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 자락에 위치한 동리목월 문학관. 

 

  

석굴암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곳에

우리 문학의 거두인 김동리,박목월 두 작가의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로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동리 문학관, 오른쪽엔 목월 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지난 번 김동리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데 이어 이번에는 박목월에 대해 조명해 보기로 한다.  

 

 

1915년 1월 6일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에서 아버지 박준필과 어머니 박인재 사이의

2남 2녀 중 맏이로 출생한 박목월의 본명은 '영종(泳鐘)이다.

 

 

아버지 박준필은 당시 경주군 수리조합(토지개량조합)의 이사였고

대구로 나가 중학교를 졸업한 인텔리 유지였다.

어머니 박인재는 목월이 보통학교 4학년 되던 해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머니의 신앙은 이후 목월의 정서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목월의 할아버지인 박훈식은 개화의식의 소유자였으며

그의 개화의식은 목월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그 때까지 집안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 젊은 며느리가 성경책과 찬송가를 옆에 끼고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놀라운 것은 며느리의 교회 출입을 허락해준 시아버지 박훈식의 관대함이다.

그의 선각자적인 개화의식이 거기 뚜렷이 투영되어 있다.

어린 목월은 그러한 집안에서 법도 있는 사랑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난 것이다. 

 

  

목월은 1923년에 건천 보통학교를 , 1930년엔 대구 계성학교에 입학하였고

계성학교 재학 중인 1933년 동요 '통딱딱 통짝짝'과 '제비맞이'가

각각 '어린이'지와 '신가정'지의 현상에 당선되어 동요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1935년, 계성학교를 졸업한 목월은 경주군 동부 금융 조합에 취직하게 되는데

1940년에는 산그늘,가을 어스름,연륜 등의 글이 '문장'지에 추천됨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그 이후 1946년에는 '동시집' '초록별' '호랑나비''산새알 물새알'등의 창작 동시를

 

 

1948년에는 창작 동화집 '눈이 큰 아이'를 간행하는 등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한다.

 

 

그의 동시들은 유년지향의 시,생명 지향의 시,향수의 시,동시 언어의 확대가 특징이다.

 

 

목월 문학관의 전시관에는 그의 저서 및 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목월이 편집일을 보았던 '여학생'지와

 

 

1951년의 동시집 수제본에서부터

 

 

초기의 시집 청록집(1946), 산도화(1955)...

 

 

후기의 시집들......

 

 

그의 창작욕을 짐작할 수 있는 수많은 육필 원고들도 전시되어 있다.

 

 

또 목월의 이력서와.....

 

 

중앙대학교와 한양대학교 재직 시절의 월급 봉투도 보이는데

그는 1962년 한양대학교 교수로 취임해 1976년 문리대학 학장을 지냈다.

 

 

뻬곡하게 쓰여진 그의 강의 노트에선 반듯한 성격이 미루어 짐작되고....

 

 

 생전의 모습이 담긴 앨범들..

 

 

문인들과의 조우..

 

 

여러분의 친필이 담긴 부채.

 

 

문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

 

 

그의 집필에 도움을 주었던 연필, 만년필,파일롯트 잉크..

 

 

그가 수집했던 우표책 등 여러가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목월 문학관 한쪽에 마련된 방에는 그의 서재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원고가 이리저리 흩여져 있는 앉은뱅이 책상과 한쪽에 놓인 흔들의자는

선생이 방금 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것만 같다.  

 

 

목월의 초기 시에 나타난 '향토적 정서'는

고향 경주의 문화재와 자연 환경을 통해 형상화된다.

 

 

"나는 늘 혼자였다. 사무가 끝나면 거리로 나왔다.

거리랬자 5붐난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의 산천과 하늘 뿐이었다."

목월은 산문 '나와 청록집 시절'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목월의 글은 매우 서정적이고 자연지향적이다.

 

  

초기의 대표작인 '나그네', '윤사월','청노루','산도화'....

이런 작품들은 매우 절제된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였는데

짙은 서정성과 함께 우리말의 리듬을 아름답게 살려내었다.

 

 

또한 목월이 노래하는 자연들은 이전의 우리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아름다움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가 노래하는 자연은 목월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자연이요, 아름다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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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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