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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쳤는데도 사방이 안개로 자욱하다.
친구와 남산을 올라보기로 약속했는데 가봐...? 말어...? 한참을 망설이다 길을 나선다.
경주에 산지는 한참 되었다지만 등산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던터러 지척에 있는 남산이 미답의 터이다.
오늘은 칠불암 쪽으로 남산을 올라보기로 한지라 산 아래에서부터 기분이 설레인다.
통일전과 서출지를 지나 한참 좁은 길로 차를 달려 소나무 숲 사이에 차를 세운다.
비 온 뒤 찾는 산이라 오르는 길목은 더욱 상쾌하고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버섯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온다.
등에 물기를 한껏 머금은 두꺼비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제 갈길을 가는 안개 낀 산 속.
아직 나무 사이의 거미줄도 제대로 걷히지 않은 싱그러운 숲길을 심호흡을 하며 한참을 올라
어둑어둑하게 대숲으로 뒤덮힌 가파른 계단을 헉헉 거리며 올라가니 그 위에 절 같지도 않은 조그만 암자 하나가 나타난다.
새로 지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두칸 짜리 암자에는 소나무 내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그만 암자가 있는 이곳을 칠불암이라 부르는 까닭은 바로 이곳에 국보 312호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있기때문....
통일신라시대 동해로 칩입하는 외적을 불력으로 막기위해
사찰을 짓고 돌에 부처를 새겼다는 칠불암은 오랜 세월 속에 절은 폐사되고 불상만 남아있었다.
이 불상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칡넝쿨과 대나무숲에 가려있던 것을
80여년전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할머니가 산나물을 캐던 도중 찾아내면서 세상밖으로 나오게 됐다.
이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고 칠불을 모셨는데 지금 새로 지어진 암자는 세 번째 축성된 것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m 가량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을 새겼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을 새겼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본존불은 왼쪽 어깨에만 살짝 옷을 치고 있으며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화려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크기가 같으며, 역시 온 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다른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도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원래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도 이곳 주변에서 당시의 구조물을 짐작케 하는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것으로 보아
이 칠불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칠불암의 옛날 모습)
칠불암 마애 석불 위 곧바로 선 절벽에 있는 신선암을 가기 위해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칠불암까지 오르는 길이 다소 평탄했다면 신선암을 오르는 길은 약간의 난코스이다.
오르다 잠시 쉬며 뒤돌아보니 온통 안개에 휩싸여 산 아래는 보이지도 않는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 구름이 남산의 신비함을 한층 더해 주고
산 아래 통일전과 서출지가 자리잡은 남산동조차 자욱한 안개 구름으로 인해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힘든다.
가까스로 신선암에 올라 사람 하나 겨우 지나는 벼랑 끝 모퉁이를 돌아서면
거기에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마애 보살상이 나타난다.
높이 1.4m의 마애보살반가상은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 위의 세계에 있는 듯 하다.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옷은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벼랑 끝에 서서 보니 바로 아래의 칠불암이 잡힐 듯 가까워 보이고 건너편 산도 발을 내디디면 단숨에 건너갈 듯 하다.
구름 속의 신선이라도 흉내내고 싶은 것일까?
갑자기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지면서 팔을 들면 날아갈 듯한 묘한 상상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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