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Fukuoka,福岡)에 이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 '하카타 포트 타워.

 

 

 

 

'하카타 포트 타워(博多ポ-トタワ)'는  하카다 국제 여객선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어 

 승선 시간이 남을 때 들리면 좋은 장소이다.

 

 

 

 

타워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철탑의 붉은 골조가 파아란 하늘과 어울려 화사하게 조화를 이룬다.

후쿠오카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1964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제 막 50년이 된 철탑 구조물이다.

타워의 설계자는 일본의 내진공학의 선구자로 와세다대학 교수인 '나이토 다추(內藤多仲)'로

그는 나고야 타워, 오사카 스텐가쿠, 벳부타워, 삿포로 타워,도쿄 타워, 하카타 타워를 잇달아 설계했다.

일본 사람들은 나이토 다추 박사가 설계한 이 타워들을 '6형제'라 부른다고...... 

 

 

 

 

후쿠오카의 랜드마크라 불리우는 하카타 포트 타워지만 규모는 크지 않고 실로 아담한 규모이다.

103m에 이르는 높이라니 타워 치고는 조금 낮다고 생각되지만

이곳에 오르면 하카타항과 함께 후쿠오카 전경을 둘러 볼 수 있어 좋다.

 

 

 

 

타워의 입장료는 무료이고 오후 9시 40분까지는 언제든지 둘러볼 수 있어 주경과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70m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서 후쿠오카시를 둘러볼 수 있다.

 

 

 

 

1층 하카다항 홍보관에 있는 후쿠오카시 전도를 통하여 후쿠오카시의 전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시의 이름은 후쿠오카인데 왜 하카다항구라고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실 것이다.

1889년까지 이 도시는 나카가와를 중심으로 정치의 중심지인 서쪽은 후쿠오카(Fukuoka,福岡),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인 동쪽은 하카타(博多, Hakata)라는 도시였다.

그런데1889년 두 도시가 통합되면서 도시 이름은 후쿠오카로 부르게 되고 

철도역과 항구의 이름은 그대로 하카타(하카다)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전망대로 한발을 내딛으니 아뿔사! 여기도 철조망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파리 에펠탑 전망대에 올랐을 때 눈앞을 가로막는 철조망에 실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철조망이겠지만 모처럼 경관을 즐기러 올라온 여행자들에게는

시야를 가로막는 철조망이 정말 아쉬운 부분이라 느껴진다.

 

 

 

 

아쉬운 사진이나마 철조망과 함께 타워에서 보이는 경관을 한컷 한컷 담아보았다.

 

 

 

 

부두에 우리가 타고 온 뉴 카멜리아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카멜리아호야! 반갑다.

 

 

 

 

폭 24m, 길이 170m에 총 톤수가 19,961톤, 5층에 이르는 뉴 카멜리아는

화물 220TEU, 승용차 41대, 승객 522명을 실을 수 있는 호화여객선이다.

뉴 카멜리아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아래 포스트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뉴 카멜리아호 관련 포스트 : 뉴 카멜리아 라인으로 떠난 후쿠오카 여행

 

 

 

 

하카다 포트 타워에서 내려다 본 후쿠오카 전경을 상세 설명없이 올려 드리자면......

 

 

 

 

 

 

 

 

 

 

후쿠오카의 랜드마크인 하카타 포트 타워는 국제 여객선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후쿠오카에 도착하거나 배를 타고 떠날 때 짧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도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입장료 없이 돌아볼 수 있는 관광지치고는 꽤나 괜찮은 뷰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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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벳부(Beppu, 別府)는 일본 규슈(九州) 오이타 현(大分縣)에 있는 도시로 온천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벳푸 지역에는 8개의 온천이 있는데, '지고쿠(지옥)'이라 불리는 끓는 온천은 온천수와 함께 진흙까지도 하늘 높이 뿜어올린다. 

지하 250~300m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의 온도는 약 90~100도 정도인데 땅속에서 솟구치는 흙탕물에도 연기가 펄펄 난다. 

 

벳부의 온천들을 지옥이라 부르는 유래를 들어보면 천년 이상 오래전부터 증기. 흙탕물, 열탕 등이 분출되고 있었던 이 지역은 

주민들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불길한 땅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왔다고 한다. 

