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최후의 날......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것은 AD 79년 8월 24일이었다.

이 참사의 목격담은 대 폴리니우스의 조카 소 폴리니우스가
타키투스에게 보낸

2장의 서신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이 때 대 폴리니우스는 폼페이 인근 스타비아이에 있던 친구를 구하려 애쓰다가  죽었는데

이튿날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이 멈추었을 때 폼페이는 6~7미터의 화산재와 화산력으로 뒤덮여져

도시는 완전히 파묻히게 되고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16세기 말, 강으로부터 시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구릉 밑에 터널을 팠던 인부에 의해 폼페이는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 후 1738년 4월, 밭 갈던 농부가 곡괭이에 부딪치는 쇠붙이 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입소문이 여기저기 퍼지게 되자 

당시 가장 유명했던 토목기사 도메니코 콘타나가 적극성을 띠고 발굴 작업에 
뛰어 들게 되고 폼페이는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 뒤로 간헐적으로 발굴은 계속되었는데 

1938년 12월 11일엔
헤르쿠렐늄 극장에 세워진 돌벽, 눈부신 프레스코 벽화, 원형극장등이 발견되었다.





현재의 폼페이는 약  3/4정도가 발굴된 상태인데

이곳에는 많은 축융소(모직을 가공하고 세척하는 공장)가 있어 당시의 주요산업을 연구할 수 있다.

그 외 조각가, 공구제작자, 보석세공가들의 가게뿐만 아니라

가룸(피시 소스)·램프 공장들, 많은 포도주·식품 상점들이 발견되어 고대 생활의 다른 면들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곳은 큰 신전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폼페이에는 신전 뿐 아니라 집 안에도 많은 제단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지금까지 추측할 수 없었던 가정 내의 종교생활까지 엿볼 수 있다.


 


신전은 무너진 채로 부러진 기둥만이 남아있다.

 


신전의 어느 부분은 돌기둥이 색이 마치 요즘의 것처럼 산뜻하게 보인다. 

 


목욕탕이 있던 자리는 그 화려함과 규모로 보아서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케 한다.

 

 


폼페이는 지중해 전역으로 상품을 수출하던 활발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상인들은 성문과 포룸 근처에서 음식과 숙소를 구했다.

상당히 멋진 식당과 여인숙들이 있었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값싼 곳은 방이 작고 어두웠으며, 손님들은 등받이가 없는 걸상에 앉았다고 한다.

창녀촌이 있던 골목을 걷다 보면 완벽한 돌 포장이 된 거리에 
마차 바퀴에 의해 패인 자국도 관찰 할 수 있다.


 


창녀촌(루파나레, Lupanare)에 들어가 보니 작은 방 마다 돌침대가 놓여있고 

 
방문 입구 위에는 다소 므흣^^한 그림들이 아직도 별로 색이 바래이지 않고 남아있다.

방마다 문 위에 걸린 그림의 체위는 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 유명한 항구였던 폼페이는 외국의 상인도 많이 드나들었던지라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 창녀들의 주특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추정한단다.
 

 


아직도 오븐이 남아 있는 빵집 옆에는 돌절구도 남아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연자매와 거의 비슷한 절구는 네모난 구멍에 나무를 끼워 소나 말이 돌리게 해서 곡식을 빻았다고....

오븐이 완전히 갖추어진 빵집은 그 당시 일용 양식인 빵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븐들 중에서는 발견 당시 속에서 빵 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전시관에는 발굴 당시 나온 유적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그 당시 죽은 사람들은 화산재에 덮여 거의 사망했다고 하는데 죽은
시신의 모형조차도 안쓰럽게 안치되어 있었다.

 


이 곳은 폼페이의 휴양 지역인 스타비아이, 베수비오 화산에서 거리가 먼 지역이라 피해가 다소 적었다고 한다.

 

 

엄청나게 넓은 폼페이를 하루에 다 돌아보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곳도 많지만 공개된 발굴지만 돌아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었다.

내리 쪼이는 태양 아래에서 엄청나게 넓은 폼페이를 돌아보는 것은
거의 사막을 걸러 여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심한 갈증으로 인해 거의 탈진 직전으로 휴양 지역까지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니

폼페이 관련 책자를 사라는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아주 심하였다.

한국말로 '싸다' 싸다!' 이러면서 따라오는게 겁나서 피하기만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거기서 책 한권, 작은 기념품 하나라도 더 살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여행 관련 책자나 기념품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ㅠㅠ

여기서는 구하기도 힘든 자료를 왜 안 사왔던가.....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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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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