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인가......분당에 장애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던 일이 기억난다.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유인즉 장애인 집단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이 주변에 많으면 아이들에게 정서적,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장애인들이 아이들에게 정서적 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건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렇듯 전혀 위험하지도 피해를 주지도 않는 장애인 복지시설 건립에도 주민들의 반대가 대단한데
만일 우리 지역 한복판에 화장장이나 공동묘지를 세운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결사항쟁하는 것도 모자라서
삭발을 하거나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열혈지사도 생길지도 모른다.
장례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는 것이 정서상으로 좋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학부모들이 많겠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기 동네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게 가장 큰 이유일 듯 싶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비엔나(빈, Wien)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 공동묘지가 들어서는 것을 환영한다.
우리와 장묘 문화가 확연히 틀리는 이곳의 시민들은 자기 집 뒷마당에 공둉묘지가 있는 것도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23개구로 구성된 비엔나 시내에는 무려 46개소의 공동묘지가 있어
비엔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두군데 이상의 공동묘지를 찾아 돌아보고 간다고 한다.





46개소의 공동묘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뭐니뭐니 해도 1874년에 조성된 '비엔나 중앙묘지(Wiener Zentraltriedhof)'이다.
이곳은 빈 11구 짐머링에 위치한 시립묘지인데 시내 중심가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내외 거리이다.





묘지 입구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아름답게 줄지어선 가로수길 저 뒤로 묘지들이 펼쳐지고 제일 가운데 뤼거 교회(Lueger Kirche)가 보인다.





중앙묘지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 교회는 중앙묘지 건립 추진 당시 시장이었던 칼 뤼거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뤼거교회다.
이곳은 영화 '제3의 사나이'와 베토벤의 일생을 주제로 한 '불멸의 연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매년 200만 명의 순례자들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 중앙묘지가 오늘날처럼 유명하게 된 것은 순전히 비엔나 시의회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건립 초창기에 묘지가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하자 시장 칼 뤼거는
'유명인들의 젠트랄프리드호프 명예묘지 이장 추진법'을 통과시켜
각처에 흩어져 있는 예술인들의 묘지를 이장, 통합키로 하고
1881년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필두로 음악가, 학자, 정치인, 건축가 등과 역대 대통령들의 무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비엔나 시민들은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 있는 중앙묘지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장례식에도 참가하는 등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유명 인사들이 속속 이 중앙묘지에 묻히게 되자
시민들은 그들 자신도 죽은 후에 좋아하던 예술인들과 함께 묻히고자 묘지 구입이 쇄도하였고

중앙묘지는 늘어나는 주문으로 몇 번에 걸쳐 묘역을 확장하고 또 확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현재는 비엔나 시민들의 무덤까지 통합 5개의 공동묘지까지 추가되어 묘소가 약 33만기에 달하는데 
대부분 가족 묘지이므로 한 묘소에 4기까지 합장할 수 있으니 무려 120만기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묘지이다.





안내도를 보면 중앙묘지의 규모가 짐작이 되는데 
제일 가운데 1번이 뤼거교회, 2번이 베토벤, 모짜르트, 슈베르트 등 음악가들의 묘역인 32A 구역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묘지란 그리 유쾌한 곳이 못 되는데 
대부분의
묘지들이 깊은 산속에 위치한데다 밤이 되면 볼록볼록한 봉분 속에서 원혼들이 일어나 
머리를 풀고 피를 흘리며 쫒아올 것 같은 으시시함으로 인해 누구나 가기를 기피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묘소이다.

하지만 봉분 없이 평토장을 한 비엔나의 묘소들에는 예술작품 같은 묘비 조각들이 놓여 있어 보는 이들을 감탄케 한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비 조각으로부터 현대미가 우러나는 추상 조각까지.....
단순한 묘비명에 그치지 않고 고인들의 과거와 그들의 재주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묘비에 조각하여 고인을 그리며 회상하게 하며
묘비의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주위 경관으로 인해 묘지가 아
니고 마치 조각공원에 온 듯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많은 유명인사들의 묘소 가운데서도 제일 인기 있는 곳은 역시 32A구역에 위치한 음악가들의 묘소.
사진에서 가운데는 모차르트의 묘소, 왼쪽은 베토벤, 오른쪽은 슈베르트의 묘소이다.