칸나와 지역에서는8개의 지옥을 돌아보는 관광 코스에 '지옥 순례'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러개의 지옥 중에서도 '가마토 지고쿠(かまど地獄,가마솥 지옥)'이라 불리우는 온천을 방문해 보았다. 

주차장 바로 옆에는 수백명이 먹을 수 있을만한 가마솥이 떡하니 걸려 있어 여기가 가마토 지옥임을 알려준다.

 

 

 

 

 

가마솥 지옥(かまど地獄)은 120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온천 명소이다. 

 

 

 

 

 

옛부터 조상신을 모시는 가마토 하치만궁 신사의 봄, 가을 두 차례의 대축제 때 

지옥의 증기로 밥을 지어 신사에 바치는 풍습이 가마토 지옥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하기도 하고 

돌 사이에서 뜨거운 증기가 새어나오는 모양이 마치 화덕을 닮았다고 해서 가마솥 온천이라 이름지어졌다고도 한다. 

온천 입구에는 지옥 온천을 상징하는 지옥의 괴물이 을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서 있는데 

아래 바위 틈에서 쉴새없이 뿌연 수증기가 뿜어져나와 지옥에 온 듯한 섬뜩한 효과를 내어준다. 

 

 

 

 

  힘차게 내 뿜는 증기와 함꼐 치솟는 뜨거운 온천수의 온도는 90도.

 

 

 

 

얼마나 뜨거운지 바닥의 황토까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습이다.

 

 

 

 

 

가마토 지옥에서는 곳곳에서 담배쇼를 펼치는 안내원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온천의 분출구를 향하여 성냥이나 담뱃불을 힘껏 불면 온천의 연기가 갑자기 몇배나 크게 치솟아 오른다. 

담배 연기로 인해 연기 입자가 온천 증기를 빨아들이는 작용이 상승하게 되어

순간 온천에서 나오는 연기가 몇배 더 자욱하게 된다고......

 

 

 

 

마치 피를 물에 탄듯 붉은색의 온천수는 섬칫하기까지 하다.

붉은색 온천은 혈(血)온천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피처럼 붉은 온천이라는 뜻이다.

 

 

 

 

 

빨간 점토로 된 혈온천은 산화철이 많이 함유된 원천 부근의 점토층이 많이 올라와 붉은색을 띄는 곳이다. 

푸른색 온천에 반해 붉은색 온천은 남성에게 좋은 성분이 많다고....

 

 

 

 

 

혈온천의 옆에는 발을 담그고 싶을만큼 파아란 온천수가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핏빛처럼 붉은 혈온천은 섬뜩한 느낌이었지만 파아란 색의 온천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느낌도 든다.

 

 

 

 

파란색이라고 해서 온도가 낮을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쉴새 없이 피어오르는 증기를 보면 이곳 온천수 또한 어느 정도 뜨거운지 짐작이 간다.

 

 

 

 

 

 

  에메랄드빛의 온천수는 탄산염 온천수인데 여성에게 좋은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고......

 

 

 

 

 

  이곳에서는 온천수에 족욕하거나 스팀 쏘이기, 유황 온천물 마시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온천의 증기로 삶은 다양한 먹거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벳부의 특산품인 지옥 온천에 삶은 계란을 하나 맛보기로 한다.

계란은 속이 쫀득쫀득한 것이 우리나라 찜질방 계란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데 먹는 방법이 좀 특이하다.  

흰자는 소금을 쳐서 담백하게 먹고 노른자는 간장을 쳐서 풍미를 돋구어야 한다고...... 

 

 

 

 

지옥 온천수에 삶아진 계란을 먹을 때 약간 체하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는 벳부 사이다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벳부 사이다는 병 모양이 참 특이하다. 병 안에 구슬이 들어 있는데 

그 이유는 톡 쏘는 탄산을 한꺼번에 들이키지 못하도록 나름대로 특별 설계를 해놓은 것이다.

병 뚜껑을 따면 보이는 구슬을 살짝 밀어 넣으면 볼록하게 튀어 나온 병 목에 구슬이 떨어진다.

마실 때 마다 구슬이 움직이면서 사이다가 한꺼번에 콸콸 나오지 않도록 조절해준다.

계란을 먹은 후에 사이다를 마셨기 때문일까? 벳부 사이다의 맛은 시원하고 맛있었다.

여느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은 그리 강하지 않으면서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맛난 사이다이다.

