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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한 휴일날...경주 국립 박물관을 들려본다. 

 고고관, 안압지관...등 유물 전시관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니 참 날씨도 좋다. 

 하늘도 푸르고 날씨는 청명해서 박물관으로 온 관광객이 참으로 많다. 

 박물관 여기저기에는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이렇게 유물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도 요즈음은 참 많이 눈에 뜨인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앞에도 관람객이 넘쳐 난다. 

 체험 학습 나온 아이들은 군데 군데 앉아서 해설사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선생님과 함께 견학 온 아이들도 이렇게 추억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다.

 박물관 마당에는 이렇게 목이 없는 부처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8~10세기 경에 만들어진 석조 여래 좌상들이다. 

 왜 이렇게 목이 없는 부처가 많을까...

'전혀 다른 향가와 만엽가'를 저술하신 '정광선인글돋선생'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첫째,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의 일환으로

불사 파괴와 야외 석조물 파괴 등(불두 파괴는 정체성을 파괴 시키는 행위이므로)

       궁궐에서도 이단을 몰아내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중종때 조광조의 소격서의 혁파이다. 소격전(도교 및 민간신앙)이 폐지된다.

 

둘째, 몽고 병의 신라 침입으로 황룡사 목탑이 불타고 곳곳에 절이 파괴된다. 

고려인들이 몽고을 몰아내기 위해 부처님이 불력을 이용하기 위해

       고려 속장경,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몽고병은 불상 파괴가 극에 달한다. 

 

셋째, 임진왜란 때 승병이 도처에 일어난다.

승병의 중심에 黨聚(당취,싸움하는 승려)가 있다.

서산대사를 비롯한 사명대사 ,영규스님 등이 당취이다.  

승병의 거처가 사찰이다.

왜병들이 사찰을 불지르고 파괴한 원인이 바로 당취와 싸움이었다.

        

넷째, 일제시대 메이지 유신이후 일왕을 신으로 추앙하는 시대가 온다.

일본에서도 神社 외 절의 석등 및 부처 파괴가 일어난다.

        일제 강점기에 전국 곳곳에 신사를 짓고 강제참배를 강요한다.

       남산은 특히 불교의 요람이다.

곳곳에 산재한 부처들을 철처히 파괴하는 행위가 이뤄졌을 것 같다.

(참조:http://blog.daum.net/kmb2274/17035203)

 

 하긴 고대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그리스,터키에도 가면 이렇게 목이 없는 석상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는데
목이라는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가늘고 취약한 부분이라 더 쉽게 훼손이 되지 않았나....생각도 해 본다. 

  이렇게 목이 없는 부처가 외국 관광객들에겐 매우 신기한가 보다.
목 없는 부처를 발견한 한 무리의 외국 관광객...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 하더니 모두다 부처 뒤에 가서 머리를 얹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머리를 정교하게 땋아내린 이 여자분은 가나에서 온 관광객이다.
머리가 아주 이쁘다고 했더니 아주 좋아하며 만면에 웃음을 띄었다.  

 이 친구는 특히 더 시끄럽다.
나도 앞에 서서 이 재미있는 친구를 향해 사진을 찍으니
"Hey~~ I'm African Buddha~~!!"
라고 떠들어대면서 웃고 장난치며 너무나 즐거워 한다. 



 

 이 아프리카 부처 역시 가나에서 왔는데 이름은 'Samuel'이란 친구다.
사진을 부쳐 달라고 내게 자기 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가나에서 온 '짝퉁 부처'인 사무엘이
한국에서 여행하는 동안 즐거운 추억을 많이 가지게 되었으면 하고
경주에서의 좋은 추억도 오래 간직했으면 한다.
자기 얼굴이 한국 인터넷에 뜬걸 알면 더 기분 좋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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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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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ark 2010.01.30 0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프리카에 온 손님들이 경주 관광에 만족하는 것 같네요. 저 돌부처들을 그냥 둿더라면 좋았을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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