보았다. 

 

 

예천군 용궁면에서 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삼강교를 지나 풍양면에 이르면

세개의 강이 흐르는 가운데 지점에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서 흘러오는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함께 만나는 마을의 이름은 삼강마을이라 하고

세 강이 만나는 곳에 지어진 주막의 이름을 예로부터 삼강주막이라고 불렀다.

 

 

1900년대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10여년이 넘은 삼강주막은 아직도 주막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막 내에는 1900년대에 지어진 주막과 함께 사공 숙소, 보부상 숙소, 원두막과 평상이 군데군데 위치하고 있어 

주막을 찾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토리묵, 두부 등을 안주로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예전에는 주모가 한상 차려서 손님 상에 일일이 가져다 주었던 삼강주막,

요즘은 손님이 직접 음식을 주문해서 가지고 가는 셀프 주막이 되었다는 점이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다.

 

 

원래 이곳에는 1900년대에 지은 사공 숙소와 보부상 숙소가 있었다.

당시 삼강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아주 활발한 곳이었는데

보부상과 길손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한 곳이었다.

밤이 되면 낯 모르는 사람들이 호롱불에 둘러앉아 야담을 나누면서 잠을 청하던 곳이 보부상 숙소이며

 

 

보부상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은 길손들을 실어나르느라 기꺼이 노를 찹았던 사공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 두 건물은 갑술년 (1934년) 대홍수로 멸실되었으나

2008년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2008년 복원하였다.

현재 삼강주막 내의 대부분 건물들은 민박 체험도 하고 있어 이곳에서 민박하는 사람들은

110여년 전 주막에서 하룻밤 묵던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도 있어 좋다.

 

 

강둑을 따라 주막 바로 옆에는 이렇게 커다란 '들돌'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들이 장성하여 어른으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들돌은 상당히 커서 웬만한 장정들은 들어올리기는 커녕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큰 들돌로 힘을 측정한 것은 예전의 장정들이 힘이 셌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날의 장정들이 힘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까? 그점이 궁금하다.

 

 

삼강주막 내 많은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지만

다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건물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다.

 

 

경상북도 민속 자료 제 134호로 지정된 삼강주막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작고 다소 초라하기까지 하다.

 

 

건물은 방 2간, 부엌 1간, 마루 1간에 지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주막의 기능에는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삼강주막의 중심인 부엌 문으로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안에는 소박한 찬장이 하나 놓여 있고 부엌 아궁이 위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마솥 하나 가득 끓여진 국밥은 이 주막에 머물다 간 많은 사람들의 속을 따끈하게 덮여주었겠지......

 

 

부엌 흙벽에는 이렇게 주막 주인이었던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 장부로 그은 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렇게 금을 그어놓은 것만으로 누가 얼마나 외상으로 먹었는지 어떻게 알아낼까?

아마도 유옥연 할머니 만이 풀 수 있는 신비로운 수수께끼인 듯 하다.

 

 

그런데 주막엔 외부, 내부 할것없이 수많은 낙서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장부였던 흙벽의 수많은 금들도 이렇게 유리를 씌워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래 전에 훼손되어 없어졌을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 한다.

삼강나루의 나들이객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로는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사용되던 삼강주막.

세월은 흘러 이곳을 기점으로 오가던 행인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이 스쳐간 흔적은 남아 오래된 발자취를 전하고 있다.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의 평상에 걸터앉아 옛 행인들처럼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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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에서 예천읍 쪽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가다
금천 위에 놓인 산양교를 지나 924번 지방도로 접어 들면
시간이 멈춘 듯 거리마다 70년대의 풍경이 가득한 마을을 만나게 된다.

바로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1박2일에도 소개되었던 용궁로를 걷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을 거슬러 올라 1970년대로 돌아간 듯
양 옆으로 펼쳐지는 오래 된 가게들과 간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용궁면의 메인 스트리트인 용궁로. 나름 번화가인 용궁 사거리가 지척이건만
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들도 많지 않고 대로변에 위치한 주택 앞에서는 할머니 한분이 무심한 듯 집 앞 청소를 하고 있다.



도시에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동물병원이 많지만 농촌인 용궁에 위치한 동물병원은 그야말로 '가축병원'일 뿐이다.
 


어렸을 적엔 동네 어디에서나 있었던 간판 '상회'.
요즘 어느 도시에 가든 '상회'라는 간판은 보기 힘든데 용궁 이곳저곳에는 '상회'라는 간판이 심심찮게 남아 있다.
용궁의 삼천리 상회는 운동화, 장화를 비롯하여 자전거, 농기구, 락카......등
농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이른바 '만물상'이다.