   

 

 

 

벳부가 자랑하는 8가지 지옥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가마토 지옥을 보고나니 다른 지옥도 본듯한 느낌이다.

푸른 지옥과 붉은 지옥, 그리고 지옥에서 삶은 계란과 지옥 사이다까지.......

짧있지만 인상적인 가마솥 지옥 순례를 마치고 다시 인간이 사는 동네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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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에 잠시 일본 큐슈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개인 여행은 아니었구요. 직장 동료들끼리 짧은 휴가를 이용해서

 홈쇼핑에서 모집했다는 패키지 여행의 남은 자리에 살짝 끼어 다녀왔어요.

 2박3일 전 일정 동안 여행 가격 149,000원에 유류할증료 24,900원, 가이드 봉사료 30,000원을 포함해서 

총 여행 비용 203,900원으로 2박3일 여정의 초저가 일본 여행을 다녀왔네요!


부산에서 출발하는 카페리 카멜리아 라인을 이용했기 때문에 오고가는 일정에 시간은 많이 걸렸고

본격적인 투어를 하는 날에는 종일 비가 왔기 때문에 기대감을 갖고 찾아간 아소산에서는 분화구는 커녕

비와 안개로 인해 산중턱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등 크게 건질(?)만한 것은 없었던 여행이었지만

그저 동료들과 함께 오고가는 배 안에서 담소를 나누며 여가를 즐기기에 좋았던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하기는 좋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여행이어서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고 이야깃거리도 많이 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큐슈 여행기는 5~6회 정도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일본여행의 시작은 부산항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산발 후쿠오카행 호화여객선인 뉴 카멜리아는 늦은 오후 10시 30분에 항구를 출발하지만 

6시 40분까지 승선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6시에는 터미널에 도착해야 했다.





부산에서 큐슈의 후쿠오카(하카타항)까지는 상당히 큰 규모의 뉴 카멜리아호를 이용하게 된다.



하카다 항에 정박한 뉴 카멜리아호. 하카다 타워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폭 24m, 길이 170m에 총 톤수가 19,961톤에 이르는 호화여객선 뉴 카멜리아호.

카멜리아는 동백꽃이라는 뜻인데 부산과 후쿠오카의 시화(市花)가 바로 동백꽃이기 때문에

두 도시간 항로를 연결하는 이 여객선에 카멜리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발권 후 출입국신고서를 미리 작성해놓고 터미널내에 있는 환전소에서 엔화로 환전을 했다.

뉴 카멜리아는 일본 국적의 배라서 선상에서는 엔화만 통용된다고 한다.


 



출항은 오후 10시 30분이지만 출입국사무소가 7시 이후에 근무를 종료하기 때문에 6시 40분까지는 승선을 마쳐야 한다. 

승선 후 4시간을 기다려야 배가 운항을 시작한다니.....오는 시간에 비해 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게 단점이다.





배에 올라서 갑판으로 나가보니 여객선 터미널의 모습과 함께

멀리 용두산에 위치한 부산 타워, 광복동 롯데 백화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물 220TEU, 승용차 41대, 승객 522명을 실을 수 있는 뉴 카멜리아는 5층으로 나누어졌는데 

제일 비싼 로열 스위트룸의 여객운임이 왕복 380,000원 정도이고

가장 저렴한 2등실이 왕복 171,000원 정도의 운임이다.

내부시설은 레스토랑, 전망 라운지,면세점, 오락실, 노래방, 목욕탕,자판기 등인데

일본 선적의 배라서 내부는 상당히 깔끔한 편이고 선내에서는 일본 엔화만 통용된다.

 




 최상층인 5층에는 호텔 스위트룸과 버금가는 로열 스위트룸과

디럭스룸, 1등실 등이 자리잡고 있고

 




우리 일행이 묵을 2등실은 다인실이므로 3층에 자리잡고 있다.





다인실인 2등실은 카페트가 깔린 방으로 되어 있어 매트를 깔고 누워서 가거나 

가족이나 단체 여행객이 서로 담소를 나누며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3층에 있는 안내 데스크. 바로 맞은편에는 레스토랑과 간이 면세점이 자리잡고 있는데

면세점이라 해도 특별한 것은 없고 그저 기념품이나 과자 정도 파는 수준이다.


 

 

 

 

뉴 카멜리아의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로비에는 3층에서 5층까지 이어진 계단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로비에는 장식된 일본식 새해 장식. 영춘(迎春)이란 글귀를 보니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다.

