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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4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그리스 밧모섬 29
  2. 2009.10.16 터키 카파도키아 지하도시, 데린구유 36


밧모(파트모스,Patmos)섬은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수많은 섬 중 하나이다.
남북 17 km,동서 9 km의 넓이의 이 섬은 바위와 화산으로 뒤덮인 조그마한 섬인데
농사라 해야 겨우 밀이나 포도가 자랄 정도의 별 것 아닌 건조하고 불모지 같은 땅이다.
이런 조그만 섬에 수만톤 급의 여객선이 수시로 드나들고 휴가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바로 이 밧모섬이 사도 유한이 '요한 계시록'을 집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에 이 곳 밧모섬은 정치범들의 유배지였기 때문에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던 사도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으로 이 곳으로 유배를 오게 되는데
밧모에 18개월동안 억류되었다가 도미티안 황제의 암살 이후 다시 풀려나 에베소로 가게 된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일곱 공동체에
들의 신앙을 잊지 말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게 되니
이 편지가 성경의 마지막 책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밧모섬 여행자들 중에서 한국인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에게해 한가운데 있는 밧모섬을 가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틀은 잡아야 하니
섬을 둘러보는 시간에 비해 오고 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이유로
인해 
밧모를 방문한다는 것은 상당한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밧모섬으로 가는 길은 보통 두가지가 있는데 그리
스의 피레우스 항구에서 밧모까지는 약 10시간 정도 걸리고
터키의 쿠샤다시 항구에서 밧모로 가는 항해는 약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필자는 에베소를 둘러 본 후에 쿠샤다시에서 하룻밤 경유한 후 아침 일찍 소형 선박(거의 유람선?)을 타고 밧모로 가기로 했다.
밧모에서는 사도 요한의 유적지와 섬 전체를 돌아본 후 대형 크루즈선을 타고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리스 고린도의 피레우스항까지 가는 여정이다. 

쿠샤다시에서 배를 타면 터키와 그리스 국경을 넘어가게 되므로 항구 내 출국장에서 여권 검사와 짐 검사를 마친 후 배에 올라야 하는데 터키는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나라여서 밧모로 가는 여행객은 거의 없으므로 소형 선박을 이용해야만 했다. 

 


쿠샤다시항을 출발하니 이내 비둘기섬이 나타난다.
쿠샤다시 여행객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는 이 '비둘기섬'은 긴 방죽으로 본토와 연결된 작은 섬이다.
'귀베르진 아다스'라고 불리우는 이 섬은 꽃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이 섬을 둘러 싼 14,5세기의 성채가 복구되어서 지금은 터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나이트 크럽으로 변모되었다.
600년이 넘은 오래된 성채를 나이트 클럽으로 변모시키다니....! 
온 나라 안에 이천년 넘는 고대 유적이 차고 넘치는 터키에서는 600년 된 성채 정도는 그저 생활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다행히도 날씨가 매우 맑고 파도가 거의 없어서 항해는 순조로왔고 젠틀하게 생긴 선장의 나이 지긋한 모습을 보니 더욱 더 안심이 되었다. 일기가 고르지 못하거나 파도가 높은 날에는 소형 선박은 아예 운행을 안한다고 하니 그리스 여행의 시작은 아주 운이 좋은 출발이다. 

 

 

배는 터키 국적인 유람선인지라 선박 후미에 터키 깃발이 붉게 휘날리고 있다.  

 


쿠샤다시를 떠난지 얼마 안 되어 큰 섬이 나타나길래 벌써 밧모섬? 했더니 사모스섬이다.
터키의 항구를 떠나면 얼마 되지 않아 계속 여기 저기 크고 작은 섬이 나타나는데 터키 바로 옆에 위치한 섬들은 놀랍게도 거의가 그리스의 영토이다.
제법 큰 섬인 사모스(Samos)섬, 또한 터키의 영토였으나 1912년 그리스에 합병된 상당히 큰 섬이다.
터키 사람들은 닭 우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코 앞의 섬들이 그리스의 영토라는데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다.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 눈이 시리도록 맑고도 푸른 에게해를 헤치고 5시간을 가니 드디어 저 멀리 목적지 밧모섬이 나타난다. 
오랜 시간 배에 있어 지루해하던 승객들은 모두 갑판에 나와서 멀리 보이는  밧모섬을 향하여 환호성을 지른다. 