 


농촌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호스, 플라스틱 통, 삽, 괭이, 갈퀴.......등을 파는 철물점.
요즘 보기 힘드는 연탄 보일러도 눈에 뜨인다.


 

요즘은 거의 입지 않는 무스탕도 세탁한다는 세탁소. 2층 건물은 지은지 50년도 더 되어 보인다. 

 


이발소와 미용실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 장날이라 그런지 이발소에는 손님들이 제법 있어 보인다.
대도시의 이발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미용실을 가지 않는 시골 할아버지들 덕에
이 조그만 마을의 이발소는 아직 살아남을 수 있었나 보다.


전화번호 국번이 두자리라니.....! 초원이발관의 간판은 대체 언제적 것일까?
간판에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북향집인데도 불구하고 낡고 삭아버린 간판의 글자가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곳을 터전으로 미래를 점쳤던 용궁도사님은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제 미래를 점치는 일을 그만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호미, 곡괭이, 삽 등 여러가지 농기구를 만들어 팔던 철공소.
큰 공장에서 제작되어 나온 농기구가 시골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요즈음
더 이상 철공소에서 농기구를 제작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간간이 들어오는 경운기 등 농기구 수리에나 의존해야 하는 철공소.......



승용차가 없는 시골 노인들에게 오트바이는 최고의 멋진 교통수단.
장날을 틈타 오트바이 수리하러 온 손님들로 인해 오트바이 가게 주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닭도리탕, 오징어구이, 매운탕을 파는 통일식당 아줌마의 요리 솜씨에 반한 것일까?
문이 열렸을 때 본 식당 안에는 의외로 장을 돌아보러 나온 아저씨들로 그득하다.


60년 이상 한자리를 고수해왔다는 참기름집은 유리로 된 나무 문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박2일에서 은지원 등 YB팀이 참기름 짜는 미션을 실행했던 제유소 옆을 지나니 고소한 냄새가 코를 심하게 자극한다.


강호동 등 OB팀이 찾아가 수공업으로 직접 제조한 막걸리를 맛보던 용궁양조장.
1958년에 지어졌다는 벽돌집 외부를 다 덮어버린 담쟁이 덩굴은 50여년이 넘은 건물을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1박 2일 팀이 마지막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던 털보 사진관에는 다른 집처럼 1박2일 촬영을 했다는 플래카드도 붙어있지 않다.
집집마다 디지털 카메라가 한두대 쯤 있는 요즈음, 장날이 되어도 사진관을 찾는 발걸음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이 사진관을 운영하시던 털보 아저씨는 아직도 계속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까?
사진관의 문을 밀고 들어가 확인해 못했던 것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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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북쪽에는 아름다운 길이 참 많다.
많고 많은 서울의 길 중에서도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의 계동길은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6~70년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
오늘은 계동길을 따라 걸으며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타임머신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계동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북촌 한옥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북촌 문화센터이다.
본래 조선 말기 세도가 '민재무관댁'이었던 이 곳은 '계동마님댁'으로도 잘 알려진 곳.
창경궁 후원의 연경당을 본따 지은 이집은 안채, 바깥채, 앞행랑채, 뒷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던 집인데
최대한 한옥 원형을 보존하며 개보수되어 지금은 북촌을 알리는 문화센터로 거듭나게 되었다.





안채 뒤로 마련된 아담한 정자는 원래 사당이었던 것을 휴식공간으로 제공해
단아한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차 한 잔 나누는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고
사랑채 등 부속 건물에서는 북촌 한옥 마을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북촌 팔경의 포인트와 북촌 가이드북, 북촌의 한옥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안내서도 구할 수 있으니
북촌 한옥마을을 돌아보기에 앞서 북촌문화센터를 먼저 들리는 것은 필수!





문화센터 바로 옆에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본 듯한 빨간 벽돌집의 병원이 자리잡고 있다.
80세의 할아버지 의사가 최근까지 진료를 한 병원인데 이제는 병원이 팔렸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이 병원을 다녀간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수많은 아이들의 추억을 간직한 병원 건물이 헐리지나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관련 포스트 :  타임머신여행에서 만난 북촌 최소아과





계동길에 들어서면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는 한옥들과 시골 읍내에서나 본 듯한 건물들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마치 6~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요즘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드는 철물, 건재 만물상이 입구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플라스틱비, 보드라운비....같은 각양각색의 빗자루로부터 먼지털이, 대걸레, 석유 펌프, 호스, 변기솔, 방충망......등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잡동사니들이 다 모여있으니 주민들은 멀리가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다 구할 수 있으리라.