 

 

 

 

3층 로비에는 운항 상황을 알리는 모니터와 함께 여행객들이 음식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공간과

앉은채로 선창을 통해 외부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전망 라운지도 마련되어 있다. 

 

 



레스토랑은 많은 여행객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큰 공간인데

하카다항으로 가는 동안 저녁과 아침, 두번의 식사가 이곳에서 제공된다.

밥과 국, 반찬 3가지가 전부인 소찬이었지만 국맛은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곳.


 

 

 

오랜 시간 항해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오락실과 노래방들이 갖추어져 있는데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인다.

 

 

 

 

밤에 타서 아침에 내리는데 샤워는 어떻게 하나 걱정했더니 대욕장이 선내에 갖춰져 있다.

탈의실의 바구니에 옷을 벗어두고 욕장으로 들어가면 제법 너른 탕 속에 몸을 담글 수도 있고

5~6개소 정도 있는 수도꼭지에서 샤워 등도 할 수 있는데 수질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대욕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선실로 들어오니 드디어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산의 야경을 뒤로 하고 서서히 움직이더니 오륙도도 뒤로 보내고 캄캄한 바다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으면 어떻게 자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11시가 되니 객실에 일제히 불이 꺼진다.

약간의 흔들거림 덕분에 기분좋게 스르르 잠이 들어 눈을 조금 붙였나 생각하는데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다. 창 밖을 내다보니 배가 하카다항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선내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기다리면 출입국사무소가 문을 여는 9시가 되어야 하선을 할 수 있다.

부산에서 밤에 떠나 아침에 하카다에 내리는 항해는 거의 11시간이 걸렸지만

돌아올 때는 기다리는 시간없이 항해하니 5시간 30분이 걸리는 항해라고 한다.

 

 

 

 

하선을 기다리며 선창 밖을 보니 후쿠오카시내의 모습과 함께 바로 눈앞에 하카타 타워가 우뚝 서 있다.

후쿠오카와 하카다 두 도시가 두 도시가 병합하여 후쿠오카라는 도시 이름을 얻었지만

기차역이나 항구 이름은 예전 그대로 하카타역, 하카타항, 하카타 타워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이제 하카타항에 내림으로 본격적인 북큐슈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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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침략이나 점령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항상 자부하는 일본에게는 사실은 쓰라린 추억이 있다.
1274년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에 의해서 대마도와 이끼섬이 공격을 받아 초토화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의 현장 코모다하마 신사는 
카미카자 전망대에서 출발한 차는 섬을 가로 질러 반대편 해안의 포구 마을 코모다(小茂田)에 있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해류를 따라 오면 저절로 도착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대륙에서 대마도로 배가 다니는 뱃길이 열렸던 곳이다.

 

이 곳은 또한 고려말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이 일본 점령을 위해 처음 상륙한 장소이기도 한데 거기에 코모다하마(小茂田濱) 신사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일본의 신사는 도리이(鳥居)에서 시작되는데 바로 신사
앞에 '天'이라는 글자 모양으로 서 있는 문을 말한다.
신의 사신이라 믿는 새가 쉬어가도록 한다고 해서 도리이(鳥居,도리이는 '새'라는 뜻의 일본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장대 또는 솟대로 표현되는데 솟대 위에 새 모양을 만들어 붙이는 우리의 전통 신앙과도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도리이는 흔히 붉은색으로 칠을 하여 신사의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낸다. 또 산이나 바위 같은 곳에 세워 그곳이 신성한 장소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모양에는 수많은 변형이 있지만, 2개의 원통형 수직기둥 위에 직사각형의 들보가 가로로 2개 얹혀 있는 것이 특징인데 첫번째 가로대는 기둥의 양쪽 끝을 지나 바깥까지 뻗어 있고 두번째 가로대는 그보다 약간 아래쪽에 걸쳐져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교와 함께 일본에 전래된 인도의 아치형 관문인 '도라나'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만주나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대문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코모다하마 신사의 도리이는 흰색에 붉은 글씨가 쓰여져 있었으며 우리들이 흔히 '귀신 안테나'라고 부르는 신을 부르는 대나무가 양 쪽에 세워져 있고 도리이 아래의 굵은 동아줄에는 하얀 종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금줄과 같은 용도로 쓰여 그 곳이 평범한 공간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는 듯 하다.

