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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보 1호는 숭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 그러면 사적1호는?
국보 1호나 보물1호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사적 1호에 와서는 누구나 대답이 막힐 듯 한데
역사상 중대한 시설이나 그 자취를 이르는 사적(史
경주 톨게이트를 통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오릉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삼릉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포석정지가 나타나는데 제법 너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바로 포석정지 입구에 다다를 수 있다.
포석정지 바로 옆으로는 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자리잡고 있어서 등산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
원래는 남산 계곡에서 물이 흘러 내려오는 곳에 돌거북이 있었고
여고시절 역사 시간에 포석정에 대해서 설명하시던 역사선생님께서는
통일신라 말기 제55대 경애왕이 이곳에서 군신들을 모아놓고 술잔을 돌리며 흥청망청 연회를 벌이다가
후백제의 견훤에게 잡혀 자결하고 왕비를 비롯한 궁녀들은 견훤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이후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세워짐으로 신라는 결국 패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며
한나라의 왕이 나라를 돌보지 않고 흥청망청 포석정에서 흥청망청 술잔치를 벌렸기 때문에
통일신라는 망할 수 밖에 없었다며 한탄 섞인 이야기를 해주셨던 걸로 기억이 된다.
지난 1998년 5월 포석정 지역에서 '砲石(포석)'이라고 새겨진 신라기와편이 출토되어
이를 화랑세기에 나타나는 '포석사(鮑石詞)' 즉 '신주를 모시는 사당'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발표되었다.
즉, 이곳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귀족들의 혼례를 거행한 성스럽고도 경건한 장소였다는 해석이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데 포석정에 군신들을 불러놓고
왕이 술 마시고 유상곡수연을 즐겼다는 것은 사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나라의 안위를 위한 제사를 지내다 참변을 당했다는 해석이 오히려 설득력을 지닌다. .
신라를 밟고 세워진 고려인의 역사관으로 써진 삼국사기의 기록은 지금 재해석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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