바로 옆집에는 참기름집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미숫가루, 쌀방아, 고추방아, 참기름, 들기름.....
이곳에서 수작업으로 짜서 파는 참기름은 정말로 고소한 내음이 진동하는 <참>기름일 것 같다. 

 




오래된 문구점에는 아직도 아폴로 같은 불량식품을 팔며 옆 골목에는 추억의 뽑기 놀이가 아이들을 유혹한다. 
학교앞 문구점이나 동네 가게 앞에 앉아 뽑기놀이를 하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게 남아 있는 빛바랜 추억이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밀려 동네 서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요즈음이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학교 앞 서점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당 서점이라고 손글씨로 흘려 쓴 간판과 공테프를 판다는 알림글들이 이 서점의 연륜을 말해 준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지는 믿음미용실.
뽀글파마를 하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와 미용사는 계동길의 새로운 뉴스 리포터이다.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데 신기할 정도인 양장 양복점. 예전에는 동네 멋쟁이들이 이곳에서 양복이며 투피스를 맞추어 입었겠지?
 




특이한 이름을 가져 눈길을 끄는 왕짱구식당은 25년 이상 전통을 자랑하는 가정식 백반집이다.
된장 우거짓국 맛이 일품이라는 이곳은 어설픈 외관과는 달리 유명 연예인들도 종종 찾아오는 유명한 맛집.

 

 




대형사우나와 찜질방에 대세인 가운데서도 영업을 하고 있는 중앙탕.
모두가 대형 사우나로 발길을 돌릴 것 같은 요즈음에도 이곳에 와서 몸을 담궈야 목욕한 것 같다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다나......




중앙탕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꽤 있다는데 이날도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계동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럼 계동길에는 모두가 시골 읍내 필이 나는 이런 집들만 있나? 생각하시겠지만
군데군데 새롭게 리모델링한 분위기 있는 갤러리나 카페도 많이 보인다.





병풍 모양의 쇼윈도우와 기왓장으로 꾸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런 이쁜 공방도 보이고......




 
지붕은 비가 새어 천막으로 덮었지만 노란 벽이 너무나 눈부신 이런 소박한 작업실도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다.





저절로 커피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이런 카페도 보이고
 




카페도 갤러리도 많지만 계동길의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여기저기 눈에 뜨이는 한옥들이다.





살림집으로만 쓰이는 한옥들도 물론 많지만 이렇게 카페로 개조된 한옥도 보이고





북촌의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특히 130년 된 한옥을 인간문화재 정영진옹이 세심하게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락고재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정자, 연못, 대청마루 등을 세심하게 되살렸고
호텔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숙박시설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의 잊지못할 추억을 남겨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락고재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미국에서 온 다니엘 헤니가 숙박한 게스트하우스로 촬영한 곳이라 더욱 인기가 높다.






그리고 골목 안에는 이렇게 무형문화재 소목장 심용식씨가 지은 청원산방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유명 사찰과 한옥의 창호를 제작한 심용식씨가 제작한 전통 창호와 그 제작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청원산방과 소목장 심용식씨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자세히 포스팅하기로 하고......





계동길의 끝에는 이렇게 중앙중,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교문 옆 가게에 웬 연예인 브로마이드들이 즐비하나....?생각이 들겠지만
바로 이곳이 한류의 출발점과도 같은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장소라는걸 알면 누구나 "아하! 그곳!"하게 된다.





드라마 속에서 준상(배용준)과 유진(최지우)가 다니던 학교는 춘천이지만 로케이션 장소는 바로 이곳 중앙고이다.
교문에 들어서니 처음 와 본 학교인데도 남의 학교 같지 않고 친근감이 밀려온다.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본 후유증인가?






1908년에 개교해서 100년이 훌쩍 넘은 역사를 가진 중앙고는 교정이 마치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이다.
석조로 된 이 웅장한 건물은 1937년에지은 것이라고.......

우리나라의 중심은 서울이고 서울의 중심은 종로, 종로의 중심은 계동이지만
이곳은 도심이라기보다는 도리어 시골 동네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만나면 먼저 반갑게 인사하니 주민들끼리 얼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골목길을 오다가다 보면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개 되니 금방 친근해지고 정이 들게 되는 곳이 계동의 골목길인 것이다.