 

 


이곳은 일본이 외세에게 처음으로 점령을 당한 곳이다.
합포(마산)를 출발한 고려와 몽골의 연합 일본 정벌대는 출항 이틀 후인 1274년 10월 5일 오후 4시경 하대마도의 사스우라에 상륙했는데 바로 오늘날의 코모다(小茂田)이다. 팔번우동기(八幡愚童記)라는 일본 측 사료에 따르면 앞 바다를 뒤덮은 이국선의 출현에 놀란 사스우라의 촌민들은 급히 달려가 이즈하라의 국부관에 외적의 침입을 고했다. 당시 대마도주는 소오 스케쿠니(宗助國)라는 68세의 무사였다.

 

 

전투는 10월 6일 오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계속되었는데 2시간 만에  대마도의 일만 병사들은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전원 목숨을 잃었다. 특히 당시 도주 소오 스케쿠니는 전쟁 후 목과 몸이 따로 발견되어 그 싸움의 치열함을 알 수 있었다 한다.
 
  


려몽연합군은 대마도와 이끼섬을 단숨에 초토화시킨 후
곧장 큐슈의 후쿠오카 상륙을 개시하기 위해 후쿠오카 앞 바다에 진을 쳤다. 그런데 태풍이 올 계절이 아닌데도 큰 태풍이 쯔시마해협을 덮쳐 려몽 연합군은 싸워보지도 못한 체 태풍에 큰 피해를 입고 본국으로 철수하고 만다. 일본은 이에 이 태풍을 신이 준 바람(神風)이라고 여기고 행운을 주는 좋은 길상의 의미로 새기고 있다.

신풍(神風).....가미카제... 돌아올 수 없는 연료만 채운 일인승 경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연합군의 함선으로 돌진하여 자폭하던 특공대 가미카제. 바로 이 려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에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실은 이곳은 한국과는 또 다른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1419년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병선 227척에 1만7000명의 대군을 끌고 상륙하여 점령하고 약 2주간 머문 곳인데도 어디에도 이에 관한 흔적이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에 관한 흔적을 없앤 것은 아닐까...생각이 들었다.

 

 

신사의 들어가는 입구에는 같은 도리이가 또 서 있었고 가운데에도 역시 코모다하마 신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신사 앞의 석등은 지붕이 투구처럼 볼록하고 끝 귀가 말려올라간 일본 석등의 전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의 신사 건물의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의 8작 지붕 건물의 측면이 정면이 되어 있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즉 가로는 짧고 세로는 긴 직사각형 형태의 배례전이 신을 모신 본전과 연결된 형태의 모습이다. 신사 건물에서는 항상 앞쪽이 배례전인데 대개 앞 뒤로 길기 때문에 건물의 측면이 정면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배례전 안쪽에서 통로를 따라가면 별개의 건물인 본전이 있는데 대체로 본전은 배례전보다 조금 높게 위치하고 있다. 본전에는 그 신사가 모시는 신물(神物)이 모셔져 있는데 이 신물은 신의 현신(現身)으로 생각되어 누구도 볼 수 없는 신사의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다.

 

 

신사의 지붕 장식도 역시 도리이의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신사 문 앞마다 우리나라의 금줄처럼 굵게 꼰 새끼줄과 하얀 종이가 함께 걸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사에 들르는 일본인은 신사 앞에서 반드시 손과 입을 씻은 다음 배례전 안의 복전함에다 돈을 넣고 배례전 앞에 늘어진 천을 흔들어 목탁모양의 방울(나무나 청동으로  따위로 만듬)을 친다. 방울을 치는 것은 내 정성을 바치니 봐 달라는 뜻이기도 하고 죄와 부정을 씻어낸다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두번 합장 배례하고 두번 박수를 친다.

그리고 신사를 들어갈 때는 가운데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들어가며 나올 때는 오른 쪽으로 나오는데 이 풍속은 우리나라에서 사찰의 대웅전에 들어갈 때의 방식과 비슷하다.

 

 

신사의 내부는 경배를 올리기 위한 배례전과 신을 모신 본전의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본전으로 가는 통로가 보인다.