 

 

나무도 거의 없이 바위와 화산석으로 뒤덮인 섬에 가까워지니 별것도 아닌 섬이네.....이런 생각이 일순간 들지만 
섬 주변을 유유자적하는 요트들에서 평화로운 느낌이 피부로 전해져 온다. 

 

 

푸른 나무로 뒤덮인 우리나라의 섬들과 달리 밧모섬은 나무가 거의 없는 황량한 섬이라 다소 낯설게 느껴지고
섬의 아랫부분에서부터 높지 않은 정상까지 여기저기 집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집들은 대부분 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섬에 가까워질수록 정상 아크로폴리스에 솟아 있는 붉은 성 요한 수도원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스칼라 항구가 가까워지고 장난감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집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방파제도 제대로 없는 그야말로 작은 항구로 배가 들어가는데....

 

 

이런 작은 항구에 대형 크루즈선도 들어온다니 믿겨지지가 않는 부분이다.

 

 

섬은 지극히 조그마한데 여름에는 유럽 각지에서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이 곳에서 휴가를 보낸다. 

 

 

호화 요트에서 소형 요트까지 즐비한 이곳은 유럽 사람들의 꿈의 휴양지이다. 
주민이 2500명 밖에 안 되는 이 섬에 유람선과 요트는 물론이고 수만톤 급의 크루즈선도 정박하니 이 섬의 명성은 크기로 짐작할 일이 아닐 듯 하다. 

 

  

항구 옆 메인 스트리트에는 좁은 섬의 지형에 알맞게 오트바이가 많이 주차되어 있고 다운타운을 거니는 여자들의 자유분방한 차림과 핫한 몸매에서 섬의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다운 타운 골목의 상가에는 아름다운 보석 및 악세사리 가게가 줄을 지어 있고 기념품 상가도 많이 들어서 눈요기거리를 준다. 

 

 

항구에서는 제일 먼저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사도 요한의 세례터'를 찾아 보았다.

 

 

AD 96년 이 곳에 도착한 사도 요한이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된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장소이다. 

 

 

바로 옆에는 아주 아주 조그만 기념 교회가 있다. 

 

 

사도 요한의 세례터 앞에서 보면 스칼라 항구의 전경이 그대로 보이고 성 요한 수도원도 멀리 다 보일 정도인데
밧모는 면적은 매우
좁지만 섬이나 해안선이 드나듦이 거의 80km나 될 정도로 구불구불한 섬이다.  



해변의 바닷물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해초도 거의 없어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이 곳은 태양 광선이 너무 강렬하여 플랑크톤이 잘 서식치 못하여 해변엔 고기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고
염도가 낮아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와도 몸이 전혀 끈끈하지 않고
몸을 말린 후 손으로 비비면 피부가 보송보송하니......정말 신비롭고 환상적인 바다이다. 

 

 

항구 바로 옆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바닷물의 오염이 적은데 이 섬의 구불구불한 어느 해안 한 구석에는 '누드 비치'도 있다고 하니  밧모에 가시는 분들은 그곳도 찾아본다면 평생 기억에 남을 휴가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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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시겠지만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카파도키아에는 지하 도시가  400 여 곳이나 산재해있다.
이런 지하 도시는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이용해 왔는데 
이 지하 도시들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응회암과 용암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암 괴석에 동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상의 맹렬한 더위와 짐승의 습격을 피해 사람들이 이 곳에 살기 시작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이미 만들어져있던 지하도시를 이용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이 지하 도시 중 유명한 곳은 카이막클리, 데린구유, 오즈크낙 등인데
그 중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데린구유'는 가장 놀라운 도시다.
이 지하 도시는 1960 년대에야 발견되었는데 데린구유의 한 마을에 있는 닭이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생긴 주인이 당국에 신고를 한 것이 지하 도시를 발견한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찾아간 데린구유는 여느 관광지같이 북적대지도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그다지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동네 가게 앞 그늘에만 몇 사람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눌 뿐...... 광장 앞 풍경은 잠이 올 만큼 조용한 분위기다.