서울의 한복판이면서도 아직도 넉넉한 시골 인심이 남아 있는 동네 계동길.
마지막 남은 
보석같은 이 골목길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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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문화가 아파트 거주 형태로 바뀌고 도심에는 고층 건물들이 우후 죽순으로 들어선 현대인의 삶에서
옛날부터 우리 삶의 본질적인 자산을 그대로 담고 있던 '골목'은 사람들에게 소외받는 길이 되었다.
좁은 골목길은 늘어난 자동차를 위해 폭이 확대되긴 했지만
주차된 자동차를 피해 다니며 걸어야 하는 불편한 길이 되었는데.....

대구의 도심에는 아직도 저마다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정겨운 '골목'들이 남아 있다.
진 골목(긴 골목), 약전 골목, 떡전 골목, 방마치 골목(부잣집이 많아서 항상 다듬 방망이 소리가 그치지 않는 골목),
뽕나무 골목, 종로 골목, 미싱 골목, 돼지 골목, 함석 골목, 성밖 골목, 신발 골목, 공구 골목, 자동차 골목, 오토바이 골목,  ......
이러한 도심의 골목이야말로 대구의 근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대구의 골목 중 오늘은 한약 내음 가득한 대구 명물 '약전 골목'을 소개해 드린다.




대구 약전 골목은 1908년 대구 성곽과 영남 제1관문이 헐린 자리에 도로가 생기고 이곳을 중심으로 약령시가 봄,가을로 열려 상가가 형성된 곳이다. 



약전 골목은 동성로 3가, 남성로, 계산동, 장관동 일대의 동서 800 m 정도의 골목에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한의원 20 여개소와 한약방 53 개소, 한약 도매업소 49 개소, 약업사, 인삼사 등 한의약 관련 업소 300 여개소가 모여 있는 이른바 한약의 메카이다.



대구 약전 골목의 시작은 효종 9년(16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경상 감영 안 객사 주변에서 열리던 대구 약령시로부터 비롯됐다.



약초를 취급하는 특수 시장을 이르는 이름인 약령시는 약초의 채취 및 출하의 시기에 맞추어서 해마다 봄 , 가을 두 차례 열렸는데  대구 ·전주 ·원주의 약령시가 3대 시장으로 꼽혔다.



효종 때부터 열리기 시작한 약령시는 일제강점기 때도 계속되었는데 대구의 경우는 음력 2월과 10월에 열렸고 이때는 전국에서 약초 재배자와 채취자, 상인과 약재 수요자가 모여들어 문전 성시를 이루었다.



대구에서 약령시가 개설, 발전하게 된 것은 경상도 지역을 둘러싼 태백과 소백 준령과 낙동강 등이 약재 생산의 보고로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한약재는 농가 소득의 큰 수입원이었으므로 약전 골목에서 거래되는 약재는 대구 경제의 큰 축을 이루었고 이후 수백여년 동안 명성을 떨쳤다. 
한양에서도 구하지 못한 한약재는 대구 약령시에 가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은 전국의 한약재 집산지 구실을 했고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에 한약재를 공급해서 명실상부한 한약 물류 유통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양약이 보급되고 일제 탄압 정책이 가중되면서 약령시는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그 자리에 들어선 약전 골목만이 한약의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 한약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약전 골목은 옛 명성을 다시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약령시 보존 위원회는 전통 약령시의 맥을 잇고 약령시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의 명소 약전골목을 무대로 '대구 약령시 한방 문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658년 무렵부터 해마다 열리던 대구 약령시는 전국의 한의약업인과 지역민이 함께 어울려 약재를 사고 팔며 인심과 문물을 전하던 축제 그 자체였다.
약령시 개시일이 다가오면 여각과 객주집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전국의 출시자 또한 약재 매매와 만남의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
개시일에는 약령시 동, 서쪽에 커다란 아치형 솔문을 만들어 세워 축제 분위기를 돋우었으며 한약재 매매 외 일용 잡화점도 덩달아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약령시 주변의 여러 음식점과 술집 등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벼 야간에도 이들의 열기로 인해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를 지경이었다.
이러한 약령시 개장 행사는 일제 강점기인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 약령시에서 지속적으로 열려왔는데 
이와 같이 약령시 개장 행사를 1978년부터 현대적으로 승화시켜 지금까지 이르렀고 올해도 5/1~5/5일에 개최되었다.