 

 

코모다마하 신사 내부에는 몽골군과의 전투도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는데 숨진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코모다하마 신사에서는 전사한 병사들의 위패를 받들고 있으며 매년 11월에 위령제를 지낸다. 코모다마하 신사는 동경의 야스쿠니 신사와 함께 일본에서 두 곳 밖에 없는 군인을 모신 신사이다.

 

 

신사 앞에 놓여 있는 포탄에는 명치 30년(1897년)의 전리품이라고 쓰여져 있다. 

 

 

신사 배례전 바로 옆에는 원구 칠백년 평화지비(元寇七百年平和之碑)가 서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듯 비의 맨 위에는 비둘기가 새겨져 있었는데
우리가 왜구(倭寇)라고 하듯이 그들도 원구(元寇)라고 부르는 걸 보니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이 때 寇라는 한자는 '도둑'이라는 뜻...

 

 

신사 마당 옆에는 복전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 길쭉한 나무판에 빼곡이 적혀 있었다. 일만엔, 오천엔,삼천엔,이천엔......거기다 방어 한 마리,과자, 청주 두병.... 이런 품목도 눈에 뜨이는데 복전의 액수가 많을수록 이름이 상단에 붙어져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2003년 일본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70%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데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 30% 가운데 51%가 신도, 그리고 48%가 불교, 그리고 1%도 안되는 나머지가 기독교등으로 되어 있다.
 

 

신도(神道)는 기본적으로 애니미즘, 즉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신, 전쟁 영웅은 물론 각종 귀신이나 고양이나 말과 같은 동물은 물론 죽은 자도 살아 생전 또는 죽어서 영험을 떨칠 것으로 여겨지면 신사를 세워 모신다. 일본 전국에 신사가 10만 여개가 넘으니 거의 동네마다 신사가 있어 마을 곳곳에 빨간 도리이가 세워져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신도(神道)는 교리는 없고 다만 신사에서의 의식을 중시한다. 그러나 신사의 예배는 개인적이지 교회처럼 집단적으로 하는 것은 없다. 특별한 의식은 없고 개인적으로 엄숙한 자세로 신사에 들어가서 비치된 헌금함에 돈을 넣은 후 두 번 합장을 하고 절을 한 다음에 박수를 두 번 친다.  

 

 

신사에는 자식의 합격을 비는 부적,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여 준다는 부적, 사업을 번성케 하는 부적  등 다양한 부적이 있으며 갖가지 기원문이 적힌 상징물들이 있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사서 집에 장식하거나 신사 내의 지정된 장소에 걸어 둔다.

일본인들은 매해 신년 1일에서 3일까지 80% 이상의 사람들이 신사를 방문한다고 한다. 첨단 산업으로 앞서가는 선진국 일본에 경전도 없고 사제도 없는 신도가 사람들의 기복과 관련하여 일본 제일의 종교로서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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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해외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세상 구경을 좋아하는 필자.
가보고 싶은 나라가 오대양 육대주에 수없이 널리 펼쳐져 있지만
그 중에 왠지 썩 내키지 않은 나라도 있었으니 바로.....지척에 있는 나라 일본이다. 

일본과 우리 나라와의 해묵은 감정은 뒤로 하고서라도
왠지 우리 나라와 비슷한 풍습과 풍경일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일
본까지 궂이 가야 하나.....하고 주저하고 있던 때에
대마도 역사 탐방 팀에 합류하게 되어 일본 본토는 아니지만 대마도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되었다.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고 선박편으로 남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처음.....
경주에서 부산으로 이동하여 여객선 부두에서 간단한 출국 수속을 거치고 검색대를 지나치니
에게게.....면세점이란게 달랑 점포 세 개.....
실소를 머금으며 조금씩 돌아보고 있으니 이내 시간이 되어 씨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다.

 

 

 씨플라워호에 앉아서 내다 본 부산항의 전경은 매우 정겹고.... 

 

 

밤새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하게 내려 일본 초행길의 발목이 잡힐까 걱정한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 듯
아침 하늘은 심히 푸르고 맑아 기분좋은 여행길을 시작하게 해 주었다. 

 

 

오륙도를 바로 지척으로 지나며 푸른 바다를 항해하여 대마도의 이즈하라항으로 향했다.
어제 내린 비의 영향인지 하늘은 맑고 햇살은 쪼이나 풍랑이 제법 높아 배의 일렁거림도 심하였다. 
아침 10시 30분에 부산항을 출발하여 목적지인 이즈하라까지는 3시간....
그것도 이즈하라가 대마도에서 가장 아랫편에 위치한 항구이기 때문에 3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상대마의 히타카츠항에서 부산까지는 1시간 50분밖에 안 걸리니 우리 나라와는 정말로 가까운 거리라 할 수 있다.