 


사실 모차르트의 묘소가 어딘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 묘비는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가난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모차르트 사후 슈테판 대성당에서 장례식을 거행하고 공동묘지에 매장되었지만 돌보는 사람도 없던 묘지는 곧 잊혀지게 되었다.
후에 시 당국이 모차르트 무덤 자리를 조사했지만 확증을 잡지 못해 무덤이라 추정되는 자리에 1859년에 기념비를 세웠고
1891년에 이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한다.

기념비 위의 조각상은 그의 아내 콘스탄체의 모습이다.



악성(樂聖)이라 불리운 베토벤은 비엔나에 35년간 살았다.
말년에 귓병으로 거의 듣지 못하게 된 베토벤은 매우 신경질적이 되어 이웃과도 마찰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2만명이 넘는 비엔나 시민들이 몰려 그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생전에 베토벤을 몹시 존경하여 베토벤 사후 관을 운구하기도 했는데
베토벤 곁에 묻히길 원했던 그의 유언대로 그의 묘소는 지금도 베토벤의 바로 옆에 있다.




비엔나를 사랑하고 노래한 음악가들은 갔지만
그들의 묘소는 음악도들을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이 놓고간 꽃들과 양초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누가 묘지를 혐오 시설이라고 했던가......
문화 명소이자 비엔나의 또다른 관광 상품으로 떠오른 비엔나 중앙묘지는
자기의 삶을 성찰하고 남은 인생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사색의 장소가 아닐까.....


역사를 주도한 명사들과 불멸의 음악가들의 흔적과 조우할 수 있는 곳,
죽음조차 아름다울 수 있는 그곳은 바로 비엔나 중앙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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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고도 길게 느껴지는 유럽의 겨울 밤.
오후 2시만 되어도 마치 저녁 5시 해질녘 같은 느낌이 들고
저녁 5시 쯤 되면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시계를 보지 않으면 한밤중인가 생각될 정도인데
어두워져 춥고 스산한 느낌마져 드는 비엔나 거리에서도 유난히 따스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

비엔나에 여행오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린다는 전통 레스토랑 '호이리게'.
호이리게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는 그린칭 마을은 도심에서 좀 떨어진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마을의 전통적인 분위기는 비엔나의 고풍스런 맛을 한결 더해주고 있다.





'호이리게(Heuriger)'란 '그해 생산된 포도로 만든 햇와인(Heuriger Wein)' 이나 그런 '와인을 파는 선술집같은 레스토랑'을 이르는 말이다.

호이리게(Heuriger)는 올해의란 뜻을 가진 Heurig에서 기원되었다고 하니 오스트리아산 보졸레누보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되실 듯.



그린칭 마을에서도 가장 유명한 호이리게는 단연 Bach & Hengl.
호이리게 Bach & Hengl로 들어서니 노란 불빛과 함께 오스트리아 전통 장식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바깥에 탁자를 베풀어놓고 식사를 하며 호이리게를 즐기곤 한다는데
날이 추운지라 마당은 쓸쓸하기만 하여 레스토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독일 메르켈 총리와 클린턴도 왔다간 집이라고 알려진 Bach & Hengl의 벽에는
얼굴만 봐도 이름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빼곡이 붙어 있다.
사진이 깔끔하게 붙어 있으니 유명인들의 싸인이 붙은 우리나라 맛집보다는 어쩐지 품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음식은 주문하면 웨이터들이 테이블까지 가져다주는 부페식으로 
닭고기, 돼지고기, 소시지, 각종 샐러드와 피클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닭고기, 돼지고기, 모듬 소시지, 감자, 샐러드 등의 모듬 세트는 1인당 12.5유로 정도인데
이렇게 큰 그릇에 담겨져 나오므로 개인 접시에 덜어먹으면 된다.