꼭 축제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한약재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령시 한의학 문화관'에서는
한의약 및 약령시의 역사, 문화에 대한 전시, 영상물을 보고 체험할 수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들에겐 언제든지 다양한 체험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양쪽에 빼곡이 들어선 한약방에서 풍겨나오는 한약재 냄새를 맡으며 오고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6~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대구 약전 골목.
대구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약전 골목은 대구 시민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귀하게 간직해야할 귀한 추억의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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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경수(김상경)이 선영(추상미)를 무작정 따라나서 도착했던 황오동 쪽샘길.

좁고 후락한 시멘트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낮은 처마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골목은 이제 찾기가 힘든다.
경주의 대표적인 유흥가였던 황오동 쪽샘길은 문화재 정비사업으로 철거되고 부서진 마을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도 철거되지 않고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골목이 여기저기 남아 있으니 그중 하나는 '비두길'이다.
첨성대를 지나는 바로 옆길인 '비두길'은 <북두칠성과 다른 별을 비교하는 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보니
천문관측기관인 첨성대와 장구한 세월을 나란히 한 유서깊은 길에 너무나 적합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이 골목은 해방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과 70~80년에 지어진 한옥들이 뒤섞여 있는데
70년대만 해도 경주의 중심지역이라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이 길은 이제는 퇴락해버려 한적하기만 하고
골목의 몇집 건너 한집은 국가유공자의 명패가 붙어 있을 정도로 연세많은 어른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주말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유적지 첨성대를 바로 마주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들어가보지 않는 골목.
70년대에서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버린 듯한 골목 '비두길'로 살며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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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난  친구 부부와 함께 경산 와촌에 있는 모 카페에 들렸다.

팔공산 갓바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구 근교의 연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주변의 산세와 잘 어울리는 건물에 소박한 마당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를 향해 뛰어나오던 강아지.....갑자기 옆 풀밭으로 가더니.....편안한 자세로 실례를 한다.......^^
"아줌마!! 카메라 못 치워요? 개에게도 견격(犬格)이 있단 말이에욧!!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거에욧!"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찍었을 뿐이고....^^



손님 맞이가 끝난 다른 진돗개는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더니 열심히 간식을 먹는다.

 열차 침목으로 된 테라스에는 앙징맞은 화분들이 손님을 반기고.....

 카페 안은 오래 된 오르간 등 예전의 향수을 불러 일으키는 물건으로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잘 손질되어 반들반들한 가구와  두쪽 구병풍 앞에 엉뚱하게 놓여진 단지 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처음 보는 물건이 있어서 물어보니 한약 짜는 틀이라고 한다.  

 

60년대 면사무소 옆에나 붙어있었음직한 표어들이 벽에 붙어 있다.
이런 표어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한 사람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까.......라는 책자.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이 보이는걸 보니 엄청 오래 된 책...

 빛바랜그림과 글씨들이 쓰다가 꽂아둔 것처럼 놓여 있고.....

벽에 붙여둔 국민학교 졸업 사진은 보관을 잘 못 했는지 아코디언 처럼 구겨진 것을 펴서 붙여 놓았다.
4288년(1955년) 진량 국민학교 졸업 사진에서 여자 아이들은 한복을...남자 아이들은 까만 교복을 입었다.
요즘의 두껍고 화려한 졸업 앨범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초등학교가 학업의 전부였던 아이들에겐 그 무엇보다 귀중한 졸업 사진.

 

 영화 전문 잡지'국제 영화' .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배우들이 수영복바람으로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잡지 속의 낯 익은 인물이 박준규인가...했더니 그 아버지 박노식이다. 그 옆의 아가씨는 조미령... 

 

비엔나 소년합창단이 출연했다는 '들장미'의 영화 포스터.

 

 '내가 낳은 검둥이'......영화 이름이 너무나 특이하다.
'국제 혼혈아들의 고민과 가시덤불의 생활 백서'라고 카피가 쓰여진 걸 보니 영화의 내용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이민자,최지희,최무룡,김동원,윤일봉.....이런 사람들의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 얼마나 될까.....

 

책이 귀했던 시절, 손으로 써서 책으로 묶은 천자문이다. 자기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직접 손으로 쓴 것일까...... 

차 한잔 씩을 시켰더니
양갱,과일,무화과,볶은 콩......등 여러가지 특별 다식이 따라나와서 푸짐하기 이를데 없다.
주인 아씨의 푸근한 손님 맞이는 오래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데도 부담이 없다.



타임 머신을 탄 듯한 시간여행에서 돌아와 카페 '고운 님 오시는 길에'를 나서니 
엄마 진돗개가 졸린 듯한 시선으로 우리를 배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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