마을의 둥근 광장 주위에 자리잡은 관광 상품점은 들여다 보는 사람도 가게 주인도 보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허물어지다 만 듯한 2층 건물의 옥상에 사다리가 심심하게 걸려있고 앞의 하얀 건물의 옥상에는 잡초만 무성한데
그런 가게에는 알록달록한 카페트를 옥상에 척 걸쳐 놓기도 하고 빨래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기도 한다.
하얀 벽에 못을 쳐서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카페트들이 거의 다 그 지방에서 짠 수공품 카페트들인데
오랜 옛날부터 명성이 자자한 터키 카페트의 색감이 얼마나 화려하고 이쁜지 하나 사갖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가게 옆에는 허름한 천막이 쳐져 있는데 역시 천막 앞에도 카페트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가게 자리를  얻지 못한 상인의 소규모 점포일까.....?
도자기 공예품이나 작은 기념품을 팔고 있는데 거기 또한 들여다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가게 주인들은......햇빛을 피해  건물의 그늘에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킬림(평직 카페트) 조각을 땅에 깔고 둘러 앉아 신문지 위에 빵,포도,차이를 베풀어 놓고 둘러 앉아
계란을 까고 있는 모습은 우리 나라 아저씨들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진을 찍으니 다정하게 쳐다보며 말을 거는데  "여기 와서 같이 차이나 한 잔 할려우...?"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카페트 뿐 아니라 저울이나 램프, 항아리같은 토산품등도 같이 팔고 있던 가게 안에 들어가서 매우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데린구유 발굴 현장에서 흘러나온 출토품인데 놀랍게도 히타이트 시대의 인장이었다.



왼쪽의 네모난 인장은 사자가 표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아랫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삼각형으로 된 뒷부분에도 길게 홈이 파여져 있어 간편하게 끈을 꿰어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오른쪽 원형의 인장 역시 둥근 아랫부분에 끈을 꿸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여 많이 마모되기는 했으나 말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도시의 흙 속에서 잠자고 있던 4,000년 된 유물을 손에 넣으니 감격으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는데
이 인장들은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손에 넣은 기념품 중에 가장 귀한 물건으로 남아 있다.



지하도시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아기를 안은 아줌마가 좌판에 인형 몇개를 팔고 있는데 완전 수공예품 인형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인형은 데린구유 지방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인형.
하얀 무명 옷에 무늬를 싸인펜으로 그리고 인형의 눈,코,입도 싸인펜으로 그려 놓은 너무나 소박한 인형이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고 단지 데린구유에서만 살 수 있는 이 인형은...단돈 2달러이다....^^



동네 구경을 다하였으니 이제는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내려가볼 차례.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는 미나레(이슬람 사원의 첨탑)가 하나 있는 작은 '자미(이슬람 사원)'의 바로 옆에 있는데
오른 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을 통해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내려가게 된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의 문은 둥근 돌문인데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돌을 굴려 통로를 막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돌문은 안 쪽에서만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가이드의 도움없이는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있어서 반드시 가이드를 앞장 세워서 들어가야 한다. 



이 곳의 지하는 방,부엌,곡물 저장소,동물 사육장,첩자들을 다루는 형틀, 교회,성찬이나 세례를 베풀던 장소,신학교,
그리고 지하 공동 묘지 등이 다 있어 지상의 생활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전한 도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하 도시는 총 20층으로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규모인데 현재는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8층까지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고  
데린구유의 터널은 이 곳에서 9km가 떨어진 카이막클리 지하 도시와도 연결되어 있어 
지상의 도시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하니 그 규모에 가히 입이 쩍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하 도시의 통로는 한 사람이 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며 어떤 곳은 허리를 굽혀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다.



어둡고 좁은 이곳에서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호흡 곤란과 가슴의 압박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동굴 속의 방과 방들은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상당히 넓은 공간도 있는데 기둥도 세워져 있는 이런 넓은 공간은 대부분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박해를 피해온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했던 십자가 형태의 교회 흔적도 찾아볼 수 있고 신학교의 흔적도 있다. 



물이 흘러나와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는 이곳은 세례를 베풀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가이드가 후래쉬로 비추는 곳은 에어컨디셔너 기능을 하는 통기 구멍이다.
이 구멍은 지하도시의 각 층을 꿰줋고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지하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 준다.



카파도키아 지방에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바깥으로 나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고 하니 그 얼마나 답답했을까..
동굴 벽의 갈라진 틈에 손을 넣어보며 그 당시 사람들의 숨결을 함께 느껴 보았다. 



지하도시 데린구유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고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오니 
다시 맞이하게 된 밝은 햇빛이 너무나 눈이 부셔서 한동안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고 길을 걸어가야 했다.
단 몇 시간 동안이지만 암흑의 지하도시를 체험하고 나오니 바깥 세상의 공기는 달콤하기 그지 없었고 
밝게 비춰주는 햇빛도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햇살인 것 처럼 감사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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