대마도에서 부산항 까지는 49.5km이요, 일본의 후쿠오카까지는 138km이니
옛부터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대마도는 일본보다는 한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우리 역사 탐방 팀은 우리 나라와 대마도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유적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대마도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대마도는 원래는 우리 땅이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보면
'대마도는 땅이 몹시 좁은데다 바다 한 가운데 있어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들 나라에서 쫒겨나 오갈 데 없는 일본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그들의 소굴이 되었다'
라고 쓰여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라고 쓰여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는 거의 빠짐없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에 포함시켰으며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 토요토미 히대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도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했다.

대마도가 속주(屬州)라는 의식은 고려 때부터 있었는데
고려 중엽 대마도주에게 구당관과 만호라는 관직을 내린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고
고려 우왕 9년에는 박위장군이 대마도를 토벌하였다.
본격적인 속주화 작업은 조선 세종 때에 이뤄졌는데
1429년에 이종무 장군이 병선 227척에 17000여명의 대군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한 것이다.

1436년 대마도의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자 도주인 소우 사다모리는
대마도를 아예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시켜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에 조선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도주를 태수로 봉했다.
조선의 국왕이 관직을 내려 무역을 허락하고 그들을 조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조선은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을 오래 유지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영향력이 약화되고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일본의 영토로 대마도가 편입되면서 일본이 대마도를 통치하게 되어
우리 나라는 대마도 땅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즈하라항 입국장은 그야말로 코딱까리(?)만 하다.
배에서 방금 내린 한국인들로 방 하나 만한 입국 심사장은 넘쳐 나고 계단과 아래 층까지 줄을 길게 늘어 섰다. 

 

 

입국 심사 시에 그 이름도 악명 높은 지문 날인을 하게 되는데
양쪽 검지 손가락을 인식 기계에 대고 지문을 찍은 후 이어 정면 얼굴 사진도 찍는다.
처음 발을 딛는 일본 땅에 대한 느낌은 이 지문 날인 때문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먼저 찾은 곳은 화장실.....우리 나라와는 조금씩 다른 배치.
듣기로는 우리가 화장실 문을 마주 보고 앉아 볼 일을 보는데 비해 일본인들은 벽을 마주 보고 앉아 볼 일을 본다는데 (맞나...?)
그 이유는 갑자기 문을 확 열었을 때 얼굴을 마주치는 난감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나....
그럼 엉덩이를 보이는 난감함은 어찌 하라구...? 이런 생각도 들었으나 직접 확인한 바는 없다.  

 

 

대마도의 모든 화장실에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혼용된 안내판이 꼬옥 붙어져 있다.
대마도 관광객의 90%가 한국인이라니 그럴 수도.....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지 말고 변기 안에 버려달라는 안내문이 어디나 빠짐없이 붙어 있는 것이 특색.


출국장을 빠져나오니 대합실도 초만원.
우리 나라 읍내 버스 터미널 만한 대합실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곳 없어 서서 창 밖의 이즈하라항의 풍경을 찍어보았다.
건너편 산 위의 듬성 듬성하게 늘어선 집들의 풍광은 우리 나라의 작은 섬에 내린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항구 전체가 무지 무지 한가롭다. 입항한 배도 거의 없고.... 

 

 

2층인 입국 심사장에서 일층으로 내려 오니 매표소가 두 군데... 

 

 

벽에는 출입항 시각표가 붙어 있다.  맨 앞에 쓰여 있는 嚴原이 이즈하라이다. 

 

 

사진 가운데 뾰족한 지붕의 건물이 이즈하라 카페리 터미널인데 정말 규모가 작은 것이 한 눈에 느껴진다.  

 

 

카페리 터미널에서 나와 먼저 만난 모습이다.
이즈하라 시내는 너무나 작아서 차를 이용하지 않고 모두 도보로 관광을 하게 된다.

조그마한 일본의 차처럼 조그마하게 축소해 놓은 듯한 도시 이즈하라....
짐을 잠시 맡겨두고 걸어서 이즈하라를 한 바퀴 둘러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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