화이트 호이리게(Heuriger, weiB)를 시키면 이렇게 큰 유리병에 담아서 내어오는게 특이한데
맑고 투명한 호이리게의 빛은 보는 이들의 미각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주 약한 음주에도 '깨꼬닥'하고마는 필자이지만 비엔나 특산 호이리게를 맛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조금씩 맛을 보았는데 맛은 보졸레누보와 거의 비슷한거 같았다.(술맛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내릴 수 없는 필자라 정확치 않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호이리게를 소다수와 섞어 마시기도 한다는데 대체 어떤 맛일지 그것 또한 궁금하다.





샐러드 후에는 스프가 나온다. 손잡이 달린 스프 컵에 담겨나온 스프는 보기에는 그냥 멀건 국물이다.





스푼으로 건더기를 떠보니 우리 소면같은 국수가락이 건져진다. 이것도 스파게티 종류인가....?
맛은 고기국에다 국수를 만 것 같은 맛이다. 거부감도 없고 맛도 제법 훌륭하다.





스프를 먹고 나니 감자와 함께 메인 요리가 나왔다.
본 고장 소시지와 정통 햄, 닭고기 등.....접시에 하나 가득 담긴 육류 들이 보기만 해도 침이 줄줄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줄줄이 비엔나'라는 CF로 유명해졌던 비엔나 소시지(vienna sausage)는
미리 조리한 원료육을 작은 창자 굵기로 성형하여 훈열, 가열한 제품으로
비엔나에서 처음 생산되기 시작해서 비엔나 소시지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4cm정도의 작은 소시지를 비엔나 소시지라고 말하는데
본 고장 비엔나 소시지는 사진에서와 같이 15cm 길이의 양 내장에 충전된 소시지로 독일어로는 Wienner라고 표기한다.




소시지, 햄, 닭고기, 감자.....등을 한 접시에 세팅해 보았다.
육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환상적인 음식이지만 채식을 주로 하는 한국인들이라면 왠지 약간은 느끼한 식단.....
그것도 바로 앞에 산더미 같이 쌓인 각종 햄, 소시지들을 보며 먹으니 몇개 못 먹고는 금방 질려 포크를 놓아야 했다.

기타와 바이올린, 아코디언의 앙상블로 특징지어지는 슈라멜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호이리게를 찾는 사람도 많다는데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두 팀이나 와 있었던터라 
이들을 위해 비엔나 전통 음악 보다는 만남 등 한국 음악을 더 많이 연주한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아....그리고 이 연주는 무료가 아니므로 반드시 팁을 준비해서 주어야 한다고 한다.





멋진 슈라멜 음악을 들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쳐가니 드디어 후식이 나왔다.





후식은 오스트리아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사과 파이 아펠 스트루델(Apfelstrudel)이다.
아펠 스트루델은 크기가 보통 가로 30cm 정도 되는 두툼한 크기의 빵으로 
그 안에 사과를 통으로 썰어 넣고 말린 건포도를 함께 넣어 잘 구워낸 파이이다.





우리는 느끼한 육류를 먹고 난 후에 엄청나게 달콤한 파이나 케이크를 후식으로 먹는 서양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서양인들은 속이 썩도록 달콤한 파이나 케이크가 육류의 느끼함을 없애준다고 생각한단다.
하긴.... 술 먹은 다음 날 해장으로 계란 후라이나 햄버거를 먹는다니......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 같다.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아펠 스트루델.
하지만 속이 뒤집어지도록 달콤한 스트루델을 햄과 소시지, 닭고기등 육류를 잔뜩 먹은 후에 먹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뜨겁고 얼큰한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면서도 "어...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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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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